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9권 : 6. 어둠의 주술사 (335/520)

6. 어둠의 주술사

"언데드..."

"저게 뭐야. 어마어마하게 많잖아!"

5군단의 유저들은 바르칸이 일으킨 불사의 군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데드들은 인간들을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왔다.

"크웨웰!"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을!"

"너희의 무가치한 생명은 내가 끊을 것이다!"

바르칸과 언데드들!

위드를 뒤쫓은 중에 인간들이 보이자 대화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인간들이여. 나는 지옥의 기사 울룸보다. 우리의 군대에 합류하는 것을 환영하노라!"

"파멸의 돌진을 시작하라."

둠 나이트들이 탄 유령마가 넓게 펼쳐져서 소리 없는 돌격을 개시했다.

그 뒤는 방대한 숫자의 데스 나이트와 스켈레톤 군단이 따랐는데, 팔마 그림자 군단의 대형 마수 언데드들도 대지를 울리며 달렸다.

둠 나이트 기사단장 카르슈타인이 부러진 검을 들고 소리쳤다.

"불사의 군단이여. 전군 돌격이다."

쿠우와아아아!

저주받은 보랏빛 기운이 불사의 군단을 뒤덮었다.

이것만으로도 언데드의 속도와 생명력을 갈취하는 능력이 향상됐다.

"뭐라고요? 위드가 나타났었다고요?"

군단장 버킹은 수뇌부와 연락을 주고밨던 참이었다.

팔마 그림자 부대에 대한 소식을 늦게 접한 탓에 방금 지나간 리치가 위드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이럴 수가. 그걸 놓쳤단 말인가?"

버킹은 아쉬움에 탄식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이미 돌격해오는 불사의 군단이 코앞이었다.

"피하기는 늦었다. 단단히 막아라. 방패병을 앞세우고 기사들을 우회시킨다."

보병병력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언데드의 돌진을 막아내려했다.

본드래곤을 비롯하여, 둠 나이트등의 언데드 기병들이 많기에 도망치는 건 도저히 무리라고 봤던 것이다.

"젠장. 왜 이런 놈들과..."

"길드 채널에서 저것들이 불사의 군단이라는데?"

"설마, 절대 아니겠지!"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전투에 대비했다.

"그날이 오너라. 너희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지리라. 가족에게 배반당할 것이며, 괴로움과 고통 속에 죽어 가리라. 멸망의 파괴곡."

바르칸이 뼈 지팡이를 휘저으며 흑마법을 외웠다.

그러자 스펙터들이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울려 퍼지는 신경을 거슬리는 끔찍한 소리들!

귀를 마비시킬 정도로 소리가 클 뿐만 아니라, 몸까지 무겁고 아프게 만들었다.

< 멸망의 파괴곡을 듣고 있습니다. 극도의 쇠약 상태! 신체 능력이 저하됩니다. 공격력 및 방어력 약화. 정신계 마법의 저항력이 약해지며, 모든 스탯이 22% 이상 감소합니다. 매초마다 6,492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

언데드를 이용한 흑마법의 저주 주문.

제국군 병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목숨을 잃어갔다.

"불사의 영광을 안겨주마!"

"바르칸님의 명령이다. 살아있는 자들아."

둠 나이트들은 5군단의 방패병들이 세운 장벽을 힘으로 꿰뚫었다.

거센 돌진에 부딪친 병사들이 목숨을 잃으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방패병들이 무력화되었습니다!"

"더 간격을 촘촘하게 서라! 스킬이라면 뭐든 써서 막아! 행군 중이었는데 본진으로 진입하면 엉망진창이 된단 말이야."

둠 나이트들은 제국군의  진영을 꿰뚫었다.

창병과 방패병에 의해서 막히더라도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 전진했다.

자신의 목이 자리더라도 상대의 가슴에 검을 꽂는다.

바르칸이 제공하는 무한한 생명력과 마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언데드의 숫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어, 언데드들이!"

목숨을 잃은 병사들은 언데드가 되어서 되살아났다.

둠 나이트들도 축복이나 정화가 없다면 다시 생명력을 얻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령마에 올라탔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바르칸이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쇠약한 생명을 영겁의 존재인 나에게 바쳐라. 나는 너희 모두에게 불멸의 삶을 나누어줄 것이다. 사신의 선물."

5군단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병사들의 이마에 시커먼 낫을 든 유령의 형태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 사신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생명력과 마나의 일부를 매초마다 흡수당합니다. 부상을 입었을 시에 피해량이 커집니다. 생명력이 20% 이하가 되었을 경우 높은 확률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

"으으. 이런 네크로맨서 마법을..."

"신성 마법을! 빨리 이것부터 지워줘!"

5군단에 속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경악과 전율을 금치 못했다.

보스급 몬스터들을 하루 이틀 잡아본 것도 아니었지만 바르칸의 독보적인 존재감은 겪어본 적이 없었던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광역 저주와 언데드에 대한 지배력!

바르칸에게 집중되는 생명력과 마나는 다시 나누어지며 언데드들 전체를 강화시켰다.

흑색과 보라색의 오오라를 몸에 휘감고 싸우는 언데드들은 데스 나이트라고 할지라도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둠 나이트들은 패왕처럼 제국군 진영을 무자비하게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위드가 이런 걸 잡았단 말인가?'

'말도 안돼. 이건 완전 강하다.'

'언데드를 물리치는 건 불가능이야. 죽여도 더 강해지며 되살아나. 해답은 바르칸을 제거하는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중에 몇명은 바르칸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공격에 나섰다. 

"죽여!"

"헤르메스 길드는 최강이다!"

방송을 감안하여 고함을 지르면서 뛰어든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언데드들이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스킬을 있는 대로 써가면서 돌파했다.

5군단에는 나름 유명한 유저들도 많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울부짖은 시체들의 요새."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과감한 공격에 바르칸이 마법을 시전했다.

바르칸이 서 있던 땅이 흔들리더니 수많은 뼈들이 엉킨 기둥들이 수십 미터씩 솟구치고 있었다.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언덕이 만들어졌다.

< 울부짖는 시체들의 요새가 생성되었습니다. 큰 피의 희생을 치러야만 발휘할 수 있는 흑마법이 이 땅을 죽음의 저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들의 물리, 마법 공격력을 74% 감소시킵니다. 울부짖는 원혼들이 맴돌며 언데드들의 방어력을 높입니다. 언데드들의 생명력이 30% 향상됩니다. 심각한 전염별 발생!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게 됩니다. 가려움과 현기증, 어지러움, 두통, 발진, 부패, 관절 약화가 이루어집니다. >

바르칸은 높이 90미터 정도 되는 뼈의 언덕에 섰다.

"말이 안되잖아. 이건..."

"위드도 사냥했던 몬스터인데..."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절망스러웠다.

바르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스켈레톤이나 데스 나이트의 무리를 해치고 가야했으며, 높은 뼈의 언덕을 올라야 한다.

언데드가 된 팔마 그림자 부대의 마수들도 질주해오고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날던 본 드래곤마저도 지상으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이건 도저히 답이 없잖아."

"튀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재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전장을 이탈하려고 했다.

5군단의 전력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버킹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

그나마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지만, 바르칸의 마법은 그들을 벗어나게 해주지 않았다.

"너희들이 벗어날 곳은 없다. 죽은 자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바르칸을 중심으로 가까이 있던 모든 생명체들에게 낙인이 찍혔다.

< 죽음의 낙인! 어둠의 주술사 바르칸 데모프! 그는 살아 있는 생명과 시체들을 제물로 바쳐서 흑마법의 주술을 완성시켰습니다.. 바르칸을 죽이지 않고 도망치면 3시간이 지난 후 사망합니다. >

흑마법에 대한 책에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당해본 적은 없는 마법이었다.

바르칸이 건 흑마법이라면 대사제급의 신성 마법이 없는 한 해소가 불가능하리라.

"이런 건 대체... 이판사판이다."

"죽여!"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다시 덤벼들었다.

"싸워라. 이길 수 있다."

버킹도 그 기세를 몰아서 5군단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싸우게 했다. 그렇지만 어느새 제국군의 15% 이상의 언데드로 바뀌어버린 후였다.

도망칠 수도 없어서 전투를 벌이기로 했지만 쉬지 않고 죽어나가는 것은 결국 제국군 뿐.

바르칸이 뼈의 요새 위에서 주문을 외울 때마다 절망스러웠다.

"모든 마나의 흐름이여, 지금 생명들의 종말을 제물로 바치나니 소멸과 거스름의 원리에 따라서 움직여라!"

절대 마법 방어.

바르칸에 의해 신성력과 공격 마법까지도 차단되었다.

언데드들은 5군단을 잡아먹으며 세력을 더욱 불렸다.

녹슨 칼을 휘두르는 스켈레톤과 오염된 좀비들이 전장을 장악해갔다.

* * *

위드는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사용해서 모라타로 돌아왔다.

"아저씨. 통닭 되죠?"

"예. 그럼요. 빈자리에 앉으십시오."

- 불사의 군단. 바르칸 데모프! 엄청나게 강합니다!

- 언데드들의 급습. 이건... 절대적입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방송이 나오는 수정 구슬을 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치킨!

"이 맛에 사는 거지."

위드는 닭다리부터 뜯었다.

채널을 돌리면 방송국마다 당연하게도 불사의 군단을 생중계하거나 속보로 내보내고 있었다.

- 아무리 그래도 바르칸이 너무 강한 것 아닙니까? 5군단이 맥을 못 추고 전멸할 정도라니까요.

- 이 정도면 지금까지 방송에 나온 몬스터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죠. 바르칸은 역사적으로 베르사 대륙을 파멸로 이끌 정도의 몇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 엠비뉴 교단도 대단했습니다만 그들은 대단히 방대한 조직이었고, 바르칸은 혼자였다는 점에 차이가 있죠. 역사적인 기록들이라 정확도는 좀 낮겠습니다만.

- 예전에는 가슴에 꽂혔던 성검의 효과가 굉장히 컸던 것 같습니다.

- 성검이요?

- 예. 그렇게 밖에 추측이 안됩니다. 지금의 바르칸은 예전보다 너무 강력합니다.

위드는 방송으로 바르칸이 5군단을 박살내는 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네크로맨서는 확실히 강해."

똑같은 스킬 마스터들이라고 해도 실력의 차이는 있었다.

검술의 마스터들끼리도 레벨이나, 스탯, 전투 감각 등에서 역략의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바르칸은 평범한 네크로맨서 마스터 정도는 아니고 최고 중의 최고.

"다시 싸울 자신은 없군. 절대 저것과는 싸우지 않아야 해."

바르칸과 언데드들이 5군단과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일단은 숫자가 많았다.

둠 나이트나 스펙터, 본 드래곤이 있긴 했지만 다수를 이루는 주력은 스켈레톤과 좀비였다.

지금은 제국군 기사들이 언데드가 되고,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까지 쓰러지면서 고급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건 내버려두면 끔찍한 세력이 될 수 있어. 내버려두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엠비뉴 교단을 능가할 수 있는 위험도.

바르칸은 둠 나이트급의 보스급 언데드를 시체만 있다면 통조림 찍어내듯이 제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의 성검이 가슴에 박혀 있지 않으니 지금은 언데드 소환이나 흑마법의 한계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성검이 가슴에 박혀 있다면 승산이 있겠지만... 그걸 누가 하지?'

어지간한 난전이 아니고서야 바르칸의 가슴에 성검을 박을 수 있을 정도로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위드가 사막 전사들을 이끌던 대제왕 시절의 전성기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끝도 없는 언데드와 저주, 흑마법.

리치는 막대한 생명력과 회복력 때문에 여간해서는 죽이지도 못할 테니 정말 끔찍한 존재였다.

'바르칸이 되살아났는데. 이젠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쩌면 한 지역에 웅크릴 수도 있지만 대륙 정복을 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

위드가 닭날개를 뜯고 있는 동안 방송 화면에는 5군단의 병력이 형편없이 패배하고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선택은 당연히 하벤 제국이 있는 남쪽!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도 살아 있는 이들을 쫓아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음.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겠군. 헤르메스 길드가 알아서 하겠지!"

스스로 저지른 일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의 뒷감당은 남에게 떠맡기는 쪽이 속이 편했다.

* * *

5군단과 전쟁을 벌이는 바르칸과 언데드들.

둠 나이트만 수천 기, 데스 나이트나 스켈레톤들은 평원을 가득 채워서 세기 힘들 정도였고, 본 드래곤이 서른 마리나 하늘을 날아 다녔다.

"크으. 끝내주네."

"대박이다. 대박."

"베르사 대륙 멸망의 첫 걸음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인가."

멀리서 구경하는 유저들의 무리는 더욱 많아졌다.

아골타 지역은 하벤 제국의 북쪽 끝이며, 넓지 않은 바다를 건너면 아르펜 왕국의 경계에 닿게 된다.

동쪽으로는 아르펜 왕국이 차지하고 있는 하르판이나 리튼 지역에 도달하게 된다.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이 어느 곳으로 향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

"아르펜 왕국으로 갈까?"

"설마... 그래도 바다가 막고 있잖아."

"바다라고 해봐야... 언데드들은 그냥 건너지 않나? 본 드래곤은 날개만 펴면 금방이고 말야."

"음. 숨을 안 쉬어도 되니 스켈레톤이 바다를 물밑으로 걸어서도 건너기는 하겠다."

"그건 좀 무섭네."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이 어디로든 움직이리라.

살아 있는 생존자들이 허겁지겁 남쪽으로 도망을 쳤다.

언데드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구경꾼들은 숨 쉬는 것도 잊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본 드래곤이 날아가고, 스켈레톤이 절뚤거리면서 뒤를 따랐다.

"헤르메스 길드 난리 나겠네."

"응. 완전 망했네."

* * *

방송국들은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팔마 그림자 부대와 제국군 5군단이 아르펜 왕국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만 같았다.

기적처럼 아르펜 왕국이 승리를 거두더라도 큰 피해를 입는 건 학실해보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반전 되었다.

"바르칸 데모프!"

"어둠의 주술사이며 언데드의 지배자. 그가 등장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와 전쟁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진행자들의 목소리에는 잔뜩 힘이 실렸는데,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여길 만한 전개였던 것이다.

이럴 때의 시청률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방송 화면 준비해! 불사의 군단과 최대한 근접한 영상은 확보가 안 되나?"

"위험해서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현상금이라도 걸어봐. 뭐라도 해야지!"

불사의 군단이 진군하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바르칸의 마법에 의해 강화된 언데드들이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하벤 제국의 북부 요새에 도착한 불사의 군단!

본 드래곤이 공중에서 브레스를 내뿜고, 스켈레톤들이 성벽을 기어 오른다.

하벤 제국군은 중앙 대륙을 차지한 강력한 군대였다.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병사들의 수준도 높았지만, 언데드에 의해 허물어져갔다.

바르칸이 철저하게 무너진 성채에서 고함을 질렀다.

- 불멸의 삶. 이땅에 나와 불사의 군단이 어떤 존재이니지 알려주리라.

"크오오오오!"

스켈레톤들이 녹슨 검을 흔들며 환호했다.

* * *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불사의 군단이 남하를 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 레벨 400 이상. 모든 길드원들에 대한 긴급 소집령을 내립니다.

중앙 대륙의 주요 도시들의 치안 확보, 아르펜 왕국이나 사막 전사들과의 전투를 위해 필요한 인원이 있다.

이들 중에서도 최소한만을 남겨놓고 전원에 대한 소집령을 내렸다.

70만 명이 넘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먼 지역에 있거나 특수한 퀘스트의 수행으로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 못하는 인원을 제외하고, 25만명의 유저들이 이틀 만에 아렌 성으로 집결했다.

중앙 대륙을 장악한 헤르메스 길드이기에 모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전력이었다.

"바르칸 데모프. 대략적인 레벨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900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커험. 강하군요."

"모두 아시겠지만 네크로맨서의 특성상... 군단 규모의 전투력은 수십 배가 됩니다."

"언데드가 매일 늘어나고 있죠?"

"예. 언데드들의 무리를 뚫어야만 직접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들도 자료를 살펴보며 바르칸의 전투력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5군단을 휩쓸어버리는 광경은 그들에게도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히 컸다.

3대 마법인 데스 오라, 절대 마법 방어, 다크 룰!

언데드의 부활도 문제였지만,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며 광역 저주 마법을 퍼붓기에 아군의 전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골치 아팠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1만 이상이 모이면... 아무리 잡기가 불가능하진 않지요."

"간단히 볼 게 아닙니다."

"뭔가 문제입니까? 이쪽의 피해가 좀 크더라도 신성 무구로 무장하고 언데드를 뚫어내는 돌격대를 구성하면 충분히 가능하죠."

"바르칸은 아크 리치이기 때문에 무한한 생명력이 봉인된 병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제거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그 병이 어디에 있죠? 어느 던전인지 파악해서 먼저 해결해야 되겠죠."

"바르칸이 직접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언데드들을 뚫고 다가가서 바르칸의 생명의 병을 깨뜨리기란 당연히 쉬운 것이 아니다.

"언데드의 전력도 고정된 게 아닙니다. 우리 측에 인원 피해가 있으면 그들은 고위급 언데드로 되살아나서 동료들을 공격한다는 점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시체 폭발도 피해가 큽니다."

바르칸의 시체 폭발은 고위 마법사의 화염 전소 마법과 비슷한 위력을 발휘했다.

"신성력으로 타격을 하면요?"

"성수나 신성력을 지닌 무기에 언데드는 취약하죠. 그러나 바르칸이 예전에 루의 성검이 가슴에 꽂힌 상태에서도 활동을 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마나 한계도 없습니다. 언데드들로부터 생명력과 마나를 끝도 없이 흡수한답니다."

"허. 답이 없는 몬스터로군."

"바르칸이 영악하게 싸운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을 지도 모른단 말이 되겠죠."

라페이와 바드레이, 그 외에 자리를 잡은 친위대 유저들은 계획을 짜며 표정이 무거웠다.

베르사 대륙의 최강자로 불리는 인물들이지만 바르칸 사냥은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위험하고 변수가 무궁무진할 것 같습니다."

"하필 이런 몬스터가 우리 쪽으로..."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어째서 무리를 해가면서도 중앙 대륙 전체에 소집령을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바르칸에 의해 제국의 수도인 아렌 성이 초토화된다면 그건 상상하기도 힘든 피해였다.

황궁이 이미 무너졌고, 오래 전부터 수도 역할을 하던 아렌 성까지 언데드에게 정복당한다.

중앙 대륙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그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바르칸의 한계. 언데드의 한계. 아직은 이것을 공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라페이는 넓은 벽면을 가득 채운 종이들을 뒤로 넘겼다.

수학의 수식이나 전력 분석에 대한 기록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라타의 대도서관만큼 방대하진 못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모험이나 몬스터에 대한 고급 정보들을 따로 모아놓았고, 이것을 통해 바르칸에 대해 분석했다.

"언데드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여러 갈래에서 집중해서 돌파하는 게 최선입니다."

아크힘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돌파라. 위험하겠군요."

"그렇지만 불사의 군단과 바르칸에 맞서서 방어 진형을 펼치는 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저주와 부활 때문에..."

"예. 그래서 헤르메스 길드에 총 집결 명령을 내렸습니다. 최대한의 전력을 집중시켜서 단기전의 승부를 봅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활용할 시체가 있어야만 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습니다."

네크로맨서의 약점!

뛰어난 공격력이나 생명력과 마나 흡수, 언데드 부하들을 거느리지만 모두 시체들을 필요로 했다.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언데드들을 외곽에서부터 녹여버리고 약화시키면서 바르칸을 공격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동시에 벌어져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교단으로부터 성물들을 빌릴 겁니다. 성기사단과 사제들도. 공헌도의 손실이 크겠지만 바르칸을 사냥한다면... 그건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될 수 있겠죠."

라페이는 여러 방송국들과 생방송을 위한 협약을 진행했다.

큰 전투를 앞두고 그건 당연한 일이었고, 불사의 군단과 싸워서 멋지게 이겨내면 헤르메스 길드는 악명을 낮추고 인기를 얻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이 수세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투를 이겨내면 헤르메스 길드는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힘의 증명. 그리고 베르사 대륙을 지배할 정당성을 얻을 겁니다."

바르칸을 부활시켜서 불사의 군단을 일으킨 건 전적으로 위드다.

이에 대해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맹비난을 받아 마땅항 위드의 행동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페이가 좌중을 돌아보다가 바드레이에게 시선을 맞췄다.

"이번 전투는 바드레이님이 총대장의 역할을 맡아주셔야 합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상위권 랭커들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생각했다.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과의 전쟁은 길드의 운명을 건 일이다.

패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이 잘못되면 언데드가 아렌 성이나 제국의 중심을 휩쓸게 될 것이다.

하벤 제국의 명성은 추락할 것이고, 불사의 군단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골칫덩이로 커질 수 있기에 바드레이가 맡는 것도 당연하게 봤다.

헤르메스 길드의 최상위 랭커들이 바드레이의 눈치를 봤다.

'바드레이님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동안... 대체 얼마나 강해졌을까? 중앙 대륙의 모든 특권을 누렸는데.'

'헤르메스 길드의 완벽한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동안 전투 장면들을 보이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지. 방송국들의 취재 경쟁이 엄청나겠구나.'

* * *

바드레이는 중앙 대륙 정복 이후로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왔고, 그의 목표는 별명 그대로의 무신이 되는 것이었다.

이미 투신 바탈리의 인정을 받은 최고의 강자!

바드레이도 이번 전투에 대해서는 적잖게 긴장했다.

"바르칸 데모프. 재미있겠군."

헤르메스 길드는 불사의 군단과 발키스 성에서 맞붙기로 했다.

아골타 지역을 벗어난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은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조금씩 세력을 확대 중이었다.

드넓은 평원을 통과하는 불사의 군단에 몬스터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다가와서 죽는다.

둠 나이트들이 이끄는 기사단이 사냥터나 던전을 돌며 시체들을 가져오면 바르칸에 의해 언데드가 되었다.

눈덩이가 구르듯이 커지는 불사의 군단에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헤르메스 길드는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발키스 성에서 요격을 나섰다.

모든 방송국들이 중계하고,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대거 구경꾼으로 참여했다.

* * *

헤르메스 길드와 불사의 군단!

발키스 성에는 3일간 제국의 모든 자원이 집중되어 성벽을 강화하고 마법진들이 새겨졌다.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 유저들이 미리 와서 성벽에 도열해 있었다.

제국군 평기사들이나 병사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전부 후방으로 빼놓았다.

마법병단과 고위 마법사들 역시 바르칸에 절대 마법 방어를 뚫을 수 없기에 대기만 했다.

"오늘 승부가 벌어지겠네."

"베르사 대륙 최대의, 그리고 가장 큰 전투가 될 거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철저히 장비를 무장한 채로 기다렸다.

이윽고 고롬 산에 정찰을 위한 스켈레톤들이 몇 마리 등장했다.

"언데드다!"

"불사의 군단이 나타났다."

스켈레톤들이 보이고 나서 얼마 후, 고위 언데드들이 산 전체를 뒤덮으며 진군해오고 있었다.

본 드래곤들이 뼈의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서 당당하게 불사의 군단을 호위했다.

바르칸은 어둠의 구체를 밟고 하늘을 날았다.

흑색ㅇ의 오라에 뒤덮인 불사의 군단을 이끄는 아크 리치.

역사서에 기록되었던 위용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는 광경이었다.

- 인간들.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구나.

바르칸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전장에 깔렸다.

- 인간들은 삶의 구속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희망을 잃지 않지. 오늘... 너희들의 희망을 잡아먹어주마. 불사의 군단이여. 진격하라!

"...!"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언데드의 대군이 즉시 쇄도하는 걸 보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바드레이와 고위 랭커들 역시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멋진 말을 연습해놨는데.'

'난 노래까지 준비했다고.'

위드가 큰 전투를 앞두고 노래를 부른다.

그 행동을 따라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대사와 노래를 연습했는데 불사의 군단이 곧바로 쳐들어오며 무용지물이 되었다.

"모든 제국군에 명한다. 대륙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바드레이가 포효성을 터트렸다.

효과는 사자후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넓은 전장에 영향을 미치는 스킬.

둥. 둥. 둥. 둥!

발키스 성에서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가 거대하게 울려 퍼졌다.

"시작이다. 전투 계획에 따라 화살을 쏘지 마시고 그 자리를 지키세요."

"흑마법에 저항하기 위해 미리 보호 스킬을 거십시오"

불사의 군단은 이름값을 하는 듯이 둠 나이트 돌격대들이 무서운 기세로 성문에 부딪쳤다.

스켈레톤 궁수들의 뼈 화살들도 성벽 위로 빗발치듯이 날아갔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스켈레톤, 듀라한, 좀비들.

하급 언데드이긴 하지만 불사의 군단에 속한 이상 기사들도 잡아 먹히는 대상이 된다.

바르칸은 뼈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 가련한 인간들이여. 너희들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줄 불사의 군단을 똑바로 보라.

< 절망의 갈구자! 정신이 어두운 내면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질렀던 죄의 대가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악명에 따라 정신적 능력 저하! 마나의 최대치가 감소하고 지식과 지혜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

< 되살아난 환영! 무언가 무서운 것이 보입니다. 과거에 당신에게 죽음을 안겨준 적이 있는 몬스터나 적의 환영들이 나타나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당신을 먹어치우기 전까지 축복으로 물리치거나, 아니면 완전히 없애야만 합니다. >

<참을 수 없는 떨림! 바르칸 데모프.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그의 마력에 거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악행으로 인해 저항하지 못합니다. 모든 스탯 35% 감소! 피해를 입을 때마다 4.5%의 생명력과 마나가 바르칸에게 흡수됩니다. 전체 생명력의 30% 이상의 피해를 입었을 시에는 매초마다 입은 피해량의 2%씩의 생명력이 빠져나갑니다. >

* * *

바르칸은 한 번의 주문으로 지역 전체에 해당하는 광역 저주 3종세트를 시전했다.

"축복! 저주 해소 좀요!"

"사제님. 어서 빨리!"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애타게 사제들을 불렀다.

성기사들은 스스로에 대한 저항력이나 축복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다른 유저들은 흑마법 저항이 있는 장비를 착용했더라도 상상외로 손해가 막대했다.

전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정도를 떠나 수준을 서너 단계씩 낮춰버리는 가공할 권능이었다.

그 사이 백만에 달하는 스켈레톤들이 성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사다리가 필요한 인간 병사들과는 달리 뼈 밖에 없는 손발을 이용하여 부지런히 성벽을 오른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공격 스킬을 이용하여 이를 저지했다.

"폭뢰참!"

"천둥 해머!"

"가메쉬의 활!"

바르칸에 의해 강화된 스켈레톤들은 데스 나이트와 맞붙어도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성벽의 유리함과 무력으로 어렵지 않게 물리쳤다.

"확실히 소멸을 시키십쇼! 그냥 성벽에서 밀쳐내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제압해."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강대한 스킬로 성벽에 올라온 스켈레톤을 녹이거나 가루로 만들었다.

불사의 군단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히 시체를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둠 나이트 부대. 성문을 절반쯤 파괴했습니다!"

"아니. 벌써?"

"수비 부대 빨리!"

둠 나이트들의 진격은 헤르메스 길드 유저 중에서도 워리어나 기사들 중의 실력자들이 맞섰다.

요새의 곳곳에는 신성력과 마법의 불길이 타오르면서 진군해오는 언데드들을 위축시켰다.

"하늘이다!"

"조심해. 몸을 숙여!"

서른 마리의 본 드래곤들이 하늘에서 날아다니면서 일제히 산성 엑기스를 뿜어냈다.

발키스 성의 곳곳은 부패한 가스가 피어오르며 오염 되었다.

"크르르르. 떠올라라. 불신자의 그릇이여... 삶을 가진 모든 이들은 악랄함을 저지르기 위해 존재 하느니."

울부짖는 유령들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살아 있는 이들을 저주했다.

"부상!"

"생명력 60% 이하는 뒤로 빠져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성벽에 50미터 간격마다 회복 거점을 마련해놓고 다수의 사제들을 배치해놓았다.

각 교단에 쌓여 있던 공헌도를 사용하여 신성력을 발휘하는 사제들을 최대한 끌어왔던 것이다.

부상자의 치료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광경이 발키스 성의 중앙 탑에서 보였다.

"생각보다는... 고전을 하고 있지만 할 만 하군요. 스켈레톤이라도 능력이 대단합니다만."

"예. 수성이라 둠 나이트들만 특별히 조심하면 되니 말입니다."

"불사의 군단이 백만 정도. 시체를 마련하기 위해 흩어진 둠 나이트들이 돌아오면 몇 만 정도는 더 늘어나겠지만 격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뮬을 비롯한 헤르메스 길드 최고의 권력자나 랭커들이 중앙탑에 모여 있었다.

"활개를 치는 본 드래곤이 마음에 걸리기는 한데..."

"지금은 공격을 하는 게 낭비에 가깝습니다. 한 번에 죽이지 못할 바에야 내버려두고 하급 언데드를 제압해야지요. 그리고 바르칸만 제거하면 끝나는 싸움인데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승리를 확신하며 조금씩 굳어 있던 마음이 풀렸다.

불사의 군단이 대륙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을 했는데 막상 붙어보니 잘 막아냈다.

언데드들이라 육체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활하기에 당연히 까다롭기는 했다.

어지간히 생명력의 타격을 받더라도 바르칸에 의해 회복이 이루어져서 금방 멀쩡해진다.

본 드래곤과 같은 강한 대형 몬스터들에, 둠 나이트들로 구성된 부대의 끔찍한 공격력을 최고의 강자들인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뭉쳐 막아내고 있었다.

성벽을 기어오른 스켈레톤들은 소멸시키고, 멀리서 날아오는 뼈 화살은 보호 스킬이나, 검으로 쳐서 떨어뜨린다.

둠 나이트들도 까다롭긴 하지만, 유저들 여럿이서 합공을 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가능한 한 마리 씩이라도 소멸시켰다.

중앙 대륙을 차지한 헤르메스 길드의 강함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고 믿을 때!

바르칸의 저주 마법에 의해 성벽에 있던 천여 명의 유저들의 생명력이 한꺼번에 갈취 당했다.

마법 저항력이 있었기에 죽진 않았지만 더 이상 전투를 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과연 저 정도는... 전설적인 몬스터답군요."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생명력을 바닥까지 떨어뜨리지만 죽이진 못하는 스킬 같습니다."

"흑마법이나 저주를 막는 장비들을 총동원했으니까요. 방심했다면 죽었겠죠."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의 15%가량을 이번 전투를 위해 지출했다.

경매장, 개인 유저, 상점을 가리지 않고 급하게 돈을 쓰며 흑마법과 저주에 저항하는 아이템을 사서 모았다.

'이길 수 있다. 이대로라면 승리.'

'불사의 군단마저 재패한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눈에 투쟁심이 가득했다.

불사의 군단이 공성전을 벌이며 전열이 무너졌을 때, 핵심 주력들이 돌입하여 바르칸을 제거할 테니 그 순간을 기다리며 긴장했다.

하지만 바르칸 정도 되는 고위 몬스터라면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법!

"이 땅은 내 암흑의 율법이 지배한다. 영원한 불사의 힘이 장악하리라. 다크 룰!"

바르칸이 3대 마법 중의 하나를 발현시켰다.

지역 전체의 모든 시체들을 언데드로 자동으로 일으키는 네크로맨서 마법!

중앙의 방어탑이나 성벽, 성문에서 싸우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마법이 발동되는 모습을 봤다.

"효과는 없겠네."

"철저히 대비를 했지. 이런 식이라면 다른 3대 마법도 봉인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전투가 벌어지면서 죽은 유저들은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스켈레톤들은 20% 이상이 소멸되었고, 둠 나이트들도 손실이 꽤 됐다.

언데드 소환의 최상위 마법인 다크 룰을 경계하긴 했지만 전투를 잘 이끌어왔으니 효과가 없으리라고 본 것이다.

다크 룰이 시전되고나서 발키스 성의 광장이나 성문의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제히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성벽이나 성문에 붙어서 싸울 수 있는 유저의 최대치는 6만 5천.

나머지 유저들은 예비 병력으로 준비되어 기다리던 중에 공터에서 뼈로 된 손이 쑥 올라오는 걸 봤다.

"크웰."

"쿠워어어어어억!"

뼈마디가 삭은 오래된 스켈레톤들.

머리카락마저 몇 개 안 붙어 있는 좀비와 구울들이 땅을 파헤치며 일어났다.

상점거리와 광장, 영주성을 막론하고 발키스 성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바르칸의 언데드 소환 마법은 오래전 발키스 성에서 죽은 시체들까지도 전부 일으키고 있었다.

* * *

헤르메스 길드의 전략은 불사의 군단에 있는 언데드들을 소멸시키면서, 바르칸을 목표로 한 최정예 공격대를 돌진시키는 것이었다.

미리 편성한 워리어 유저들이 길을 뚫고, 바드레이를 중심으로 한 성기사 유저들이 바르칸을 제압한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언데드들부터 먼저 전부 없애는 편이 옳았지만 불사의 군단은 바르칸이 중심이 된다.

만약에라도 바르칸이 언데드를 잃고 전장에서 떠나는 걸 걱정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사의 군단이..."

"언데드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계획은 다크 룰 마법이 발현되자마자 어긋나고 말았다.

그들의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 끝도 모를 언데드들.

옛 역사에 기록된 전투들, 로열 로드가 열리고 나서 발키스 성의 소유권을 두고 수많은 전쟁들이 벌어졌다.

그동안 쌓여 있던 시체들이 모조리 일어나고 있었기에 발키스 성의 내부나 성벽 바깥이나 금방 언데드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이 하급 스켈레톤이긴 했지만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데스 오라에 의해 무지막지한 괴력을 발휘하며 건물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좀비, 구울들은 건물 사이를 뛰어 다니면서 유저들을 공격했다.

"옥상이다!"

"천장에서 좀비들이 떨어집니다."

"이쪽 광장은 좀비들로 가득 찼습니다."

역사서에서도 기록된 적이 없었던 언데드의 시가전.

스켈레톤 메이지와 궁수들이 화염구나 불화살을 주위로 쏘면서 발키스 성의 주택과 주요 시설물들에는 걷잡을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났다.

"불길이 퍼지고 있습니다. 정령사들은 물의 정령을 소환해서 화재부터 진압바랍니다."

"신성력을 가진 소모품들을 아끼십시오! 성수를 퍼붓지 마세요. 장기전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헤르메스 길드는 대지에서 일어나는 언데드들 때문에 사방에서 정신없이 싸워야 했다.

반면에 바르칸은 끝을 모르도록 흡수되는 생명력과 마나를 바쳐서 흑마법을 발키스 성으로 계속 퍼부었다.

"영겁의 부패에서부터 피어나 존재의 모든 것을 썩게 해라! 굴탄의 안개."

발키스 성의 대지가 다시 한 번 크게 갈라졌다.

땅에서부터 솟구친 어두운 자줏빛 기운이 발키스 성을 뒤덮은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굴탄의 안개를 마셔서 중독되었습니다. 매초마다 생명력을 349씩 잃어버립니다.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계속 감소합니다. 푸른 산호 갑옷의 내구도가 3 줄어들었습니다. 황금 날개 부츠의 내구도가 2 줄어들고, 모든 능력치가 저하됩니다. >

단단하던 성벽에 검붉은 곰팡이가 피어나더니 전체를 부식시키며 내구력을 약화시켰다.

지역 전체에 대한 오염으로 생명체나 구조물에 타격을 주었다.

쿠르르릉!

대지가 뒤흔들렸다.

발키스 성의 건물과 성벽들이 부식되어 마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본 드래곤들이 울부짖으며 하늘에서 동시에 지상으로 브레스를 내뿜었다.

"수비 지역을 사수한다. 조만간 성기사들이 나설 것이다."

"공격, 어서. 서둘러!"

베르사 대륙의 각 교단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성기사들이 출동했다.

신성력의 가호로 언데드를 상대로 서너 배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성기사들이 목숨을 걸고 불사의 군단에 뛰어들었다.

저주와 흑마법으로 1만에 가까운 유저들이 사망했고, 본 드래곤이나 둠 나이트에 의해서도 그만큼의 병력이 줄었다.

그들이 고위급 언데드가 되어서 일어나고 있었으니, 헤르메스 길드의 계산이 크게 빗나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군."

"좋은 기회가 나오지 않는 것 같군요."

발키스 성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가에는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 공격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사의 군단이 공성전을 벌이며 진형이 무너지면, 바르칸을 칠 기회만 노리는 중이었다.

"발키스 성의 피해가 생각보다 큽니다."

"저들이 죽는 건 상관없겠지만... 오래 기다리다보면 언데드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공격대에 속한 유저들은 솔직히 위험한 임무라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바드레이가 직접 참여하고, 방송으로까지 중계되는 전투라서 빠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친위대의 아크힘이 바드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계획보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완벽한 기회만 노릴 수는 없겠지. 시간을 오래 끌수록 우리 쪽이 더 불리해질 것 같아. 흑마법이라는게 어떤 것이 나올지도 모르고."

"그러면 시작할 겁니까?"

"지금 가지. 더 늦기 전에."

"그러면 공격대를 움직이겠습니다."

아크힘은 친위대의 통신 채널,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 채널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 아크힘 : 사냥 시간이 왔다.

바드레이를 비롯한 공격대가 말을 타고 언덕에서 질주를 시작했다.

"우리의 목표는 바르칸이다."

"언데드를 제거하라!"

발키스 성에서도 숨겨놓았던 병력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이 순간,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해서 언데드를 제거해나갔다.

둠 나이트라면 팽팽하게 싸움이 벌어졌지만 그 미만급의 언데드들은 마나 소모를 아끼지 않고 빠르게 제거했다.

"길을 열어!"

"황제가 나섰다."

치밀한 계획 하에 공성전을 벌이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성벽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언데드들의 주목을 받는 사이에, 바드레이와 공격대는 후방을 공격했다.

불사의 군단 중앙에 있는 바르칸을 공략하기 위해서 스켈레톤의 바다를 뚫고 들어갔다.

"흑마법이나 저주 계열에 대비."

"선두의 유저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전진해서 저주를 몸으로 막으세요."

스켈레톤들은 광역 스킬로 제거했지만, 금세 바르칸과 본 드래곤의 주목을 받았다.

- 가증스런 인간들이 바르칸님을 노리고 있다.

- 썩어서 한줌의 물로 만들어줄것이다.

발키스 성을 공략하던 본 드래곤들이 급히 선회하며 바드레이와 공격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필멸자들이여. 오너라. 너희들에게 기꺼이 불사의 생명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쿠르르릉!

바르칸이 주문을 외우며 울부짖는 시체들의 요새를 소환했다.

땅에서 거대한 뼈가 솟구쳐서 지형이 바뀌어버리는 대마법.

불사의 군단에 포함된 언데드가 많아지면서 뼈의 요새는 과거보다도 훨씬 거대해져서 무려 150미터의 높이나 되었다.

그 인근에 바르칸을 호위하는 언데드들도 시체들의 요새 효과에 의해 더 강해졌다.

"젠장."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는 언데드 무리를 제거하며 달려오고 있었지만,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는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뼈의 요새에 바르칸이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둠 나이트와 스펙터를 비롯한 수많은 고위급 언데드들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본능적으로 언데드의 바다에 파묻혀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게 되었다.

"돌격! 후퇴는 없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고르고 고른 공격대는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바드레이를 보호하며 뼈의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몬스터들의 접근을 경계하고... 본 드래곤들에게서 한시도 눈 떼지 마!"

"워리어들. 방패를 들고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을 준비."

"언데드들은 지나가는 것만 목표로 하고, 우리 목표는 바르칸이다. 바르칸을 향해 달려라!"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는 베르사 대륙의 최상위권 유저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평범한 유저들은 본 적도 없는 고급 기술과, 검술의 비기까지 사용해가며 언데드들을 돌파했다.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돌파력을 발휘했는데, 잠깐이라도 시간을 끄는 것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두. 더 빨리 속도를!"

"13조는 여기 남아서 언데드의 후방 합류를 끊어라!"

공격대는 뼈의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오르기 시작했다.

산처럼 높은 뼈의 요새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 빌헬름이다."

"바쁘니까 꺼져!"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들이 덤벼 드는 것을 밀쳐내서 땅으로 떨어 뜨렸다.

- 주제를 모르는 인간들! 영겁의 죄악을 저지르려고 하는 구나!

본 드래곤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스쳐지나갔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공격을 당하면서도 앞으로 달렸다.

일부 유저들은 용감하게 본 드래곤의 등에 올라타서 공격하기도 했다.

최고 수준의 랭커다 되기 전까지 수많은 던전과 사냥터를 오갔다.

그들도 자신의 맡은 바 임무가 무엇인지 알았고, 방송으로 이 광경을 수억 명이 보고 있으리란 걸 알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것도 없었다.

"둠 나이트 기사단이다."

"그것도... 인원이 백 명 이상이야!"

"놀랄 것 없어, 뚫어!"

바드레이를 호위하는 친위대를 제외한 공격대가 앞으로 달려가서 둠 나이트와 전투를 벌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르칸의 공포에 짓눌려 공격 스킬의 위력이 대폭 떨어졌다.

"부숴! 되살아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길만 열어라!"

서늘한 안개와 으스스한 귀곡성이 울려 퍼지는 뼈의 요새에서 둠 나이트들과 육박전!

- 가소로운 인간들. 나약한 육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게 느껴지는구나!

바르칸의 데스 오라에 가까이 있는 둠 나이트들은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둠 나이트들은 그 자체로 보스급 몬스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크억... 이렇게 힘이..."

"베어도 죽지 않아! 때려도 거의 피해를 안 입어. 어떻게 해야 돼!"

언데드들에 의한 희생자들이 생기고, 뼈의 요새에서 추락하는 유저들이 속출했다.

"시간 없어! 계속 밀어붙인다."

공격대는 바르칸의 저주 마법이 발동될 수도 있기에 마음이 급했다.

거리라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모를까, 뼈의 요새를 오른 지금으로서는 강력한 저주 마법에 걸렸다가는 자칫하면 몰살이니까.

둠 나이트들이 막을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었기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그대로 뛰어넘거나 우회해서 달렸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중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냥 지나쳤다.

바르칸과의 거리가 50미터 정도 남았을 때에 또다시 둠 나이트들의 무리가 등장했다.

- 불사의 지배자를 호위하라.

하늘에서 세 마리가 넘는 본 드래곤이 날아오는 광경이 보였다.

베르사 대륙에서는 한 마리도 구경하기 힘든 고위급 언데드였는데 여기는 널려 있었다.

"더 다가가야 해."

"그럴 시간 없어. 여기서 시작해!"

공격대의 일부는 무리에서 이탈 하며 물건을 꺼냈다.

그들의 임무는 각 교단의 성물들을 활용하여 언데드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발할라의 전투 망치!"

"여긴 프레야 교단의 성물이다."

"루의 방패는 이쪽으로..."

뼈의 요새에서 성물을 든 유저들이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추악한 기운을 흘리는 인간들..."

- 도망가게 놔두지 마라. 전부 죽여라!"

둠 나이트들이나 본 드래곤의 적대도도 당연히 그들을 향하게 되었다.

맹렬한 분노와 복수심.

신성력은 그들의 천적이었기에 바드레이와 호위대를 놔두고 바람이 갈라지듯이 흩어졌다.

바드레이와 중앙의 공격대는 둠 나이트의 얇은 방어벽을 뚫고 바르칸에게 접근했다.

"끝이다. 바르칸!"

바드레이가 멋있게 보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루의 성검을 뽑아서 바르칸에게 당당히 겨누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옆에 있었기에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짧게나마 폼을 잡으려고 한 것이다.

바르칸이 곧바로 마법을 펼치지 않고 장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인간. 이곳까지 오다니 제법 기특하구나. 그렇지만... 나와 싸우기에는 너무 약하군."

바드레이도 맞받아쳤다.

"헛소리. 충분히 너를 꺾을 수 있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쓸데없는 자신감을 부리는군. 그렇다면 혼자서 덤벼볼 것이냐?"

그 순간,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바드레이와 바르칸의 일대일 승부를 이 순간 모든 시청자들은 기대했다.

장대한 뼈의 요새에서 벌어지는 제국의 황제와 리치의 혈투!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조차도 혹시나 바드레이가 바르칸을 일대일로 제압하는 것은 아닐까 기대했다.

'계획은 아니었지만 설마?'

'뭐지, 지금 결투를 벌이겠다는 건가?'

한편으로 바드레이는 섬뜩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다 같이 바르칸을 처치하고 그 공으로 명성을 떨치려고 했는데, 일대일의 결투라니 너무 일이 커졌다.

'일대일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바르칸을 그 이후에 처치하더라도 내 자존심은 망가지고 만다.'

바드레이는 굴욕적이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상대는 네크로맨서. 야비한 수단으로 시간을 버는 것이다. 어떤 흑마법이나 언데드를 일으킬지 모르니 즉시 제거한다!"

사제들은 약속된 희생 주문을 외우며 전투를 준비했다.

레벨과 스탯 일부를 포기하지만 순간적으로 열 배나 강력한 신성력을 보유하게 하는 기적!

"가라."

"일제히 공격해!"

바드레이와 이백여 명의 공격대 유저들이 흩어지며 바르칸을 공격 했다.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공격 스킬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어리석은 인간들. 너희들은 불사의 힘을 믿지 못하는구나!"

바르칸은 흑암의 장막을 쳐서 공격 스킬들을 막아냈다.

화려한 무기들과 스킬들이 바르칸과 그 부근에 사정없이 작렬했다.

뼈의 요새가 흔들리고 일부가 무너질 정도로 거센 충격파가 흘렀다.

바르칸에게는 언데드 군단으로부터 생명력과 마나가 계속 공급되고 있었기에 일부의 피해가 있더라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끝없는 절망. 인간의 존재로는 알지 못하는 그 너머를 너희들에게 보여주겠다."

바르칸이 흑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그 순간, 바드레이는 신성 무구의 도움을 받아서 단거리 순간 이동을 했다.

바르칸과의 전투를 벌이기 전에 시간은 짧았지만 많은 분석을 했다.

어마어마한 생명력과 절대적인 마법력.

끝도 없는 언데드 군단의 호위.

이것을 뚫고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는 것이었고, 힌트도 있었다.

'바르칸의 몸에 마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성검을 꽂아야 한다.'

흑마법을 펼치기 위해 가장 약해지는 찰나!

"초월의 타격!"

사제들의 신성력이 일제히 바르칸에게 집중되었다.

새하얀 신성력들이 흑암의 벽을 강타하고, 아크 리치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바르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텼지만, 바드레이가 바로 그의 뒤에 순간이동으로 나타났다.

"끝이다."

푸우욱!

루의 신검을 바르칸의 등에 깊게 꽂았다.

"됐다. 이걸로!."

"바르칸을 해치웠다."

공격대는 물론이고, 헤르메스 길드 유저 모두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리치와 같은 몬스터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성검!

일찍이 위드가 루의 성검이 박힌 바르칸을 처치했던 경험도 있었다.

'이걸로 죽지 않는다고 해도 약해진다. 정면으로 싸워도 이긴다.'

수차례나 계획을 짜고 연습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상의 결과였다.

엘리베이터도 두드려보고 타는 위드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경솔함!

바르칸이 루의 성검이 박힌 채로 턱뼈를 달그락거렸다.

"크크큿. 너희들 모두가 제물이 될 것이다. 내 육체를 바쳐서 깊은 어둠을 이 땅에 부르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거라."

남아 있는 모든 생명력과, 마나를 전부 소모하는 네크로맨서의 궁극 기술. 대소멸.

그오오오오오.

바르칸의 육체가 먼지가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그 자리에 검붉은 점이 생겨나더니 급속하게 넓게 퍼졌다.

폭발의 파괴 범위에 있는 언데드와 살아 있는 생명체들을 분해하면서 대소멸의 주문은 위력을 키워나갔다.

뼈의 요새까지도 통째로 녹여버리는 궁극의 폭발 마법.

바드레이는 순간적인 눈치로 마법 망토에 봉인된 '절대 보호'와 부츠에 있는 '태양 이동'을 사용하여 발키스 성으로 도피했다.

< 전율적인 피해! 저항할 수 없는 위력의 마법에 의해 생명력에 중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203,933만큼 감소하였습니다. 극심한 부상으로 일시적인 전투 불가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

반응이 빨랐음에도 생명력에 백만 이상의 피해를 입었지만 죽진 않았다.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사제들의 희생 주문에 의해 몇 개의 축복과 보호 마법, 생명력 증가 마법들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격대와 부근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중에서도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잠시 후, 바르칸이 있던 곳에는 바닥을 알기 힘든 반경 수백미터 짜리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지형까지 바꾸어버린 대소멸 주문의 위력!

처음 경험하는 마법의 위력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얼이 빠져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이겼다...!"

"바르칸을 해치웠다."

"만세!"

"바드레이님이 해냈어!"

바드레이도 체력과 생명력이 그리 남아 있진 않은 상태였다. 그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성벽에 서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 내 손으로 바르칸을 제압했다!

바드레이의 포효성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일제히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불사의 군단이 아직 절반 넘게 남아 있긴 했지만 누구도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최후의 폭발과 같이 바르칸이 사라진 이상, 남은 언데드들 따위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바드레이가 힘든 와중에도 계속 포효성을 터트렸다.

"언데드들을 모두 제압하고 사흘동안  축제를 연다! 발키스 성은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을 제압한 성지로 삼을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 만세!"

바르칸과의 전투를 위해 모인 유저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강력한 적을 꺾고 나서 생겨나는 긍지.

아르펜 왕국처럼 전투에 승리를 거두고 사람들과 축제를 벌이리라.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자부심으로 가득했고, 긴장이 조금 풀어졌을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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