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므렌 자유도시 해방전
하벤 제국군의 리튼 지역 정벌은 3군단의 정복자 트라키스가 맡았다.
"일주일 내로 철저히 파괴한다. 아르펜 왕국을 이 땅에서 몰아낼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역으로 침공할 것이다."
트라키스는 휘하 부대장들에게 공언했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3군단 25만의 최정예병력을 바탕으로 했다.
하벤 지역의 영주로서 인근 도시들에서 징발한 병력 10만, 수뇌부에서 배치한 제국군이 10만 명이 더 충원되었다.
총 45만의 막강한 병력!
강철 기사단도 5만이나 따로 뒤따르고 있었다.
"리튼 지역에 상륙한 북부 유저들은 약 백만 정도로 추산!"
"전체적인 레벨 수준은 100대에서 300대까지 다양합니다."
"레벨 400대 이상의 유저들은요?"
"약 5%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리튼 지역에서 활동하는 첩보원들의 보고도 속속 올라왔다.
중앙 대륙을 정복할 당시에는 헤르메스 길드에서 적극적으로 첩보원을 활용했다.
리튼 지역에 파견을 나간 첩보원들도 백 명이 넘기 때문에 어떤 정보라도 그대로 들어왔다.
"이건 그냥 밟아버리면 될 텐데..."
트라키스는 로열 로드에서 레벨로 20위권 안에 드는 랭커였다.
그럼에도 전쟁을 벌이기 전에 차분히 생각을 했다.
'전투력으로 본다면 우리의 10%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각종 변수들이 추가되겠지.'
얼마 전 북부 정벌군이 대지의 궁전을 정복해가는 광경을 방송으로 보며 승리를 확신했었다.
그러다가 대지의 궁전 붕괴와 함께 거대한 군대가 소멸하던 광경은 트라키스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극적인 순간, 말도 안 되는 대반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위드가 개입을 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북부 유저들도 계속 넘어올 것이고... 그렇다면 속전속결. 전쟁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트라키스는 시간을 끌면 전투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방송국들과 관련된 인터뷰에서는 내심을 숨기며 말했다.
"위드와 북부 유저들?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투 전에 자신감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럼요. 저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밟아주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아군의 사기나 스스로의 유명세를 위해서라도 호언장담을 했다.
CTS미디어의 현장 리포터 나예슬.
특이하게 곰 종족을 선택한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트라키스님과 전쟁의 신 위드님의 대결. 모두가 기대를 하는 게 당연한데요. 만약 일대일의 승부가 벌어진다면 하실 용의가 있으세요?"
"..."
트라키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일대일의 승부라고?'
인터뷰에서 괜찮다고 한다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위드와 한판 붙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에 신중해졌다.
자기 자신의 목숨이 오가는 것은 물론이고, 일이 잘못되면 3군단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할 수도 있었으니까.
'이건 많이 껄끄러운데...'
트라키스의 머리가 도둑질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빨리 돌아갔다.
로열 로드 최정상권 랭커였지만 위드와 싸우는 건 피하고 싶었다.
위드의 전투력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재앙을 일으키거나 종족이나 형태를 바꾸는 등으로 강해진다.
심지어 어떤 소문으로는 시간을 멈추게 만드는 능력까지 보유했다고 한다.
"이상해. 분명히 내 스킬이 적중되기 직전이었는데... 오히려 그 순간 내가 죽었어."
"단거리 순간이동 스킬? 그거랑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일반적으로 이동과 동시에 스킬 공격이 적중되진 않잖아."
"마법을 봉인해도 안 되고. 뭘 해도 그 움직임을 막을 수 없어."
직접 위드와 싸워본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발언이었다.
그들도 상당히 강한 편이었지만 위드는 닿지 않는 신기루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위드와의 싸움? 저로서도 무척 기대가 되는 군요. 그렇지만 아쉽게도 큰 전투를 앞두고 지휘관이 경솔하게 나설 수는 없습니다."
"아, 네. 그러시군요. 위드님과 싸우는 건 좀 부담스러우시겠죠."
"그게 아니라..."
"그럼 위드님이 결투를 신청하면 승낙하시겠어요?"
"..."
* * *
트라키스가 이끄는 하벤 제국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이동했다.
"더 빨리, 움직여!"
3군단은 특별히 제작된 갑옷까지 착용했다.
재앙에 대비하여 자연에 대한 저항력을 상승시켜주며, 생명력을 극도로 끌어올린 장비들!
'어느 정도라면 재앙 때문에는 거의 죽지 않는다. 바다에서처럼 피해를 극대화 시킬 요소도 없고...'
트라키스는 정찰병을 대규모로 운용하며 기습에 대비했다.
협곡이나 강, 늪지와 같은 지역은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가능한 피했다.
말과 마차를 최대한 동원하여 멀어진 거리는 이동 속도로 복구하려 애썼다.
텔레포트 게이트도 중간에 설치 되어 있었기에, 단 이틀 만에 하벤 제국의 중심부에서 리튼 지역의 경계에 도착!
"자잘한 마을들의 복구는 나중에 한다. 리튼 지역의 중심부인 셸지움으로 전속 진격한다."
북부 유저들은 옛 리튼 왕국의 수도였던 셸지움까지 정복한 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복이란 표현은 옳지 않은 것이 북부 유저들이 수십만 명이나 셸지움으로 접근했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날이 왔군."
그리고 셸지움의 터줏대감과 같은 유저가 있었다.
만돌!
그는 태어나지 못한 딸을 조각해 달라고 위드에게 부탁했던 적이있었다.
어떤 대가라도 치를 셈이었지만 의뢰비용은 1쿠퍼.
'설마 대충해주는 건 아니겠지?'
만돌은 불안해하면서도 작품의 완성을 기다렸다.
1쿠퍼짜리 조각품은 딸의 일생을 다룬 신화적인 조각품.
모라타에 예술 회관까지 건립이 되면서 만돌은 아내와 같이 아르펜 왕국에 정착했다.
풀죽신교가 진군을 시작하자 만돌은 누구보다 먼저 앞장섰다.
"갑시다. 헤르메스 길드에 복수를!"
만돌이 선두에 서자, 풀죽신교의 어린 유저들이 두려워했다.
"뭐야. 저 아저씨... 무서워."
"어, 엄청 무섭게 생겼다."
인상이 험악한 아저씨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편까지 두렵게 하는 만돌.
그가 원래 살던 고향이었던 셸지움에 도착하자, 이곳에 있던 유저들이 알아서 마중을 나왔다.
"만돌 형님!"
"드디어 오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만돌이 인상파이기는 해도 착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로열 로드를 하면서 같이 성장하거나 그의 도움을 받은 유저들이 셸지움에는 널려 있었다.
"만돌 형님 일이라면 우리가 도와야지."
"암. 게다가 아르펜 왕국이 지배 하는 건 나쁜 일도 아니잖아."
셸지움의 유저들까지 집단 봉기의 조짐을 보이면서 도시를 통치하던 총독 베거스는 성문을 열고 야반도주를 선택했다.
돈과 인맥으로 자리에 오른 낙하산 인사의 최후로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길드 수뇌부에서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전쟁을 길게 끌어선 안 됩니다. 제국군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반란군을 한꺼번에 잠재워야 하고, 아르펜 왕국을 제압해야 합니다."
당장은 총독부의 수도 셸지움을 무혈입성하도록 내주었다.
북부 유저들을 그곳에 가두어놓고 공격하여 전부 몰살 시킨다는 계획!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성전에서 성을 끼고 수비하는 쪽이 몰살을 당하는 건 힘의 격차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셸지움 공성전!
북부 유저들과 하벤 제국군이 맞붙는 날이 밝아왔다.
* * *
"크으... 저 많은 천막들 보소."
"제국군의 위용이잖아. 놀랍긴 하다."
셸지움의 성벽에는 북부 유저들이 서 있었다.
1만개가 넘는 제국군 천막을 보면서 예상 밖으로 긴장감은 존재 하지 않았다.
"실컷 밥이나 먹자."
"그래. 죽기 밖에는 더 하겠냐."
북부 유저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패배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풀죽신교의 선발대!
진정한 본대는 하벤 제국과의 국경에서부터 차근차근 내려오는 중이었다.
"돌이 부족합니다!"
"이 근처에 채석장으로 쓸 만 한 산이 있을까요?"
"2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강에도 돌이 많은데요."
"그럼 모조리 캐오죠!"
풀죽신교의 본대는 하벤 제국으로 이어지는 길까지 닦으며 진군을 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위드가 하벤 제국을 정벌하자고 이야기 했다면 1000만 명 정도의 원정군은 간단히 따라나섰을 것이다.
서윤의 희생을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중계를 하다 보니 북부 유저들의 절반 이상이 분노하며 남하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무리로 내려오다 보니 정확한 인원은 도저히 계산 불가능!
건축가들은 본대의 빠른 이동을 위해 아예 도로를 깔고 있어서 교통로까지 확보하는 중이었다.
"우린 죽어도 돼. 하지만 우리가 하벤 제국의 최전방 해방군이다."
"음. 맞지."
"우리 희생은 로열 로드의 역사에 남게 될 걸."
성벽에 있는 레벨 400대 후반의 유저 크로워가 동료인 젠탈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번 전투는 승산이 없다.
풀죽신교의 비상전략상황실에서는 하벤 제국과의 싸움을 분석하고 있었다.
양측의 병력 상황을 계속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선발대의 전력으로는 점령 지역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군에서 급식 재료 비리를 신고 하고 쫓겨난 소위가 의견을 냈다.
- 셸지움을 버리고 물러나는 것이 최선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에 승리를 넘겨주더라도 말입니다.
셸지움에 있는 대표적인 유저들과도 양측의 전력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셸지움을 내주자마자 3군단이 이곳으로 진군해오는 건 계획된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풀죽신교의 선발대와 만돌은 계획에 따르지 않기로 했다.
"우린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무모하다니까요."
"풀죽은 신화입니다. 풀죽풀죽풀죽!"
선발대의 핵심은 풀죽 광신도들! 그들은 중앙 대륙에 오자마자 다시 물러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만돌도 미소를 지었다.
"실컷 싸울 수 있다니 재밌습니다. 전 참여합니다."
"만돌님..."
"아무도 강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당분간 접속을 하지 않거나 셸지움에서 철수하면 됩니다. 남기로 한 사람들은 절대 원망하지 맙시다. 우리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 아닙니까."
만돌의 말을 듣고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고민했다.
레벨이 높은 그들에게 죽음은 대단히 큰 손해였다.
하지만 막상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희생양이라... 희생양이 아니죠. 하벤 제국을 상대로 싸우는 전사가 되겠습니다."
"기꺼이 싸우죠."
셸지움에 있던 고레벨 유저들은 절반 정도가 동참을 했다.
막상 죽기로 결심을 하니 후회없이 싸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 *
- 셸지움 공략이 시작되었습니다.
- 하벤 제국군이 성벽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 공성 무기. 화염차와 빙축기가 사용되었습니다.
- 원거리에서 집채만 한 불덩어리와 얼음덩어리들이 쏘아져서 성벽을 넘어 도시 건물까지 타격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 중앙 대륙 정복 전쟁이 벌어진이후에는 봉인되었던 무기죠.
- 화염차 공격이 날아들 때마다 북부 유저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죽고 있습니다.
셸지움 공략을 로열 로드와 관계된 대부분의 방송국들이 중계하기 시작했다.
하벤 제국과 아르펜 왕국!
위드도 참여할지 모르는 전투였기에 방송국들은 빠질 수 없었고 시청자들의 관심도 대단히 높았다.
위드는 한숨을 쉬었다.
'셸지움은 포기하는 편이 나은데...'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이 일반 평지에서 하벤 제국군을 휩쓸어버릴 정도는 아니다.
양측의 전력차가 커서 조각 부활술이나, 생명 부여까지 잔뜩 쓴다면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그러자면 전투 한 번에 레벨이 20개는 떨어질 게 아닌가.
아무리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감당이 불가능한 상황!
셸지움에서 선봉대는 위드가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전멸하고 말 것이다.
'셸지움의 유저들과 북부 유저들이 다 죽으면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회식이라도 하겠구나.'
방송을 통해서도 북부 유저들이나 아르펜 왕국의 패배로 포장이 될 것이다.
위드는 셸지움을 넘겨주는 대가로 다른 걸 얻길 원했다.
'못 먹는 감은 발로 걷어차 주지.'
이미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 몇 명, 중앙 대륙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흑사자 길드의 칼리스, 로암 길드의 로암은 귓속말을 받자마자 전력을 데리고 왔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브리튼 연합 지역!
무역과 상업의 중심이 된 자유도시, 베르사 대륙의 경제권을 3할정도나 가지고 있는 요충지였다.
위드는 지하 하수구, 레벨 35이하의 초보자들이나 찾아가는 던전에서 천 명의 고레벨 유저들과 만났다.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하수구 던전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우린 소므렌 자유도시를 먹습니다."
"으음."
로암과 칼리스는 조용히 듣기만했다.
머릿속은 복잡하겠지만 어쨌거나 소므렌 자유도시라면 거대한 먹이다.
'고작 천 명으로... 소므렌 자유도시를?'
'그곳의 군대가 몇 명이더라?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4만은 족히 넘겠지.'
중앙 대륙에서도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그 둘이 얌전히 있으니 다른 유저들은 질문도 던지지 못했다.
궁금한 것들이야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위드가 직접 추진하는 일이었다.
'뭔가 계획이 있을 거야.'
'우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카드들을 잔뜩 준비해놓았을 거야. 불패의 싱화를 기록한 주인공이잖아.'
'셸지움까지 포기하고 도모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일이기에... 이런 전투에 포함된 게 영광스럽다. 여자친구, 부모님들에게 자랑해야지.'
천 명 정도는 헤르메스 길드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소수였고, 전력상으로도 부족했다.
페일과 파이톤, 로뮤나와 같은 일행도 연락을 받고 끌려와 있었다.
"일주일 정도 사냥 갈까요?"
"아, 아뇨..."
"브리튼에서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로 전투를 할 건데."
"아. 그건 하겠습니다."
눈앞이 캄캄한 순간, 제안에 혹해서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둠 속에는 양념게장도 몸을 숨기고 위드의 말을 들었다.
"1단계 계획은 소므렌 자유도시의 중앙 광장에서 시작합니다. 유동인구가 대단히 많은 곳이죠."
"으음."
자리에 모인 유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이 500대를 넘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최정예들만이 모였다.
위드의 인맥이나 풀죽신교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 유저들.
하벤 제국이 중앙 대륙을 통일하기 전에 소므렌 자유도시를 방문하기도 한 경험이 있어서 얼마나 번화한 지역인지를 안다.
브리튼 연합 지역이야말로 중앙 대륙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2단계, 3단계 계획은 보안 때문에 적절한 시기가 되면 공개하겠습니다."
"음."
위드의 의견은 어떠한 반론도 없이 통과되었다.
* * *
파바밧!
소므렌 자유도시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서 도착한 유저들!
"꽃 사세요. 배고프면 먹을 수도 있는 꽃이요."
"미역이 정말 쌉니다. 빵이 귀찮으신 분들은 던전에 가셔서 미역을 삶아 드세요. 건강에도 좋고 체력 회복 속도도 높여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부러진 철검 전문적으로 수리해드려요. 수리비만 받습니다!"
"조각품 팔아요! 조각술 마스터 위드가 만든 조각품과 똑같은 제품! 아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습니다. 1골드의 저렴한 가격에 모십니다."
유저들은 광장 주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좌판들을 지나쳤다.
브리튼 지역은 자유무역으로 성장했고, 관광과 산업이 발달했다.
도시의 번화함 때문에라도 여전히 초보 유저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흠. 저건..."
몇몇 유저들은 탐나는 물품들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광장에는 장사를 하고 있는 유저들이 많았고, 그들은 한결같이 수정 구슬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먼 곳에 있는 셸지움의 전투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우와... 하벤 제국군 보소. 그냥 물량을 쏟아 붓네."
"공성 무기로만 초토화를 시켜버리겠다. 저러면 나갈 수도 없잖아."
"단단히 벼르고 준비한 느낌이야. 그래도 위드라면 쉽게 지진 않겠지."
"위드와 바드레이의 전투. 그게 또 벌어지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광장의 유저들끼리 수정 구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의 식당가나 숙박업소에서도 수정 구슬을 보며 셸지움의 전투를 구경하는 유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이 순간에는 던전에 있더라도 사냥을 잠시 멈추고 방송을 시청하리라.
일반 유저들이 알기에는 아르펜 왕국과 하벤 제국이 제대로 한 판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칼쿠스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3군단을 진군시켰지만 말이다.
"슬슬 자리를 잡고 기다리죠."
"음. 그래요."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서 온 유저들은 허술한 계획대로 광장의 구석에서 기다렸다.
몇 개의 텔레포트 게이트들이 불이 번쩍일 때마다 유저들이 도착한다.
소므렌 자유도시는 대단히 번성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업에 참여한 유저들은 몇 개나 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돌고 돌아서 수상하지 않게 도착했다.
위드와 그 일행들, 몇몇 유저들은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이용하여 도착했다.
간단히 도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발전한 지역임을 알수 있었다.
무기와 방어구들은 세련되었고 성능도 뛰어났다.
교역품의 경우에도 물품들이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많았다.
상인들이라면 소므렌 자유도시에서 물건을 사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판다면 큰 수익을 거두었다.
"이 지역의 군대는 5만 3천정도입니다. 문제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좀 많은데... 소속된 유저가 4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다만 지금 부근에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지요."
페일이 정보통의 역할을 맡았다.
메이런을 통해서 방송국의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었고, 다리우스와도 연락의 끈이 닿았다.
다리우스는 어떻게든 위드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동료들에게 선물 공세를 하며 자신을 알렸다.
"추적, 관통, 사거리, 폭발. 이런 명품 화살을... 저한테 주셔도 됩니까?"
"예! 크흐흐. 좋은 물건은 주인을 알아보니까요.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이 화살을 쓰는 유저는 별로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리우스님."
페일은 로자임 왕국에서 퀘스트를 같이 한 적이 있었지만,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처음에는 다리우스를 못 알아봤다.
"근데 제가 별 권한은 없어서요."
"위드님과 가장 친한 동료이지 않습니까. 하핫."
"친한 건 맞지만 동료이기보단 노예..."
"그게 그거죠."
선물을 뇌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부담 없이 받았다.
'영주 자리를 원한다고? 휴우... 이건 뭐 내가 뭐라고 말할 건 아니네. 주는 건 그냥 받아야지.'
그런데 위드에게 다리우스에 대해 보고하다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 분이었군요."
"예. 그 싸가지였던 거 같습니다."
그들과 다리우스와 인연이 극단적으로 엇갈리진 않았다.
천공의 섬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검치와 수련생들이었다.
"다리우스님을 영주로 받아들이면 그분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뒤끝이 긴 분들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한두 달 몸이 좀 고생하면 괜찮을겁니다. 최선은 안 마주치는 것이지만 우리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죠."
"..."
페일은 다리우스를 오히려 더 불쌍하게 여길 정도였다.
'헤르메스 길드를 떠나고 위드님한테 이용을 당하겠구나. 어느 쪽이 좋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그 이후로 다리우스와도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헤르메스 길드의 내부 사정이나 병력 배치도등을 받았다.
조금씩 바뀌더라도 기본적으로 주둔하는 병력에 대한 정보는 크게 틀리진 않을 테니까.
"군대가 5만 3천.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절반 정도만 근처에 있다고 해도 2천. 운이 나쁘면 3천 정도군요."
"예."
"그렇다면..."
광장에 흩어져 있는 유저들은 위드의 말을 기다렸다.
위드가 하는 말들은 가까이 있는 유저를 통해 단체 통신 채널로 모두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2차, 3차, 4차.
소므렌 자유도시를 공략하기 위한 완벽한 계획을 기다렸다.
"다 모였으면 영주성으로 진격합니다."
"예?"
"뭘로요?"
황당해하는 유저들을 향해 위드는 배낭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자. 이걸 나눠드리죠."
그래도 0.1초 정도는 뭐라도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성 무기인가?'
'너무 작은데. 혹시 전설급의 마법 무구?'
'우리에게 엄청난 아이템을 주시는 거야?'
위드가 유저들에게 골고루 나눠준 건 천으로 짠 깃발이었다.
풀이 무성하게 피어 있는 아름다운 평원과 도시가 그려진 깃발!
풀죽신교의 공식 깃발 같은 건 없으니 북부의 도시들을 표현했다.
이 과정에는 마판으로부터 착취당한 재봉사들이 몇 명 있었다.
"이 깃발로 어쩌자고요?"
"그걸 들고 진격하는 겁니다."
"예?"
평범한 재봉 아이템이었지만 높이 드니 신기하게도 알아보는 유저들이 있었다.
"어... 저건... 풀죽신교?"
"풀죽 깃발이다."
"뭐야. 풀죽신교가 왜 여기에... 잠깐. 저건 전쟁의 신 위드님이잖아!"
광장에 모여 있던 상인들 몇 명이 큰 소리로 외친다.
페일과 로뮤나는 순간적으로 의심이 스치고 지나갔다.
'평범한 외모 탓에 자주 얼굴을 본 나도 잘 못 알아보는데. 어떻게 위드님을 바로 알아봐?'
'이상해. 풀이 그려진 깃발 몇 개를 들었는데 어떻게 풀죽신교까지 연상을 바로 하는 거야? 공식 깃발도 없는 마당에?'
상인들의 정체에 대해 따져볼 것도 없이 위드가 나타났다는 소란에 광장에는 빠르게 유저들이 모여 들었다.
장사를 하던 유저들이나 선술집에서 수정 구슬로 방송을 보던 이들이 모이고 있었다.
"우와아... 진짜 위드님이다. 셸지움에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요."
"위드님! 위드님 맞아요? 예전에 프레야 교단에서 퀘스트 받으실때에 저도 근처에 있었는데."
"위드 만세!"
"아르펜 왕국이여. 영원하라!"
소므렌 자유도시에서 위드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정!
자유도시 출신의 유저들에게는 위드야 말로 가장 닮고 싶은 영웅이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왜 이래. 정체를 발각 당하면 기습의 효과가 없는데."
위드를 믿고 따라온 유저들만 불과 몇 십초 사이에 벌어지는 변화에 멍하니 있었다.
"자. 조각품이 단돈 50골드! 재고가 많지 않으니 서두르세요. 딱 세분께만 팔겠습니다."
"..."
심지어 그가 왔다는 소식이 퍼질때까지 바가지 조각품 장사를 시작했다.
조각사 마스터로서 품위가 떨어지게 푼돈 벌이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초보 조각사 시절부터 반복으로 만들어온 여우, 토끼, 사슴과 같은 조각품들은 1시간에 200개씩 빛의 속도로 제작이 가능했다.
6분 동안 980개를 팔아치우는 위업까지 달성했다.
이 동네에는 돈이 많았고, 선물용으로 10개, 20개씩 구매를 하는 유저들이 많았던 덕분이었다.
"위드님이 오셨다.!"
"풀죽신교의 등장이다."
그 사이에도 도시에는 위드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저들은 더욱 모여들었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조각품 판대?"
"벌써 다 팔렸어!"
"으와... 조각품 꼭 사고 싶었는데."
쉬운 먹잇감이 되는 순진한 어린양들!
위드는 조각품을 다 팔아치우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왔노라. 팔았노라. 벌었노라!"
"위드! 위드! 위드!"
소므렌 자유도시의 유저들이 묘한 분위기에서 열광했다.
뭔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조각사 마스터이며 대륙 최고의 인기인인 위드가 나타나서 좋았다.
심지어 위드가 떼돈을 벌었는데 자신이 번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다.
정치인들이 괜히 거리 유세 같은 걸 하는 게 아닌 것이다.
- 위드 : 깃발을 높이 드세요.
위드는 단체 채팅 채널에서 깃발을 높이 들어달란 주문을 했다.
페일과 로뮤나를 비롯해서 파이톤까지도 깃발을 양손으로 높게 들고 흔들었다.
200개 정도의 깃발이 흔들렸고, 기본 분위기 조성은 충분히 되었다.
위드가 벼락같은 사자후를 터트렸다.
"소므렌 자유도시!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유를 되찾으러 왔습니다."
"위드! 위드! 위드!"
페일은 군중들의 반응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과거에 로자임 왕국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하자고 할 때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뭔가 홀린 듯 사기를 당하는 이런 느낌!
"여러분들을 위하여 저는 싸울 것입니다."
"위드! 위드! 위드!"
"제 이름만 부르지 마세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풀죽! 풀죽! 풀죽!"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이 공중에서 녹아버릴 듯한 열기.
위드가 등장하고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소므렌 자유도시의 광장에 있는 유저들은 마성의 분위기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잃어버린 우리의 자유를 되찾읍시다. 우리의 손으로!"
"우와아아아아!"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릴 때마다 유저들의 함성이 뒤를 따랐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면 좋습니다. 무섭다면 뒤에서 따라오기만 해도 됩니다. 저 오만한 헤르메스 길드에게 우리의 긍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위드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광장에서 무려 4만 명의 군대를 결성했다.
"영주성으로 진격!"
"가자!"
위드가 앞서고 무기를 든 유저들이 뒤따랐다.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치는 유저들,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유저들이 전부 무리에 합세했다.
직업이나 레벨에 따른 편성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람이 모이고 있었으며, 그 파괴력은 짐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마판은 이 순간의 사건을 대화 형식으로 회고록에 썼다.
- 사전 준비 과정? 딱 30분 걸렸습니다. 그냥 일당 3골드를 주면 되는 초보 유저들을 섭외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백 명 정도 되었나... 전 천 명 정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위드님이 돈이 아깝다며 줄인 거죠. 이럴 때면 제돈인데도 아껴주는 위드님이 참 좋습니다.
- 그들이 할 일요? 가르친 것이요? 없어요. 그냥 위드님이 오면 큰소리로 이름만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걸로 모든 준비는 다 됐죠.
- 군대를 따로 결성할 필요도 없고, 전투 물자를 보급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만약 소므렌 자유도시의 군대가 막아내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 뒤통수를 세게 맞았는데 어떻게 막습니까. 근데 막아도 큰 의미는 없었을 겁니다. 위드님이니까요. 더 아프게 때렸을 거니까요.
- 2차, 3차, 4차 예비계획들이 발동되지 않았겠냐고요? 그런 거는 없다니까요. 위드님의 장점은 철저한 준비성도 있지만 때때로 저지르는 파격입니다.
- 그래요. 위드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죠. 기적이란 열심히 사는 눈치 빠른 자가 만든다고요. 대충 눈치로 때려 맞추면서 대응하는데 이게 의외로 굉장하다니까요.
전투는 타이밍!
소므렌 자유도시의 영주인 크골타는 누워서 수정 구슬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이번에는 설마 이기겠지. 위드가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더라도 말이야. 크크큿."
크골타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위드의 패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베르사 대륙에서 위드와 아르펜 왕국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적수는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반란군 사태도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뇌부에서 어떻게든 무마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큰일입니다!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음... 하필이면 이럴 때에."
크골타는 상인 출신이라 크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규모는?"
"아직 집계가 안 됩니다. 1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뭐..."
크골타는 반란군의 규모가 커서 떨떠름하긴 했지만 곧 막을 수 있으리라고 봤다.
소므렌 자유도시에 쌓이는 부는 다 쓸 곳이 없을 지경이라 성벽과 방어시설의 대보수도 철저히 이루어졌다.
'대충 도시의 군대로 막아내면 전리품의 이익이 상당하겠지.'
상황이 나빠지면 길드로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곧 침실로 들어온 부관이 외쳤다.
"반란군을 이끄는 수장이 위드입니다."
"위드. 그래. 흔한 이름이지만 이 근방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전쟁의 신 위드입니다."
"허... 그런 호칭을 단 유저도 있나? 어디서 멋진 걸 달긴 했네."
"전쟁의 신 위드 모르십니까? 바드레이님과도 싸웠고, 아르펜 왕국의 국왕 말입니다."
"위드는 알지. 누가 몰라. 로열 로드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인데."
부관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그러니까 그 위드가 지금 이 도시를 쳐들어왔다고요!"
크골타는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뭐라고? 그 놈이 왜, 어째서, 어떻게?"
"저도 모릅니다."
"셸지움 공성전을 지휘해야 할 자가... 생방송으로도 나오고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서 막아야 할 게 아닙니까?"
크골타는 일찍부터 막대한 부를 일구고 소므렌 자유도시의 중심가에 상점들을 소유했다.
하벤 제국에 줄을 대서 총독의 자리에 오른 후에는 돈을 쓸고 담는 중이었지만 전쟁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위드가 쳐들어온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반란군을 이끌고 있다니까요."
"싸워야 되겠지?"
"도시를 그냥 내줄 게 아니라면 당연하죠."
소므렌 자유도시의 행정을 맡는 부관, 행정부 공무원 출신인 그는 현실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아서 승진한 케이스였다.
답답한 총독을 만나서 고생하는 전형적인 능력 있는 부하!
"누가 막지?"
"모르겠습니다. 부시리가 그나마 지금 접속해 있는 유저 중에서 가장 강합니다. 직업도 기사고요."
"부시리가 지난 번 연회에서 자랑하기를 레벨 512라고 했었나. 그가 막을 수 있을까?"
"희망적이진 않습니다. 쉽게 잡힐거면 헤르메스 길드에서 그렇게 노렸겠습니까?"
"그, 그렇지. 그래도 수비군이 막는 사이에 길드에 지원을 요청하면?"
"허겁지겁 올 겁니다. 근데 이 도시는 빼앗기고 난 후일 겁니다."
* * *
셸지움을 생중계하던 방송국들에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빨리 소므렌 자유도시로 연결해!"
"위드다. 위드가 그쪽에 등장했어!"
"말이 돼? 위드가 왜 거기에 나타난 건데?"
"광장에서 유저들을 모아서 영주성으로 진격하고 있단 소식입니다."
"당장 B팀 준비시키고, 가능하면 동시 생중계로... 빌어먹을! 셸지움도 중요한데, 소므렌 자유도시도 긴급이잖아. 어느 쪽을 방송해야 하지? 다른 방송국들의 반응은 어때!"
방송국들은 급하게 소므렌 자유도시의 생중계를 결정하고 편성했다.
KMC미디어, CTS미디어 같은 곳은 대형 방송국임에도 불구하고 셸지움을 포기하고 소므렌 자유도시로 중계를 옮겼다.
다행히 브리튼 연합 지역에는 다수의 유저들이 활동하는 만큼 취재원들이 있어서 방송은 5분도 되지 않아 준비될 수 있었다.
"셸지움 공성전은 지금 하벤 제국의 파상공격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현재 외성벽이 무너진 상태이고 제국군 보병들이 도시로 진입하고 있는데요. 오주완씨. 북부 유저들의 저항이 완강하죠?"
"네. 그렇습니다. 전투력의 차이가 크긴 합니다만 악착같이 버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잔해 속에서도 적을 상대하기 위해 숨어 있습니다."
"셸지움 공성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현재 위드님이 소므렌 자유도시에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잠시 중계 화면을 소므렌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위드의 등장을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소므렌 자유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 *
"정복하자!"
"소므렌을 다시 자유도시로!"
"우리는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
위드가 불을 붙이기는 했지만 군중들은 장작처럼 쌓여 있던 분노에 스스로 폭발하며 타올랐다.
광장을 나오자마자 10만으로 늘어난 유저들의 진군, 그러나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준 이상 도시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계속 합류했다.
영주성을 앞에 두었을 때는 13만,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에는 17만이 넘는 인원이 되었다.
위드의 등장에 광장이나 길거리에서도 속속 접속하는 유저들이 있었고, 성문에서도 사람들이 들어왔다.
"타도 헤르메스 길드!"
"우리는 풀죽신교다. 소므렌죽이다!"
위드를 따르는 유저들은 길가에서 풀이나 꽃을 머리에 꽂았다.
"공격!"
소므렌 자유도시를 다스리기 위해 하벤 제국에서 새로 지은 영주성이 타도의 목표가 되었다.
높고 단단한 성벽, 마법을 시전하는 최첨단 방어 시설!
궁수탑에서는 강력한 중형 화살이 빗발치듯이 쏘아져서 군중들을 꿰뚫었다.
"접근을 막아라. 뜨거운 기름을 준비하고, 모든 병력들이 출동한다!"
"옛!"
부시리는 지휘력이 뛰어난 기사답게 병사들을 데리고 수성에 들어갔다.
브리튼 연합 지역에서도 손에 꼽히는 큰 영주성.
하벤 제국에서 일부러 막대한 돈을 들여서 인근 지역까지 관할하도록 건축한 요새이기도 했다.
제국군이 성벽과 요충지마다 배치가 되면서 유저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마법을 집중시켜서 성문을 뚫어요!"
"궁수와 레인저 직업을 가지신분들은 앞에 나서지 마세요! 사거리가 되면 도시 건물에 올라가서 성으로 쏘세요!"
자유도시의 유저들은 지휘 체계가 갖춰지진 않았지만 저마다 할일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시의 각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다.
위드는 페일과 함께 마법사의 탑에 올랐다.
"흠... 전망이 좋군요."
"소므렌 자유도시는 확실히 번화한 곳이죠."
둘의 눈에는 아름다운 중세 시대의 도시 건축물들이 보였다.
로열 로드의 문이 열리고 나서 이 도시에 쌓인 막대한 부는 호화로운 건축물들로 바뀌었다.
프레야 교단을 비롯한 신전들이나 상점가, 길드 등이 도시에 골고루 건설되어 있다.
귀족들이나 부자들의 저택들도 만들어져서 멋진 경치를 자랑했다.
"적들을 물리쳐라!"
"총 공격이요. 물러서지 말고 장벽을 넘어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과 지역 유저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도시의 곳곳에서는 방화가 일어나서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하늘까지 솟구쳤다.
전쟁에 빠져버린 소므렌 자유도시!
페일은 곁눈질을 하며 힐끔 위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저 위드님이 왔을 뿐인데 이런 전투가 벌어지다니... 이것이 존재감인가.'
페일이 복잡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위드가 말했다.
"슬슬 시작해봐야겠군요."
"뭘요?"
"언데드죠. 대규모 전투에는 언데드가 제격 아니겠습니까?"
중앙 대륙의 뛰어난 유저들이 싸우는 전장.
수비군이나 반란군.
어느 쪽이 죽어나가든 그들의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어서 일으킬수 있다.
높은 등급의 언데드를 잔뜩 소환하고 싸우도록 지시하면 쌓이는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
심지어 도시의 유저들이 죽는 건 결국 하벤 제국의 손해이기도 했다.
이들이 반란군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아르펜 왕국에라도 온다면 바드레이나 라페이로서는 땅을 치고 한탄할 일!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셸지움이 파괴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벤 제국의 손해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하벤 제국은 북쪽에서는 아르펜 왕국을, 남쪽에서는 사막 전사들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 제국 내부에도 위험한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치고 박고 싸울 때마다 손해를 보며 전력이 깎여나가게 될 하벤 제국!
유저들을 잃고, 민심도 잃고, 영토까지 빼앗긴다.
'크... 사악하다. 이래서 마판님이 항상 자신은 위드님에 비해 부족하다고 했구나. 겸손이 아니었어.'
이것이야 말로 500원을 뽑기 기계에 넣고 통째로 가져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 *
소므렌 자유도시의 공방전!
부시리가 이끄는 수비군은 훌륭하게 잘 막아냈지만, 도시의 유저들의 집중 공격을 버티는 정도였다.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위드는 데스 나이트와 스펙터들을 소환했다.
언제드 소환이 중급 7레벨에 오르면서 대형 망치를 든 늑대 돌격 전사들도 소환이 되었다.
"싸워라. 짓밟아라. 나에게 바칠 것은 없다. 전부 없애버려라!"
조각 파괴술로 예술 스탯을 지혜로 몰아넣었다.
언데드를 끊임없이 투입하는 위드!
스켈레톤 궁수들도 수백 마리씩 소환하여 원거리 공격을 시켰다.
스켓레톤들은 대형 공성무기가 작렬하더라도 다시 뼈다귀를 맞추고 일어났다.
"클클클. 우린 죽지 않는다. 왜냐면 이미 죽었기 때문이지!"
"불멸의 전사가 부른다. 우리와 싸울 자들은 누구인가!"
약해빠진 스켈레톤이라지만 뼈화살을 끊임없이 쏘아대는 존재는 위협적이었다.
그들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성벽밖으로 수비군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스스로의 안위를 생각해서 나가지 못했다.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가자마자 목숨을 잃었다.
위드의 부하인 워리어 바하모르그!
일대일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유저는 이곳에 없었다.
전장을 떠도는 암살자 양념게장.
전사 파이톤.
그 외에 헤르메스 길드에 원한을 품은 다수의 고레벨 유저들.
도시의 유저들도 쌓인 게 많다보니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나오자마자 집중 공격을 했던 것이다.
"성 내부까지 길이 뚫렸다!"
성벽이 부서진 틈, 건물로 보이지 않는 위치에 구멍이 생겼다.
도시 유저들이 진입하게 되면서 소므렌 자유도시 공방전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영주성의 수비병력은 지치고, 줄어들고 있었지만 반란군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늘어만 갔던 것이다.
위드가 빛의 날개를 타고 다니며 하늘에서 사자후를 터트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우린 항복한 이들을 용서해야합니다!"
"...?"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는 일.
실컷 싸우고, 언제드를 소환하여 수비군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때려잡고 있던 위드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왔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몇 명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동안 베르사 대륙에서 사라졌던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초등학생도 믿지 않을 말!
어린 아이들이 휴대폰만 켜도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를 깨닫는 시대였다.
"싸워야 할 때는 싸웁시다. 하지만 만약에 저들 중에서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 하면 용서를 해줍시다. 끝없는 보복만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드의 정의!
공감하는 유저들이 많진 않았지만, 성벽이 뚫리고 영주성에 갇혀서 몰살을 기다리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에게는 고민거리였다.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그들은 마음으로 갈등을 했다.
한 번의 죽음을 피하는 가치와 헤르메스 길드를 이탈하게 되는 손해.
어느 쪽이 크냐면 당연히 헤르메스 길드를 이탈하며 생기는 손해가 더 막대하다.
그런데 막상 브리튼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에게는 달랐다.
그들은 하벤 제국이 중앙 대륙을 장악하고 나서 가입을 하게 된 유저들.
다른 명문 길드에 속해 있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서 말을 옮겨 타게 된 경우다.
'쭉 이 지역에서 활동을 하려면... 만약 위드가 이쪽 지역을 다 해방 시켜버리면 어떻게 하지?'
고향을 버리고 헤르메스 길드가 지배하는 땅으로 옮겨야 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대의 경우에는 아르펜 왕국으로 이사를 가야 할 테지만 어쨌든 당장 죽지는 않아도 된다.
게다가 지금 살아남는다면 재산을 처분해서 손해를 줄일 기회도 얻게 되지 않겠는가.
격렬한 전투 중에 위드의 말 한마디에 무기를 버리는 유저들이 나타났다.
"항복합니다!"
"저는 더 이상 안 싸울 겁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사이에서의 이탈로 방어진은 급격하게 와해되었다.
끝까지 버틴 이들이 삼분의 일 정도는 되었지만 나머지는 살아남은 대신에 헤르메스 길드를 떠나게 되었다.
* * *
정복자 트라키스!
그는 3군단의 병력을 지휘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위드와 싸워야 한다.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모르고...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나의 승리가 되겠지만."
셸지움을 내준 것부터가 전술의 일환.
하벤 제국에서 우수한 성능의 공성 무기를 잔뜩 가져와서 외곽에서부터 포격으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강철 기사단의 존재도 든든하기 짝이 없었고, 이곳이라면 북부 유저들의 인해전술도 한계가 명백했다.
'전투의 책임자로 나를 임명해준건 고마운 일이지. 오늘이 지나면 난 위드와 아르펜 왕국을 싸워서 이긴 명예를 얻을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의 쟁쟁한 다른 유저들보다도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
성벽을 무너뜨리고 도시 자체를 초토화시켜버릴 각오로 공성 무기들을 조금씩 전진시켰다.
트라키스가 잔뜩 분위기를 잡고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데, 헤르메스 길드 유저 탄멜이 말했다.
"군단장!"
"왜. 지금은 전투 지휘 중인데. 중요한 일이 아니면 한시라도 긴장을 풀어서는..."
"그게 아니고 위드가 소므렌에 나타났다는데?"
"뭐야?"
트라키스는 공성전을 진행하는 와중에 위드가 소므렌 자유도시에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곧 수정 구슬을 통해 각 방송국들의 생중계도 소므렌으로 옮겨간 것을 확인했다.
비짝 날이 서 있던 긴장이 허망하게 풀렸다.
'위드가 이곳을 버렸다. 그렇다면 여긴 북부 유저들이 좀 남아 있을 뿐인 곳.'
북뷰 유저들이라고 해봐야 인원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레벨 100이하짜리도 많았으니 그냥 싸우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길 상대에 불과했다.
'하벤 제국이 중앙 대륙 정복 전쟁을 벌일 때에 비한다면 얼마나 쉬운 싸움이란 말인가.'
트라키스는 제국군에 총공격을 명했다.
"전부 부순다. 이 전투를 오늘 밤 까지 끌고 가는 건 수치다."
공성무기가 진격하며 불과 얼음덩어리들을 토해냈다.
강철 기사단과 제국군이 동시에 전진하며 북부 유저들을 학살했다.
"풀죽 풀죽 풀죽!"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끝까지 싸워봐요!"
북부 유저들은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어갔다.
상대가 불가능한 막강한 군사력.
트라키스가 이끄는 3군단은 셸지움에 모여 있던 유저들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가끔씩 항복하는 유저들도 나왔지만 대부분은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3군단은 계획대로 밤이 되기 전에 전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도시는 초토화되었고, 모여 있던 수많은 유저들은 몰살을 당했다.
그에 비해 제국군의 피해는 2만여 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 * *
마판은 장사를 하면서 셸지움과 소므렌 자유도시의 전투를 구경했다.
"크으. 역시 위드님!"
그저 감탄 밖에는 안 나왔다.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것 역시 때리는 각도와 힘, 위치가 절묘했으며 뒤처리까지도 완벽했다.
그의 부하인 숨긴돈.
로열 로드로 끌어들인 사촌 동생이 물었다.
"근데 형. 있잖아."
"어."
"왜 위드님이 저 사람들을 살려준 거야? 형이 말해준대로라면 당연히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라고 때려잡아야 했을 텐데?"
"그건 위드님을 단순하게 본 것이지."
마판은 배를 출렁거리며 위드에게서 배운 썩소를 따라서 지었다.
"경험치와 숙련도는 한 번 오르면 다야."
"그렇지?"
"위드님은 말 한 마디로 싸움을 끝낸 영향력을 과시했고, 자비로운 모습까지도 보였지. 그건 베르사 대륙 전체에 파장을 주게 돼."
"평소와는 다른데. 그런 걸로는 좀 아깝지 않나?"
숨긴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그동안 들어온 위드의 인성이라면 양심에 따라 판단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옅고 희미한 가치를 위해 눈앞에 있는 확실한 이득을 놓쳐버리다니!
숨긴돈에게는 위드에 대한 판단을 다시 내리게 할 정도로 큰 부분이었다.
'내가 따를 사람이 아니라면 떠나야겠지.'
마판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턱살을 푸들거리며 웃음을 감추지않았다.
"저들은 위드님의 자산이 될 거다."
"응?"
"헤르메스 길드가 저들을 다시 받아주겠냐? 앞으로는 아르펜 왕국을 위해 사냥하고 퀘스트하고 전투를 하게 되겠지."
"그래도 위드님 스스로의 성장이 아까운데!"
"후후."
마판은 숨긴돈의 욕심에 흡족했다.
무릇 저 정도의 욕망은 있어야 바람직한 상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드님이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그거지."
"응?"
"얼마 남지 않은 패잔병들. 저걸 언데드로 다 쓸어버리면 분명 시기하고 질투하는 유저들이 북부유저들 사이에 생기게 될 걸."
"아..."
"공짜 밥을 얻어먹을 때 주의해야 하는 법칙이야. 마지막 한 숟가락은 눈칫밥이니 절대 먹지 않는 것이지. 그러면 또 다른 공짜 밥이 생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