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3권 : 2) 테네이돈의 부름 (289/520)

2) 테네이돈의 부름

"으후후훗."

위드는 망토를 휘날리면서 하르셀 산악 지역의 어느 높은 봉우리에 서 있었다.

그가 서 있는 장소에서 보이는 보석 같은 설경과 구름의 바다.

"멋지군. 나와 어울리는 장소야."

시간 조각술을 중급까지 터득했으니 본격적으로 강해지기 위해 잡기 힘든 몬스터들에 도전을 할 때가 되었다.

조각사로서 회의가 들었던 순간들을 다 합치면 집 한 채도 너끈히 지었으리라.

어쨌거나 지금은 조각술 최후의 비기까지 익혀 놓고 실전에서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조각사로서 궁극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위드가 하르셀 산악 지역에 온 것은 전설의 설인을 잡기 위해서였다.

다크 게이머 연합의 정보 게시판을 본 것이다.

 [ 탐험자 레인입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의 깊은 곳에 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전설의 설인들이 희귀한 확률로 출현합니다.

   이들을 사냥하면 얼음의 정화라는 마법 재료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얼음 마법 개발에도 쓰는 재료로 구하려는 마법사가 많아 팔려고 하면 거의

   부르는 게 값이죠. 그리고 이건 조각 재료라고도 하는데…….

   전설의 설인을 잠깐 상대해 본 경험에 따르면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구성이 잘된 레벨 470대 중반으로 이루어진 8명 정도의 파티라면

   위험하지만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마법사와 사제 그리고 워리어는 필수겠죠. ]

"사막을 기준으로 한다면 설인의 레벨이 500 정도라는 건데. 냉기를 뿜어내는 광역 공격이 문제로군.  시간 조각술이 있으니 도전을 해 봄직해. 첫 실전으로는 과하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자."

사냥도 하고 돈도 모으기 위한 방문.

위드가 사냥을 하기 적당한 고급 몬스터들이 하르셀 산악 지역에는 상당히 많았고, 또 산사태라도 일어나면 새로운 던전의 입구가 곧잘 나타난다.

물론 들어가게 되면 입구가 막혀버려서 반드시 뚫어야만 했지만 그런 경험은 많았다.

사막의 대제 시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난이도의 던전들을 경험하면서 퇴로가 막히는 건 뼈저리게 겪어 보았으니까.

최고 레벨 수준의 몬스터들을 다수 잡아 보았던 경험이, 지금은 약해진 위드라 해도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다.

몬스터의 외모와 특성을 고려하면, 상대할 약점이나 공격 방법 등이 본능처럼 잘 떠올랐던 것이다.

위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얼음 사이에 나 있는 틈으로 들어갔다.

보석처럼 빛나는 얼음 던전.

 『 던전, 동쪽 틈새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이 동쪽에 위치한 던전입니다.

산의 균열로 생성된 던전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마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 작은 틈새가 이어진 던전은 산악 지역의 지형이 크게 바뀌기라도 한다면 완전히 닫혀 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때 그 안에 있는 이들의 운명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혜택 : 명성 2,33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롭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

후이이이이잉!

매서운 바람이 불었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얼음 기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도 설원 부근에만 생성되는 고급 던전이었다.

얼음 바닥은 무심코 걸으면 수십미터는 그냥 미끄러질 정도였으며, 추위가 심해서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위드는 방한 장비들을 미리 챙겨왔고, 재봉과 대장장이 스킬로 즉석에서 가공을 할 수 있으니 걱정 없었다.

"누렁아."

"음머어어어."

"걸음걸음마다 주의해라. 우리로는 조금 버거울 수도 있으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너라도 도망쳐."

"걱정해 줘서 고맙다, 주인."

"생고기와 냉동육은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까 조심해야지."

"음머어어어어어어."

때때로는 광부 스킬 덕분에 유별나게 반짝이는 이상한 장소를 발견하면 곡괭이질을 해서도 얼음석이라는 광물을 채취했다.

드라이아이스처럼 한기를 내뿜는 광물로, 2등급 마법 재료.

보석처럼 비싼 광물은 아니지만 특수한 지형에만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웃돈을 받고 팔 수 있었다.

"사냥터가 집처럼 편하군."

던전의 마물들은 위드가 예상했던 레벨 400대 후반 정도의 수준으로 무난하게 사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서윤과 프레야 교단의 사제 2명, 그 외에 조각 생명체들을 필요에 따라서 불렀다.

바하모르그, 켈베로스, 하이 엘프 엘틴, 게르니카, 세빌을 비롯하여 상황에 따라서 부를 만한 조각 생명체들은 아주 많았다.

"골골골, 이러다가 과로로 죽을 것 같다."

"음머어어어. 짐이 너무 무겁다. 모라타에 가서 새끼를 낳고 싶다."

화염 마법과 궁술에 특기를 가진 금인이와 짐꾼으로 데리고 다니는 누렁이는 언제든 끼어 있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

그리고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빙룡!

하르셀 산악 지역은 추운 지대에 위치해서 빙룡이 자신의 본신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으겔겔겔겔."

프레야 교단의 가호가 끝나고 나서 모라타를 중심으로 몬스터 집단들을 상대하던 블랙 이무기도 오랜만에 소환되었다.

그 둘은 가공할 위력으로 산악 지역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을 제압한다.

드래곤 피어만 발휘하더라도 일반 몬스터들은 겁에 질려서 꿈쩍도 못하다가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물론 하르셀 산악 지역의 지배자, 룬그레고라는 얼음 괴물이 있는 장소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다른 고위급 몬스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도 가지 않았지만 만만한 장소에서는 왕처럼 행세하는 빙룡!

또한 야비한 성격으로 빙룡이 먼저 앞장을 서더라도 최후는 꼭 자신이 장식하려고 하는 블랙 이무기!

"쿠워어어어어어!"

"시끄러!"

"크와아아앙!"

"맞을래? 요즘 며칠 안 맞았더니 비가 와도 쑤시는 곳이 없고,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빙룡이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더니 다른 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확 위드를 향해 브레스라도 내뿜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미운 정이 잔뜩 들어 있었다.

빙룡의 레벨도 520을 넘어서 웬만한 지역은 혼자서도 재패하는 위엄을 발산했다.

특히 하늘을 날면서 브레스로 약한 몬스터를 대량 살상하는 순간만큼은 전율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드의 사냥을 초보나 평범한 유저들이 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는 퀘스트 덕분에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위드 본신의 능력, 특히 잔머리를 총동원하고 있었으며 조각 생명체들도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와이번들이 몬스터 얼마나 몰아왔는지 확인해 봐."

"알겠다, 주인."

"놀고 있으면 몰래 보고 와서 일러. 너만 맛있는 거 줄게."

"잘 살펴보고 오겠다."

빙룡과 와이번들은 하르셀 산악 지역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던전이 아닌 장소에서의 사냥 방식은 조각 생명체들을 노예처럼 다양하게 부리면서 이루어진다.

빙룡과 와이번들이 하늘에서 위협하면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도망치기 마련이다.

그들을 위드가 있는 위치로 몰아오면 산악 지역의 절벽과 계곡 지형을 이용하여 궁술로 쉽게 사냥했다.

"명확한 속사!"

파라라라락!

하이 엘프의 활을 들고 있는 위드의 손에서 빠르게 화살이 날아갔다.

"쿠엑!"

"꾸에에엑. 인간이다."

"비겁한 인간의 손에……."

 - 추코판 15마리를 화살로 제압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훗, 가뿐하군. 역시 나의 능력이란……. 빙룡, 와이번들, 뭐 하고 있어? 몬스터가 중간에 끊겼잖아. 고깃집에서 고기가 끊기는 것만큼 불쾌하군. 어서 더 데려와라!"

예전에는 다양하게 스탯과 스킬 숙련도를 높이려고 굳이 레벨도 빨리 올리지 않았다.

전투를 하며 몸을 한계까지 혹사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았겠지만 레벨이 많이 떨어진 지금은 그런 필요성을 못 느꼈다.

조각술의 비기를 전부 모았으며, 생산과 일반 스킬들의 총합은 잡캐의 신으로 등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레벨이 빨리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원한다면 조각 부활술이나 생명 부여를 해서 팍팍 깎이게 될 테니 스킬 숙련도는 높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각사는 레벨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군. 물론 낮은 쪽으로는 말이야."

물론 위드가 가지고 있는 전투 스킬들만 고려하더라도 다른 유저들보다 수준에서 뒤처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파티에서 공격 위주로 싸움을 한다.

스톤 스킨과 같은 방어 스킬 등까지 골고루 성장 시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누렁아."

"음머어어어."

"짐 들고 서 있기 힘들지?"

누렁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의 등에 산더미처럼 실려 있는 온갖 잡템들.

도시에 가서 팔면 비싸게 팔 수 있는 물품들이 무겁게 실려 있었다.

그렇다고 정직하게 대답을 하면 위드가 밥값을 못한다고 구박을 할지 모르니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힘들지 않다, 주인."

"무거우면 좀 쉬게 해 주려고 했는데……."

"음머어어어. 무겁다, 주인.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서윤은 딱하다는 눈빛을 누렁이에게 보냈다.

'바보.'

그렇게 겪어 보고도 위드에게 어떤 고난을 겪으려고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누렁이는 순박한 큰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쉬어야지."

위드는 직접 누렁이가 짊어지고 있는 짐들을 땅바닥에 내렸다.

"비싸고 귀한 물건이지만 누렁이 너만큼 중요하진 않단다."

"음머어어어."

누렁이는 감격했다.

이런 맛에 주인을 따라다니는 거였다.

비롯 부려 먹으려는 의도였겠지만 생명을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기까지 하는 주인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깊은 정이 느껴졌다.

위드는 활을 든 채로 한동안 능선을 내려다보았다.

"누렁아, 그냥 쉬면 심심하니까 간단한 놀이나 하면서 쉴래?"

"음머?"

"안 하겠다면 안 해도 되는데. 뭐, 그냥 서 있기도 심심하다면 말이야."

누렁이가 경계를 시작했다.

"힘든 일인가?"

"하나도 안 힘들어. 그냥 가만히 있는 것과 별 차이도 없을 거야."

"하겠다, 주인."

"그럼 배고플 텐데 식사부터 하자."

위드는 배낭에서 몇 가지 요리 도구를 꺼내서 음식을 만들었다.

달콤한 향이 솔솔 나는 약초 스튜!

"남기지 말고 먹어."

"정말 주는 건가?"

"널 위해서 만든 요리야."

혀로 조심스럽게 맛보니 천국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다 마친 직후.

"와일아!"

위드는 와이번 중의 첫째를 불러서 누렁이를 붙잡도록 지시했다.

"얘 미끼로 써서 몬스터 끌고와."

"꾸에에엑!"

향긋한 냄새가 풀풀 나는 누렁이까지 미끼로 동원!

와이번들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들, 혹은 유인에 휘말리지 않을 정도로 지성이 있는 몬스터들을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은 높이 때문에 궁술을 이용하여 사냥을 할 만한 장소들이 많다.

레인저들이 괜히 산과 숲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한 특성에다가 얼음으로 뒤덮진 지형의 특성상 구석으로 몰아 놓고 입구를 무너뜨리기만 하면 영락없이 몇백 마리라도 일망타진을 할 수가 있었다.

즉, 광렙을 하기에 적절한 장소라는 뜻!

누렁이의 힘과 체력만 이용해 먹는 게 아니라 탐스러운 육질까지도 남김없이 활용하겠다는 방침.

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 찰나의 조각술을 쓸 작정이었다.

"사냥에서는 아주 확실한 안전보장이 되겠군."

시간 조각술을 익히기 전에는 몬스터들의 위험을 신중하게 평가해야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조각 생명체들까지 전부 몰살을 당하고 나면 입게 되는 피해가 너무 큰 것.

아르펜 왕국에 위기가 생기면 일반 유저들이 도와주지만, 위드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은 괴멸해 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웬만한 위기는 거뜬히 넘겨 버리는 워리어 바하모르그에 제 몫을 해낼 정도로 성장한 조각 생명체들.

위드 자신의 능력과 부대를 지휘해 온 경험에 시간 조각술까지 받쳐 주다 보니 위험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몽땅 데려와라! 크하하하!"

★★★★★★★★★★★★★★★★★★★★★★★★★★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는 황소 1마리가 둥둥 떠다녔다.

"꾸어?"

하급, 중급 몬스터들은 물론이고 희귀한 전설의 설인까지도 낚였다.

누렁이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따라오는 몬스터의 무리.

그 뒤에서는 커다란 눈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전설의 설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일반 몬스터들은 위드가 계속 화살로 잡아냈지만, 전설의 설인에게는 그런 단순한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설인의 주변으로는 반경 30미터에 달하는 눈보라가 치면서 화살은 거의 무력화되어 버렸다.

다크 게이머 연합의 탐험자 레인도 전설이 설인을 보면서 어떻게 사냥을 해야 할지 고민에 잠겼을 것이다.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면 추위를 막아 주는 아이템들로 몸을 전부 무장한 채로 산악 지역의 좁은 지형으로 유도해서 화살과 마법으로 잡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나름 이 동네의 보스급이라는 건가. 시간은 돈. 만나기도 힘든 녀석을 원하는 장소까지 끌어들여서 처리하자면 효율이 너무 떨어지게 돼. 적자가 날 수도 있지."

위드의 눈이 차갑에 빛났다.

"얘들아, 협공이다!"

추위에 약한 와이번들은 공중에서 빠르게 이동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그사이에 빙룡이 과감하게 땅에까지 내려와서 전설의 설인에게 박치기를 하고 꼬리를 휘둘렀다.

블랙 이무기가 화염을 뿜어내고, 금인이가 불화살을 쏘는 사이에 위드와 서윤이 앞뒤로 공격했다.

전설의  설인은 자신의 주변으로 극심한 한기를 내뿜기 때문에 근접전을 감히 시도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외관상으로 볼 때에는 갑옷 등을 착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맷집이 가장 큰 약점으로 보였다.

슬로어의 결혼반지 덕분에 생명력을 공유해서 서로를 보조하며 위드와 서윤이 함께 싸우는 작전.

"후비쉬!"

전설의 설인에 의해 얼음 벼락이 생성되더니 위드를 강타했다.

"컥!"

 - 강대한 타격으로 생명력이 29,203 줄어들었습니다.

 - 몸이 결빙됩니다.

   몸이 마비되어 방어 능력을 일시적으로 63%까지 상실합니다.

   지금 공격받는다면 평소의 7배에 달하는 생명력이 줄어들 것입니다.

"뭐야, 이건… 정보보다 훨씬 강하잖아!"

탐험자 레인이 굳이 거짓말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전설의 설인이 가진 얼음 벼락이 특별히 강한 기술일 것이다.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는 얼음 속성의 특성까지 더해져서 위력이 더해졌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위드가 착용하고 있는 갑옷도 보통의 것은 아니었다.

 - 여신의 기사 갑옷에 깃든 불과 화로의 신 헤스티아가 결빙 상태를 해소해 주었습니다.

   이상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그사이에 금인이와 누렁이 그리고 빙룡, 바하모르그의 공격까지도 무시하고 전설의 설인은 서윤을 향하여 맹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서윤도 물러나면 될 텐데, 위드가 쓰러져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전설의 설인과 검을 휘두르며 정면으로 맞붙었다.

 - 운명의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 반려자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생명력을 7,548만큼 전달합니다.

위드가 줄 수 있는 생명력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전설의 설인이 가까이 붙어 있는 탓에 서윤의 몸이 마비되었고 저항력까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잠깐만 지체한다면 그녀는 생명력이 감소하거나 온몸이 얼어서 목숨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서윤이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광전사의 상태에 접어들지는 못했다.

전설의 설인이 내뿜는 극한의 냉기를 해소해 줄 사제도 옆에는 없는 것이다.

"약간 위험한데… 에라, 모르겠다!"

위드는 스킬을 시전했다.

"찰나의 조각술!"

시간 정지!

스킬이 발동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다시 한 번 세상의 흐름이 멎었다.

내리는 눈발도, 전설의 설인이 내뿜는 한기도 그대로 멈췄다.

하르셀 산악 지역은 신비롭고 매력이 넘치는 장소였다.

위드의 경험상 금역이나, 인간이 쉽게 살기 힘든 극악의 자연환경일수록 환상적인 경치를 감춰 놓고 있었다.

새하얀 눈과 얼음덩어리.

흩날리는 눈송이까지도 세상과 함께 멈추어진 가운데 햇빛을 받으며 떠 있다.

위드는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움직였다.

눈보라를 뚫고 들어가며 설인을 검으로 베었다.

"달빛 조각 검술!"

시간 조각술을 써서 세상을 멈추는 동안에는 몸을 움직이는 자체가 체력에 무리였다.

스킬은 기본적인 것밖에는 쓰지 못한다.

그렇기에 기본적이고 익숙한 것을 사용했다.

위드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전설의 설인에게 일곱 번의 타격을 가했다.

 - 치명적인 일격!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검을 휘둘렀습니다.

   한계를 넘어선 충격량으로 인하여 검의 내구도가 43% 감소합니다.

"쿠에에에엑!"

키가 4미터가 넘는 전설의 설인이 그대로 빙벽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우르르릉!

산봉우리가 흔들리고 땅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울렸다.

전설의 설인은 몸 전체가 빙벽에 박히고 말았다.

 - 전설의 설인이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불가사의한 공격에 겁에 질립니다.

   투지와 적대도가 높은 전설의 설인이 겁에 질린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훗."

위드의 자신만만한 미소.

"역시 나란 남자는."

 - 찰나의 에너지가 47 감소했습니다.

 - 체력이 21% 줄어듭니다.

   온몸의 힘을 끌어 써서 앞으로 16초 동안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집니다.

   신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활동으로 힘과 민첩이 잠시 동안 6% 하락합니다.

"우억!"

워낙 급했기에 한순간에 남아 있는 체력의 절반 정도를 써 버릴 정도로 무식하게 소모해 버리고 말았다.

보통 전사의 직업이 아니더라도 체력은 전쟁이 아닌 이상 크게 걱정하며 싸우진 않는다.

사냥을 하면서 체력이 다 떨어질 정도가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체력 관리까지 철저히 잘해야 되겠군. 시간 조각술은 유용하긴 한데, 모든 스탯들을 다 쥐어 짜 내서 써야겠어. 조각 파괴술과의 조합도 필요하겠군.'

위드는 어쩌면 체력의 저하로 과로를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골골골골. 대단하다, 주인!"

"음머어어어어. 용맹하다."

조각 생명체들의 칭찬.

위드는 찰나의 에너지는 아까웠어도 때를 놓치지 않았다.

"얘들아, 덮쳐!"

집단 사냥이야말로 밟을 때 잘 밟아야 하는 법!

와이번들과 빙룡은 시선을 끄는 한편으로는 틈이 날 때마다 하늘에서 집요하게 공격해서 끝까지 제 역할을 다했다.

싸움을 싫어하는 누렁이가 몸으로 돌진하고, 승기를 확신한 블랙 이무기가 적극적으로 싸워서 전투의 승리를 거두었다.

 - 전설의 설인을 사냥했습니다.

   전투의 성과로 인해 힘이 1 증가합니다.

   인내가 2 증가했습니다.

 - 명성이 267 증가합니다.

 - 하르셀 산악 지역의 개척도가 0.2% 증가합니다.

   개척도가 100%가 되면 적응력이 증가하여, 지역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방어력과 저항력이 올라갑니다.

   개척도는 던전 탐험을 통해서도 늘릴 수 있습니다.

뭐든 첫 사냥이 어려운 법.

그 이후로는 지형을 이용하거나 조각 생명체들의 조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설의 설인을 더욱 쉽게 해치웠다.

전설의 설인은 거주 지역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면 일단 자신의 굴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의외로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절벽가에서 싸우면 무서워하며 제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장기간의 싸움에도 취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생명력이 떨어지면 회복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약점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몬스터의 일반적인 레벨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위험하고 강한 몬스터였다.

몇십 미터나 되는 얼음덩어리를 생성하여 무시무시한 속도로 던질 수도 있었으며, 위험에 빠지면 두더지처럼 눈 속으로 파고들어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본 정보와는 조금 다른데. 특성과 공격 기술때문에 최소한 두 등급 정도는 높은 몬스터야. 뭐, 그렇더라도 대처법을 알고 있다면 사냥해 볼 만하겠지만."

본인이 모험을 하더라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정보 글에도 어느 정도의 오차는 감안을 해 두어야 했다.

이후에 다른 유저들이 자신의 경험등을 추가로 등록하여 정보를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

"난 그냥 내버려 둬야지. 누군가는 또 당하게 될 테니까!"

이렇게 반복되는 악순환!

위드는 하르셀 산악 지역을 돌면서 전설의 설인을 17마리 사냥했다.

다른 몬스터들도 빠짐없이 쓸어버리면서 레벨도 무려 6개나 높아졌다.

전설의 설인처럼 까다롭고 독특한 특성을 가진 몬스터들은 추가 경험치를 주었다.

산사태와 우연한 발견으로 찾아낸 던전들에서는 대부분 최초 입장에 따른 경험치 2배의 혜택을 톡톡히 입었다.

429에서 435까지 레벨을 올린 속도롤 따진다면 전무후무할 정도로 빨랐다.

시간 조각술이 있기 때문에 예전이었다면 피하거나, 까다롭게 상대했어야 할 위험한 몬스터들에게 거침없이 덤벼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드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다른 놈들을 생각해야 돼. 두 다리를 뻗고 잘 정도는 못 돼."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바드레이가 있는 이상 아무리 레벨을 올리더라도 만족감을 느낄 수는 없으리라.

전투 중에 찰나의 에너지가 계속 소모되었으니 사냥도 한층 조심스러워져야 했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 모험으로 눈곱만큼 쌓이는 찰나의 에너지가 스킬을 사용하면 확연히 줄어들어 버렸던 것이다.

레벨이 올라가는 동안 위험할 때마다 시간 조각술을 쓰다 보니 남아 있는 찰나의 에너지는 고작 163.

상황에 따라서 시간 조각술을 길게 사용한다거나 많은 거리를 움직이면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남는 게 없는 기분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지속성만 놓고 본다면 씁쓸했다.

느긋하게 자주 써먹지 못하고 아찔한 순간들에만 찔끔찔끔 활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마치 빨리 도착하는 택시를 타는 기분이군. 기본요금만 해도 밥이 한끼잖아."

위드는 그래도 시간 조각술의 활용에 많이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건 확실히 전투 스킬이야. 예술 따위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게 틀림 없어. 덕분에 이득을 보고 있지만 조각사들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군."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의 사냥을 조심스럽게 계속하고 있는 위드와 서윤.

그들은 산봉우리에 있는 작은 화산 호수를 발견했다.

오래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분화구에 맑고 깨끗한 물이 들어서고 풀과 나무가 자란 천국과도 같은 장소.

띠링!

『 하르셀의 낙원을 발견하셨습니다.

   

숨겨진 비밀스러운 경치를 찾아내어 명성이 1,380 증가합니다.

이 발견물을 귀족과 왕족에게 보고한다면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위드는 바로 실망했다.

"음, 사냥터는 아니로군."

그러나 반성했다.

"나는 아직 어리석구나. 이런 장소야말로 숨겨진 비경. 쓸 만한 약초들이 잔뜩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즉시 수색에 나서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정력 증가용 노란 약초와 생명력 회복에 쓸모가 있는 붉은 약초를 대량으로 주웠다.

"감정!"

 『 하르셀의 노란 약초 :  소모용

아이템. 제대로 자란 상등품.

정력 증강에 유용한 약초. 

약초학의 지식으로 판단해 볼 때,

이 약초라면 노인이라고 할지라도 절륜한 체력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황금보다도 비싼 무게에 판매될 수 있을 듯. 』

 『 하르셀의 붉은 약초 : 소모용

아이템. 거래된 적이 없어거 가격 환산 불가능.

상처 치료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약초.

부상 부위에 바르거나 즙을 짜내서 마실 수 있다.

최대 생명력 증가의 혜택까지 있음. 』

"대박이로구나!"

10년 이상 자란 약초들은 극히 희귀했다.

던전 깊숙한 곳에나 숨겨진 그런 약초들도 가격을 환산하기 힘들 정도인데 이런 양질의 땅에서 무럭무럭 자란 약초들.

크기부터 몇 배나 되었다.

어떤 인간도 찾아오지 못한 장소에 왔더니 그야말로 횡재를 한 셈!

"후후후, 노란 약초는 시장에서 바가지를 씌워서 몽땅 팔아야… 아니, 잠깐만 언젠가 찾아올 나중을 위해서 조금은 남겨 두어야 할까."

위드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서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절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 그녀를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곁에 머무르면서 많은 도움을 준 그녀에게 이 약초가 언젠가 큰 보답을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연애를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가끔 해 주는 19금 영화로 배운 만큼 확신했다.

"뭐, 인간관계가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니겠어."

위드는 들품을 헤치며 노란 약초들을 남김없이 찾아내서 배낭에 담았다.

약초학의 지식에 따라서 잘 가공하면 훌륭한 효험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써먹어 보고 팔면 참 좋을 텐데… 뭐, 그럴 수는 없겠지."

위드도 똑같은 늑대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들풀 사이에서 날개를 팔랑거리면서 위드의 코에 달라붙은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너는……."

 ㅡ 안녕. 안녕. 안녕. 반가워.

공간을 넘나드는 장난꾸러기 페어리였다.

위드는 약간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서 대답했다.

"저기, 처음 뵙겠습니다. 누구?"

 ㅡ 나빠, 나빠. 나를 잊어버렸구나. 미운 인간. 그렇다면 바다 한복판에 떨어뜨려 주겠어!

위드의 기억력이 과거를 헤집어 보았다.

페어리라면 파리처럼 작은 크기에 다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몸에도 달라붙는 페어리는 흔치 않았다.

"잠깐, 기억이 났다. 보고 싶었어! 지골라스에서 보고 페어리 퀸의 여왕님의 처소에서도 코에 앉은 적이 있잖아."

 ㅡ맞아. 반가워, 친구.

위드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서윤이 다가왔다.

"안녕. 정말 작은 아이구나."

 ㅡ 맞아. 친구의 친구. 예쁜 인간.

서윤이 페어리를 향하여 손가락을 내밀자 대뜸 위드의 코에서 옮겨 갔다.

페어리들은 역시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했다.

위드는 막다른 골목에서 빚쟁이를 만난 듯이 목소리를 무겁게 깔고 물었다.

"나를 찾아온 거야?"

 ㅡ 응. 당연히.

"……."

위드는 페어리에게 할 말이 없었다.

오래전에 받았던 페어리 퀸의 퀘스트!

지금까지도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면목이 없었다.

페어리 종족과의 친밀도도 제법 높았지만 지금은 다 포기하고 적대적으로 돌아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ㅡ 여왕님께서 너를 데려오라고 하셨어.

"흠흠, 그게… 나에게는 중요하고 바쁜 일이 있는데. 하필이면 지금 찾아오다니 아쉽군."

 ㅡ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여왕님께서 수다쟁이 정령들을 통해서 들었어. 그대가 여왕님을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해 주었다면서?

"뭣이?"

위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페어리 퀸의 퀘스트는 슬픈 드래곤의 유품을 찾는 것!

그 해결을 위해서는 붉은 갈대의 숲에서부터 시작될 끝도 모를 연계 퀘스트들을 수행하여야 했다.

그런데 위드는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하면서 혼돈의 드래곤 아우솔레토를 사냥하고 실버 드래곤 유스켈란타의 거울을 획득했다.

당시에도 혹시나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드래곤의 물건이란 게 흔히 널려 있는 것도 아니고,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럴듯한 의심이 들었다.

퀘스트를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꼭 정해진 길만을 따르지는 않아도 된다.

다른 유저들 같은 경우는 흔히 알려진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다음에 필요한 아이템 등을 미리 구해서 가는 것이 시간 절약을 위해서 일반적이었다.

'뭐, 과정이야. 어쨌든 얻긴 얻었는데. 이것은… 눈먼 퀘스트?'

S급의 연계 퀘스트를 마무리해 버린 것일지도 모르는 일.

위드의 허리와 어깨가 선거를 마친 국회의원들처럼 당당하게 펴졌다.

"페어리여."

 ㅡ 왜 불러?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여왕님을 뵈러 가자."

★★★★★★★★★★★★★★★★★★★★★★★★★★

『 "위대한 사막의 영혼이 모래울림의 부족, 전사 중의 전사, 바에브치를 선택하였다."

"위대한 사막의 영혼이 칼날의 피 부족, 전사 중의 전사, 캄초를 선택하였다."

"위대한 사막의 영혼이 늑대 낙타의 부족, 전사 중의 전사, 헤우스를 선택하였다."

사막의 대제왕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대지의 그림자 파티. 』

"이번에도 성공이네요."

"피해가 너무 크군. 400명의 전사가 도전해서 고작 20명이 살아남았으니. 앞으로가 정말 큰 난관에 부딪쳤다고 할 수 있어."

"그 20명이야말로 진짜 알짜배기라고 부를 수 있으니 아직 실패한 건 아닙니다."

대지의 그림자 파티에서는 연계 퀘스트의 아홉 번째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사막 부족들의 인정과 존중을 받고 전사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사막의 대제왕, 그것은 우리 사막의 살아 있는 전설이고 모든 전사들의 꿈이오. 그대들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우리 전사들을 이끌어 주시오."

"이곳에서 타클라드 사막까지 나보다 강한 전사는 없소. 그러나 대제왕의 길은 나로서도 장담하기 어려운 힘든 일. 우리 부족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그대들의 협력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자신들을 믿어 주는 전사들이 시험을 치를 때마다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전사들을 데리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던전을 톨파하고, 몬스터와 싸워서 이겨 낸다.

9단계까지의 연계 퀘스트는 역시 대부분이 전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힘을 숭상하는 사막 전사들은 몬스터의 무리에 무모하게 덤벼들었으며, 자신들끼리의 싸움도 서슴지 않고 벌였다.

사막 부족들 간에 원한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분쟁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졌다.

탐험과 발굴, 조사가 주특기인 대지의 그림자 파티에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중요한 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려서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그럼에도 퀘스트가 진행되면서 사막 전사들이 사망하거나 큰 부상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전사 보르.

드물게 힘과 용기, 지능까지 두루 갖춘 전사였다.

대지의 그림자 파티에서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던 그는 함정에 빠진 340여 명의 사막 전사들을 구하고 회생 불가능의 부상을 입었다.

"대제왕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영광입니다. 제 부족에… 제 마지막 순간은 비겁하지 않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보르의 사망.

다행히 사막 전사들의 사기는 감소하지 않았다.

"경쟁자가 죽었군. 좋은 소식이야."

"크크크. 어리석은 짓을 했지. 나 바에브치가 사막의 제왕이 될 것이다."

"보르의 희생이 헛되게 되지 않도록, 그리고 사막의 번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도록 나 캄초가 힘쓸 것이오."

"나 헤우스 역시 비슷한 순간에 보르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면 망설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희생을 지켜보기만 했기에 부끄럽다. 영광스러운 대제왕의 길에는 행운을 기대한다거나, 조금의 비겁함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지의 그림자는 거친 사막 전사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퀘스트가 마지막까지 가게 되면 그는 이 지역을 통합하는 대제왕이 될 것이다.

악당이 대제왕이 되었을 경우는 당장 대륙에 피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졸였다.

"전사들의 성장 속도가 놀라워요."

"사막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오직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니까."

"위드가 돌파했던 던전들이 연계 퀘스트를 수행하는 전사들에게는 3배에서 4배의 숙련도와 경험치를 준다는 것도 큰 이유겠죠."

"대제왕의 퀘스트에서 정말 성공하는 사람이 나올까요?"

"우리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나타나리라 생각해."

사막 지역에서는 대제왕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전사들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었다.

적어도 4만여 명의 전사들이 대제왕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지의 그림자를 존중하지 않는 부족의 전사들은 황량한 벌판을 돌아다니는 늑대처럼 스스로 도전했다.

위드가 이룩했던 전대미문의 강함.

그가 사막에 남겨 놓은 흔적을 쫓아서, 그가 가지고 있던 검술이나 유물을 얻어서 완전한 대제왕으로 거듭나기 위한 퀘스트.

그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사막 전사들은 계속 도전하고 있었다.

대제왕 위드가 사막에 남긴 불멸의 전설을 전사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띠링!

『 사막의 낙타

사막에서는 모래바람보다 빠르고 구름의 그림자마저도 쫓아갈 수 없는 낙타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대제왕을 태우고 전쟁의 시대를 평정했던 쌍봉낙타의 혈통을 찾아라.

대제왕 위드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이후 쌍봉낙타는 대륙을 떠돌다가 자신의 고향인 사막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길들인다면 대제왕의 험난한 길을 잇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난이도 : S

보상 : 쌍봉낙타

퀘스트 제한 : 쌍봉낙타의 혈통은 사막 전체에 34마리가 남아 있음. 』

대지의 그림자 파티에서는 도전 정신에 불타올랐다.

이미 퀘스트가 정점에 도달해 있는 이상 모험을 즐기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

"크흠, 무지하게 덥군."

검오치를 비롯한 수련생들은 사막의 뜨거운 햇볕에 인상을 썼다.

하벤 제국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

그들은 자신의 약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고작 기사 오십 놈의 목밖에 베지 못하다니 남자로서 수치가 아닌가!"

"저는 너무 약해서 병사들만 상대했는데 고작 1,000명밖에 못 해치웠죠.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것 같습니다, 사형."

"나처럼 창피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힘도 없는 흰옷을 입은 마법사 육십 놈밖에 못 죽였다. 검을 들 자격도 없다."

수련생들은 나약함을 반성하며 후회했다.

아르펜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에 나섰는데 그들이 해치운 적들을 다 합치면 고작 16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인당 300명을 조금 넘는 적들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묵사발 기사단의 묵직한 돌격, 그러나 하벤 제국군 중갑보병의 완강한 저항에 의하여 돌파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적진 한복판에서 북부 유저들과 함께 난전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적진에서 힘겹게 싸울 때는 금방 무너지리라 예상을 했지만, 사실 난전이 벌어지고 난 이후부터 검치 들은 훨씬 잘 싸웠다.

다 함께 일제 돌격을 하며 원거리 공격의 표적이 되기도 쉽다.

그러나 적진 한복판에서 적의 기사들과 병사들과 함께 뒤섞이며 정신을 놓아 버리고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좌충우돌 부딪쳤다.

때론 적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짧은 휴식도 취한다.

전투 물자 마차들도 약탈하고, 궁병대에 진입하여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히며 전투 명성을 혁혁하게 날린 그들.

하벤 제국군의 기세를 꺾은 것은 검치와 수련생 개개인들의 역할이 아주 컸다.

약 230명 정도의 검치 들은 위대한 전쟁 업적을 쌓은 검삼치를 부러워하며 더욱 강해지기 위하여 남부 사막지대에까지 왔다.

검삼백이십육치가 주민들 몇 명을 만나더니 돌아와서 검오치에게 말했다.

"사범님, 여긴 대제왕과 연관이 있는 퀘스트가 유행인데요. 도시에 있는 유저들도 그걸 한다고 설치고 있습니다."

"내용이 뭔데?"

"그러니까 사막 전사로 전직을 하거나, 그들을 이끌어서 대제왕의 후예가 되는 거죠."

"여자도 있냐?"

"없습니다. 우리처럼 전부 남자들만 모였습니다."

"휴우. 우린 복잡한 건 하지 말자. 때려죽이기나 하자."

"암요. 맞습니다."

검오치와 수련생들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그냥 퀘스트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여자가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닌 이상 굳이 들어줄 이유가 없는 것!

그때 검팔십일치가 말했다.

"삼백이십육치야, 사막 전사들을 이끈다고?"

"네, 사형. 거칠고 말도 안 듣고, 싸움밖에 모르는 자들이라서 정말 힘들답니다."

"어려울 것도 없잖아?"

"예?"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하면 되잖아?"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거칠고 용맹한 사막 전사들이라고 해 봤자 검치 들이 보기에는 그냥 인간에 불과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

무릇 말을 안 들으면 제대로 귓구멍이 뚫릴 때까지 때리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리고 몬스터와 사우는 것도 뭐가 어렵냐. 우리가 맨날 하는 건데.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되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검오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리가 있군."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군요. 우리가 평소에 너무 머리를 쓰고 사는 것 같습니다."

검오치는 오래전 기억이 났다.

"스승님께서 예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남들이 머리를 굴릴 때, 우린 근육에 바짝 힘을 주어야 한다고."

"저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잔머리는 당해 내지 못하니 웬만한 일은 몸으로 해결하라는 거지요."

타인과 시비가 걸리거나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근육에 힘을 주면 만사형통!

꿈틀거리는 근육과 선명한 혈관들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심 깊고 친절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심심한데 우리도 퀘스트나 해 보자. 다 때려 부수고 두들겨 패 버리자."

"옛, 사형!"

검오치와 수련생들도 뒤늦게 대제왕의 퀘스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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