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열한 명의 위드
위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외쳤다.
“혹시 바위 좀 깎을 줄 아는 분 있습니까?”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공격 마법들이 가까운 곳에 작렬하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위드의 말에 사람들은 손을 들었다.
“저요!”
“접니다!”
북부 유저들 중에서 조각술을 약간이라도 배워놓은 이들은 꽤 많았다.
며칠 앉아서 조각품을 깎아보고는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때려치워 버렸지만.
“이분이 잘해요!”
“실력으로는 최고인 분입니다.”
주위의 추천도 받으면서 나타난 유저는 건축가 게이오르.
위대한 건축물인 튼튼한 돌다리를 짓기도 했던 유명한 건축가였다.
게이오르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석조 건물을 많이 지어서 돌은 좀 때릴 줄 알지만, 조각술은 초급 7레벨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감히 위드님을 도울 능력이 안 될 텐데요.”
“그러면 초급 7레벨보다 높으신 분?”
위드의 말에 주위에서 손을 들고 외쳐대던 유저들이 조용해졌다. 저마다 조각술을 배우긴 했지만, 3, 4레벨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뭐 초급 7레벨이면 충분할 거 같네요. 혹시 바위 좀 많이 가지고 계신가요?”
“꽤 들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언제 건축 의뢰를 맡을지 모르기 때문에 바위나 흙 같은 재료를 부피와 무게를 줄여주는 특수 배낭에 가지고 다녔다.
“사람을 조각할 테니 시간을 아끼기 위해 먼저 대충 형태를 다듬어서 넘겨주세요. 그 정도는 가능하시겠죠?”
“대충이라면 됩니다.”
“저도 도울게요.”
게이오르와 열 명의 조각사들은 협력해서 바위를 깎았다.
“제대로 작업을 하려면 알아야 될 거 같은데요. 혹시 풀죽 여신님을 조각하실 건가요?”
어느 한 조각사가 설레어하며 물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주위의 유저들까지도 실컷 기대를 했다. 부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는 관심도 없었다.
미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서윤의 조각품!
그 조각품을 볼 수만 있다면 한없이 영광인데, 직접 조각하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리라.
“아뇨. 저를 표현하는 조각품을 만들 겁니다.”
“아아...”
“후우.”
“하...”
실망감이 역력한 한숨들!
게이오르와 조각사들이 대충이나마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놓으면 위드가 세부적으로 깎아서 마무리를 지었다.
단순 형태였고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서 금방 작업이 되었다.
사실 하벤 제국이 쳐들어오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북부 유저들의 절박한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고, 결사 항전을 하는 광경들이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보였다.
“어떻습니까?”
“괜찮군요. 저보다 키가 조금 작은 것 같지만.”
“네? 혹시 몰라서 위드님보다 3센티는 더 크게 만들었는데요?”
“제가 조각술 마스터입니다. 대충 봐도 정확히 저보다 2센티는 더 작네요.”
조각사들은 그냥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게이오르는 도저히 인정하기 힘들었다.
건축가에게 높이란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었다.
큰 건물을 세우는데 기둥들의 높이와 크기가 다르다면 그것만큼 엉터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충 형태만 잡힌 조각품 옆에 서 있는 위드를 보니 더 확실했다.
“자세히 보세요. 조각품이 더 큰데요?”
“기분 탓일 겁니다.”
“...”
위드는 그렇게 자기 자신의 조각품들을 깎았다.
코를 조금 세우고, 눈도 트이고, 이마도 넓게 깎는다. 턱도 더 날카롭게 다듬으니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역시 잘생겼군. 나는 얼굴로도 먹고 살 수 있었겠어.”
바로 부근에서 전투 중이라 조각사들은 쉴 틈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위드님과 비슷하면서도 달라.”
“야. 확실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부 거기서 거기 아냐? 어떻게 다 저렇게 평범할 수가 있냐.”
“쉬잇. 들릴 거 같아. 작업이나 하자.”
위드는 자신을 닮은 세 개의 조각품을 깎았다.
그쯤 되면 언데드와 북부 유저들을 뚫고 하벤 제국군이 도착할 줄 알았다.
“우릴 죽이기 전에는 지나가지 못한다!”
“절대 못 보내!”
위드와 가까울수록 북부 유저들 중에 실력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기에 최후의 항전을 펼쳤다.
“전투 격노!”
“광분의 후려치기!”
“서리 광선의 복수!”
초보들 사이에서 레벨 400이 넘는 이들이 아껴두었던 최고의 스킬들을 터트리고 죽는다.
헤르메스 길드원을 혼자 잡기는 무리라서, 서너 명이 동시에 덤벼들어서 끝장을 보기도 했다.
제국군의 무리를 이끄는 하일러와 크레볼타가 서두르지 않는 것도 이유였다.
“물러서라. 차근차근 진격한다.”
“쓸데없는 피해는 줄이고, 포위망부터 더 완벽하게 갖춰라. 이 지역은 우리 병력으로 완전히 지배한다.”
알킨 병의 확산을 위해 북부 유저들을 끌어들이려면 위드가 너무 일찍 죽어도 문제다.
그들이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은 위드가 도망치는 것이었으니 모든 방향으로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에워싸며 다가오고 있었다.
- 하일러 : 철저히 해라. 여기서부터는 모든 적들을 완벽하게 정리한다.
둠 나이트와 본 드래곤도 격파되었다.
네튜러스를 중심으로 한 둠 나이트 기사단이 큰 활약을 하긴 했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실력자들에 의해 소멸되고 말았다.
본 드래곤 두 마리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쫓겨서 하늘로 올라갔다.
“위드! 이제야말로 끝이다. 하벤 제국군이 대륙을 통일하게 될 거다!”
“아르펜 왕국을 철저히 파괴해 주지. 모두 불태우고 부숴버릴 것이다.”
“드디어 끝이다!”
위드는 사방에서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생이 술술 풀리기만 했던 사람들은 이쯤이면 영락없이 망했다고, 다 끝났다고 포기를 하리라.
조각을 하며 하늘을 힐끗 보긴 했지만 대재앙은 아직 발동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북부 유저들이 꽤나 남아서 버티고 있었다.
“풀죽, 풀죽, 풀죽!”
“아르펜 왕국 만세!”
끝까지 싸워주는 그들을 보며 코끝이 찡해졌다.
‘내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앞으로 그렇게 잘해 줄 생각은 없는데. 세금을 끊임없이 올리면서 착취할 텐데.’
양심의 가책이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정의롭고 어려운 인생보다는 잘 먹고 잘 사는 악당이 훨씬 낫다.
정말 나라를 팔아먹는 정도가 아니라면 적당히 나빠야 가족들도 편안한 법이었다.
‘남들은 권력을 쥐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타락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점에서는 순수해. 처음부터 나쁜 놈이 되고 싶었으니까!’
위드는 어쨌든 승리를 위해서라도 조금의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곳에 모이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로열 로드에서 최정상급의 실력들을 가졌다. 이들 사이에서 버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리라.
“에라. 이렇게 된 이상 조각품을 더 만들어야지.”
위드가 고민하는 사이에 게이오르와 조각사들은 7개나 되는 형태를 더 만들어 놓았다.
“위드님. 저희가 부족하지만 몸은 대부분 만들어놓은 거 같습니다. 얼굴만 자세히 표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게이오르와 조각사들이 단순 반복 작업이라서 섬세한 표현이 필요하지 않은 몸의 형태는 잘 다듬어 놓았다.
“알겠습니다. 제 얼굴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니까요.”
위드는 조각칼을 들어서 얼굴을 깎았다.
약간 더 날렵한 턱과 오뚝한 콧날, 깊은 눈매.
좌우비례까지 완벽하게 만들고, 모든 수단들을 다 해도 결국은 평범한 얼굴.
‘좀 잘생겨진 거 같긴 한데... 아까랑 그게 그거네.’
‘세수만 뽀드득하게 해도 저 정도는 되지 않나?’
‘조각술 마스터라더니. 조각을 다르게 해도 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게 정말 신기하네.’
열 개의 조각상은 다 미묘하게 다르고 원판보다는 잘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해서 쉽게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하아.”
위드는 조각상들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믿었던 게이하르 황제는 술에 취해서 이 자리를 벗어났다.
일반적인 장기전이 되었더라면 숨을 돌릴 여유가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시간 싸움!
“헤르메스 길드, 오늘 전투가 끝난 후에 이 원한은 두고두고 갚아주마.”
위드는 잘 튀긴 치킨을 먹을 때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텟 4,115에 따라 589로 변환됩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한 조각품입니다.
인물의 평소 성격이나 말투, 행동 방식을 그대로 닮습니다.
생명체에 여섯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인내의 속성(100%), 완성된 예술의 속성(100%), 감각의 속성(100%), 전사의 속성(100%), 별의 속성(100%), 대지의 속성(90%)
인내는 어떠한 일에도 참을성을 키워 줍니다.
방어력이 증대하며, 독이나 마법 공격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예술은 높은 창의성을 발휘하게 합니다.
때때로 놀랍고 고귀한 일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남들보다 탁월한 감각은 어떤 함정이나 위험도 일찍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전사는 투신 바탈리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모든 전투 스킬의 위력이 높아지고, 적의 실력에 따라 추가적으로 강해집니다.
별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모든 힘과 생명력을 다 소모하고 땅에 쓰러지더라도 다시 한 번 일어나서 싸울 수 있습니다.
대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식물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는 높은 생명력과 함께 특별한 힘을 끌어들여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나가 262 사용되었습니다.
스킬의 효율이 증가해서 생명을 부여할 때 소모되는 레벨과 스텟의 양이 20% 감소합니다.
예술 스텟이 6,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텟은 조각품이나 다른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2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스텟이 10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텟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괴되었을 경우에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괴물 위드의 탄생이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텟 4,109에 따라 588로 변환됩니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텟 4,103에 따라 588로 변환됩니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텟 4,107에 따라 587로 변환됩니다.
...
...
다음 조각품들의 속성은 첫째를 제외하고는 다섯 개씩 부여받았지만 레벨은 별 차이가 없었다.
위드가 만들어낸 열 개의 조각품들이 생명을 부여받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게 이런 기분이었군.”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편의상 난 위드일로 하겠다.”
“위드이다.”
“위드삼.”
“위드사는 내가 맡겠다.”
조각품들은 알아서 자신들의 이름까지 결정했다.
비슷한 형태의 조각품들끼리는 처음에 사이가 안 좋기도 하지만, 위드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특정 인물을 조각한 이상 원판인 위드가 바로 그들의 롤 모델이었기 때문!
위드의 모든 행동 양식과 결정들을 바탕으로 탄생한 새끼 위드들이었다.
* * *
“크헴. 이건 아니었는데...”
헤겔은 손을 벌벌 떨었다.
- 아르펜 왕국 유저들을 없애라!
- 위드를 잡아 죽여!
- 풀죽, 풀죽, 풀죽!
전쟁터의 한복판.
가까운 곳에 마법이 작렬한 것인지 땅이 흔들려서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화살들이 그의 주변에 매섭게 꽂혔다.
전쟁터의 박력과 살벌함!
“으어... 죽을 각오는 했지만 이건 아니었다고! 너무 무섭잖아.”
헤겔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벨라, 르미, 나이드.
한국대학교 가상현실학과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중에 전투에 끼어들게 되었다.
막상 이렇게 큰 전투를 경험하게 된 건 처음이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전장이 아니야.”
유저들 중의 상당수는 원거리 공격에 의해 이유도 모르는 채로 죽어 나갔고, 기사단에 의해서도 무참히 죽어 나갔다.
“헤겔!”
“순조. 나이드야!”
헤겔은 귀신처럼 날아오는 나이드의 등장에 반가워했다.
“다른 애들은?”
“이미 죽었어.”
“뭐라고? 벨라도?”
“응. 아까 죽었어.”
헤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사 벨라와 함께 사냥을 다니면서 많이 친해졌었다.
“순조. 너는 왜 살아있는데? 레벨도 더 높은데 옆에서 지켜줬어야지!”
“운 좋게 헤르메스 길드원 둘을 죽였는데, 도둑이라서 정면 대결은 자신이 없어서 빠져나왔어. 다시 들어가야지.”
헤겔은 비로소 나이드의 상태를 살폈다.
가죽 갑옷이 찢어져 있었고, 단검도 반쯤 부러진 상태였다.
“다시 가면 죽을 텐데?”
“어. 그러겠지.”
“이건 우리 전장도 아니잖아?”
헤겔은 고개를 돌려서 멀리 있는 위드를 봤다.
조각 생명체들에 생명을 부여하자, 부근에 있던 유저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졌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빛나는 존재.
아마 위드는 헤겔,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위드 형이잖아. 그리고 난 나를 위해서 싸워.”
“나를 위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으니까.”
“그런가...”
순하던 나이드의 다른 모습이 보였다.
헤겔은 자신이야말로 대충 세상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자에게 머리를 숙일 때는 창피하지 않았고, 약자에게는 과시하고 힘을 자랑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남은 건 딱 어중간함뿐이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지도 못하고, 내세울 것도 없고.
“네 감정대로 해. 억지로 싸우라는 사람도 없잖아. 살고 싶으면 살고, 죽고 싶으면 죽고.”
나이드가 담담하게 말하더니 하벤 제국군의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몇 초 후, 헤겔이 장검을 뽑아들었다.
“다 덤벼라! 내가 바로 헤겔님이시다!”
그리고는 새까맣게 몰려드는 3군단을 향해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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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미쳤다고!”
마판은 비명을 지르듯이 신음했다.
그는 상인으로서 할 일은 모두 마쳤다.
가르나프 평원에서 열심히 축제를 준비했으며, 최대한의 전투 물자도 아르펜 왕국과 중앙 대륙을 탈탈 털어서 공급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이익을 남긴 것은 당연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난 다음부터는 가끔씩 상황을 보고하는 것과, 지켜보는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열 명이나 되는 새끼 위드들이 등장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이젠 이 전투가 어떻게 되가는 건지 모르겠네요.”
사촌인 숨긴돈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가르나프 평원 전역의 유저들이 환호성을 올리는 것이 생생하게 들렸다.
“이상하기도 하지. 처음부터 하벤 제국이 강하게 나와서 자칫 질 것 같았는데... 지금도 상황이 많이 나빠진 건데도 위드님은 뭔가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러게요. 형. 지금도 영락없이 외통수에 갇혀서 죽을 것 같은데. 그냥 죽을 거 같진 않아요.”
“그게 위드님의 매력이지. 우리 상인들은 물건을 팔지만, 그분은 기적을 일으키니까. 소비자와 시장을 동시에 만들어낸다고 할까.”
조각품이 살아서 움직이는 광경은 정말로 신기하기에, 이 영상도 각종 사이트에서 많이 팔리게 되리라.
‘위드님이 광고 수익을 또 적잖게 올릴 수 있겠군.’
마판은 견적을 바로 때릴 수 있었다.
각 방송사의 스튜디오에서는 지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요즘에는 멋진 영상들은 방송보다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직접 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동영상에 광고가 1회 들어가면 1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위드의 동영상은 앞뒤로 3회 정도의 광고가 빡빡하게 들어갔다.
‘1회에 3원. 최소 1억 명이 본다고 감안하면 이것만 해도 3억?’
많은 영상들이 이번 전투에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위드의 모든 움직임들이 중심이 될 것이기에 최소한 수십 억에서 수백 억을 벌어들인다.
‘그 외에 열 명이나 되는 위드들이 치킨을 뜯고, 휴대폰도 이용하고, 에어컨도 켜고, 옷을 입고... 우와. 광고 효과가 무궁무진하구나.’
마판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적어도 이번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위드가 건물주가 된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었다.
“풀죽, 풀죽!”
“고사리죽 부대 출격합니다.”
“오뎅죽이 모였습니다!”
“죽순죽 부대는 뒤로 물러나세요. 우린 우선 후방 지원을 먼저 해야 합니다!”
풀죽신교의 결집을 보면 그리 질 것 같지도 않았지만.
“으아아악!”
“이쪽에 감염자가 있습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지금으로서는 어떤 치료 마법도 듣지 않아요. 미안하지만 알킨 병에 걸리신 분들은 최대한 빨리 죽어 주세요.”
알킨 병의 발발.
환자가 나타날 때마다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살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킨 병은 북부 유저들 사이에서 점차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유저들이 좁은 지역에 많이 몰릴수록 병의 확산력도 강해지기에 대단히 큰 문제였다.
숨긴돈은 고개를 저었다.
“형. 이 상황은 도저히 위드님에게도 무리겠지? 하벤 제국의 포위에 살아남기도 힘든 상태잖아.”
마판은 믿음이 약한 사촌동생을 향해 볼 살을 실룩였다.
“세상은 말이다. 바르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워낙 순수해서 위험에 빠지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지.”
“근데?”
“그런 점에서 헤르메스 길드의 전략은 실패했어. 그들이 위드님을 잘 알았다면 절대 이런 전략은 짜지 않았겠지. 위드님의 뒤통수를 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위드의 뒤통수.
“위드님이라면 벌써 살아남을 방법을 몇 가지 정도는 준비해 놨을 거야. 역으로 뒤통수를 쳐버리겠지. 그러지 않고 함정에 빠진 채로 시간을 보낼 분이 절대 아니거든.”
* * *
위드는 생명을 부여받은 녀석들을 보며 배가 아팠다.
“니들이 바로 금수저들이구나.”
어마어마한 예술 스탯 덕에 태어나자마자 레벨만 놓고 보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강한 녀석들!
위드가 배운 모든 스킬들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녀석들은 독특한 특성들도 가졌다.
- 냉정의 속성(100%)
그 어떤 위기에도 당황하지 않으며 상태 이상으로부터도 빠르게 벗어난다.
- 간파의 속성(100%)
주어진 모든 정보들을 통해서 뛰어난 판단력을 보인다.
위험을 알아차리며, 당황하지 않으며, 상대의 약점을 빠르게 파악한다.
이것 정도까지야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특성이야 이것저것 붙다보면 좋은 게 생기기도 하니까.
- 영광의 속성(100%)
명성과 지휘 스킬의 효과를 두 배로 올린다.
부하들의 능력을 완전히 이끌어내며, 그들의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함.
기사들의 존경을 받음.
- 태양의 속성(100%)
태양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태양의 힘을 흡수하여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고, 불과 관련된 모든 스킬들의 위력이 강해진다.
- 포효의 속성(100%)
대형 몬스터들을 빠르게 길들일 수 있으며, 카리스마와 용기로 부하들을 다스린다.
- 돌진의 속성(100%)
앞으로 달릴 때는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한다.
체력 소모가 조금 더 크긴 하지만, 생명력과 공격력이 크게 강화된다.
보통의 스킬로도 얻기 힘든 뛰어난 속성들이 새끼 위드들에게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번에 조각해서 생명을 부여한 건 책으로 따지면 자서전 같은 것!
위드가 했던 모든 행동들을 바탕으로 조각 생명체들에게도 속성이 부여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열 명이나 되는 새끼 위드들이 거창한 속성들만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니었다.
돈의 속성, 자린고비의 속성, 억지 웃음의 속성, 생존의 속성, 야비함의 속성, 외톨이의 속성, 잡식의 속성, 위험초래의 속성, 불행의 속성.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들도 나눠서 조금씩 붙었다.
그럼에도 500대 후반의 레벨들을 보유했기 때문에 매우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위드는 새끼 위드들을 향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상황 설명을 해야 하니...”
척!
위드육이 손을 들었다. 간파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조각 생명체였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멀리 보이는 게 전부 적인가?”
“맞다. 너희들이 해주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저들과 싸우라는 미친 소리를 할 이유는 없을 테지. 그렇다면 염치도 없는 소리 아닌가.”
위드육이 말을 끊었다. 그는 반골의 기질이 다분한 편이었다.
생명을 부여해 주었다고 해도 충성을 다 바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위드팔도 손을 들었다.
“흠... 나는 우리들의 얼굴이 똑같은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그러자 다른 위드들도 말했다.
“조각하기 귀찮아서가 아닌가?”
“바빠서 그랬을 수도 있다.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지 않다. 내 생각에는 뭔가 꼼수가 있을 것 같다. 상당히 즐거운 느낌이 든다.”
비열함의 속성을 가진 위드열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위드팔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 헛갈리게 만들려는 거 아닌가. 우리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으니까.”
정확하게 걸린 위드의 꼼수!
“아니다. 자세히 보면 다르다. 코는 내가 더 큰 거 같다.”
“1.3센티 정도 키는 확실히 내가 더 큰 느낌인데.”
“얼굴은 좌우비례가 중요하다.”
“턱이 날렵한 게 미남이다.”
새끼 위드들은 생긴 걸 가지고 자기가 잘났다며 논쟁을 벌이려고 들었다.
조각품들의 모습들이 비슷하면 처음에는 사이가 나빴다.
“남자는 키다.”
“돈이지. 돈.”
“후... 말을 잘해야 돼.”
“인생의 성공은 돈이다.”
“맞아. 돈이 최고인 거 같아.”
“솔직히 키보다는 돈이지.”
이 와중에 그 누구도 하벤 제국군을 막겠다며, 다른 형제들이나 위드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녀석이 없었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는 순간 위드도 이런 상황이 올 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혼자 살겠다고 튈 새끼 위드들!
‘저건 믿을 수 있는 놈들은 아냐.’
어려운 상황에서 협력을 바라거나 대의를 위하여 희생해 달라는 설득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것처럼, 위드가 새끼 위드들을 보는 눈에는 불신이 가득 담겨 있었다.
‘차라리 바드레이를 믿고 말지. 오히려 진짜 위험한 건 헤스티거처럼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하는 놈이 나오는 거야. 진짜 어떤 흑심을 품고 있을지 몰라.’
그럴 땐 정말 꼼수를 짐작하기 어렵다.
여차하면 아르펜 왕국이라도 팔아먹으려고 들지 모를 일이었다.
위드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제 내 말을 들어. 다 들으면 2골드 줄게.”
“...”
“...”
“...”
새끼 위드들은 시끄럽게 떠들던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멈춘 와중에도 분주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는데, 이곳이 위험 지역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저마다 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진짜 앞으로 인생 충실하게 살 녀석들...’
위드는 진격해 오는 하벤 제국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여긴 곧 대재앙이 불어 닥칠 테니 그 기회를 이용해서 잘 살아남아라.”
간단하게 어떤 유형의 재앙이 시작될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여긴 헤르메스 길드원으로부터 빼앗은 무기와 방어구들이다. 마음껏 써라.”
위드는 장비들까지도 조각 생명체들을 무장시키기 위해서 나눠주었다.
하나하나가 비싸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낀다면 조각 생명체들의 생존력이 너무나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때에 생명을 부여해 줘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꼭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자.”
새끼 위드들은 감동적인 말과 베풂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면 더 좋은 장비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좋은 건 아껴 놓고 팔아먹으려고 후진 거만 준 거 같다.”
“살아남으라고... 저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에 있냐. 낳아 놓기만 하면 다인가?”
“애들아. 이거라도 나눠준 걸 고맙게 생각해.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아무 것도 안 줬을 거야.”
“낳아만 놓고 알아서 크라는 건가?”
“이것도 나중에 우릴 더 써먹으려고 하는 거지.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잖아. 정치인들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믿을 가치가 없어.”
“...”
위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조각 생명체들이었다.
* * *
재앙이 시작되었다.
크레볼타가 이끄는 군대는 자욱한 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위드가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말을 타고 돌격하면 금방 닿는 500여 미터 정도의 거리.
언데드나 북부 유저들이 꽤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무시한다면 전투도 벌일 수 있을 정도다.
“그냥 진격합시다. 환한 빛의 이정표.”
“마법 등불을 밝히겠습니다.”
마법사들이 빛줄기들을 쏘아댔지만 미세먼지가 그마저도 금방 집어삼켜버렸다.
“마법이...”
“이건 먼지라서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한밤중처럼 어두워졌지만, 그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신의 손과 발마저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시야가 보이지 않으니 재앙에 대비해라!”
하일러, 크레볼타를 비롯해서 군단장들은 부득이하게 병력을 멈춰 세웠다.
“콜록!”
“에이취!”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농도 짙은 미세먼지가 그들을 감쌌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아직까지 생명력의 피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불쾌한 기분을 겪어야 했다.
입을 벌리면 그대로 모래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기분. 끔찍하기까지 한 감각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조각 검술!”
상대가 스킬을 외치는 소리에 7군단의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다.
“위드다!”
“위드가 나타났다.”
“어느 쪽이야?”
“동쪽 방향이다!”
콰직!
슈우우우욱 파바방!
시야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스킬들이 작렬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났다.
만만치 않은 충격파가 전해지기도 했다.
“위드가 공격하고 있다. 어서 도와줘!”
“어느 쪽인데.”
“바로 옆인 것 같아. 어서 날려버리자고! 무자비한 강타!”
“지면 충격!”
“격노의 돌진!”
소리가 들린 곳에서 가까이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공격 스킬들을 사용했다.
불과 2, 3초 만에 수백여 개의 스킬들이 쏟아졌다.
“멈춰! 여기서 광역 스킬을 사용하는 게 어떤 미친놈이야!”
“젠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달빛 조각 검술!”
그때 다시금 확실한 스킬 소리가 들렸다.
“이쪽이야. 위드가 계속 공격하고 있잖아!”
“번개 사슬!”
“눈보라의 폭풍!”
“화염구 전소!”
“다중 폭발!”
“파멸의 숨결!”
“꿰뚫는 말살의 비수!”
“처형 집행의 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공격 스킬들의 난사가 이루어졌다.
“으악!”
“그만해. 이 정신 나간 놈들아!”
“멈추라고!”
대부분의 공격은 하벤 제국의 진영에서 그대로 터져버렸다. 얼마만큼의 피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헤라임 검술!”
“위드가 이쪽에 있다!”
위드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추측되는 방향으로 온갖 스킬들이 퍼부어졌다.
“핏빛 분노의 창!”
“진혼곡!”
“악몽의 파멸!”
미세먼지로 막혀버린 시야 속에서 스킬들이 난무했다.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공격들은 수천여 명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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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이 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 있다면 공격을 하면 그뿐!
“헤라임 검술!”
-1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20% 늘어납니다.
-2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40% 늘어납니다.
-3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40% 늘어납니다.
-4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추가로 40% 늘어납니다.
손쉽게 헤라임 검술의 연속 타격이 이루어진다.
“위드가 이쪽에 있다!”
주변에서 외치는 순간부터 위기는 시작되었다.
몇 개의 공격 스킬들이 발동되었고, 먼 곳에서는 광역 스킬까지 날아온다.
‘생명력을 흡수하는데 수비 따위는 신경 쓸 것 없지. 그냥 싸우면 될 뿐.’
세 명의 헤르메스 길드원을 죽였다.
그들도 대응하긴 했지만 시야가 50센티도 보이지 않는 상태의 근접전에서는 위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리치의 생명력 흡수를 믿고 적진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11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추가로 25% 늘어납니다.
충격파가 멀리까지 퍼집니다.
-12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30% 늘어납니다.
힘이 추가로 10% 늘어납니다.
마나 2500을 소모하여 출혈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13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20% 늘어납니다.
힘이 추가로 20% 늘어납니다.
대부분의 부위에서 치명적인 일격이 발동됩니다.
위드는 성난 멧돼지처럼 전진했다.
검이나 철퇴 같은 것이 부딪치기도 했고, 누군가 방어 스킬을 쓰기도 했다.
슈와와아아악 콰과광!
누가 쓴지도 모르는 광역 스킬들이 떨어지며 대지가 불타올랐다.
“으아악!”
“끅! 여긴 아군도 있다고. 조심해!”
광역 스킬의 피해는 위드만이 아니라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함께 입었다.
‘상처를 입으면 더 쉽게 잡을 수 있으니 나쁠 것 없지.’
적진의 한복판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희열에 미소를 머금었다.
경험치, 스킬 숙련도, 전리품!
몽땅 얻으면서 싸울 기회가 어디 흔하던가.
주변에는 보물들이 널려 있었다.
‘어디 힘껏 덤벼봐라!’
< 처형자 타그리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투 공적에 따라 검술 스킬의 숙련도가 크게 높아집니다.
자유롭게 부여할 수 있는 1개의 스탯을 얻습니다. >
< 명성이 2,361 증가합니다. >
시야가 좁기에 직감에 의존했다.
찰나의 순간에 판단하고, 즉시 움직인다.
한두 번 부딪쳐 보면 적이 강한지, 약한지를 알게 된다.
‘약하면 죽이고, 강하면 때려잡아서 죽인다.’
때때로 만나는 실력자들도 여유를 주지 않고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다가온 위드가 무자비한 공격으로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끝장을 내고 있었다.
< 투신 바탈리가 그대의 싸움에 대해 행복해합니다.
그대의 육체는 한계를 모릅니다.
어떤 부상이나 생명력의 손실에도 전투력이 감소하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감소할 때마다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
리치의 몸으로는 필요한 건 아니지만 투신 바탈리의 축복도 부여되었다.
‘앞에 누군가 있다. 꽤 많이 몰려 있군. 바람직하게.’
위드는 본능을 따랐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몸이 저절로 최적의 효율을 찾아서 반응한다.
서걱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경험과 감각.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은 살짝 거들기만 했다.
‘이 충격은 탄탄한 느낌. 전사 계열보다는... 장비의 강도를 보면 워리어. 아쉽지만 먹이가 많으니 지나치자.’
위드가 싸우면서 꿰뚫고 지나가면 그곳으로 뒤늦게 수많은 공격 스킬들이 작렬했다.
“벌써 여기까지 위드가 뚫고 들어왔다!”
“뭐하는 거야. 어서 막으라고!”
두려움과 상상.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는 생각보다 대단히 크다.
어디서 갑자기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소리마저도 평소보다 훨씬 크고 가깝게 들리기 때문에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스킬들을 마구 사용했다.
동시에 생각했다!
‘위드가 근처에 있다고. 그럼 공격을 해야지. 위드가 맞으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잖아?’
미세먼지로 시야가 막힌 상황에서 스킬을 쓰면 누군가는 맞는다.
하벤 제국 기사나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주로 맞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레벨이나 명성, 스킬 숙련도는 확실하게 올라줄 테니까.
어쩌면 평소에 눈독을 들이던 좋은 장비를 얻을 수도 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한 짓인지도 모르잖아. 알려지더라도 위드를 치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을 테고.’
동료애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만히 있더라도 다른 유저들이 공격 스킬을 쓰고 있다.
혼자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유한 마나를 모아 스킬을 터트렸다.
위드가 혼자 7군단의 진영에 들어왔는데, 그것이 자신들끼리 수백여 명이 죽어가는 일이 되고 말았다.
정작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방패막 역할을 해줘서 별로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그의 돌파가 빠를수록 대부분의 공격은 뒤로 흘려버렸고, 어떤 때는 이미 당해서 만신창이가 된 유저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크르르륵. 불사의 지휘관을 뵙습니다.”
“모두 죽여라.”
“예. 즐거운 명령이시군요.”
죽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최상급의 데스 나이트나 둠 나이트가 되어서 일어났다.
대여섯 개의 시체가 뭉쳐서 썩은 괴물로 태어나기도 했다.
“어, 언데드다!”
“냉정하게 대처해. 확실히 적이 있을 때만 공격을... 영혼의 창!”
“신성 마법은 마구 써라. 거룩한 빛!”
언데드들이 근처의 유저들을 막무가내로 공격하면서 더 난장판이 벌어졌다.
* * *
“이런 방법이 있었군.”
“현재 상황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과연 원판다운 꼼수 아닌가.”
조각 생명체들은 위드가 벌이는 일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들은 단순 전투력만 놓고 보면 개개인이 괴물급.
“기회다.”
“나부터 가겠다.”
“그럼... 살아서 만나자!”
새끼 위드들은 그때를 틈타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북부 유저들을 지나쳐서 조금 달려가다 보면 대규모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면 같은 갑옷을 착용한 하벤 제국군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분검술!”
위드일은 강력한 스킬을 터트리며 시작했다.
수십 개나 되는 분신들이 쇄도하며 하벤 제국군의 수비 병력을 꿰뚫고 전진했다.
“위드다!”
“무슨 소리야. 위드는 반대쪽에 있는데!”
위드일의 스킬에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던 수십 명의 하벤 제국 기사들이 죽었다.
“달빛 조각 검술!”
검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면서 하벤 제국 기사들을 베었다.
“크우으으윽!”
언데드들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위드일은 그대로 빠르게 돌파했다. 돌진의 속성을 만끽하며 바람처럼 내달렸다.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조각 생명체들이 동시에 포위망을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하벤 제국군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군단장이 병력을 통솔하지 못하도록 추가적인 재앙의 효과까지 발생되었다.
대지가 제멋대로 흔들리며 갈라지는 것이다.
시야가 탁 트였거나, 혹은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의 난동이 없었다면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리라.
헤르메스 길드원이나 하벤 제국 기사들은 땅까지 흔들리고 갈라지자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위드가 이쪽으로 온다!”
“위드다. 바로 앞에 위드야!”
사방에서 위드가 나타났다는 소리들만이 가득했다.
그들의 선택은 강력한 공격 스킬의 사용!
미세먼지로 가득한 지역에서 온갖 스킬들이 발동되면서 자멸해 갔다.
* * *
오주완과 신혜민.
그들은 가르나프 평원 전투를 생중계했다.
생방송의 시청률은 23%.
모든 방송국들이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위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벤 제국군이 완벽하게 포위를 해서... 신혜민 씨. 위드가 이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만만치 않다고 봐요. 북부 유저들도 도우러 달려오고 있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전술이 제대로 적중을 한 느낌이네요.”
그들은 방송을 진행하며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KMC미디어를 비롯한 몇 개의 방송국들이 은근히 위드의 편에 선 것은 비밀도 아닌 일이었지만 겉으로라도 객관적인 시선이 중요했다.
“하벤 제국군이 방어 병력을 물리치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곧 위드와 직접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실력자들이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긴장감을 더해 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위드가 대재앙을 터트리고, 조각 생명체들을 만들었다.
미세먼지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을 때에는 방송국에서도 아무런 화면을 잡지 못했다.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이 짙게 뒤덮고 있었다.
“저 재앙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은 방송 사고가 아닙니다. 저희들도 당혹스럽지만 대재앙이 벌어진 것입니다.”
“현장의 보고에 따르면 어마어마한 스킬들이 작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와 싸우고 있는 것으로...”
대기 중에 떠 있던 미세먼지들은 30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천천히 가라앉았다.
길고 긴 대재앙이 끝나고 보이는 것은 병력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하벤 제국군이었다.
* * *
- 크레볼타 : 모두 진정해! 위드가 있는 것이 확실한가?
- 하일러 : 위드를 확인하고 공격해. 막무가내로 스킬을 써서는 안 된다.
- 드라카 : 포위망을 갖춘 채 빠져나가는 것만 막아야 합니다. 공격은 그 다음에 시야가 확보된 이후에 해도 될 것입니다.
- 헤로이드 : 이쪽에 위드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잡을 수 있습니다. 전력을 다해서 제거하겠습니다.
- 막스 : 여기도 위드가... 위드가 있는 건 이쪽입니다!
대재앙 속에서 각 군단장들은 노력했었다.
헤르메스 길드원이 공격 스킬을 쓰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도 했고, 여러 가지 지휘도 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전선에 있는 이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들에게 위드가 덤벼오고 있다고 느꼈으며, 가만히 있더라도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스킬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군단장이 여러 명이었고,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부대들도 섞여 있었다.
지휘 계통이 무너지면서 하벤 제국군도 스스로를 죽이며 무너져 갔다.
대지가 갈라지긴 했지만 여기에 가장 큰 혼란을 일으킨 것은 언데드.
죽은 자들이 도처에서 언데드로 되살아나면서 하벤 제국군은 통째로 전투에 휘말렸다.
날카로운 칼날들끼리 부딪치고 깨진다.
대재앙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광경은 참혹한 것이었다.
“...”
“...”
시야가 보이고 난 이후에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말문을 잃었다.
병력이 대략 절반 정도가 사라졌으며, 그만큼의 강력한 언데드들이 일어났다.
“위, 위드는?”
군단장들은 서둘러 위드부터 찾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위드만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최악의 결과는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없습니다.”
“3군단의 보고입니다. 진작 빠져나간 것으로...”
“7군단에서도 빠져나간 걸로 보인다고 합니다.”
“10군단도 비슷한 보고를...”
위드가 만든 조각 생명체들은 대대적인 소란을 틈타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셋은 전투에 휘말려서 목숨을 잃었다.
적진의 한복판에서 운이 나쁘게 여러 공격들을 당했고, 강자들에게 잘못 걸렸던 탓이었다.
위드라면 능숙하게 대처했겠지만 막 태어난 조각 생명체들이라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하일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위드는... 이미 빠져나간 것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언데드들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긴 했지만 아까보단 훨씬 약해 보였다.
데스 오라가 사라졌으며, 지금 죽어가는 이들도 더 이상 언데드로 되살아나지 않았다.
아마도 위드가 이 자리에 없다는 증거일 터였다.
“이제 망했군.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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