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7권 : 2. 아기 별 (315/520)

2. 아기 별

이현의 집앞으로 고급 승용차들이 줄줄이 주차되었다.

한국의 방송국들은 물론이고, 로열 로드의 인기를  업고 탄생한 전 세계의 게임 방송사들.

해외 주요 방송국들에서도 임원들을 보내서 조거술 마스터 퀘스트 중계에 대한 협의를 하기 위해 몰려온것이다.

"이 골목도 자주 오니까 익숙하군."

"나는 주소까지도 외우겠어."

방송국의 임원들은 안면이 있는 이들과 함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손  전무님, 요즘 주말 시청률 많이 오르셨던데.방송 주제도 참신하고."

"걸 그룹들 모험 시키는 내용으로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짜 볼까 하고 있습니다. 모라타에서 황소와 새끼 와이번도 키우고요. 걸 그룹이 식상하긴 해도 장면이 예쁘지 않겠습니까."

"그거 좋군요.  요즘은 가수들  콘서트도 로열 로드에서 한답니다. 장소 섭외 하는것도 쉽고, 무대 장치나 관중들 반응도 색다르고 좋다는군요."

"알고 계셨군요. 새벽의 도시와 모라타에 있는 공연장들은 대관 일정이 일년치가 벌써 가득한데 말입니다."

"추가 공연장도 계속 만든다죠? ORK 통신에서도 아르펜 왕국에 공연장 기획하고 있지 않습니까?"

"워낙 다른 건축일들이 바쁘다 보니... 북부 에서는 사람이 많아도 손이 귀해서요."

실제 가수들에 의한 경쟁도 볼만한 요소였다.

다양한 가수와 연주가들이  로열 로드에서 캐릭터를 생성하고 바드로서 노래 실력을 겨루어서 유명세를 얻어 가는 과정들이 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고, 아르펜 왕국의 열풍을 이어 가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약속 시간은 오후 세시.

정확하게 점심과 저녁 사이에 이현의 집 문이 열렸다.

"보신아, 예쁘게 잘 자랐구나."

방송국 관계자들이 서둘러 이현의 집으로 들어갈 때였다.

KMC미디어의 직원들은 이현의 집 강아지들에게 비싼 갈비를 가져다줬다.

"착하지. 많이 먹어라."

어느새 훌쩍 큰 몸보신 2세와 그 새끼들이 갈비를 와구와구 뜯어먹었다.

다른 방송국 직원들은 계약을 하러 온 마당에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의문이었다.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허참. 지금이 정승집 개 한테도 인사를 한다던 조선시대도 아니고."

방송국 관계자들은 웃으면서 이현이 기다리는 거실로 들어갔다.

* * *

"손 부장님, 이쪽 자리에 앉으세요. 박 이사님, 이사 승진 축하드립니다. 편하신 자리를 준비 했습니다."

이현의 집은 거실이 넓은 편은 아니었다.

가끔씩만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의자의 개수도 모자랐다.

"자리가 편하진 않겠지만 이걸 깔고 앉으세요."

이현은 여러 명의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방석을 나눠 주면서 바닥에 앉으라고 했는데 외국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고맙습니다, 미스터 이."

하지만 한국 방송사 관계자들은 방석을 보면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방송국의 지위나 시청 점유율을 떠나서 무작위로 방석을 나눠 준 것 같지만 은근한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맨바닥에 앉았는데, 설날 선물로 산삼을 보냈더니 이번에는 의자다.'

'명절 선물세트가 부실했구나. 크으. 구멍 난 방석을 받다니, 우리 회사 홍보부 직원들은  일을 어떻게 한거야! 이놈들을 그냥!'

이현은 마시는 물 에도 차이를 뒀다.

아무런 선물도 가져오지 않고 협상을 위해 온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찬물.

현관을 들어오면서 뭐라도 하나 선물을 내민 사람은 오렌지 주스.

마트에서 흔히 파는 오렌지 주스 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못 받은 사람들은 미묘한 박탈감을 강하게 느꼈다.

'쪼잔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정도라니...'

'엄청나다. 나한테는 오렌지 주스를 절반만 따라 줬어! 선물의 질은 마음에 들었지만 양이 좀 모자랐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다행이다. 그래도 난 주스라도 가득 줬으니깐 말이야. 협상 과정이 조금이라도 순조롭겠어.'

외국 방송국 관계자들은 웃으면서 재미있어했다.

'위드? 개그 감각이 있구나. 딱딱한 자리가 될 줄 알았는데. 재밌어. 멋지다.'

'원더풀.'

그리고 이어진 방송 계약의 자리.

이현은 간단히 현재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에 대해 설명했다.

"대충 알고 찾아오셨겠지만 조각사 마스터 퀘스트 입니다. 그것도 마지막 단계!"

"오오."

방송국 관계자들은 자리에서 들썩일 정도였다.

스킬 마스터 경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기는하다.

그렇지만 직업 마스터 퀘스트 경쟁은 너무나도 극악에 가까운 난이도 때문에 대부분이 포기한 상태였다.

살인적인 퀘스트의 양 과 위험!

직업 마스터 직전에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들 몸을 사렸다.

'전쟁의 신 위드나 되니 마스터 퀘스트의 끝 까지 갔구나.'

'역시 노가다의 신.'

'퀘스트 같은 건 전부 해내는군. 정말 평범해 보이는데... 겉보기와는 달라.'

'독한놈, 저걸 CTS미디어에서 진작 독점으로 잡았어야 했는데.'

'한국인들은 도대체 뭐하는 종족이지? 가상현실 세계는 한국인들이 결국은 지배하고 말꺼야.'

이현은 거만하게 방송국 관계자들을 쓱 둘러봤다.

"하지만 제가 진행하고 있는게 일반적인 마스터 퀘스트는 아니죠.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조각술 최후의 비기가 있기 때문인데.아마 조각사 마스터가 또 나오더라도 다시는 볼 수 없을겁니다. 크윽. 좀 아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네요."

지나간 고생은 추억과 경험으로 미화되었지만 가끔 악몽을 꾸기는 했다.

이현은 전혀 아쉽지 않았어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옆구리를 꼬집어서 룬물 한 방울을 쥐어 짰다.

"어쨌든 이번 일을 성공하면 최초의 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높고, 별을 조각하는 건 따로 설명 드릴 필요없이 전대미문의 일일 겁니다. 보고싶어 하는 시청자들도 꽤 되겠죠."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방송국들 내부에서 판단하기에도 높은 시청률을 장담할 정도의 근거는 충분했다.

'이건 먹힌다.'

'최고의 흥행 아이템 이야.'

위드의 퀘스트는 항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위드가 시장에서 말로 손님을 끌며 조각품을 만들어서 팔아먹는 내용으로도 10%의 시청률이 어렵지 않았는데, 최초의 마스터 퀘스트를 완료하는 순간 이라면 시청률 확보는 확실하다.

'지금 밤마다 기대하면서 별을 보고 있는 유저가 한둘이 아니고.'

'풀죽신교. 위드의 광팬들이 있으니 그들의 욕구를 해소해 줘야 한다. 그래야만 시청자 게시판의 풀죽테러를 막을 수 있어.'

방송국 게시판마다 풀죽을 외치는 시청자들에 의해서 점령된 상태.

위드의 퀘스트나 사냥이 대박을 칠때마다 게시판이 풀죽으로 가득했다.

일년 쯤 전에는 방송국 홈페이지의 몇몇 이용자들 중에서는 풀죽 거리는것이 혐오스럽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게시판 운영자 역시 별다른 내용 없이 풀죽만 적는 글들은 광역 삭제를 진행했다.

그리고 얼마후 방송국들은 크게 후회했다.

사이트 이용자 숫자 급감!

풀죽을 외치는 유저들이 로열 로드의 열성 팬들 이였기 때문이다.

로열 로드를 시작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왕성하게 활동을한다.

풀죽 유저들이 외면한 방송국들은 인터넷 사이트의 활동뿐만 아니라 시청률에도 손해를 봤다.

지금은 각 방송국 게시판에서 풀죽신교 소속을 인증하고 글을 쓰는 유저들이 삼분의 이를 넘어섰다.

어디 한국뿐이던가.

전 세계의 로열 로드와 연관된 방송국은 물론이고, 각 인터넷 주요 사이트들이 풀죽신교 유저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형편이였다.

웨이보,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커뮤니티 에서도 풀죽 유저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기자들이나 연예인들도 기사나 인터뷰에서 풀죽신교 소속임을 흔하게 인증했다.

심지어는 영국의 유명한 경제 신문에서는 이런 평가도 내놓았다.

풀죽신교는 디지털의 새로운 혁명이 될 것 이다.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 풀죽신교는 자유와 모험, 행복을 기치로 로열 로드에서 탄생했다.

놀고, 즐겁게 놀고, 재미있게 놀자는 그들은 즐거움이 갈수록 적어지는 각박한 현실의 새로운 조류가 되고 있다.

...중략...

풀죽신교의 확장성은 놀랍다.

매일 백만명 이상이 새로 가입을 하는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이와 능력, 그 어떠한 제한도 없다.

평범한 사람도 풀죽신교에 가입을 하고 수많은 하부 조직 중에 소속 단체가 정해지면 그곳의 정체성을 따르게된다.

용감하고, 근면하며, 헌신을 배우며,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자기 분야의 능력을 개발한다.

풀죽신교의 흐름은 시민 의식의 새로운 도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풀죽신교의 영향력은 무시 못 할 정도가 되었다.

세계적인 백화점, 아울렛들은 물론이고, 항공사, 호텔, 놀이공원, 이동통신, 고급 레스토랑들은 발 빠르게 풀죽신교 멤버십을 만들어서 제공하고있다.

연회비 없이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풀죽 프렌들리 라는 이름으로 충성도 높은 이용자들을 사로잡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매출액이 수백조에 달하는 기업들이나 경제 연구소들도 풀죽신교의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 풀죽신교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어떻게 될까? 수억명의 가입자를 기반으로 전 세계 소셜 네트워킹 시장을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 풀죽신교 전용 방송국 개국 가능성?

-  문구류에서부터 패션, 아동, 스포츠, 명품 잡화, 이동통신까지 풀죽신교 매니아들을 활용한 브랜드의 진출이 손쉽게 가능할수있다.

[ 세계적인 기업들과 연구소에서는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태어난 디지털 경제 혁명을 예언했다. 아울러 풀죽신교의 교리는 제3세계에서 독재에 저항하거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으키는 정치 혁명 세력으로의 대두도 충분히 가능하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반드시 이현과의 계약을 달성해야만 하는 상황 이었다.

이현은 종이쪽지를 한나씩 나눠 줬다.

"각자 적고 싶은 금액을 적으십시오."

WPS미디어의 신 전무가 먼저 종이쪽지를 받았다.

"금액을 적으면요?"

"생방송 계약은 경매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국가나 방송 점유율과는 관계없이 높은 금액을 제시한 7개 회사와만 거래를 하겠습니다. 하루가 지난 후의 방송에 대해서는 따로 제한을 두지 않고 업계 평균만큼의 로열티를 받도록 하죠."

"으음."

방송국 관계자들이 쪽지를 받아들이면서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였다.

'생방송을 위해 얼마나 적어야 할까?'

'몸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하지만 메이저 방송국으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생방을 잡아야해.'

'투자한 만큼 수익은 충분히 뽑히지. 우리 방송국에 광고를 넣는 기업들을 감안하면. 그런데 적절하게 써서 될까? 다른 방송국에서 확 크게 지르는게 문제인데.'

방송국 관계자들이 고민에 휩싸였을때, 이현의 차분한 말이 이어졌다.

"참 생방송 과 중계방송 의 광고 판매 금액의 15%도 저한테 주셔야 합니다."

"네?"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분은 인정해 주셔야 될 것 같아서요."

"..."

방송국 관계자들은 고심하여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작성했다.

시청자 숫자가 많은 중국과 미국, 일본의 방송국들은 기꺼이 거액을 지불했다.

평균 시청률이 높은 KMC미디어를 비롯해서 국내 방송국들도 현장에서 바로 결정되었다.

방송국 관계자들이 돌아가려고 할때 이현은 명함도 나눠 줬다.

보통의 명함이라면 업체명과 직위가 적혀 있는 반면에 이현의 명함은 달랐다.

이현 : 10월 05일

서윤 : 4월 22일

이혜연 : 7월 9일

할머니 : 1월 7일

"이게 뭡니까?"

명함을 받아 든 OTS미디어의 최부장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가족 생일입니다. 좋은 날들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

방송국을 상대로 제대로 갑질을 하는 이현이였다.

* * *

위드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별에 임시로 이름을 붙였다.

"B612라고 할까?"

어린 왕자의 별!

어릴때 유치원의 서가에서 읽었던 동화책에서 봤던 이름이 떠올랐다.

"음. 하지만 시대가 바뀌긴했지. 조금 더 단순한 이름으로 아기 별 이라고 하자."

제대로 모습이 갖춰지지도 않은 둥그런 별 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없이 거대하지만 멀리서 보면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

지구처럼 푸른 행성에 흰 구름들이 존재 하는것도 아니고, 광물들 외에 특징을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슬슬 모습을 갖춰야지."

습관처럼 자하브의 조각칼을 꺼냈다가 거대한 크기로 인해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 걸 보고 다시 집어넣었다.

최소 대재앙을 일으켜야만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으리라.

"시원하게 해 보자."

위드는 우주에서 멀리 떨어진 후에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신의 불꽃!"

두 손에서 화염 폭풍이 일어났다.

무엇이든지 녹여 버리는 헤스티아의 권능.

1만 킬로 이상 떨어진 우주에서 아기 별을 향해 화염 폭풍을 적중시켰다.

처음에는 별 반응도 없던 아기 별 이였지만 곧 표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일부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릴때 딱 이런걸 원했었어."

위드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동네 아이들이 어디서 썩은 나뭇가지 몇 개에 불을 붙여서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 먹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났다.

자고로 불장난이라면 행성 하나 정도는 통째로 태워야 제맛!

게다가 몇 시간 정도로는 간에 기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노가다감이기도 했다.

"근데 도대체 뭘 만들어야 할까? 진짜 조각술 마스터를 위한 마지막 작품이 될 텐데."

위드는 불의 기운을 잠시 거두고 생각에 잠겼다.

조각품이란 다른 모든 분야처럼 한계를 가진 예술 분야다.

그 한계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하며 생각을 담는 것이 조각술.

"우주에 만드는 별 이란 부담감도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영역에 대한 위험부담이 있단 말이지."

크기와 재질, 조각술이 가진 기존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 이지만, 제약도 생긴셈이었다.

너무 큰 무대를 주었기에 어지간한 작품으로는 양에 안찬다고 할까.

"우주에 어울릴만한 작품이라. 빛 이나 배경을 이용해야 하는데, 주변과 어울리려면 확실히 쉬운건 아니야.  도대체 어떤 별이 멋진거지?"

우주의 한복판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적막하고 외로웠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혼자라는 느낌을 가끔씩 받기도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사람이 있다.

우주에서는 물리적인 거리만 하더라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최소한 대작을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위드의 어깨도 무거웠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조각술 마스터 전에 만드는 마지막 작품.

그렇다면 가장 만들고싶은 조각품을 만들면 되는게 아니겠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만들고싶은 조각품은... 분명히 있지."

위드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그려졌다.

평소의 썩은 미소와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행복이 어려있었다.

로또 1등에 당첨 되어서 주식을 샀는데 100배 대박이나고, 그 이후에는 금수저가 된 정도의 행복함 이었다.

"쉬잇. 만드는거 같다. 별의 모습이 약간 바뀌었어."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건데? 궁금해 미치겠네."

"정 궁금하면 텔레비전으로 봐. 캬아. 진짜 멋진 작품이 나오겠구나."

베르사 대륙의 도시마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하늘을 올려다봤다.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면서도 하늘을 보는 사람들로 인하여 광장이 붐비고, 테라스에 유저들이 북적였다.

소수의 유저들은 호기심을 이기지못해 궁수 길드로 가서 시력 스탯을 익히고나서 레벨이 오르면 스탯 포인트를 분배할 정도였다.

마판 상회 에서는 재빨리 망원경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또 다시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베르사 대륙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위드의 아기 별 조각이 진행 되었다.

며칠동안 행성의 표면에서 큼지막한 덩어리가 잘려 나가더니 녹아 버렸다.

별의 오른쪽 상단부에 수박처럼 둥근 형태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유저들은 생각했다.

"사람 이겠구나."

"마지막 조각품은 역시 사람이겠지."

"그러면 그 대상은 풀죽여신님?"

"가능성이 높아. 밤 하늘의 별에 여신님의 모습을 조각한다면... 매일 밤마다 그 얼굴을 볼 수 있잖아. 캬하. 취한다."

"완벽해. 진짜 더 바랄께없어."

베르사 대륙에서는 프레야 여신, 헤스티아 여신이 유명했지만 대중들의 인기도에서 그녀들은 이미 밀려난 후 였다.

사람들이 그저 여신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오로지 풀죽신교의 여신을 뜻한다.

얼음 미녀상은 매일 수십만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돈다는 유명 관광지 였다.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아르펜 왕국은 수많은 그림과 조각품들이 거래된다.

위드의 조각 생명체들도 초보 조각사나 화가들이 흉내 냈지만, 여신 서윤의 조각상은 꿈 과 환상의 작품 이었다.

신성 불가침!

수많은 조각사들은 서윤을 조각했지만 그 시도만큼 좌절을 겪었다.

"아. 안돼.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십분의 일도 표현 할수가 없어."

"외모는  대충 비슷한거 같은데... 왜 이렇게 그 느낌이 안나지? 감성이 부족해. 내가 만든 조각품은 그냥 기계로 찍어낸것이나 마찬가지야."

풀죽신교의 교도들은 밤 하늘의 별을 보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여신님께서 별이 되어 지켜준다면 아르펜 왕국은 절대 망하지 않지. 매일 밤을 기다릴것이다."

"크으. 기꺼이 순교다, 순교."

밤 하늘의 별은 유저들이 보는 오른쪽 부분만 계속 조각이 되고 있었다.

어깨는 좁고, 아마도 머리가 될 둥그런 부분은 비율상으로 커다란 형태로 다듬어졌다.

"말도 안도잖아. 여신님께서는 저렇게 머리가 크지 않은데."

"조각을 위해 간단한 형태만 일단 갖춰 놓았을거야. 그 후에 정교하게 다듬지 않겠어? 눈, 코, 입만 하더라도 그건 미의 시작 과 끝이지."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을 조각 하기란 불가능해. 아무리 지금 까지 여신님의 조각품을 자주 만들었던 위드님 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위드님이 마스터 퀘스트를 하려면 여신님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봐야지. 그래야만 본래의 미를 표현할수있어."

"암. 이미 예술의 범주를 넘어 섰으니까 여신님의 실물을 본 나노서는 그날 전과 그날 후의 영혼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어."

두툼한 목선 과 머리 크기에 비해 좁고 둥그런 어깨라인. 짧윽 다리와 통통한 상체까지 이어서 만들어 지면서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은 혼란에 빠졌다.

"여신님이 아닌가?"

"어떻게 그럴수가? 위드님이 지금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배신을 때리는거야?"

풀죽신교의 교도들은 물론이고, 이미 1억명을 돌파한 위드의 안티 카페 에서도 들끓었다.

-제목 : 위드의 조각품 반대 청원 운동 입니다.

위드가 풀죽 여신님을 조각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얼마나 경박하고 무엄한 행동이란 말입니까? 대륙을 비춰주는 여신님의 존재를 탄생 시킬 수 있는 기회 인데요. 인생은 짧습니다. 풀죽 여신님을 보는 순간만이 완전한 행복이고 평안한 시간입니다. 여신님의 조각상은 그 어떠한 가치로도 대체 할 수 없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잔뜩 안겨줄 것입니다. 위드는 지금 까지의 성공에 취해서 배은망덕 하게도 우리들과 풀죽 여신님을 배반 하였을 것입니다.

이 파렴치산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히 단죄 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밉더라도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당장 지금 만들고있는 조각상을 중단하고, 풀죽 여신님을 조각 한다면 위드를 용서해줄 것입니다.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은 전설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서윤을 못보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 * *

위드는 조각품을 만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순수한 느낌을 살릴까? 활짝 웃는 모습으로? 음... 그보다도 성별부터 결정을 해야 하는데. 더 조각하면 되돌릴 수가 없어."

어떤 조각품이든 순식간에 형태를 계획했던 위드였지만 이번 조각품은 변수가 너무 크고 많았다.

대략적인 형태는 잡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각해야 할지 쉽게 손이 안 간다고 할까.

"서윤의 외모를 어느 정도 닮긴 해야 해. 그렇다고 너무 비슷하게만 하면 느낌이 단순할거야."

통통한 작은 손, 짧은 다리.

상대적으로 큰 상체와 머리.

조각품의 대상이 될 일반적인 형태 만이 만들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 가는대로 따르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어느 하나를 결정할 수는 없잔아. 마지막에는 결국 이게 정답이야."

화염으로 행성을 녹이면서 조각을 계속해갔다.

세상의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다 집어넣는다고 해도 성에 차질 않는다.

그러나 막상 서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조각을 하고 나니 모든 모습들에 애정이 넘쳤고 귀여웠다.

두툼한 볼이나 앙증맞은 턱살까지도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성별은 여자로 하자. 딸이나 아들이나 어느 한쪽으로 택하기는 힘들어. 그래도 딸이 예쁜 짓을 더 많이 할 것 같으니깐."

위드가 만드는 조각상은 돌이 갓 지난 아기였다.

생명의 탄생만큼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 또 있겠는가.

여자 아이냐 남자  아이냐에 따라서 조각품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지만 일단 딸을 선택했다.

"맏딸은 집안 재산이라는 얘기도 있으니깐 말이야."

사랑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인연을 맺고, 자식을 낳고 살아간다.

대부분의 인간이 백세를 넘겨서 살기는 힘들다.

그동안 주어진 시간을 소모하면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감사해하기도 하면서 인생을 겪는다.

그 삶에서 다시없을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바로 아기가 아니겠는가.

어린 아기가 꼬물거리면서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몸을 뒤집는 법을 배우고, 방을 기어 다니고, 말을 하는 법을 엄마와 아빠의 품에서 배운다.

위드는 가난하던 시절에 어린 여동생을 업고 돌보면서 미래를 상상해봤다.

'나 같은 놈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집을 돌아보면 한숨만 푹푹 나왔다.

기저귀 값, 분유 값 조차도 너무 비싸 보이던 시절이었다.

'돈 한푼 없이 사랑을 하고 싶진 않아. 이건 너무 힘든  일이잖아. 차라리 평생 혼자 살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겠지.'

사랑을 돈 때문에 못 하는건 비참한 일이었지만 위드에게는 당연한 현실이었다.

'돈 때문에 난 사람을 좋아해서도 안되는구나. 애도 못 낳겠군.'

위드는 길거리에서 부모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함께 늙어 가게 된다.

평범한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만 어린 아기야말로 사랑과 행복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다.

'분유 값과 귀저귀 값을 극복해야돼. 그건 정말 단단히 각오해야 하는 일이야."

위드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기를 키우면서 미래를 꿈꿨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하고싶은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멋지게 조각하고 싶은건 내 마음에서 쭉 정해져 있었어.'

* * *

"..."

서윤은 아르펜 왕국을 관리하는 일로 바빴다.

북부 대륙 전역으로 상업이 발달하고 문화적 영향으로 국경이 넓어지고 있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사소한 일들이 정말 많이 생겼다.

돈은 아무리 아껴서 쓰더라도 모자랐고, 왕국치고는 영토가 넓었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있다.

정책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서 발전이 확 달라졌다.

서윤은 이현에게 국왕 대리를 받아 낼 때의 일을 떠올렸다.

"아르펜 왕국에 대한 권한을 좀 주세요."

"뭘 얼마나?"

"행정, 사법, 예산, 군사에 관한 전권이요."

"그건 내가 가진 통치권 전부나 마찬가지잖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해요."

"설마 아르펜 왕국에 모인 돈을 전부 들고 튈 생각은 아니겠지?"

이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보았다.

"..."

서윤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이현의 상상의 나래는 더욱 커졌다.

"하벤 제국에 뒷거래를 해서 왕국을 팔아먹거나, 아니면 모라타나 새벽의 도시, 푸홀 워터파크를 사람들에게 팔아도 되지. 기획 부동산처럼 50평씩 나눠서 팔아 버리는 거야. 그 돈으로 부자가 되어서..."

이현의 상상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바로 옆집에 사는 서윤이었고, 또 그녀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만한 이유도 충분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이 이미 꽤 된다는 것 외에도, 그녀 정도의 외모라면 돈은 의미가 없었다.

방송 출연 계약서 몇장 정도만 써 주면 돈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었다.

"알았어. 맘대로해."

국왕의 자리를 실질적으로 대행하고 있는 서윤이었는데, 그녀는 작은 마을의 영주들을 임명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업무를 진행했다.

사냥터로 가서 레벨을 올리지 않고 있지만, 아르펜 왕국의 발전에 그녀의 공헌이 지대했다.

로열 로드에서 바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서윤은 이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도 관심을 가졌다.

과거에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면서 딸기 우유 하나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한 게 한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냉장고에 꼭 세개씩 사 놓았다.

하나만 놔두면 아깝다고 못 먹는게 까다로운 이현의 성격이었으니까.

몸보신과 새끼들의 사료를 비싼걸 먹이더라도, 일부러 싸구려 마대 자루에 담아 놓아야 했다.

안 그러면 강아지들을 구박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서윤에게 이현이 로열 로드에서 조각품을 만드는 것은 특히 관심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조각품을 만들어 주었던 추억이 그대로 생생했다.

여러번 조각품을 만들면서 그 모습과 형태들이 갈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현이 그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조각술 마스터로 만드는 이번 조각품도 나에 대한 것일까?'

은근히 작품이 완성되는 날이 기다려졌다.

밤하늘의 별까지 그녀의 조각한다면 이보다 낭만적이고 멋진 선물이리라.

'직접 물어보진 않을 거야. 기다려야지. 하지만...'

서윤은 캡슐로 들어가서 로열 로드에 접속했다.

"마판 님."

"네."

서윤의 부름을 받고 마판은 밀무역을 하다가 중단하고 귓속말에 전념했다.

마판에게도 서윤은 여신이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대형 망원경이 필요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최고의 대장장이들을 섭외해서 제작해 보겠습니다."

"빨리 부탁해요."

"네. 근데 예산은 어느 정도나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제 돈으로 만들어도 상관은 없긴 합니다만."

"200만 골드요."

"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낼게요. 200만 골드로 먼 곳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대형 천체 망원경을 설치해  주세요."

말을 하는 서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형 망원경까지 제작 의뢰를 넣고 기다리고 있던 서윤.

그녀는 매일 밤하늘을 꼼짝도 하지않고 올려다봤다.

임시로 작은 망원경을 사서 위드가 조각하던 별을 보던 그녀.

별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자신이 아니라는게 느껴졌다.

"..."

서윤은 조용히 묵혀 놨던 검을 챙겨 들고 던전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고급 던전에서 오랜만에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광전사의 직업 특성답게 밤샘 사냥으로 지치지 않고 강한 적들을 맞이해서 전부 날려 버렸다.

예전이었다면 이 정도면 기분을 풀고 사냥을 끝냈으리라.

"...아직 부족해."

서윤은 7곳의 던전을 몽땅 쓸어버렸다.

그 여파는 현실에도 미쳤다.

서윤은 언제부터인가 이현과 이혜연의 음식까지 챙겨 주고 있었다.

이현이 차릴 때도 있지만 아무 말이 없거나 하면 그녀가 항상 시장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했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없어졌고, 떡볶이에 하이라이트인 삶은 계란이 사라졌다.

냉장고에 딸기 우유를 혼자 다 마셔 버렸고, 심지어 몸보신에게도 간식을 챙겨 주지 않았다.

"오빠. 뭐 잘못한 거 있어?"

"잘 모르겠는데?"

"분명 있을 거야.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서윤은 집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지만 시장에 가서는 고개를 숙인채로 말도 거의 안했다.

그녀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시장상인들이 몰려들어서 쑥덕거리면서 대화를 나눴다.

"이현. 그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을 겁니다. 틀림없어요."

"역시 여자가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설마... 저런 아가씨른 놔두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닙니까."

동네 전체에서 이현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조되고 있었다.

평소에 보여 주었던 건실한 이미지 같은 것은 서윤의 침울한 표정에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서윤은 로열 로드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도 어떤 조각품을 만드는지는 상당히 궁금했던것이다.

조각품이 다른 여자의 모습은 절대 아니기를 바랐다.

'저 모습은... 아기?'

머리 부분부터 조각되어서 비율이 처음에는 이상했었다.

몸의 형태가 만들어지자 귀여운 아기의 느낌이 또렸해졌다.

아기의 얼굴은 아직 조각 중이었지만 눈, 코, 입은 활짝 웃고 있었다.

장난기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의 표정.

'그리고... 날 닮았어. 눈매와 입이...'

서윤은 오랫동안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이현의 밥상은 장어, 전복, 낙지, 삼계탕으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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