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회심의 대재앙
“심각하군.”
7군단을 이끄는 크레볼타는 지금까지 괜찮은 지휘관이었다.
헤르메스 길드 내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병력을 이끌 줄 알 뿐만 아니라, 레벨 기준으로 공식 8위의 랭커였다.
크레볼타는 멀리서 칼쿠스를 죽이고 4군단을 휘젓고 다니는 위드를 보며 혀를 찼다.
“강할 줄은 알았지. 숨겨둔 한 수도 있을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저 정도였는가.”
스킬 한두 가지나 장비를 감춰둔 게 아니었다.
직업적인 특성을 궁극으로 이끌어내는 조합과 훌륭한 전투술.
직업 마스터를 하고, 모든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모습이라서 더욱 부럽고 빛이 났다.
“여기가 언데드 판이라서 더 강한 모양인데... 저건 아무래도 일대일로는 답이 안 나오겠군.”
크레볼타가 이번 전투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마흉갑 크라노싸.
받은 피해량의 5배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상대방이 공격을 하다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장비였다.
“리치라서 크게 쓸모는 없겠고. 그렇지만 하일러가 성검을 준비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
성검을 든 용사.
그를 받쳐주는 든든한 전사.
크레볼타는 하일러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합동 공격을 합시다.”
- 하일러 :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 * *
6군단의 그로스는 모든 병력을 이끌고 신나게 달려오고 있었다.
“뚫어라!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좀비와 스켈레톤의 들판을 돌파하고, 북부 유저들의 저항도 이겨냈다.
- 크레볼타 : 칼쿠스가 위드에게 기습당해 죽었다. 모두 조심해.
군단장 채널을 통해서 소식이 들려왔음에도 전 병력이 돌진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주변에는 북부 유저들과 언데드가 가득했고, 그들은 호랑이 등에 타고 있는 신세였다.
“멍청한 칼쿠스. 그놈은 언젠가 죽을 줄 알았어.”
병력을 지휘하는 바쁜 와중에도 수정 구슬로 전투 영상을 확인했다.
“방심하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구만. 잘 싸웠더라도 리치의 특성 때문에 졌겠지만.”
학살자 칼쿠스.
직업적으로 많이 죽일수록 전투 능력이 향상되며 여러 스킬들이 사용 가능해졌다. 그것들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광경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나라면 더 나을 수 있어. 그리고 우린 남은 게 별로 없기도 하지.”
그로스는 반드시 이길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직업은 워리어!
보스급 몬스터 레이드를 할 때는 헤르메스 길드원 중에서도 자신이 선봉을 맡았었다.
워리어들은 든든한 장비와 사제들의 지원이 있다면 열 배 더 강한 적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다.
‘안 죽으면 이기는 거지. 위드 옆에 오래 달라붙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방송에 나오며 영웅이 되고.’
그 어떤 화끈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왔다는 자신감.
6군단은 농부 미레타스와 엘프 유저들에게 중대한 피해를 입어서 병력이 반 토막이 났다.
핵심 정예들은 건재했지만 전투 병력만 놓고 보면 가르나프 평원의 싸움을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멸이다. 우린 그냥 멋지게 꼴아박는 거야.’
그로스가 내린 결론은 닥치고 돌격해서 끝장을 보는 것.
한순간이지만 뜨겁게 타오르리라는 생각을 했고, 그 때문에 6군단의 사기가 좋았다.
“위드를 우리 손으로 잡으면 대박이고, 못 잡아도 뭐... 잘 싸웠다는 평가는 들을 수 있겠네요.”
“하벤 제국이 이기면 우리 공적을 크게 칠 겁니다.”
“광고라도 하나 찍어 보죠.”
6군단에 속한 랭커들도 찬성했다.
그로스가 이끄는 전사들은 그냥 싸우는 걸 좋아했다.
“제국이 지면 우리도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요. 그럼. 깔끔하고 좋네요.”
그렇게 결정된 꼴아박기 전술!
일체 뒤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돌파력만큼은 화끈했다.
북부 유저들과 언데드들의 사이를 꿰뚫으며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병력이 분산되거나, 중간이 끊기는 것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위드야. 우리가 왔다!”
“우린 무적의 6군단. 가르나프 평원의 전쟁을 끝낼 영웅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과 제국군 병력이 무섭게 달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위드! 너의 오만함을 벌하러 왔다.”
그로스는 전투의 함성 스킬을 사용했다.
“하벤 제국의 전사 중의 전사인 나 그로스가 너를 처리하리라!”
그의 목소리가 전장에 넓게 퍼져나갔다.
고풍스럽고 유치하기까지 한 대사였지만, 승부를 벌이기 전에 소리를 지를 때의 이 쾌감은 당사자만이 이해하는 것이었다.
4군단 사이에서 날뛰고 있던 위드가 비행하면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면서 터트리는 사자후!
- 강자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겠느냐!
그로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전투를 벌이기 전에 한 마디를 외치고 바로 덤비려고 했다.
뜻밖에도 위드가 영웅 놀이를 받아준 것이다.
그로스는 검을 뽑아서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검집은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물론이다! 베르사 대륙에서 최고로 꼽을 만한 전투를 펼치기 위해서 왔다. 네가 느낀 외로움은 뜨겁게 달구어진 피로 식혀질 것이다.”
당당한 함성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재미있군. 암흑의 잔재!”
위드는 간단한 마법을 일으켜서 몸 주변을 어둠으로 감쌌다.
“토리도!”
전투 중인 토리도와 그의 혈족까지 불러서 공중에서 날도록 했다. 박쥐 떼의 호위를 받으며, 본 드래곤까지 슬쩍 불러 모았다.
“스켈레톤 궁수 소환!”
본 드래곤의 등에는 빼곡하게 스켈레톤 궁수들까지 소환해서 배치했다.
전투 능력이야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언데드 군단을 지휘한다는 의미가 듬뿍 담긴 연출.
위드는 이 순간 네크로맨서 중의 네크로맨서로서 방송 화면에 나갈 영상을 만들어냈다.
- 오너라. 너의 도전을 받아주마!
최종 보스다운 비주얼!
평소에는 하벤 제국이 최강의 악당 세력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좋다. 승부를 보자! 이야하압!”
그로스는 고함까지 지르면서 위드를 향해 달려갔다.
북부 유저들이나, 언데드들이 일제히 비켜서면서 둘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 뚫렸다.
위드는 해골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며 주문을 외웠다.
“처절한 고통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라. 심연에서는 죽은 자들이 너와 가까운 곳에 있으리니... 암흑 망령의 지배!”
짧게 대화를 나누며 4군단과 싸우며 소모한 생명력과 마나가 완벽하게 회복됐다.
전력이 무너진 4군단은 남은 북부 유저들과 언데드들에게 맡겼다.
위드는 각종 강화 주문까지 외우면서 육체와 마법력의 능력을 높였다.
그리고 준비한 마법은 저주와 공격이 함께 부여된 복합형 마법!
시커먼 망령들이 땅에서 올라오더니 그로스를 뒤덮었다.
죽음이 발생했던 장소에서 시전되어야 한다는 제약은 있었지만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마법이다.
* * *
“윽!”
그로스는 땅이 검게 물들 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망령들이 솟구치자 방향을 바꿔서 옆으로 피했다.
‘위드를 먼저 상대해 본 사람들이 말했지. 평범한 유저. 특히 착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교활하고 영악하며 파렴치한데다가 뻔뻔하기까지 하다더니...’
그로스는 경계하며 망령들을 피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암흑 망령들은 빠르게 하늘을 날아서 그를 쫓아왔다.
< 끔찍한 암흑 지옥의 망령들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둠에서 힘을 얻은 망령들은 빛마저 먹어치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
생명력이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진 이들은 작은 거미로 변하여... >
그로스는 반사적으로 메시지 창을 빠르게 읽고 있었다.
워리어로서 당연한 버릇 같은 것이었는데, 처음 당하는 마법 같은 경우는 어떤 피해가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암흑 망령들이 달라붙어서 공격을 하나? 까다롭기 짝이 없는 방식인 것 같...’
그가 빠르게 눈으로 읽으며 생각할 때였다.
쐐애액!
시커먼 망령들을 뚫으며 무언가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뭐지? 뭐냐!’
반사적으로 방패를 꺼내서 막아냈다.
터엉!
몸 전체가 밀리는 충격과 함께 방어에 성공했다.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잘한 판단과 대응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놀랄 정도의 괴력이었다.
‘이건 무슨 공격? 최소 보스급 몬스터인데.’
막강한 위력이 실려서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날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공격력이 강하단 말인가.
슈슈슈슝!
그 순간, 바람소리가 일어나면서 맹렬한 공격이 전방에서 시작되었다.
리치의 모습을 한 위드가 망령들과 뒤섞여서 움직이자 해골만이 간간히 보였다.
‘공격이 구분되지 않아.’
그로스는 방패로 몸을 가렸다.
“반격의 의지!”
타다다다당!
< 비경의 방패가 강렬한 방탄력을 발휘합니다.
최초 물리 저항이 89% 적용됩니다.
강렬한 저항!
10초 동안 받는 모든 피해가 흡수되어 추가 생명력으로 바뀌게 됩니다. >
‘크크크. 아무 소용도 없다.’
무언가 무서운 공격들이 방패를 두드리고 있었다.
위드의 목소리도 전방에서 들렸다.
“제법이구나!”
그로스는 쾌재를 부르고 싶었다.
‘마법을 펼치고 바로 달려와서 기습을 해? 허점을 찌르는 좋은 전투 방식이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강해지지.’
반격의 의지는 일시적으로 받은 피해만큼의 공격력을 늘려주는 것이었다.
< 비경의 방패가 힘을 잃었습니다.
1,381,297의 피해를 흡수하여 추가 생명력으로 바뀝니다.
29초 동안 생명력이 지속됩니다. >
그로스는 혀를 내둘렀다.
‘무지막지하게 때렸구나. 아무리 맷집과 방어력이 적용되기 전이라고 해도...’
130만의 피해는 위험한 보스급 몬스터 사냥에서도 이렇게 단기간 동안 쌓이진 못했다.
‘이제는 내게 기회가 올 거야.’
그로스는 단 한 번의 반격만을 노리고 방패를 내던지고 전진했다.
“맹렬한 검 가르기!”
모든 힘을 모아서 섬광처럼 적을 갈라버린다.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상대가 앞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참았던 힘을 전부 폭발시킨 그 순간.
서걱!
검의 끝에서 그대로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이 났다.
그로스는 환희에 벅차올랐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위드를 잡아버렸나?’
단 일격이지만 너무나도 막강한 공격력이 발휘되었을 테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죽이진 못했더라도 중상은 입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 꾸물거리는 스켈레톤을 제거했습니다. >
‘방금 그게 스켈레톤이었다고?’
위드는 어느새 뒤로 돌아가 있었다.
‘사람들의 심리는 대부분 비슷하지. 그리고 워리어들의 전투술도 알고 있고. 그로스. 한 방을 크게 노리는 네 전투 방식도 명예의 전당에서 많이 봐 놨다고.’
워리어들은 꾹 눌러 참으면서 반격을 가해서 이기려고 한다.
난전에서 오래 시간을 끌 수 없었으니, 일찍 반격을 터트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승부의 관건.
“고통의 각인!”
< 대상의 생명력 회복을 억제합니다. >
“출혈 증가.”
< 대상의 피해량을 늘립니다. >
두 개의 저주 마법을 걸어놓고 신나게 패기 시작했다.
“헤라임 검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일격들이 그로스의 몸에 그대로 작렬했다.
* * *
위드가 망령들과 함께 그로스를 난타하고 있는 광경을 모두가 보았다.
“위드님이 이기고 있다!”
“아르펜 왕국 만세!”
북부 유저들이 함성을 내질렀고, 6군단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거침없이 전투에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망령을 일으키면서 싸우고 있는 위드에 의해 하나씩 목숨을 잃을 뿐이었다.
둠 나이트와 저주, 북부 유저들까지 끼어들면서 6군단도 난장판에 휘말렸다.
기본적인 전력이 훨씬 더 강할 테지만, 위드의 난입으로 인하여 군단의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 크레볼타 : 둠 나이트가 더 일어날 테니 시간을 더 끌면 안 좋습니다. 언데드들을 단숨에 소멸시키고 전투를 끝냅시다.
군단장들끼리만 가입되어 있는 길드 채팅이었다.
3, 4, 6, 7군단이 먼저 도착했고, 제국군을 이끌던 각 군단장들도 저항하는 북부 유저들을 뚫으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칼쿠스가 죽고, 그로스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동안 하벤 제국군 대부분 군단들의 핵심 전력이 도착하고 있었다.
크레볼타는 하일러와 둘이 나서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꿔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청했다.
- 막스 : 위드가 그 정도로 강합니까?
- 크레볼타 : 자세히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 헤로이드 : 정면 대결이 안 되다니 어이가 없군요.
- 크레볼타 : 리치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십여 명이 공격해서는 아무 피해도 줄 수 없고, 저주와 흑마법도 마구 씁니다. 칼쿠스는 근접 공격에 죽긴 했지만 그로스와 싸우는 걸 보니 도무지 약점을 찾기 어렵군요.
다른 군단장들도 대륙의 패권이 결정되는 전투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 슬래터 : 좋습니다. 공적을 독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총공격을 펼쳐서 처리합시다.
10군단의 슬래터.
그는 4군단이 뚫어 놓은 길을 통해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 막스 : 우리는 3분 안에 갑니다. 질척거리는 스켈레톤들은 다 무시하겠습니다. 다른 군단들은 언제쯤 도착합니까?
- 슬래터 : 5분이면 됩니다. 스켈레톤이나 좀비는 치우려고 하지 말고 유저들만 모아서 날아서 돌파하면 됩니다.
- 프로미 : 그런 방법이면 저도 충분할 겁니다.
- 헤로이드 : 승리의 지름길이 보이는군요. 우리들이 덮쳐서 위드를 제거하고, 뒤이어 나머지 군단에 모여 있는 유저들을 쓸어버리면... 그 다음은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 크레볼타 : 다들 신성력 장비들은 준비하셨을 테고, 성물 같은 것도 있겠죠?
자세한 준비 사항에 대해 말은 하지 않았어도 군단장들은 저마다 잘 챙겨놨다는 걸 확신했다.
일찍 죽어버린 칼쿠스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로스의 경우에는 워리어라서 스스로의 공격력으로 위드를 잡기 어렵기에 방어구만 장비한 경우였다.
- 하일러 : 다 같이 나서서 리치 사냥이라... 꽤나 멋진 영상이 나올 것 같군요.
- 슬래터 : 전투가 너무 일찍 끝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하하.
군단장들끼리 합의를 보는 가운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 다인 : 19군단도 참여할게요.
다인이 이끄는 19군단.
헤르메스 길드 유저가 아닌, 중앙 대륙 유저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군단이었다.
- 하일러 : 19군단이 도착했습니까?
- 다인 : 네. 1만에 달하는 유저들과 돌파해 왔어요. 주력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고요.
다인은 레벨이나 전투력으로만 놓고 보면 군단장들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
칼라모르 지역의 통치를 안정되게 했고, 이번 전투에서도 상당히 잘 싸웠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군단장들 사이에서 실력으로는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 하일러 : 좋습니다. 가장 뛰어난 이들로만 합류하세요.
- 다인 : 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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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북부 유저들이 4군단과 6군단에 대항하는 사이, 하벤 제국군들이 새까맣게 몰려드는 것을 확인했다.
“슬슬 해가 떠오르는군.”
- 마판 : 제국군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습니다! 스켈레톤이나 좀비들은 무시하고, 병력이 나눠지는 것도 감수하고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 코묻돈 : 적 병력이 3분 내로 추가로 도착합니다.
- 레몬 : 2차 저지선이 뚫렸어요. 어서 피하세요!
숨 가쁜 시간 싸움이었다.
위드와 이곳의 북부 유저들은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문제는 하벤 제국군의 움직임이 빨라서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위드님! 여긴 위험합니다!”
얼마 전에 부대장으로 임명한 고래밥이라는 유저가 고함을 질렀다.
“당장 피해야 합니다.”
“어서 가세요!”
“위드님만 떠나면 됩니다. 우리가 길을 열어드릴게요.”
위드의 부근도 난장판이었다.
“아군이 온다. 방어 진형을 펼치고 조금만 참아라!”
“우리가 이긴다!”
4군단, 6군단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아직 죽지 않았다. 개개인들이 강하기에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로스는 생명력이 3% 이하로 떨어지면 완벽하게 회복되는 회생의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위드에게 실컷 두들겨 맞다가 생명력을 회복하더니 그대로 적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그렇지만 헤르메스 길드 유저나 하벤 제국의 기사들은 죽으면 고위급 언데드가 되어 일어났다.
“절대적인 복종을!”
“죽음의 기사가 명을 받듭니다.”
둠 나이트도 500이 넘게 만들어졌고, 데스 나이트는 수천의 무리에 달해서 언데드들의 전투력도 강력했다.
데스 오라에 힘입어 강화된 언데드 군단이 반 호크와 토리도의 지휘 아래에 하벤 제국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위드는 조급해하지 않고 광역 저주를 퍼부으면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멀리 하일러, 크레볼타가 보인다.”
“군단장들이 주력을 다 이끌고 다가오고 있어!”
북부 유저들은 다가오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금세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이름이 알려진 랭커이기도 했지만 방송에도 많이 출연한 유명인들인 것!
‘놈들이 너무 빨라. 아군이 오기 전에 도착하겠어.’
위드는 페일을 비롯한 동료들의 대화도 받고 있었다.
가르나프 평원 전역에서 아르펜 왕국의 편에 서 있는 유저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제때에 도착하기는 무리다.
뭉쳐 있는 언데드와 북부 유저들을 지나면 사방이 하벤 제국군!
하늘에서 뮬의 2군단이 공격에 나서지는 않지만 빙빙 돌고 있는 것도 거슬렸다.
위드의 입가에 씩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위기지!”
요즘 들어서 좀 쉽게 살아온 감이 있었다.
절망의 평원에서 오크들을 지휘하며 불사의 군단과 싸웠던 그 순간의 희열이 다시 떠올랐다.
‘우선 시간을 벌어야 하고, 적의 숫자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필수지.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수 있는 건 역시 조각술뿐이야!’
위드는 해골 탑으로 돌아와서 조각칼과 멸망의 금속을 꺼냈다.
투쟁의 길에서 만났던 거인 그라토르그를 제압하고 얻었던 멸망의 금속.
1등급 대장장이 재료로 파비오와 헤르만에게 넘겨주고 남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사각사각!
위드는 멸망의 금속을 깎기 시작했다.
보통 단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조금씩 깎아낼 수는 있었다.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손을 쉬지 않고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재앙이야 일으키나마나 피해가 적겠지.’
오히려 약한 북부 유저들부터 휩쓸려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대재앙을 일으킨다는 선택은 충분히 배제를 했으리라.
‘재앙이 왜 무서운지 알려주지.’
* * *
3군단의 하일러의 진영으로 속속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모여들었다.
위드가 가까워지면서 슬래터와 헤로이드, 다인이 병력을 이끌고 합류했다.
“위드가 조각품을 만듭니다!”
급한 보고가 전장에 있는 6군단 유저로부터 들어왔다.
“무엇을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발버둥에 불과할 뿐 의미가 없다.”
하일러는 검을 휘둘러서 반경 50미터 이내에 있는 스켈레톤들을 열기의 폭풍으로 날려버렸다.
마나의 소모는 크지만 가장 넓은 범위를 공격하는 스킬.
스켈레톤들이 대부분 철저히 부서져서 다시 되살아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데스 나이트나 스켈레톤, 좀비들이 꾸역꾸역 계속 덤벼들었다.
4군단, 6군단.
이곳을 지키다가 죽은 북부 유저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나서 끈질기게 부딪쳐왔다.
“놈들의 저항이 거세지지만 위드가 있는 곳까지는 금방이다.”
“크레볼타의 진영에 지지 않도록 한다.”
3군단이 중심이 되고, 10군단, 18군단, 19군단이 날개가 되어 함께 뚫었다.
다인의 전투력에 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19군단의 유저들은 날카로운 창처럼 길을 열면서 제 몫을 해주었다.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진 않았어도 중앙 대륙에서도 수준이 높은 유저들이었다.
“좋아. 좋아. 전부 완벽해!”
그때 하일러의 눈에 네튜러스와 둠 나이트들이 지옥마를 타고 돌격해 오는 것이 보였다.
“선두 수비!”
하벤 제국의 기사들이 짚단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며 둠 나이트들이 뚫고 들어왔다.
“죽음의 길을 열어라!”
암흑의 기운을 흘리며 날아다니는 지옥마를 탄 둠 나이트들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력한 몬스터들이었다.
그들은 암흑 투기를 이용한 광역 스킬을 마구 사용하며 하벤 제국군을 몰살시키고 있었다.
기사단의 돌파에 걸린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하일러가 고함을 질렀다.
“저건 위드의 핵심 병력이다! 저것들은 확실히 처리해!”
“맞아요. 저 둠 나이트가 없으면 남은 언데드들은 금방입니다.”
슬래터도 맞장구를 쳤다.
실력이 있는 이들은 둠 나이트들이 돌진해 오는 것을 반갑게 여겼다.
“제거해!”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중에서도 실력자들이 대거 나섰다.
그들은 거세게 돌진하는 둠 나이트들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과 후방으로 몰려들었다.
공격 스킬들을 사용하면서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둠 나이트들은 거침없이 앞으로만 달렸다.
돌파력도 무시무시했고, 무엇보다도 목숨을 잃은 이들은 언데드가 되어서 부활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죽을 경우에는 십중팔구 둠 나이트가 되어서 합류했다.
< 죽음의 기운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위축됩니다.
이 지역의 언데드들이 더 높은 격을 갖추게 됩니다.
상급 언데드의 탄생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
“상황이 안 좋아지기 전에 뭐든 써서 당장 소멸시켜!”
하일러가 지역 전체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에게 지시했다.
아껴두었던 성수나 성물, 마법 스크롤들이 폭포수처럼 쏟아부어지며 언데드들을 억압했다.
둠 나이트로 이루어진 기사단은 수백여 개나 되는 마법 공격에 동시에 휘말렸다.
가까이 있던 하벤 제국군,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함께 희생을 당했지만 그 정도로는 망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본 드래곤이다아아아아!”
두 마리의 본 드래곤도 전투에 나섰다.
막강한 위력과 생명력을 가진 본 드래곤들이 울부짖으며 제국군을 짓밟고 물어뜯었다.
“별것 아니다! 고작해야 언데드일 뿐이야!”
헤르메스 길드에 소속된 유저들은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을 잡아본 경험이 있었다.
역할을 분배할 줄 알았고,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마구 덤벼들었다.
데스 오라의 영향을 받은 본 드래곤과 둠 나이트들은 10분이 넘는 시간을 끌었다.
어설프게 쓰러뜨려서는 다시 부활하고, 죽은 이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하벤 제국군은 진격을 해서 위드와의 거리를 좁혔다.
북부 유저들은 죽어나가고, 다시 언데드로 부활하여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싸웠다.
4군단, 6군단은 이젠 다 죽어서 언데드가 되어 있었다.
그로스와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병력은 완전히 다 잃고 말았다.
“이곳은 죽음의 힘이 지배하는 땅이다!”
“침입자들. 불멸의 힘을 보여주마!”
전투의 처절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하일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됐어. 이제 변수는 없다.”
조금만 더 가면 위드가 화살을 쏴도 맞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북부 유저들은 삼분의 일 정도로 줄어 있었다.
슬래터가 뒤를 보더니 외쳤다.
“외곽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저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이미 그들이 올 때면 위드는 죽은 다음일 테니까요. 게다가 유저들이 계속 모이면... 크흐흐. 모든 퍼즐들이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짜릿함으로 가득했다.
알킨 병!
헤르메스 길드에서 꺼낸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볼 수 있었다.
하벤 제국군 전부가 덤벼들어서 위드를 사냥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이면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미끼가 된다.
위드를 구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몰려오는 유저들.
그들 사이에서 최악의 전염병인 알킨 병이 퍼져나가게 되면 모두가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됐다. 이제 하벤 제국이 베르사 대륙을 통째로 다 먹었다.’
* * *
사각사각!
위드는 차분하게 조각품을 깎았다.
언데드들이 버텨주지 못한다면 서둘렀겠지만 상당한 시간을 잘 끌어주고 있었다. 북부 유저들도 목숨을 잃으면서도 용감하게 싸웠다.
애초에 물러날 곳도 없이 배수진을 진 셈이었지만.
“까다로운 작품인데... 잘 완성이 되는 것 같군.”
바위를 깎아서 건물과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영락없이 도시의 조각품!
어떤 재앙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 진면목은 이제부터였다.
위드는 흙을 양손에 가득 쥐어서 조각품 위로 살살 흩날리며 뿌렸다.
“씽씽이 소환!”
직접 만든 바람의 정령 씽씽이를 불러들였다.
- 폐하. 부르셨사옵니까!
“그래. 은은한 바람을 일으켜라. 이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말이야.”
- 알겠습니다. 잘생기고 위대하신 주인님이시여.
씽씽이가 약한 바람과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위드가 뿌리는 흙이 도시의 조각품을 뿌옇게 감쌌다.
미세먼지!
현대 사회의 가장 끔찍한 재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조각품을 덮었다.
“이걸로는 아쉽지. 여기에 하나 더!”
쩌저적!
힘을 줘서 과감하게 조각품의 밑바닥에 균열을 주었다.
일그러지고 갈라진 땅.
“됐어. 완성이다.”
대충 만든 것 같지만, 조각칼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꽤 상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었다.
-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조각품은 이름은 외출 금지다.”
- 외출 금지가 맞습니까?
“응. 맞아.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이지.”
명작! 외출 금지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대자연의 친구!
위드가 표현 가능한 모든 아름다움으로 만든 끔찍한 재앙을 나타낸 작품.
짙은 모래로 뒤덮인, 불행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멸망의 금속이라는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진 이 조각품은 음울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습니다.
―
예술적 가치 : 26,891.
특수 옵션 : 외출 금지 상을 바라본 생명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11% 증가한다.
―모든 이들의 사기가 저하됨.
―공격을 받았을 시 큰 피해를 입을 확률을 높임.
―모든 저항력 3% 감소.
―일시적으로 생명력의 최대치가 10% 줄어들지만, 모든 스탯이 5% 증가한다.
-광역 공격 스킬의 효과 강화.
-영구적으로 지식 1 증가.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명작의 숫자 : 37
명성이 21,391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21 상승하셨습니다.
인내가 3 상승하셨습니다.
지혜가 1 상승하셨습니다.
신앙심이 1 감소하였습니다.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 대지의 여신 미네가 이 조각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명작의 조각품!
위드는 걸작만 나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명작의 조각품이 만들어지고야 말았다.
재앙, 그 자체를 제대로 표현한 덕분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무섭고, 지긋지긋한 재앙이다. 미세먼지는 결코 피해갈 수 없지.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술 스탯 20이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20,000씩 소모됩니다.
모든 스탯이 사흘간 일시적으로 15% 감소합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떨어집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위험한 재앙을 불러오게 되면, 그 피해에 따라서 명성이나 악명이 오를 수 있습니다.
재앙을 겪는 와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 멸망의 금속이 파괴되었습니다.
대재앙의 위력이 60% 강화됩니다. ]
조각품이 산산조각 나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일단 하나는 저질러 놓았고.”
위드는 부서진 멸망의 금속을 주웠다.
중앙 대륙을 정복했던 전투력이 대부분 몰려온 것이었으니 이걸로는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 군단이 그 하나만을 노리고 덤벼오고 있었다.
“세상이 변했어. 요즘 악당들은 능력 있고 부지런하기까지 하다니까!”
위드는 다시 조각품을 깎았다.
이미 조각 부활술을 써서 크게 손해 보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레벨이야 다시 올리면 되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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