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윤
인터넷 게시판에는 방송 영상을 분석한 자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서윤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 헤르메스 길드가 마지막 선을 넘었습니다.
- 위드님이 죽으면 그럴 수 있죠. 근데 그분은... 그녀만큼은 다쳐서도 안 됐습니다.
- 풀죽신교에서 이 선전포고, 정식으로 받아들입니다!
- 방송보고 열 받아서 미치는 줄 알았음. 방송국 테러하러 가실 분 모집합니다.
- 다들 닥치고, 접속이나 하자. 지금 떠들 시간이나 있냐?
로열 로드의 접속률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번화가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길가에 택시들조차 드물게 보였다.
오래전에 시청률 60%대의 국민 드라마가 방송될 때처럼 거리가 한산해졌다.
반면에 바빠진 것은 도심 곳곳에 자리를 잡은 캡슐방이었다.
"아저씨. 방 있어요?"
"없습니다."
"기다리면 나와요?"
"최소 8시간은 넘게 기다리셔야 됩니다. 아예 20시간씩 끊어놓고 들어간 사람이 많아서 그도 장담 못해요."
대도시의 캡슐방이 미어터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에서의 서윤의 인기야 당연했지만, 중국과 일본,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도 사람들이 로열 로드에 접속했다.
달빛 조각사 49권
1. 진군 시작
조각 생명체 와이번 와삼이!
위드는 날개가 찢어진 채로 쓰러져 있는 와삼이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어디 가서 몸조심하라니까. 함부로 다쳐선 안 돼. 넌 정말 훌륭한 이동용 노예니까."
- 끄욱꾸우우
조각소환술로 불러온 와삼이의 생명력은 20% 정도가 남아 있었다.
위드의 조각품에 생명 부여 스킬로 최초로 만든 와이번 중의 하나라서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성장했다.
중형 생명체로서 생명력이 무려 50만을 넘었지만 그럼에도 심하게 다쳤다.
위드의 옆에는 데스 나이트와 유령, 스켈레톤 군단이 정확히 열을 맞추고 도열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네크로맨서로서 언데드들을 이끌고 사냥을 하던 와중이었다.
"근데 어디서 이렇게 다쳐서 온 거야?"
위드는 말을 하면서 미심쩍은 분위기를 느꼈다.
황사, 미세먼지, 음식 냄새를 감지하는 공기청정기를 능가하는 눈치!
"와삼이. 너 정도를 다치게 할 정도의 적은 많지 않을 텐데. 하늘을 날 수 있고 소심해서 위험하면 금방 도망을 치잖아."
와이번들은 불사의 군단과 전투를 펼칠 때 이외에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적이 없다.
심지어 위드가 끌고 다니며 전투를 벌이는 외에는 크게 다치지도 않는 편이었다.
"서윤이 소환하라고 했고, 널 데려오면서 상당히 많은 마나가 소모되었다. 제법 먼 곳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착착 맞추어지는 퍼즐.
와삼이는 쓰러져 있는 상태로 몸을 뒤척여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중앙 대륙 지역? 북쪽 끝은 아닐 텐데. 몸에 얼음 흔적도 없고."
- 아파서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인.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마도 죄를 지었다는 거겠지. 자세도 딱 배째라는 거잖아."
-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나.
"범인들이 항상 말하더라고. 기억이 안 난다면 유죄야. 그러면 설마..."
위드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위드가 묵직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지금 서윤이... 위험하냐?"
* * *
유린은 로데른 강가에서 그림을 그리던 도중에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여신님을 죽였대."
"진짜야?"
"응. 방송으로도 나왔어."
"아니. 아무리 막나가더라도... 암살자를 대지의 궁전으로 보냈나?"
유린은 대지의 궁전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곳에는 그녀의 오빠와 관련이 깊은 장소였으니까.
"여신님이 포르모스 성의 전투에 등장을 했다는군. 그리고 마법 공격에 의해서 죽었어."
"헤르메스 길드가..."
"진짜 그놈들을 이대로 내버려둬선 안 될 거 같아."
유린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대략의 사정을 이해했다.
'언니가... 죽었구나.'
로열 로드에서의 죽음이라서 진짜 사람의 목숨이 오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유린은 여동생으로서 위드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돈을 밝히고, 전투적인 감각이 뛰어난 정도야 위드와 어느 정도 친하면 다들 알고 있는 부분이다.
가족들만이 알고 있는 진실.
'원한은 반드시 갚지.'
당한 쪽의 기억력만큼은 사법고시를 합격할 정도이리라.
'근데 언니가 왜 죽었어?'
유린은 한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르펜 왕국의 통치를 하며 보여준 모습은 보통 현명한 것이 아니었다.
집안일 관련해서도 위드는 꼼꼼하게 영수증을 모으고 새는 돈이 없도록 관리했다.
200원 비싼 소금을 샀던 영수증은 심지어 주방 문 앞에 붙어 있을 정도!
꼼꼼하고 쪼잔하기에 손해를 보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서윤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 구입에서 사용까지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서 활용할 정도로 두뇌가 뛰어났다.
'언니가 착하기는 해. 근데 똑똑하지. 이렇게 되면 아르펜 왕국과 하벤 제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지도 몰라. 이런 결과가 벌어지리란 걸 모르고 행동했을까?'
* * *
푸홀 워터파크!
"꺄아악."
"우왁!"
페일과 그의 동료들은 폭식의 악마 델암 사냥에 성공하고 실컷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고생을 했으니 한 달은 놀아야해.'
'여기 물 진짜 맑고 좋다.'
'남자들 몸매가... 휴. 다 워리어들만 모였나? 매끈하면서 탄탄한 얇은 몸이 좋은데. 헤에.'
'수영복이 좀 더 트였으면...'
그들은 따스한 햇볕과 맑은 물을 즐겼다.
생명력을 위협하는 아찔한 놀이기구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놀기에는 수준이 좀 차이가 났다.
< 위드가 만든 물 미끄럼틀!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에게 강력 추천! 지상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사망자 973명. 그 외 부상자 다수. >
< 위드가 만든 물의 미로! 장난을 좋아하는 물의 정령 물방울들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로를 만들어서 들어온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깁니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어쨌든 무사히 출구로 탈출하세요!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실컷 물을 마시게 됩니다. 현재까지 익사자 0명. 그 외 2시간 이상 갇혀 있던 사람 다수. >
천상의 도시를 탐험을 했고, 와이번이나 유령마를 타고 사냥도 한 동료들이라 놀이기구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물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남자들이 자나갔다.
"검치 분들이네."
"음. 그러네요."
검치의 제자들이 푸홀 워터파크에 많이 모여 있었다.
꿈틀거리는 근육을 드러낸 채로 걸어 다니는데 그들에게 미녀들의 시선이 꽂혔다.
"저 숨 쉴 때마다 화내는 복근 좀 봐."
"어머. 팔뚝이..."
드디어 인기가 생긴 위드의 사형들!
푸홀 워터파크가 생기고 나서 슬슬 연애를 시작할 시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으아아악!"
그리고 그때에 풀장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물에 누가 빠졌을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뗏목 위에서 누워 있던 남자가 절규를 지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던 것은 로열 로드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수정 구슬!
"풀죽여신님이 돌아가셨다!"
남자가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푸홀 워터파크의 모든 것이 멎는 것 같은 신비한 광경이 벌어졌다.
걸어 다니던 사람들도, 물놀이를 즐기던 초보 유저들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에이. 설마..."
"잠에서 덜 깼다. 무슨 헛소리야."
"진짜야. 그분이 돌아가셨다."
"뭐야, 정말이야?"
"아니잖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남자만이 아니라, 방송을 보고 있던 다른 유저들도 서윤의 죽음을 알렸다.
귓속말이나 통신 채널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서윤의 죽음이 전달되었다.
불과 1, 2분 만에 북부 전체로 전파되는 서윤의 죽음 소식.
"이럴 수가."
물놀이를 즐기던 유저들은 망연자실했다.
"헤르메스 길드가 또?"
"어떻게... 어떻게 된 일이야?"
매일 축제가 벌어지던 즐거운 푸홀 워터파크는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뒤숭숭해졌다.
* * *
북부의 마판 상회 본점!
모라타에 있는 마판 상회로는 대량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화살 1500만발이요."
"전쟁용 장검이 항구 바르나에서 30만 자루 주문 들어왔습니다."
"대지의 궁전에서 700만 자루 납품 있는데 또?"
"예. 납품 기한을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난리입니다."
마판 상회만이 아니라 상인 가몽이나 다른 상단으로도 엄청난 물량의 주문들이 밀려들었다.
지역 상인들은 어느 정도늬 재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상점을 운영한다.
추가로 필요한 물량은 인근의 대장간에 생산 의뢰를 넣거나, 큰 상단에 요청했다.
"무기 남는 거 주세요."
"지금 재고가..."
"있는 거 뭐든 주세요."
북부 유저들은 무기점과 방어구점을 습격했다.
유저들이 줄을 서서 사가는 형편이었기에 상점에 마련해놓은 물량이 동이 나고 말았다.
마판 상회와 가몽 상회, 그 외 북부의 상단은 초보용 보급품을 대량으로 비축하고 있었다.
대장장이들은 물품을 만들면서 실력이 향상된다.
누구에게나 초보 유저인 때는 있었던 만큼 대장장이들이 판매하는 물건을 사주어야 생산량과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물론 아르펜 왕국에서는 초보들이 대량으로 늘어나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돈이 모이는 대로 사놓아도 손해는 없었다.
10실버, 20실버도 모이다보면 어마어마한 금액인 것이다.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창고에서 물량을 꺼내오기 힘들 정도로 유저들의 구매량이 늘어났다.
"사냥으로 마련합시다."
"그래요. 일단 장비를 좀 맞춰보죠."
유저들은 화살이나 무기류를 얻을 수 있는 던전이나 사냥터를 휩쓸었다.
* * *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서윤의 죽음을 거의 비슷한 순간에 파악했다.
"어째서, 왜?"
라페이와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포르모스 성에서의 전투에 왜 인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서윤이 끼어들었단 말인가.
위드와 그녀의 관계가 ㅡㄹ별하다는 사실은 로열 로드를 하는 누구나 알고 있는 바였다.
"유명한 유저가 죽어서... 사건이 크게 알려지겠네요."
"일이 그걸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아르펜 왕국과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감히 그놈들이 우릴 상대로요? 전쟁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을 텐데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죠.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군대는 반란군을 막는데 투입해야 하지 않습니까?"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아르펜 왕국에 첩자를 보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감히 하벤 제국을 쳐들어오려는 기미는 지금까지 전혀 안 보였다.
아르펜 왕국에는 막강한 군대도 없었고, 정복 전쟁을 위한 훈련도 이루어지지 못했으니까.
하벤 제국의 북쪽 국경에도 많지 않은 제국군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라페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북부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서윤이 중앙 대륙에 와서 죽었다라...'
그 의도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진행될 상황이 너무 명백했다.
'혹시 모를 아르펜 왕국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싸움을 걸어올지는 모르지만... 소규모의 소모전이 가장 귀찮겠군.'
라페이는 하벤 제국을 통치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아지는 느낌이었다.
중앙 대륙을 정복하며 기존 명문 길드의 잔재를 털어내야 했으며, 유저들의 불만도 누그러뜨렸다.
헤르메스 길드가 약화되는 것 같지만 사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대다.
중앙 대륙에서 거두는 세금을 중심으로 한 경제력에 과거처럼은 아니지만 사냥터와 퀘스트의 독점.
다른 유저들에게 사냥터를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명문 길드들이 소멸 된 이상 대규모 몬스터 사냥은 자연스럽게 헤르메스 길드가 주도했다.
일반 유저들의 불만이야 거세기는 하지만 고레벨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에 많이 협력하고 친근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쓸 만한 인재들도 헤르메스 길드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특수 스킬을 익힌 주민, 고급 기사, 병사, 마법, 이용하기에 따라 큰 효과를 가진 퀘스트.
중앙 대륙의 면적과 인구, 경제 규모가 워낙에 대단하다보니 단기간에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심을 조금만 안정시키면... 허, 조금만 유저들이 헤르메스 길드를 믿고 따르게 만들기만 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이 될 텐데.'
라페이는 맨바닥에 툭 튀어나온 돌 뿌리에 걸려서 넘어진 느낌이었다.
강자들만 모아놓았고, 로열 로드의 역사를 감안하면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
'아직은 칼을 뽑고 싶지 않다. 아르펜 왕국을 비롯하여 감정적으로는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하벤 제국을 완벽하게 만들고 나서 철저히 파괴해도 될 일. 조금의 시간만 더 있으면...'
라페이가 고심을 하는 동안에 수뇌부에 속해 있는 유저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서윤. 그녀의 인기를 감안해야 합니다. 그녀가 죽는 장면은 우리 길드에 대한 비호감을 더욱 키울 것입니다."
"방송국들은 어떻습니까. 영상을 내려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시청률이 높아서, 생방송을 진행하지 않았던 다른 메이저 방송국들도 관련 영상을 내보내고 있는 형편입니다."
"몇몇 방송국들은 속보로까지 알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다 올라왔는데 지금 하는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방송국을 이용하여 헤르메스 길드의 막강함을 과시하려고 하였는데, 하필이면 최악의 모습으로 전달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영상이 나간다고 해서 우리 길드를 상대로 한 반란군이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겁니다. 이미 나설 유저들은 대부분 나섰으니까요."
"대책을 세우기도 힘들군요. 포르모스 성의 전투는요?"
"현재로서는 여유롭게 막고 있습니다. 그곳에 배치한 수비병력은 강력하니까요."
라페이는 수뇌부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단을 내렸다.
"아르펜 왕국이나 위드의 대응을 간단히 보진 않겠습니다. 그들이 잠잠하다면 당분간은 내버려두겠지만 우리에게 도전을 해온다면 헤르메스 길드. 하벤 제국을 다시 정복 전쟁 체계로 바꿉니다."
정복 전쟁 체계.
중앙 대륙을 통일할 당시에 만들어 졌던 체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방만하게 늘어져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놀라서 눈빛이 살아났다.
거인 기사 보에몽이 웃으며 말했다.
"전쟁은 모 아니면... 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땐 그랬습니다. 제국을 건국하고 나서 내정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었고, 또 가지고 있는 이점을 유지하기만 해도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벤 제국은 로열 로드에서 대적할 수 없는 최강 세력이다.
북부의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고, 명문 길드의 잔당들이 활약하며 골치를 앓게 했지만 그럼에도 힘의 총량에 있어서 상대할 세력은 없었다.
하물며 제국 통일을 기점으로 얻은 이득을 길드의 확장에 힘을 쏟아온 지금은 더욱 분명하다.
"아르펜 왕국이 조금씩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지배를 위해서라도 중앙 대륙에 안정된 기반을 다지려고 했습니다만 시간이 부족하군요."
"그렇다면요?"
"제국의 5대 수호 비책 중의 한가지를 열겠습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그 중에서도 최고 수뇌부 유저들의 눈이 번뜩였다.
라페이가 하벤 왕국 시절부터 준비 했던 다섯 가지의 절대적인 전력!
똑똑한 토끼는 위험을 대비해 하나의 굴만 파지 않는다.
가능한 감춰두고 최후의 순간에 꺼내려고 했지만 이젠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부터...?"
"생산을 마친 전투용 골렘. 골렘만으로도 지금의 모슨 사태를 종식시키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비밀 생산기지에서 꺼내고 배치하는 데는 열흘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때까지만 웃으라고 하지요. 마지막으로 즐길 시간은 주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 * *
이현은 로열 로드의 접속을 해제하고 캡슐 밖으로 나왔다.
보글보글
주방에서는 서윤에 의해 구수한 된장찌개가 끓여지고 있었다.
"괜찮아?"
"네. 맛이 잘 우러나왔어요."
"그니까 죽은 게..."
이현은 조심스럽게 위로라도 하려고 했다.
높은 레벨을 가진 서윤이 로열 로드에서 죽음을 겪었으니 그 손해란 얼마일 것인가!
'레벨, 스킬 숙련도, 장비!'
이현은 초보 시절에도 목숨을 잃으면 마치 누군가 자신의 돈을 떼먹고 도망간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애초에 돈을 빌려준 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떼먹힌 느낌!
"이거 한 입만 먹어보세요."
"음. 아... 맛있네."
"괜찮죠? 저녁이니깐 마당에서 고기도 좀 구울 꺼예요."
"고기가..."
"삼겹살요. 불판 세팅도 해놓을 테니깐 잠시 후에 먹어요."
"그래."
이현은 서윤과 로열 로드에서 죽은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기로 했다.
'괜히 상처를 말할 필요는 없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까. 오죽하면 고기라도 먹으면서 기분 전환을 하려는 거야.'
서윤은 요리를 준비하면서 만족스러웠다.
'된장찌개 맛있게 됐네. 밑반찬들도 아침에 새로 만들어놨고.'
처음에는 함부로 간을 보기 힘들 정도로 어렵던 요리였지만 최근에는 요리 재료들의 깊은 맛이 잘 우러나왔다.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기술도 일취월장으로 나아졌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이현과 같이 먹으며 이야기라도 나누는 순간이 그녀에게는 가장 행복했다.
* * *
위드가 다시 로열 로드에 접속했을 때의 장소는 바야르 미궁이었다.
바르고 성채 뒤쪽의 산악지대에 있는 미궁으로써 열흘을 넘게 헤매도 끝이 없을 정도의 방대함을 자랑한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지역으로 이어지는 포탈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아직 발견하진 못했다.
"크흐음."
위드는 바위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있는 부근으로는 해골들이 널려있었다.
스켈레톤과 데스 나이트를 소환하여 전투를 펼쳤던 치열한 흔적!
수많은 언데드 군단을 몰고 다니면서 몬스터들과 소모전을 펼쳤다.
네크로맨서는 어중간하게 몇 마리의 몬스터들을 언데드로 둘러싸서 때려잡는 직업이 아니었다.
끝없이 불러일으키는 언데드로 소모전을 펼치면서 적을 압도하는 직업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위드는 접속하기 전에 인터넷 게시판 몇 곳의 반응을 살폈다.
방송에서도 서윤의 죽음에 대해 크게 떠들고 있었지만, 게시판이야 말로 여론의 동향을 적나라하게 잘 드러내주었다.
- 헤르메스 길드 척살!
- 전부 쓸어버립시다. 그들을 해치워야 합니다.
- 베르사 대륙의 암적인 존재들. 감히... 여신님까지 해쳐?
- 그들의 악행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A4용지로 389페이지 완성했습니다. 첨부 파일 다운요!
- 그라디안 저항군이 조직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뜻있는 유저들의 동참을 원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땅을, 자유를 되찾읍시다.
반하벤 제국의 기치를 달고 유저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위드가 하벤 제국을 정복하자고 하면 북부 유저들은 귀찮아하며 발을 뺐을 것이다.
정복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패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괜히 자신만 손해를 볼 여지가 큰 것이다.
그런데 서윤이 죽고 나니 북부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하벤 제국 원정군까지 꾸리고 있었다.
- 독버섯죽입니다. 크흐흑. 죽음이 이렇게나 슬픈 것이었나요? 이 비통함에 한 그릇의 독버섯죽을 마시고 싶지만 오늘은 참겠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 삼계죽 이하 150만여 명. 날아오를 준비 완료.
- 죽순죽. 대지의 궁전 부대. 총원 전투 준비 완료. 언제든 진군 준비 갖췄습니다.
- 강철죽입니다. 무기와 방어구 지급이 필요하신 분들은 요청하세요. 소속 대장장이들이 밤새면서 장비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재료만 가져오시면 무료로 지급합니다!
- 불죽입니다. 저희들도 장비를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전투 물자와 소모품. 끝없이 제작 중입니다.
- 돼지죽입니다. 소고기죽에 밀려서 요즘 우리들 인원이 많이 줄긴 했습니다만 용기 하나는 최고입니다. 최전선에서 용감하게 들이받겠습니다!
북부를 끈끈하게 잇는 풀죽신교.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전쟁을 요청하고 있다.
심지어 인삼죽, 도토리죽, 참깨죽, 밤죽, 벌레죽, 부대에서는 자신들끼리 뭉쳐서 하벤 제국의 국경을 향하여 진군 중이었다.
풀죽신교에서는 초보 유저들이 많았고, 북부 특유의 모험을 우대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여기진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윤이 하벤 제국, 헤르메스 길드에 의해서 죽는 모습은 그들에게 불합리한 것에 대해 싸울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 가죠.
- 가고 있습니다.
- 뒤따라갑닏.
- 어디든지요!
- 고고!
- 우린 무적의 풀죽신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함께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가까이 있다.
풀죽신교에 속해 있는 북부 유저들의 접속률은 사상 최고 수준이었고, 그들은 각자 뜻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하벤 제국을 향한 총공격도 이루어지리라.
위드나 서윤이 풀죽신교의 뜻을 정면으로 막지 않는다면 말이다.
"막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북부의 여론은 어쨌든 위드를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위드가 하벤 제국과 악연으로 엮여 있기는 해도 싸우지 말자고 연설을 한다면 그건 효과가 있을 것이다.
풀죽신교에서도 크게 실망은 하겠지만 전쟁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근데 나도 별로 그러고 싶진 않단말이지."
위드의 눈치는 빨랐다.
어딘가의 음모가 형성되거나, 누군가의 뒷담화까지도 본능적으로 알아애는 능력!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서윤이... 그냥 죽었을 리 없어.'
와삼이까지 타고 가서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서윤이 착하기는 해도 바보는 아냐.'
사막의 대제왕 퀘스트에서 보여주었던 정보 수집 능력이나 현재의 아르펜 왕국의 통치를 감안하면 대단히 똑똑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위드가 자린고비처럼 아끼고,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능력이 있다면, 서윤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일의 흐름을 빨리 이해하고, 제멋대로 발전하고 있는 아르펜 왕국의 지역들까지도 하나로 묶으며 정확한 단위들을 파악했다.
그녀가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하벤 제국으로 넘어갔던 이유.
여론의 반응을 보면서 위드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위해서. 아르펜 왕국을 위해서. 하벤 제국이 더 커나가는 것을 막겠단 거겠지.'
위드의 고민은 지금 이 순간, 서윤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 있었다.
가족처럼 느끼고 있는 그녀라서 가족의 죽음을 성공이나 출세를 위해 쓰고 싶진 않다.
'그녀를 성공이나 출세를 위해 쓰는 건 정말 최악의 일. 차라리 아르펜 왕국이 망하고 말지.'
위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계획으로 알았더라면 적극적으로 말렸으리라.
그런데 서윤은 이미 죽음을 겪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일어난 모든 상황의 변화들을 억지로 막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고민에 잠겼다.
'서윤이 나를 위해 희생했던 거야. 근데 그걸 가치 없는 일로 만들어버려도 되나?'
위드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나 서윤의 잘못은 아니었다.
일단 일이 벌어진 이상 수습은 해야 했고, 모든 책임은 하벤 제국이나 헤르메스 길드가 뒤집어쓰면 된다.
'괜찮아. 이럴 때 써야할 나쁜 놈들은 따로 있으니까. 맨날 욕먹던 애들이 또 욕을 먹으면 되고, 뒷감당을 하면 되겠지.'
* * *
하벤 제국의 북부.
아르펜 왕국과 국경을 마주한 도시 일스람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놈들이 온답니다."
"정찰병은?"
"그런 거 없는데요."
"그럼 어떻게 알았는데?"
"방송 틀어보십쇼. KMC미디어를 비롯해서 모든 채널에서 북부 유저들의 진군을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일스람의 영주성에는 도시에 속해 있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모였다.
영주 알토를 비롯하여 도시 관리직에 있는 열 두 명의 핵심 유저들.
"방송이나 틀어봐."
"예. KMC미디어를 틀겠습니다."
"거긴 왜?"
"제 취향이라서요."
"..."
영주성의 벽면에 있는 대형 수정 구슬에 불빛이 들어왔다.
충전한 마나석을 활용하거나, 마법사가 마나를 공급하여 활성화하여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 저건 도저히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네요.
- 놀랍게도 저 진군을 해오는 병력은 일부라고 합니다.
- 일부요?
꿀꺽.
수정 구슬을 보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목에 마른 침이 넘어갔다.
'최소 십만은 넘겠는데?'
'아... 머릿수. 끝장이다. 저게 우리 도시로 온다니.'
- 풀죽신교의 인원수가 천문학적이기는 하죠. 그럼 본대는 언제 옵니까?
- 풀죽신교의 선발대가 아닙니다. 저건 도토리죽의 일부 병력입니다.
- 도토리죽이라면 생소한데요.
- 예. 풀죽신교에서는 비교적 소수에 속하는 부대입니다. 벌레죽 부대는 인근의 마을과 주요 시설물들을 전부 정복하고 진군하고 있답니다.
- 벌레죽이라. 하하. 이름이 재미있네요.
- 그들을 우습게 볼 수는 없습니다. 벌레죽은 칠흑처럼 검은 갑옷과 검을 주로 씁니다.
- 복장을 통일한 것인가요?
- 예. 주기적으로 던전 사냥을 하는 밤의 지배자들입니다. 암살과 전투의 달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색다른 직업을 가진 유저도 있다면서요?
- 벌레양성꾼이 있답니다. 독충을 키워서 부하처럼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데... 자세한 정보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 어째서요?
- 벌레양성꾼을 본 유저들은 모두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일스람의 전투에서 최초로 목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업."
영주 알토는 혀를 깨물 뻔 했다.
풀죽신교를 맞이하는 것만 하더라도 전투의 승패를 떠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벌레죽이라니!'
냉정히 말해 일스람은 중앙 대륙의 중심부에서는 많이 떨어진 변방이었다.
발전도도 낮았고, 경제와 기술 발전에 투자도 적게 이루어졌다.
인구라고 해봐야 웬만한 유저들은 북부로 넘어가서 텅 비었다.
알토는 그럼에도 기쁜 듯이 히죽 웃었다.
'사람은 줄을 잘 서야해.'
헤르메스 길드에 돈으로 줄을 대서 영주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풀죽신교에서 영입을 제의했을 때는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배신이었지만 여차하면 아르펜 왕국으로 넘어가면 된다.
'하벤 제국에 남아 있어서 좋은 것도 없는데 뭘.'
마판 상회를 비롯하여 몇몇 상단에 비밀 기지와 운송로를 제공하며 뒷돈을 받아왔다.
'풀죽신교에 우리가 털릴 일은 없지. 저 재앙은 다른 영주들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주 알토는 생각을 마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다."
"예. 영주님."
"여관방을 깨끗하게 치워놓고... 영주성도 부족할 텐데. 복도에라도 이불을 깔아드립시다. 오시는 분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도시에 벌레도 좀 잡아보세요."
* * *
북부 유저들이 하르판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풀죽신교의 깃발을 단 무리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복수를 주장하며 국경을 넘었다.
전쟁 준비 따위도 없이 서윤이 죽자마자 유저들끼리 모여서 남쪽으로 침략을 한 것이다.
"전부 쓸어버리자!"
"정복이다. 정복."
순수하게 아르펜 왕국이나 모라타에서 시작한 유저들보다는, 중앙 대륙에서 넘어갔던 유저들은 포르우스 강을 넘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쫓겨나듯이 도망치던 우리가 다시 중앙 대륙의 땅을 밟다니 말이야."
"그땐 우리들뿐이었지만 이젠 많은 유저들이 함께 하고 있지."
도시 모라타가 형성되던 시기,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의 박해를 피해서 북부로 찾아왔다.
지금은 북부 유저들이 무시 못 할 정도로 늘어나며 동료들이 많아져서 든든했다.
비록 레벨이 높진 않더라도 신대륙처럼 같이 힘을 모아 개척하며 영역을 넓혔기에 믿음이 갔다.
북부, 아르펜 왕국이 커져가면서 중앙 대륙에서 도망쳤던 유저들은 희망을 품었다.
로열 로드가 즐겁고, 행복한 세계가 되리라는 크고 맑은 꿈!
현실이 각박하기에 더욱 로열 로드에 빠져든 유저들이 적지는 않으리라.
그 새로운 세계마저도 힘의 논리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는 환경에서 느꼈던 좌절감과 분노가 서윤의 죽음으로 폭발했다.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 풀죽신교의 여신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의를 느끼게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으면 곤란하지."
"음. 많은 유저들이 모이는 것이니 그런 만큼 길게 끌 수는 없겠지."
중앙 대륙 출신의 유저들은 스스로의 전투력에 자신이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에 밀려서 북부로 떠날 때에도 약한 건 아니었다.
아르펜 왕국에서는 그 설움을 잊기 위해서라도 사냥과 퀘스트에 시간을 쏟았다.
훨씬 당해져서 중앙 대륙으로 돌아오는 것이었기에 실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마을의 규모가 작고 군대가 주둔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우리들끼리 정복을 하지."
"아르펜 왕국에서 기사 작위가 있는 이들이 앞장서자고. 그래야 영토 정복이 수월하니까."
"음. 악명이 높은 사람은 아쉽더라도 뒤로 물러나. 악명을 퍼뜨리면 아르펜 왕국의 평판이 떨어지니 말이야."
띠링!
< 영토 정복! 기사 르위얄이 베칸 마을을 정복했습니다. 주민 876명은 반갑게 아르펜 왕국의 주민이 되는 것에 찬성했습니다. 앞으로 이 땅은 적국의 군대가 차지아거나, 반란을 일으켜서 떠나지 않는 한 아르펜 왕국의 소속이 됩니다. >
하벤 제국의 영주들도 수비를 포기한 작은 마을과 광산, 농장을 복속시켰다.
벌레죽이나 고레벨 유저들의 활약은 풀죽 통신망을 통해 전달되었다.
풀죽안전보장 회의. PSC.
전직 군인들이 정보를 통제하면서 풀죽신교의 각죽 부대들이 곧장 주요 도시들을 공략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풀죽, 풀죽, 풀죽!"
"힘껏 풀피리를 불어라."
"인삼죽 여러분.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엘프가 재배해서 특별히 진한 13년근 인삼죽 한 그릇씩 하세요!"
북부 유저들이 수백만 명 단위가 움직인다.
그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인원이었지만, 그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었다.
아르펜 왕국의 유저들이나, 중앙 대륙의 유저들!
로열 로드를 하거나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이 북부 유저들의 진군을 지켜보았다.
모든 방송국에서 생중계를 결정한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도시 일스람!
영주 알토는 성문을 활짝 열고 북부 유저들을 맞이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일스람에 오신 귀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성문과 영주성에는 풀죽을 그린 깃발까지 단 채로 북부 유저들을 열렬히 반겼다.
영주 알토는 음유시인들을 초대하여 악단 연주까지 해주었다.
하르판 지역에 있던 하벤 제국의 영주들은 그 광경에 기겁을 했다.
"헤르메스 길드를 배반했어?"
"저긴 위치가 어쩔 수 없는 곳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우린 어떻게 하지?"
도시 일스람을 아르펜 왕국에서 쉽게 얻은 것이야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북부 유저들의 공격이 곧바로 자신들에게 향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순간,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고심에 잠겼다.
"군대를 보내서 북부 유저들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충분한 병력을 결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라페이가 이끄는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는 당장 손을 쓰기엔 준비 기간이 모자랐다.
군 병력을 집결시키고 전투 물자를 지급하며 운송 수단을 통해 제국의 북쪽까지 진군을 해야만 한다.
검 한자루 둘러메고 걸어오는 북부 유저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하벤 제국이 침략을 당해서 영토를 빼앗긴다는 치욕은 감수할 수 없지."
"명예와 패기. 이런 가치를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영주들이 어떻게든 버텨주지 않겠습니까. 제국군이 아르펜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꽤 배치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은 신속하게 지원군을 파견하기로 하죠."
북부 유저들에 대응하기 위해 정식으로 소집령을 내려서 병력을 모았다.
하벤 제국의 군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북부 유저들은 하르판 지역에서 퍼져나갔다.
"독버섯죽이요!"
"보리죽 왔습니다."
"콩죽 지원부대 도착 완료."
"고구마죽, 돌멩이죽, 꽃게죽도 대기중입니다."
하르판 지역은 변방이기는 해도 중앙 대륙에 속해 있기에 요새와 성벽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서둘러온 북부 유저들은 공성 무기가 없어서 성벽을 넘으려다가 수십만 명이 의미 없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하벤 제국에서는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 죽은 유저들보다도 합류하는 유저들이 몇 배에 달했다.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하자! 적들은 약하기 짝이 없고 변변한 마법이나 공성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곳은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
협곡 르위얄의 요새에서 제국군을 지휘하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사기가 드높았다.
로열 로드의 특성상 마나와 마법 화살이 존재하는 이상 아무리 많은 병력이라도 막을 수 있다.
보통 공성전은 세 배의 병력으로 공격을 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수백 배의 군대도 함락시키지 못한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전투 공적의 신기록을 세우기 위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가벼움의 깃털을 쓰도록 하죠."
북부 유저들 중에 공수부대 출신의 유저가 제안했다.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템.
몸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서 높은 곳에서 땅에 떨어질 수 있게 해주는 물품이다.
전투 중에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산악지대에 있는 요새를 성벽을 뛰어넘어 점령하기에는 그만인 물건이었다.
"근데 가벼움의 깃털은 전투에 쓰기에는 안 좋지 않아요?"
어느 한 유저가 질문을 던졌다.
"맞습니다. 천천히 날아가니까 느려서 쉬운 표적이 되겠죠."
"단점이 큰데요?"
"한밤중에 사용하면 될 겁니다. 대응하기는 하겠지만 십만 명 정도가 동시에 뛰어들면 일부는 착지하겠죠. 그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성벽을 점령해봅시다."
"으음. 잘 모르겠네요. 뭐 어쨌든 그 제안이 실패하면 또 다른 걸 시도해보죠!"
십만명 정도는 일단 던져보는 스케일!
북부 유저들은 재미있겠다면서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한밤중에 낙하 작전!
하벤 제국군에서는 불화살과 마법 공격으로 대응에 나섰다.
그만큼 화력은 분산될 수밖에는 없었고, 중앙 지역이 아닌 만큼 다음날 아침에는 함락되었다.
북부 유저들의 승리였다.
* * *
북부 유저들은 5일 만에 하르판 지역의 영토 27%정도를 정복했다.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 새벽의 도시.
풀죽신교에서 전면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른바 성질 급한 선발대가 이루어낸 성과였다.
하벤 제국의 영주들은 협곡 요새 르위얄이 함락당하면서 저항할 의지를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풀죽신교와의 전쟁에서 당장은 영주들이 불리했다.
며칠이라도 뒤에 제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해서 영토를 회복하더라도 도시가 초토화되고 난 후일 테니 항복을 선택한 것이다.
"당장 내 도시와 주민들을 다 잃어 버릴 수는 없지 않겠소."
"하벤 제국에서 우릴 가만 놔두질 않을 텐데요."
"기회를 봐서... 북부 유저들이 허점을 드러내면 봉기합시다."
"그렇게 하면 여론이 안 좋을 텐데요?"
"상황을 봐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차하면 도시를 정리해서 떠날 수도 있고요."
하벤 제국의 영주들은 항복을 하고나서 일이 전개되는 방향에 따라 맞춰가기로 했다.
하벤 제국이 빠르게 영토를 회복하면 그들의 편에 서서 아르펜 왕국에 대항을 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북부 유저들이 대거 들어오고 나서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풀죽풀죽풀죽!"
"와... 이 도시에는 길드 시설이 상당히 잘 되어 있네. 상점도 크고 물량도 많아."
"중앙 대륙이잖아."
"중앙 대륙에는 처음 와 봤어. 넘치는 돈과 기술력. 화아... 그래도 아르펜 왕국이 좋지."
"이젠 여기도 아르펜 왕국이야."
북부 유저들은 활짝 열린 성문으로 들어와서 평화로운 방법으로 도시를 장악했다.
그들이 도시의 상점이나 시설물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유저들의 물갈이가 싹 이루어졌다.
기존에 활동하던 유저들의 비율이 2정도라면 신규 유입되는 북부 유저들은 100. 혹은 그 이상!
영주들은 무기점과 방어구점, 잡화점, 교역소에서 올라가는 매출을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제 매출에 84배가 넘어. 특히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판매량이... 아. 돼지죽과 닭죽 부대님들이 들어왔었지."
"그냥 몽땅 사는구나. 비싼 고급 무기들은 남겨놓긴 하지만... 이런게 아르펜 왕국 영주들이 느끼는 재미인가?"
하벤 제국의 영주들은 변방에 지역이 위치한 탓에 환경에 따른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
장거리 모험을 하는 유저들이 많이 찾아오고,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도시에서 시작하는 신규 유저가 드물었다.
신규 유저들은 하벤 제국을 비롯한 각 지역의 수도를 선택하거나, 아르펜 왕국으로 몰려들었으니 변방은 크게 소홀했던 것이다.
영주들은 도시를 발전시키려고 해도 소비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적당히 유지해나가기만 했다.
광산이 있어도 개발하기보다는 소규모로 수입을 했고, 몬스터들이 들끓으면 용별을 고용하는 퀘스트로 진압을 했다.
중앙 대륙의 수준이 높았기에 용병 고용은 쉬웠지만 그들은 정해진 돈을 받고 일을 마치면 다시 떠나버렸다.
'이건 기회다. 내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하늘이 내린 기회.'
하르판 지역의 하벤 제국 영주들은 아르펜 왕국과 접해 있었으니 그동안의 소식에 대해서도 예민했다.
아르펜 왕국의 발전도나 위협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막상 깃발을 바꿔들고 나니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풀죽신교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오늘은 광장에서 무료로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참가자분들에게는 사제들이 축복의 의식을 펼쳐드리고 있습니다."
"쿠폰 받아가세요! 레벨 제한 200이하 무기 교환 쿠폰입니다. 석착순 1000분께 드려요!"
격렬한 전쟁을 기대하고 방송국에서 파견을 나온 취재원들은 당황했다.
"뭐야, 이거."
"갑자기 왜 축제가 벌어지냐. 제대로 온 거 맞는데."
"여긴 틀렸어. 그래도 벨르덴 도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겠어. 며칠전에 그곳 영주가 자긴 하벤 제국에 뼈를 묻을 거라고 했잖아."
"몰랐습니까? 벨르덴 성문에 풀죽신교를 환영한다고 현수막이 걸렸는데요."
방송국에서는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도 했고, 방송 예고가 되어서 그대로 생중계를 결정했다.
북부 유저들의 입장과 활기를 띄는 도시들의 모습들이 방송으로 공개됐다.
하벤 제국의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저들도 북부 유저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반겼다.
- 재미나네. 이게 풀죽신교지.
- 인해전술. 정확히는 풀죽바다전술이다!
- 놀러갑시다. 재밌겠네요.
하르판의 일부 지역에서는 제국군과 북부 유저들과의 전투도 벌어졌다.
평소에 평판이 너무 안 좋아서 항복을 선택할 수 없던 영주들, 하벤 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은 전투를 결정했다.
수비병을 끝까지 긁어모아서 싸웠지만 수많은 유저들의 공격에 의해 성이 함락되었다.
그 이후의 약탈!
"영주나 헤르메스 길드의 재산은 뭐든 가져가도 됩니다."
"일반 주민들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주의해주세요."
"몽땅 털어라!"
성의 창고에 쌓여 있는 곡식과 전투 물자, 교역품들.
하벤 제국의 상납품으로 바칠 물품들까지도 북부 유저들은 닥치는 대로 노획할 수 있었다.
사실 의로움으로 뭉친 북부 유저들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실속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남들이 다 약탈을 하는데, 혼자만 안 하면 바보!
풀죽신교에서도 저항한 영주의 재산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허락했다.
서윤의 최종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그녀는 현명하게 판단했다.
'헤르메스 길드에 돌려줄 재산이 아냐. 그리고 아르펜 왕국을 위해 노력한 분들에게 나눠줘야 해.'
위드가 알았다면 단식투쟁을 해서라도 막았을 결정!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주요 도로나 중심가의 상가들까지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곳들도 북부 유저들의 방문을 받았다.
"자.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각자 세 개씩만. 그리고 본인이 쓸 수 있는 물건들만 가져가도록 합시다."
"질서를 지켜요! 품위 있게 약탈합시다."
"약탈도덕을 지켜주세요. 우리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
처음 몇 도시에는 풀죽신교답지 않게 초토화에 가까운 약탈을 했다.
심지어는 일반 유저나 주민들의 주택들까지도 약탈을 했다.
전쟁 중에 발생한 일이기는 했지만, 당사자나 점령군의 명성과 명예를 심하게 낮춘 일이었다.
- 정복 과정에서 화재와 약탈로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아르펜 왕국의 평판과 왕국 정치,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합니다. 정복 지역의 주민들이 반감을 갖습니다. 그들은 점령군을 환영했지만 극심한 피해를 입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아르펜 왕국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방송국에서도 '부차별 약탈', '혼란의 아비규환'으로 보도했을 정도였다.
인터넷에서의 평가도 일부는 이해 할 수 있는 소요 사태라고 했다.
과거 중앙 대륙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이보다 더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긴 쪽에서 약탈하며 부수기도 했고, 패배한 쪽에서 질투심에 도시를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풀죽신교의 유저들은 아직 순수했다.
- 약탈장려법.
약탈을 위한 규칙들을 만들어서 질서를 유지하도록 했다.
북부 유저들은 방송국의 영향도 있었고, 다른 이들의 시선 때문에라도 질서정연하게 하벤 제국의 재산들을 빼앗았다.
이러한 모습들이 방송으로 중계가 되면서 하르판 지역의 하벤 제국 영주들은 투지를 잃었다.
저항해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으니 적당히 눈치를 봐서 아르펜 왕국에 항복했다.
* * *
풀죽신교 비상전략상황실.
그들은 베르사 대륙의 지도가 펼쳐져 있는 방에서 전략 회의를 했다.
"하벤 제국의 군사력은 강합니다. 그걸 떠나서라도 중앙 대륙의 땅을 전부 정복하기는 무리입니다."
"그렇겠죠. 지금의 전력으로서는..."
"북부 유저들이 계속 참전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겁니다. 제국군도 전면 공격에 나설 것이고요."
"헤르메스 길드에서 무슨 꿍꿍이인지 참고 있는 것 같군요. 발전도가 낮은 지역보다는 핵심 지역의 반란군 퇴치부터 신경 쓰려는 것 같기도하고."
"적대 세력을 확실히 드러나게 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그들이 반격을 시작하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풀죽신교의 비상전략상황실에서는 가지고 있는 정보 안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고 했다.
북부 유저들의 힘, 조인족들이 파악한 대륙 지도와 정세.
몇몇 유저들 중에서는 현실에서 국방부 고위직에 속해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국의 군사계획보다도 풀죽신교의 활동에 푹 빠졌다.
"제국의 땅을 일부 점령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분간 실익은 없어요."
"동의합니다. 북부 유저들이 전쟁에 동원되며 줄어드는 생산력이나 경제력을 감안하면 이건 손해입니다."
"베르사 대륙이 조금 넓습니까. 한 지역을 빼앗기더라도 제국의 힘이 일부만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뛰어난 전략가들이 베르사 대륙의 지도를 놓고 고심했다.
아르펜 왕국의 전력을 이용하고, 하벤 제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계획들이 수립되고 토론 끝에 폐기되었다.
"골치가 아프군요. 하벤 제국이 너무 강합니다. 북부 유저들은 중앙 대륙의 중심으로 진격할수록 분산되고 약화될 것입니다."
"제국이 전략적 요충지들을 강화하고, 기동타격대를 운용한다면 영토를 지킬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 정도에서 전쟁을 그치는 것도..."
"여신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복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헤르메스 길드에 속하지 않은 모든 유저들이 우리를 희망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도 명심합시다. 우리가 포기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풀죽신교, 북부 유저들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뒤늦게 시작한 로열 로드지만 힘에 의해 굴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위드님이 했던 말. 하벤 제국을 갈가리 찢어버리겠다는 말이 또 떠오릅니다."
"으음..."
"그때 우린 너무 뜻을 좁게 해석했던 게 아닐까요?"
풀죽신교의 비상전략상황실에서는 또다시 위드가 그냥 열 받아서 내뱉은 말에 대한 심층 분석을 했다.
그 결과, 놀라운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갈가리 찢는다. 이것은 누가 들어도 무식하게 대륙을 정복하겠다는게 아니었죠."
"그렇습니다. 하나씩 찢어놓는다... 는 건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겠군요."
아르펜 왕국을 강화하고, 하벤 제국을 찢어놓기 위한 계획!
그 시작은 땅이 아니라, 바다에서 부터였다.
* * *
헤인트, 프렉탈, 보드미르.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
멀고 먼 남부 대륙까지 교역을 다녀온 그들은 치밀어 오르는 희열을 감추기 어려웠다.
"왔다. 우리의 세상이!"
"세상에... 이게 전부 우리의 전투 선단이야?"
"의심하지 말자. 우린 진정한 해적 제독이다."
사략해적!
국가에 소속되어서 적국의 상선이나 군함을 격침시키는 해적.
아르펜 왕국에서는 베키닌 출신의 3마리 미친 상어들을 해적제독의 지위에 임명했다.
하벤 제국과의 분쟁이 발생하면서 그들 밑으로는 항구 바르나와 레자드의 유저들이 밀려들어왔다.
북동쪽 해안가에는 소형, 중형 범선에서부터 모험선, 갤리선과 교역선으로 뒤덮였다.
모험을 위한 쾌속선과 전투에 부적합한 낚싯배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머릿수는 채워줬다.
"해적질 좀 하려왔슴다."
"어딜 털 겁니까. 크흐흣."
"해골 깃발 달고 왔는데요. 어때요. 해골에 썩소 티 좀 나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아저씨. 낚시하는데 노래 부르지 마세요!"
바다에서 파도가 칠 때마다 출렁거리는 배들은 십만 여 척에 달할 정도였다.
육지에 있는 북부 유저들의 규모에 비한다면 숫자가 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이 타고 다니는 대형 전투함만 하더라도 선원이 백오십 명이나 근무했다.
"저희들 좀 태워주세요!"
"이 배도 하벤 제국 가죠?"
"아저씨, 우리 리튼 지역에 데려다 줄 수 있어요?"
"로디움 쪽으로 가는 배 찾습니다. 워리어에요. 선원 일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택시를 타듯이 배에 탑승하는 일반 유저들까지!
날씨와 해류를 감안하여 밤늦게 출항을 준비했다.
배마다 보급 물자들을 두둑하게 채웠고, 교역품까지도 챙겨 넣었다.
"출항이다."
새벽.
불을 환하게 밝힌 십만 척의 선단들이 남쪽을 향하여 항해를 시작했다.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가 선두에서 이끌었으며 그 뒤로는 작은 뗏목들까지 밧줄로 엮어서 뒤를 따랐다.
까악. 까아아아악!
날갯짓이 귀찮은 조인족들은 새의 형태로 느긋하게 몸을 조며 뱃머리와 돛대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