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4권 : 3) 용기사 뮬의 특별한 그리폰 (300/520)

3) 용기사 뮬의 특별한 그리폰

"으아아악!"

"놈들이 멍청하게도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낫! 용병단 놈들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자."

쨍그랑!

쿠르르르릉.

위드는 노드 그라페의 성 내부에 잠입해 있었다.

외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유리창이 마법의 여파나 화살에 맞아서 깨지고, 성채가 조금씩 흔들렸다.

'소리나 전투 규모로 봐서는… 블랙소드 용병단의 거의 전 전력이 온 모양인데. 이건 뭐 말을 잘 들어줘도 너무 잘 듣는 거 아니야?'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원활한 진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헤르메스 길드에서 특별히 이상한 점 같은 걸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블랙소드 용병단이 위장 역할을 제대로 해 주겠군.'

반란이 일어나서 전력이 빠져나갔던 사정 역시 블랙소드 용병단의 음모라고 생각하리라.

위드가 이미 그라디안 지역을 관장하는 총독부까지 잠입해 있을 거란 생각은 아무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위드가 머리를 꼿꼿이 들고 생각에 잠겨 있자, 근처에 있던 그리폰 암컷들이 엉덩이를 뒤뚱거리면서 접근해 왔다.

구우우우우.

꾸우. 꾸우우우우!

친근하게 머리를 비비거나, 얼굴 앞에 엉덩이를 높게 들이밀었다.

명백하게 텔레비전에서 어린아이들이 시청해서는 안 될 금지된 무엇인가를 바라는 태도!

위드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캬악!"

그러자 눈치를 보며 잽싸게 피해서는 그리폰 암컷들!

깨애애애앵.

그러나 암컷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슬픈 구애의 눈빛을 보냈다.

와이번보다 체구는 조금 작지만 그리폰 역시 포악하고 흉폭한 성질을 가진 하늘의 맹수들이었다.

위드는 현재 인간의 모습으로 정문을 통해 노드 그라페 성채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수컷 그리폰!

조각 변신술로 눈가와 옆구리에 흉터도 있는 포악한 야성 수컷 그리폰의 형태를 하고 노드 그라페 성채의 그리폰 둥지에 와 있었던 것이다.

크으응!

영향력을 빼앗긴 수컷 그리폰들은 이를 갈면서도 구석으로 물러났다.

처음에 위드가 등장했을 때는 수컷 그리폰들이 서열 정리를 하려고 했다.

캬핫!

덩치를 키우기 위해 날개를 펼쳐서 위협하며 바싹 엎드리라고 경고를 했다.

그러나 위드가 고작해야 그리폰들에게 고개를 숙일 리가 만무하다.

사정없는 날갯짓 붗꽃 싸대기와 부리로 정수리 쪼아 대기에 감히 대항 할 수 있는 놈은 없었다.

그 후에 쓰러진 수컷 그리폰들을 상대로 날아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내려찍기의 4단 연속 공격을 마구 작렬시키는 광경에 기가 죽어 버린 것이다.

반면에 암컷들은 강하고 진한 수컷의 냄새를 맡고 계속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며.

'젠장. 너무 완벽하게 조각을 하고 말았나? 카리취처럼 멋진 외모를 갖춘 게 틀림없어.'

위드는 와이번을 조각한 이후로 비행 생명체의 구체적인 특성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폰에 대해서도 생김새를 잘 아는 편이었다.

슬레이언 부족으로부터 조각 생명체 아르닌을 구출할 당시 샤벨타이거와 그리핀도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핀이나 그리폰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거의 비슷한 종족이었다.

위드는 그 점을 참고하여 거만하고 야성적인 눈빛과 황금빛 갈기를 가진 그리폰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암컷들이 슬금슬금 다가올 때였다.

"크아아아앙!"

위드의 크게 벌린 주둥이에서 중저음의 거진 포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암컷들은 서둘러서 도망쳤지만 그 목소리에도 반한 기색이 역력했다.

'젠장, 이놈의 인기. 이러다가는 암컷 그리폰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말겠어.'

위드는 빨리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용기사 뮬의 그리폰 기사단은 총 5,000.

반란군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3,500 정도의 그리폰 기사들이 출동했다.

1,500의 병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남았으며, 뮬도 아직 출정하지 않았다.

블랙소드 용병단이 공격을 개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에 나선 걸로 봐서는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적들이 몰려왔다. 전군 출격 준비!"

그리폰 둥지가 있는 장소로 1,000명의 기사들이 올라왔다.

기사들은 익숙하게 자신의 그리폰을 타고 장비를 점검했다.

긴 창과 활, 검을 든 그리폰 라이더들!

번뜩이는 멋진 무장을 착용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폰의 몸체에도 공격 마법을 막아 내는 특별한 갑옷을 입혔다.

"250기씩 나눠서 강습한다."

"옛!"

"모쪼록 마련된 풍성한 사냥 기회를 충분히 누리도록 하자. 적들 중에는 무시 못 할 자들도 있으니 지상 가까운 곳까지 내려가서 욕심을 부리다가 사로잡히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도록."

"물론입니다."

그리폰 부대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탑의 입구로 빠져나갔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마지막 전력이 꽤 상당하다고 해도, 그리폰 부대에게는 사냥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위드도 와이번을 타고 있으면 지상에 돌아다니는 모든 생명체들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하늘을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고, 활을 가지고 있으면 사냥이 쉬워지기는 했다.

물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주 거대한 모스급 몬스터들 같은 경우에는 화살 수십 발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뮬은 아직도 안 나오는 모양이군.'

위드는 조금씩 초조함을 느꼈다.

반란군이든 블랙소드 용병단이든 상대를 하러 용기사 뮬이 나와야 기회가 생긴다.

성채 내부의 깊은 곳에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다면 습격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번째, 세 번째에는 가능성이 더욱 떨어질 것이다.

위드가 혼자서 노드 그라페 내부로 잠입하여 모든 기사들을 해치울 수는 없는 것이다.

'상황이… 블랙소드 용병단이 버텨줘야 하는데.'

부서지는 소리와 폭발음을 통해서 외부의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블랙소드 용병단에서는 위드와의 협력, 차후의 왕국 통치 계획까지 염두에 두고 잔존 병력을 전부 끌고 나왔다.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서 총독부의 군대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위드의 편지 한 통이 초래한 뜻밖의 전개.

마침내 그리폰의 둥지로 용기사 뮬과 다른 그리폰 라이더 400명이 올라왔다.

"성 내부의 침입은 모두 격퇴되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제국의 골칫덩어리들이 제 발로 등장해주었으니 이번 전투는 전멸을 목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놈들 중에서 중요 인물들은 도망치면 끝까지 추격해서라도 반드시 사살하라."

"옛!"

"하벤 제국에 덤비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읹디 가르쳐 주자. 탑승!"

기사들이 자신의 그리폰을 찾아서 탑승했다.

'아마 100명은 최후로 남은 예비 병력이겠군.'

위드는 독수리의 머리를 치켜든 채로 위풍당당하게 섰다.

용기사 뮬이 출격을 하면 지상의 블랙소드 용병단과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 습격을 해서 뮬과 공중전을 치열하게 펼쳐야 했다.

이미 조각 파괴술을 써서 모든 예술 스탯을 민첩으로 높여 놓았다.

화려한 공중전을 대비한 출격 준비 완료였다.

"호오, 이 그리폰은 생김새가 아주 기가 막히는구나."

뮬은 자신의 그리폰을 찾다가 위드가 먼저 눈에 띄었는지 발길을 돌려서 다가왔다.

그의 전속 그리폰은 이곳의 대장이었으니, 불행히도 위드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아서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수컷 그리폰 중에서도 이렇게 크고 멋지게 생긴 녀석은 처음 본다. 언제 이런 녀석까지 포획했던 것이지? 그리폰 체포조의 활약이 대단했던 것 같군."

뮬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위드의 입을 열어서 이빨을 확인해 보거나, 어깨와 날개의 근육을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깃털 사이로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정체를 발각당할 경우를 대비해서 조각 변신술을 꼼꼼하게 펼쳤기 때문에 어지간히 부위들로서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훗, 아무리 봐도 날 파악하지 못할 걸.'

그러나 뮬의 은근한 손길이 엉덩이 부근으로 향할 때는 눈앞에 아찔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튼실한 뒷다리를 만지는 것으로 탐색은 끝났다.

"이 그리폰은 대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군. 체포조 중에 누가 이런 공을 세웠을까?"

위드 혼자서 그냥 둥지로 날아 들어 온 것이지만, 그리폰의 행세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뭐라고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으며 뮬은 이곳을 지배하는 권력자였다.

그의 곁에는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아붑꾼들이 붙어 있었다.

"둥지 내에서 부화를 했다가 멀리 떠나서 성장을 한 후에 돌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유 그리폰들도 외부에서 들어옵니다. 뮬 대장님의 명성이 그리폰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 설명은 맞거나 말거나 관계 없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음, 그리폰에 대한 대우를 계속 좋게 해 준 보람이 있군. 오늘은 이 그리폰에 타겠다."

"정말이십니까? 전속 그리폰보다는 전투력이 아무래도 떨어질 텐데요."

"블랙소드 용병단에서 성채를 함락시키기란 불가능하지. 놈들은 반란군들의 준동을 기회로 보고 쳐들어왔겠지만 멍청한 짓이었다. 이번 전투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이 그리폰을 길들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준비하겠습니다."

위드의 몸에 그리폰 전용 갑옷들이 입혀졌다.

하벤 제국에서 제작한 특제 그리폰 갑옷들.

투구와 몸통 갑옷, 날개 보호대, 강화 발톱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착용되었다.

각 아이템마다 레벨 제한이 250을 넘는 수준.

일반 유저들에게는 낮은 편이지만, 그리폰 종족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다.

하벤 제국의 수도 공방과 마탑에서 특별 제작한 물품이었다.

 - 황금 사파이어 그리폰 세트 장비를 착용하였습니다.

   세트 장비의 효과에 따라 시야가 맑아지고 가시거리가 2.1배 증가합니다.

   지식이 136만큼 높아집니다.

   물리 방어, 마법 방어가 216% 가 됩니다.

   비행 속도가 34% 증가합니다.

   비행에 따른 체력 소모가 줄어듭니다.

마법 세트 갑옷!

'오오오오.'

갑옷을 입혀 주는 동안 위드는 순한 양처럼 얌전히 있었다.

심지어는 뭔가 허전하게 느껴지는 부리를 앞으로 쭉 내밀기까지 했다.

"아, 이걸 빼먹었군."

 - 뇌전의 맹금 부리 장식을 무장했습니다.

   부리 공격력이 3.2배 증가합니다.

   자신보다 약한 적을 물었을 때 16%가 넘는 확률로 무력화시킵니다.

이거야말로 은행 강도에게 기관총을 쥐여 주는 꼴!

뮬이 탑승하기 위해 목에 목줄을 걸고 등에는 안장까지 얹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드는 만족스럽게 가만히 있었다.

"생김새에 비해서는 말 잘 듣는 그리폰이구나."

 - 용기사가 당신의 등에 앉았습니다.

   그의 지휘력이 당신의 공중 이동 속도를 47% 빠르게 합니다.

   신체 능력을 21%까지 상승시킵니다.

용기사 뮬이 고삐를 잡아당겼다.

"오늘 멋지게 활약해 보자!"

위드는 가볍게 날개를 펼치면서 날아올랐다.

★★★★★★★★★★★★★★★★★★★★★★★★★★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노드 그라페!

블랙소드 용병단과 하벤 제국군이 맞붙으면서 곳곳에서 마법이 작렬하고 있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서 마법과 화살이 오가며 전사들은 칼을 맞대고 싸운다.

'상당히 멋진 광경이군. 이곳에는 실력자들이 많으니까.'

먼저 출격한 그리폰 군단은 하늘을 장악한 채로 지상으로 내려가서 활약하고 있었다.

위드는 그리폰으로 변신한 만큼 종족의 특성에 따라 밤눈이 좋아져 낮처럼 환하게 세상이 보였다.

블랙소드 용병단은 과거에 그라디안 왕국와 네스트 왕국을 지배하던 강력한 세력이다.

전성기에는 대륙 대부분의 용병들이 속해 있는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의 대표 용병단 자리에까지 올랐다.

현재는 길드 내의 이탈자가 상당하였지만 여전히 많은 용병들이 블랙소드 용병단을 위해 검을 휘둘렀다.

이미 확실하게 조직화된 다른 길드들에 비해서 오로지 용병들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했던 미헬이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기 때문이다.

미헬은 국가 단위의 행정 능력이나 지휘력은 약하더라도 의리가 있어서 용병들 사이에서 인기는 매우 높다고 한다.

"사냥감이 많군. 저곳으로 가자!"

그때 뮬이 고삐를 밑으로 잡아챘다.

땅으로 내려가자는 뜻!

위드는 눈동자를 굴려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뮬과 함께 출격한 그리폰 부대가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로군. 뭐, 조금은 놀아 주지.'

위드가 숨을 가볍게 마시더니 지상을 향해 강하를 개시했다.

'내 등에 타고 있는 이상 진짜 재미가 뭔지 알려 주지. 어지간해서는 재밌지 않을 거야.'

커다란 날개를 좌우로 활짝 펼쳐서 떨치니 믿을 수 없는 가속력이 발생했다.

 - 비행 스킬 꿰뚫는 창공의 새가 시전되었습니다.

 - 마스터 스킬 바람의 질주가 발동되었습니다.

 - 마스터 스킬 거리 단축이 발동되었습니다.

 - 마스터 스킬 강행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조각 파괴술로 모든 예술 스텟을 민첩으로 몰아넣어서 생성된 스킬들.

쐐애애애애액

아찔하게 한 줄기 빛살처럼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리꽂혔다.

두꺼운 공기의 저항도 거대한 힘과 속도로 강제로 뚫어 냈다.

"위험합니다, 대장님!"

"대장님을 구출해야……."

근처의 그리폰 라이더들은 물론이고 뮬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뮬은 고삐를 힘껏 잡아당겼다.

"다시 날아올라라! 어서! 어서!"

땅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500미터.

320미터.

140미터.

60미터.

영락없이 삶을 포기한 그리폰과 뮬의 동반 자살!

'아직, 아직이야.'

위드의 눈동자는 지극히 차분하고 냉정했다.

땅까지의 거리 22미터 정도를 남겨 놓고 상체를 세우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크웨에에엑!"

내다꽂히던 엄청난 속도에 온 힘을 다해서 저항했다.

사방으로 폭풍이 몰려온 듯한 바람, 날개를 포함한 전신의 근육이 다 팽팽하게 일어났다.

땅이 가까워졌지만 억센 힘과 가공한 민첩으로 가까스로 스치면서 방향전환에 성공했다.

"크오오오오!"

닿지도 않은 바위들이 땅에서 뽑혀서 굴러다녔다.

'어때, 좀 재밌냐?'

뮬은 간신히 고삐를 붙잡고 인장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다.

"큭, 무슨 이런 야생 그리폰이……."

그가 숙련된 용기사가 아니었다면 지상으로 추락했을 수도 있었다.

위드는 뮬을 매단 채로 거센 바람과 돌풍을 일으키며 전진했다.

말로 변신했을 때 네발로 뛰던 땅에서도 빨랐지만 날개를 펼쳐서 비행을 하다 보면 속도에 대한 갈구는 더욱 심해진다.

가장 빠르고 거칠게 움직이는 그리폰이고 싶었다.

'인생 뭐 있어? 스트레스는 풀라고 쌓이는 거야.'

그때 한 블랙소드 용병단 소속의 전사가 잔뜩 커진 눈동자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용병 입장에서야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지더니 자신을 향해 전력으로 덤벼 오고 있는 것이니 멍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도 덤프트럭이 전속력 질주를 해 오는 듯한 기세로!

1초를 절반으로 나눈 것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 견적이 봅혔다.

'레벨은 460 정도? 꽤 훌륭한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군. 나랑은 상관없는 사이라서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 바닥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

위드는 전사의 위를 날아가면서 발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꾸에에엑!"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무방비로 있던 상대의 생명력을 31% 감소시켰습니다.

공격을 막을 수 없는 빠르기!

방어라는 것도 사실 어느 정도 상식적이어야 가능하다. 상대가 검을 휘두르거나 화살을 쏘아 대면, 맞받아치거나 방패로 막거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날아오면서 사정없이 발길질을 가하는 그리폰이 있을 줄이야!

'안 죽었군. 뮬을 잡으면 그걸로도 밥값은 하겠지만, 조각 파괴술을 썼으니 반찬 정도는 푸짐하게 먹어 줘야 하지 않겠어?'

위드는 돌풍을 일으키며 지나가면서 닥치는 대로 발길질을 하고 부리로 쪼아 댔다.

블랙소드 용병단이라면 살인자들을 골라서 모조리 박살을 냈을뿐더러, 흙먼저 사이로 빼꼼히 머리를 드러낸 하벤 제국의 기사들도 목표가 되었다.

이토록 포악한 그리폰은 어디에도 없었다.

병사들 따위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후려치고 지나갔다.

"대, 대단하다."

뮴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위드의 격렬한 비행 능력은 안장에 타고서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그냥 편안한 날갯짓은 느린 장거리 비행은 몰라도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폰은 육체 구조에 따라 몸의 무게중심을 바꾸어 가면서 날개를 이용해 바람을 탈 줄 알았다.

놀라운 균형 감각과 기동 능력을 발휘하였다.

게다가 지상의 인간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타고난 공격성!

'조금만 가르친다면… 훌륭한 전투 그리폰이 될 수 있다.'

비행 몬스터들은 포악한 성질을 가질수록 전투 능력이 뛰어났다.

용기사라면 당연히 이런 그리폰 1마리쯤 길들여 보고 싶어 한다.

"화염 폭발!"

"프로스트 볼트!"

"이런!"

블랙소드 용병단의 마법사가 마법을 날리면 뮬이 조종을 하기도 전에 위드가 반응했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선명한 수십 줄기의 불과 얼음의 마법.

위드는 마법이 다가오는 것을 빤히 응시하다가 어느 순간 날개를 기울여서 사선으로 날았다.

그러고는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전부 스쳐 지나가도록 만들었다.

간결하고 정확한 회피 동작.

그리고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무섭게 순간 가속하여 상대 마법사를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 버렸다.

"끄에엑! 살려 줘!"

꾸꾸콰콰콰콰콱!

블랙소드 용병단의 유저들도 살인자의 상태에 들어선 이들이 많았기에 그들만을 노려서 처리했다.

이름이 붉은 살인자라면 아무 페널티 없이 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쿠오오오오오오!"

위드가 괴성을 터트렸다.

보는 눈이 너무도 많았으며 땅이 아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차마 죽은 자들을 처리하고 전리품까지는 수거할 수가 없어서 터지는 울화통!

자신이 타고 있는 그리폰을 보는 뮬을 표정은 복잡했다.

'이놈만 있다면 어떤 몬스터도 두려울 게 없어. 지금보다 더 많은 전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냥 속도 역시 더욱 빨라질 테지. 나중에는 심지어 바드레이나 전쟁의 신 위드도 잡을 수 있을지도. 이런 복덩이가 굴러 들어오다니, 제대로 길들이면 하늘이 있는 장소에서는 내가 천하무적이다.'

기분 좋은 흥분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용기사에게 빠르고 거친 그리폰이란 훌륭한 무기이며 동료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어디 너와 내가 실력을 발휘해 보자!"

뮬이 자신의 긴 창을 꺼내서 무장했다.

봉인된 선더 스피어.

마나를 소모하여 약 20여 미터에 달하는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원거리 공격 무기.

무려 570의 레벨 제한이 걸려 있는 장비이다.

500에 거의 도달했다는 뮬의 레벨으로는 아직 쓸 수 없었지만, 용기사의 직업 탓에 무기의 능력을 제한하여 사용이 가능했다.

"낮게 날아라!"

뮬은 저공비행하는 위드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명령했다.

'조금은 더 놀아 주지. 뭐, 나도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뮬의 창으로부터 사방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콰르르르르!

꽈아아아아아아아!

벼락이 작렬하여 사람과 땅을 타고 흘러서 수십 명에게 연쇄 피해를 입혔다.

위드는 뮬이 공격하기 좋도록 적들이 대거 모여 있는 장소로 고속으로 이동해 주었다.

엄폐물과 지형의 고저 차 등을 이용해서 마법과 화살 공격을 영악하게 회피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모두 저공 돌격이다."

"옛, 대장!"

뮬의 곁에 장창으로 무장한 그리폰 부대 170기가 모였다.

하벤 제국의 전략무기이며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그리폰 전투 비행단!

그들이 지상을 낮게 날며 창으로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블랙소드 용병단이라고 해도 초토화가 되었다.

말을 탄 기사단의 진격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지만 하늘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리폰 기사단은 무엇으로도 막기가 어렵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마법을 사용하면 날파리 떼가 흩어지듯이 산개했다가 공격을 재개한다.

유저들로서는 지상에서의 전투에 집중하던 중 하늘에서 갑자기 공격을 당하게 된 셈이었다.

노드 그라페를 향해 맹렬하게 진격하던 블랙소드 용병단의 병력에 대량의 끔찍한 피해가 발생되고 있었다.

위드와 뮬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마법 용병들과 레인저들을 처치하고 하벤 제국군에 길을 터 주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블랙소드 용병단의 유저들은 망연자실했다.

하늘로부터의 맹렬한 공격, 그리폰 군단의 활약이 너무나도 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헬로서는 적당히 하고 물러설 수가 없는 처지였다.

"공격해라. 이대로 노드 그라페를 함락시키고 왕성으로 진격할 것이다!"

물러서면 전멸을 의미했다.

전력을 투입한 만큼 블랙소드 용병단에서는 이번 전투에서 무조건 승리를 거두어야 했다.

인력과 자금을 총동원한 전투.

유저들로 구성된 용병들에 이어서 NPC 용병들까지도 대거 고용해서 쳐들어왔으니 팽팽하게 맞섰다.

그리폰 군단이 습격을 하면 방패를 머리 위로 들고 성채를 향해서 달렸다.

그리폰 군단의 전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오직 하늘에서의 공격만이 가능하다.

용감한 용병들은 성채를 향해서 일제 돌격했다.

"어리석은 놈들!"

블랙소드 용병단에서 큰 전투를 준비하면서 그 움직임과 수상한 낌새가 조금은 헤르메스 길드에 노출이 되었다.

노드 그라페의 내부에도 방책을 세워 놓는 등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해 놓았다.

"죽여라. 전부!"

"꾸와아아아아아아아!"

"맹렬한 연쇄 폭발!"

"사정거리가 긴 화살로 교체해서 쏴라. 성벽을 노리지 말고, 적진으로 무조건 퍼부어!"

전쟁터의 격렬한 소음.

위드가 보기에 전투는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더니… 블랙소드 용병단의 저력이 굉장하군. 이만큼이나 모아 올 줄은 정말로 몰랐어.'

그러나 공성전인 만큼 아침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하벤 제국의 승리로 굳어지게 될 것이다.

네스트와 그리디안 지역에서 일제히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떠난 그리폰 군단이 돌아온다면 전황은 블랙소드 용병단에 매우 불리하게 바뀐다.

블랙소드 용병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총력을 기울여 노드 그라페를 향해 온갖 마법들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폭발형의 마법에서부터 생벽의 내구도를 떨어뜨리는 대지계의 마법, 독구름을 일으키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물론 하벤 제국군에서도 마법사들이 나와서 방어 마법을 펼치거나 신성 마법으로 저주를 해소했다.

양측 모두 전력이 보통은 아니기 때문에 성채를 중심으로 하여 화려하고 무시무시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부대와, 성문을 돌파하거나 성벽을 오르는 전사 부대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

'이게 진자 전쟁이로군. 강자들이 싸우는…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

문득 아쉬움도 적지 않게 느껴졌다.

세력을 일구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그다지 해 본 적이 없었다.

부하들이 있어 봐야 이래저래 챙겨줘야 하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 나가는 일도 쉬운 건 아니다.

뜻이 바뀌어서 이탈한다거나 혹은 배반하는 경우가 로열 로드에서 드문 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런 전투를 보면 로열 로드의 초창기부터 중앙 대륙에서 시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뮬은 선더 스피어를 휘두르며 그리폰 부대를 지휘했다.

"그리폰 군단은 적들을 교란시켜라. 성채로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마라."

이 전투 역시 방송국들의 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서 최소 수천만 명의 시청자들이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전투의 규모나 내용에 따라 시청자 수가 1억이나 2억 명을 가뿐히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 전쟁의 총지휘관으로서 갖는 영웅심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노드 그라페가 건재하다면 어마어마한 전공을 기록하게 된다.

로열 로드에서는 단순히 여가를 즐길 수도 있지만 왕이나 기사가 되어서 대륙의 역사를 직접 쓰는 것도 가능했다.

그 매력이야말로 소위 야망에 빠진 남자들을 미치게 만든다.

뮬은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수뇌부 24인 중의 1명에 속했으며 그라디안 왕국과 네스트 왕국 지역의 군사령관!

그는 블랙소드 용병단을 격파하고 아울러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는 멋진 모습들을 보여 주기를 원했다.

이심전심.

위드도 그 마음을 느꼈다.

'하지만 내 등에 탄 이상 네 팔자도 여기까지지. 죽을 곳을 제 발로 걸어 들어와서 탔으니까.'

위드는 전황을 냉정하게 주시하면서 뮬과 함께 전투를 치렀다.

수십 기의 그리폰이 추락하고, 블랙소드 용병단에 그 이상의 피해를 입혔다.

'팁이나 보너스를 받은 것도 아닌데 너무 신 나게 해 줄 필요도 없어.'

위드는 뮬의 조종에 응하면서도 스리슬쩍 블랙소드 용병단의 마법사들이 밀집해 있는 위치로 향했다.

위드와 뮬이 앞장서니 100마리 이상의 그리폰 군단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지상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마법 줄기들이 솟구쳤다.

"산개해서 피해라!"

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흩어지는 그리폰들.

지상과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마법이 발현되더라도 일찍 피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심한 부상을 입거나 추락하지만 않으면 노드 그라페의 그리폰의 둥지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위드는 마법이 솟구치고 있는데 정면으로 돌진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뮬이 고삐를 강하게 움켜잡고 아무리 틀어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공격성을 자극받은 듯이 포효하며 정면을 향해서 비행하는 위드.

"멍청하게! 어서 피하란 말이다!"

뮬이 기를 쓰고 조절을 해 봤지만 이미 늦었다.

무시무시한 공격 마법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은 내가 마을 안 듣는다고 여기지 다른 의심은 못 하겠지. 문제는 지금이다.'

위드는 자신을 표적으로 날아오는 마법들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마법사들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피하기 쉬운 일직선의 공격만 가하지는 않는다.

곡선으로 휘어지거나, 근처의 적을 추격하거나, 심지어는 목표물 근처에서 폭발하는 종류도 있었다.

지상에서부터 실현된 마법의 공중화망 구성!

블랙소드 용병단에서 그리폰 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마법사들끼리 준비한 일제 공격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군. 하지만 하늘은 넓고 돌파할 길은 있다. 나 자신을 믿자. 이건 칭얼거리는 여동생을 데리고 영화관 매표소 아저씨를 피해서 몰래 들어가던 어릴 때보다도 훨씬 쉽다.'

위드는 비행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마법에 돌진하여 맞아 죽으려는 듯이 미련한 행위인 것 같았다.

그러나 간신히 몸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보였다.

꽈과과과광!

위드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자 하늘에서 마법들이 폭발했다.

위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몇백 개의 공격 마법들이 지상에서부터 그를 목표로 날아오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그리폰 부대를 노리고 있었기에 준비했던 마법들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던 것이다.

위드는 공중에 잠깐 멈춰서 독수리처럼 몸을 세우고 두 날개로 균형을 잡았다.

'기다린다. 아직 기다린다. 지금!'

거대한 그리폰의 몸체가 산들바람처럼 흔들리며 거짓말처럼 가뿐하게 움직였다.

공격 마법들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거나 하늘에서 폭발했다.

말이 장애물과 웅덩이를 피해 가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앞과 뒤, 좌우만 계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위드는 진행 방향뿐만 아니라 높낮이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때때로 기다리기도 하면서 마법 사이의 실날같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 세상은 그렇게 암울하지 않아. 월세가 밀려도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있다.'

냉철한 집중력!

위험할수록 긴장되지만 몸과 머리는 더욱 빨리 움직인다.

'뮬을 잡기 위한 최대의 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만 넘기면……."

그리폰의 몸은 상당히 커서 모든 마법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맞아도 큰 부상을 입지 않는 공격들은 그대로 맞아 주었다.

 - 회전하는 불덩어리가 회피술에 의해 최소한의 피해를 입히고 스쳐 지나갔습니다.

 - 봉쇄하는 아이스 오브에 적중되었습니다.

   빠른 움직임으로 돌파합니다.

 - 치명적인 마법 공격을 당했습니다.

   마스터 방어 스킬 심장울림이 적용되었습니다.

   몸속에서 솟구치는 강한 울림으로 공격의 충격을 해소합니다.

때때로 어떤 마법 공격들은 진행 방향이 부딪쳐서 하늘에서 먼저 폭발했다.

매의 눈처럼 그 지점들을 잘 주시했다.

그 직후에 정면의 화염 속을 강행 돌파하는 위드!

폭발을 뚫고 나오자마자 다가온 마법들까지도 미리 위치를 알기라도 한 듯이 몸을 옆으로 눕히면서 회전했다.

날쌘 물고기가 급류 속에서 헤엄을 치듯이 마법 공격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크어억!"

뮬은 위드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삐를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피해 갈 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대단하다.'

정면을 가득 메운 마법 공격임에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 구멍을 찾아내고 말았다.

짧은 순간 위드는 마법으로 구성된 화망을 끝내 완전 돌파하고 말았다.

"저게 뭐야."

"무슨 개사기 그리폰이냐!"

지상의 마법사들은 망연자실했다.

하늘을 나는 그리폰을 맞히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건 사기에 가까운 움직임!

위드도 조각 파괴술을 민첩을 극대화시켜 놓지 않았다면 감히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민첩은 하늘에서의 속도나 방향 전환 등의 움직임을 놀랍도록 빠르게 만들어 주었다.

"대, 대단하구나!"

뮬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자신이 직접 조종한 것도 아닌데 그리폰 스스로 모든 마법 공격을 피해 버렸다.

중간에 몇 번의 중대한 위기가 있었고, 끝내는 마법을 피하지 못하고 추락하리라 예상한 순간까지도 있었다.

일부러 방어 스킬까지 사용했는데, 마법들의 궤적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공격들을 피한 그리폰의 판단력과 운동 능력에 대해서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두 똑똑히 보고 놀랐겠지. 이런 게 내가 원했던 장면이다.'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움직임!

스스로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역사적인 명장면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폰 부대다!"

뮬이 선더 스피어를 높이 들어올렸다.

"으와아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하벤 제국군이 호응하는 거친 함성들이 들렸다.

마법 공격들을 피하느라 산개한 그리폰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뮬은 완벽하게 만족했다.

'아마 놀라고 나를 더욱 우러러보게 되었을 것이다.'

위드는 계속 앞을 향해서 날았다.

뮬을 벌써부터 오늘 하루의 일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송국의 인터뷰를 준비해야 되겠군.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떤식으로 멋지게 포장을 해야 할까. 마법 공격이 날아올 때의 기분을 물어본다면, 틀림없이 피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답해야 되겠지?'

함성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블랙소드 용병단 따위야… 이젠 중요하지 않다. 반란군을 퇴치하고 그리폰 부대가 귀환하기만 하면 사냥 분위기로 바뀌겠지.'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성채가 함락당하지만 않으면 목적은 완벽히 달성한 것이다.

반란군이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발생한 이상 그리폰 부대는 성채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출동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반란군이 마을과 도시 시설들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당히 많은 영토의 지배를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노드 그라페의 군사 전력은 그리폰 부대의 차출로 인해 부득이하게 감소하였다.

극약 처방을 내려서 반란군의 준동을 내버려 둘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막아 냈기에 더 대단한 업적을 세운 셈이었다.

아침까지만 버티고 나면 그라디안과 네스트의 반란군도 몰아내고, 블랙소드 용병단은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승리다. 완벽한 승리.'

위드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응? 어딜 가는 것이냐?"

문득 뮬이 정신을 차리고 의아해했다.

목소리에는 이 멋진 그리폰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위드는 낮게 울었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더 빠르게 날았다.

숲과 들을 저공비행으로 스쳐 지나가듯이 날다가 하늘 높이 솟구치기까지 했다.

그리폰이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와삼이도 가끔 하늘 저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려다가 위드에게 잔소리와 욕을 먹고 나서야 내려와야 하곤 했다.

빠르고, 더 높게!

비행 몬스터들을 비슷한 낭만을 가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또한 비슷하게, 기분이 좋으면 커다란 포효를 터트린다.

마치 하늘에서 자신이 가장 강력하며,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라는 듯이.

위드의 입가는 썩은 이빨이 드러날 저도로 쭉 찢어져 있었지만 뮬의 시선에는 안 보였다.

"으음, 그렇군."

뮬도 비행 생명체를 다룰 줄 아는 용기사인 만큼 그리폰의 기분을 헤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전투 중. 때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잠깐 정도는 놔두는 것도 괜찮겠지. 이 그리폰이야말로 앞으로 내 손과 발이 되어야 할 테니."

지금 타고 있 는 그리폰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다른 그리폰 부대는 아까부터 뒤를 돌아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이 그리폰만 타고 있다면 블랙소드 용병단이 감히 자신을 위협할 일 따위는 없을 테니.

위드는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었다.

1~2분 만에 강과 호수를 지나고, 마을도 2개나 지나쳤다.

뮬이 위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기분은 잘 알겠다. 하지만 이제 슬슬 돌아가자꾸나. 멋진 사냥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다."

위드는 당연히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서 수직 상승했다.

맹렬한 속도로 지상이 멀어지고, 하늘의 구름을 꿰뚫고 치고 올라간다.

어지간하면 속도가 줄어들 만도 했지만 구름을 통과하고 나서도 뮬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

지상은 이미 까마득할 정도로 멀어지고 말았다.

머리 위에 있는 것은 오로지 태양뿐이었다.

그리폰과 뮬.

단둘만이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위드가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

하늘을 지배하며 느끼는 자유, 바람을 꿰뚫고 달리는 우월감.

비행 생명체들이 유독 울음소리를 내기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함성.

존재감을 과시하는 생명체의 본질.

뮬도 역시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노드 그라페가 자꾸만 떠올랐다.

"이제 됐으니 그만 가자!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자. 아주 질로도록 함께 놀아 줄 테니까."

그때 그리폰이 말했다.

"다음은 없어."

"응? 말도 할 수 있었느냐?"

뮬은 멍청하게도 기뻐했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그리폰이 지성까지 뛰어나다고 고마워했다.

그렇다면 길들이는 시간이 훨씬 단축이 될 것이니까.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내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리폰의 말투가 전혀 자신을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네 말대로 그만 갈 시간이야."

그리폰이 지상을 향해 무섭게 급강하를 시작했다.

땅으로 내리꽂히는 듯이 전속력을 다한 움직임.

비행에 익숙한 뮬이라고 할지라도 처음 느껴 보는 속도였다.

구름을 다시 뚫고 내려왔으며, 지상의 모든 형체들이 순식간에 커졌다.

'조금 전처럼 대단한 기동력이구나. 근데 이건 정말 위험… 어서 멈춰야…….'

아무리 고삐를 잡아당겨도 그리폰은 아까처럼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뮬은 그리폰을 박차고 벗어날 것까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아슬아슬하게 대지와의 충돌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져버리기 어려웠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땅이 가까워졌다.

'이젠 피할 수 없다. 그대로 충돌한다.'

그때 안장이 훌렁 벗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위드가 부리로 쪼아서 안장의 가죽끈을 잘라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악!"

뮬은 추락하는 속도를 유지한 채로 그리폰의 몸에서 이탈했다.

땅과의 충돌 직전에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재빨리 활강으로 바꾸어서 유유히 벗어나는 얄미운 그리폰.

"저 미친 그리폰 놈이……!"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주변의 땅이 흔들렸다.

 - 용기사의 갑옷이 추락으로 인한 피해를 감소시킵니다.

  신체에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오르팔이 부러졌습니다.

  생명력이 49,191만큼 줄어들었습니다.

  혼란 상태에 빠져서 일시적으로 스킬과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 갑옷과 액세서리 등의 내구도가 한꺼번에 감소하였습니다.

 - 헬멧이 파괴되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용기사의 갑옷은 땅과의 충돌로 생기는 피해를 78%까지 줄여 준다.

그러므로 뮬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슨… 어째서 이런 일이……"

잠시 후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에게 5명의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짧은 사이에 조각 변신술을 해제한 위드와 바하모르그, 엘틴, 게르니카, 은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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