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1권 : 3장. 위드의 노래 (341/520)

3장. 위드의 노래 

농부 미레타스의 눈앞에 가르나프 평원이 불에 타는 광경이 보였다. 

“이런… 이렇게까지 하다니.”

그의 주변에는 귀가 뾰족한 엘프 유저들이 함께 있었다.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사방에서 아우성이 들리는군요. 불의 정령들도 두려움에 날뛰고 있습니다.”

정령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엘프들은 참혹함을 이야기했다.

유성 소환의 여파로 모든 종류의 정령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을 구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정령 치유술이라도 펼쳐야하니까요.”

엘프들이 서둘러 떠나고 나서 미레타스는 혼자서 무거운 생각에 잠겼다.

‘이게 로열 로드인가? 강한 힘이 있다고 서슴지 않고 쓰는 것이?’

그는 초보 시절의 과거를 떠올랐다. 

도시에서는 땅값이 비싸서 성 밖에 있는 황무지에 자갈을 고르고 물길을 내서 채소를 키웠다. 

새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복과 충만감.

다른 유저들이 사냥과 퀘스트로 돈을 벌 때 그는 시장에서 채소들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미레타스. 사냥 가자. 좋은 사냥터를 알아내서 10골드를 벌었어. 경험치도 많이 줘.”

“다음에 가자.”

“저 녀석들은 내버려둬. 농부는 사냥에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들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줄어들었다. 

비가 오고, 가뭄이 들 때마다 조마조마하며 농작물들을 보살폈다.

몬스터나 짐승들 때문에 농사를 망칠 때도 있었지만, 다시 씨를 뿌리고 땅을 일구었다. 

로열 로드 초창기에 농사에 관심을 갖는 유저는 극히 드물었다.

드넓은 대륙과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간단한 채소라도 며칠씩 키워서 푼돈에 파는 일이 적성에 안 맞았던 것이다.

미레타스는 농부로서 작물을 꾸준히 키우고, 씨앗 상점이나 농산물 거래소의 상인들과 친밀도를 높였다.

“열심히 하는군. 이 씨앗도 좀 심어보게.”

“처음 보는데, 무슨 씨인가요?”

“꽃의 일종이라는데… 귀족들이 좋아해. 브리튼에서는 특산품 취급도 받는다는데 여기서도 재배할 수 있다면 좋겠지.”

씨앗의 발아 조건부터 감춰져 있었고, 키우는 방법도 까다로워 보였다.

간신히 씨앗이 자라게 했더니 햇볕이 뜨거워도 죽고, 바람이 불어도 죽었다.

물도 적당히 주어야지 약간만 과하거나 모자라도 식물은 축 늘어져서 죽어버렸다.

미레타스는 열정과 고민, 관찰로 파라도리아의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바로 이것이었어! 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모든 귀족들이 좋아할 거야!”

파라도리아는 현지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고, 품질을 높여서 나중에는 지역 특산품에도 등록되었다.

1년이 넘도록 직접 재배한 꽃을 특산품으로 바로 팔아버릴 수 있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명성과 부유함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가 도전한 건 또 다른 식물들이었다.

땅을 사서 약초, 과일, 꽃, 희귀 식물, 마법 식물, 해양 식물을 마구 심었다.

극소수 존재한다는 마법 재료들을 키우면서 다시 한 번 큰 명성과 돈을 벌기도 했고, 농작물의 종자 개량도 성공시켰다.

명문 길드들끼리 싸우며 땅이 황폐화가 되고, 막대한 세율을 물리는데도 참았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야. 농사를 지어서 사람들을 더 풍족하게 해줘야지.’

옛 데일 왕국의 지역에서 유저들만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맛있고 배부른 밥을 먹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농사를 지어왔었다.

결국 견디다가 아르펜으로 떠나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헤르메스 길드가 이런 식의 공격까지 할 줄은 몰랐다.

‘전투 식물들이나 준비하려고 했던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한 사람의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어디 땅과 식물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마.’

* * *

“아파요.”

“으그그극. 이렇게 죽어가다니…”

알킨 병에 걸린 유저들은 땅에 드러누웠다.

전염성이 워낙 강한 병이기에 다른 유저들이 알아보고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매스 큐어!”

각오를 단단히 다진 사제들이 와서 치유 마법을 펼치더라도 효과가 없었다. 금세 더 악화되었으며 생명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성령의 힘이여, 여기 고통 받는 이를 구원해 주세요. 치료의 손길!”

“이쪽이요!”

“이쪽도 아파요. 곧 죽을 것 같아요.”

사제들이 생명력을 보충해주었지만, 땅에 드러눕는 유저들은 계속 늘어만 갔다.

신성 마법을 펼치지 못할 정도로 마나가 소진되었다.

< 알킨 병에 감염되었습니다.

육체의 저항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알킨 병이 옮았습니다.

손발이 떨리고, 어지럽습니다.

매초마다 11씩의 생명력의 피해를 입습니다.

최대 생명력과 마나가 감소합니다. 

신성 마법의 효과를 낮춥니다. >

신의 가호를 받아서 질병, 저주에는 탁월한 사제들까지 병에 옮았다.

“피해! 이건 해결책이 없어.”

“가까이 가지마!”

“우린 버리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구해주세요. 여러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성직 계열의 유저들마저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땅에 드러누워서 격리된 채로 죽어가는 유저들.

“크흑, 지더라도 시원하게 싸워보고 싶었는데…”

“레벨이 300을 넘었는데. 병에 걸려서 죽을 줄은 몰랐어.”

“헤르메스 길드. 이 비겁한 놈들.”

유저들의 일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초라도 씹으면서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죽어가기 마련이었고, 레벨이 높을수록 시간차로 좀 더 버텼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일부 유저들을 격리시키는 것으로 해결을 해보려 했지만, 알킨 병의 감염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멀리 피한 유저들도 알킨 병에 걸렸고, 격리가 되기도 전에 감염되는 이들이 속출했다.

* * *

할마, 마르고, 레위스, 그랜.

뒤치기의 4인조는 가르나프 평원에 와서 놀고먹던 중이었다.

“전투야 뭐 벌어지건 말건.”

“맞아. 우리가 알 바 아니지.”

“크크큿. 크게 싸웠으면 좋겠다. 우리가 와서 본 보람이 있게 말이다.”

산해진미가 모여 있는 식당가에서 맛집을 찾아다니고, 풀죽신교의 유저들과도 친해졌다.

“뒤치기도 인맥이 필요하잖냐.”

“암. 어떤 호구가 있는지를 알아서 같이 던전에 들어가야지. 그리고는… 슥!”

별 생각 없이 가르나프 평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싸우지 않고 멀찌감치 도망 다니면서 구경이나 하려고 했으니 걱정거리가 없었다.

베르사 대륙이 멸망하더라도 즐거울 뒤치기의 4인조!

불타는 유성이 평원을 강타할 때에도 그들은 감동했다.

평원에 커다란 버섯구름이 일어나고, 대지가 뒤흔들린다.

멀리서도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후끈한 화염 폭풍이 불어오는데, 일생일대의 경험이었다. 

“와, 대박.”

“끝내준다. 이것이 스케일!”

“역시 헤르메스 길드잖아.”

“우리가 바드레이거나 라페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맨날 도시에 유성 떨어뜨리면서 살거야.”

“도시들 다 부숴버리고… 개꿀잼이겠다.”

뒤치기의 4인조는 감개무량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 혼란 후에 부상자들의 뒤통수를 칠 기회란… 

“죽기 직전까지 다친 애들 찾아보자.”

“맞아. 도와주는 척하고 다가가서 쓱싹!”

“크흐흐흐. 우리 벌써 나쁜 짓을 시작하는 거냐. 흥분되게?”

뒤치기의 4인조들이 유성이 떨어진 지역으로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대기는 뜨겁게 프라이팬처럼 달궈져 있었으며, 땅에서는 화염이 이글거리며 솟구쳐 올랐다. 

“여긴 위험합니다.”

어떤 유저가 길을 막았지만, 할마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사람을 돕기 위해 가야 합니다.”

“더 가시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힘으로 밀고 지나갔으리라.

뒤치기의 4인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악당으로 성장했다. 

“옳은 일을 하는데 목숨이 중요합니까? 이 한 목숨이 뭐가 아깝다고 아낍니까?”

“아아.”

“들어가겠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구해오겠습니다.”

가까이 있던 유저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유성이 떨어진 지역에 진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 식당가였는데. 해산물 요리집도 있었어. 전복 좀 더 달라고 떼를 썼었지.”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보이네.”

대지는 깊게 패였으며, 건물들은 파괴되어 폐허로 변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대지의 균열에서 솟구치는 화염에 그들조차 위태로워보였다. 

“으으으.”

“살아 있는 사람이다.”

뒤치기의 4인조는 쾌재를 부르며 이동했다.

불이 나서 밝긴 하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이 가려진 사이에 나쁜 짓을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이 가서 만난 사람은 하반신이 큰 바위에 깔려 있었다. 그렇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발달된 목 근육, 만두귀가 보였다.

바로 검삼치였다.

“헉!”

“오, 도와주러 온 사람들인가?”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까지 깔렸다.

뒤치기의 4인조는 슬그머니 칼을 꺼내려다가 주저했다.

‘분위기 장난 아니다.’

‘이거 진짜 죽여도 돼?’

‘괜찮은 거야?’

자신들끼리 눈빛을 마주치며 슬그머니 다가가긴 했지만 공격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거부했다.

‘이 아저씨 눈빛 좀 보소.’

‘왜 이렇게 험악해. 차라리 몬스터가 낫겠다.’

사람의 팔뚝에 있는 근육이 꿈틀거리는 걸 보고 공포를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동시에 상대가 누군지도 알아차렸다.

‘검의 귀신들 중의 한 명이다.’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아르펜 왕국의 유명인들이었다.

그랜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치셨네요.”

“별 건 아닌데. 바위 좀 치워주겠는가?”

“예. 도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쪽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으니 좀 도와주세요!”

뒤치기의 4인조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검삼치의 몸을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치웠다. 

“헉!”

“아… 부러지셨네.”

검삼치의 허벅지는 보기 징그러울 정도로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다.

로열 로드에서도 고통을 느낄 수 있기에 당연히 꽤나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

높은 레벨 때문에 살아남았겠지만 생명력과 체력 역시 상당히 저하 되어 있을 게 분명하리라.

뒤치기의 4인조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저희가 가서 사제님을 빨리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사제? 아냐. 내가 치료할 수 있어.”

“사제는 아닌 것 같고… 성기사였습니까?”

“그건 아닌데. 약초 좀 있나?”

레위스는 배낭에서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되는 붉은 약초를 꺼냈다.

“조금 있긴 합니다만 큰 도움은 안 되는데요.”

“고맙군. 이거면 돼.”

검삼치는 부러진 다리에 붉은 약초를 슬쩍 붙였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다리를 잡았다.

뿌드드드득!

억지로 뼈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다리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역시. 오랜만에 해봐도 잘 되는데? 로열 로드에서는 처음이지만 말이야.”

“…”

“룰루루.”

검삼치는 콧노래를 부르며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았다. 

할마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제가 치료 마법을 써줘야 할 텐데요.”

“나 투쟁의 파괴자야.”

“그거 혹시 바탈리 교단의…”

“맞아.”

위드 때문에 투쟁의 파괴자란 호칭이 최근에 갑자기 유명해졌다.

“싱그러운 회복력? 이거 때문에 부상 같은 건 금방 나아. 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지.”

“뭔데요?”

검삼치가 타오르는 불길에 왼팔을 넣었다.

이글이글!

팔에 불이 붙어서 타는데도 태연하게 그것을 지켜봤다. 

“이 정도면 딱 4도 화상이거든. 이러면서 화염 저항력 올리면 재밌더라고.”

“…”

로열 로드가 실제와 동일한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꽤나 아프다.

정신적으로도 생살이 타는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데 그 마저도 정상인에게는 힘들었다. 

“딱 죽기 직전까지만 불로 지지면 맷집이나 화염 저항력이 오르기도 하더라고. 좋은 방법 아닌가?”

“그…렇네요.”

“로열 로드가 재밌긴 하지만, 너무 막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슬 더 강해지려고.”

“추, 충분히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검삼치는 거짓말처럼 몸을 일으키더니 씩 웃었다.

“그럼 착한 친구들. 같이 사람들을 구해보자고.”

뒤치기의 4인조는 결국 순한 양이 되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함께 했다.

* * *

북부의 비상전략상황실에 속해 있던 유저들은 자신들이 방심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20개 군단을 과감하게 투입할 수 있는 하벤 제국의 군사력이 놀랍습니다.”

“중앙 대륙을 다스리면서 쉬지 않고 전투력을 몇 배는 향상시켰다고 봐야죠.”

“처음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벤 제국이 무적이라고 불리지만, 북부 유저들은 매번 승리를 거두었다.

가르나프 평원에 모인 어마어마한 인원을 믿고 있었는데, 초반부터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뼈저린 후회와 반성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지금까지 대응하긴 어려운 공격들이었다.

“적의 군대가 사방에서 찔러오고 있습니다. 초보 유저들로서 막기는 불가항력입니다.”

“거의 피해도 못 주고 있다고 하는 군요.”

“방어 병력을 투입할 수 있나요?”

“그게 쉽습니까. 20개나 되는 진격로를 막아서기도 어렵고, 북부의 고레벨 유저들로 구성이 되었던 타격대도 너무 피해가 큽니다.”

“타격대까지… 우리 움직임을 다 보고 있었던 거죠.”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첩보원들을 내보내서 가르나프 평원을 실컷 정찰했다. 

꽤나 유명하거나 영향력이 큰 유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골라서 유성을 낙하시켰다.

주요 지역이 통째로 증발하면서 시작부터 많은 유저들이 사망하고 말았다.

“판제롭 유령 기사단만 상대해야 합니다. 그들을 어떻게든 막아야 돼요.”

“그게 쉽질 않습니다. 레벨 600대가 넘는 기사단이에요. 레벨 200이하의 유저들은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서 싸우지 못합니다.”

“물리 피해, 마법 피해, 신성 마법에도 다 면역이라니. 그래도 분명 허점이 있을 겁니다.”

“알킨 병이 더 곤란합니다. 지금 감염된 유저들이 최소 3만 명이 넘어요.”

“30분 전만 해도 7천 명이라고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이 더 퍼진 거죠. 어쩌면 지금 10만 명을 넘겼을 지도 모릅니다.”

풀죽신교의 비상전략상황실에도 대혼란이 벌어져 있었다.

20개의 군단으로 나뉘어 쳐들어오는 제국군의 진군 속도를 늦추고, 조금씩이라도 반격을 가하기 위한 군사적인 준비를 했다. 

전투를 기다리던 여러 죽 부대에 동원령을 내리고, 병력의 조합과 위치, 공격 방향등의 전술을 급히 짜냈다.

그렇지만 알킨 병과 판제롭 유령 기사단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대비책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웠다.

“이대로 다 죽자는 말입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법이 없는 것을…”

“뭐라도 해야 하는데 갑갑하기 짝이 없습니다.”

풀죽신교의 성녀 레몬!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대생이었다.

평소에는 풀죽신교의 마스코트 같은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머리에 끈을 질끈 동여맸다. 

“방금 위드님으로부터 귓속말이 왔어요!”

“…!”

레몬의 말에 웅성거리던 천막이 딱 조용해졌다.

풀죽신교의 지휘 체계라는 게 공식적으로는 없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전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한다.

“지금 위드님이 오신대요!”

“…!”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펼쳐서 위드는 동료들과 함께 전투가 벌어지는 가르나프 평원에 도착했다.

둥! 둥! 둥!

거센 북소리와 함성이 들렸다. 

 - 우리는 노래하네.

승리와, 영광과, 사랑과, 미래를.

밝고, 즐거움으로 

내가 가진 용기로 일어서네.

별을 조각했고,

땅을 이루며,

사람들을 이끄는 자여,

바드 마레이가 위드의 주제곡인 용기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만 명이 넘는 바드들이 함께 연주를 했으며, 가르나프 평원의 유저들도 입을 모아 떼창을 했다.

 - 걸어간 발걸음과 위대한 흔적이

손을 잡고 뒤따르는 이들을

따뜻하게 미소 짓게 하네.

꿈을 꾸고 싶다면

다가오는 운명을 피하지 말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

함께 걸으리라.

바드의 비기인 광야의 연주가 발동되면서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빛들이 어우러졌다.

영역을 넘어서 다투고, 합쳐지고,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빛의 쇼!

“분위기가 나쁘지 않네요?”

“그러게요. 헤르메스 길드로부터 공격을 크게 당했다고 하더니 말이에요.”

페일과 벨로트가 한 마디씩 했다.

가르나프 평원도 워낙 넓기 때문에 불타는 유성의 파괴 범위나 알킨 병의 여파는 이곳까진 퍼지지 않았다.

바드 마레이의 연주에 따라 열광적인 분위기만이 가득했다.

“어? 저 사람 방금 나타났어.”

“텔레포트인가. 마법사 스킬이라면…”

“저 분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아?”

주위에 있던 유저들이 위드와 그 일행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위드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펴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권력을 얻고 출세를 하다보면 역시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맛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전쟁 노예 페일님이다!”

“낚시꾼 제피님도 있어.”

“진짜 잘 생겼네. 비율도 좋고.”

“그 옆에는 화령님이잖아. 로브를 입고 있어서 몰라봤어.”

“와… 수르카님이랑 다 있네!”

사람들의 눈에는 페일을 비롯한 동료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전형적인 위드의 평범한 외모!

평소에 자주 입던 초보자 복장도 아니고 파비오의 중갑옷 때문에 외관이 많이 달라진 것도 이유였다.

그리고 몇 초 후, 위드를 발견하고 말았다.

“위드님이닷!”

“위, 위, 위, 위드님이 오셨다!”

 - 걸어간 발걸음과 위대한 흔적이

손을 잡고 뒤따르는 이들을

따뜻하게 미소 짓게 하네.

꿈을 꾸고 싶다면

다가오는 운명을 피하지 말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

함께 걸으리라.

바드 마레이의 노래가 계속 되고 있었지만, 위드가 나타났다는 들썩거림은 군중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위드님이 여기 왔다고?”

“정말 전쟁의 신 위드님이야?”

“와. 방금까지 방송도 봤었는데.”

“진짜다! 위드님이 오셨다.”

마법사들이 공중으로 솟구치고, 유저들이 북적였다.

위드와 그 일행들이 도착하고 귓속말이나 채팅으로 불과 20, 30초 만에 반경 3킬로미터까지 소문이 쫙 퍼졌다.

“보러 가자!”

“나 완전 팬인데. 위드님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어.”

“위드님. 한 마디만 해주세요!”

군중들 사이에서 거센 환호가 일어났다.

공중에 떠 있는 마법사들은 가르나프 평원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사탕을 본 개미떼처럼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드 마레이가 그 광경에 연주를 중단하려고 했지만, 위드가 귓속말을 보냈다.

“노래를 계속 해주십시오.”

조각사로서의 경험은 노가다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예술을 하던 자신이다.

위드가 나타나기 전까지 마레이는 열정으로 노래하며 군중들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하늘까지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이는 음악을 자신의 등장으로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 노래하라. 

더 크게 노래하라.

바람이 시작되는 곳,

맑은 물방울 소리,

땅의 큰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여.

고동치는 마음이 터져서

세상이 흔들리네.

노래하고,

눈을 들어서 보라.

발걸음을 맞추어서 걷자.

기적의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여!

장엄하게 흐르던 음악이 끝났다.

모든 유저들의 시선을 받고 있던 위드가 손을 들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페일이나 동료들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최고다!”

“멋진 음악이었습니다.”

군중들에게서 힘찬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용기의 노래를 감상하셨습니다.

10,239명의 바드들이 참여한 노래.

대륙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연주된 곡을 들었습니다.

단 하루 동안, 모든 회복력이 200%가 됩니다.

육체가 고양되어 체력의 최대치가 25% 증가합니다.

모든 스탯이 7%만큼 늘어납니다.

영웅적인 의지!

직업에 따라 잠재력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숫자에 따라 최대 12%만큼 늘어납니다.

광야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통찰력으로 더 높은 습득을 합니다.

연주의 효과가 20% 증가합니다.

지식이 2 높아집니다.

통찰력이 3 증가합니다.

예술 스탯이 7 증가합니다. >

음악을 듣고 누리는 효과!

위드의 입가에 가벼운 썩은 미소가 맺혔다.

‘바드도 상당히 좋은 직업이군. 이 정도면 써먹을 일이 많겠는데?’

계획을 바꿔서 네크로맨서를 마스터하고 다음 직업으로는 바드를 선택하는 것도 고민이 될 정도였다.

언데드들도 춤추게 만드는 바드!

‘내가 노래는 되니까. 악기 연주만 조금 연습하면 돼. 하프는 다룰 줄 아니 도움이 되겠지.’

로열 로드 유저들의 청각을 위험하게 하는 중대한 착각!

검술이나 주력 전투 스킬들은 관련 직업이 되면 더 빠르게 오른다.

하지만 이미 고급 8레벨을 넘은지가 한참이었고, 투쟁의 길에서도 숙련도를 얻었다.

현재는 고급 8레벨 68%.

검사로 전직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므로 진지하게 바드도 고려가 됐다.

조각사로서 쌓아놓은 예술 스탯이 무지막지했으니 바드와 같은 예술 계열의 직업은 전직하자마자 거장의 소리를 들을 만 했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거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말이야.’

여러 개의 계열사를 둔 재벌 회사가 군고구마 장사에 나서는 격!

위드가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사이에 마레이와 연주자들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으로 귀가 멍해져 있었다.

매번의 연주가 최고의 반응을 갱신해왔지만, 전투가 벌어진 지금이 가장 거셌다.

“흠흠.”

위드가 마레이에게 걸어가기 시작하자, 군중들 사이에서는 바다가 갈라지듯이 길이 열렸다.

“위드님…”

마레이는 감격으로 눈을 글썽였다.

‘나를 격려해주기 위해 오고 있구나.’

이번 전투를 위해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연주자들을 모았다.

노래를 만들고, 다 같이 연습했다. 

흘린 땀방울과 성취감!

멋진 무대를 꾸민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위드가 알아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위드는 무대에 올라가서 말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럭저럭 노래를 잘하시는 군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위드님.”

마레이는 부탁을 듣기 전부터 각오를 다졌다.

자신의 연주를 끝까지 이어지게 해준 것도 그렇고, 위드의 모험이나 업적은 가능한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어떤 어려운 부탁이라도 들어주면서 친해지고 싶었다. 

“제가 노래를 한 곡 하려고 하는데 연주 가능하신가요?”

“위드님의 노래요?”

“예. 지금 부를 겁니다.”

“그렇다면 영광이죠.”

마레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고, 그 직후 깨달았다.

대체로 위드의 노래라는 게 지금까지 어떠했는지를!

* * *

가르나프 평원의 외곽에서는 하벤 제국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걸 사람들도 알았다. 

알킨 병, 판제롭 유령 기사단에, 불타는 유성 소환이 언제 다시 하늘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당장 기대되는 건 위드가 부를 노래였다.

“시청자 여러분. 주목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쟁의 신 위드가 노래를 할 것 같습니다.”

“위드의 노래. 그것은 곧 하벤 제국과의 전면전쟁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각 방송국들도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위드가 있는 일대에 몰린 백만 명이 넘을 유저들 외에도 가르나프 평원의 1억 명 이상으로 집계된 이들도 대부분 보고 있었다.

이 순간, 하벤 제국군과 싸우고 있지 않는 이들라면 전부 시청했다.

“위드님이 노래를?”

“드디어 오셨다.”

심지어 알킨 병에 걸린 유저들까지도 수정 구슬을 통해 위드가 나오는 화면을 봤다.

지금까지는 헤르메스 길드에 크게 얻어맞기만 했지만, 그 흐름을 바꾸어놓으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위드는 항상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극복해냈다. 재능이나 운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노력과 도전 정신으로 일구어냈다.

방송 진행자들도 위드가 나타나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불사의 군단과 싸울 때에도 위드가 노래를 했었죠. 노래를 부른 위드는 정말 엄청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오크 카리취의 곡은 정말 명곡입니다. 음악가들은 동의할 수 없겠지만, 어린이들 중에는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유치원생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소풍을 갈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 * *

마레이가 다른 바드들과 연주를 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위드에게 물었다. 

“악보가 있습니까?”

“아뇨.”

“그럼 제가 어떻게 연주를 하죠?”

“노래가 시작되면 즉흥적으로 맞춰서 음악을 연주하면 됩니다.”

“아…”

가수에게 맞춰서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악기 연주!

위험한, 고난이도의 작업이 될 테지만 마레이는 바드의 직업을 얻고 나서 실용음악학과로 대학을 다녔다.

작곡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했고, 경험도 많은 만큼 연주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에 무엇보다 더욱 불타오르는 기분.

마레이는 이 자리에 모인 1억 명의 청중들에게,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연주를 잘하기 위해서, 대충의 구성이나 몇 구절이라도 먼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노래를 안 만들었는데요?”

“아직… 안 만들었다고요?”

“지금 만들 겁니다.”

마레이는 혈압이 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참고 말했다. 

“주제나 가사라도 알려주시죠. 가사를 들으면 미리 분위기라도 파악할 수 있거든요.”

“가사도 이제 지어야죠.”

“…”

“음악이 이끄는 흐름에 그냥 맡기세요. 감정을 따르는 게 좋은 음악입니다.”

위드는 음악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말할 만한 대사를 서슴지 않고 했다.

마레이는 오른손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혹시 지금까지 부른 곡들도 그런 식으로 만드셨습니까?”

“예.”

“음악을 즉흥적으로만…”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없던데요?”

위드가 당당하게 무대의 중앙에 설 때, 마레이는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뒤통수라도 후려치고 싶은 감정이었다.

‘이런 규모의 무대에 멜로디도 모르는 즉흥곡, 그걸 음치에 맞춰야 하다니.’

음악과 함께 한 삶에 회의가 일어날 지경이었지만,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바드 10명에게 신호를 보냈다.

즉흥곡이니 연주가 마구 엉키면 안 되기에 마레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줄 수 있는 실력자들로만 우선 조합했다. 

그들 중에는 마레이처럼 바드의 비기를 익힌 유저도 있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최고의 바드 11명이 전부 이 자리에 있었다. 

 - 마레이 : 각오 단단히 하세요. 상상 그 이하의 음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바드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뭐든 해봐라. 설마 우리가 못 맞춰주겠냐.’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곡. 장엄하고 웅장한 멜로디로 가겠지. 그러면 리듬도 단순하게 뽑아도 되니…’

‘나도 연주를 하며 박자를 무시해야 되나?’

위드는 바드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군중들을 기다리게 한 후에, 조각칼을 꺼냈다.

“우오오!”

위드의 조각칼이 보이자마자 열기가 올랐다.

가르나프 평원에 만들어진 수많은 조각상들까지 있었으니 조각술의 인기가 대단했다. 

“먼저 무대가 무대이니만큼 조각할 것이 있습니다.”

사사사삭!

큰 바위를 대상으로 매끄럽게 움직이는 조각칼.

마법처럼 빠른 손놀림이었는데, 거의 떠올리는 대로 조각을 할 수 있는 경지였다.

이기적으로 주름진 눈매와 게걸스럽게 벌리고 있는 입.

욕망으로 가득한 코!

크고 두꺼운 이빨은 툭 튀어나와 있었으며, 야만스러워 보이는 근육과 흉터.

너무나도 유명한 모습이었기에 군중들은 바로 알아봤다. 

“설마 저건…” 

“꺄아아아악!”

“너무 멋있어요.”

“카리취! 카리취!”

위드가 만드는 조각품은 오크 카리취!

조각품에서 예술적 가치 같은 것이야 찾아보려 애써도 소용이 없다.

불사의 전쟁이 큰 이슈를 끌고 나서 수많은 조각사들이 오크 카리취의 조각품에 도전을 했었다.

그렇지만 어떤 조각사도 오크 카리취의 조각에 성공하진 못했다.

외모는 비슷할 수 있었지만, 끊임없는 욕망과 집착, 원한!

눈동자는 기본이고, 삐뚤어진 이빨까지도 욕구로 가득하다. 

이런 미묘한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얼굴에 새겨진 오크 조각품은 감히 만들지 못했다.

조각사들 사이에 위드의 실력이 발군으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카리취의 조각상!

‘돈. 돈. 돈. 돈. 돈.’

위드는 돈을 떠올리며 오크 카리취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과거보다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뱃살은 더 나왔다.

부유해진 현재에 대한 여유!

그러나 부자일수록 더하다는 말처럼 눈은 더욱 험악하게 찢어져 있었고, 이빨은 더 날카로워졌다.

아름드리 통나무 같은 허벅지도 굵어졌으며, 힘줄마저도 전투적으로 더 굵었다.  

오크 카리취가 나이를 비열하게 먹었다면 변했을 모습을 조각해내는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조각술.

위드의 조각칼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오크 카리취의 조각상을 만드는 광경을 군중들은 직접 보게 되었다.

“이건 경이롭다.”

“감정이 담긴 조각상인데도… 멈추지 않아.”

“예술 계열. 그것도 조각사는 정말 다른 직업들과 차원이 다르구나.”

“난이도가 비교가 안 되는 거 같아. 저 정도는 해야 마스터인가.”

진정한 예술 작품을 조각한다면 위드도 고민을 꽤나 했으리라.

기념품으로 바가지를 씌워서 팔아먹기 위해 수없이 반복했던 사슴, 여우, 토끼상!

그 후에 가장 자신 있는 조각상이 오크 카리취였다.

“조각 변신술!”

위드는 조각 변신술로 오크 카리취로 변신하는 광경도 보여주었다.

팔 다리가 길어지고, 온 몸이 근육질로 변하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인간으로서 적당하던 팔뚝이, 거칠고 우락부락한 오크의 팔로 변해 있었다. 

군중들을 열광시키기 위한 쇼맨쉽!

“우와아아아!”

“카리취, 카리취!”

오크 카리취로 변하자, 무대 밑에서 누군가 글레이브까지 하나 던져주었다.

“취익! 취익!”

글레이브를 들고 휘두르며 위협적인 자세까지 취해주었다.

오크 카리취는 백화점에서 인형이나 이모티콘으로도 매일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이런 자리에서 한 번 더 변신해주면 매출이 또 오르겠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캐릭터 산업을 위해서 바쁘더라도 기꺼이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위드!

다른 조각사들이 절대 따라하지 못할 오크 카리취의 정신 그 자체였다. 

“취이이익!”

위드는 시간이 급하기에 콧소리를 가다듬고, 곧바로 즉흥적인 노래를 불렀다.

 - 밤은 이제 어둡네.

유성이 떨어졌고, 병도 퍼지네.

취이익.

어둠이 찾아와서인가.

아픔에 물들었지.

마레이와 바드들은 가사에 맞춰 잔잔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가사가 생각보다 그럴 듯한데?’

‘최악은 아니네. 노래 같긴 해.’

바드들의 음성 증폭 스킬 때문에 위드가 작은 목소리로 불러도 부드럽게 멀리까지 퍼졌다. 

‘의외로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는구나.’

-  덤벼라. 세상아.

췻췻췻. 추추추!

갑자기 노래의 템포가 빨라졌다.

몇 마디를 천천히 걸어갔다면, 갑자기 달리는 것이다.

 - 검, 도, 창, 도끼, 활, 철퇴!

뭐든지 휘둘러서 박살을 내주마!

취잇!

마법, 정령술, 소환술, 저주!

뭐든지 써서 아작을 내주마!

취취췩!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리며 실컷 내질렀다.

일단 노래라면 강렬하게 지르는 맛이 아니던가.

새벽에 술 취한 사람들에게 배운 노래 실력!

 - 와라. 와라.

다 해치우고 전리품을 얻을 거야.

주우면 내꺼. 

다 죽여. 다 죽여!

취이이이잇!

가르나프 평원을 쩌렁쩌렁 울리는 위드의 사자후!

노래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걸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헤르메스 길드와 싸워야 한다는 걱정 따위는 날려버리는 흥겨운 노래.

 - 아침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싸우자.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취취췻!

오늘은 부자가 될 거야.

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어깨를 맞대고 싸우자.

다 같이 싸워보세.

추이추이췻!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노세노세. 젊어서 싸우고 노세!

이겼다. 이겼어!

취이이이익!

마레이와 바드들은 흥겨움에 정신없이 연주했다. 

사자후에 맞춰서 악기를 연주하기가 바빴던 것이다. 이윽고 마지막에 커다란 콧소리의 노래가 끝나고 정적이 찾아왔다.

다 끝나고 나서야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1억 명 앞에서 망했다.’

‘개망신.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있어. 잠들기 전에 분명 이불을 차고 말겠지.’

‘평생 잊지 못할 흑역사가 만들어지고야 말았다.’

바드들은 노래를 마친 위드를 보았다.

오크 카리취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온 세상을 끌어안을 듯이 두 팔을 펼치고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아… 도망가고 싶다. 부끄러운데.’

그때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곧 우레와 같은 소리로 퍼졌다.

“위드 만세!”

“헤르메스 길드 따위는 쓸어버립시다.”

“풀죽, 풀죽!”

가사와 음정은 엉망이었지만 경쾌함과 박력은 있었다.

무엇보다도 위드가 당당하고 큰 소리로 부르니, 그 분위기가 군중들에게도 전염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오와아.”

“딱 이런 느낌이지.”

“그래, 인생 뭐 있냐! 싸우고 부대끼는 날도 있는 거야.”

다른 지역에서 수정 구슬로 영상을 본 유저들도 막혀 있던 가슴이 시원해졌다.

그들은 하벤 제국의 만만치 않은 공격에 내심 걱정이 컸다. 

죽음, 패배, 정복.

안 좋은 단어들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위드의 흥겨운 노래는 그런 기분들을 전부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인생에서 내일을 알 수 있나?

시원하게 싸우면 된다.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 잠에서 깨어나라. 모두 공격하라!

방송을 들은 가르나프 평원의 유저들 대부분이 환호했다.

“가자. 몽땅 때려 부수러!”

“다 죽여!”

“먹고 노세!”

* * *

4군단을 지휘하는 학살자 칼쿠스!

그가 맡은 지역은 불타는 유성이 떨어졌던 곳과 가까웠다.

“우리가 가장 신속하게 적진을 꿰뚫는다.”

반란군이 많은 툴렌 지역에 배치되었던 4군단은 지속적으로 병력의 충원과 강화가 이루어졌다.

군단별로 전력의 차이는 있었지만, 1군단을 제외하면 4군단이 가장 많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사단이 적진을 돌파!”

“레인저들이 지정된 위치에 배치되었습니다.”

“거점을 중심으로 주변을 쓸어버린다.”

4군단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북부의 유저들을 줄이는 게 중심이 아니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과 기사들이 길을 열고 전군이 따라서 움직였다.

가르나프 평원의 외곽에서 진군은 조금도 지체되지 않았고, 군중들의 내부로 들어오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숫자만 많을 뿐. 이들은 군대가 아니군.”

칼쿠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단단히 뭉쳐 있는 유저들을 기사단으로 꿰뚫는다. 그것만으로도 가까이 있던 초보 유저들은 겁에 질려서 제대로 저항도 못했다. 

“어린 아이들을 쥐어 패는 느낌일까. 너무 간단하군.”

죽이고, 죽인다.

덤벼드는 유저들이 많아질수록 시체들을 산처럼 쌓으며 돌파했다.

 - 스티어 : 위드 출현!

위드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위기감이 생기지 않았다.

칼쿠스는 군중들 속에서도 나약한 북부 유저들에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소수의 400대나 500대 레벨을 가진 유저들조차도 따로 몇 명이 덤벼들어서는 군단의 힘에 짓밟힐 뿐이었다.

전투가 벌어져서 몇 번 압도당한 이후부터는, 고레벨 유저들조차 도망치기에 바빴다. 

“가라, 우리가 최고임을 증명하라!”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한 적 없는 칼쿠스는 군대의 진군을 독려했다.

“싸우자!”

“제국군을 막아요.”

“겁먹지 말자.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게 아니라, 멋지게 죽는 거야.”

그런데 전장의 바람이 바뀌어 있었다.

맥없이 죽어나가던 유저들이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우에우에!”

“우리가 간닷.”

“다 죽여!”

제국군의 진군을 경외와 두려움으로 지켜보던 유저들이 뛰어와서 부딪치는 것이다.

불나방처럼 목숨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하는 유저들.

그 뒤에는 더 많은 유저들이 아무 무기나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그래봐야 보잘 것 없는 초보들이다.”

“기사단이 돌파해!”

칼쿠스의 군대는 사방에서 덤비는 유저들을 처리했다. 

그럼에도 잔잔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수정 구슬로 위드의 노래를 들은 유저들은 무기를 쥐었다.

“싸우려고 왔는데, 싸우면 되는 거잖아.”

“불리한 거 따지기는 무슨… 여기서까지 그러고 싶진 않아졌어.”

“가자고, 어디든!”

몇 명의 유저들이 앞장서면, 무섭게 사람들이 모여서 합류했다.

“우린 1군단을 향해서 갈 겁니다.”

“이쪽은 2군단을 공격하죠!”

“3군단도 가야 하는데… 거긴 너무 멉니다. 부근의 형제들이 어떻게든 싸워줄 테니 우린 가까운 곳부터 갑시다.”

“어디든 가요. 싸우다가 죽읍시다.”

그들을 지휘할 사람은 없다.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 초보들의 뒤를 따르는 경우도 흔히 벌어졌다.

“뭐야, 갑자기 이 분위기.”

“완전 두근거린다.”

헤겔, 벨라, 르미, 나이드.

한국대학교의 가상현실학과 학생들도 분위기에 휩쓸렸다.

무기를 꺼내들고 하벤 제국군이 공격해오는 방향을 향해 군중들이 걷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투를 위하여 빠르게 걸어가는 그 박력!

불타는 유성 소환, 알킨 병 등으로 당황했지만, 위드가 나타나자마자 싸울 의지를 갖춘 것이다.

“이거 못 이길 거 같은데. 우리도 가서 죽어야 돼?”

헤겔이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르미가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이 사람들과 같이 싸우자는 거지.”

“왜 싸워. 그러다 죽으면 우리만 손해인데.”

“맨날 이익만 생각하며 사냐?”

“응. 그래야 손해가 없지.”

구경이나 하려던 헤겔은 문득 하늘을 봤다.

쏴아아아아.

‘바람 소리인가?’

무언가에 의해 별들이 가려졌다.

 - 꾸으아아악!

 - 째재잭!

들려오는 새소리.

“춤추는 빛!”

어느 마법사에 의해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밤하늘이 새들로 뒤덮여 있었으며, 전사들이 한 명씩 등에 타고 있었다.

조인족과 북부 유저들 중에서 추리고 추린 공수부대원들!

기동력이 뛰어난 그들이 나타나서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꿀꺽.

헤겔은 마른 침을 삼켰다.

하벤 제국과 아르펜 왕국!

베르사 대륙을 정말 그 주력이 맞붙으려고 했다.

“이런 전투에는 꼭 끼어야 하나? 어디가서도 자랑거리가 될 텐데.”

조용히 고민에 잠겼던 헤겔은 뒤늦게 친구들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하고 급히 뛰었다.

* * *

진리의 마법사 제스트.

그는 중앙 대륙에서 로열 로드를 시작하여 일찍이 명성을 떨쳤다.

마법사 중에서 서열 3위 안에 드는 실력자에, 하벤 왕국에서 지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는 하벤 왕국과 칼라모르 왕국이 영토가 넓고 국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인연으로 헤르메스 길드에 속해서 지내오다가 얼마 전에 아르펜 왕국으로 이주를 하게 됐다.

“헤르메스 길드가 뭐든 지원을 해주지만 공짜는 아냐.”

중앙 대륙이 혼란스러울 시절에는 전쟁에서 활약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 이후 아르펜 왕국과 대립하면서, 친구들에게 떳떳하게 살고 싶었다.

명예를 파는 대가로 그들의 하수인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번식하는 화염의 정화.”

제스트는 멀리서 하벤 제국군 8군단을 향해 마법 주문을 외웠다.

장거리 마법 주문!

하벤 제국군의 진영에 화염의 정화들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크게 타올랐다.

“대지의 몰락.”

기사단이 돌격하는 것을 보고는 대지 마법을 외웠다.

기사단이 전진하는 땅이 일자로 갈라지더니 그들을 집어삼켰다.

< 마나가 고갈되었습니다. 

현재 남은 마나는 4%입니다. >

장거리 광역 마법은 마나를 심하게 잡아먹었다.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좀 쉬어야겠군.”

제스트가 물러나려고 할 때, 8군단의 진영에 변화가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제스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나온 것이었다.

“이런, 플라이!”

제스트는 비행 마법을 펼쳐서 뒤로 빠졌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추적도 대단히 빨랐다.

도둑, 암살자, 레인저들처럼 속도가 빠른 직업들이 추적했다.

제스트와의 거리가 좁혀지려고 했지만, 그 광경을 본 북부 유저들이 나섰다.

“막아. 우리가 막아!”

“어서 피하세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스킬을 쓸 때마다 몸으로 막은 북부 유저들이 죽어나갔다.

그렇지만 그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제스트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고 했다.

“지금 죽여야 돼.”

“제스트! 도망치지 못할 거다.”

단숨에 수백 이상을 죽일 수 있는 직업, 마법사.

8군단에 속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집요하게 추적했다.

200미터. 100미터.

그들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큭.”

“컥!”

“으악!”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빠르게 북부 유저들을 돌파하면서 제스트를 쫓고 있다가 돌연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여기 암살자가 있다!”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암살자는 북부 유저들 사이에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어느새 열 명 밖에 남지 않았고, 이곳은 북부 유저들의 한복판!

“돌아가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8군단의 진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막아요!”

북부 유저들은 다시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이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강력한 광역 스킬을 쓰면서 전장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새벽의 짙은 어둠!

그림자 속에서 짧은 칼날이 튀어나와서 다리와 허리, 목덜미를 연속으로 베었다. 

“끅.”

“이렇게 죽다니…”

한 명씩 남김없이 죽어나갔다.

교묘한 위장술과 기습 공격, 환영을 이용한 암습.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시체 위에 나타난 것은 검은 활동복을 입은 암살자. 

죽음을 몰고 오는 그림자 양념 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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