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5권 : 4) 푸홀 요새 (309/520)

4) 푸홀 요새

유병준은 인공지능을 통해서 로열 로드에서 벌어지는 일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대륙 전체가 전쟁에 휩싸였군."

하벤 제국의 정예 병력들이 수비를 위해 북쪽과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아르펜 왕국 역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유저들이 전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몇 사람의 결단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멈출 수 있었지만 이젠 결판을 지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니콘 사에서도 이번 전쟁이야 말로 간단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강대한 하벤 제국의 통치에는 넓고 큰 균열이 생겨났으며, 정체된 아르펜 왕국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을 물리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수많은 영웅들이 떠오르고, 그만큼의 별들이 사라지게 된다.

각 방송국들에서는 이미 특집을 위한 스페셜 연출 팀들을 가동하고 있었다.

 ㅡ 패자의 결전.

 ㅡ 베르사 대륙을 지배할 최후의 승자는 누구인가!

 ㅡ 다시 피어오른 대제왕의 꿈.

다양한 제목들을 달고 전쟁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에 일찍이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향은 대륙 전체에 휘몰아칠 것임에 틀림없다.

전쟁의 최종승리자가 베르사 대륙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바드레이나 위드. 두 사람이 로열 로드를 통일한 최초의 황제가 되겠구나."

유병준은 지켜보는 와중에 아쉬움이 참 많이 들었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놓치다니."

위드의 존재는 로열 로드에서 한참 뒤늦게 시작되었다.

애초에 위드가 조금 더 로열 로드를 시작했더라면, 그리고 전투 계열의 직업을 선택해서 오직 강해지는 것만을 바라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사막의 대제왕 퀘스트를 보면서 충분히 그 과정이나 결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검사나 무예인 최후의 비기를 얻어냈더라면 바드레이라고 해도 단독 전투력으로는 전혀 상대가 안 되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적수가 없을 정도의 강자가 되어서 새로운 길을 앞장서서 열어갔을 수 있다.

지금도 퀘스트를 통해서 북부를 개척하고 유저들을 이끌어왔지만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힘으로 부하들을 이끈다면 그 전투 부대의 능력은 무적, 그 이상이었을 테니까.

위드가 보여준 끈기나 이룩한 성과들을 감안한다면 너무나 아까웠다.

"도대체 어떤 사연 때문에 로열 로드를 빨리 시작하지 못했지 "

유병준도 그 때문에 인공지능을 통해서 상세한 뒷조사를 했다.

과거의 일이라고 해도 모든 기록 장치들을 조사한다면 밝혀낸다는 게 불가능하진 않은 시대였다.

"교통사고나 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까 "

인공지능은 미국과 한국의 군사용 인공위성을 비롯하여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해서 정확한 사실을 밝혀냈다.

 ㅡ 정확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박사님.

"그래. 무슨 이유였지 "

 ㅡ 로열 로드를 지켜보면서 장래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래성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 "

 ㅡ 돈벌이가 안 될지도 모른다고…….

"……."

유병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개발한 첨단 과학 기술력의 결정판 로열 로드.

그러나 이현은 과연 정말 돈벌이가 될까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뒤늦게 뛰어들었다.

"벤처 기업은 믿을 수가 없어. 한탕 해먹고 그냥 해외로 튈 속셈일지도 모른다니깐."

이현이 은행에서 생활비를 출금하며 이런 말을 남긴 것이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황당한 녀석이야."

유병준은 혈압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완벽하지는 못한 게 인간이니까. 고작 몇 달 전만 해도 위드가 하벤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습격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방송과 민심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을 헤르메스 길드가 대비를 못한 점도 있었지만."

아쉬운 것은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 쪽도 마찬가지였다.

중앙 대륙을 정복할 때까지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 아래에서 일을 진행했지만 마무리가 철저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도 중앙 대륙을 완벽하게 장악할 몇 번의 중요한 기회가 있었다.

군사적, 경제적인 패권을 바탕으로 지휘력을 보여줘서 유저들로부터 지배권을 납득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엠비뉴 교단을 피하며 전력을 아낌으로서 중앙 대륙의 유저들을 실망시켰다.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고 써서 그 즉시 엠비뉴 교단과 싸워 이겼어야 했다.

카카오페이지 10편

전력을 아끼는 모습에 그들이 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단순히 권력과 동치에만 집중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느낌을 주어서 민심을 잡지 못했다.

지금도 대륙 정복 이후의 통치까지도 염두에 두면서 대륙을 통일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라페이는 머리가 좋은 모사답게 하벤 제국의 장기적인 미래와 추락하는 경제력까지도 고려를 하고 있다.

시작부터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리는 법.

거대한 단체는 강한 추진력을 잃어버리면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헤르메스 길드가 전대륙의 무력 정복이 아니라 통치를 하려고 방향을 전환하니 영주들과 고레벨 유저들은 그 빈틈에 자신의 밥그릇을 채워 넣고 있었다.

군사강국으로서 대륙정복에만 열중하고 그 이후에 어떤 사건들이 터지면 그때그때 맞춰서 대처하는 편이 더 나았을 지도 몰랐다.

억지로 군림하려고 한다면 그 제국은 오래 가지 못할 테지만 잠깐 동안의 영광도 어디인가.

1년, 2인 동안 대륙을 다스리다보면 그 이후의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것인데 너무 계획만 세우고 있다.

"위드에 대한 대처도 아쉽지. 승리만을 목표로 한다면 진작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평판 같은 것을 신경 쓰느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일찍부터 북부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했어. 물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력에서 비교도 안되지 않았지만."

위드와 바드레이.

위드에게 민심이 뒤따른다면 바드레이는 최강의 세력이 뒷받침되어 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알 수 없군. 뭐가 어떻게 될지."

연구실의 중앙에 있는 입체 모니터에서 인공지능 베르사가 말했다.

 ㅡ 위드와 바드레이의 대륙 정복 확률을 시뮬레이션해볼까요.

"필요 없다."

유병준은 인공지능의 말을 거부했다.

확륭이란 항상 그 가능성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도 로열 로드를 정복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모든 권리와 재산을 넘겨주는 승계 작업은 준비가 끝났겠지 "

 ㅡ 물론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떠오른 유니콘사의 주식과 다른 계열 회사들의 지분.

전 세계 곳곳에 수많은 거대 회사들에 투자가 되어 있으며, 정치인들을 통해 국가 권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

로열 로드를 정복하고 났더니 이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권력을 안겨주면 얼마나 황당해할까.

유병준은 돈과 권력을 내주며 승리자의 쾌감을 누리고 싶었다.

 ㅡ 그런데 다만 부작용이 있습니다.

"어떤 부작용 "

 ㅡ 박사님의 후계자에게 모든 권한과 절대적인 능력을 심어주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과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한 초인으로의 개조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지."

마땅히 후계자라면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이 사회의 정점에 설 수 있지 않겠는가.

명석한 두뇌와 가장 뛰어난 육체. 후계자는 모든 인간이 부러워할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특히 끝없이 솟구치는 정력이야 말로 필수다. 밤에 고개를 숙인 남자라면 아무리 당당하더라도 아쉬운 법이니까.

 ㅡ 동물 실험 결과 인위적인 가수면 상태에서의 유전자 조작, 뇌 기능 활성화는 정신력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것으로 실험 결과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실패한다는 것인가 "

 ㅡ 육체 강화 과정에서 보호 본능에 의한 자기 최면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의지가 약하다면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영영 깨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크음."

유병준은 조금의 찝찜함이 느껴졌다.

평생의 목표로 삼았던 일이었다. 로열 로드의 정복자가 최종 개조 과정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세운 모든 결과물이 실패라고 할 수 있었다.

"성공 가능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

 ㅡ 현재까지 로는 인간의 의지 자체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로열 로드의 최초 정복 황제가 되면 후계자가 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다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유병준은 잠깐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에 과학도로서 가상현실이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꿈을 꾸었을 때부터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다.

외골수로 살아온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발한 로열 로드.

후계자가 되면 권력과 부를 물려주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어쩌면 목숨을 잃어버리는 결과라니.

꿈과 희망, 가족들의 슬픔.

수많은 것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멈추기에는 너무 멀리 오고 말았지. 내 모든 것을 물려 주기 위해서는 예정대로 계획을 추진한다."

 ㅡ 알겠습니다.

★★★★★★★★★★★★★★★★★★★★★★★★★★

하벤 제국 황제의 길.

바드레이는 고민 끝에 어렵게 결정했다.

사실 애초에 선택지는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첫 번째의 길을 걸어가겠다."

띠링!

 『 제국을 이끄는 황제의 성스러운 선택

"나약한 마음 따위는 잊어버리리라. 이 대륙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나를 거부하는 자들은 피로써 다스리리라.

 비록 세계가 피로 씻겨 내릴지라도……."

하벤 제국의 황제로써 강력한 통치를 결정하셨습니다.

반란군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지나친 의심에 따라 실수를 할 여지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반란군을 처치하면서 얻는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의 양이 증가합니다.

공포를 기반으로 한 통치력 스탯을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

황제를 따르는 기사들의 성장 속도를 45%만큼 빠르게 만듭니다.

제국에 속해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황제가 내리는 어떤 명령도 거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충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막다른 길까지 몰린 이들은 반기를 들게 됩니다.

목숨을 잃기 전까지 존엄한 황제의 모든 스탯이 20씩 증가합니다. 』

"이도 나쁘지 않다."

바드레이에게는 흑기사 황제의 연계 퀘스트에 따라 대량의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베르사 대륙이 혼란스럽고 하벤 제국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의 강함이 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헤르메스 길드가 그에게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의 흑기사 황제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

위드는 사냥터에서 아르펜 왕국의 유저들이 대규모 남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이 시작됐군."

사기를 드높이기 위한 멋진 연설을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냥할 시간도 모자랐다.

북부의 고레벨 유저들을 지휘하면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척살하고 그들이 잘 나타나지 않으면 사냥터로 간다.

리치로서 활약하며 생긴 죽은 자의 힘도 제거해야 했기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바빴다.

전투 중에는 바르칸의 풀세트까지 착용했기 때문에 죽은 자의 힘이 무려 2,218씩이나 생성되었다.

네크로맨서들은 남들보다 월등하게 빠르게 강해지는 게 장점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되면 부작용도 두려워해야 했다.

신앙 스탯이나 인내력, 투지, 정신력, 용기 등으로 억제하지 않았다면 위드도 몸 상태가 더 이상 인간으로 활약하기 힘들어졌을 정도였으리라.

위드가 만드는 조각품에 이미 부작용이 생겼다.

간단한 여우 조각품을 만들어도 저절로 사악한 생명이 부여됐다.

 『 눈 밑이 검게 물든 여우

생동감 있게 조각된 새끼 여우다.

착하고 귀엽게 생겼지만 만약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한다면

이상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적 가치 : 3 』

여우의 조각품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저절로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람이 없을 때 몰래!

"킬킬킬. 끄헤헤헤헤!"

뭔가 악독한 일을 저지를 것처럼 음침하게 웃는 여우 조각품.

어두운 곳에서 본다면 제법 공포스러울 수도 있는 광경이지만 위드는 본래 마음이 여리거나 약한 성격이 아니었다.

"너 말할 수 있지."

"……."

"솔직하게 말하면 네 입장을 이해해 줄게."

"……."

여우 조각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이렇게 태어난 게 네 잘못은 아니야. 내가 죽은 자의 힘이 과해져서… 아니. 이런 복잡한 내용은 설명할 필요도 없고. 너 역시 내가 만든 내 새끼인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자기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

여우 조각품도 충분히 공감하며 마음이 약해졌는지 슬그머니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말까지 했다.

"그러면 나를 어린 여자 아이에게 선물해다오."

"역시 말할 수 있었군.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깐."

위드는 여우의 꼬리를 잡아서 따로 포대기에 넣고 밀봉했다.

이른바 사악한 조각품 모음집!

따로 포대기에 글귀도 써놓았다.

 - 시끄럽고 말썽 많은 어린이에게 선물용으로 추천.

"인형으로도 좋고, 몇 종류 모아서 세트로 팔면 수집가들에게 비싼 가격에 처분할 수 있겠지."

위드는 과거에 아르바이트로 동네 인형 가게에서도 잠깐 일했던 적이 있었다.

인형을 애지중지하며 다루는 어린 아이들의 동심이 파괴된다는 건 다분히 어른들의 섣부른 생각이었다.

일부의 아이들은 던지고 발로 차면서 갖고 논다.

인형을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것이다.

조각술의 숙련도 역시 고급 9레벨 98.9%로 마스터가 눈썹 앞으로 다가온 상황!

죽은 자의 힘 때문에 발생한 조각품에 대한 부작용도 빠르게 해소되고 있었다.

 - 여신의 기사 갑옷이 상태 이상을 억제합니다.

  상태 이상을 억제하였습니다.

  헤스티아의 축복이 어둠을 뚫고 절반만 작용됩니다.

  죽은 자의 힘이 발생하는 악영향을 절반으로 줄입니다.

조각품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처리하면서 죽은 자의 힘을 1,338까지 줄였다.

어서 깨끗하게 없애놓아야만 다음번에도 리치로 변신해서 큰 활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자잘한 전투야 강행하더라도 불과 죽은 자의 힘이 10, 20 정도가 오를 뿐이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었으니까.

자고로 리치라면 대규모 전투가 어울렸다.

"썩은 냄새를 풀풀 풍기는 스켈레톤과 좀비야 말로 네크로맨서의 상징이야."

손재주 스킬을 마스터하고 난 이후로 스킬 숙련도도 빠르게 늘어났다.

검술 외에도 잡다한 스킬들의 성장이 빨라지다 보니 다양하게 익히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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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변신술로 다른 종족으로 몸을 바꾸더라도 관련 스킬들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잡캐와 노가다야 말로 로열 로드의 진리야."

위드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더 강해질 수 있음에 아쉬웠다.

현재의 레벨은 447.

북부에 먹잇감이 널려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전투의 관련되어서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

남들보다 강해지기 위한 집착도 있었고, 사냥터에서 보낸 시간도 적진 않았다.

동료들과 손발도 잘 맞췄으며, 전투에 대한 나름 감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드만 만나면 죽을 못 쓰고 실력 발휘도 못한 채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내가 왜 진 거지  정보부의 판단으로는 위드의 레벨이 400대 초반 아닌가."

"대장장이 스킬로 장비들을 더 좋은 것을 입는다지만 우리들 장비가 그보다 못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스킬도 말할 것도 없어. 검사에게 최고의 조합을 가진 스킬들은 다 배워놨는데. 검술의 비기도 두 개나 익혔다고."

정상적으로 검사들끼리 붙는 전투야 아주 익숙했지만 조각사와 싸울 일은 안 생겼었다.

그런데 위드가 평범한 조각사던가. 온갖 생산과 예술 스킬을 전투에 동원한다.

생산 스킬들로 검과 갑옷의 능력을 끌어올렸으며, 조각 파괴술로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했으니 평범한 공방은 이뤄지질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검술로 정신없이 몰아치면서 싸우기 때문에 공격 스킬에 의존해야 하는 일반 유저들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는 없었다.

조각 소환술로 바하모르그나 엘틴, 게르니카, 금인이를 데려오기도 한다.

그들이야 나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사조, 불의 거인, 빙룡, 이무기, 킹 히드라 정도의 대형 몬스터의 소환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에게도 끔찍한 악몽이 되었다.

무한에 가까운 맷집을 가진 킹 히드라와 불사조, 불의 거인이 나타나서 전장을 뒤집어놓으면 준비된 계획은 엉망진창이 된다.

때론 조각 변신술을 써서 그들에게 최악의 종족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오기도 한다.

오크 카리취!

단순무식 카리취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덤벼오면 답도 없다.

방어 따위는 와삼이나 주라는 듯이 무조건 치고 들어오는데 고레벨로 갈수록 나약하단 평을 받는 오크가 전투 종족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느끼게 해줬다.

혼돈의 대전사는 아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리치로 변신했다는 소문이 돌면 근처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정확하게는 몰라도 대재앙을 일으킨다는 광역 스킬도 가지고 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천 명 정도가 도시를 습격할 계획도 세웠지만 아르펜 왕국에서는 불가능하단 판단을 내렸다.

대재앙을 맞고 나서 반쯤 빈사 상태에 빠지면 조각 생명체들이 소환되어서 수확을 거둘 테니까.

위드가 사냥터로 들어가서 잠깐 뜸해지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도처에서 고개를 들었다.

"위드가 오늘은 안 보여."

"아마 전쟁을 한다고 이동했겠지. 길드에서도 실컷 활약하라고 했으니……."

"기회가 찾아왔다."

그들은 마을을 향해 진격했다. 다시 세워진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북부 유저들이 보이면 무차별 공격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제대로 초토화시킨다. 생존자 한 명도 안 남길 테니까. 게르 강 하역 부근에서 모이자고 해."

그러나 고작해야 진군을 하고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을 맞이해야 했다.

빙룡을 비롯해서 40마리나 되는 조각 생명체 종합 선물 세트!

위풍당당한 그 모습은 조각 생명체들 매니아라면 좋아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슬금슬금 나타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

위드에 의해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몰살.

그날 하루 동안에만 무려 3백여 명에 달하는 유저들이 목숨을 잃었다.

북부의 고레벨 유저들도 별동대로 활약하면서 각 지역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제는 갔겠지."

"더럽게 당했다. 어디 실컷 복수를 해주마."

"난 위드한테 직접 죽기도 했어. 내가 다 부수고 죽여주마."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다음날 저녁에 다시 모였다.

목적은 아르펜 왕국의 빈집털이!

어중간한 신생 성이나, 모라타 인근의 큰 마을을 공략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위드를 만났다.

"여길 어떻게……."

"또 나올 줄 알았어."

위드에 의하여 전멸.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는 죽기 전에 물어봤다.

"솔직하게 말해라 우리들 사이에 첩자를 심어놓았지 "

"아니."

"거짓말이다. 이렇게 잘 알고 나타날 수는 없다."

"익숙하고, 비슷해."

"뭐가 "

"집에 먹을 거 놔두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오는 애들이 있는데. 아무튼 그런 게 있어."

"……."

바퀴벌레 퇴치 작업을 하듯이 헤르메스 길드를 쓸어 넘기는 위드!

조각 생명체들을 총동원하여 전쟁을 치르듯이 하면 대부분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보스급 몬스터 사냥을 많이 겪어봤지만 조각 생명체들은 달랐다.

여간 비겁한 게 아니고, 협력 전투가 탁월하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면서 무리를 하지 않고 야금야금 싸운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너무 많다 싶으면 대재앙을 뻥뻥 터트리고 시작했으니 상대가 될 처지가 아니었다.

위드는 물과 지진 계열의 대재앙을 위주로 사용했다.

"훗날 여긴 농경지가 될 수 있겠지. 지도에 표시해놓고… 음. 주변 땅을 조금 사놔야겠군."

협력하는 조인족들을 통해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움직임을 꿰뚫어봤다.

지형지물에 대해서도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위드는 북부 대륙에서 안전한 장소나 위험한 장소를 어지간하면 모두 돌아다녔다.

직접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와삼이를 타고라도 그 근방을 지나가며 지도를 작성했다.

모험가에게는 지역에 대한 정보와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는다는 보물과도 같은 지도!

"여긴 별로야. 강물이 너무 세고 비가 많이 오면 범람을 하는 경우도 있다니 최악이군."

위드는 땅 투기를 위한 지도를 작성했던 것이다.

자연 조각술을 통해서 지형을 조금씩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왕국 발전을 위해서 지도는 매우 소중했다.

숲이나 산, 몬스터들의 서식지를 땅 투기를 위해서 면적이나 특성들을 표시해 놨다.

그 지도를 통해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숨어 있거나 이동하는 경로를 대략 꿰뚫고 있었으니 조인족들의 발견 보고만 있으면 바로 나타날 수 있었다.

북부의 고레벨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들었다.

"저기… 전쟁하러 안 가세요  우리들도 가야 할 것 같은데요."

풀죽신교의 대군이 하벤 제국의 북부 식민지 지역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도 위드는 사냥에만 열중하고 있었으니 상당히 의아했다.

"전쟁이요  음… 곧 갈 겁니다."

"아침에도 가신다고 했는데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있는데요."

"방송국에서 입금이 아직 안 돼서……."

"……."

★★★★★★★★★★★★★★★★★★★★★★★★★★

하벤 제국의 북부 식민지를 다스리는 알카트라의 병력은 190만까지 늘어나 있었다.

북부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일부의 제국군 병력이 다급하게 보충되었다.

"계획대로 요새전을 준비하라!"

알카트라의 주특기는 요새를 중심으로 한 방어전이었고 일찌감치 북부 유저들이 대거 몰려오는 날이 오리라고는 짐작했다.

하벤 제국에서 지원해준 자금으로 국경에 두터운 성벽과 요새를 다섯 개나 축성해 놓았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국경 부근에 개설된 요새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험준한 산맥을 통과해야 한다.

대규모 병력이 빠르게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며 배후로부터의 위험도 따른다.

푸홀 요새의 인근에는 큰 강이 흘러서 이 물줄기를 이용해서 북부 유저들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요새에도 10만에서 20만씩의 병력을 배치해놓고, 나머지 100만의 병력을 데리고 푸홀 요새에 주둔했다.

"하나의 요새도 쉽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곳을 공략하려면 시체를 산처럼 쌓아야만 가능하겠지."

헤르메스 길드도 두 번의 큰 실패를 북부에서 겪고 배운 점이 있었다.

인해전술을 꺾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심리전이 중요하다는 점.

침략을 허용하지 않는 확고한 난공불락의 요새, 그리고 동료들의 머리 숫자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전술.

북부의 제국군에는 네크로맨서 그로비듄이 제자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총사령관 알카트라가 텔레포트 게이트까지 그를 직접 마중 나왔다.

"바쁘실 텐데 일부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크. 네크로맨서에게 이런 장소야 고마울 뿐이지요."

그로비듄은 흡족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30미터의 높고 두꺼운 성벽이 좌우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성벽 아래에는 식은 식물이 자랐으며, 대낮과 밤에는 독 안개까지 피어나도록 되어 있다.

만리장성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규모, 중앙 대륙에서 말썽을 부리는 주민들을 노예로 삼아서 축성하지 않았더라면 단기간에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성벽과 요새를 중앙 대륙에서 무적으로 군림하는 하벤 제국군이 지키고 있었으니 믿음직스러웠다.

'이 뒤에 이만한 요새가 네 개나 더 있단 말이지.'

수비 전쟁에서는 요새가 대단한 위력을 가졌다.

어지간한 병력으로는 함락할 수 없으며, 수비 측에 몇 배의 군사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

요새란 전투 중에서도 활용도가 높지만 한두 번의 승리를 거두고 나면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라도 침공을 하기 두려워진다.

"정말 대단한 요새야. 이렇게 빨리 짓다니 총사령관님의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북부의 풋내기들을 위해서는 과분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만 적을 만만하게 보진 않고 있습니다."

"놈들이 언제쯤 올 것 같습니까 "

"오늘 점심 무렵부터 모습을 보일 겁니다."

"그렇다면 제물을 바치는 마법진이라도 몇 개 설치하며 기다려봐야겠군요."

네크로맨서들은 신바람이 나서 전투를 준비했다.

대규모 전쟁.

북부 유저들을 상대로 한다면 네크로맨서만 한 전력이 없다.

그로비듄의 레벨은 성장이 빠른 네크로맨서의 특성상 500을 넘어섰다.

레벨로만 놓고 보면 무신 바드레이에도 근접하고 있었는데 그는 굳이 공개적으로 이것을 밝히지 않았다.

바드레이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추종자들에 의해 불이익을 받기를 겁냈기 때문이다.

'장기간으로 보면… 내가 더 유리한 점도 있지. 네크로맨서란 그런 존재니까.'

그로비듄은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스스로의 수련에만 열중하고 있는 단계였다.

북부까지 기꺼이 온 것도 이곳에서 최소 몇 개의 레벨을 올리며 스킬 숙련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

알카트라나 제국군이 열심히 싸우면 자신은 뒤에서 언데드들을 일으켜주기만 하면 된다.

이보다 더 쉽고 좋을 수는 없었다.

"크게 활약해주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물론이지요. 밥값은 충분히 하겠습니다."

그날 점심 무렵이 되자 남쪽 하늘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무언가가 다가왔다.

뎅뎅뎅!

"적이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푸홀 요새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무려 수천 개의 비행 생명체들이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부에는 와이번들을 비롯하여 조인족들이 설쳐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궁병들이 하늘을 향해 커다란 활을 겨누었다.

조인족들을 감안하여 사정거리를 개량한 특제 활. 마법사들은 공격 마법을 준비했다.

이윽고 비행 생명체들은 제대로 모습이 보일만 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쏘지 마라. 아군이다!"

그리폰 군단!

그라디안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던 용기사 뮬은 위드에게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썬더 스피어라는 창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패배는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비겁한 수단을 써서 이겼기 때문에 놈을 인정할 수 없다."

결국 복수를 위하여 이를 갈다가 그리폰 군단을 모두 데리고 북부까지 날아온 것이다.

카카오페이지 12편

방비를 철저히 한 푸홀 요새에서는 차분히 기다렸다.

총사령관 알카트라가 이끄는 제국군의 사기는 드높았다.

"북부 놈들. 한 번 제대로 밟아줄 때도 되었지!"

"알카트라님의 지휘가 있으니 무조건 우리가 이길 거야. 이런 요새가 있는데도 질 수는 없지."

"가족이 보고 싶군. 그러나 가족들도 제국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날 이해해줄 것이야."

알카트라의 총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아주 탁월한 것이라서 그의 높은 지휘력 때문에라도 병사들의 사기가 높게 유지되었다.

무모한 행군, 낮은 체력, 패배 등이 병사들의 사기를 낮추는 요인이지만, 이런 요새가 있으면 병사들도 물러서지 않고 싸운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2만 명 정도가 함께 대기를 하고 있었다.

북부의 식민지에서 활동하던 유저들이 절반 정도 되었고, 나머지는 전투가 벌어지면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도착하였다.

생방송을 위해 방송국의 특파원들 역시 일찍부터 나와 있었다.

"여긴 푸홀 요새입니다. 바람이 잔잔하고 하늘은 맑은데요. 오늘 벌어질 격전은 그 유래가 없을 정도라서 사람들의 얼굴에는 흥분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지금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전투는 앞으로 두 시간에서 세 시간정도 후면 벌어질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요. 하벤 제국측에서는 마지막까지 성벽을 강화하고 방어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이상 CTS미디어의 장범진 기자였습니다."

특파원들의 복장도 휘황찬란했다.

로열 로드를 하면서 기자들도 깊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떤 지역이나 모험을 중계하다보면 그 지역에 파견을 나가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취재가 힘든 상황도 생기는 만큼 기자들은 쉬는 날에도 사냥터에 충실하게 레벨을 올려야 했다.

기자들도 고레벨이 되거나 특별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으면 때때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었으니 사냥 경쟁이 치열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북쪽 평원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풀죽신교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바싹 긴장을 했다.

북부 유저들과 싸워본 유저들이라면 인해전술의 위력을 똑똑히 보았다.

평원에는 말과 황소를 타고 달려온 북부 유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수백여 명 정도 되는 무리는 계속 늘어나서 금방 천여 명을 넘어갔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일단 지켜보고만 있었다. 성문을 넘어가서 그들을 없애봐야 별 소득은 없었고 함정이란 의심도 강했으므로.

북부 유저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솥을 꺼내고 불을 꺼냈다.

일부는 부근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채취했다.

"저건……."

"풀죽을 끓여먹는 거다."

먼저 도착한 유저들은 다양한 취향에 맞춰서 풀죽을 끓였다.

맑은 물에 취향에 따라서 소고기나 베이컨 등을 살짝 데쳐서 먹는 샤브샤브 풀죽도 있었다.

대중화된 음식인 삼계 죽 같은 경우는 든든하게 배를 채우기 위해서 많이 먹는다.

항구 바르나에서부터 온 뱃사람들이 끓이는 해물죽 역시 인기였다.

"크아. 역시 해물 죽이지 말입니다. 이 깊은 국물 맛 때문에 제가 해물죽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풀죽신교의 모든 죽 부대는 평등하니까. 오늘부터는 나도 독버섯 죽에 속할 것이야."

"선배님. 대단하시지 말입니다."

평원에는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각자 음식을 해먹는다.

"갓 잡은 대형 지렁이 팔아요. 2골!"

"신선한 쑥! 풀죽에 넣어먹으면 맛있어요. 3실버에 한 바가지씩 드릴 테니 믿고 드셔보세요."

"꽃게. 앞다리 없는 꽃게 팝니다. 먼저 제시요!"

"무기 수리 가능하신 분. 3쿠퍼에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

성벽 앞은 금방 시장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장사를 하거나 음식을 차려먹는다.

어느 새부터인가 북부의 상인들이 노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물품을 판매했다.

"헤르메스 길드를 때려잡을 수 있는 대형 망치! 내구도는 신경 쓰지 마시고 콱콱 휘두르세요."

"언제든, 어디서든 스스로의 몸을 지켜주는 가죽 갑옷! 화살 막기 특수 옵션이 걸려 있는 가죽 갑옷입니다. 성벽은 넘어서 죽어야죠!"

"사다리! 여섯 명이서 들면 딱인 공성용 사다리 판매. 수량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서두르세요. 오늘 요새를 함락시킬 영웅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북부의 상인들은 기본적으로 목숨정도는 여행용 물티슈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목숨을 아끼려다가 새로 교역로를 개척하지 못하면 그게 더 한심한 일.

아르펜 왕국의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상인들은 다양한 전쟁 용품들을 제작, 구매해서 이곳으로 가져왔다.

풀죽신교나 왕국 차원에서 공성 병기들을 충분히 나눠줄 수가 없었는데 상인들이 스스로 보급의 역할을 했다.

이들이 또 돈을 벌면 모라타의 대장간 등을 이용하여 다시금 보급에 나설 수 있다.

전쟁터에 현지 시장을 개설하며 무시무시한 보급 부대의 역할이 가능했다.

북부 대륙에서 헤르메스 길드의 타격대가 활동하고 난 이후로는 왕국 내에 상인들의 교역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단순히 목숨이 아깝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쟁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전장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물론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그들이 잃어버릴 전리품을 취급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박을 노릴 기회도 존재한다.

전쟁상인이야 말로 승리한 쪽에 붙으면 천문학적 이익도 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게 뭐야."

"전쟁을 치르기 전에 무슨 이 기운 빠진 분위기는… 나도 힘이 빠지네."

바짝 긴장하고 성벽을 지키고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허탈했다.

북부 유저들의 내실이 어떻든 간에 허술하고 우스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몇은 북부 유저들이 구축하는 전투 시스템을 보며 얼굴이 굳었다.

'장난이 아니다. 저런 식으로 모든걸 현지에서 해결한다면 원정군 조직은 식은 죽 먹기야.'

'놈들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 요새만 점령한다면 후방에서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겠는데. 북부 식민지 전체를 잃어버릴 거야. 어쩌면 중앙 대륙의 일부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입을 다물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적을 높여주는 불길한 말들은 하나마나였으니까.

싸워보기 전에는 그 어떤 결과도 짐작하기 어렵다.

잠시 뒤에 점심 무렵이 되니 저 멀리서부터 북부 유저들이 다가오면서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어났다.

"풀죽! 풀죽! 풀죽!"

개미떼처럼 시커멓게 다가오는 북부 유저들.

성벽을 지키고 있던 제국군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있는 손에 힘이 갔다.

"저, 전투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일부는 싸울 준비를 하자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한 번 이상 싸워본 경험자들은 덤덤했다.

"벌써 놀라지마. 아직 아니니까."

"예 "

"지금은 시작에 불과해. 계속 올 거야."

땅을 온통 뒤덮으며 전진하는 북부 유저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보일 정도의 위용이었다.

그들이 도착해서 평원에 사람이 가득 찼는데도 계속 밀려오고 있다.

좌우로도 사람들의 끝이 없어졌다. 사정거리가 긴 활을 가진 장궁병들은 대충 화살을 쏘더라도 틀림없이 누군가는 맞을 정도로 밀집했다.

"풀죽! 푹죽! 풀죽!"

발을 구르며 외치는 소리에 땅이 흔들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적이 몰려 오더라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하던 성벽이었지만 그 울림이 전달되었다.

불안감이 싹틀 무렵, 알카트라와 헤르메스 길드의 고위 랭커들은 묵묵히 기다렸다.

'곧 위드가 나타날 것이다.'

위드가 이 병력을 지휘하리라고 보았다.

그와의 한판 승부!

베르사 대륙 전체를 건 것은 아니지만, 북부 대륙의 지배권을 다투는 전투다.

'어떤 식으로 등장을 할 것이냐. 또 괴상한 노래를 하며 갑자기 나타날 것인가. 그러나 평원의 대회전과 요새전은 완전히 입장이 다르단 말이지.'

전투에 동원되는 병력이 많을수록 지휘관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지휘관에 따라서 몇 배의 전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또 군대가 스스로 무너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어떤 기발한 수단을 만들어낼 지는 모르겠지만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높고 두꺼운 성벽을 가진 푸홀 요새!

이 방대한 방어 건축물은 후방으로 이어지면서 대략 6킬로미터 정도에 걸쳐 있었다.

북부 식민지 전체를 수비하는 최전선이므로 규모가 가장 큰 요새를 축성했다.

알카트라의 곁에는 복수에 불타오르는 용기사 뮬과 기회를 노리는 그로비듄까지 있었다.

"오늘은 제국군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줍시다."

"동의합니다. 다만 위드는 제 몫이며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클클클. 어찌되었든 전쟁이니 만큼 대량 학살을… 죽일 놈들이 많으니 실력 발휘나 실컷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네크로맨서는 이런 전장에 어울리니까요."

헤르메스 길드의 고레벨 유저들은 모두 스스로가 이번 전투의 주인공이 되리라 다짐했다.

아르펜 왕국의 패권을 다투는 큰 전쟁에 방송국의 생중계까지 이루어지고 있으니 영웅으로 떠오를 만한 무대로는 충분하다.

위드가 차지하고 있는 영웅의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리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위드의 등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북부 유저들 사이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뭐, 뭐라고  놈들이 온다고 "

"여기까지 오다니……."

"으악! 최악이다. 밟혀죽기 전에 뛰어!"

제국군의 원군이 오더라도 이보다 놀랍진 않으리라.

새벽의 도시에서부터 모여들었던 오크 떼와 다양한 풀죽신교의 부대들.

그들이 전방의 사정도 모르는 채로 계속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빨리 좀 갑시다."

"거 뒷사람들도 좀 생각해서 자리 영어주세요."

사람들이 밀려오면서 북부 유저들은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밟혀죽기 전에 싸웁시다."

"옳소!"

"에라, 모르겠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어떤 선전포고나 사전행사도 없이 풀죽신교의 대군이 그대로 푸홀 요새를 향해서 일제히 진격해왔다.

그리고 그 너머 저 멀리에 오크들의 부대까지도 모습이 보였다.

위대한 오크 카리취, 그와 잠깐 사냥을 했던 오크 투사 갈취!

카리취가 극찬을 했던 이름을 가진 갈취는 오크 로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2백만 오크 부대를 이끌고 왔으며, 유저 출신으로 구성된 오크 로드들 역시 자신들의 새끼를 잔뜩 몰고 왔다.

"용감하게 싸워라. 후퇴 같은 거 하지 마라, 취익!"

"엄마. 무섭다. 췩. 집에 가서 밥 먹고 싶다."

"안 된다. 취췻. 쌀 떨어졌다."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백 마리씩 낳은 오크들이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북부의 유저들이 요새를 향해 밀려 들어왔다.

베르사 대륙의 북부 패권을 좌우하는 전쟁의 막이 올랐다.

카카오페이지 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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