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지막 수단
- 마판 : 위드님. 그쪽으로 병력들이 몰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페일 : 적 기사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기사와 기병대들이 전투 중에 빠르게 이탈해서 달려갔습니다.
- 이리엔 : 판제롭 유령 기사단이 그쪽으로 달렸어요. 피하셔야 돼요!
- 수르카 : 거기 위험해요. 어서 나와요.
- 레몬 : 보고입니닷. 지금 풀죽신교의 각 분대장들이 말하기를 상당히 많은 병력이 위드님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막고는 있지만 뚫고 지나갔어요. 어서 빠져나오세요!
위드에게 여러 사람들의 귓속말들이 전해져왔다.
가르나프 평원에서 대대적으로 전투를 펼치던 제국군이 목줄을 끊어낸 맹수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날 잡으려고 하는 군. 췻.”
오늘 치른 전투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20군단이 함정을 파고 기다렸고, 불타는 유성 소환까지 거침없이 사용했다.
하벤 제국군의 움직임이 바뀐 것도, 명백히 이번에도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취췩. 등 따뜻하고 배 좀 부르게 살아보려고 했더니 말이야. 췩!”
위드가 한탄을 하는 사이에 유저들도 소식을 들었다.
“제국군이 온대!”
“모조리 여기로 온다는데?”
어느새 풀죽신교의 비상통신망에도 공식적으로 제국군의 급격한 움직임이 알려졌다.
뮬의 그리폰 군단도 하늘을 뒤덮고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 조인족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피하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위드님.”
가까이 있던 유저들이 위드의 안전을 걱정하며 말했다.
북부 유저들도 이곳을 격전지로 깨닫고 몽땅 모여들 것이다.
그럼에도 평원에 넓게 흩어져 있는 유저들은 제국군보다 한두 발 늦을 수밖에는 없었다.
‘20개나 되는 군단이 한꺼번에 진격한 것은 전술적인 이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날 확실히 죽이려는 것이지.’
위드는 상황을 냉정하게 돌이켜봤다.
사기꾼에게 당해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길이 있는 세상!
물론 그 사기꾼이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면 생존이 불가능하겠지만 세상 일에는 변수가 많다.
완벽하게 치킨 한 마리를 튀기는 것도 쉽지 않은 법이다.
“저희가 막겠습니다. 바로 빠져나가세요.”
“여기서 죽으면 안 됩니다.”
“우린 괜찮아요. 위드님이 사셔야 되요.”
유저들이 몰려들어 탈출로를 열겠다는 제안도 선뜻 했다.
“여러분…”
위드의 눈가가 감동으로 씰룩거렸다.
물론 그 이후에 벌어지게 될 일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많은 유저들은 전멸할 것이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사방에서 공격을 당해서 죽어가게 된다.
위드가 도망치는 모습들이 방송을 타게 된다면 명성의 하락도 정해진 사실이었다.
도망자.
비겁한 사람.
지금까지 쌓아올린 인기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광고 수입, 출연료!
지금 위드의 인기는 어린 아이들의 동심을 파고들어서 코 묻은 돈을 탈탈 털어낼 수 있는 상태!
매년 판매량이 늘어나는 캐릭터 사업까지 감안하면 도망치는 건 최악의 수였다.
“위드님을 피하게 해야 합니다. 모두 협조를 부탁드려요!”
“제국군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세요. 위드님이 빨리 빠져 나가도록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간절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냐. 흔들리지 않는다. 내 밥그릇은 내가 지킨다.’
핵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지켜야 하는 밥그릇!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 여러분! 하벤 제국군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취췩!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유저들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이야기했다.
“어서 가세요. 위드님.”
“지금은 빠져나갈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막을게요.”
유저들은 위드가 떠나리라고 짐작했다.
어쩔 수 없이 간다고 사과라도 할 줄 알았지만 정반대였다.
-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취이이익!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승리할 겁니다!
취췩. 취.
우리의 의지는 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기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추이이이익!
위드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사람처럼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기 위해 조각칼을 들었다.
슥슥슥슥
가까이 있는 바위를 빠르게 깎아내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드러나는 형체는 꼬질꼬질하고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였다.
‘여기서 다른 대책은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해주겠지.’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리고 조각품을 만들자, 가까이 있던 모든 유저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차린 북부 유저들은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맙소사.”
“그 분이다.”
“누군데?”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 베르사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야!”
원래대로는 챙길 건 챙기면서 좀 더 싸운 후에 되살리려고 했다.
가르나프 평원에 많은 조각품들이 파괴되어 복원을 위한 시간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계획 변경이다. 일단 다 떠넘기자.’
위드가 조각칼을 움직이는 광경은 멀리 있던 4군단의 칼쿠스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봤다.
동시에 방송을 통해서도 수많은 유저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 게이하르 황제!
- 드디어 황제를 되살릴 모양입니다.
- 얼마 전에 위드가 아르펜 제국의 시절로 돌아가서 바다를 지키는 모험을 했었죠.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입니다.
-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군가요?
- 자료에 따르면… 조각사로서 최초로 전 대륙을 통일한 황제라고 합니다.
각 방송국의 진행자들마다 열기가 흘러넘쳤다.
위드가 출연하면서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는 쉴 새가 없었다.
이 순간에도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전투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위드가 서 있는 장소만큼은 아니었다.
제국군들이 결집하고 있었고, 그 뒤를 따라 북부 유저들도 모이고 있었기에 중요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베르사 대륙의 운명이 이 자리에서 정해진다.
그런데 게이하르 황제의 소환이라니!
“놈이 칼을 뽑았다.”
위드의 의도를 알아차리자마자 칼쿠스는 방해하고 싶어졌다.
죽은 영웅을 되살리는 광경은 근본적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그게 이루어지면 불리하단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걸 못 만들게 해!”
헤르메스 길드의 마법사들이 마나를 아끼지 않고 강력한 원거리 마법 주문을 외웠다.
“확산력과 피해가 큰 화염 마법으로 간다.”
“파이어 블래스터.”
“플레임 샤워.”
“파이어 버스터!”
수백여 개의 화염 마법들이 쏘아져나가서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목표는 위드!
이번에는 북부 유저들도 철저히 대비를 했다.
“우리 마법사님들도 받아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읍시다.”
“몸이라도 던져서요!”
정령이나 마법 화살, 얼음 마법들이 수만 개가 하늘로 발동되었다.
파파파팡!
화염 마법들이 온갖 종류의 대응 마법들과 부딪치며 폭발이 일어났다.
세상의 폭죽을 한꺼번에 터트린 것만 같은 화려한 불꽃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퍼진다.
화염 마법들은 대기권을 관통하는 유성우처럼 타오르고, 부서지면서도 다가왔다.
“막을 수 있어요!”
“조금만 더 힘을!”
마법사들이 다시 얼음 마법을 쏘고, 사제들은 위드를 중심으로 보호 마법들을 펼쳤다.
게다가 유저들은 뭉쳐서 성벽처럼 몸을 쌓아 방어벽 역할을 했다.
위드가 그들을 지켜주겠다고 선언하였기에, 자신들도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으아… 안 되는데.”
“막자.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야.”
기꺼이 벽이 된 유저들은 눈을 부릅뜨고 화염 마법의 접근을 바라봤다.
화염 마법들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온갖 종류의 불꽃들이 되어 부서지고 흩어진다.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조금씩 사라지는 광경에 유저들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만세!”
“우리가 또 해냈다.”
화염 마법을 막기 위해 썼던 얼음과 물의 마법의 여파로 뜨거운 빗줄기가 일부 내렸다.
쏴아아아아.
그리고 위드는 비를 맞으면서도 조각칼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빠르게 형태를 갖춰나가는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품!
눈가의 주름이나 턱 주름, 삐죽하게 튀어나온 이빨 정도까지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머리에 땜빵도 크게 있던데… 이런 걸 빠뜨릴 수는 없지.’
자세히 보면 게이하르 황제가 그렇게 영웅의 인상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정말로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악독하게 생긴 집주인이 때때로 월세를 올릴 때 조금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반면에 평범하게 생긴 사람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 달부터 월세 3만원 올리지.”
“영감님. 어르신. 지금도 겨우 맞춰서내고 있는데요. 주변 시세도 안 올랐고요.”
“아쉬우면 나가던가. 세입자 없어서 못 구하는 줄 아나? 불쌍해서 길거리에 나앉을 놈들 살게 해줬더니!”
“저희 입장에서는 매달 3만원은 부담이 큽니다. 고장 난 보일러도 안 고쳐주셨잖아요.”
“누군 땅 파서 이 집 지은 줄 알아? 내가 집 지을 때 삽질이라도 해줬어? 어? 해줬냐고!”
위드는 지독했던 집주인을 떠올리면서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품을 만들어갔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무엇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예술성이나 정교함보다는 빠른 손놀림으로 완성되어가는 조각품!
꾀죄죄한 옷차림에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대륙을 통일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잠든 것처럼 나른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오래전에 봤던 노인을 닮은 구석도 조금은 있었다.
‘그 할아버지도 코코아를 사 마셨을까.’
잠깐 만났던 할아버지기는 하지만 어깨가 좁고 처량하게 보였다.
흔히 보는 겉으로는 꼬장꼬장하면서도 알수록 불쌍한 유형들.
‘나이 먹고 당 떨어지면 힘들 텐데. 밥은 챙겨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어찌나 안타깝게 생겼던지 인색한 위드가 기꺼이 200원을 꺼내서 코코아를 마시라고 건넬 정도였다.
“벌써 조각품이 만들어졌어!”
“우와아. 5분도 안 되었는데 사람을 하나 만들어 내다니. 복사기 수준 아닌가?”
“3D 프린터야. 완전히 게이하르 황제랑 똑같잖아.”
위드가 조각품을 만드는 것만 지켜보던 유저들에게는 경악스러운 속도였다.
그냥 슥슥 움직이면 정교한 묘사들이 이루어진다. 몸과 얼굴선이 생겨나고 주름들이 잡힌다.
다른 예술가들처럼 감각이나 독창적인 표현력에 있어서는 모자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저것 짜붙이는 것과 작업 속도에 있어서만큼은 거장이라고 부를 만 했다.
노가다계의 신화!
위드는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조각 부활술!”
-조각 부활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드넓은 대륙의 지배자.
예술을 널리 퍼뜨리고, 모든 생명체들의 아버지.
조각술의 마스터이며, 아르펜 제국의 황제 게이하르 폰 아르펜.
예술의 부름을 받아 이 땅에서 다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예술 스텟 45가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신앙 스텟 10이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레벨이 3 하락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18,000씩 소모됩니다.
조각 부활술에 의하여 되살아나는 인물은 생전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해진 짧은 시간이나마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게 해 준 것에 고마워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각 부활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품!
그것은 몇 초 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위드의 숨이 막혀올 정도였지만, 게이하르 황제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다.
“으하아아암. 여기는… 제자로구나.”
“예. 스승님.”
위드는 넙죽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무조건 되살린다고 해서 돕는 것이 아니다.
조각 부활술로 살아난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대륙을 구하는 일이라고 좀 사기도 쳤었고. 술도 사주고, 고기도 구워줬지. 하라는 대로 다 했었다.’
그렇지만 최악의 경우 먹튀도 감안해야 하는 상황!
베르사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영웅 게이하르 황제였지만 위드는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게이하르 황제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4군단과 유저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긴 전쟁터구나. 네 말대로 지금이 그 순간인 것이냐.”
“그렇습니다.”
“저들이 그 못된 놈들이고?”
“맞습니다. 완전 인간 말종들이죠!”
위드는 과거에 하벤 제국과의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조미료를 듬뿍 뿌렸다.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며, 예술을 경시하며 조각품을 파괴할 거라는 악의 제국!
위드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이 이 땅을 차지하고 나면 스승님의 위업은 사라지고 말 겁니다. 이미 누렁이가…”
“뭣이! 누렁이가 죽었느냐!”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 생명체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누렁이를 보고도 멋진 소라고 애착을 갖고 등에 올라타기도 했었다.
물론 누렁이는 매우 귀찮아하며 억지로 태워준 것이었다.
“아직 죽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놈들이 누렁이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습니다. 소금도 가지러 갔습니다.”
“소고기는 역시 소금이지.”
“맞습니다. 이것저것 필요 없고 좋은 소금에 찍어먹으면 딱이죠.”
“누렁이의 갈빗살은 그야말로 훌륭하지. 떠올리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구나.”
“스승님께서 목을 좀 축이시라고 좋은 막걸리도 담아놨습니다.”
위드는 나무로 된 술병까지 슬며시 내밀었다.
뇌물로 바치는 최상의 막걸리!
게이하르 황제의 취향을 완벽히 저격한 것이었다.
- 2군단 도착 1분 전!
- 3군단도 합류를 하고 있습니다.
- 가르나프 평원의 곳곳에서 제국군이 모입니다. 그들은 북부 유저들을 학살하며 위드가 있는 지역으로 진격합니다!
제국군의 급작스런 전술 변화에 방송국마다 뒤집어질 정도로 난리가 났다.
자정부터 벌어진 전투는 새벽을 지나며 빛이 조금씩 밝아져오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제국군 병력들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 동쪽에서 판제롭 유령 기사단의 쾌속 진격입니다.
- 서쪽에서 9군단, 북쪽에서 14군단도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 제국군의 움직임이 경이적입니다. 뒤늦게나마 자료들을 찾아보니 위드가 등장했을 때부터, 제국군들의 위치와 이동 경로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 순간만을 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 맹수가 어슬렁거리다가 단숨에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그런 광경이 떠오릅니다.
하벤 제국군에 의해 위드나 그를 따르는 유저들이 위험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북부 유저들이 허겁지겁 집결하고 있지만 그들을 방해하는 부대들이 따로 있었다.
영락없이 죽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을 때, 위드는 조각 부활술을 사용하고야 말았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의 등장!
- 놀랍습니다. 조각품이 살아났습니다.
- 게이하르 황제. 아르펜 제국의 이름으로 대륙을 통일시킨 역사적인 인물의 출현입니다.
- 위드에게는 사용이 예정된 카드나 마찬가지였는데요. 실제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 가르나프 평원에 수많은 유저들이 조각품을 만든 이유가 이 순간을 위해서라고 보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고려해 두어야 할 것이 조각품의 파괴입니다.
- 파괴요?
- 불타는 유성 소환이 많은 조각품들을 파괴해버렸습니다. 유저들이 복구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피해가 클 겁니다.
- 당장 그곳까지 가는 것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네요.
방송 영상에서 제국군들은 굶주린 승냥이떼처럼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위드와 함께 한 유저들이 외곽에서부터 급속도로 죽어나가는 광경이 보였다.
- 이대로라면 위드나 게이하르 황제도 버티지 못합니다.
-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 하늘은 2군단에 의해 막혔습니다! 지상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더라도 제국군이 막을 겁니다.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 * *
“크으. 죽이는 군. 이 맛에 되살아나는가.”
게이하르 황제는 막걸리 세 병을 차례로 들이켰다.
그 사이 위드는 여러 가지 경로로 전황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마판이 가장 정확했다.
- 마판 : 위드님이 있는 곳으로 집결하고 있는 제국군 병력이 너무 많습니다. 2군단과 3군단, 6군단, 7군단이 가장 빨리 도착할 겁니다! 정보의 출처는 CTS미디어입니다.
위드는 이 자리에 남기로 했지만, 아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대륙을 통일한 영웅인 그가 무엇이든 해주리라!
“딸꾹. 꺼어어어억. 취한다. 좋구나. 얼쑤!”
게이하르 황제가 두 팔을 휘저으면서 춤을 추었다.
- 마판 : 포위망이 취약한 방향은 없습니다. 그리고 3군단의 병력 중에 마법 스크롤을 보유한 이들을 대량으로 발견! 그들의 광역 마법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위드님을 지키는 유저들은 급속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희망적인 보고란 없었다.
의리보다는 끈끈한 이해관계로 맺힌 마판이라서 지금이라도 헤르메스 길드로 전향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판이 성실하게 보고하고 있는 이유는 위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경험과 감!
위드가 절대로 그냥 죽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다 죽을 판입니다. 스승님! 어서 뭐라도 해보세요.”
“막걸리 한 병 안 남았나? 딱 좋은 기분이 들 때까지 조금 부족한데.”
“좀 전에 그게 마지막입니다.”
“아쉬워. 아주 큰 흥이 일어나려고 했는데 말이야.”
위드는 되살려낸 황제가 못 본 사이 알콜 중독이 된 건 아닌지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역사적으로는 안 이랬는데, 설마 알콜 중독으로 죽었던 건 아니겠지.’
시간 조각술의 드러나지 않은 폐해.
나비 한 마리가 변화를 일으키듯이 어쩌면 게이하르 황제도 알콜 중독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공짜 술을 좋아하는 게이하르 황제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시대에는 내가 직접 생명을 부여한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죽었겠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철혈의 워리어 바하모르그는 되살아났다.
수명이 긴 해양 생명체들을 비롯해서 여러 종족들이 살아 있긴 할 테지만, 게이하르 황제가 직접 생명을 부여한 이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내 친구들. 나의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하는데… 한 잔의 술이 부족하구나.”
게이하르 황제는 슬퍼했다.
“스승님.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위드는 어쩔 수 없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품에 아껴놓았던 비싼 포도주까지도 꺼내야 했다.
한 병에 3천 골드를 훨씬 넘는 고급 술이었다.
“꼴깍. 꼴깍. 끄윽. 취한다.”
게이하르 황제는 병을 따더니 막걸리를 마시듯이 들이켰다.
“위드님! 외곽이 무너지고 있어요.”
“남쪽에서 대규모 병력이 출현했습니다. 눈으로도 보여요.”
“꺄아아아악. 그리폰 부대가 하늘을 돌아다녀요! 언제라도 공격해올 것 같아요!”
유저들이 쓰러져 죽어갔다.
그 사이에 뮬의 2군단은 하늘을 돌면서 지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위드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즉시 공격하지 않았지만 기회가 보인다면 활동을 시작하리라.
사상초유의 위기!
게이하르 황제는 포도주를 마시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스승님?”
“쿨…”
“스승님. 혹시 잠드신 겁니까? 일어나시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드르렁드르렁!”
“…”
위드는 깊게 잠든 게이하르 황제를 확인하고 로아의 명검을 뽑아들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관계에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흔해빠진 먹튀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헤스티거의 반만이라도 해주었으면… 역시 조각사들은 게을러터지고 자기 멋대로 사는 인간들이야.”
게이하르 황제의 목을 치려다가도 망설여졌다.
‘그래도 투자한 게 있는데… 아니야. 당장 베어버리자.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나아…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잖아.’
위기에 닥칠수록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였지만 게이하르 황제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3.2초 후!
드디어 위드는 판단을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는 수밖에는 없겠지.”
오크 카리취의 모습으로 알맹이들만 골라서 사냥하려는 계획이 틀어졌다.
공짜 밥을 먹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밥값을 지불해야 했다.
전쟁의 신으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내야 할 시간.
위드는 조각칼과 조각 재료로 금괴 덩어리들을 꺼냈다.
배낭에서 하나, 둘씩 꺼낸 황금은 높게 쌓였다.
돈 없다고, 가난하다고, 모든 걸 아르펜 왕국을 위해 투자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실상은 알부자!
모험과 사냥으로 얻은 누런 금들을 뭉쳐서 따로 모아두었다.
“신성한 불!”
위드는 헤스티아의 불꽃을 일으켜서 황금을 녹여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샤샤샤샥!
뜨거운 금덩어리들을 물의 정령 씽씽이를 불러서 식히면서 동시에 깎아냈다.
“앗뜨뜨뜨드.”
< 화염 피해를 입습니다.
생명력이 31 감소하셨습니다. >
화염 저항과 맷집으로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피해는 발생한다.
위드는 무시한 채로 조각술로 굉장히 빠르게 작업했다.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조각품보다도 빨리 만들어갔다.
“우와앗. 이렇게 많은 황금 처음 봐.”
“위드님 대단하구나.”
주변의 유저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믿을 놈은 없지만, 도둑놈은 많지.’
다행히 과거에도 여러 번 조각해본 존재였다.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해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끔찍한 전투를 지휘하며, 몇 배나 되는 적을 상대로도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
‘리치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해골의 조각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 같지만 일단 멋은 있었다.
통째로 황금을 쏟아서 만들고 있으니 당연히 멋있는 것이 정상이었다.
금인이도 황금의 후광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좀 평범했을 것이다.
피부 미인이라는 말처럼 조각술 역시 재료 빨이었다.
‘음. 재료가 좀 부족하군.’
위드는 상체를 조각하다가 황금이 약간 모자란 것을 느꼈다.
4군단의 공세가 계속 되고 있었고, 사방에서 조여드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에 대한 보고도 잇따른다.
하늘에서는 뮬의 그리폰 군단이 슬슬 지상으로 가까이 내려오고 있었다.
위드가 안전한 것은 게이하르 황제가 소환되면서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냥 대충하자. 다리 하나가 좀 짧아도 마법을 쓰는 데는 괜찮겠지.’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황금 리치로 해.”
-황금 리치가 맞습니까?
“아니. 잠깐만…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동심을 심어줘야지. 귀여운 이름을 해야 캐릭터가… 뽀로로나 타요를 봐도 말이야. 흠. 꼬롱이로 하자.”
-꼬롱이가 맞습니까?
“맞아.”
명작! 꼬롱이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세상을 구한 영웅이며, 광대한 북쪽 대륙의 왕!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조각사 위드의 새로운 작품.
오로지 순수한 황금으로 만들어낸 리치의 조각상입니다.
미묘한 공포를 일으키는 해골!
인체 내부에 있는 뼈들이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한쪽 다리가 짧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부분들의 완성도를 감안할 때에 조각사의 깊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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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가치 : 12,381.
특수 옵션 : 꼬롱이 상을 바라본 언데드들은 생명력과 마나 흡수율이 24% 증가한다.
―아군의 사기가 저하됨.
―적에게 괴로움과 공포를 심어줌.
―행운 55% 감소.
-흑마법 저항력 10% 감소.
―언데드 소환 스킬의 효과가 강화됨.
-언데드들이 고유 스킬의 사용 시간이 감소.
-아군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생명력이 감소할 때마다 공격력이 최대 3배까지 비례하여 상승.
-전 스탯 33 상승.
-영구적으로 지식 1 증가.
-이 지역에 전리품 획득률을 늘려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명작의 숫자 : 36
명성이 5,321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44 상승하셨습니다.
인내가 1 상승하셨습니다.
통솔력이 3 상승하셨습니다.
지혜가 2 상승하셨습니다.
신앙심이 2 감소하였습니다.
조각상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통찰력이 2 상승하셨습니다.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명작의 완성!
위드는 급해서 바쁘게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명작의 작품이 나왔다.
조각술 스킬의 마스터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준 것이었다.
“역시 예술 작품은 돈과 디테일인가. 조각 변신술!”
-조각 변신술을 사용합니다.
위드의 키가 오크 카리취의 형태에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깨가 좁아지고 통나무 같던 팔다리가 가늘어진다.
풍성하던 머리카락은 바람이 불면서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앙상하게 말라가는 몸은 가죽까지 벗겨지면서 마침내 뼈다귀만 남았다.
해골! 그것도 리치였다.
-몸의 형태가 바뀌면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상당수가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스릴이나 신성력이 들어간 장비들을 모두 입으실 수 없습니다.
종족이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새로 구하십시오.
-조각 변신술의 영향으로 지식과 지혜가 매우 높게 증가합니다.
힘과 민첩이 많이 감소하고, 예술 스탯이 삼분의 일로 줄어듭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대폭 늘어납니다.
체력의 한계가 사라집니다.
조각품에 대한 이해 스킬이 마스터라서 완전한 리치가 되었습니다.
리치 특유의 특성이 부여됩니다.
생명 보관!
병을 만들어 자신의 생명을 보관합니다. 병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매우 강력한 마법이나 신성력이 아닌 한 죽지 않습니다.
언데드를 통한 생명력 흡수와 마나 흡수의 효율이 45% 입니다.
햇빛을 보면 생명력과 마나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성력이 더욱 치명적으로 나쁘게 적용됩니다.
조각 변신술이 풀릴 때까지 유효합니다.
< 명작의 조각품으로 변신했습니다!
불완전한 형태의 조각품에 의해 악독함의 특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죽일 때마다 일정 확률로 스탯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주와 공포의 주문 위력이 200%로 강화됩니다.
악명이 42% 많이 증가합니다.
죽은 자의 힘이 26% 더 많이 쌓입니다. >
이름은 꼬롱이!
그렇지만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리치로 변신한 위드였다.
차차차착
바르칸의 풀세트도 모조리 착용을 했으며,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도 들었다.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곧바로 사용한 언데드 소환 마법.
데스 나이트는 기본이었으며 스켈레톤은 군단이 통째로 일어났다.
유령 기사단이 소환되었고,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시체들로 대장격인 둠 나이트들까지 출현했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토리도!”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부하들까지 불러들였다.
- 끄오오오로로로오오오옹!
위드는 이어서 사자후까지 터트렸다.
스켈레톤들을 중심으로 언데드 군단이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소리 질렀다.
“크케케케켓!”
“캬캬캿!”
“으헤헤헤헤헤헤헤.”
“피를! 죽음을!”
“놈이 리치로 변신했다.”
칼쿠스는 4군단에 명령했다.
“언데드는 철저히 파괴하라.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위드가 일으킨 대규모 언데드 군단은 헤르메스 길드에도 충격이었다.
언데드 소환 마법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경계했다.
“귀찮아지는 일이 없도록 빨리 길을 열어야 하는데… 빌어먹을! 시간이 우리 편인 것은 맞지만 일이 복잡해지겠군.”
칼쿠스를 비롯한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원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뮬과 그리폰 군단은 하늘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쉽게 지상으로 내려오진 않는 것이다.
“도대체 왜… 설마 병력을 보존하면서 자기들이 위드를 잡을 기회를 노리는 것인가.”
“역시 그 목적 아니겠습니까.”
“이 전투가 끝나면 분명히 항의해야 한다.”
뮬과 2군단이 참여했다면 위드를 더 빨리 노릴 수 있으리라.
칼쿠스가 분노를 감추지 않았지만, 그들의 상황은 갈수록 좋아졌다.
“3군단이 보인다!”
“멀리 6군단도 나타났습니다.”
“7군단도 등장!
제국군들이 오고 있었다.
6군단은 엘프와 농부 미레타스에 의해, 7군단은 팔단 왕국의 유령에 의해 크게 고역을 치렀다.
처음 가르나프 평원에 왔던 병력의 3할에서 4할 정도가 도착했지만 그것도 무시하지 못할 강한 전력이었다.
“됐다. 어쨌든 이 자리에서 확실히 위드는 잡는다.”
칼쿠스는 군단장들끼리의 통신 채널을 열었다.
- 칼쿠스 : 위드 사냥에 참여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늦지 않게 오셨군요.
- 하일러 : 반갑습니다. 이곳의 지휘권은 누가 갖습니까?
- 칼쿠스 : 3군단장님이 서열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도 각 군단별로 독립 작전을 추진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하일러 : 뭐 그것도 방법이겠죠.
칼쿠스는 지휘권을 놓고 싶지 않았다.
3군단의 하일러는 전력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는 만큼, 따로 싸우더라도 자신이 위드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동의해주었다.
- 하일러 : 3군단이 북쪽을 맡습니다. 적진을 완전히 부숴버릴 겁니다.
- 그로스 : 6군단은 그러면 서쪽을 맡겠습니다.
- 크레볼타 : 우린 동쪽을 맡죠. 모두 잘해봅시다. 최고의 먹잇감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니 말입니다.
- 칼쿠스 : 크크. 4군단은 경쟁에 질 자신이 없죠. 지금까지 위드를 묶어놓은 건 우리 공입니다.
- 하일러 : 3군단. 전투 돌입합니다.
막강한 제국군 4개 군단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외곽에서부터 북부 유저들을 제거하고, 언데드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마법이 대규모로 작렬하며 전장 전체에 불길이 타올랐다.
위드도 반 호크와 스켈레톤을 지휘했다.
“전부 죽여라. 놈들을 막아!”
“알겠다. 주인!”
스켈레톤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가서 7군단과 싸웠다.
일반적인 전투력으로는 제국군 병사들보다도 조금 더 약하다. 그렇지만 많은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꽤나 잘 싸웠다.
더구나 하체가 날아가도 움직이는 스켈레톤들이 악착같이 병사들을 물고 늘어졌다.
“으어어어. 안 돼. 저들은 시체야. 싸울 수가 없다고!”
“죽을 거야. 우린 다 죽는다고.”
언데드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병사들!
기사들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고함을 지르며 진정시켰다.
“공포에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우린 제국군이다!”
“하벤 제국은 무적이다!”
언데드와 싸우면서 사기가 하락하는 것이 제국군의 큰 문제점이었다.
위드와 싸우기 위해 만약에 대비해 은을 바른 무기와 축복받은 갑옷들도 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환한 언데드들은 꽤나 귀찮은 존재였다.
“지옥의 검을 보여주어라.”
“피의 행진을!”
30기의 둠 나이트들도 돌진하면서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둠 나이트 영웅 네튜러스!
그가 소환되어 둠 나이트들을 이끌었다.
어둠과 독을 내뿜는 지옥마를 탄 둠 나이트들이 제국군 기사들과 부딪쳤다.
콰콰쾅!
단번에 수십 미터씩 날아가 버리는 제국군 기사들.
위드는 그 광경을 보며 아쉬워했다.
“조각 파괴술을 써서 지혜로 스탯을 몰아주었으면 더 강력했을 텐데.”
조각 변신술은 그 종족의 기술이나 특성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전직을 해서 여러 스킬들을 익히고, 네크로맨서의 특성들을 깨우친 덕에 언데드들은 더욱 강력해져 있었다.
위드의 몸은 때때로 불길에 휩싸였다.
< 신성한 불이 당신을 태웁니다.
생명력이 8,381 감소하였습니다. >
전투를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불길에 휩싸이는 위드!
여신 헤스티아가 부여한 신성한 불이 리치로 변신해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 마나가 3.7% 감소했습니다. >
때때로 피해가 생기긴 하지만, 전투에 참여한 언데드들로부터 흡수하는 생명력과 마나로 금방 회복했다.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황금 해골의 광채가 어둠을 밝혔다.
“우왓. 위드님 좀 봐.”
“엄청 멋지다.”
별 게 다 유저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만큼 위치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라서 4개의 제국군 병력이 공격할 방향을 정해주기도 했다.
북부 유저들과, 중앙 대륙 출신의 유저들이 그래도 잘 싸우고 있었지만, 추가적으로 제국군이 합류한다면 금세 열세에 처하게 될 것이다.
- 마판 : 제국군 1군단도 이동 중. 5분 정도 뒤면 도착하리라고 봅니다.
- 페일 :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유저들이 뛰고 있어요. 조금만 버티십시오. 어떻게든요!
- 날쌘 찬바람 : 조인족들이 모두 집결했습니다. 천공의 섬 라비아스에 있는 병아리들까지 전투태세에 돌입했어요. 그렇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마법으로 하늘에 돌풍을 일으켜서 방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서윤 : 바라그들을 이끌고 마법 병단을 막고 있어요. 유성 소환은 절대로 못 쓰도록 할게요. 그렇지만 일부 마법사들은 빠져나간 것 같아요.
- 미블로스 :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건축가입니다. 위드님에게 가는 제국군들을 방해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반 전체를 붕괴시켜서 막으려고 하는데… 그래봐야 최대한 끌 수 있는 시간은 10분입니다.
여러 유저들이 귓속말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하고 있었다.
위드는 가까이 있던 유저이며, 실력이 뛰어나서 분대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던 루블을 불렀다.
“당장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예요? 뭐든 할게요. 죽음으로서 탈출로를 뚫으라면 뚫을 거예요.”
금발의 여전사.
루블은 높은 레벨을 가진 호전적인 전사였다.
위드는 그녀에게 술에 취한 게이하르 황제를 넘겨주었다.
“이 분을 좀 맡아주세요.”
“예?”
“헤르메스 길드에서 집중적으로 노릴 텐데, 무사히 지켜야만 합니다.”
“…”
루블은 쉬운 임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수많은 유저들이 조각상을 만들었던 이유가 게이하르 황제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이 술 취한 노인이 죽고 나면 아르펜 왕국의 기둥 하나가 쓰러지는 것이다.
그 사실을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알아차린다면 맹공을 퍼부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지켜볼게요.”
위드는 게이하르 황제까지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전장에 나서기로 했다.
‘어차피 싸워야 했다. 이건 내 전투야.’
비장의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언제나 믿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 마나가 26 흡수되었습니다. >
< 마나가 31 흡수되었습니다. >
< 마나가 55 흡수되었습니다. >
< 마나가 12 흡수되었습니다. >
< 마나가 7 흡수되었습니다. >
< 마나가 83 흡수되었습니다. >
…
전투에 참여한 언데드들로부터 높은 비율로 생명력과 마나가 흡수되고 있었다.
“라이프 베슬 생성.”
위드는 리치의 생명력을 보관할 병을 만드는 주문을 썼다.
흙이 뭉쳐져서 단단한 병이 만들어졌다.
< 라이프 베슬.
매우 강력한 리치 꼬롱이의 생명이 보관되어 있다. >
리치는 생명력이 보관된 병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은 잘 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병이 파괴되고 나면 마력이 감소하고, 생명력과 마나 흡수율도 낮아진다.
무조건 지켜야 하는 병!
이런 건 땅을 깊게 파고 묻어놓아도 불안한 법이었다.
위드는 콜라병 크기의 병을 향해 턱뼈를 쩍 벌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삼켜버렸다.
꼴깍!
목을 지나서 갈비뼈 안쪽에 딱 떨어진다.
“누구한테도 못 맡기니 몸 안에 보관을 하는 게 낫겠지.”
큰소리를 내서 주위의 유저들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근접 공격만 당하지 않으면 안전한 위치.
위드가 성큼성큼 걸으면서 옆에 있던 유저를 스쳐지나갔다.
샤샤샥!
고급 전리품을 획득할 때처럼 손들이 바쁘게 오고갔다.
낡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여동생 유린!
- 유린 : 잘 받았어. 그럼…
유린의 임무는 라이프베슬을 가지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비전투계열 유저는 헤르메스 길드의 우선순위에서도 관심이 멀어지기도 하고, 그림 이동술을 비롯해 몇 가지의 탈출 방법도 가지고 있었다.
로열 로드를 하면서 유린은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었다.
생존 능력만큼은 위드마저도 접어주어야 할 정도의 능력자.
“모두 엎드려라!”
“케케켈.”
위드는 지옥 망토를 펄럭이며 스켈레톤들이 자신들의 몸을 쌓아 만든 산에 올랐다.
30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 해골들이 조금씩 꿈틀거린다.
그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는 황금 리치!
위드에게는 이 순간에도 생명력과 마나가 흡수되고 있었다.
< 죽은 자의 힘이 3 쌓였습니다. >
죽은 자의 힘으로 인한 페널티도 있었지만 단기적으로는 이 또한 마법력이 강해지는 원동력이 된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이번에는 그냥 모조리 다 질러보자.’
뒷감당 따위는 그때 알아서 하면 되리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늘만 사는 남자가 되기로 했다.
위드는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를 들고 소리쳤다.
“빛에 의해 흩어지지 않는 칙칙한 어둠이여, 이곳에 내려와 죽음을 일깨우는 자들에게 깃들라. 데스 오라!”
바르칸의 3대 마법 중의 하나.
언데드를 강화하는 데스 오라의 발동!
위드가 해골로 이루어진 산에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를 내리쳤다. 그러자 흑색의 오오라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언데드를 변화시켰다.
새하얗고 어딘가 익숙하기까지 한 스켈레톤들.
뼈마디가 굵어지고, 날카로워지면서 덩치까지 조금씩 커진다.
“크우와아아악!”
“이 거침없는 힘! 이것이야 말로 죽음마저도 우리가 이겨냈다는 증거다!”
언데드 중에서도 좀비들과 더불어서 최하급에 속하는 것이 스켈레톤들이다.
그들이 변화하면서 중간 보스급 스켈레톤 지휘관들까지도 알아서 등장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유령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악귀로 변환되었다.
흑마법을 쓰고, 생명력을 빼앗고, 땅과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악귀들!
둠 나이트들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다.
“우리의 힘이 돌아왔다. 지옥의 수문장마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강대한 네크로맨서가 우릴 소환한 것이다. 절대 복종을!”
30기의 둠 나이트들이 위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예를 취한 후에는 지금까지 호각으로 싸우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둠 나이트들은 싸울수록 강해지는 것을 비롯하여 단거리 비행 등 몇 가지의 고유 특성들이 있다.
데스 오라에 의해 모든 특성들이 깨어나서 본연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반 호크도 마치 허물을 벗듯이 변화했다.
암흑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데스 나이트에 머물러 있었는데, 둠 나이트 대장으로 승급했다.
뱀파이어로드 토리도 역시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위드의 부하가 된 이후로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을 많이 잃었다. 적들을 상대로 간신히 싸워야 했던 그에게 모든 봉인이 풀려나간 것이다.
“이걸로 끝나서는 섭섭하지.”
위드는 마나를 흡수하여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미개한 인간들이여, 어리석은 저항이구나. 이 땅은 내 암흑의 율법이 지배한다. 영원한 불사의 힘이 장악하리라. 다크 룰!”
한 지역의 법칙을 바꿔놓는 마법!
모든 시체들이 깨어나서 강제로 언데드가 되어버리게 한다.
위드의 다크 룰이 대지의 깊은 곳까지 어둡게 물들였다.
들썩들썩
땅이 뒤집어지고 갈라지면서 수많은 스켈레톤과 좀비, 데스 나이트, 듀라한, 유령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드를 죽이려다가 실패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시체는 좋은 제물이 되었다.
둠 나이트들이 35명이나 늘어났으며, 일부의 고급 시체들은 뒤엉킨 채로 어둠을 발산했다.
- 끄우아아아아아아아악!
뼈들이 녹아서 뭉쳐지고, 기괴하게 형태가 바뀌어간다.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긴 척추가 생성되더니 날개가 돋아나고, 무언가가 커져갔다.
- 꽈아아아아아!
그러더니 울부짖으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본 드래곤 두 마리!
과거에는 명문 길드가 모든 전력을 쏟아 붓더라도 본 드래곤 한 마리도 사냥하기가 힘들었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최상위권 유저들이 힘을 합치면 하늘을 나는 본 드래곤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본 드래곤의 탄생이 주는 위압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땅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서 죽었던 모든 시체들이 일어나면서 수백만의 언데드 군단이 생성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