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1권 : 5장. 와삼이의 기사 (343/520)

5장. 와삼이의 기사

울타르는 11군단장답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땅에 틀어박히고도 벌떡 일어나서 반격을 노렸다.

“섬광의 질주.”

사정거리 10미터, 일직선으로 세 개의 섬광을 쏘는 스킬을 사용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손에 꼽는 유저답게 스킬의 발동과 공격하는 각도가 날카로웠다.

덩치가 큰 오크에게는 피하기가 어려운 기술이었다.

위드는 로아의 명검을 들었다.

“달빛 조각 검술!”

검술 스킬이 여럿 있긴 했지만 익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섬광의 질주 같은 스킬을 막아내기에 좋았다.

오크 카리취의 몸으로 휘두르는 검이지만 느리면서 부드럽다.

빛을 일으켜서 꼭 필요한 만큼의 빠르기로 막아내니, 울타르가 쏘아낸 섬광들이 아무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튕겨났다.

“취이이익!”

그 직후 위드는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당당하기 짝이 없는 근육질에 험상궂은 오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정면에서 맹렬하게 달렸다.

시각적으로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

“으으익!”

울타르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스킬들이 스쳐지나갔다.

효율이 높은 방어 스킬들도 떠오르긴 했지만, 막기만 해서는 이기지 못한다.

‘가르곤의 해머!’

울타르는 모험을 걸기로 결심했다.

검을 내려치면, 벼락과 바위가 동시에 떨어지면서 반경 8미터 정도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이거나 먹어라!”

위드는 울타르가 검을 들어 올렸을 때부터 경계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의 스킬들이 스쳐지나가고, 전기의 힘이 검에 맺히는 것을 보고 확실한 판단이 섰다.

‘가르곤의 해머다. 저것도 익히고 있었구나!’

위드는 그 스킬을 확인하자마자 대응했다.

“분검술!”

오크의 몸으로 펼치는 검술의 비기!

쿵쿵쿵쿵!

50명이나 되는 오크 카리취가 한꺼번에 땅을 울리며 달려왔다.

“이익!”

울타르가 정면으로 스킬을 내려치자 벼락과 바위가 대지를 강타했다.

위드의 분신들은 스킬을 온 몸에 맞고 소멸되거나, 검을 휘두르면서 바위들을 격파했다.

어떤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뛰어올라서 울타르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어디냐!”

울타르가 분노와 경계로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위드는 차원문으로 몸을 던진 후였다.

세 개의 차원문을 연속해서 이동하면서 울타르의 옆에 붙었다.

“때리는 맛이 좋은데 조금 더 맞자.”

위드가 입을 열기 전까지 전방을 주시하던 울타르는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너, 너!”

울타르는 당혹스러웠다.

몬스터나 유저들을 상대로 많은 전투를 치러봤지만 석궁 견제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전투의 속도가 빠르고 움직임이 예측 불가능했다.

정확히 자신의 허점만을 공략해오는데 완전히 말려든 기분이었다.

‘참격!’

울타르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위드는 육중한 오크의 몸으로 발레를 하듯이 유연하게 발을 뻗어서 손목을 걷어찼다.

“커억!”

그러더니 울타르 쪽으로 몸을 바싹 붙인 후 팔꿈치로 옆구리를 연속으로 두들겼다.

바위를 부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 실려 있는 공격이었다.

빠바바박!

위드가 잡캐이기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주먹질까지 연마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오크 카리취인 상태로 때린다면 맞으면 무조건 아플 수밖에 없다.

위드는 힘과 체중의 차이로 뒤로 밀려나는 울타르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츄르르!”

앞으로 전진하며 다리를 걸어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울타르를 종잇장처럼 가볍게 한 바퀴 돌려서 땅에 내리꽂았다.

꽈아아앙!

땅에 떨어진 울타르인데 굉음이 터졌다.

< 맹렬한 힘이 발동되었습니다.

체력을 약화시키는 공격!

상대방에게 7.8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

조각 파괴술로 예술 스탯을 힘으로 몰아넣은 덕분에 육체적인 공격이 커다란 위력을 발휘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위드는 어느새 로아의 명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더 맞자, 헤라임 검술!”

투쟁의 길에서 멋진 움직임으로 적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정없이 검을 내려치려고 했다.

“빌어먹을. 대지의 갑옷 발동.”

울타르가 입고 있는 갑옷에서 뿌리와 줄기들이 자라더니 몸을 감쌌다.

10분 동안 피해량을 87.4%나 줄여주는 옵션을 발동시킨 것인데 그 결과는 처참했다.

빠바바바박!

맞아도 잘 안 죽으니 계속 맞았다.

울타르는 일어나서 반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위드의 움직임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우면서 느렸다.

꼭 필요한 만큼만 이동하면서, 때론 폭발적으로 빨라지더니 차원문을 통과하며 공간을 마음껏 이용했다.

위드가 휘두르는 연속 공격에 울타르는 정신이 쏙 빠질 정도였다.

맞고, 맞고, 또 맞는다.

“이대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울타르는 궁지에 몰릴수록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큰 스킬에 의존하게 됐다.

위드는 토끼를 막다른 길로 몰아가듯이 완벽하게 공략하고 있었다.

결국 방송으로 수많은 유저들이 보는 가운데 울타르는 목숨을 잃었다.

< 먼 곳의 학살자 울타르가 결투 중에 죽었습니다.

악명이 자자하던 보넴 성의 영주가 사망했습니다.

전투 공적으로 힘이 2 증가합니다.

명성이 4,391만큼 늘어났습니다. >

압도적인 승리!

위드가 오크들이 전투에 이겼을 때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 흐우아아아아아아아!

결투를 지켜보던 유저들도 따라서 함성을 질렀다.

가르나프 평원이 떠들썩해질 정도로 커다란 외침이 가득했다.

모든 유저들이, 방송국에서 오크 카리취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였다.

샤샤샥!

위드의 손은 눈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며 전리품들을 수거했다.

< 전리품. 대지의 갑옷을 습득하셨습니다. >

대지의 갑옷!

대지의 여신 미네의 성물이며, 울타르가 빌려 입었던 갑옷이 전리품으로 떨어졌다.

위드는 메시지 창을 보고 나서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게 웬 로또냐. 아닐 거야. 내 운이 그럴 리가 없어.’

의심도 해봤지만, 손끝에서 느껴진 감촉이 진짜라고 말하고 있었다.

명품의 만질만질하면서도 믿음이 갈 정도로 묵직하고, 깔끔한 감촉!

‘이놈의 팔자가 드디어 한 건 해내는 구나.’

울타르는 살인자 상태였고, 악명까지 높았기 때문에 귀중한 대지의 갑옷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잘 써야 되겠다.’

일반적인 전리품이라면 뺏어서 자신의 소유로 사용해도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대지의 교단의 성물이라면 언젠가 돌려주는 편이 좋긴 하리라.

악덕 기업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청업체들에게 제때 돈을 안 주는 것처럼 말이다.

‘잘 쓰고, 천천히 주면 되겠지. 아주 천천히 말이야.’

위드는 전리품에 만족하며 사자후를 터트렸다.

 - 진격하라. 취익!

* * *

“우리도 싸우자!”

벤트 성의 성주 오베론!

그는 중앙 대륙에서 차가운 장미 길드를 이끌 때부터 높은 신망을 얻어서 따르는 유저들이 수만 명을 넘었다.

오베론은 평소에 벤트 성에서 지역 발전과 안정, 영역 확대를 위해 발을 벗고 나섰다.

초보 유저들이 던전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구출하러 갔던 적도 흔했기에 명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곳은 가르나프 평원이었다.

아르펜 왕국의 성주, 영주, 마을의 자경단장.

어느 직책에 있든 깃발 하나만 들면 구름처럼 많은 유저들이 따랐다.

“여기 오베론이 말한다! 우린 싸우러 갈 것이다!”

오베론이 반격의 외침이라는 워리어 스킬을 이용하여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사방에서 횃불을 든 유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싸웁시다!”

“닭죽 부대에 속해 있는 전사 3백여 명, 함께 참여합니다.”

“오베론 만세!”

“바지락죽 부대원도 있습니다. 근데 뭐 소속이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싸우러 가자는 데요.”

“고위 마법사들 세 명 있어요. 우리 자리도 있을까요?”

주변에서부터 호응하는 유저들.

저 멀리까지 금세 이야기가 퍼지면서 오베론을 중심으로 유저들이 뭉치고 있었다.

밤이라서 인원수는 도저히 알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었다.

오베론은 다시금 외침을 터트렸다.

“이 부근에 있는 적은 하벤 제국의 12군단입니다. 우린 그들을 칩시다.”

“예!”

오베론은 병력을 전진시켰다.

중간에 마주치는 수많은 북부 유저들을 합류시키면서 덩치를 불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레놀이 이끄는 12군단과 조우했다.

“캬하.”

“저 위용은 정말 대단하네.”

제국의 마법 전투 마차들이 환히 빛을 밝히고 있었다.

여덟 마리의 말이 마차를 끄는데, 마법으로 속도와 지구력을 향상시키고, 물리 피해에 대해서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마법 전투 마차에는 기사들이 타서 긴 창을 휘두르며 선두에서 북부 유저들을 학살하며 전진했다.

12군단 소속의 궁병과 마법사들이 원거리 공격으로 일대를 파괴하고 있었으며,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마음껏 날뛰었다.

개개인이 레벨 400대 후반에서 500대에 이르다보니 스킬 한 번에 수십 명씩 우습게 죽었다.

처음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로 싸우는 유저들은 겁에 질리고 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우리의 목표가 여기 있습니다!”

오베론이 이끄는 대규모 무리는 그대로 달려와서 12군단의 측면을 공략했다.

제국군 군단장이며 마법사 그레놀은 부엉이 눈이라는, 밤의 시야를 확보하는 마법으로 그 광경들을 확인했다.

“어이가 없군. 고작 저런 녀석들로…”

오베론이 끌고 온 유저들의 상당수는 싸울 줄도 몰랐다.

마법 전투 마차에 달려가서 몸으로 부딪치고 그대로 회색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인해전술이라더니. 이건 단순히 머리 숫자만 채우는 게 아닌가.”

그레놀은 중앙 대륙을 정복하던 시절의 전투를 떠올렸다.

지금에 비하면 레벨이 낮긴 하지만, 한 때는 다른 명문 길드의 정예들과 팽팽하게 다퉜었다.

승리는 매번 자신들의 것이었지만, 전투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있었다.

“영상으로도 봤었지만 수준 낮은 놈들이군.”

그레놀은 광역 마법을 몇 개 일으켜서 습격 해온 무리들에게 날렸다.

화염과 바람 마법이 조합을 일으켜서 불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선을 제압했으리라고 믿고, 시선을 돌리던 그때였다.

“그레놀!”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레놀은 깜짝 놀라서 마법이 펼쳐진 곳을 봤다.

온 몸에 불이 붙어 있는 키 작은 드워프 워리어!

오베론이 마법을 뚫고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벤 제국군의 병력,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몇 명이 막아보려고 했지만, 도끼와 방패 밀치기에 의해 튕겨나갔다.

그 순간, 그레놀은 유명했던 드워프 워리어의 이름이 생각났다.

“네가 오베론이었구나!”

한때 로열 로드에서도 80위권 안쪽의 강자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하벤 제국이 중앙 대륙을 차지한 이후로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죽여 버려.”

그래도 200미터 이상의 거리가 있었으니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어떻게든 해주리라고 생각했다.

12군단에는 1만 명의 길드원들이 있었고, 그들이 전방에서 싸우긴 하지만 그레놀의 옆에도 백 명은 넘었다.

오베론을 노리고 정령술과 마법 공격들이 일제히 날아갔다.

“거스름의 바람!”

워리어의 이동과 회피를 겸한 기술이 발동되었다.

몸이 작은 드워프 워리어!

오베론이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꾸며 기가 막힐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빗나간 정령술과 마법들은 오히려 제국군을 덮쳤다. 마법 전차가 뒤집어지고, 대지가 그대로 폭발했다.

“걱정 마. 우리가 막아줄 테니까.”

군단장 호위 역할을 맡은 근접 계열의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자신감을 보였다.

상대가 오베론인 걸 알아보고 나서 반갑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들어오다니 자살 행위를 하는 군.”

“포위망을 구성하자고. 도망칠 때 못 잡으면 안 되니.”

오베론은 한 명이고, 자신들은 여럿이다.

호위병으로서 심심한 일만 벌어질 줄 알았는데, 이미 유명한 유저인데다 아르펜 왕국의 성주를 죽인다면 마땅히 자랑거리가 될 만 했으니까.

“밀레암 투척!”

그때 오베론의 손에서 도끼가 날았다.

빙글빙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오는 도끼가 수백 배나 거대해졌다.

“도끼의 비기?”

“방어 기술을 펼쳐!”

어마어마한 도끼 투척 기술!

거대화된 도끼가 그레놀이 있던 지역을 강타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 중에서 마법사와 정령사 5 명이 죽긴 했지만, 그 외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

그러나 그레놀은 봤다.

오베론이 호위 역할을 맡은 헤르메스 길드원들 사이를 통과하는 모습을!

길드원들도 뒤늦게 알아차리고 공격을 가했지만, 여러 개의 공격을 몸으로 막는 동안 오베론이 빠르게 통과해버린 것이다.

“비상하는 날개의…”

그레놀은 근접전은 불리했으니 비행 마법을 펼쳐서 도망치려고 했다.

“어디든 나의 전투 영역을 벗어나지 못해. 이끌림의 속박!”

워리어 계열의 스킬.

적이 도망치거나,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막아버리는 스킬이다.

오베론의 속박에 걸려서 비행 마법은 취소가 되었다.

“이런 무모한.”

그레놀은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달려온 오베론이 멍청해보였다.

설혹 자신이 먼저 죽더라도 헤르메스 길드원들에게 죽임을 당할 게 아닌가.

오베론은 단검을 꺼내서 그레놀을 찔렀다.

맷집과 생명력이 낮은 마법사에게는 목숨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회색빛으로 변해서 사라지는 그레놀을 보며 오베론이 씩 웃었다.

“제국군의 대장을 처리하다니 나도 실력이 녹슬진 않았군.”

바로 옆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이 외쳤다.

“멍청한 놈. 너도 저들의 대장이 아니더냐?”

오베론이 끌고 온 병력이 12군단과 싸우고 있었다.

분명히 12군단의 전투 능력이 우세했지만, 일부의 유저들은 용감하게도 마법 전투 마차의 위로 뛰어올라서 싸우고 있었다.

수많은 무리들을 이끌어야 할 대장이 단독으로 돌진해온 것이 헤르메스 길드원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베론에게 후회는 없었다.

“나 같은 놈의 지휘 같은 건 필요 없어. 우린 막 싸울 거야. 각자가 싸우기 위해서 모였으니 말이다.”

헤르메스 길드원들 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죽는 게 아쉽지 않나?”

“아니. 나 같은 놈이 이곳에는 아주 많을 테니까. 지옥은 너희들이 보게 될 거야.”

 - 크롸라라라라라라!

빙룡을 선두로 와이번들은 먼 곳의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대기했다.

그 이유는 위드의 명령 때문!

섣불리 나섰다가 대규모 마법에 당할 수 있기에 먼 주위를 맴돌며 경계를 펼쳤다.

“우린 왜 이렇게 약한가.”

“가서 싸우고 싶다.”

“기다려야 한다. 주인이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다.”

불사조, 불의 거인, 데스 웜, 이무기, 킹 히드라, 백호, 나일이, 누렁이, 금인이 등등.

모여 있는 위드의 조각 생명체들은 전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난 머리가 아홉 개라서 싸워도 될 것이다.”

“인간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무리다. 착한 인간들을 죽이게 될 거다.”

조각 생명체들이 떠들고 있을 때였다.

 - 무언가가 다가온다.

빙룡이 서쪽 하늘을 향해 몸을 틀었다.

대형 비행 생명체로서의 본능으로, 먼 곳에서의 강렬한 존재감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전원 전투 준비.

빙룡이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고, 와이번들은 흩어지면서 자리를 잡았다.

조각 생명체들 중에서도 강대한 전투력을 가진 불사조와 불의 거인은 함께 싸울 준비를 했다.

데스 웜은 땅으로 모습을 감추었으며, 킹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독을 내뿜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위드가 조각 생명체들을 아껴서 함부로 사용하진 않지만, 이들의 전력만 하더라도 성 한두 개 정도는 간단히 함락할 수 있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였다면 사상최악의 괴물들로 불리기에 충분한 전투력.

어둠 속에서 달과 별들을 가리며 거대한 형체들이 소리도 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새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넓은 날개를 펼치고 나니 크기가 300미터에서 500미터에 달했다.

몸 역시 우락부락한 근육들로 뒤덮여 있는 전투 비행 종족 바라그!

바라그들은 50마리에 달했으며, 그들이 가까이 올수록 조각 생명체들은 움츠러들었다.

킹 히드라의 머리가 조금 숙여졌으며, 빙룡은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불사조 역시 깃털을 바짝 세우고 있었지만 그만큼 커다란 위협을 느끼는 것이었다.

 - 너희들은 우리의 적이냐!

불의 거인이 땅과 하늘이 울릴 정도로 함성을 내질렀다.

파라라라락!

빠르게 날아오던 바라그들이 속도를 조금씩 줄였다. 그들이 날아오는 것만으로도 지상에 돌풍이 일어날 정도로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바라그들은 기특하다는 듯이 누렁이나 위드의 조각 생명체들을 봤다.

 - 모르겠느냐. 우린 친구다.

 - 친구라고?

 - 우리도 예술과 조각술로 탄생했다.

조각 생명체들의 만남.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가 안배해 놓은 바라그 종족이 멸망하지 않고 찾아온 것이다.

풀숲에 숨어 있던 누렁이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 음머어어어. 난 저들을 알고 있다. 본 적이 있다.

 - 우리도 부모의 부모로부터 말을 들었다. 무척 맛있게 생긴 소가… 아니. 멋진 소 친구가 있다고. 과연 그 명성 그대로구나.

바라그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누렁이의 갈비뼈들을 살피며 지나갔다.

쿠르르릉!

데스 웜도 땅에서 솟구쳐 나오고, 기사 세빌이나 엘프 엘틴도 인사했다.

비행 생명체들은 땅으로 내려와서 간단히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바라그들은 날개를 펼치며 떠날 준비를 했다.

 - 이 지역에 전투가 벌어졌는가?

 - 그렇다.

빙룡이 당당하게 몸을 세웠다.

허약한 얼음 드래곤이었지만 그래도 사냥을 해서 몸집만큼은 바라그들에 비해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우린 싸우러 갈 것이다. 예언에 따르면 위대하신 분께서 조각술의 힘으로 살아나실 것이다. 그리고 그 분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게이하르 황제를 위해 싸우려는 충성스러운 바라그 종족!

 - 오래 전, 조각 생명체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린 싸우러 간다.

바라그 종족들은 그 말을 남긴 채 날아올라서 가르나프 평원으로 향했다.

“…”

위드의 조각 생명체들은 그럼에도 일단 가만히 있었다.

그들도 세상을 위하고 싶은 마음이나, 조각 생명체들을 위해 싸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위드가 아직 나서라고 하지 않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보다는 위드의 말을 안 들었을 경우에 듣는 잔소리가 훨씬 더 무서웠던 것이다.

* * *

어두운 밤.

횃불도 밝히지 않고 수많은 유저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불타는 유성이 대지를 강타한 지역!

대형 조각품들이 건설되었던 이곳은 유성이 떨어지며 충격파가 땅을 뒤흔들었다.

수백 미터의 높이로 세워놓았던 조각품들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완성과 미완성의 조각품들.

이곳에 있던 유저들은 3천여 개가 넘는 작품들이 우수수 허물어지는 광경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헤르메스 길드가 다 날려버렸어.”

“끝났어. 기린 조각상까지 무너졌잖아.”

대형 조각품마다 수많은 유저들의 땀방울들이 묻어 있었다.

그 조각품들이 순식간에 잔해로 변해버린 것에 유저들은 낙담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외쳤다.

“아직 멀쩡한 조각품들도 있어요!”

“와! 갈구하는 고블린 궁수. 이 작품은 끄떡없네요.”

“도약하는 타조의 조각상. 이것도 허물어지지 않았는데… 조금씩 흔들립니다.”

“보수 공사를 해요. 뭐라도 지지대를 세워서 받쳐주면 될 거 같아요!”

대형 조각품을 만들어놓은 지역에 있던 유저들은 전쟁터가 문제가 아니었다.

무너진 조각상에서 쇠막대와 석재들을 빼내 다른 작품들이 붕괴하는 걸 막아내야 했다.

그르르르르릉!

돌고래의 조각품이 중간 부분부터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꺅. 무너져요.”

“어서 빠져나와요!”

“이것만… 이쪽만 보강하면 됩니다.”

“안 돼요. 늦었습니다. 밖으로 빨리…”

꽈르르릉!

돌고래 조각상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지면서 대지가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컸다.

끝까지 작업하던 유저들도 함께 여럿이 사망했지만, 오히려 남은 이들의 눈에는 더 독기가 어렸다.

“이판사판. 건축가님들. 위험도 측정하지 맙시다.”

“네? 공사장에는 안전 절차를 지켜야 하는데요. 안전이 제일이에요. 풀죽신교에서도 조각품 건설하면서 희생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얼마나 애썼는데요.”

“오늘만큼은 빼두죠. 이제부터는 전쟁입니다.”

독기가 오른 유저들은 남아 있는 조각상들의 보강 작업을 서둘렀다.

몸에 밧줄도 고정하지 않고, 그냥 손으로 타고 오르면서 철근과 석재들을 보강했다.

건축가들도 마찬가지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무너지기 직전의 조각상을 기어올랐다.

“이건 내가 만든 작품인데. 그러니 내가 살려야지.”

콰르르르르르

대형 조각품들이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유저들도 조각상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면서 작업이 활기를 띄었다.

그들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노력과 희망을 짓밟히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전사의 조각상은 멀쩡합니다.”

“북부의 개척자상도 이상 없어요!”

기적처럼 유성 낙하의 충격에도 멀쩡한 조각상들이 4백여 개나 나왔다.

조각사 뎁스.

그가 땀과 흙먼지로 뒤덮인 얼굴로 외쳤다.

“손상된 조각품들. 고칠 수 있는 건 우리 힘으로 고쳐보는 건 어떻습니까?”

“예?”

“이 조각품들이 무너지고 일부가 깨졌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분들이 도와주시면 고칠 수 있는 부분도 꽤 됩니다.”

전체가 파괴되지 않은 경우에는 조금만 손을 보면 복원할 수 있었다.

조각상이 끊어지고 깨진 부분들은 붙이고, 안 되면 강철을 박아서라도 연결하면 되는 것이다.

“충분히 할 수 있겠네요!”

“조각상이 너무 커서 문제지만… 그러니까 따닥따닥 연결하면 가능합니다. 노동력만 충분하다면 말이죠.”

유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이 할 일을 찾으려고 하는데, 뎁스의 제안은 끝난 게 아니었다.

“무너진 조각상도 그냥 버리기 아깝습니다. 그러니 망가진 작품들도 괜찮은 부분들을 결합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파괴된 조각품의 결합!

어떤 조각품은 몸통과 머리가 멀쩡하고, 팔다리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 역시 흔히 존재했다.

부서진 것들 중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위들을 찾아서 끼워 맞추자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되나?”

“사람이야 이렇게 해도 되겠지만, 많은 작품들이 종족도 다르고, 크기에도 차이가 있잖아.”

“조각품인데… 막 만드는 것은…”

유저들이 갈등에 빠져 있었지만, 잠시 후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미 50%도 넘게 부서진 조각품들의 경우에는 되살리는 것이 다시 만드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조금씩 손을 봐서 일부라도 재생한다면 좋을 것이었다.

설혹 정말 실패작이 나온다면 그때 포기해도 되는 문제였다.

“우린 모두의 희망입니다. 어떻게든 해봐요!”

“힘을 내세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으쌰으쌰!”

“소식을 들은 일꾼들이 계속 오고 있어요. 노력합시다.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될 거예요.”

15일간 가르나프 평원의 일부를 대형 조각품들로 채운 유저들의 힘!

노동에 참여했던 유저들이 이 소식을 알고 몰려들고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진 조각품들의 폐허에서 재건을 이루기 위한 땀방울들을 쏟아냈다.

* * *

위드가 울타르를 이기고 진격의 사자후를 터트리자, 수많은 유저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돌격이요. 돌격!”

“황소 기사단은 모여서 다함께 갑시다.”

“공수부대여. 낙하를 시작하라!”

지상에는 검과 방패를 든 유저들이 달려갔고, 하늘에서는 조인족들이 유저들을 떨어뜨렸다.

11군단은 군단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전투를 개시해야 했다.

제국군 병사들은 사기가 하락해서 전투력에도 20%가 넘는 손실이 생겼다.

대군에게 이만한 차이라면 매우 큰 것이었으며, 기세로도 아르펜 왕국의 진영이 압도적이었다.

승리를 확신한 유저들이 전력을 다해서 싸우고 있었기에 제국군은 물러서기 바빴다.

“이렇게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취췻.”

위드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 삐이이이익!

전장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소리.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할 때였다.

위드는 조각 소환술을 써서 와삼이를 불렀다.

“나를 태워라.”

 - 주인. 설마 그 모습으로 탈 것인가?

“당연하지. 실컷 싸우자.”

등이 넓고 편안한 승차감의 와삼이는 오크 카리취의 형태까지 태워야 했다.

주인 잘못 만나면 평생 고생!

위드는 전투에 앞서서 와삼이를 위한 몇 가지 방어구들을 꺼냈다.

검은 색으로 물들인 강철을 얇게 펼쳐서 만든 목 보호대와 가슴, 투구였다.

뮬의 그리폰 부대가 착용하는 것처럼 와이번 전용 갑주를 만든 것이다.

 - 이런 귀한 걸…

“직접 만들었다. 췻.”

 - 고맙다. 주인.

와삼이는 크게 감격했지만 정작 하나씩 입으면서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너무 얇고, 가벼웠다.

대충 휘두른 검도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방어력마저 낮았다.

 - 마법을 막는 물건인가?

“그런 기능 없어. 취췩.”

 - 화살은?

“못 막아. 취이익.”

 - 그럼 이걸 왜 입나?

“화면 빨이 좋잖아. 췩!”

위드가 원한 것은 오크 카리취가 흑색 갑주를 입은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호령하는 것이었다.

“전투를 시작하자! 취취췩!”

 - 꾸아악!

비행 노예 와삼이가 날개를 떨치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우와아아아!”

“카리취, 카리취!”

위드가 와삼이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여주더라도 유저들의 환호성이 어마어마했다.

“아래로 가까이 가자. 췻!”

땅으로 낮게 내려가서 유저들과 제국군이 맞붙어서 싸우고 있는 지역을 스쳐지나갔다.

창과 무기들이 와삼이의 다리에 닿을 듯 했지만 그 정도로 겁을 먹진 않았다.

여러 전투를 경험했으며, 꾸준히 비행 능력이 향상된 와삼이는 일반 병사들은 우습게 볼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주인을 잘못 만나기는 했지만 그 본성은 사납기 짝이 없는 와이번!

 - 꾸우에에엑!

와삼이는 전투기처럼 공중에서 곡예를 부리며 폭발적인 속도로 날았다.

“위드님이다!”

“저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와이번?”

“와삼이가 어마어마하게 빨라!”

와삼이가 지나가는 곳에는 환호하며 무기를 드는 유저들로 사기가 치솟았다.

검은색 갑주를 착용한 와이번.

그리고 오크 카리취!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야 말로 전장에서는 폭군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위드의 눈에 제국군의 기사단이 보였다.

“전방에 먹잇감이다. 췻.”

 - 간다.

와삼이는 방향을 바꾸어서 수직에 가깝게 치솟았다. 그러더니 급강하하며 제국군 기사들을 덮쳤다.

위드는 로아의 명검과 썬더 스피어를 동시에 휘둘렀다.

“취이익!”

무쌍난무!

와삼이가 땅에 닿을 정도의 높이에서 검과 창을 휘두르며 돌파했다.

“끄억!”

튼튼한 갑옷을 입은 제국군 기사들이 사방으로 수십 미터나 나가떨어졌다.

“저기다. 췩!”

다른 기사들은 내버려두더라도 기사단장 만큼은 해치워야 한다.

전투에서 지휘관을 먼저 공략하는 게 기본이기도 하지만, 그가 착용하고 있는 황금 관 때문이었다.

“최소 1킬로그램은 되어 보인다. 순금이다. 췩!”

위드의 지시에 따라 와삼이는 기사단장을 따라가더니 발톱으로 붙잡고 난폭하게 벽에 내던졌다.

 - 크웨에에엑!

즐거워하는 와삼이!

위드는 기사들을 상대하는 한편으로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주목도 받았다.

오크 카리취에 와삼이까지 있으니 단연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외모였다.

“어쨌든 저놈만 해치우면 되잖아.”

“위드야. 결투에서처럼 일대일로 싸울 필요도 없어.”

“죽이자.”

헤르메스 길드원들에 의해 화염의 벽이 공중에 생성되고, 얼음의 창이 날아오기도 했다.

와삼이는 빠른 속도로 뚫어내거나 공중에서 회전하며 피했다.

저공비행을 하며 지그재그로 달릴 때마다 제국군의 마법 공격이 마구 작렬했다.

“어서 달려요!”

“모두 쓸어버리는 겁니다.”

위드와 와삼이가 이목을 끄는 동안에 유저들은 11군단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었다.

고레벨 유저들도 다수 포함된 병력은 11군단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빠르게 숫자를 줄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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