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오데인 요새 공방전.
"..."
"..."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오데인 요새의 성문 부근.
수많은 유저들이 길가와 성벽, 심지어 산맥의 나무와 바위 위에까지 서 있었다.
핀트는 걸어오면서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봤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수군수군
"정말 왔잖아?"
"그러게. 용기 있네. 저 레벨에 죽으면 눈물 나도록 아까울 텐데."
"나라면 안 죽고 싶겠다."
"핀트님은 의리 있는 분인데... 오실 줄 알았어."
"후. 그래도 무모해. 괜히 나서면 저렇게 되는 거잖아."
핀트는 오데인 요새 출신이니만큼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얼굴이 익숙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냥이나 퀘스트를 같이 갔고, 밥을 나눠먹었던 유저들.
핀트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서글픈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내가 죽는 걸 구경하러 왔구나.'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왔기에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죽더라도 전진하는 거다.'
오데인 요새의 성문.
중앙 대륙에서 매일 전쟁이 벌어질 때에는 30만여 명의 정예 벙력으로도 뚫기 힘들었던 굳건한 벽.
핀트가 훤히 열려진 성문 앞에 걸어가서 가만히 섰다.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커다란 성문을 향해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웠다.
"핀트가 도착했다."
동쪽 성문을 지키는 수비대장 재커슨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벽에서 요새를 지키는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었다.
3천명의 마법 궁수 부대!
오데인 요새를 지키는 수비 병력중의 하나였는데, 높은 세금을 받을 당시 하벤 제국의 막강하던 재력으로 강화가 된 것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마법 활과 갑옷을 입은 엘리트 궁수 부대가 핀트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공격은 하지 않고 성문 근처에 있던 재커슨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척살령은 확실히 떨어졌지?"
"그래. 성주가 보자마자 1급 척살명단에 올리라더라."
"후... 핀트님은 같이 사냥을 많이 다녔는데. 도움을 받은 적도 많고."
"나도 그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잖아."
"그래도 죽여야겠지?"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불쌍하다고 살려줄 수는 없지. 예외란 인정해선 안 돼."
재커슨이 공격 명령을 궁수 부대에 내리려고 할 때였다.
혼자 서 있던 핀트에게 구경하고 있던 유저가 다가와서 같이 섰다.
"핀트님.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울루게님?"
"하하. 하늘을 보십쇼. 죽기 딱 좋은 날씨 아닙니까."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바람까지 선선했으니 죽기보다는 놀러가기 좋은 날씨이리라.
울루게도 오데인 요새의 레벨 500대 초반의 유저.
핀트와는 자주 사냥을 같이 다녔던 동료였다.
"저 때문에 이러실 필요 없는데요."
"마음이 움직여서 온 겁니다. 결정을 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제가다 헤르메스 길드 놈들이 이미 절 가만 두겠습니까."
"그렇다면 같이 하시죠."
레벨 500대의 유저가 둘이 되었다.
포보 유저들에게는 항거가 불가능한 무서운 무력을 지닌 존재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라고 해도 랭커가 아니라면 으슥한 산기슭이나 던전에서 만나면 떄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구경꾼들은 탄식했다.
"와... 이렇게 죽기에는 정말 아깝다."
"나라면 저렇게 죽을 바에는 그냥 싸우고 말겠다."
"싸우고 있잖아."
"저게 싸운다고?"
"헤르메스 길드가 휘두르는 무력에 대한 저항. 공포에 싸우는 거지. 저들이 전투를 할 줄 몰라서 안 하겠냐."
"하긴..."
힘을 중심으로 한 헤르메스 길드의 억압!
끔찍한 불이익 때문에 누구도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그 힘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현장에 나온 방송 진행자들도 핀트와 울루게의 용기를 칭찬했다.
"놀랍습니다. 핀트 유저의 옆에 한 사람이 더 참여했습니다."
"울루게라는 유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레벨은 500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데인 요새에서 시작했습니다. 사냥꾼이라는 직업으로 파티 사냥을 자주 한 적이 없어서 모르는 유저들도 많이 있겠지만, 로열 로드 초기에는 상위 전체 100위 안에 들정도의 강자였습니다."
"사냥꾼으로 레벨 500대라면 굉장한 거잖아요?"
"초반 성장이 확실히 유리한 게 사냥꾼의 특징이죠. 지금도 길드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500대의 레벨을 달성한 건 굉장한 일입니다."
"용기 있는 두 사람이 나섰네요."
오데인 요새의 사정을 잘 아는 현지 유저들까지 섭외하여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방송 촬영에 성문에 나온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막진 못했다.
듣기 불편하다고 방송 중계진들을 건드릴 정도의 막장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자신들도 그들이 하는 행동이 썩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쁜 짓이지. 그래도 이득이 되잖아?'
'다른 사람 사정 생각해봐야 누가 알아주나. 먼저 짓밟고 강해지는 거야. 세상의 이치지.'
'죽고 죽이고. 로열 로드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뭐 약자들에게 존경 받을 생각 따위도 없고.'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얼굴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올라온 핀트의 글 때문에 로열 로드에 화제가 되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하던 참이었다.
'성주만 아니었어도 저들이 나설 일이 없었을 텐데.'
'좀 더 매끄럽게, 힘으로 찍어 누르더라도 조용히 처리할 수 없나? 우리 성주는 과격하게 일을 벌이기 좋아하니 원.'
'일이 더 커지면 수뇌부에서 뭔가 제재가 들어올 거 같기는 한데.'
재커슨은 잠시 망설이다가 길드 지역 채널로 보고했다.
- 재커슨 : 핀트의 옆에 울루게도 섰습니다. 그래도 공격할까요?
성주 체스트로로부터 불과 1, 2초 후에 답이 왔다.
- 체스트로 : 반란군은 다 쓸어 버리세요!
- 재커슨 : 두 사람은 유명합니다. 저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 체스트로 : 우리가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영웅 심리 때문에 나서는 놈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까불지 않도록 본보기를 삼아서 죽여야 합니다. 철저히.
현장에 있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고집불톨인 성주의 성격상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군. 방송에서 촬영하고 있는 건 찝찝하긴 한데. 그렇다고 살려주는 것도 안 되고. 내 책임은 아니니까."
재커슨이 악역을 맡으며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데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좋은 일 같이 합시다."
"아... 나도 참느라 지쳤어요."
"참으면 병 되죠. 로열 로드를 할 때마다 재밌으면서도 뭔가 답답했는데 핀트님 글 읽고 나서 체한 게 다 고쳐졌습니다."
"크후... 미리 이야기하면 못 오게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우리끼리 말도 안 하고 있었죠."
"조용히 오시기만 기다렸습니다."
핀트의 지인들부터, 그의 글을 읽고 모인 구경꾼들도 옆에 함께 섰다.
핀트 혼자 있던 성문 앞에는 1, 2백여 명의 무리가 되었고 홍수가 불어나듯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걸 보여줍시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줄 알았나. 진짜 힘에서 밀려도 저항을 해야지. 때린다고 맞고만 살 수 있나."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핀트가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헤르메스 길드의 지배에 반발심이 터져나왔다.
멀찌감치 서서 남의 일처럼 쳐다보던 구경꾼들이 표정을 싹 바꾸며 뛰어들었다.
"핀트가 왔대."
"진짜야? 야. 우리도 가자!"
오데인 요새의 내부에서도 소식을 접하고 핀트와 함께 서기 위해 성문으로 유저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 이거 어떻게 하지?"
"갑자기 너무 많아지는데?"
"다 죽여도 되나?"
성문 위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당황했다.
현재 오데인 요새의 성문에는 총 4천여 명 정도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성문은 닫아."
"그래. 유저들이 합류하지 못하도록 하자."
핀트의 세력이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거대한 성문이 완전히 닫혔다.
그러자 오데인 요새의 내부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세력을 이루었다.
핀트의 인맥이나, 오데인 요새의 통치에 유저들이 반발하고 있었다.
"더 모이기 전에 전부 죽여!"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오데인 요새에서도 대규모 군대가 출동했다.
* * *
오데인 요새 공방전!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전투는 일반 유저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2만 단위가 넘는 반란군이 형성되었다.
"우리에게 자유를!"
"헤르메스 길드로부터 벗어나자!"
노점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이나 지나가던 여행객까지 검을 뽑아들었다.
계획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
대장간에서 일을 하던 대장장이들이 망치와 도끼를 꺼내들고 나와서 반란군에 가세했다.
"반란군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하라."
오데인 요새의 성주 체스트로와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군대를 출동시켜서 전면 진압작전에 나섰다.
결과는 반란군의 전멸!
도시 건물들이 파괴되고, 수많은 유저들이 목숨을 잃었다.
보통의 전쟁은 어느 한쪽에 기우는 순간 후퇴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핀트와 유저들이 함께 한 반란국은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다 사라졌다.
"이제 깨끗하게 정리되었군. 우리쪽 손실은 얼마나 됩니까?"
"주요 건물 79채와 병력 4800여명입니다."
"쯧. 갑자기 전투가 벌어져서 피해가 컸군요. 더 빨리 정리할 걸 그랬나."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줄은 몰랐죠. 제대로 쓸어버렸으니 지역에서 당분간 헤르메스 길드의 힘에 도전 할 수 있는 녀석들은 없을 겁니다."
"한 번씩 맛을 보여주는 것도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을 겁니다. 평화로인해 느슨해진 병력들의 훈련을 위해서라도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오데인 요새에서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들끼리 말은 안 했지만 지역에서 유명한 유저들을 사냥하며 전리품과 경험치를 많이 올렸다.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면 그런 고레벨 유저들이 이젠 이 지역을 떠나게 될 것이다.
경제와 지역 발전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당장은 큰 이득을 거두었다.
'오데인 요새가 안 좋아지면 다른 지역으로 가지. 중앙 대륙은 넓으니까.'
'핀트가 되살아나면 전문적으로 사냥팀을 꾸려야지. 전리품을 비롯해 아직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클 거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내심 만족해하고 있었다.
오데인 요새의 성주 체스트로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한 잔에 1백 골드가 넘는 고급 술을 마셨다.
"알립니다. 성문 외각에 병력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다 해치운 게 아니라 좀 남아 있었나?"
"한참 몸을 움직이고 났더니 지금은 좀 쉬고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기회를 날릴 수도 없고."
"에고. 빨리 정리하고 돌아와야겠구만."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나태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전투에 참가하려고 했다.
전쟁과 정복으로 성장한 무투 계열 길드인 만큼 익숙한 일이었다.
"성문 박에 모인 병력의 규모... 최소 5만!"
"뭐라고? 아까 싸웠던 놈들보다도 많잖아?"
"오데인 요새 내부에도 반란군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최소 4만입니다."
성주 체스트로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2차 전투를 펼쳤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검을 뽑은 유저들이 많아서 전반적인 수준은 1차 때보다도 훨씽 향상되었다.
오데인 요새에서는 방어 시설물들을 활용해서 싸웠지만 병력이 2만 명이 넘게 손실을 입었다.
"복구를 위한 비용이 백만 골드는 넘게 들어가겠네. 훈련된 군대를 다시 양성하는 것도 그렇고."
"길드에 청구를 하면 받아주겠습니까?"
오데인 요새의 성주와 측근들은 전투의 뒷감당에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이 전투들이 전세계의 대형 방송국들을 통해서 중계가 되었다.
1차 전투의 초기에는 몇몇 소규모 방송국들이 주도했지만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메이저급 방송국들도 생중계에 가세한 것이었다.
방송국은 헤르메스 길드와 일반 유저들 간의 분쟁이니만큼 참석자들의 균형을 통해 중립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편에 서있는 참석자가 돌출 발언을 했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네요. 이게 반란군이 일어날 만한 사건입니까?"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헤르메스 길드가 지금까지 로열 로드에서 살상한 일반 유저가 약 천 3백만 명이 넘습니다."
"그렇게 많을 수 있나요? 전쟁 중 에요?"
"에... 전쟁은 제외한 수치죠. 헤르메스 길드는 중앙 대륙을 지배하고 있고... 확나면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요?"
"예. 헤르메스 길드가곧 법이니까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기분 나쁘다고 초보 사냥터에 가서 수백 명씩 학살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게 옳다는 겁니까?"
"옳은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죠. 재밌잖아요."
"당하는 쪽의 입장은요?"
"억울하면 빨리 강해지던가요. 누가 약하라고 했어요?"
방송을 생중계하던 PD와 작가들이 팔을 겹쳐서 엑스자 사인을 보냈다.
이런 멘트가 시청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이 너무 뜨거워지고 있었다.
진행자는 욕하고 싶은 본인의 기본은 참아두고 웃으며 말했다.
"헤르메스 길드가 요즘에는 그래도 세율을 낮추면서 바뀌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잠깐 잘해줄 수도 있죠. 그래도 기부이 나쁘면 죽이는 거고요."
"자꾸 헤르메스 길드를 나쁜 쪽으로 표현을 하시는데..."
"전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가요. 왜 솔직히 말을 못합니까? 그냥 중앙 대륙은 헤르메스 길드가 지배하고 있고, 그들의 마음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죠. 학살? 하면 좀 어때요. 약하면 참고 살면 되잖아요? 익숙해지면 화도 안 날 거고요."
방송 때문이 아니더라도 오데인 요새의 사연을 알게 된 유저들이 로열 로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분노하자. 일어나자.
- 참을 것인가. 그렇게 참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에서 패배 할 것인가.
- 나는 결심했다. 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자. 무의미한 저항? 그래서 의미 있게 지금까지 무시당하고 살아왔는가?
- 지켜보고 외면하지 말라. 평생의 아픔으로 남으리라.
핀트의 글이 사방으로 펴졌다.
오데인 요새의 방송 영상까지 덧붙여지면서 사람들의 감정에 뜨겁게 불이 붙었다.
체스트로가 승리를 한 후에 했던 말도 방송으로 보도가 되었다.
"반란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잘해줘서 그런 겁니다. 등 따듯하고 배부르니까 검을 뽑아들죠. 자기 주제도 모르고 말이에요."
오데인요새의 2차 전투가 끝나고 불과 다섯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우리에게 자유를!"
"레벨 31입니다. 같이 싸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누구든 환영합니다. 고개 숙이면서 살지 맙시다. 우리가 죄인입니까? 밟히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줍시다."
"중앙 대륙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 합시다!"
오데인 요새의 부근 20만여 명이 넘는 3차 반란군이 모였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성벽과 방어탑에서 가득 보이는 군중들에 당혹스러웠다.
"또 전투를... 도대체 왜 그렇게들 말을 한 거야."
"어떻게 저렇게나 빨리 모인거지?"
"얼굴을 아는 유저들이 많습니다. 오데인 요새와 이 부근의 유저들이 대거 몰려든 것 같군요."
자존심 때문에 막 나가던 성주 체스트로도 걱정이 조금 앞섰다.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했나? 전투 물자가 조금 부족해. 게다가 핀트나 다른 유저들도 되살아나면 합류할텐데."
"성주님.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습니까? 일단 다 해치우고 헤르메스 길드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렇죠. 아직은 수습이 가능합니다. 군대도 지치기는 했지만 저들 정도야... 오데인 요새는 난공불락입니다."
"수비 하려고만 하면 몇 배 더 많은 병력이라도 이길 텐데요. 어중이 떠중이들이나 모여가지고 쓸어버리면 쉽게 쓸릴 겁니다."
성주 체스트로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전투 외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악역이란 생각은 해지만 반란군을 성문을 열고 따뜻하게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차 전투!
치열하게 벌어졌음에도 오데인 요새의 수비 병력의 강함을 증명했다.
군중들 중에서는 가끔씩 레벨이 높은 이들도 있었지만 요새의 지형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피해로 이겨냈다.
전투가 거듭되면서 오데인 요새의 수비병들도 잘 활용되었던 것이다.
3차 전투를 이겨낸 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헤르메스 길드의 영주 통신 채널을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 칼로 : 브리튼 연합 지역에서 오데인 요새를 향해 유저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인원수 측정 상당히 많음. 최하 15만 이상.
- 모르크 : 일스 대평원의 서남 지방관입니다. 이곳에서 유저들이 오데인 요새를 탈환하자고 출진하였습니다. 여기 병력도... 새까맣게 머릿수 밖에는 안 보입니다. 50만은 넘으리라고 봅니다.
- 미만자 : 그쪽에 유저들이 그렇게 많은가요?
- 모르크 : 여우 잡던 유저들까지도 가고 있습니다. 섞여서 구체적인 전투력 측정 불가능. 이쪽은 초보 유저들까지도 접속만 하면 싹 몰려가는 중이라... 원정을 가는 규모와 질이 파악 안 됩니다.
- 크롱 : 베르네르트 성에서 알려드립니다. 서쪽에서 오데인 요새를 향해 출진 중인 대규모 병력 발견. 인원수는 알지 못하지만 보기 시작한 건 대략 20분 정도 되었습니다. 다섯 갈래에서 모여들고 있는데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이쪽 성의 유저들도 그들과 합류했습니다.
- 제배 : 울고르 고원의 막스 마을입니다. 이동중인 유저들 대거 발견. 동쪽으로 가고 있는데 목적지는 오데인 요새로 보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영주 채널을 통해 오데인 요새를 향해 몰려가는 유저들에 대한 보고들이 빗발쳤다.
"이런 건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네. 전장의 규모가 예상을 벗어나 급작스럽게 커지고 있습니다."
"일반 유저들을 자국하여 분노가 터진 것으로 보입니다."
방송국들은 기존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오데인 요새에서의 생중계를 이어나갔다.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거나, 책을 읽던 사람들까지도 로열 로드에 접속하여 오데인 요새로 향했다.
군중의 규모가 너무나도 큰 것에 놀란 헤르메스 길드 수뇌부에서는 각 지역의 영주들에게 명령했다.
- 오데인 요새로 향하는 군중들을 차단하라.
각 지역을 지배하는 영주들도 놀라서 군대를 소집하고 상황이 전개되는 걸 지켜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영주들은 길드의 수뇌부에서 내려온 명령을 무시했다.
"저걸 막으면 내 땅에서 전투가 벌어질 텐데. 내버려두면 지나갈 애들을 왜 건드려?"
"오데인 요새의 성주가 싼 똥을 내가 치워줄 이유가 있나."
"나는 체스트로와 친분이 있긴 하지만... 이번 일은 모르겠군. 자업자득이야."
영주들은 유저들을 가로막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도시의 시설물이 파괴 될 수도 있고, 여론이 나빠지며 악명이 쌓일 수도 있다.
굳이 그런 손해를 감당하려는 마음은 전혀 안 들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일을 막으려고 했지만 중앙에서 충분한 병력을 급파할 시간이 부족했다.
유면항 랭커들이 방송에서 여론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오데인 요새의 모습이 생중계로 나간 후라서 통하지 않았다.
군중들이 모이면서 사태는 더 크게 확산되었다.
"자유를!"
"잘못된 일을 바로 잡자."
"우리가 살아 있음을. 인간임을 알려야 한다!"
오데인 요새에서의 4차 전투.
그것은 결코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전투였다.
체스트로가 지휘하는 오데인 요새의 병력은 성벽을 중심으로 하여 철저하게 방어전을 위주로 펼쳤다.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전력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다는 난공불락의 요새!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준이 높았다.
공성 무기도 없이 손으로 성벽을 타고 올랐으며, 검사들이 성문을 몸으로 들이받았다.
오데인 요새의 성벽에 배치된 궁수들이 쏘는 화살은 방어구를 믿고 기꺼이 맞아주었다.
훗날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방송에서 말했다.
"오데인 요새의 함락이요? 저 레벨 400을 넘어서 아는데... 정상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죠. 한 번도 정복이 안 된 요새는 아니긴 하지만요."
"우린 그냥 싸우고 싶었어요. 검을 들었고 달려갔어요. 그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으니까요. 죽음에 대한 패널티, 그리고 평생의 후회. 어느 쪽이 더 이득이었을까요?"
"밀려가다보니 요새가 무너졌습니다. 결국 절대 무너지지 않는 요새란 없는 거죠."
"우리가 무슨 영웅은 아니지. 그리고 어떤 커다란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근데 언제까지 참고만 살아야 되냐고."
"앞으로 헤르메스 길드가 보복을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요? 아니. 그런 걸 왜 생각해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지. 걱정이 많다보면 그냥 계속 고개나 숙이고 살았겠죠."
성주 체스트로와 오데인 요새의 병력은 4차 전투에서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요새에 산처럼 쌓여 있던 전투 물자가 거듭된 전투로 고갈되었고, 검 이나 창 같은 무기도 쓰다 못해서 부러져버린 후였다.
유저들이 방어탑과 성벽, 건물의 천장에 올라서 두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해방이다!"
"우리는... 살아 있다!"
* * *
오데인 요새에서의 승리!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제국군 정예 부대를 파견했다.
"신속하게, 오늘 내로 일을 마무리 짓습니다."
보에몽이 이끄는 적색 기사단의 정예 병력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거치며 오데인 요새로 달려갔다.
"공성 무기는요?"
"공성전을 치를 무기는 없습니다. 요새의 시설물들이 많이 파괴되었으니 그대로 성문을 돌파하여 모두 제거합니다."
적색 기사단은 헤르메스 길드원들 중에서 신속한 전개가 가능한 최정예 유저들을 끌고 왔다.
하지만 그들이 오데인 요새로 도착해서 본 것은 텅텅 비어 있는 폐허였다.
유저들이 오데인 요새에서 얻고 떠난 것은 영토나 보물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헤르메스 길드를 몰아내자!"
"우리도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자!"
유저들은 오데인 요새를 정복한 이후에 스스로 흩어졌다.
더 큰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 * *
핀트는 수많은 방송국들의 섭외 전쟁을 치러 KMC미디어의 스튜디오에 초대를 받았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지역 방송국에서는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KMC미디어에서는 처음이었다.
핀트는 오데인요새의 군대와 유저들에 대해 소개하다가 전투가 마무리될 쯤에 힘주어 말했다.
"제가 싸우기로 한 것은... 그래요.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주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의미가 없었다고요? 핀트님의 글이 인터넷에 널리퍼졌습니다. 어쩌면 오데인 요새의 전투도 핀트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제가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게다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원인이 존재하기에 결과가 만들어진 거죠. 오늘 벌어진 사건은 언제고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 군요."
"네. 모든 원인은 헤르메스 길드. 혹은 다른 지배 길드들이 만들어냈습니다. 언제까지고 계속 당하고만 사는 게 옳습니까? 중앙 대륙에서 수많은 유저들이 지금까지 피해를 입으면서도 살아왔던 것입니다."
"자.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유저들은 흩어져 있고, 헤르메스 길드는 강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릅니다. 저는 권력에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분노한 수많은 유저들 중의 한 명입니다. 그 분노가 모여서 충분한 이유를 만든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겠죠."
"바꾸는 데 실패한다면요?"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세상이 원래 다 이런 거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야겠죠."
* * *
- 베르사 대륙을 천국으로!
오데인 요새가 함락된 다음날 하벤 제국의 십여 곳에서 유저들을 중심으로 한 반란군이 일어났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누군가가 짠 계획처럼 의심했지만 실제로는 각 지역별로 전혀 교류가 없었다.
핀트의 글과 방송을 봤고, 자신들에게는 검을 들고 일어날 만큼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 우리가 나서자.
- 헤르메스 길드를 몰아내자.
- 새로운 세상을!
반하벤 제국의 기치를 걸고 유저들이 혁명을 시작했다.
각 지역마다 유저들이 레벨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하벤 제국의 통치를 거부하는 사태가 집단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사냥터에서 유저들이 귀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투 준비. 전원 전투를 준비한다."
영주들은 크게 놀라 급하게 전쟁 준비에 빠져들었다.
하벤 제국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일어난 국가라서 전쟁 수행 능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적대 세력이었던 명문 길드들의 잔당들과 싸웠지만 지금은 세력권 내의 일반 유저들이 통째로 반란군이 된 것이다.
이기더라도 피해가 크고, 지면 모든게 폐허로 변해버리는 싸움이었다.
- 작센 평야 반란군 5만 이상 출몰!
- 아베리안 숲. 반란군에 의해 장악.
- 가덴 성에서의 전투! 반란군 2차 점령 시도 실패, 3차 진행 중.
- 브리튼 연합 지역. 한꺼번에 등장한 반란군에 의해 도시 폐쇄!
헤르메스 길드는 물론이고, 로열 로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계하는 방송국에서도 따라가지 못할 사태였다.
"저는 헤르메스 길드를 향해 검을 뽑았습니다. 함께 하실 분 없습니까!"
어느 도시의 광장에서나 검을 든 유저가 외치면 수백, 수천 명이 선뜻 동참했다.
헤르메스 길드 수뇌부에서는 긴급 명령을 발동했다.
- 반란 초기 진화에는 실패.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모든 제국군에게 무제한의 무력행사를 허가한다. 반란 지역의 탈환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초토화 작전도 승인할 것임.
중앙 대륙이라는 넓은 땅, 많은 인구를 통치해야 하는 라페이는 빠르게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일반 유저들에게 힘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반란은 더욱 커질 수 있었기에 과감하고 무차별적인 전쟁 명령을 내렸다.
"헤르메스 길드의 힘을 보여준다."
"전쟁 개시!"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 병력들이 일제히 출동, 사방에서 봉기한 유저들과 맞붙었다.
"오늘 자정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전부 제거한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와 있는데요?"
"신경 쓸 거 없어. 수뇌부에서도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으니까."
중앙 대륙에서 전쟁의 불씨가 타오르며, 반란곳은 곳곳에서 승리와 패배를 겪었다.
영주군을 제압하고 완전하게 이긴곳은 유저들이 많은 이베리안 숲 인근의 마을들과 일스 대평원 지역, 브리튼 연합의 절반 정도였다.
영토를 얻었더라도 제국군이 제대로 진용을 갖춰오면 정복하더라도 유저들로서는 버티기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하벤 제국의 일부 지역이 통치력을 상실한 것은 불과 3, 4일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 * *
풀죽신교의 중앙 대륙 비밀지부!
이곳에서는 동물 가면을 쓴 유저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토끼 가면을 쓴 유저부터 입을 열었다.
"오데인 요새의 일이 일파만파가 되어 커지고 있어요. 풀죽신교 소속인 유저들도 반란군에 가입을 했고요."
고양이 가면을 쓴 여성 유저가 말을 받았다.
"저희 쪽에서고 3곳의 도시를 얻었어요. 물론 하벤 제국의 군대가 몰려오면 버틸 순 없겠지만 말이에요."
돼지 가면의 유저는 유쾌하다는 듯이웃었다.
"꿀꿀. 헤르메스 길드가 망하는 걸 보니 좋군요. 이런 손해는 그들도 감당하기가 꽤 어려울 것이니까요."
닭 가면의 유저가 깃털을 만지며 불만을 드러냈다.
"진지한 회의인데 꿀꿀 소리 안 내고 말해도 되지 않나요?"
"흠...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꼬끼오."
"꿀꿀꿀."
중앙 대륙에도 풀죽신교의 지부들과 소속된 유저들은 폭발적으로 증가를 했다.
아르펜 왕국의 상징을 떠나서 풀죽신교는 자유와 모험, 용기, 행운, 평화, 사랑, 도전을 상징했다.
일단 좋은 개념은 다 떄려 넣은 풀죽신교!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수백만 명 정도는 우스울 만큼 많이 풀죽신교에 가입을 했지만 넓게 흩어져 있다보니 그동안은 구체적인 활동이 어려웠던 상태였다.
'좋은 사람들이 다 북부로 떠나버리면... 우리라도 고향을 지켜야해.'
'풀죽풀죽풀죽. 우리가 하벤 제국에 걸리면 척살령이 떨어지겠지.'
비밀 회동에서 각 지역의 대표들이 가면을 쓰고 모이는 것도 비밀을 지키기 위한 이유였다.
진짜 뿔이 달린 사슴 가면을 쓰고 있는 유저가 손을 들었다.
"이제부턴 우리도 제대로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계획이 있으신가요?"
탈을 쓰고 있는 각 지역 담당자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보다 본격적으로요. 우리들의 전력도 꽤 되니 추가로 풀죽 회원들을 소집해서 전면전으로 싸워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반 유저들의 도움도 받고요."
사슴 가면을 쓰고 있는 유저의 말에 각 담당자들은 마음이 설렜다.
풀죽신교의 유저들이 대규모로 일어나서 하벤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취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풀죽신교 중앙 대륙 지부에서 원하는 궁극적인 결과였다.
"안 됩니다."
고양이 가면을 쓴 유저가 대번에 반대했다.
그녀는 풀죽신교 유저들이 많은 브리튼 연합 지역의 대표였다.
"어째서요!"
"지금이 움직일 시기로 보이는데 안 된다는 이유가 뭡니까."
가면을 쓴 유저들이 불쾌한 듯이 물었다.
고양이 가면의 유저는 브리튼 지역 출신으로서 그곳의 명사!
그녀가 직접 브리튼 지역에서 반란을 이끌기도 했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우리 풀죽신교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단체에요. 우리가 나서서 중앙 대륙을 해방한다? 북부의 침략으로 뜻이 왜곡될 여지가 충분하죠."
"흐음."
유저들의 머릿속에는 위험한 예상들이 떠올랐다.
지금의 반란은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하벤 제국의 폭정에 반발하며 일어났다.
그런데 풀죽신교에서 나섰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만 한다면 좋은 이용거리가 되리라.
- 아르펜 왕국의 풀죽신교에서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
- 풀죽신교는 하벤 제국을 흔들어놓고, 중앙 대륙의 유저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
헤르메스 길드의 두뇌 역할을 하는 라페이!
그에게는 얼마든지 실행이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헤르메스 길드를 얕볼 수는 없어요. 이곳에 있는 분들은 라페이의 정복 전쟁을 경험하셨지 않나요?"
고양이 가면의 말에 이십여 명의 유저들이 조용해졌다.
풀죽신교에서 중앙 대륙 각 지역의 대표들인 만큼 원래부터 고레벨 유저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옛 명문 길드에 소속 되어 활동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라페이가 지휘하는 헤르메스 길드의 병력은 그들을 상대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뒤늦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그만큼 강력한 세력이었던 건 두말할 나위 없는 이유였지만, 상대를 찢어놓고 힘을 모을 수 없도록 했다.
모든 환경이나 전략이 그들이 패배하는 쪽으로 이미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 탈 유저가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집단을 이루고 모습을 드러내면 격파하기 쉬워질 거예요. 헤르메스 길드의 중심에 속한 유저들이 침투해온다면... 우린 전멸이에요."
좌중에 있는 유저들은 충분히 공감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웠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반란군의 화력은 근본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반란군이 크게 일어나게 될지, 아니면 힘에 의해 쓰러지게 될지 지금 갈리는 시기입니다. 이 불길마저 꺼지고 중앙 대륙이 안정화가 되면 영원히 하벤 제국의 폭정에 시달려야 할 텐데요?"
중앙 대륙에 있는 풀죽신교의 대표급 유저들은 절박했다.
북부의 아르펜 왕국이 커지고는 있지만 사실 그들이 중앙 대륙을 정복 하기까지는 너무나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하리라.
유저들이 중심이 된 아르펜 왕국이 고향을 떠나서 일제히 중앙 대륙을 침공하려고 할지도 미지수였고.
고양이 탈 유저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은 아직 전력이 모자라요. 그러니 가장 큰 자산을 믿고 기다릴수밖에요."
"그게 뭡니까?"
"순수한 마음이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고, 불합리한 것을 고치고 싶은 마음. 우리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깨달은 가장 고귀한 자산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