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별의 시작
무한히 펼쳐져 있는 우주 공간,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과 별들의 바다.
위드는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베르사 대륙이 있는 행성을 떠나 우주 한복판에 섰다.
"스케일 한번 끝내주는구나!"
로열 로드에서 밤하늘을 수놓던 별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아득히 먼 지역까지 시야가 확장 되었다.
크고 작은 유성들이 긴 꼬리를 끌고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지나쳐서 끝없이 날아간다.
아득히 먼 곳에는 별들의 사이에서 가스와 먼지들이 푸른 성운을 형성하며 오묘하게 빛났다.
무한하게 넓은 공간과 그 너머의 신비.
베르사 대륙이 있는 행성에서처럼 중력의 이끌림을 벗어나 거대한 우주에 위드는 혼자 두둥실 떠 있었다.
우주에 진출한 느낌은 위드에게 평소와는 다른 외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이런 광경을 봤다면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아웅다웅 하면서 살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야."
인간, 시간, 지역, 나이.
그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감동이 느껴진다.
달과 태양계 주변 행성들의 모습도 훨씬 크게 볼 수 있었다.
"인간은 너무 좁은 지역에서만 땅 투기를 하고 살고 있었어."
베르사 대륙이 있는 곳보다도 수만배쯤 큰 행성에는 인력에 끌린 위성들이 움직이면서 빛의 고리들을 만들었다.
눈이 보이는 만큼의 세상을 살아간다면, 우주를 보기 전과 그 후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위드는 온몸을 떨었다.
"우주에 조각품을 만들게 되다니 영광이야."
아름다움. 장엄함. 신비로움.
역사 속에서 우주를 동경했던 사람들이야 얼마나 많았던가.
언제나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기는 하지만 막상 갈 수는 없는 세계.
작은 행성에서 인간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을 벗어나 우주에 발을 내딛는다.
위드는 짤막하게 우주에 온 첫 번째 감상을 남기려고 했지만 뭔가 막막했다.
"에헴.과학 시간에 졸지 말 걸 그랬군. 그러면 우주에 대해서 좀 더 아는 체할 수 있었을 텐데."
뭔가 아는 게 있어야 우주나 별들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꺼낼게 아닌가! 아무래도 지금의 모습은 방송으로도 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좀 더 멋있게 보여야 해. 이놈의 인기 때문에라도 팬 관리가 필요하단 말이야.'
위드는 자체 편집을 시도하면서 태양과 달, 수 많은 행성들을 처음 본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인류의 위대한 첫 번째 발자국..."
어딘가에서 들어 본 듯한 말. 하지만 진정한 핵심은 그 다음에 있었다.
"결국 인간은 더 넓은 세상으로 진출할 것이다. 그리고 강남 아줌마들 과 부동산중개업자들이 행성을 사고 팔 거야.!"
드넓은 포부! 이 무한히 넓은 우주에서 월세라도 받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조물주보다도 뛰어난 건물주가 아닌 행성주가 될 수도 있는 것.
시커먼 우주 공간에는 시작과 끝을 모를 별들의 바다가 있었다.
황홀할 정도로 두렵고 아름답고, 경이로우면서도 적막하다.
약 3분 정도는 위드도 우주에 대한 감상에 푹 취해 있었지만 한 차례 히품을 하고 나서는 평소처럼 삭막한 감수성으로 돌아왔다.
"근데 로열 로드에서 우주까지 구현이 되어 있다니..."
위드의 머릿속이 조금은 복잡했다.
모험을 하지 못한 신대륙도 남아있다.
10대 금역들은 물론이고 인간들이 못 본 비경들도 즐비하다고 한다. 그런데 불현듯 드는 예감.
"언젠가 설마 우주에서도 모험을 하게 되진 않겠지?"
위드의 눈에 보이는 우주는 너무나도 크고 광활했다.
수많은 별들이 있었고, 그 색마저도 다르다.
이곳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행성만 개발되어 있다면 너무나 아쉬운 상황이었다.
"어딘가에 베르사 대륙이 있는 행성 같은 게 또 있고, 마법이 극도로 발달하면 차원의 문을 열어... 여러 외계 종족이나, 또 다른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있고. 에이. 그럴리가 없지. 아마 그 정도까진 아닐 거야. 암. 그렇고말고."
* * *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의 넓은 광장.
"케기 끼르?"
"캬루루룩. 카캬룻."
"으히디에 마루."
"흐키야! 흐키야!"
"푸쿠다랍 말루씨 아타카이테?"
"블라라오 바오카듬"
"알라샵 알라샵! 호리 알라샵. 모그리 제바타 3000키리!"
"푸하 손젠드 라미?"
"마느라..."
* * *
위드는 조각술 마스터를 위해서 여신 헤스티아의 의뢰에 따라 별을 조각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조각품이나 일단 만들자. 우주에 다녀온 기념으로 광고를 찍고, 혹은 책이라도 내서 돈을 긁어모으는 건 차차 진행해도 되니깐 말이야."
베르사 대륙에서 볼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별을 만들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정작 베르사 대륙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나니 달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렸다.
"근데 달이 움직이잖아."
우습지만 기껏 별을 만들었더니 달과 충돌하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우주에 중앙선을 그려 놓을 수도 없고 아무
곳에나 만들면 불법 주차나 마찬가지지."
위드는 더 먼 우주 공간으로 달을 지나쳤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행성들.
베르사 대륙이 있는 아름다운 푸른 행성이 멀어저 가는 건 기묘한 느낌 이었다.
마치 돈이 가득 담겨 있는 봉투가 떠나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
"적당히 먼 곳에 만들자."
위드는 베르사 대륙이 있는 행성과 떨어지는 걸 감수하면서도 외롭게 별들의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무섭게 가속도가 붙어서 마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빛보다도 빠르게 흘러갔다.
아름답고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은하계가 정면에 있었다.
"이런 광경이라니... 음. 이래서 사람들이 큰돈을 들여서 우주를 오는건가? 인간으로서의 제약을 벗어나서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야."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은 열두개나 되었다.
위드는 붉은 행성들이나 알 수 없는 수정 같은 행성에도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기에 토끼나 고양이가 살고 있는건... 퀘스트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0.1%의 가능성도 없을 테지만 누군가 와 보는 건 정말 처음일 것이기 때문에 확인을 해 봤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삭막한 모래로 가득 차 있는 거대한 행성들일 뿐이었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넓은 별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위드는 태양계를 지나서 드넓은 외곽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행성들 밖에서 적당한 자리늘 잡는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관찰을 필요로 했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들의 규칙적인 운행 반경을 피해서 만들어야 했고, 우주에 돌아다니는 운석들도 감안해야 했다.
위드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베르사 대륙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
"멀수록 잘 보이도록 더 크게 만들어야지."
태양계의 외곽 지역이라 어떤 별을 만들더라도 상관없는 꽤나 넓은 지역이었다.
위드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드디어 대망의 조각술 마스터구나. 퀘스트만 실패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토록 고생했던 과거가 mp3처럼 흘러가는군."
위드는 로열 로드 역사상 전무후무할 스킬을 사용했다.
"별 생성!"
시커먼 우주 공간에서 신비로운 하얀빛의 일렁임이 있었다. 그리고 뜨는 메세지 창.
띠링!
이 지역에 별을 생성하시겠습니까?
별의 형태와 재질, 크기를 구성해야 하며 스킬은 단 한 번만 사용할수 있습니다.
"만들어 보자."
별이 생성됩니다.
손으로 잡아 형태와 크기를 바꿔주십시오.
빛의 일렁임이 공처럼 둥글게 뭉쳐있었다.
"설마 이건?"
위드는 여동생의 볼을 가지고 놀때 처럼 양손으로 잡아서 좌우로 늘려봤다.
쭈우우욱!
고무공처럼 쉽게 늘어나는 모양.
양쪽이 아닌 한쪽 면만 잡아당기더라도 중심은 그대로인 채 옆으로 계속 커졌다.
처음에는 야구공 정도의 크기 였지만 금방 수백 미터짜리로 커졌다.
게다가 원하는 대로 계속 늘어났다.
"이런 방식이라면 진짜 초대형 조각품을 만들겠구나. 어느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지?"
땅이란 넓을수록 좋은 법!
14평, 17평의 소형 아파트가 각광을 받는 시대도 분명히 있었지만 거주 비용과 가격이 싸다면 누가 좁은 아파트에 살겠는가.
머릿속에 베르사 대륙이 있는 행성의 수십억 배 크기가 스쳐 지나갔다.
"다시없을 초대형 조각품을 목표로 해야지."
위드는 빛의 일렁임을 잡아서 늘리고, 또 늘렸다.
빙룡이나 킹 히드라와 같은 조각품은 별의 조각품에 비하면 먼지만큼도 못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는 은하계조차도 티끌처럼 작았다.
도대체 로열 로드가 어디까지 확장이 된 것인지 는 알 수 없지만 우주 공간에서 원하는 규모로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밤하늘을 올려볼 때의 낭만? 조각술 마스터는 맘껏 크게 만들어 보라고 별의 조각품 이로구나!"
어두운 밤하늘에 떡하니 존재하는 거대한 별이 벌써부터 눈가에 아른 거렸다.
"낭만이나 예술성이 도대체 뭐야. 조각술 마스터라면 역시 묵직하니 크고 봐야지. 어마어마하게 말이야!"
위드는 빛의 일렁임을 잡고 우주를 날기 시작했다.
있는 대로 한껏 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 * *
유병준 박사는 가끔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여겼지만, 최근에는 그 생각을 코코아에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자주 했다.
"저딴 게 무슨 예술가라고..."
별의 조각품을 크게 만들 수 있는 것을 기뻐하면서 있는 힘껏 늘리기만 하는 위드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자니 기가 찰 정도였다.
로열 로드의 조각품 감정 시스템은 실제 인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다.
세상에 드러난 모든 진짜 예술품과 기법, 예술가들과 인간의 감동이나 경험 같은 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조각품이 완성되는 순간 가치를 자동으로 책정했다.
물론 로열 로드의 자체적인 역사와 구성, 조각사 개인의 경험이나 기록도 측정해서 반영됐다.
"조각술 마스터는 직업 마스터에서도 가장 힘든 축에 드는 것인데, 저런 식으로 하다니... 어쨌든 마지막 단계에 왔군."
유병준이 볼 때 위드는 너무 잘나갔다.
먹고살기에 충분할 정도의 돈도 벌었고, 인기도 누렸다.
심심해서 인공지능으로 살펴본 여자친구인 서윤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 아름다움의 서열에 대한 분석 말씀이십니까?
"그래. 저 아가씨가 어느 정도의 미녀일지 궁금하군. 저런 미녀는 내 인생에서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 사람이나 인종, 국가마다 미에 대한 기준과 가치 판단이 다양합니다.
"모든 국가와 사람들이 갖는 표준적인 기준들을 반영하도록."
- 외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지혜와 성품, 우수한 유전자의 특성까지 감안하여 분석을 시작하겠습니다.
보통의 인공지능이라면 며칠은 걸릴 만한 작업이었다.
미에 대한 다양한 가치의 척도는 물론이고, 인공위성이나 인터넷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사진 및 동영상, 사람들의 반응, 방송 자료들까지도 감안하여 미모를 분석했다.
- 지구상에서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평가 했을 때 정서윤의 서열은 1위 입니다.
"그, 그정도인가?"
- 지적인 능력을 비롯한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특성들이 우수한 수준입니다.
진화의 측면에서 볼 때 현생 인류보다 4세대 정도 앞선 유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미모에서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아프리카, 남미.
모든 남자들의 99.967%가 서윤 양을 최고의 미녀로 꼽을 것입니다.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는 뭐지?"
- 시력에 장애가 있거나, 지독하게 독특한 취향을 가진 소수의 변태들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냐?"
- 모의실험 결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남자 아이부터 숟가락을 들 힘이 있는 남성 노인들까지 한결같이 서윤을 평생 자신이 본 중에 최고의 미인으로 꼽을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야. 구체적인 사례는?"
- 울고 있는 2세 이하의 어린 아이도 서윤을 보면 울음을 멈출 가능성이 98%입니다.
그리고 실제 영상 판독 결과 서윤이 시장에서 장을 볼때 가까운 곳에서 울던 아이들이 울음을 454건 멈춘 사례가 있습니다.
실제 발생 확률은 100%였습니다.
"뭔가 오류가 있을것이다. 재측정 해 봐라."
인공지능은 다시 수십 번의 계산을 해 본 후에 답했다.
-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확인을 마쳤습니다.
최근 70년 안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입니다.
"그 전에는 더 아름다운 미녀가 있었나?"
- 미에 대한 판단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료 부족으로 인해 과거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현재의 미인상이 형성된 70년 내를 기반으로 한 최고의 미녀입니다.
유병준은 깊게 탄식했다.
"위드에게는 너무 아깝구나."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박사님.
위드를 만나기 전까지 서윤의 미모는 전 세계에서 1, 2년에 한 명 정도는 출현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더 아름다워졌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 최고의 미모는 디테일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박사님.
유병준은 별의 조각품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전혀 미덥지 않았다.
"구체적인 주제도 정하지 않고 일단 크게 만들어 보려고 하다니. 저렇게 무계획적일 수가 있나?"
퀘스트의 마지막 단계인 만큼 차분히 결과를 기다려 볼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기로했다.
"위드가 과연 직업 마스터를 성공할 수 있을까? 로열 로드 최초로? 헤스티아를 만족 시킬만한 작품이라면 간단하지 않아. 기필코 대작을 만들어야 할 텐데."
- 성공할 것입니다.
"확률은?"
- 95.3%입니다.
"아주 높은 수치인데. 근거는?"
- 위드의 승부사적인 기질을 봤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조각할 작품의 주제가 서윤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97%입니다.
"그렇다면 조각술 마스터는 끝난것이나 다름없겠군."
* * *
위드는 빛의 일렁임을 어마어마하게 크게 키웠다.
가까이에서 보면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전체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주로 멀리 날아가야 했다.
"주변의 다른 별보다 작은 것 같은데... 안돼. 더 커야해."
먼 우주 공간에서 봐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강대한 존재감!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빛의 일렁임의 크기가 절대 꿀리지 않았다.
"별이라면 크고 밝아야지."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우주에 대한 것도 어떤 별이 몇만 배쯤 더 크고 밝다는 정도밖에는 기억이 안 났다.
특히 태양의 규모는 태양계 행성들 전체를 합한 것보다도 수백 배 거대했다.
"크기가 모든것을 우선한다. 암."
위드는 철저히 확인하기 위해 마판에게 귓속말도 보냈다.
"마판 님, 지금 바쁘세요?"
-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런데, 그곳이 밤 인가요?"
베르사 대륙도 지역에 따라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조금씩 달랐다.
- 네, 저녁입니다. 하벤 제국의 수도인 아렌성 부근에서 밀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케케케.
"그렇군요."
- 이곳이 밤인걸 물으시는 걸 보니 위드 님은 지금 어디십니까?
위드에 대한 소식을 궁금해하는 것은 마판도 마찬가지였다.
퀘스트나 사냥을 할 때는 귓속말 기능을 아예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친하더라도 대화를 나누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위드와 함께 일주일 정도 사냥을 하고 나면 친한 동료들도 한동안 귓속만 기능을 꺼 버리고 잠적했다.
"하늘을 보세요."
- 음... 밤 이라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아렌 성에 계십니까?
"아렌 성은 아니고 그보단 좀 멀어요. 하늘을 보고 찾아보세요."
- 지금 와삼이나 빙룡을 타고 계시는겁니까?
"하늘이 아니라 그보다도 훨씬 멉니다. 북쪽에 빛나는 별 같은 거 안 보여요?"
- 보이는데... 오. 저곳에 저렇게 큰 별이 있었군요.
처음 보는데 엄청 밝은데요.
"거기 있습니다."
- 예? 그 방향에 계신다고요?
"아뇨. 별 옆에요."
- 죄송합니다만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다시 어딘지 정확히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지금 우주 한복판요"
- 쿠헉! 거기서 뭘 하고 계시는데요?
"별 만들어요."
마판에게 패닉을 안겨 주고 나서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별이 얼마나 크고 밝게 보이는지, 혹은 주변부의 별자리에 대해서까지도 꼼꼼하게 체크를 했다.
위드가 만드는 별의 조각품이 주변 별들에게 묻히거나 가려져 버린다면 그것만큼 심각한 실패는 없기 때문이다.
- 근데 별을 만드는 퀘스트도 있습니까?
"뭐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하고, 마스터 되려고 하니까 퀘스트가 생기네요."
- 정말 부럽네요.
"별로요."
- 진짜 대단하십니다.
"별일 아니에요."
- 존경합니다.앞으로도 쭉 이끌어주세요.
"별말씀을."
- 조각술 마스터를 미리 축하드립니다.
대륙 최초의 마스터가 되시겠네요.
근데 자꾸 별로 시작하는 말로 대답하시는데... 의도 하신거죠?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이군요."
위드는 유린에게도 귓속말을 보냈다.
"사랑하는 예쁜 동생아."
- 뭔데. 라면 끓여 와?
"네가 로열 로드에서 좀 다녀 봐야 할 곳이 있어."
- 어딘데?
"그림 이동술로 다녀오면 되니깐. 세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밤하늘의 그림을 그려줘."
- 몇 장이나?
"백 장이면 아쉬운 대로 될 것 같다."
화가에게 백 자미면 보통 노가다가 아니었다.
- 알았어, 오빠. 내일까지 해 줄께.
위드의 여동생에게는 그 정도도 가뿐한 일.
기본적으로 도배, 장판, 시멘트 배합, 변기 설치 정도는 여자인 유린에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가끔 장독 묻는다고 야밤에 뒷마당에서 삽질을 할 때가 있었다.
"깊게 묻어야지. 헤헤"
열심히 땅을 파는 여동생을 보며 위도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좋은 남자 만나야 되겠구나. 내 여동생 손에 피 안 묻히려면.'
* * *
이현은 캡슐을 나와서 컴퓨터 모니터로 이혜연이 그린 그림들을 봤다.
지역이 다르더라도 밤하늘의 방향만 같다면 모습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베르사 대륙에서 충분히 먼 곳이라 별자리에 큰 차이는 없군. 별이라... 어떤 조각품을 만들어야 할까."
주변의 별들과도 잘 어울려야 함은 물론이고, 크고 환한 존재감을 가져야 한다.
손에 닿지 않고 먼 밤하늘의 별로 비추기만 하기에 낭만적이기도 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행복은 가까이 있는 거지 ."
보증금 300만원 에 25만원 짜리 월세에 살다가, 보증금 1,000만원 에 23만원 짜리 월세 집으로 옮겼을 때도 얼마나 기쁘고 만족스러웠던가.
변기와 화장실 타일의 퀄리티부터 차이가 났었다.
"별자리를 보면 모라타에서 북쪽으로 보이는군.위치는 잘 정하긴 했는데 말이야.
뭔가가 계속 아쉬워. 도대체 그게 뭘까?"
이현은 서윤이 해 주는 밥을 먹고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 * *
조각품의 크기는 주변 별들의 크기 와 밝기를 감안하여 결정이 됐다.
달을 제외하고는 가장 크고 밝았다.
"아쉽지만 이 정도만 할까.
가공하는 것도 고려를 해 봐야 하니까 말이야."
위드는 허전하긴 했지만 넘치느니 약간 부족한 게 좋다고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거리를 감안해서 작게 보이는것이지 직접 비교한다면 달 정도는 깔아뭉갤 수 있을 정도로 거대 사이즈였다.
* * *
별의 크기가 결정되었습니다.
별을 구성하는 재질 중에서 다섯가지 주요 광물을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선택한 광물들은 별에 더욱 풍부하게 매장이 될 것입니다.
* * *
위드의 퀘스트 창에 수많은 특성을 가진 광물이나 원석들이 등장했다.
지질학 박사가 보았다면 눈을 부릅떴어야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했다.
지구상에 모든 금속이나 광물들은 물론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광물들까지도 분류가 되어 있다.
사소한 부분이었지만 로열 로드를 탄생시킨 놀라운 기술력이나 치밀함이 엿보이는 장면!
"돌이 다 거기서 거기지. 왜 이렇게 많아."
위드의 경우에는 대부분 흔해 빠진 광물들은 그대로 넘겨 버리고 보석 과 귀금석류로 이동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있구나."
황금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특성도 고를 수도 있었다.
"행성이 보석으로 가득하다면... 캬하. 이거야말로 진정 고급스러운 땅 투기가 아닌가."
조각술 마스터를 위해 대작급의 예술품을 만들어야 하지만, 땅 투기의 유혹은 참을 수가 없는것.
고양이가 뚜껑 열린 참치 캔을 놔두고 지나갈 수 없는 법이었다.
"다이아몬드로 하자. 별의 품격을 감안할 때 다이아몬드 산 정도는 서너 개 있어 줘야지."
*
다이아몬드가 결정되었습니다.
"금도 필요해. 금으로 된 강과 바다가 흐른다면 정말 끝내줄거야."
*
금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값이 나가는 건... 루비.
루비 평야 정도는 있어 줘야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겠어?"
*
루비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조금은 생각해 줘야 되겠지. 사파이어와 백금도 하자. 사파이어 언덕이나 백금 계곡 같은 것도 멋질 거야."
*
사파이어가 결정되었습니다.
*
백금이 결정되었습니다.
다섯가지 보석과 귀금속으로 결정 되어 버린 위드의 별!
이쯤 되면 슬슬 조각술 마스터가 문제가 아니었다.
베르사 대륙이 있는 행성의 수만배가 되는 보석이 매장되어 있다면 도대체 그 가치가 얼마이겠는가.
"부지런히 레벨을 올려야겠어.
언젠가 꼭 내가 여길 차지하러 돌아온다."
위드에게 우주 정복에 대한 야망까지 불태우게 되는 계기였다.
* * *
아렌성의 뒷골목.
늦은 밤, 간판도 붙어 있지 않은 빈민가로 지역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올리브를 사러 왔습니다."
"누구의 소개로 오셨습니까?"
"무기점 주인 파할이 말해 줬는데요."
"그렇군요. 마침 잘 오셨군요.
신선한 물품들이 있습니다. 후후후."
"저기 품질은..."
"믿으셔도 됩니다. 최상품이니까요.
일단 보고 결정하시죠."
지역 상인들은 지하 창고로 가서 산처럼 쌓여 있는 올리브 와 각종 말린 과일들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캬아. 이렇게 많은 식료품들은 처음 봅니다."
"저희 마판 상회... 아니, 싸게팜 상회 에서는 넉넉한 물량만이 아니라 유통 마진을 최소화해서 공급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원하시는 물량을 가져가세요!"
북부의 마판 상회!
전쟁과 푸홀 워터파크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어들이며 거대한 부를 쌓았다.
하벤 제국에서 밀무역의 영향력을 넓히고 넓혀서 아렌성 까지 진출한것이다.
북부의 저렴하고 품질 좋은 식료품을 대거 중앙 대륙으로 가져와서 지역 NPC 상인들을 통해 공급했다.
띠링!
교역이 성공했습니다.
상인 젠타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지역 명성이 20 증가하였습니다.
친밀도, 영향력, 탈세!
중앙 대륙에서 하벤 제국의 영향력은 세금을 낮추면서부터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마판 상회는 최소한의 이윤만을 남기면서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하벤 제국의 장인들이 파는 물건을 구입하세요."
"이런 구매 가격으로는 마진이 적습니다."
상회에 있는 상인 유저들이 의문을 가졌다.
매번 전설에 가까운 성공 신화를 써 온 마판이었지만 적자를 보는 거래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장인들과 친해지는 거죠. NPC나 유저나 가릴 것 없이요."
"친해지지 않고도 물건은 살 수 있는데요?"
"우리 목적은 물건을 사는 게 아니에요.
사람까지 사는 겁니다."
"사람?"
"친해지고 나면 몽땅 북부 대륙으로 끌고 갈 테니까 말입니다."
"...!"
상회를 통해 영향력을 퍼트린 후에 전부 북부로 데려갈 무서운 계획!
중앙 대륙은 일찍부터 기술 발전도 와 경제가 번영했다.
전쟁으로 한동안 밑바닥을 치기는했어도 그 깊은 뿌리가 어디로 가겠는가.
마판은 푸홀 워터파크가 만들어진 이후에 위드와도 비밀리에 회동을가졌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으슥한 곳에서 그것도 일부러 밤에!
"레벨 200 이상의 장인 한명에 5만 골드는 주셔야합니다."
"음. 너무 많군요."
"이쪽도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3만 골드?"
"시간도 돈이니 서로 생각해 놓은 금액을 이야기하죠."
"18,973 골드."
"14,980 골드."
위드와 마판은 팽팽하게 눈싸움을 했다.
먼저 감는 쪽이 패배!
그러나 매번 그렇듯이 먼저 패배 한건 마판 쪽이었다.
"크흑. 받아들이겠습니다."
중앙 대륙의 쓸만한 NPC들을 모조리 끌고 갈 계획을 세운 마판 상회.
유통으로 시작했던 마판 상회는 어느새 인신매매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었다.
* * *
로열 로드에서는 밤 사냥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던전에서는 낮 과 밤의 구분이 없기도 하지만, 밤에는 동물들의 활동이 왕성해졌다.
사냥꾼의 직업이 아니더라도 추가 경험치나 전리품의 혜택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밤 사냥을 포기하지 못 했다.
위드라면 어차피 24시간 사냥을 하기 때문에 상관없어도, 기왕이면 유저들은 짧은 시간에도 높은 효율을 원하는 것이었다.
"저기 있잖아. 나 고백 할게 있는데."
"응."
대지의 궁전 성벽에 앉아 있는 커플이 있었다.
남자 마법사와 여자 검사.
사냥터에서 눈이 맞은 흔한 커플이었다.
"우리..."
남자 마법사가 사귀자는 말을 어렵게 꺼내려고 할때, 여자 검사가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봐 봐."
"뭔데? 와이번이라도 지나가니?"
아르펜 왕국에는 조인족들이 흔했고, 와이번들도 운이 좋은 날에는 볼 수 있었다.
"별 이 있어."
"별?"
남자는 '별이야 당연히 있겠지,' 라고 궁시렁 거리면서 고개를 올려서 하늘을 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북쪽 방향에 달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밝은 별이 또렷하게 보였다.
"저거 뭐지?"
"처음 보는 별이야. 분명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그 시간 베르사 대륙 곳곳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들판과 산, 강은 물론이고 도시에 서도 유저들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먼 바다에서 대형 범선을 타고 항해하던 선장이나 해적들도 마찬가지 였다.
"저 별은 뭐야?"
"신기하네. 무슨 퀘스트라도 벌어지고 있는걸까?"
전설과 신비가 있는 로열 로드.
유저들은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매연과 빛의 공해에 찌든 현대인은 밤하늘을 볼 일
이 거의 없었다.
어두운 밤에 빛나는 건 인공위성이나 비행기 정도가 고작!
로열 로드에서는 밤에 사냥을 하다가 보석들 처럼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면 그만큼 낭만적일 수 가 없었다.
따로 경치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맑은 밤하늘에 시원한 공기만 있다면 최고의 데이트 장소.
도시의 야경이 아름다운 모라타나 새벽의 도시라면 연인들끼리 걷기에 정말 좋았다.
그리고 주민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헤스티아의 신전에서 여신의 신탁이 내려왔다고해."
"자네는 혹시 느끼고 있나? 위대한 탄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말이야. 정말 오랜만의 반가운 일이지."
유저들은 각 지역에 있는 헤스티아의 신전으로 달려갔다.
헤스티아의 사제 유저들 역시 의문으로 가득했다.
"뭔데요? 뭡니까?"
"어떤 신탁이죠?"
대사제의 자리에 있는 NPC는 사람들에게 밝혔다.
"여신 헤스티아가 직접 이 세계가 낳은 최고의 예술가를 마지막으로 시험하고 있습니다."
신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유저들은 대사제의 말을 듣자마자 중얼거렸다.
"위드?"
"위드네."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위드 뿐이었다.
바드 마레이가 정중하게 물었다.
"대사제시여, 최고의 예술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무한하게 넓은 공간에서 예술가는 여신 헤스티아의 권능으로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없는 큰 공적을 세운 모험가이기도 하며 명예로운..."
"역시 안보이더니 모험을 하고 있었어. 이런! 멋진 노래를 만들 기회를 놓치다니. 아, 이건 조각 퀘스트인가."
마레이는 땅을 치고 후회 했고, 유저들의 눈에는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세상에 이젠 우주에서도 조각품을 만들어. 대박이다."
"대체 얼마나 명성을 쌓고, 퀘스트의 전설을 쓰면 이런 퀘스트를 다 수행하냐."
"차원이 다르네, 달라"
"위드. 역시 쥐새끼처럼 숨어서 활동하고 있었군."
"앗. 우리 사이에 헤르메스 길드원이 있다."
밤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별은 유저들에게 금세 유명해졌다.
레벨이 높은 궁수 유저들은 남다른 시력을 가져서 망원경을 낀 것 처럼 별을 확대해서 볼 수 있었고, 샤먼과 마법사들도 비슷한 관찰 마법을 가졌다.
"이글 아이 마법으로 위드의 별을 보여드립니다. 2골드에 모셔요!"
마을마다 장사를 하는 마법사들에 의해 유저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망원경의 가격은 열배 이상으로 폭등!
"소식 들었어? 북쪽에 빛나는 별이 위드님의 조각품이래."
"말이 돼? 하늘에 조각품을 만드는 것이 말이야."
"하늘이 아니라 우주라는데? 별의 조각품을 만드는 거래. 조각술 마스터로 말이야."
위드가 모험을 한다는 소문은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베르사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도시와 들판을 가리지 않고 유저들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게 다 뭐야? 자세히 보니까 무지 반짝여."
"누런게 다 금? 엄청 예쁜 보석 별 이다."
"그러게 말이야. 진짜 어마어마한게 나올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