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1권 : 6장. 함정 격파 (344/520)

6장. 함정 격파

판데그가 이끄는 제국군 20군단은 특별한 부대였다.

“우린 전투에 거의 참여하지 않지. 그렇지만 싸우면 끝을 보는 병력이다.”

헤르메스 길드의 많은 유저 중에 20군단 소속은 고작 백여 명 밖에는 안 됐다.

기형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머지 병력은 병사들로만 채워졌는데, 중앙 대륙을 정복할 당시에는 20군단은 존재조차 없었던 부대였다.

가르나프 평원으로 진군하면서도 느긋하게 다른 군단의 뒤를 따르던 그들에게 직접적인 명령이 떨어졌다.

 - 라페이 : 위드를 공격하세요.

“알겠습니다. 계획대로입니까?”

 - 라페이 : 끝까지 변동사항은 없습니다.

“바로 진행합니다.”

판데그는 다른 군단장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병력을 진군시켰다.

7군단과 14군단을 우회하여 전투를 최대한 치르지 않은 채로 11군단이 있는 지역으로 신속하게 진군했다.

다른 군단들은 길드 수뇌부의 명령으로 길을 터주는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저들은 뭐야?”

“제국군의 복장인데. 왜 우릴 보고 합류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한가롭게 궁금증이나 해소해줄 시간은 없었다.

가르나프 평원의 어느 곳에 위드가 나타나더라도, 20군단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위드만 잡아도 이번 전투는 9할 이상 이긴 싸움이라는 게 명백해. 잔챙이들은 무시하고 우린 가장 큰 공을 세우는 것이야.’

판데그의 20군단은 신속하게 이동해서, 11군단과 싸우고 있는 대규모의 유저들과 마주했다.

“다 죽여!”

“풀죽, 풀죽, 풀죽!”

“아르펜에 승리를. 우아아아아아!”

유저들이 절규하는 소리가 귀를 가득 울렸다.

어디선가 악기를 연주하고 합창단이 노래를 하는 소리도 들렸다.

 - 산을 옮기자.

강을 만들자.

메마른 땅에서 태어나 씩씩하게 걸으리.

약하지만 우리는 하나.

검 한 자루를 들면 불가능을 바꾸리.

나아가자.

싸우자.

기적을 우리의 손으로!

아르펜 왕국 진영의 유저들에게 힘을 안겨주는 전쟁의 노래들.

전장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싸우는 유저들은 불굴의 의지를 자랑했다.

11군단의 정예 병력을 상대로 벌이는 총력전은 폭풍이 몰고 오는 거센 빗줄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막앗!”

“나중 일은 생각하지 말고, 화살이든 마법이든 뭐든 퍼부어!”

“방패병을 전진시켜서 여유를 벌어야 해. 뭐라도 하라고!”

11군단은 전력을 다해 덤비는 유저들을 상대로 수비 진형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여러 곳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하늘에서 유저들이 떨어지면서 몸으로 부딪치고, 땅에서는 달려와서 죽을 때까지 싸운다.

하나를 죽여도 둘이나 셋으로 늘어있는 이 속도와 양세!

위드를 보고 따라온 고레벨 유저들도 곳곳에서 활약을 하면서 제국군 병사들을 제압했다.

“공격해라!”

판데그는 20군단에게 즉시 공격하기를 지시하고 전투에 돌입했다.

지원군의 출현으로 아르펜의 유저들이 당황했지만 금방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었다.

“얼마든지 오너라!”

“이놈들도 전부 다 싸잡아 먹읍시다.”

초보들이 밀려오고, 고레벨 유저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친다.

위드에 의해 임명된 부대장들은 유저들을 이끌고 20군단을 향해 사방에서 반격을 가했다.

“싸우자!”

“반데르트를 따르라.”

“우리의 전술은 달리기입니다. 어렵지 않죠? 각자 무기를 들고 뛰어요!”

이번 전투를 위해 가르나프 평원에 모인 유저들은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인해전술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숫자가 힘입니다. 앞에서 달리면 따라서 달리세요. 적과 바로 앞에 가면 싸우는 겁니다. 절대로 뒤처지지 말아야 해요.”

“밀집대형! 바로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할 정도로 뭉쳐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저하는 사람 때문에 전부가 망해요.”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만 기억하세요. 바르게 살지 맙시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죠. 그래도 다가올 그 순간에 주저하지는 마세요. 방송 화면이라도 잡힐지 모르잖아요.”

“손해보고 싶지 않다면 전투에 안 끼어들면 돼요. 지난 북부의 전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원하는 사람들이 싸웠고 자랑스러워했어요. 싸우고 싶다면 나서세요. 모두 환영할 거예요.”

축제를 개최하면서 저절로 진행했던 세뇌 작업들.

최적화된 인해전술, 물량에 속도가 받쳐주면 그 위력은 폭발하게 된다.

소모해도, 소모해도 끝없이 채워진다.

다른 구역에서의 싸움도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지만, 위드가 이끌고 온 이곳에서는 실력자들이 넘쳐났다.

20군단이 합류해온 것을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밀려오고 있었다.

“병력피해는 상관없다. 한 번의 기회를 만들 뿐이지.”

판데그는 냉정하게 전투를 지켜봤다.

평원을 가득 메운 양측의 병력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저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란 생각뿐이었다.

“병사들은 다 죽어도 좋아. 다 죽어도…”

20군단은 정복 전쟁을 할 당시에 여러 왕국의 패잔병들로 모은 병력이었다. 병력의 수준은 하벤 제국에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몰살을 당해도 아깝지 않았다.

밤이라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방송이 나오는 수정 구슬로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위드는 와이번을 타고 날아다닌다고 한다.

“놈이다.”

판데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참 만에 11군단의 기사들을 털어먹고 있는 위드를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 * *

위드는 와삼이를 타고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취췻. 더 빨리, 더 낮게 날아라!”

 - 그러면 위험하다. 그리고 이미 최고 속도다.

“날개를 더 파닥여! 췩!”

 - 어떻게 더 빠르게 하란 말인가.

“그 방법은 네가 생각해봐야지. 츄추익!”

하늘에서 화살을 쏘기도 했지만, 와이번을 타고 저공비행을 하며 거침없이 선더 스피어를 휘둘렀다.

위드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벼락이 기사들에게 작렬한다.

여러 개의 마법 공격이 그에게로 집중되더라도 와삼이는 곡예와 같은 비행으로 피해냈다.

 - 잘 했다고 칭찬해주라. 주인.

“칭.”

 - 그게 뭔가?

“절반한 칭찬한 거야. 앞으로 더 잘해라. 취익!”

와삼이는 저공비행에 급선회, 어쩔 때는 땅으로 내려와서 말처럼 달리다가 다시 솟구쳤다.

위드의 까다로운 요구사항들.

장비가 좋은 기사들을 제거하려다보니 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묘기들을 부려야했다.

“만세!”

“대박이네. 이런 전투를 하다니 말이야.”

“역시 위드님이다!”

같이 싸우는 유저들의 사기는 최고 수준!

와삼이의 등에는 몇 개나 되는 배낭이 묶여 있었다.

기사들을 해치우고 얻은 전리품들이 묵직하게 배낭들을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오크 카리취의 표정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잡템을 이렇게 버리다니… 취췻. 초심을 잃어버렸어. 어떤 상황에도 잡템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위드의 자괴감이 넘치는 목소리!

전투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전리품을 줍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어쩔 때는 차원문의 장갑을 이용해서 기사들이 떨어뜨린 전리품들을 수거해왔다.

간신히 날아가는 와삼이의 등을 다시 탈 정도라서 몇 개씩의 잡템이나 싼 값에 팔리는 물품들은 줍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와삼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 싸구려 백 개보다 비싼 거 한 개를 얻는 게 낫지 않나?

“뭐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문제야. 췩!”

 - 이해가 안 간다.

“통장에 일억이 있다고 해서 백만 원을 안 줍진 않지. 추이익. 아무튼 그런 줄 알고 있어. 취췩!”

위드와 와삼이는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는 환상처럼 느껴지는 묘기를 펼치며 전투를 치렀다.

공중전이야말로 시청자들은 감탄하기 바빴다.

 - 마판 : 제국군이 더 몰려옵니다. 20군단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위드도 일찌감치 다가오는 제국군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임명장을 남발했던 지휘관들로부터 전투 현황 보고라는 것도 들어왔는데, 새로운 군대가 등장했다는 소식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군. 저들이 오더라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텐데.’

위드가 바드 마레이의 공연장에 나타나면서부터 이곳까지 유저들을 끌고 왔다.

북부 유저, 중앙 대륙 출신 유저들이 뒤섞인 이곳에는 아르펜 왕국 전력의 핵심이 대거 모이게 되었다.

울타르와 결투까지 펼치는 동안 더 많은 유저들이 합류하면서 질과 양, 어느 쪽으로도 자신이 있었다.

하벤 제국군 3개 군단이 오더라도 거뜬히 싸울 수 있는 전투력이 뭉쳤으니 20군단의 합류가 반가울 정도였다.

실제로도 아직 싸우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후방의 유저들에게 전투의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와주었으니 차라리 고맙군. 여기서 한꺼번에 처리를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위드는 11군단에서 전투를 펼치다가 적당한 때에 와삼이를 타고 20군단으로도 넘어가서 싸울 생각을 했었다.

전투 공적을 세우고, 전리품도 듬뿍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잘 됐어. 좀 더 쉽게 상대의 하벤 제국의 전력을 깎을 수 있으니 앞으로의 전투에 유리할 거야.’

산뜻한 마음으로 전투를 이어나가려는 그때에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악덕 집주인에게 반지하 방을 싸게 빌렸다고 기뻐하던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 인생이 이렇게 쉽고 간단히 풀린 적이 있었나? 그리고 지금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때의 반지하는 습기가 너무 심해서 아침마다 방에 뿌옇게 안개가 낄 정도였다.

오죽하면 이불까지 축축해지던 집!

할머니와 여동생이 매일 기침을 달고 살았었다.

여름에는 이상하게도 서늘해서 더위를 못 느끼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벽에는 시퍼런 곰팡이들이 울창하게 자랐었다.

집을 구하면서 최악의 시행착오 중의 하나였다.

‘뭐지.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위드는 슈퍼컴퓨터가 곱셈을 하는 연산 처리 속도처럼 그간의 상황들을 되짚어봤다.

결투를 벌여 울타르를 이긴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다.

조각 파괴술에 오크의 형태로 몸을 바꿨고, 차원문의 장갑을 적극적으로 썼다.

울타르는 석궁에 의존했고 근접전이 좀 약하다는 사전 정보까지 알고 공략한 것이다.

매우 빠른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개싸움으로 그가 실력 발휘를 할 기회도 주지 않고서 이겼다.

‘11군단과 싸우기 위해서 온 것도 내가 주도한 거야.’

20개의 군단이 동시에 진격해왔는데 적당한 상대를 골라온 것이다.

여기까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헤르메스 길드의 대응이 엉뚱하게도 한 개의 군단을 추가로 보낸 것이다.

‘이대로 11군단을 몰살시키는 것도 큰 손해야. 근데 20군단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준다고? 다른 군단과 연합하지도 않고?’

전형적인 1+1의 상황.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가 이런 멍청한 짓을 저지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세금을 거두는 측면이나 독재를 하는 것에서는 배울 점이 많아.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이런 무모한 진군을 해왔다고?’

칙칙한 의심이 더 짙어졌다.

이득에 눈이 멀어 아무 생각 없이 덥석 삼키면 위험했다.

‘뭔가가 있어. 냄새가 심하게 난다.’

* * *

판데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1군단의 유저 몇 명이 적들을 뚫고 그들과 합류하기도 했다.

“소멸의 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 안 썼습니다. 군단장님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잘 됐군요. 그럼 우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올 겁니다.”

깊은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

판데그는 군단장임을 숨기지 않고 화려한 복장을 입었으며, 가까운 곳에는 마법 등불도 환하게 밝혔다.

“여러분들도 이 근처에 계십시오.”

“좋습니다.”

“놈이 오더라도 신호를 보내기 전에 나서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판데그의 부근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잠복하며 기다렸다.

11군단의 병력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오로지 위드만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쟁의 규모가 크지만, 그렇기에 위드의 목숨에 붙어 있는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왕이 사라지면, 그가 퍼뜨리는 희망이나 저항의 정신도 함께 소멸하리라.

“놈이 11군단의 기사단을 죽이고 있습니다.”

“침착하게 기다리죠. 자리를 지키면서 말입니다.”

“이쪽으로 넘어오더라도 섣불리 움직일 필요 없습니다. 워낙 도망을 잘 치는 놈이라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판데그님이 더 눈에 띄는 위치에 계세요.”

“와이번이 날아오기 좋은 지역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숨죽이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30여분이 지나는 동안 11군단의 병력들은 유저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고, 20군단도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하벤 제국을 전부 물리쳐요!”

“이대로 돌진합시다. 승리다!”

유저들의 환호성 소리가 가까워진다.

초조한 기다림이 숨이 막혀올 정도였는데, 문득 하늘에서 커다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와이번이 옵니다.”

“쉬잇. 가까이 오기만 노립시다.”

판데그는 병력을 지휘하는 척하며 하늘을 봤다.

무언가 시커먼 형체가 날아오고 있었는데, 마법사들의 밤눈을 밝게 하는 마법에 의해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와이번과 그 위에 타고 있는 오크!

이제는 정말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 판데그 :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철저히 준비 해주세요.

은밀한 신호를 받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만 약 2백여 명이나 되었다.

일반 병사들, 시종으로 위장을 하고 무기를 숨겼다.

위드를 죽이기 위한 기다림이 큰 결실을 맺는다는 희열로 가득했다.

이윽고 거짓말처럼 와이번에서 오크 한 마리가 땅에 툭 떨어졌다.

20군단의 대장인 판데그를 직접 상대할 생각인지 고작해야 8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취이익! 널 상대하러 왔다!”

오크가 글레이브를 높이 치켜들었다.

“놈이 왔다, 지금이다!”

판데그가 소리쳤다.

그 순간, 20군단에 속해 있던 주술사들이 주문을 외웠다.

군단장을 호위하는 병사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숨겨진 비장의 무기 중 하나였다.

“피와 육신에 새겨진 허약함을 저주하라. 모든 악령들이 이 자리에 모여 너를 갉아먹을지니… 이면의 징벌!”

주술사들은 귀한 보석들을 제물로 바치며 전투력을 쇠약하게 하는 주술을 발동시켰다.

각종 전투 능력과 스킬의 하락, 최대 생명력까지 절반 넘게 감소시키는 주술이었다.

이어서 정신 혼란, 극심한 피로, 흔들리는 시야와 같은 저주들도 사용되었다.

“쳐라!”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사방에서 뛰쳐나와서 오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금속 막대를 손에 들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헤르메스 길드에서 준비한 소멸의 창이었다.

1회용이기는 해도, 저장되어 있는 태양의 기운을 발출하여 빛의 기둥을 일직선으로 내뿜을 수 있었다.

위력이 강해서 개인을 대상으로 쓸 무기가 아니다.

공성전이나 군대를 상대해야 마땅한 소멸의 창까지 꺼내든 건 반드시 여기서 죽이려는 의지였다.

“뭐, 뭐야!”

판데그는 오크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놀라고 당황해서 소리쳤다.

“넌 누구냐!”

“취이익!”

오크의 외모가 카리취와 닮기는 했다.

커다란 덩치에 못생긴 외모는 착각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그래도 카리취보다는 훨씬 순박하게 생겼다.

카리취가 산전수전 다 겪은 거친 사자의 느낌이라면, 지금 나타난 오크는 집 나온 늑대 정도.

자세히 보면 어깨의 넓이나 근육에도 차이가 컸다.

오크가 글레이브를 들고 웃었다.

“헤르메스 길드 바보. 췩.”

주술이 적중되어 심상치 않은 보랏빛 기운을 발사하며 오크의 몸을 휘감았다.

그럼에도 오크는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별 거 다 쓰네. 나 레벨 19인데. 캬캬취취췻!”

“…”

막 거세게 공격하려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기운 빠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런.”

“위드가 이걸 볼 수 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소멸의 창을 비롯해서 무기들을 서둘러 숨겼지만 늦은 후였다.

“이거 방송인데. 취치칙!”

오크를 상대로 덤벼들려고 했던 모습이 방송으로까지 중계가 다 되었으리라.

‘어떻게 위드가 안 오고 초보를 내보낸 거지?’

판데그는 속은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20군단의 존재 이유, 함정을 만들어서 위드를 잡겠다는 계획은 이걸로 물 건너간 것이다.

그들로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을 팠고, 20군단까지 기꺼이 먹이로 던져주었다. 하지만 노리던 물고기가 떡밥만 먹고 빠져나가버린 상황이었다.

판데그는 방송을 의식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너희들은 착각하고 있군. 위드가 안 왔다고 해서 뭐라도 얻은 것 같나?”

“예? 취췻.”

이번에는 오크를 당황하게 만들 차례였다.

“직접 위드를 잡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만 끌면 충분했다. 그 이유는…”

판데그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주 먼 곳에서 깨알보다도 작은 세 개의 붉은 점들이 보이고 있었다.

“불타는 유성 소환이 이곳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지.”

“취이이이잇!”

오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경악했다.

판데그와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하늘에서 유성들이 떨어진다는데 겁먹지 않을 이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저 유성이 떨어지면 우리도 죽겠지. 그렇지만 방송을 보는 이들이여. 너희들도 똑똑히 알아두어라. 아르펜 왕국의 진영에 선 유저들 중에 실력자들이 여기에 많이 모인 걸 알고 있다. 이곳에 유성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

“맞춰줄까? 대부분 죽겠지? 어쩌면 위드와 함께 말이다.”

미끼로 던져진 오크는 입을 벌린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판데그가 흐뭇한 승리의 쾌감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더라도 기뻐할 것 없다. 그 이후에는 가까이 있는 제국군 군단이 와서 전부 쓸어버리게 될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 너희들과 위드를 말이지.”

판데그의 말을 들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맴돌았다.

승리자들의 전형적인 만족스러운 표정들을 보며, 못생긴 오크가 코를 실룩이며 웃었다.

“키키킷. 위드님 말씀이 그대로네. 취익!”

“뭐라고?”

“위드님이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나보고 대신 가라고 했는데. 췩.”

“으음.”

“그리고 위드님은 이곳에 없다. 취췻. 풀죽신교의 실력자들을 모아서 다른 군단 상대하러 갔다. 취지익!”

“헉!”

판데그의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이었다.

불타는 유성 소환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미 위드가 떠났다면 그보다 더한 낭패가 없었다.

“어, 어떻게 알고 빠져나간 거지?”

“나도 잘 이해 못한다. 췩. 그냥 감이 안 좋다고 하셨다.”

“우리의 함정을 피해갈 정도로 감각이 그렇게 예민하단 말인가?”

“노력도 안 했는데 눈먼 돈이 떨어지는 느낌? 췩. 이렇게 쉽게 인생이 잘 풀릴 리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취췻!”

서윤은 북부 유저들과 중앙 대륙 출신 유저들의 일부를 모아 기다리고 있었다.

“저겁니다.”

“보입니다. 유성이 떨어집니다.”

불타는 유성 소환!

깨알처럼 작은 유성을 시력이 좋은 궁수들이 먼저 발견해냈다.

밤하늘에서 생겨난 불타는 유성은 금세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크고 선명해졌다.

“목표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위드님이 있는 지역이 아닐까요?”

“그쪽을 걱정할 여유는 없어요. 우리가 맡은 임무에 충실하도록 해야 해요.”

“우리가 잘해야만 더 이상의 피해가 없을 겁니다.”

서윤을 따르는 이들은 풀죽신교 중에서도 최정예 병력!

대지의 궁전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로만 구성된 아르펜의 핵심 전력이었다.

“불타는 유성 소환의 마법 시전 범위는 모르지만 마법 발동은 서남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5군단과 7군단이 의심스럽군요.”

“그들 중에서 마법사들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양쪽 다 쳐보는 수밖에 없겠죠.”

처음에는 모르고 당했지만, 모든 마법에는 발동되는 거리라는 게 있다.

불타는 유성 소환이 두 번째 사용되었을 때에는 측량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방향을 가늠했다.

“바로 가도록 해요.”

서윤은 와삼이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생긴 비행 몬스터의 등에 탑승했다.

 - 크우와아악!

조각 생명체 바라그!

근육질의 몸에 기다란 몸체, 사냥과 전투에 최적화되도록 부리와 발톱은 칼날을 세워놓은 것처럼 날카로웠다.

최상위 포식자답게 살벌한 눈빛만으로도 뭇 몬스터들을 겁에 질리게 만든다.

실제로도 조금 전에 바라그들이 등장했을 때는 북부 유저들조차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 위대한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께서 남긴 말을 듣고 오늘을 기다려왔다.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바라그들은 북부 유저들의 앞에서 마음껏 포효했다.

< 절대적인 공포!

극심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육체적인 위축!

정신 쇠약!

이동 불가!

모든 스킬의 성공 확률이 88% 감소합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레벨에 따라 최대 85%까지 감소합니다. >

절대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몬스터.

레벨 100이하에서는 바라그들을 감히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려 움직이지 못했다.

“저게 몬스터라고?”

“으아… 방송으로 보긴 했는데 정말.”

“저런 게 사냥이 돼?”

“놀랍고도 무섭다.”

북부 유저들은 직접 보게 된 바라그의 실물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하늘에서 날개를 펼친 채로 덩치를 자랑 할 때는 300미터에서 500미터에 달한다.

드래곤과도 맞먹는 크기의 바라그들이 하늘을 장악했는데, 평소에 사냥하던 짐승이나 몬스터들이 귀여울 정도였다.

던전의 보스급 몬스터라고 해도 적당히 치고 박는 맛이 있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도시를 부수고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상의 인간들은 언제라도 발가락으로 밟아죽일 수 있을 것처럼 가공할 힘을 자랑했다.

 - 너희들이 영광스러운 아르펜 제국의 뜻을 잇는 자들인가!

바라그들의 거센 위협에 평원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때 서윤이 앞으로 나섰다.

“맞아요.”

 - 감히, 건방지게 대제의 후예를 자처하는…

바라그들의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서윤에게로 향했다.

 - 아…엥?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는 초대형 비행 생명체들.

충격, 놀람, 현실, 빠져듦, 행복.

미녀, 미녀, 미녀, 미녀.

광포하던 녀석들의 눈이 순하게 바뀌었다.

바라그들은 부끄러움을 타는 것인지 앞발을 공손하게 모았다.

 - 안녕하세요. 저희는 바라그 종족입니다.

“네. 반가워요.”

예쁘게 자란 유치원생들처럼 착하게 인사하는 바라그들. 심지어 몇몇은 고개를 숙이면서 배꼽인사까지 했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의 조각 생명체!

미녀를 좋아하는 그를 따라 모든 조각 생명체들도 아름다움엔 약하게 만들어졌다.

 - 반갑대.

 - 우릴 보고 기뻐하는 거야?

 - 진작 올 걸.

 - 빗물에 목욕이라도 할 걸 그랬다.

서윤이 인사를 받아주자 쑥덕거리면서 바라그들끼리는 기뻐하기까지 했다.

 - 저희들은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잘할 수 있습니다.

 - 대제께서 남기신 말도 있었고요. 뭐라도 하게 해주세요.

“네. 도와주세요. 정말 힘든 일이 많아요.”

어차피 게이하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오게 된 바라그들이었지만 크게 만족하면서 아르펜 왕국의 진영에 합류했다.

서윤과 아르펜 왕국 진영에서 최정예들로 구성된 유저들은 든든한 바라그의 등에 탔다.

밤하늘을 조용히 날아오른 바라그들.

거대한 성채가 떠오르는 것처럼 묵직한 승차감을 자랑했다.

게이하르 황제가 전투용으로 제작한 조각 생명체인 만큼 밤눈마저도 뛰어난 편이었다.

 - 움직이겠습니다.

바라그는 빠르게 가속하더니 무시무시하게 바람을 가르며 밤하늘을 날았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쓸어버리자고.”

“음.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군.”

바라그의 등에 탄 유저들은 하늘에서 유성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걸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일초라도 빨리 싸우고 싶었지만 자신들의 임무는 불타는 유성 소환을 시전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처리하는 것.

한 번, 두 번은 모르고 당했지만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지상의 병력들과 싸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였고,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무에 참여한 것에 후회하는 이는 없었다.

아르펜 왕국에서 뛰어난 공을 세운 유저는 명예를 얻는다.

셸지움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은 영웅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가르나프 평원에서 직접 봤기에 목숨을 던지기에 아깝지 않았다.

“크크. 명예롭게 죽어서 세상에 이름을 새겨보자고.”

“로디움 조각사 연합에서 전쟁 기념관을 세워준다는 소식 들었어?

“전쟁 기념관?”

“못 들었나? 승리를 하게 되면 가르나프 평원에 위대한 건축물로 전쟁 기념관이 만들어질 거야. 그 공을 세운 유저들의 동상을 세워준다는데.”

중앙 대륙의 예술가들은 당연히 먹고 살기 좋고 존중까지 해주는 아르펜 왕국 진영의 편에 섰다.

그들이야 뭐 넘어가든 말든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1%도 신경을 안 썼지만, 가르나프 평원의 조각품 건설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건축가들이 전쟁 기념관을 만든다고 하니 예술가들은 기꺼이 영웅들의 조각품이나 그림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저쪽이 5군단입니다.”

“음. 확실히 의심스러운데…”

서윤을 비롯한 유저들은 바라그를 타고 5군단이 보이는 곳까지 날아갔다.

제국군 5군단도 바라그가 공중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고슴도치가 몸을 감싸듯이 일부 병력에 대한 방어진형을 편성했다.

“불타는 유성 소환은 궁극 마법입니다. 지금 알려진 유저들의 수준으로는 쓴 것도 의아할 정도지만, 사용하고 나서 당분간은 무력한 상태일 거예요.”

“우리가 알고 온 것인지, 모르고 온 것인지는 저들도 확인이 안 될 겁니다. 그러니까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싸워보면 알겠죠. 갑시다.”

여러 말이 오고 갔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전투를 결정했다.

바라그가 서윤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 저희도 싸워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 고맙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제국군의 궁수들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지만 선제공격을 가한 건 바라그였다.

바라그들은 날개를 좌우로 활짝 펼치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렇잖아도 거대한 몸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어마어마한 열기를 축적했다.

그러더니 바라그들은 참아낸 숨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 이 열기가 예술과 아르펜을 지키는 힘이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붉은 화염 줄기들이 쏘아져나가 제국군을 뒤덮었다.

풀과 나무들이 불타서 사그라지고, 대지마저 달구는 초고열의 브레스!

“으아악!”

“브, 브레스다.”

“방패도 소용없어. 도망쳐!”

브레스가 쏘아질 때마다 반경 백여 미터가 화염으로 뒤덮였다.

불의 길이 1킬로미터까지도 이어졌으며, 그 안에는 죽어가는 병사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최상위 몬스터로 분류해야 마땅할 바라그들의 등장은 정예 병력으로 꼽히는 제국군마저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우, 우린 다 죽을 거야.”

“신이 노하셨어.”

유저가 아닌 주민들로 구성된 제국 병사들 중에는 겁에 질려서 도주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조차도 손을 놓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비행 마법이 걸린 장비나 스크롤을 가지고 있었지만 감히 바라그 무리들을 향해 날아오를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그 영상에서 본 몬스터들이 등장했구나.”

“우리들로서는 상대하지 못해. 2군단이 와야만 승부를 벌일 수 있겠지.”

“한꺼번에 공략해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야. 그것도 마법의 지원이 필수다.”

병사들이 헤르메스 길드원들에게 다가와서 애원했다.

“제 부하들을 살려주세요. 대장님!”

“나도 어쩔 수 없다.”

“검에 봉인된 치료 마법이라도 써주시면 부상병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건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둬야 한다.”

제국군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감소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조차도 화염의 브레스를 피해 도망 다니거나, 그 이후의 전투를 준비하기 바빴던 것이다.

“우리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군.”

“하벤 제국의 명예를 위해서 싸우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들의 가족은 과도한 세금으로 굶주리고 있다고.”

“자유롭게 약탈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

제국군 병사들의 사기는 또다시 떨어졌다.

그 사이에도 바라그들이 화염의 브레스를 내뿜으며 제국군을 구석구석 타격했다.

“힘이 빠질 때까지 흩어져서 기다린다.”

“기사들을 아껴라. 어떻게든 전투력을 보존해야 하니 말이다.”

5군단은 그래도 최고의 정예인 만큼 빠르게 병력을 분산배치하면서 피해를 줄이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바라그의 브레스가 여러 겹의 보호 마법에 의해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쏘아진 화염 브레스가 갑자기 생성된 보호 마법들에 의해 약해지더니 마침내 흩어진 것이다.

“저곳이구나!”

“최소 12종류 이상의 보호 마법이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마법사들도 있어요.”

아르펜 유저들의 눈에 허둥지둥 대며 도망치는 마법사들도 보였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상당수가 호위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마법사가 아니라, 레벨이 매우 높은 고위 마법사들이 한 지역에 몰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불타는 유성 소환을 시전한 이들에 대한 확실한 증거!

서윤이 검을 들어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공격해요!”

* * *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타는 유성들.

첫 공격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유저들은 넋을 놓고 유성이 그리는 궤적을 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이곳으로 올까? 아니겠지?”

“다가온다. 남쪽으로 지나가고 있어!”

하늘에서 떨어진 세 개의 유성은 가르나프 평원의 대지를 다시 크게 뒤흔들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었고, 그 위치가 11군단과 20군단을 상대로 싸우던 장소라는 사실도 금방 알려졌다.

그 파괴력은 아르펜 왕국의 진영을 겁에 질리게 만들지 않았다.

마음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 죽여!”

“형제들의 복수를 하자.”

“자유를 위하여!”

유저들이 제국군과 사방에서 격렬하게 전투를 펼쳤다.

“뭐야. 이것들은 더 날뛰고 있네?”

4군단장 학살자 칼쿠스.

가르나프 평원에 막 진격해왔을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유저들이 미친 듯이 덤벼들고 있었는데, 제국군 병력도 손실을 입는 격렬한 전투가 펼쳐졌다.

“그래봐야 약한 놈들뿐이다. 더 강하게 공격한다.”

칼쿠스는 흑기병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중앙 대륙 정복 전쟁과 반란군들을 제압하며 성장시킨 정예 군대!

어떠한 방어선이라도 돌격하여 전투를 끝냈던 병력이 과감하게 북부 유저들을 돌파했다.

“풀죽, 풀죽, 풀죽!”

“싸워요. 끝까지 버티면 우리는 이길 수 있어요!”

“빽빽하게 밀집하세요. 그리고 달려야 합니다.”

고레벨 유저들이 섞여 있지만, 그럼에도 제국군을 상대하는 가장 많은 이들은 아르펜 왕국에서 시작한 초보들이 주역이었다.

4군단은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유저들을 궤멸시키며 피와 시체들로 깔린 땅에서 진군했다.

“거침없이 쓸어버려라! 이 전장은 우리가 지배한다.”

칼쿠스는 기사단을 직접 이끌었다.

전투를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기사단을 데리고 전장을 압도하는 쾌감을 포기하지 못했다. 

“후아. 이거 칼춤 한 번 제대로 추네.”

“가장 많이 죽인 건 우리 군단이 되지 않겠어?”

헤르메스 길드원들 1만여 명도 전장에서 저마다 공을 세우고 있었다.

마법사 유저들이 가장 많은 전과를 기록했지만 선두에 선 전사들 역시 만만찮은 능력을 자랑했다.

각자가 보스 몬스터처럼 혼자서 백 명 이상의 유저들의 합공을 견디면서 밀어붙였던 것이다.

분노에 차서 막무가내로 덤벼들던 북부 유저들조차 견고한 4군단의 공세에 위력을 잃어갈 때였다.

 - 쿠우아아아아아취이이이!

평원을 떨게 만드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누구야. 이 소리는?”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싸우고 있던 유저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무슨 고함 소리가 이렇게 크고 무시무시해.”

“몬스터 아냐? 엄청난 몬스터가 나타난 것 같아.”

그리고 욕심 많고 비열함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커다란 오크가 대규모 유저들을 이끌고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위드님 아냐?”

“맞는 것 같은데?”

“틀림없잖아. 오크 카리취야.”

위드는 11군단과 싸우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레벨 유저들을 이끌고 떠났다.

게다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가르나프 평원에 흩어져 있던 유저들이 속속 합류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늘어난다.

어디서든 위드가 사자후 한 번만 터트리면 수십  만의 병력이 그대로 모일 것이다.

“우아아아아!”

“위드님이 오셨다!”

“이겼어! 이겼다고.”

위드가 도착한 것만으로도 4군단과 싸우던 유저들의 사기는 절정에 달했다.

아군이 죽으면서 힘겹게 전투를 펼치고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대군을 이끌고 지원군, 그것도 오크 카리취의 모습으로 위드가 오고야 말았다.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  유성 소환으로 죽은 형제들을 애도하자. 취췩!

“유성을 또 떨어뜨렸지.”

“맞아.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

 -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자. 전군 진격!

“돌격!”

“달려라!”

“풀죽, 풀죽, 풀죽!”

“순교, 순교, 순교!”

위드가 끌고 온 새로운 병력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위드라면 여기서 꺾어야 되겠다.”

칼쿠스는 인근의 다른 군단장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북부 유저들이 인근에 깔려 있어서 지상 병력의 도착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용기사 뮬이 지휘하는 2군단은 공중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신속하게 올 수 있다.

칼쿠스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2군단까지 오면… 어디 한바탕 제대로 어우러질 수 있겠어.”

헤르메스 길드에는 전투를 즐기는 이들이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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