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9권 : 5. 눈에는 눈 (334/520)

5. 눈에는 눈

세 개의 전선!

아르펜 왕국과 사막 전사들.

거기에 위드가 등장하면서 브리튼 연합 지역의 대도시들이 속속 해방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뒤통수를...'

전쟁을 벌이며 국경을 무시하고 전선을 확장하는 방식에 라페이는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고 말았다.

아르펜 왕국에 정복된 지역의 유저들이 이탈했다.

브리튼 지역에서의 유저들도 하벤 제국의 질서를 따르지 않게 되었고 기꺼이 반란군에 가담하는 상황이었다.

'제국의 인구나 경제력... 이런 방식으로는 어렵게 쌓아왔던 공든 탑이 그냥 다 무너지는군. 강철 기사단을 꺼내놓으면서 형성하려고 했던 주도권을 빼앗겼다.'

꼼수 한 번에 뒤집어지는 전세!

라페이는 고심에 잠긴 후에 결정을 내렸다.

"전쟁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상상 외로 교활하게 대처했군요. 이제 5대 수호 비책 중의 하나를 더 열겠습니다."

"크흠... 또 다시."

"아니, 벌써 말입니까?"

"강철 기사단은 아직 제대로 된 전투에 참여하지도 못했습니다."

수뇌부에서도 반대가 생길 정도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5대 수호 비책은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서 만들어낸 비장의 무기였다.

"강철 기사단은 훌륭한 전력입니다만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며칠간의 전황이 급변했으니... 제국은 더 강한 힘을 내놔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적을 이길 수 있는데요. 주력군이 있는 곳에는 패배가 없습니다."

"적들과 비슷한 힘을 보여줘서 제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상대가 3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우린 10이나 20을 보여줘야 합니다. 위드의 선동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는지를 감안하면 말이죠."

하벤 제국은 넓은 영토와 인구가 큰 약점이었다.

위드와 아르펜 왕국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으니, 그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을 경계했다.

'딱히 세금을 낮춘 것 외에는 다른 편의는 제국에 비해 많이 뒤질 텐데도. 이것이 건국의 저력인가.'

폐허였던 모라타가 재건되고 유저들의 힘이 모여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는 이야기.

이 짧은 역사가 주는 강력한 동기부여는 하벤 제국의 통치 방식과는 다른 차별점이었고 따라가지 못하는 경쟁력이었다.

라페이는 악순환을 끊어버리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남은 4가지의 비책 중에서 가장 위험한 한 가지는... 그 파괴력을 짐작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수단으로 아껴놓도록 하죠."

"찬성입니다."

"지금은 팔마 그림자 부대를 소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강한 카드를..."

팔마 그림자 부대!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서 가장 강성했던 마녀 집단과 암살자들이 결합하여 만든 단체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S급 난이도의 퀘스트를 발굴하던 중에 알아냈고, 그들과 거래를 했다.

병력을 키울 수 있는 비밀 묘지와 보급품을 주는 대신에 원하는 대상이나 지역을 파괴해주는 약속!

"팔마 부대에게는 인해전설이 오히려 역으로 작용하게 되죠. 북부에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렵지 않게 아르펜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것입니다."

* * *

풀죽신교의 본대가 남쪽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방송국의 취재원들은 마법 스크롤을 이용해 하늘 높이 날아서 그 광경을 담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산과 평원, 강, 호수.

그 모든 영토를 덮어버리면서 인간들의 해일이 남쪽으로 진군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는 불개미떼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북부 유저가 이렇게 많았나?"

"세상에... 이건 진짜 몇 천만은 된다."

인간들의 뒤를 따라오는 오크들도 있었다.

"취익. 새로운 번식지가 필요하다."

"어디든 가고보자. 못 살겠다. 취췻!"

어느새 부하들을 대대적으로 번식시키는데 성공한 오크 로드들.

빠르게 성장하는 레벨과 지휘력을 바탕으로 전사와 투사들을 키워냈다.

"오크 군단이 간다. 췻!"

"나도 우리 애들이 무섭다. 취이익!"

용맹한 오크들은 기꺼이 전쟁에 참전했다.

오크 로드들의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마다할 형편은 결코 아니었다.

드워프, 엘프, 바바리안, 요정족.

온갖 종족들과 직업을 가진 유저들이 남하하고 있었다.

* * *

하벤 제국군 2군단을 이끄는 제롬.

그가 맡은 임무는 북쪽으로 진격하여 하르판 지역을 복구하는 것이다.

그의 군대는 25만의 인원을 가진 2군단에, 강철 기사단 10만, 마법 병단 3만이 뒷받침되었다.

하벤 제국의 수도 부근 영주들도 무려 20만이나 되는 병력을 내놓았다.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 중에서 약 10%가 그의 휘하에 있었다.

"영주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약 127명이 아르펜으로 넘어갔습니다."

"남은 영주들에게 통보하세요. 제국군이 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르펜에 넘어간다면 그들은 척살령을 내리는 것은 물론 다시는 중앙 대륙의 땅을 밟지 못할 것입니다."

"예!"

제롬은 중앙군을 전진시키며 주변으로 몇 개의 부대를 퍼뜨렸다.

하르판 지역에 펼쳐져서 신이 난 북부 유저들을 만 명 정도의 병력이 이동하며 사냥했다.

"싸웁시다!"

"풀죽, 풀죽, 풀죽!"

북부 유저들이 버텨봤지만 제국군의 정예인 2군단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강철 기사단을 출진시킨다."

"옙!"

강철 기사단에는 속수무책으로 북부 유저들은 반격도 못하고 무너졌다.

제롬의 군대는 중앙 대륙 정복을 할 당시에도 용맹함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돌격하라. 전쟁은 용기로 하는 것이다."

수많은 유저와 병사들을 이끌어서 전투를 수행했던 군단장!

그는 사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중앙 대륙 정복 전쟁에서도 앞장서서 싸우며 기선을 제압했으며, 제롬의 군대와 싸우는 이들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패배를 두려워했다.

지금은 정예병이 쌓이고 쌓여서 무적 중에서도 무적이라고 불렸다.

하루에 12번의 전투, 북부 유저들을 수만 명씩 어렵지 않게 쓸어버리면서 하르판 지역을 장악해갔다.

"전쟁 준비를 위해 병사들을 키우기에는 정말 좋군."

제롬은 북부 유저들을 사냥하며 만족스러워했다.

2군단이 하르판 지역을 토벌하는 사이에, 팔마 그림자 부대가 하벤 제국에 등장했다.

마녀와 암살자들.

수백 년 전부터 갇혀 있었던 흉악한 번죄자들과 마수들이 풀려나서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 숫자만 십만 정도에 달하기에 금세 유저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그들이 지나간 곳은 악취가 풍겼으며, 꽃과 풀, 나무들까지 시들었다.

소문을 들은 유저들은 모여서 크기가 5미터에서 7미터에 이르는 마수들이 북쪽을 향해 걸어가는 광경을 멀리서 봤다.

레벨 470대를 넘어가는 레인저 다크포드.

그는 유저들 틈에서 장거리 관찰 스킬로 팔마 그림자 부대를 살폈다.

"에... 저것들 엄청 강합니다."

"어느 정도인데요?"

"레벨이 600에서 700정도? 마녀 몇 명은 측정이 안 됩니다. 지금 유저들의 수준으로는 상대하기가 힘들 정도네요."

"저런 놈들이 어디서... 허."

팔마 그림자 부대가 북쪽으로 진군을 해가면서 인근의 도시와 마을들에도 피해가 있었다.

벤조임, 타렉, 바하나.

세 마을이 병력을 모아서 맞서다가 다른 곳으로 유인하려고 했지만 전멸!

마을마저도 철저히 파괴가 되었고 마녀들은 그 제물들을 바쳐서 더 많은 마수들을 제조했다.

이에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인근 영주들을 대상으로 칙령을 내렸다.

- 전투 금지. 이동 경로의 모든 것들은 비워두도록 한다. 놈들이 풀죽신교의 본대와 마주치도록 내버려둬라.

방송국이 주목하고 있었기에 몇몇 입이 싼 영주들을 통해 비밀 칙령이 그대로 공개가 되었다.

- 팔마 그림자 부대!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위험한 자들을 퀘스트를 통해 불러들였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풀죽신교!

- 일부의 마수 몇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서 헤매고 있는 것을 아골타의 용감한 유저들이 습격했습니다.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마수들의 레벨도 개별적으로 500을 넘어간다는 소식입니다.

- 팔마 그림자 부대에 대해서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저들이 아르펜 왕국을 장악하게 되면 특별한 의식을 펼친다고 합니다.

- 그 의식이 무엇인가요?

- 마수의 대결계. 북부 대륙 전역을 마수들이 살기에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 그럼 아르펜 왕국의 영토는 어떻게 되는 거죠?

- 불모지가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 수는 없겠지만 마수들로 가득 찬 땅에서 생존을 위협받아야 할 겁니다.

일찍 비밀들이 알려진 것만큼은 다행이었지만 위드나 풀죽신교 유저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중앙 대륙의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인식도 대단히 나빠졌다.

로열 로드를 즐기면서 욕심을 내서 전쟁이나 지배에 열을 올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평범한 유저들은 세금이 오르거나 하면 피해를 입긴 해도 워낙에 즐겁기에 그 정도는 참아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부 대륙 전체를 마수들의 땅으로 만드는 일까지 저지르려고 하는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반감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 * *

"팔마 그림자 부대라..."

위드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마판에게 모라타의 대도서관에 있는 기록들을 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초보부터 고레벨까지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사소한 정보들까지도 기록하고 보관하는 대도서관!

마판 상회에 소속된 새끼 상인들이 무서운 악당들에 대한 조사를 해보니 팔마 그림자 부대에 대한 정보들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 베르사 대륙을 위험에 빠뜨렸던 존재들. #22

팔마 그림자 부대.

세상을 증오하는 마녀들과 암살자들이 모든 왕국들을 파괴하기 위해 뭉쳤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 조사된 것은 적지만 역사에 기록된 대단한 살상으로 존재를 알렸으며... 팔마라는 이름의 군주에게 지배를 받고 있다.

인간의 생명력과 육체를 개조하여 강인한 마수로 만들기에 각 왕국들은 강력하게 대처를 하여 그들을 봉인하는데 성공...

위드는 자료를 보는 순간 딱 견적이 나왔다.

"엠비뉴 교단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강력한 놈들이군."

지금까지 베르사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다양한 세력들을 격파하며 축적한 경험!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는 직접 대륙 평화를 위협한 적도 있어서 잘 알았다.

"마법사들은 많이 상대해봤지만 암살자라... 이건 좀 까다롭겠어."

최고의 암살자들.

어쩌면 암살자 마스터가 한 두 명 정도는 속해있으리라고 예상을 해도 좋으리라.

이런 세력이 북쪽으로 밀고 들어온다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풀죽신교가 이들과 전투를 벌인다면... 흠."

아르펜 왕국의 영토에 발을 들인다면 북부 유저들이 기꺼이 나서주긴 하리라.

풀죽신교는 약한 유저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대형 마수들을 상대로는 약한 편이었다.

"눈에는 눈.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 * *

- 팔마 그림자 부대의 정체!

- 베르사 대륙의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들의 출현!

- 헤르메스 길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공격을 저지르다.

- 위대한 모험가의 산증인 위드. 이번에도 무사히 막아낼 수 있을까.

- 풍전등화에 놓인 아르펜 왕국!

이현은 바쁜 와중에도 인터넷을 하면서 신문 기사들을 읽었다.

로열 로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보니 어디서나 관련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흠... 일단 여론은 우리 쪽에 유리하고."

이현은 서윤이 직접 갈아서 만든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는 예전에 전자상가 뒷골목에서 부품을 주워 만든 것이 아니었다.

CTS미디어를 통해서 강제로 뜯어낸 최첨단 컴퓨터!

최고 성능의 컴퓨터로 지뢰 찾기 신기록을 세우고, 인터넷 검색에도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아르펜 왕국을 아끼는 반응들이야."

댓글들을 읽어봐도 다분히 아르펜 왕국에 호의적이었다.

- 헤르메스 길드. 진짜 최악.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 아... 안 그래도 곧 휴가 쓰려고 계획했는데. 나의 푸홀 워터파크...

- 일가족 전체가 모라타에서 일주일 동안 놀 계획입니다. 여행 계획에 지장 없을까요?

- 위드님이 어떻게든 막아내야 합니다. 풀죽, 풀죽, 풀죽!

- 풀죽신교의 일인입니다. 용감한 독버섯죽에 속해 있긴 합니다만 저것들은... 제 신체를 이용해서 마수를 만든다니 영광이... 아니죠. 아우.

- 대지의 궁전에 상가 2개, 모라타에 상가 1개 가지고 있습니다. 로열 로드에 전 재산 투자했습니다. 용감한 전사님들. 어떻게든 막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르펜 왕국이 파괴될 줄 알고 가슴을 졸이는 댓글들이 대부분이었다.

팔마 그림자 부대가 북부 대륙을 장악하면 그들은 더 이상 터전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헤르메스 길드가 위협적인 수단을 사용했지만 이현은 느긋했다.

"먼저 나쁜 짓을 저질러서 욕을 먹었단 말이지."

팔마 그림자 부대!

그들의 특성에 대해서는 대도서관의 자료를 통해 미리 파악했으니 대처할 방법이 없진 않았다.

"세상에 나쁜 짓을 할 줄 몰라서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그 방법을 써도 되겠군."

그날 밤, 이현은 느긋하게 꿀잠을 잤다.

시원하게 헤르메스 길드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 * *

아골타 지역!

중앙 대륙의 북서쪽 끝으로 드넓은 초원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옅은 바다를 넘으면 북쪽 대륙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도시가 없던 이 지역으로 꽤 많은 유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암살자와 마녀, 마수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군단이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풀죽신교와의 큰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기에 이를 구경하기 위해 유저들이 나섰다.

"이런 싸움 진짜 기대되네."

"북쪽 대륙의 운명이 걸린 대결전. 이건 위드님도 나오겠지?"

"그러게. 근데 약한 초보들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할 텐데. 어떤 식으로 싸울지 모르겠다."

"뭐, 이기지 않겠냐. 엠비뉴 교단도 막아냈는데 말이야."

"그때 보통 고생을 한 게 아니잖아. 시간도 오래 걸렸고. 운이 없으면 아르펜 왕국이 멸망할지도 모르지."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나 북부의 유저들이나 팔마 그림자 부대의 이동을 멀찌감치 따라갔다.

산 하나 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몬스터 군단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닭꼬치 팝니다!"

"감자 있어요. 굽고, 삶고, 튀긴 감자 드세요!"

부유한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느긋하게 간식거리들을 사먹었다.

어느새 아골타 지역까지 북부의 상인들이 넘어와서 간식거리들을 팔고 있었지만 그 맛에 푹 빠졌다.

"이거 북부 포도주에요?"

"네, 모라타 산 포도주입니다."

"크... 그래서인지 역시 맛이 기가막히구나."

"쥐포도 있습니다. 하수구에서 뛰어노는 싱싱한 쥐를 잡아서 만든 모라타산 특산품 중의 하나죠!"

구경하던 유저들은 팔마 그림자 부대가 지나가고 나서 뒤를 따르는 대규모 군대를 발견했다.

"뭐지, 저들은?"

"장비들을 보면 북부의 군대는 아니고.."

"깃발이 보인다. 불타는 검이 그려져 있어. 제국군이다!"

하벤 제국군 5군단!

수도 아렌 성에서 출정을 하며 부여받은 임무는 팔마 그림자 부대를 따라온 것이다.

군단장 버킹이 수뇌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는 팔마 그림자 부대의 퇴치 같은 건 아니었다.

버킹은 라페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위드나 북부 유저들은 팔마 부대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겁니다."

"예. 그렇겠죠."

"팔마 부대를 따라가서 기회를 노리세요."

"5군단 전체가 말입니까?"

"맞습니다. 5군단은 뒤를 따르다가 위드를 죽이거나, 아니면 팔마 부대와 싸우는 틈을 타서 북부를 초코화시키는 것입니다."

"과연..."

버킹은 라페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크게 감탄을 했었다.

'위드는 팔마 부대를 박기도 버거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까지 나선다면... 아르펜 왕국은 철저히 짓밟히게 되겠지. 그동안의 번영은 무성한 폐허 같은 걸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상황이 좋게 돌아간다면 5군단이 개입하여 아르펜 왕국과의 아르펜 왕국과의 전쟁을 압도적으로 종결지을 수도 있다.

'좋은 포석이야. 머리 좋은 놈이라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두는군.'

* * *

위드는 와삼이를 타고 아골타 지역에 와 있었다.

"에휴. 이제 레벨 500을 넘겼는데. 여기서 손해를 봐야 하다니."

베르사 대륙에서 최상위권의 유저들이라면 레벨 500을 달성하는 것이 하나의 기준점이었다.

오랫동안 사냥터와 퀘스트를 독점해온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레벨 500대의 유저들이 제법 존재했다.

하지만 일반 유저들 중에서 500대의 유저는 불과 천여 명 정도였다.

"네크로맨서로 전직을 하고 나서 레벨을 올리기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군."

헤르메스 길드가 꺼내놓은 비장의 카드.

팔마 그림자 부대!

이들을 막고 역습까지 가하기 위해 최선의 전략을 떠올리며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너무 즐거워서!

'그동안 상상만 했었지. 너무 나쁜짓 같아서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로도 차마 먼저 저지를 수는 없었어.'

위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와삼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냐?"

- 꾸우우?

와삼이의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도대체 이 주인은 또다시 어떤 위험한 짓을 저지르려고 한단 말인가.

"너에게는 이야기를 해주지. 조각 부활술이라는 게 있어. 오래전에 살았던 이를 되살리는 거지."

고전 악당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애완동물에게 계획 털어놓기!

위드는 막상 해보니 콧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즐거웠다.

혼자만 머릿속에 구상했던 음험한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가까이 있는 이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영웅들이 베르사 대륙에 살았겠지만 말이야. 꼭 착한 사람만 살았던 건 아니야. 옛날 옛날에 어둠의 주술사. 바르칸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와삼이는 잠시 누군지 생각을 해보다가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리고는 비명을 터트렸다.

- 꾸에에에엑!

바르칸 데모프!

와이번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르칸의 제자인 샤이어가 이끄는 불사의 군단과 싸웠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언데드, 그 지배의 정점에 있던 자!

"그래. 그 바르칸을 되살릴 거다."

- 안 된다. 주인.

"돼. 그리고 어떤 이유로 하지 말라고 말해도 마찬가지야."

- 어째서인가?

"말리면 더 하고 싶거든."

팔마 그림자 부대에 맞서기 위한 위드의 계획은 바르칸의 부활!

어둠의 마나에 잠식된 바르칸 데모프는 지독하게 위험하고 다루기도 곤란한 존재다.

어쩌면 사막의 전사 헤스티거가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부른 인물을 다시 부르진 못한다.

부하였던 헤스티거와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완전한 이별!

조각 부활술의 스킬 레벨이 더 오르면 또 모르지만 여간해서는 불가능이라 보고 있었다.

'전쟁이다. 다른 사막의 대제왕 시절의 부하보다는 바르칸이 낫지.'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의 전쟁 수행 능력을 따라올 만한 존재는 없다.

한 명만 되살리는 데도 불구하고 불사의 군단이라는 종합선물세트가 패키지로 등장할 것이다.

'그 무시무시함은... 음. 비싼 값에 팔렸지.'

이미 바르칸 계획을 발동시키면서 KMC미디어와 몇몇 방송국들에 독점 중계권도 팔아먹은 후였다.

위드는 조각칼을 꺼내서 근처에 있는 바위를 대상으로 조각을 시작했다.

'인생 뭐 있어? 저지르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스스스슥!

몸의 일부가 되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조각칼에 단단한 바위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어둠의 주술사이며 불사의 군단의 지배자.

리치가 되기 직전의 마법사 바르칸을 조각했다.

"커허험."

위드는 막상 조각을 마치고 나니 심장이 떨렸다.

충성스런 헤스티거처럼 다루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입술에 침을 바른 아부로도 다루기 힘든 극도로 위험한 존재!

"만들고 바로 튀면 돼. 이게 최고의 작전이야. 조각 부활술!"

- 조각 부활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둠의 주술사이며 언데드의 군주 바르칸 데모프, 예술의 부름을 받아 이 땅에서 다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 예술 스탯 45가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신앙 스탯 10이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레벨이 3 하락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18,000씩 소모됩니다.

- 조각 부활술에 의하여 되살아나는 인물은 생전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정해진 짧은 시간이나마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조각 부활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

바르칸의 부활!

그가 움직이자마자 와삼이는 날개를 활짝 펼쳤다.

- 잘 있어라. 주인!

"같이 가자!"

위드는 조각 부활술로 바르칸 데모프를 되살려놓고 와삼이와 같이 튀었다.

마법사들은 지능이 높아서 헤스티거처럼 단순하게 다루기가 힘들었다.

설득이 실패할 경우를 생각해서 아예 내버려뒀다.

- 이제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나. 주인?

"응.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지."

- 이해하지 어려운 말이다.

"로또를 사놨으면 토요일까지 기다리란 이야기야."

위드는 와삼이를 타고 먼 하늘에서 날면서 지상을 지켜봤다.

조각상의 모습에서 천천히 생명이 부여되며 살아난 바르칸 데모프!

검은 로브 차림의 창백한 남자의 모습이었지만 그는 베르사 대륙을 혼란으로 이끌어갔던 존재다.

'자. 어떻게 될까.'

위드가 와삼이와 하늘 높이 도망치고 나서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땅이 뒤흔들렸다.

팔마 그림자 부대.

마녀와 암살자, 거대 마수들이 아르펜 왕국으로 가기 위해 바르칸이 살아난 장소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만났다.'

높은 하늘에서 지켜보니 바르칸을 발견한 팔마 그림자 부대 측에서 먼저 움직였다.

몇 마리의 대형 마수들이 무리에서 뛰쳐나와서 평원에 서 있는 바르칸을 짓밟아버리려고 질주를 해오는 것이다.

"과연. 양측 모두 원활한 대화나 설득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거지."

질주하는 대형 마수들의 접근.

되살아나고 멍하니 서 있던 바르칸이 마수들을 향해 손짓했다.

"속박하라."

땅에서부터 가시넝쿨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라나 그물처럼 마수들의 몸을 덮었다.

- 크오워어어어억!

가시넝쿨들이 겹겹이 자라나서 마수들을 옥죄어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육체 파괴. 피와 뼈를 바스러뜨린다."

바르칸이 주문을 외우니 저주 마법이 발동되었다.

괴로움에 울부짖는 마수들.

그리고 버티지 못하고 금방 죽더니 시체가 분해되며 백여 명의 스켈레톤 전사들이 되어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위드가 소환했던 스켈레톤들과는 태생적으로 뭔가 달랐다.

텅 빈 해골에서는 위협적인 검붉은 안광이 번뜩였으며, 뼈로 된 강력한 갑옷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끄륵..."

"불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켈레톤들은 바르칸을 향해 일제히 기사들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마수들과 맞 붙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수들의 힘과 덩치에 의해 스켈레톤들이 밀리긴 했지만 조직적으로 진형을 펼쳤다.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정면에서 힘을 겨루고, 궁수들은 주변을 뛰어다니며 화살을 쏜다.

전사들은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마수들의 몸을 타고 올라가서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부서진 스켈레톤들은 파괴되어도 1초도 되지 않아 몸을 복구하고 다시 싸웠다.

끝없는 생명력을 가진 언데드들의 전투.

스켈레톤들이 광란의 전투를 하며 마수들을 한 마리씩 제압했다.

땅에 쓰러진 마수들은 저주에라도 걸린 것인지 금방 시체들이 분해가 되며 40명이나 50명 정도의 스켈레톤으로 변해서 일어났다.

잠깐 사이에 수천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번식을 거쳤다.

"우리의 길을 막는 마법사가 있다."

"치워라. 죽음의 길로 안내한다."

마녀들과 암살자들도 도착하면서 전투가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벌레 폭발!"

"음습한 지저귐!"

"증오의 심화!"

마녀들이 온갖 공격 마법과 저주들을 바르칸에게 퍼부었다.

보라색 기운이 너울치듯이 밀려들어온다.

바르칸은 손짓과 주문으로 도중에 마법을 막아버리고 역으로 강력한 저주를 걸었다.

"피할수 없는 독의 숨결을 받아라."

목을 감싸 쥐며 울부짖는 마녀들.

보이지도 않는 암살자들이 빠르게 침투했지만 바르칸의 몸 주위에는 비명을 지르는 마수들로 만든 영혼의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 끼야아아악!

암살자들은 영혼의 벽에 붙잡혀서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다.

그들의 시체는 둠 나이트가 되어서 일어났다.

바르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지옥의 기사들!

보통의 둠 나이트들도 아니고 개개인이 이름을 가진 준보스급 몬스터들의 등장!

"삶과 죽음의 지배자시여. 명령을."

"다 없애라."

"알겠습니다."

둠 나이트들이 팔마 그림자 부대를 향해 쇄도했다.

그들은 달려가면서부터 바르칸으로부터 온갖 강화 마법들이 적용되었다.

태어나면서 전부 갖춘 금수저 언데드들!

위드는 둠 나이트들에게 목숨을 잃는 암살자와 마녀들로부터 붉은 기운이 빠져나와서 바르칸에게로 흡수되는 것을 봤다.

"생명력 과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 같군."

- 위험한가. 주인?

"응. 마법사가 마나를 늘리는 이유가 뭐겠어. 뭔가 한 방을 날리려는 거겠지."

위드는 진지한 얼굴로 배낭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말린 사과를 꺼내서 씹어 먹었다.

"싸움 구경에는 역시 간식이지."

- 말고기도 있으면 좀...

"먹어."

- 고맙다. 주인.

"올해 승차요금이야."

위드와 와삼이는 느긋하게 바르칸이 싸우는 걸 구경했다.

'위험한 인물이긴 하지만 나랑만 상관없으면 되지. 어쨌거나 조각 부활술의 효과는 하루면 사라지게 되니 편하기는 해. 이렇게 불러서 써먹으니 좋긴 하군.'

솔직히 헤르메스 길드가 있는 곳에 바르칸을 소환하는 것도 염두에 두었던 적이 있었다.

혼자 당할 수는 없는 법!

그런데 막강한 전력을 가진 헤르메스 길드가 신성 마법을 퍼붓거나 하면 바르칸을 사냥해버릴 수도 있어서 참았다.

위드도 검치나 사형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바르칸의 사냥에 성공을 하긴 했던 것이다.

'근데... 그때보다도 좀 강해진 거 같긴 하네.'

바르칸의 언데드 군단은 시간이 갈수록 늘아갔다.

초기에는 팔마 그림자 부대에 맞서 싸우기에는 한줌도 되지 않을 병력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언데드의 숫자와 질이 향상되어가더니 어느새 팔마 그림자 부대와 박빙을 이룬다 싶었다.

그리고 그 균형의 추는 한순간에 바르칸에게 넘어갔다.

언데드들이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헤르메스 길드가 꺼내놓았던 강력하고 위험한 카드, 팔마 그림자 부대가 사방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역시 언데드란..."

위드는 감탄하며 지켜봤다.

네크로맨서의 정석과도 같은 전투 진행!

전력의 불리함 따위는 전투가 지속되면서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바르칸이 시체들을 모아서 본 드래곤까지 소환을 하자 구경하는게 위험해져서 더욱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본 드래곤도 이렇게 쉽게 소환 할 수 있는 건가? 이건 견적이 조금 수상한데."

- 불사의 군단의 주인. 바르칸 데모프가 나타나서 팔마 그림자 부대를 막고 있습니다.

- 하늘을 보십시오. 와삼이와 위드입니다.

- 전쟁의 신 위드 출현!

- 위드가 바르칸을 불러왔습니다.

- 위드. 통쾌한 한 수로 헤르메스 길드의 음모를 막아냅니다.

팔마 그림자 부대를 지켜보던 방송국들이 생중계를하고, 가까이에서 따르던 유저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전쟁이다. 그것도 언데드들의!"

"고급 언데드들이 다 모였어."

"저건 불사의 군단이다. 해골들의 박력이 끝내주네."

물론 유저들도 바르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아주 먼 곳까지 물러났다.

바르칸의 언데드 소환 마법이 펼쳐질 때마다 수십 기의 데스 나이트나 둠 나이트들이 등장했다.

마녀, 암살자, 마수들이 아니라 땅에 오래전에 묻혀 있던 짐승의 시체들도 언데드가 되어 일어났다.

위드는 팔마 그림자 부대가 어느새 십분의 일 정도로 줄어든 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구경을 멈추고 떠나도 될 시기, 마침 말린 사과도 떨어지던 참이었다.

"이걸로 잘 됐어.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이 이 아골타 지역을 혼란에 빠뜨리겠지."

조각 부활술의 한계가 끝나자마자 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조각 부활술의 시간제한이 짧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팔마 부대를 따르던 5군단이 언데드들의 세력이 더 늘어나기 전에 서둘러 전투에 나서게 될 것이다.

"불사의 군단은 내부부터 무너뜨리거나 뒤통수를 쳐야지. 정면에서 공략해서는 여간해서 이기기 힘들지. 신성 마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아예 안 건드리는 게 최선이고."

바르칸은 역사상 최고의 네크로맨서이기에 막강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가졌다.

이윽고 팔마 그림자 부대를 이끄는 총대장 팔마까지도 바르칸의 수십 개의 저주 마법에 고통 받다가 본 드래곤들과 둠 나이트의 연합 공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신전의 기둥처럼 솟구치는 뼈의 감옥에 의해 팔마 부대는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스펙터들의 비통한 절규에 사로잡혀서 모두가 괴로워하다 사망했다.

- 팔마 그림자 부대 괴멸!

- 바르칸 데모프. 괴력을 가진 마수들의 전력을 소멸시켰습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언데드로 바꿔놓았습니다.

- 믿기지 않는 전투. 바르칸은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전투를 마쳤습니다.

- 이런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것이 네크로맨서라니... 정말 경이롭습니다. 물론 검술 마스터들끼리도 격차가 큽니다. 네크로맨서가 단순히 언데드 소환 마법을 마스터한다고 해서 이 정도의 강함이 생기진 않을 것입니다만...

"이젠 슬슬 내 일은 끝났군."

위드가 나머지 일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떠나려고 했다.

그때 지상에 있던 바르칸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안타까운 육체는... 죽음을 넘어서지 못했군."

조각 부활술로 되살린 몸.

그 제한을 바르칸은 정확히 인식한 것이다.

"영원한 불멸의 삶을 죽음으로부터 구한다. 끝이 없는 마나의 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바르칸의 육체에서 시커먼 광채가 피어나더니 하늘 높은 곳까지 솟구쳤다.

"어라."

태양이 검은 구름에 가려지면서 위드와 와삼이가 있는 하늘까지 암흑이 드리워졌다.

'빛이 잡아먹힌 듯이... 바르칸의 능력이 이 정도였던가?'

위드의 생존 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하고 있었다.

'뭔가 수상해! 바르칸이 예상보다도 강하고, 수상하다.'

지금까지 뭐든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 나면 순조롭게만 끝났던 적은 없었다.

세상살이가 쉬운 게 아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반지하 월세를 얻었더니 실은 바퀴벌레의 서식지!

1센티가 넘는 곰팡이에 벽이 무너질 걸 걱정한 적도 있었다.

경험을 통해 일이 잘 풀릴 때면 오히려 경계를 하게 되는데 그럴때의 본능은 대부분 적중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반면에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방심을 하게 되는데 이럴 때면 반드시 사고가 터졌다.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

위드와 와삼이는 어떤 상황에도 대비하기 위해 까마득히 먼 곳에서 날고 있었다.

구경을 위해 지상에 모인 유저들보다도 족히 세 배는 더 먼 안전거리.

'바르칸이 날 공격하진 않을 것 같다. 근데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바르칸의 몸에서 산처럼 끝없는 암흑이 솟구치고 있었고, 불사의 군단은 경배라도 하듯이 그를 감싸고 모여 있다.

둠 나이트들!

최정예 언데드 기사들이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기도 했다.

'확실해.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위드는 와삼이와 조금 더 멀리 이동해서 관찰을 했다.

"와삼아."

- 꾸우우우.

"심상지 않으면 바로 튀는 거다."

- 알겠다. 주인.

지상에 있던 유저들도 충분히 수상함을 느끼고는 있었다.

"뭐야. 저거."

"언데드들이 왜 저렇게 모여 있는 건데?"

"좀 위화감이..."

그저 뭔가 벌어지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재난이 일어난 것 같으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원리!

- 바르칸 데모프의 상태가 이상 한 것 같습니다.

- 전투가 끝났는데 무슨 일일까요?

- 어떤 고위급 마법 의식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고 있었다.

바르칸에게서 암흑의 기운이 넓게 퍼져갔다.

그리고...

띠링!

< 생명력을 83,329 빼앗겼습니다. >

< 생명력을 92,130 빼앗겼습니다. >

< 생명력을 122,984 빼앗겼습니다. >

가까이 있던 유저들이 생명력의 절반 가까이를 갈취 당했다.

불사의 군단, 소환된 언데드들은 일제히 생명력을 빼앗기고 모래처럼 바스라져서 사라졌다.

그 직후, 바르칸의 육체마저도 변하기 시작했다.

바르칸의 피부가 급격히 나이를 먹어서 쭈글쭈글해지더니 구정물처럼 녹아내렸다.

"어라?"

바르칸의 몸은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붉은 기운이 감돌기까지 했다.

어딘지 익숙한 광경!

구경하고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저거... 해골이면 스켈레톤인데. 좀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면 리치 아닌가?"

"리치라고?"

"어. 위드님이 변신한 적도 있었잖아."

콰콰콰콰콰콰!

바르칸을 중심으로 대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강렬한 파장의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까지 퍼져 나갔다.

< 거대한 죽음의 기운을 접했습니다. 신체 능력의 83%가 일시적으로 감소됩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이틀 동안 41%로 줄어듭니다. 굶주림! 공포! 어지러움! 네크로맨서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최저치로 낮아집니다.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아 마법이나 스킬의 성공률과 파괴력이 감소합니다. 신앙심의 효과가 저하됩니다. >

"뭐, 뭐야."

"이건 무슨..."

바르칸이 공격 마법을 쓴 건 아니었다.

그저 아골타 지역에 어마어마한 어떤 무언가가 발현 되면서 퍼지는 부수적인 효과.

띠링!

<지독한 어둠의 잔재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르칸 데모프! 그는 죽음의 경계를 부수고 아크 리치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아크 리치.

리치보다도 단계가 높은 우월한 존재였다.

보통 리치만 되더라도 상대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보스급 몬스터에 속한다.

네크로맨서 계열의 리치들이 가장 많지만, 흑마법을 익힌 리치도 어지간해서는 안 죽는다.

막강한 마력을 발휘하고, 무한대에 가까운 생명력을 보유했기에 개인이나 소수의 파티가 아니라 군대를 동원해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위드가 이치 샤이어를 제거했던 적도 있지만 그때에도 다크 엘프와 오크 종족, 성물의 도움을 만만찮게 받았다.

그런데 본래 끔찍하게 강했던 바르칸이 아크 리치가 되었다.

< 조각 부활술의 제한이 강제로 해제되었습니다. 바르칸 데모프! 그는 제한된 생명력에서 벗어났습니다. 16시간 남은 후에 사라질 예정이었던 운명이 바뀌어서 불멸의 삶을 얻었습니다. >

"..."

위드는 메시지창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했다.'

네크로맨서의 정점에 달한 존재.

베르사 대륙의 평화를 위협할 만한 역사적인 보스급 몬스터를 부르고 말았다.

'예전에 바르칸을 해치운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땐 상황이 많이 다르지.'

역사상으로 바르칸을 막기 위해 모든 교단과 종족들이 힘을 합쳤었다.

그 결과 루의 신검이 가슴에 박혀서 크게 약해졌었다.

'맞아. 루의 신검이 문제였구나! 되살린 바르칸은 온전한 상태라서 능력이 약해지진 않았으니까.'

지금은 마법력이나 육체적으로 완전할 뿐만 아니라 갓 태어나서 뼈마디가 참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싱싱했다.

'그래도 그 시절보단 유저들의 수준이 크게 올랐지. 절대 못 해치울 바는 아냐. 다만 희생이... 어마어마하겠지.'

바르칸이 북쪽으로 올라오면 그건 헤르메스 길드보다도 더한 재앙이었다.

스켈레톤들이 푸홀 워터파크에서 수영을 하고, 데스 나이트들이 모라타의 길거리들을 장악할 것이다.

팔마 그림자 부대 정도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베르사 대륙의 안전을 통째로 위협하게 되고 만 것이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내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위드의 눈동자가 선거철에 시장을 방문한 정치인처럼 번뜩였다.

* * *

바르칸!

그는 넘치는 마력으로 다시 언데드들을 소환했다.

"피를 원한다!"

"피를!"

"시체들의 밤을 열라!"

"시체를!"

언데드들이 시체들을 쌓은 탑 위에서 소리쳤다.

둠 나이트, 데스 나이트들을 비롯하여 스켈레톤들이나 유령들까지 소란을 피웠다.

본 드래곤들도 하늘을 날아다니며 강렬한 독을 사방에 뿜어내고 있었다.

불사의 군단이 재림하며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광경.

"이거 뭐야. 너무 무서워..."

"바르칸이잖아. 바르칸이 다시 되살아난 거야?"

"으어... 불사의 군단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구경하고 있던 유저들이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었다.

레벨이 꽤 되는 유저들조차도 바르칸의 눈에 띄지 않게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이렇게 죽는구나."

"배고픈데 밥 안 먹고 있어야지. 어차피 죽을 거니깐."

"내 시체면 데스 나이트 정도는 나오겠군."

"언데드가 돼서 도시를 습격하다보면 방송으로도 출현하지 않을까."

유저들은 죽기 전의 유언이라도 남겨두어야 할 상황이었다.

당장의 바르칸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도, 본 드래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상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어? 누가 온다."

"유저인가? 위험하다고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유저는 아닐 거야. 자세히 봐. 저것도 리치잖아."

구경꾼들은 땅에 엎드린 채 숨죽여 지켜만 보았다.

한 마리의 리치가 유령마를 타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본 드래곤들이 멀리서부터 이를 발견하고, 곧 바르칸의 눈에도 띄었다.

"샤이어! 나를 배신하고 겁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났구나!"

다가오는 리치를 보자마자 바르칸의 해골에서 붉은 광망이 번뜩였다.

위드에게 목숨을 잃어버린 샤이어!

샤이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조각 변신술을 펼친 위드였다.

위드는 안전거리라고 여겨지는 2킬로미터 정도나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서 사자후를 터트렸다.

"스승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다 스승님을 위해서 했던 겁니다."

"닥쳐라. 너의 영혼을 지옥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려주겠다."

샤이어는 생명의 탐구자였던 바르칸이 쌓아왔던 모든 공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를 어둠의 마나에 빠뜨려버린 자였다.

띠링!

<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 바르칸의 위험한 제자. 불사의 군단의 2인자인 리치 샤이어! 그는 스슨 바르칸 데모프를 어둠의 힘으로 물들여서 타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간교함은 바르칸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에 억지로 눈을 뜨게 했습니다.

"스승님. 죽은으로서의 삶입니다. 불사의 생명을 꿈꾸었지만 이것도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 않습니까?"

바르칸을 리치로의 삶을 받아들이게 했으며, 전 대륙과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겼습니다. 바르칸은 당신을 극도로 증오합니다. 하지만 그는 리치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하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르칸을 설득하여 용서를 받은 후 불사의 군단을 재건하여 베르사 대륙을 정복하시겠습니까?

난이도 : S

보상 : 바르칸의 이유 퀘스트로 이어지게 됨.

퀘스트 제한 : 바르칸의 부활, 리치 샤이어. >

명성이 높거나 강해질수록 타락하는 퀘스트가 자주 발생한다.

위드는 물론 언데드를 이용한 대륙 정복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르펜 왕국의 이름으로라면 모를까, 언데드들이 정복해봐야 스켈레톤들의 무덤에 월세도 받을 수 없는 것!

위드는 유령마를 탄 채로 바르칸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다시 죽음에서 돌아오다니 끈질기군요."

"가증스러운 놈. 너 역시 죽음으로도 도망치지 못한다. 이제 다시 나를 따라라. 그러면 너의 잘못도 용서해줄 것이다."

"전 스승님과는 다릅니다. 스승님은 실패했습니다. 추악한 언데드라니... 그건 덜 썩은 뼈다귀죠. 어떻게 불사의 생명입니까?"

띠링!

< 퀘스트가 거부되었습니다. >

"건방지구나! 샤이어!"

바르칸이 마법 주문을 외우려고 했다.

뭔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완성되어가는 마법에 위드는 유령마를 서둘러 남쪽으로 몰았다.

"절대 나를 잡진 못할 것입니다. 내게는 믿을 수 있는 인간 동료들이 많으니까요."

태연한 척은 했지만 있는 힘껏 전력을 다해 유령마를 몰았다.

바르칸은 불사의 군단에 명령했다.

"쫓아라. 지옥 끝까지라도."

본 드래곤들이 날개를 넓게 펼치면서 날아올랐고, 둠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들이 유령마를 몰아서 쫓아왔다.

불사의 군단이 추격전을 개시했다.

"끼엣호!"

"처절한 살육이다. 크크큿."

스켈레톤들은 높이 도약하며 달렸다.

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추격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언데드들이라서 속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바르칸도 비행 마법을 펼치면서 무시무시하게 속도가 빨랐다.

위드는 뒤를 힐끔 보고는 가슴이 서늘했다.

'가까워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잡히겠지.'

온전한 바르칸, 거기에 고위급 언데드들.

유령마보다도 두 배에 가까운 속력을 내고 있다.

불사의 군단의 위용은 사막의 대제왕 시절의 위드였다고 해도 감당하기 까다로운 전력!

언데드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으면 계속 일으킬 것이고, 수십 가지의 저주 마법에 고통 받으며 전투력을 발휘하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위드는 몸을 숙이며 유령마로 평원을 최대한 빨리 몰았다.

'자. 슬슬 나타날 때가...'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넓게 펼쳐진 5군단의 진영이 보였다.

팔마 그림자 부대응 뒤따라오다가 바르칸의 등장으로 닭 쫒던 개가 되어버린 이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로부터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에게 유령마를 타고 등장한 위드가 나타났다.

"저건 누구야?"

"리치잖아."

"네크로맨서? 우리 길드 소속인가?"

위드가 조각 변신술로 샤이어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알아보질 못했다.

그래서 먼저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길드 여러분. 좋은 하루입니다."

"아... 예. 리치시군요."

"네크로맨서인데 잠깐 사정이 있어서요."

"근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큰 의심 없이 말을 걸어왔다.

위드가 착용한 네크로맨서 장비들도 상당히 좋은 것들로 보여서 같은 헤르메스 길드의 실력자로 본 것이다.

네크로맨서들은 길드 사냥이나 대규모 레이드에도 합류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 그로비듄의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냥 우연히 지나가던 길인데요. 수고하세요"

"아. 예..."

위드는 유령마를 타고 5군단의 외곽을 돌아서 스쳐지나갔다.

"누구야. 근데?"

"리치화를 성공한 유저라면 꽤나 이름이 알려졌을 법도 한데."

"도무지 모르겠네. 비슷한 이름도 안 떠오르는데. 무슨 특별한 퀘스트 중일까."

위드에게 관심을 오래 줄 여유도 없이 언덕 너머에 바르칸과 언데드들이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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