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게이하르 황제의 마지막
세상이 파괴된 느낌이었다.
위드는 미세먼지가 걷히며 드러나는 광경에 감탄했다.
‘이렇게 많이 죽을 줄이야.’
의도했던 대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피해가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몇 개의 군단이 풍비박산이 나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실룩.
위드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가 있는 곳에서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크레볼타가 있었다.
“젠장! 빌어먹을! 위드 그놈이 도망을 치다니!”
“비겁한 위드 새끼!”
“끝까지 여기서 싸울 것처럼 행동하더니 그대로 튀어? 이 더럽고 추잡한 자식!”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욕을 내뱉었다.
위드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선을 돌리면 금방 잊어버릴 만한 평범한 외모 탓이 아니라, 조각 변신술로 얼굴을 바꿨기 때문이다.
전투 중에 입수한 하벤 제국 기사들의 갑옷과 부츠, 검, 방패까지도 착용하고 있었다.
하벤 제국 기사들 사이에 서 있으니 영락없이 그들 중의 한 명으로 보였다.
‘절대 안 걸리지. 아마 하벤 제국에 돌아가서 기사 생활을 하더라도 걸릴 리가 없을걸.’
포위망에 갇혔다고, 적들과 끝까지 싸울 필요는 없었다.
적의 세력이 강하다 싶으면 슬쩍 빌붙어 버리면 될 뿐.
‘조각술은 응용할 수 있는 꼼수가 아주 많아. 나처럼 정직한 사람이 조각사가 되어서 천만다행이지.’
위드는 전쟁에서는 질 수 있어도, 웬만해선 허무하게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우선 언데드부터 정리해라!”
“정신 차리고, 빨리 저 많은 언데드들을 제거하자.”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명령했다.
위드는 언데드들에게 다가가서 하벤 제국 기사들과 함께 신나게 싸웠다.
리치로의 변신을 끝냈고, 다크 룰과 데스 오라의 효과도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언데드들은 조금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동료 기사들과 함께 데스 나이트들을 해치웠고, 둠 나이트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덤벼들었지만, 마지막 공격은 정확하게 기다리고 있던 위드의 것!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둠 나이트 젠피로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전투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130 올랐습니다.
-통솔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위드가 막타를 치긴 했지만, 전리품은 헤르메스 길드원이 챙겼다.
“와. 뼈의 파편이 나왔네.”
“좋은 거야?”
“몰라. 네크로맨서 용품 같기도 하고... 근데 1등급 대장장이 재료네.”
부들부들.
위드의 몸이 안타까움에 떨려왔다.
헤르메스 길드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지만 한줄기 남은 인내심으로 참아야 했다.
“빨리 언데드를 정리해라!”
“놀지 말고 움직여.”
“부상 입은 녀석들은 사제에게 말해라. 고쳐줄 테니.”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기사 대장의 명령을 받아 언데드 퇴치에 바쁘게 동원되었다.
“17기사단. 왼쪽을 맡아라.”
“옛!”
위드는 17기사단에 속해서 데스 나이트들과 전투를 치렀다.
“데스 나이트들에게 제국 검술을 펼쳐라!”
“옛!”
옆에서 검을 휘두르는 걸 그대로 따라하면서 데스 나이트들을 때려잡았다.
다른 기사들보다도 능숙하게 검술을 펼치는데 이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기본 기술만 응용해도 뭐...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제국 기사들이 워낙 많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데스 나이트들의 막타를 때리는 것은 필수!
샤샤샥!
아이템까지 완벽하게 회수하고 있었다.
위드의 행동은 17기사단의 단장의 눈에 띄었다. 물론 그도 NPC였다.
“잘 싸우는군.”
“감사합니다. 단장님.”
“열심히 하면 황실 기사로도 뽑힐 수 있는 실력 같아.”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만이 살길이죠.”
“훌륭한 자세네.”
기사단장 정도를 구워삶는 건 삶은 달걀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위드가 그렇게 언데드를 정리하는 동안,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맥이 풀려 있었다.
포위 작전의 핵심은 위드를 잡는 것인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진작 빠져나가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곳으로는 끝을 모를 북부 유저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16개의 레벨을 날렸지만 7개나 되는 레벨을 바로 복구해냈네. 이런 전장이 다시 생기기는 쉽지 않지만 상당히 짭짤해.’
위드는 언데드들을 해치우기 위해 기사들과 협력하며 싸웠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부근에서 전투를 치렀지만 그들은 전혀 이상한 것을 못 느꼈다.
“크흠. 배가 고프군.”
“밥이나 먹자고. 여긴 언데드들뿐이잖아.”
“쓸모도 없는 것들.”
“조금 후면 지겹게 싸우게 되겠지. 북부 놈들이랑.”
좋은 사냥터들을 독점했던 헤르메스 길드에게 언데드는 귀찮은 대상이다.
위드는 완벽한 위장을 위해 말로 몸을 바꾸는 것도 고려를 했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뒤통수치기 쉬운 놈들이 있나?’
조각 생명체들을 만들고, 재앙을 일으킨 다음에는 직접적으로 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 스스로 의심하고 욕심을 내다가 무너진 것이었다.
‘이젠 무난하게 승리를... 아니지.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는 것이 찝찝한데.’
위드의 본능이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뭐지? 뭘 놓친 거지?’
눈동자를 조심스럽게 굴려 봐도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조각 변신술을 알아차리려면, 하벤 제국 기사들의 투구와 갑옷을 벗기고 전부 샅샅이 뒤져 봐야 할 것이다.
그러더라도 누가 바뀐 것인지 알기란 쉽지 않겠지만.
- 쿠르르르르르.
대지는 수십 갈래로 갈라지고, 깊게 파헤쳐져서 무너져 있었다.
재앙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스킬에 의해 파괴된 땅들.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어어어?”
가까이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깜짝 놀라고 있을 때였다.
- 이 땅의 죽음들이 나를 일깨웠다.
분노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휩쓸지어니...
갈라진 땅에서 암흑의 오라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천천히 등장하는 해골로 이루어진 기사들!
어비스 나이트!
언데드 계열의 최강의 몬스터들이 일어나고 말았다.
- 대형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어비스 나이트의 탄생!
대지가 죽음과 절망으로 물들며, 어둠의 힘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짙은 어둠은 비탄과 불길의 씨를 뿌렸고, 이것은 피를 머금고 자라나서 어비스 나이트가 되었습니다.
“...”
위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벤 제국 기사들이 떠는 것이 느껴졌다.
“맙소사.”
“우린 죽은 목숨이야.”
“끝났어. 세상은 멸망할 거라고!”
제국 기사들은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어비스 나이트의 특성 때문에 기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위드도 덩달아서 연기를 해야 했다.
“아. 무서워. 진짜 무섭다. 검을 들고 있기도 힘들어.”
바들바들.
일부러 적당히 팔다리를 떨어주면서 비틀거리며 연기에 깊게 빠져들었다.
하벤 제국 기사들이 주저앉으면 따라서 앉았고, 땅을 길 때는 함께 기었다.
사기를 칠 때만큼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을 능가하는 연기력!
‘저놈들까지 막타를 먹이고 싶은데... 안 되겠지?’
어비스 나이트들을 바라보며 욕심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머리로는 차가운 이성이 억눌렀다.
‘무모한 짓이야. 여긴 적진이라고. 그러지 말자.’
간신히 욕망을 억눌렀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고 싶어 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위드는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알아서 죽고 죽여라. 난 적당히 도망만 다녀야지.’
너무나도 야비한 생각을 했다는 판단에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 * *
“허어어.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나.”
유병준은 모니터를 보며 탄식했다.
하벤 제국군이 위드를 노리고 모여들 때만 하더라도 아쉬웠다.
‘너무 쉽게 끝나는 거 아닌가.’
위드가 함정에 빠져서, 전술적인 병력 이동에 허무하게 패배하면 지켜보는 재미가 없다.
하벤 제국이 너무 쉽게 대륙을 장악하기 때문이었다.
‘위드도 싫지만, 저놈들이 싫은 것도 마찬가지야.’
최상의 결과는 위드가 구르고 구르는 걸 코코아라도 마시면서 오래도록 만끽하는 것이었다.
생고생을 실컷 하고 다음에는 아무 쪽이나 이기면 되리라.
“대재앙은 무슨...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로는 거의 피해도 못 줄 텐데.”
유병준은 실컷 비웃었지만 미세먼지가 일대를 뒤덮었다.
어둠 계열의 마법이라면 빛을 밝히면 되지만, 미세먼지라는 재앙은 의미가 없다.
어떤 마법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재앙.
그 속에서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실컷 죽고 죽여 나갔다.
스킬 사용을 하는데 전혀 참지도 않았고, 한 대라도 맞으면 서너 개의 스킬을 주변으로 마구 난사했다.
어둠 속에서 벌어진 한 폭의 지옥도.
“피해가... 피해가...”
인공지능 베르사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 저 자리에 있는 헤르메스 길드원 323,837명 중에서 142,586명이 사망했습니다.
“...”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큰 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어비스 나이트까지 일어서고 말았다.
- 심연의 어둠 속에서 어비스 나이트 3명이 탄생했습니다.
죽음의 기운이 강력하게 깃들어서 매우 위험한 몬스터들입니다.
“저놈이라면 위드를 죽일 수 있겠지.”
유병준은 희망을 품으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비스 나이트라니. 그래도 위드가 위험하진 않을 것 같군.”
미꾸라지보다도 용의주도한 위드였다.
어비스 나이트가 나타난 것을 기회로 삼으면 삼았지, 저것들에 의해 죽을 것 같진 않았다.
“코코아가 쓰군.”
- 현재 드시고 계신 코코아의 당분 함량은 평소보다 24% 더 많은 것으로...
* * *
서윤은 중앙 대륙 출신의 유저들과 협력해서 제국의 마법사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이곳은 다 정리되었습니다.”
“더 이상 유성이 소환되지 못할 겁니다.”
불타는 유성 소환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막았고, 뭉쳐 있던 마법 병단을 격파했다는 것이 대단한 공로였다.
“위드님이 공격당하고 있답니다.”
“지금 방어선이...”
“헤르메스 길드에서 개떼처럼 모여들고 있어요.”
위드 주변의 전투 소식들은 가르나프 평원에 있는 모든 유저들에 의해 전파되고 있었다.
언데드를 일으켰지만 하벤 제국군이 거세게 돌파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렸다.
“어서 가도록 해요.”
서윤이 바라그의 등에 타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녀와 함께 싸웠던 유저들도 서둘러 거대한 바라그의 등에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법사들과 싸우면서 많은 병력이 줄어들었다.
“저쪽입니다!”
해가 떠오르면서 평원이 유저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수많은 군중들이 위드가 있을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지만 차분히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축제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렇게 바뀌다니.’
‘완전 죽고 죽이는 전쟁터군.’
스켈레톤이나 좀비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제국군과 북부 유저들이 무리를 지어서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수만 명의 전투가 작게 느껴질 정도로 이번 전투는 베르사 대륙의 운명을 건 결전이었다.
“잠깐 병력 보충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칼림도어님의 용병대를 태우고 바로 오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바라그에 탄 유저들은 저마다 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었다.
레벨 400대, 500대의 유저들이 중간에 빠르게 합류하며 병력 보충을 이루어냈다.
“저희들도 왔습니다!”
바라그의 부대를 보고 수많은 조인족들도 모여들었다.
하벤 제국군에서는 하늘에 돌풍을 일으켜서 조인족들의 집결을 방해했지만 그들은 몸으로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뚫어내고야 말았다.
“째잭!”
“꽤애액꽥꽥!”
조인족들의 등에는 북부 유저들도 가득 타고 있었다.
보통의 조인족들은 두세 명의 유저들을 등에 태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섯 명 이상이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었다.
레벨 300대 이하는 아쉽지만 조인족들의 등에 타지도 못했다.
“어서 가요! 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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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죽, 풀죽, 풀죽!”
가르나프 평원 전역에서 모여드는 유저들.
하벤 제국군은 주요 지점마다 병력을 배치해서 유저들의 접근을 막아내고 있었다.
“30분만 끌면 된다. 모두 버텨라!”
이곳에 배치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실력이 떨어지는 편에 속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벨이 450을 넘었으니, 제국군을 지휘하며 수비에 전념했다.
“궁수 부대 순차 공격!”
“방패병들은 자리를 지켜라!”
제국군은 중장갑보병들이 방패를 가깝게 붙이고 장창병들을 중간중간 배치했다.
북부 유저들은 마치 해일과도 같았지만, 단단한 방어벽에 막혔다.
“저들이 너무 강해서 뚫을 수가 없어!”
“돌파해요! 돌파하란 말이에요!”
“전진합시다!”
북부 유저들이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속사! 관통! 강화!”
페일은 제국군의 진영으로 수십 발의 화살을 빠르게 쐈다.
아무나 맞으라고 쏘는 화살이었지만, 제국군 병력이 밀집해서 있으니 빗나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 방패에 가로막혔습니다. >
< 방패를 뚫고 투구에 적중되었습니다. >
<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
“미치겠네. 빠른 돌파가 어렵겠어요.”
페일은 기계적으로 화살통에 손을 가져가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궁술 스킬은 고급 8레벨!
활은 하이 엘프의 것이었고, 공격력 강화를 위한 사제의 축복까지 부여되었지만 제국 병사를 일격에 죽이지는 못하고 있다.
“뚫긴 뚫겠지만 시간이 문제인데, 어떻게 하죠?”
풀죽신교의 성녀 레몬도 곁에 있었다.
그들에게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병력이 있었고, 이 순간에도 가세하고 있다.
“독버섯죽 31부대. 참전했습니다!”
“들깨죽 후발대도 도착했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딸기죽이 전력을 다해서 돌진하겠습니다. 길을 열어주세요!”
“햄버거죽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도 지금 들이받겠습니다!”
북부 유저들은 많이 있었지만 제국군의 방어 진형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헛수고였다.
꽈르르릉!
하벤 제국군의 진영에 마법들도 작렬하고 있었다.
페일은 조급함을 느꼈지만, 북부 유저들의 공격은 점점 빠르게 거세어졌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내가 왔다!”
검삼치!
그는 불타는 유성 소환에 맞아 흉터가 가득한 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사나이답게 간다아아아아!”
하벤 제국군의 진영으로 뛰어가는 그를 북부 유저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서둘러 피해줬다.
“으아아악!”
“무섭다. 무진장 무서워!”
“딸꾹.”
꿈에 나올까 두려운 얼굴로 전투를 위해 달려가는 검삼치.
“이곳에서 또 싸우고 있구나.”
“예. 스승님. 7번째인 것 같습니다.”
“좋다. 좋아. 단숨에 쓸어버린다. 전 병력 돌격 대형으로!”
검치와 검둘치를 비롯한 사막 전사의 무리들도 차례차례 나타났다.
팔로스 제국의 후예들!
“모두 비켜주십쇼. 우리가 갑니다!”
검치가 이끄는 사막 전사들이 낙타를 타고 질주를 시작했다.
유저들이 분분히 비켜서며 열리는 길을 직선으로 돌파하며 속력을 높였다.
“이랴. 이랴!”
“달려라. 이 순간을 위해 살아라!”
“한 줌도 남기지 말고 터트려!”
“끼요오오오오오옷!”
괴성을 터트리면서 달리는 사막 전사들.
검치와 사범들이 제대로 가르친 사막 전사들은 변화가 있었다.
더 무식해졌다.
더 단순해졌다.
헤르메스 길드의 마법사가 그들을 보고 마법 주문을 외웠다.
“화염 장벽!”
검치와 사막 전사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드넓은 불의 장막이 쳐졌다.
북부 유저들이 열기에 물러서고 있었다.
“화끈하게 넘어라!”
“예. 스승님.”
“아싸. 불구덩이다.”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
사막 전사들까지 연달아서 화염의 장벽을 통과했다.
얼굴과 등에 불이 붙어 있었지만 그대로 내달렸다.
“푸흥, 푸흐흥!”
그들이 탄 쌍봉 낙타들까지 오히려 더 좋아했다.
“전부 쓸어버려!”
마침내 도착한 검치와 사막 전사들이 중장갑보병과 충돌했다.
단단하게 유지되던 방어 진형은 단숨에 무너지고, 제국군들 사이에서 사막 전사들이 날뛰었다.
“풀죽, 풀죽, 풀죽!”
“기회다!”
“이쪽이에요!”
그 순간, 열린 틈새로 밀려 들어오는 북부 유저들.
막으려는 제국군과 뚫으려는 유저들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 주인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왔다!
하늘을 밝히며 동쪽에서 날아오는 불사조가 있었다.
“뭐. 뭐야?”
“조각 생명체다!”
“불사조야. 불의 거인도 등에 타고 있어!”
“와아아아!”
조각 생명체의 등장은 북부 유저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불사조의 뒤에 따라나선 것은 빙룡과 와이번들!
- 주인에게 잔소리를 듣겠지만 같이 싸우기로 결정했다.
- 주인을 도우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심심해서 싸우는 거다.
- 맞아. 싸우고 싶어서 온 거다.
와이번들의 등에는 바하모르그나 하이엘프 엘틴, 백호, 빈덱스, 게르니카, 세빌, 켈베로스가 타고 있었다.
“바하모르그다.”
“엄청 쎈 워리어잖아.”
“맙소사. 조각 생명체들 중에서도 최정예들이 다 출동했어!”
하늘을 올려다본 유저들이 지상에서 환호했다.
- 어떤 적도 나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 무엇이든 쏴 주죠.
- 어흥!
- 칼로 베면 다 죽죠.
- 철퇴로 내려찍어도 돼.
- 주군을 위해서 익힌 검입니다.
- 크르르르르.
금인이는 등에 빛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고 있었으며 어깨에는 황금새와 은새도 함께했다.
- 골골골. 다이아몬드랑 사파이어 잔뜩 준비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보석으로 화려한 마법을 펼쳐야지!
- 대륙 정복 전쟁! 남자라면 마땅히 나서야 할 일이다.
- 우아하진 않은 일이지만 적이 있다면 싸워야죠.
지상에는 킹 히드라와 데스웜이 이끄는 조각 생명체 군단이 진군을 해오고 있다.
거대 건물의 크기인 킹 히드라가 성큼성큼 달려올 때마다 땅이 깊숙이 패였다.
- 다 죽인다. 먹는다.
- 죽이고 먹을까. 먹어서 죽일까.
- 내 취향은 먹어서 죽이는 것이다.
- 아니야. 죽여서 먹어야 한다.
킹 히드라의 아홉 개의 머리는 죽이고 먹자는 의견과 먹고 죽이자는 쪽이 갈라져서 논쟁을 벌였다.
데스 웜은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갔다. 길고 긴 몸통이 줄줄이 이어지는 광경은 상당히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 인간들은... 맛있지.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을 위험한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손해가 크기 때문인데, 그런 보살핌을 받기에는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조각 생명체들이었다.
* * *
다인은 전투에 참여하며 떨리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내가 와도 되는 것일까.’
에바루크 성의 영주로서 사람들을 챙기며 살 때가 좋았다.
아르펜 왕국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북부 유저들이 중앙 대륙으로 내려오면서 하벤 제국의 영주로서 참전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겠구나.’
알고 지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전투에 참여했지만 위드를 본다는 기대감이 컸다.
못 본 사이에 많은 퀘스트와 업적들을 세운 영웅!
‘풋. 처음에 봤을 때는 열심히 하는 초보자에 불과했는데.’
다인은 그녀만의 애틋한 추억을 떠올렸다.
천공의 성 라비아스에서의 인연은 수술을 할 때에도 큰 힘이 되면서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었다.
위드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예쁜 추억이란 변하는 게 아니잖아. 살아간다는 건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 가면서 사는 거야. 삶은 무상할지라도, 이 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거지.’
다인은 에바루크 성주로서 살아왔고, 하벤 제국 소속으로서 충실하게 전투를 치르기로 했다.
‘멋지게 싸울 거야. 그런 삶을 살기로 결심했으니까.’
단단히 마음을 다지고 전투에 참여했다.
위드가 궁지에 몰렸다고 해서 봐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할 거야. 적으로 만난 이상 설혹 내게 죽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대재앙으로 시야가 가려지고 난 이후에 다인은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 다인 : 진정하세요. 잠깐 시야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단단히 뭉쳐 있으면 위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차분한 말투는 그녀를 믿고 전장에 온 이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었다.
19군단은 헤르메스 길드원과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많이 섞여 있었지만 흔한 다툼도 별로 없었다.
에바루크 성에서는 헤르메스 길드원이나 다른 유저들이나 나름 화목하게 살아간다.
다른 지역처럼 심하게 착취를 하지 않아도 교역과 모험, 생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살기가 좋았다.
19군단은 자리를 지키면서 그저 대재앙이 걷히기만을 기다렸지만, 주변에서는 온통 싸움이 벌어졌다.
당황한 유저들이, 어쩌면 그 감정을 가장하고 스킬을 난사하며 이득을 취했다.
- 다인 :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믿으세요. 서로를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공격을 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세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적이 되느냐, 아군이 되느냐는 미세한 차이다.
모두가 미쳐서 날뛰면 다 같이 위험에 빠져 죽게 된다.
19군단의 병력은 다인의 말을 듣고 기다렸다.
“질서!”
“질서를 지킵시다.”
“움직이지 말고 다친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주세요. 우린 같은 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광역 스킬들이 날아오기도 했지만 수비만 하고 대응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미세먼지가 서서히 줄어들며 다인은 부대원들을 챙겼다.
“부상자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샤먼인 그녀를 비롯해서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이 다친 이들부터 치료했다.
“군단장님. 저기...”
다인은 한창 치료를 하다가 누군가가 가리키는 손길에 주변을 둘러 봤다.
대재앙이 끝나고 미세먼지들이 가라앉으면서 조금씩 먼 곳까지 시야가 보이고 있었다.
처참하게 무너진 하벤 제국군의 진영.
수없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언데드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떻게... 그냥 막기만 하면 피해가 거의 없었을 텐데.”
마치 꿈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날카로운 칼들끼리 부딪쳐서 큰 피해를 입은 건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한참 만에, 다인의 입술이 열렸다.
“어우, 저 바보들.”
* * *
“영차, 영차!”
“조금만 더 힘을 쓰세요!”
가르나프 평원의 조각품 복구 현장.
불타는 유성 소환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파편들을 맞추고, 조립하느라 모두 바빴다.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서 구슬땀을 흘리는 장소에 루블이 게이하르 황제를 업고 도착했다.
하벤 제국군을 돌파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그녀와 친분이 있는 유저들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탈출했던 것이다.
“어서 일어나세요!”
그녀는 게이하르 황제를 깨우려고 조심스럽게 몸을 흔들었다.
“으음냐아.”
만취해서 정신을 잃은 게이하르 황제는 전혀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오셨네요.”
위드의 여동생인 유린이 멀리서 다가왔다.
유린은 그림 이동술로 대륙의 건너편까지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가능했지만, 루블의 외모나 가르나프 평원의 주변 상황이 복잡해서 스킬 사용이 되지 않았다.
유린은 조각품 복구 현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네. 위드님 부탁대로 모시고 오긴 했는데 깨어나질 않아요.”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술 취한 사람을 깨우는 방법을 몇 가지 알아요.”
유린은 자신 있게 나서서 게이하르 황제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일어나세요. 할아버지.”
“쿠우울.”
꿈쩍도 하지 않고 잠든 게이하르 황제.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은 모양새였다.
“자, 이러면 2단계 방법이 있죠.”
유린이 수통을 꺼내서 물을 뿌려도 봤는데,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루블은 그 광경을 보며 근심이 가득했다.
“완전히 취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한데요.”
“어서 해봐요.”
유린은 잠시 주저하긴 했지만 입을 열었다.
“어머, 저기 미소녀가...”
“허엇!”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게이하르 황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디? 어딘데?”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게이하르 황제는 차가운 물을 마시고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이 사람들도 아르펜 왕국. 제자의 왕국을 위해서 돕고 있는 것인가?”
“네. 그래요.”
유린의 대답에 그는 짙은 회한이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위드가 떠나고 난 이후의 일을 아는가. 나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 아르펜 제국이 망하는 것은 어찌 되더라도 상관없었지만, 내 새끼들과 같은 조각 생명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괴롭힘을 당하는 건 견딜 수가 없었어.”
위드가 시간 여행을 한 이후로 역사는 조금 바뀌었다.
게이하르 황제는 조각 생명체들이나 아르펜 제국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었을 정도로 크게 상심을 했었다.
“정말로 위드가 말했던 대로 되살아날 줄은. 그러나 힘을 쓰는 게 내키지 않았다.”
“왜요?”
“아르펜을 다시 세우더라도 오래 가지 못할 거라면, 그것이 조각 생명체들을 괴롭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이하르 황제는 조각품의 복구 현장을 걸으며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노동에 빠져있어서 그나 유린에 대해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이들은 조각품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저 조각품들도 실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야.”
“네. 조각 생명체들은 인기가 대단해요. 사람들은 조각술을 좋아한답니다.”
“그런가... 애초부터 내 고민은 의미가 없었던 것인가.”
게이하르 황제는 기린 조각상 앞에서 듬성듬성 빠진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조각술의 명맥을 잇는 제자를 위해... 다시금 조각 생명체들을 부르겠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거대한 기린의 조각상.
그것이 환한 빛에 휩싸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게이하르 황제가 걸을 때마다 주변의 모든 조각품들에 생명이 부여되면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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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 나이트 셋.
군터, 일라드렘, 파우스.
- 모두 일어나라. 이 땅은 죽음의 율법이 지배한다.
- 너희들은 곧 멸망할 세상을 지키려 하는가.
-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따르라.
막강한 전투력을 가진 어비스 나이트들에게 언데드들이 복종했다.
얼마 남지 않은 북부 유저들도 죽어갔지만, 사방에서 몰려든 하벤 제국군이 표적이 되었다.
“침착하게 싸워라. 놈들은 생각보다는 강하지 않다.”
군단장들은 병력을 이끌고 어비스 나이트를 막아냈다.
- 전부 죽여라.
- 물러서지 마라. 돌진하라.
어비스 나이트는 싸움밖에 모르고, 적을 향해 달려든다.
헤르메스 길드의 워리어 수십 명이 견제하며 시간을 끌었다.
불멸의 존재인 판제롭 유령 기사단이 우회해서 어비스 나이트를 틀어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헤르메스 길드는 얼마 전에 어비스 나이트가 되었던 반 호크와 싸웠던 경험이 적지 않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정작 위드는 빠져나가 버렸고 언데드들이나 처리해야 하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군요.”
“저 언데드들이 얼마 전까지는 우리 동료였습니다.”
“이대로면 우리가 지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든 버팁시다. 알킨 병이 있으니까요.”
군단장들은 딱히 뚜렷한 수가 없기에 언데드 퇴치에 집중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구나. 이렇게 강한 언데드들이 이 모양으로 싸워야 하다니.’
제국 기사로 변신해 있던 위드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둠 나이트만 해도 수천여 명에 달했고, 데스 나이트는 만 단위의 군단 수준으로 일어났다.
그럼에도 무질서하게 싸우다가 도처에서 무너지는 걸 보니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17기사단이 왼쪽을 맡는다.”
“옛!”
위드는 주변의 기사들과 함께 데스 나이트들의 무리를 부지런히 공략했다.
<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
< 날카롭지만 균열이 가 있는 검을 획득했습니다.
완벽하게 수리를 한다면 쓸 만할 것입니다. >
‘이런 방식은 영 내키지 않아. 전력을 다해서 싸우고 싶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기사들의 실력에 맞춰줬다.
위드가 객기를 부릴 상황이 아니긴 했지만 손끝이 간질거렸다.
‘저기 저 유저의 뒤통수... 탐스러운 뒤통수. 장비까지 끝내주는 걸 입었는데. 아아아아아.’
참새에게 지렁이 스테이크를 차려준 격!
‘저건 진짜 무리니 데스 나이트라도 잡자.’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어비스 나이트들에게 주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제국 기사들과 데스 나이트들이 싸우는 장소로는 시선도 잘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좀 주워 먹을 게 있었다.
“크헉, 뚫렸다!”
“치료 마법을 집중시켜요. 단단히 조여서 움직일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워리어들이 아무리 막으려고 들어도 암흑 투기를 난사하며 돌파하는 어비스 나이트들을 가둬 놓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 헤일러 : 군단별로 연합해서 정리하지요. 여기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없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모여 있던 유저들 중에 최고의 실력자들이 다 동원되었다.
위드는 오랜만에 멋진 기사단을 이끄는 다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로 가더니 출세했구나.’
에바루크 성의 영주가 되고 칼라모르 지역에서 승승장구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아이템들을 아주 고급스러운 걸로 도배를 했네.’
샤먼이 쓸 수 있는 장비는 구하기가 까다롭고 귀했는데, 최상의 물품들로 착용하고 있었다.
‘한정판까지 다 챙겨 입었네. 역시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어.’
위드는 이런 일에는 공과 사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 편이었다.
배신자는 죽음뿐!
그사이에도 거대했던 언데드 무리들이 급속도로 규모가 줄어 들어갔다.
위드가 제국 기사로 변신하면서 다크 룰, 데스 오라의 효과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어비스 나이트들도 꽤나 활약을 했지만 한 마리씩 소멸을 당했다.
반 호크 때보다도 쉽게 잡았는데, 막 어비스 나이트로 태어나면서 열악한 장비와 제대로 육체를 다루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아쉽군. 그래도 헤르메스 길드원을 제법 죽인 것 같고...’
위드는 대재앙으로 입혔던 피해부터는 덤으로 얻은 것으로 생각하며 만족했다.
‘이제 슬슬 떠나야 할 때야.’
데스 나이트들의 공격을 별다른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얻어맞았다.
< 강타!
어깨 부위를 세게 얻어맞았습니다.
생명력이 381 감소합니다. >
< 연속 피해!
옆구리를 걷어차였습니다.
생명력이 809 감소합니다. >
레벨이 500을 넘었고, 기본적인 맷집과 인내력도 높아서 다섯 마리의 데스 나이트들에게 맞아도 거뜬했다.
< 갑옷의 내구도가 감소했습니다. >
위드는 데스 나이트들에게 맞으면서 갑옷이 부서지고 허름해 보이게 만들었다.
“위험하다.”
주변 기사들이 덤벼들어서 데스 나이트들을 물리쳤다.
“괜찮나?”
“부상을 입었다. 조금 쉬겠다.”
“알겠다.”
NPC로 이루어진 기사들은 걱정해 주었다.
위드의 매력이나 카리스마, 통솔력이 발휘되고 있었기에 사실상 조금만 활약했더라도 하벤 제국 기사들을 이끄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직도 날 의심하는 놈들이 없어.’
하벤 제국군이 워낙 대군이었고, 도처에서 언데드들과 전투를 하고 있었으니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기사 한둘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위드는 부상병들에 섞여서 조금 쉬다가 외곽의 언데드들과 싸우는 부대에 합류했다.
“같이 싸우겠다.”
“환영한다.”
데스 나이트들을 때리면서 경험치를 쌓았다. 그리고는 먼 곳에서 다가오는 북부 유저들이 보였다.
완전히 떠오른 태양!
미세먼지가 뒤덮었던 평원은 거짓말처럼 시야가 깨끗해지면서 달려오는 북부 유저들이 보인다.
“풀죽, 풀죽, 풀죽!”
“아르펜 왕국을 위해서 싸우자!”
북부 유저들의 함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시야를 가득 채운 대군이 개미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하벤 제국군이 부분적으로 남겨 놓은 병력들을 완전히 격파하고 밀려드는 것이다.
아홉 개의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있는 킹 히드라와 환하게 불타는 불사조.
빙룡과 와이번들도 눈에 띄었다.
‘조각 생명체들이 합류했구나.’
말은 조각 생명체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전투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했었다.
그렇다고 진짜 전투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훗날 무지막지한 잔소리를 퍼부었을 것이다.
어차피 전투에 참여했더라도 잔소리를 했겠지만!
‘다행히 잘 싸운 것 같군.’
전투 중에 죽거나 크게 다쳤으면 다시 되살려야 하니 그건 또 조각 생명체들의 탓이었다.
- 유린 : 게이하르 할아버지가 조각 생명체들에 생명을 부여했어. 대박이야.
여동생으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위드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정도인데?”
- 유린 : 몽땅 되살려냈어.
“그걸 전부?”
가르나프 평원에 유저들이 만들어낸 건 엄청난 숫자였다.
불타는 유성 소환으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해도 초대형 조각품만 해도 수백여 개에 달했다.
- 유린 : 게이하르 할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다시 죽으면서 조각품들을 모두 살려냈어.
“조각 생명체들의 실력은 믿을 수 있고?”
- 유린 : 응. 한 마리, 한 마리가 정말 강해 보여. 다만 게이하르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그들에게 말했어.
“뭐라고?”
- 유린 : 인간들에게 복종하지 말고, 자유를 누리라고.
“자유?”
- 유린 : 오늘은 전투를 돕지만, 그 이후로는 마음껏 살아가라고 했어.
게이하르 황제는 조각 생명체들에게 완전한 생명을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었다.
평생을 조각술과 조각 생명체들을 위해서 살아간 황제.
위드는 미소를 지었다.
“그분의 뜻대로 조각 생명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되겠군.”
자유는 당연하게도 공짜가 없었다.
아르펜 왕국에 월세집도 마련해야 할 것이고, 세금이나 기타 생필품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자유롭게 착취해주지!’
북부 유저들과 조각 생명체들의 진군.
“이야하아압!”
위드는 하벤 제국군의 진영에서 뛰쳐나와서 그들과 싸우려고 달려갔다.
검을 땅에 질질 끌면서 달리는 용맹한 기사처럼 보였다.
“뭐야. 저건.”
“기사 주제에 왜 무리를 하고 그래.”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위드를 일개 기사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무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위드는 빠르게 내달리다가 검을 멀리 집어던졌다.
평소에는 잡템까지도 알뜰하게 챙기는 그였지만, 지금은 방송을 의식했다.
언데드들을 베면서 상태가 많이 나빠진 검이기도 했다.
촤자작!
달려가면서 갑옷을 벗어 던지고, 투구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나는 위드의 얼굴.
“서, 설마 저거...”
“위드 아냐? 위드잖아.”
“위드 맞는 것 같은데?”
북부 유저들과 싸우기 위해 서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망연자실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위드는 벌써 절반이나 넘게 달려가고 있었고 워낙에 빨라서 쫓아가더라도 이미 따라잡기에는 틀렸다.
- 주인!
- 골골골. 어서 와라.
- 음머어어어어어. 무사히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이 반갑게 위드를 맞이해주었고, 북부 유저들의 함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전쟁의 신 위드!”
“위드님이 무사히 돌아오셨다.”
“이제 아르펜 왕국이 이겼어!”
* * *
하벤 제국군 사이에는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어비스 나이트들이 셋이나 등장했을 때도 이 정도로 경악하진 않았다.
“위드가... 여기 있었다고요?”
“예. 우리들 사이에 섞여서 숨어 있었답니다. 제국 기사들 사이에요.”
“그래서요?”
“북부 유저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손 안에 있었는데 놓쳤다고?’
‘무슨 작전이 제대로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냐.’
수뇌부에서 이번 전투를 위해 준비했던 전멸 계획.
1단계. 가르나프 평원에 불타는 유성 소환을 시전.
2단계. 알킨 병을 퍼뜨림.
즉시 감염되는 전염병으로 유저들의 전투력 상실, 공포 전염.
3단계. 판제롭 유령 기사단의 출현.
절망감을 안겨줌.
4단계. 제국군이 동서남북의 각 경로로 전면 진입.
강철 기사단과 소멸의 창 사용.
5단계. 불타는 유성 소환 재사용.
혼란 중에 위드를 비롯한 주요 유저들 암살이나 제압.
1단계와 2단계까지는 그럭저럭 통했다.
판제롭 유령 기사단이나 소멸의 창도 강력하긴 했지만, 위드와 제대로 싸워보질 못했으니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야말로 자신들은 대재앙 속에서 서로 죽이고 싸우다가 자멸했다.
목표였던 위드는 자신들 중의 하나로 위장해서 지켜보다가 유유히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고.
“도대체 일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된 겁니까?”
“이 지경이라니요. 계획이 잘못된 게 아니라 현장 대처 미숙이잖습니까.”
“미숙이요? 우리가 잘못했다고요?”
“크레볼타님은 말하지 말죠. 위드가 7군단에 속해 있었는데 무슨 염치로 말하는 겁니까?”
“건방지게 이게 어디서...!”
군단장이나 헤르메스 길드의 고위급 유저들끼리 다투는 광경을 지켜보던 드라카는 씁쓸하게 말했다.
“이번에도 당했군. 그것도 제대로 외통수야.”
북부 정벌에 나섰을 때보다도 처참한 결과였다.
제국군의 전력은 크게 약해져 있었다.
위드를 잡기 위해 흘린 병력도 상당했고, 대재앙으로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손해도 막대하게 봤다.
설상가상으로 실컷 기세가 오른 북부 유저들은 이제 사방에서 포위 공격을 해올 것이다.
드라카가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는 생각에 말했다.
“논쟁을 벌이고 있을 시간도 없습니다. 우선 포위망부터 돌파하고 봅시다.”
“포위망을 돌파하면 무슨 수가 생깁니까?”
하일러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던 데다,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서열 때문에라도 드라카가 말하는 게 불편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 포위를 벗어나야죠. 여기서 끝도 없이 덤벼들 유저들을 상대로 싸울 겁니까?”
“위드와 붙으면 됩니다. 섬멸 작전은 실패했지만 정면 승부를 벌여서 힘으로 꺾을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다인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틀렸어요.”
“예?”
“아르펜 왕국군에 새로운 조각 생명체 군단이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어요.”
군단장들은 수정 구슬을 꺼냈다.
여러 방송국들의 채널을 옮겨 다닐 필요는 없었다.
KMC미디어, CTS미디어를 비롯해서 인기 방송국마다 비슷한 영상을 내보내고 있었다.
유저들이 가르나프 평원에 초대형 조각품들을 만들었다.
그것들에 생명이 부여되어서 이곳으로 진군해오고 있는 광경들이 보였다.
수백 미터의 달하는 크기에 거대 생명체들!
영상만으로도 강함이 충분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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