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무너지는 제국군
위드는 당연하게도 북부 유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위드, 위드, 위드님이 오셨다!”
“왔노라! 팔았노라! 벌었노라! 이거 한 번만 해주세요!”
“꺄악! 위드님. 잘생겼어요!”
하벤 제국과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벌써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위드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 왔노라!
사자후를 터트리자 가르나프 평원이 들썩거릴 정도의 반응이 일어났다.
“왔노라!”
“오셨다!”
“드디어 시작됐다.”
- 싸웠노라!
“그렇지. 싸웠지.”
“막 싸웠는데도 잘 싸웠어.”
“위드님 혼자서 엄청난 전공을 세웠잖아.”
“기적. 기적이지. 정말로.”
북부와 중앙 대륙 출신 유저들의 공감을 확실히 일으켰다. 모닥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후끈하게 열기가 달아오른다.
위드는 근처에 있는 바드의 도움을 받아서 음성 증폭과 사자후를 동시에 터트렸다.
- 이겼노라!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단순하지만 전쟁터에 온 사람들의 가슴을 들끓게 만드는 세 마디였다.
“이겼다!”
“아르펜 왕국 만세!”
“풀죽신교의 이름으로 대륙을 정복하자!”
“독버섯죽이여...!”
북부 유저들의 마음이 들떴다.
하벤 제국과의 싸움이 끝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자신들이 우세해졌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게이하르 황제가 일으킨 조각 생명체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축제네. 정말. 전쟁터답지 않아.”
“보드미르. 불리할 때도 아르펜 왕국이 이길 거라고 계속 말했는데 맞춘 거 같다.”
“위드님이 나섰으니 당연히 이길 줄 알고 있었지.”
헤인트, 프렉탈, 보드미르.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도 가르나프 평원에 와 있었다.
그들은 대규모 해상 전력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지상전에는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의리 때문만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들이 본 위드는 사소한 일도 꼼꼼하게 기억하고 보복을 가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건수에 참여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저 악당... 아니. 영웅 위드님이 패배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
“위드님이 지면 그게 더 두렵지.”
“어째서?”
“위드님을 이긴다면 그건 또 얼마나 독한 놈이겠어.”
“맞네. 그러네.”
“대륙 멸망하는 날이지. 인류의 한계로 저 인간보다 더한 인간이 있을 수가 없잖아.”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 옆에서 듣고 있는 유저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뒤치기의 4인조.
“크으. 기억력이 워낙 좋아서 깨알 같은 보복을 한다는데요.”
“원래 영웅은 치졸한 면도 있어야 해. 아르펜 왕국을 일으킨 걸 보면 인물은 인물이지.”
“누가 될지 몰라도 전쟁의 신 위드랑 엮이면 인생 곤란해지는 거죠.”
“그러고 보면 우리도 뒤치기 실패한 게 가문의 영광 아니냐.”
* * *
위드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하벤 제국군의 방어 거점들을 무너뜨리며, 가르나프 평원 전역으로 퍼져 있던 유저들이 이곳으로 온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
레벨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건 즐거움이다.
‘그래. 인생은 즐겁지 않으면 안 돼. 사는 게 고통스럽더라도 말이야.’
위드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은 적이 없었다.
항상 배가 고팠고, 월세가 밀리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행복한 삶이라는 거. 생각만 했었지.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다.’
돌이켜보면 로열 로드를 시작하고 나서 힘든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즐겁지 않은 날이 없었다.
- 우린 지지 않아.
맨날맨날 이기지.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리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 삼겹살은 맛있어.
세상의 빛이라네.
치킨은 맛있어.
닭다리, 날개, 목, 다리, 몸통.
어디라도 취향대로 뜯을 수가 있지.
늦은 밤에는 족발도 먹고 싶어.
피자는 우릴 배신하지 않아.
위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 우워어어어어어!
전화를 걸었네.
보쌈을 시켰어!
삼겹살도 배달이 되고, 닭발도 배달이 돼.
비싸다. 비싸다.
물가가 올라서 직접 해먹어도 비싸!
갈등을 하지만 주문 전화 후에는 후회란 없어.
세상은 그런 것.
일단 지르고 나면 기대감에 행복한 것.
간장게장, 꽃게장, 양념게장, 돌게장!
음정과 박자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랩과 발라드, R&B, 트로트, 메탈, 재즈, 동요를 순식간에 넘나드는 복합 장르!
“위드, 위드!”
“드디어 시작되었다. 전쟁을 알리는 위드님의 노래다!”
유저들의 대부분은 열광했지만, 당황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뭐, 뭐야.”
“우와. 위드님의 노래를 가까이에서 직접 듣는 건 처음이다.”
“지금 상황에 왜 저런 가사가 나오는 거야.”
“몰라. 언론에 정신분석학 교수들도 위드님 노래는 파악 불가능하다고 했었잖아.”
바드들의 음성 증폭 스킬들이 마구 활용되면서, 위드의 목소리가 가르나프 평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 저 멀리 신호를 위반하고 달려오는 오토바이.
여기요. 아저씨 여기요!
포장을 뜯어, 빨리 뜯어.
냠냠냠냠 먹어 치우네.
많이 먹으면 배가 나오지.
더 먹고 싶지만,
없어, 없어. 벌써 다 먹었어!
세상은 살아갈 만해.
한 걸음씩 걷고,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일을 하고,
소주 12병을 마신 취객보다도 더한 노래 실력!
1억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아르펜 왕국의 편에 선 유저들에 더해서, 헤르메스 길드와 하벤 제국군 병사들도 강제로 들어야 했다.
“이건 뭔가.”
“위드가 노래를 부르고 있답니다.”
“전투와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겠지만 이런 노래를 부르는 놈에게 말렸다니.”
과거 아르펜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북부 정벌군에 참여했던 유저들은 절망했다.
“이 노래를 또 들어야 하다니.”
“그때보다 더 못 부르는 거 같아. 가능한 일인가?”
“신기하게도 저 노래는 들으면 잊히질 않아. 밤에 잘 때마다 떠오르더라.”
“난 재수할 때 들었어. 위드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보면 묘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 입학했잖아.”
- 살다보면 기쁜 일, 슬픈 일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돈 들어가는 게 너무 많아.
많이 벌면 행복할까.
적게 벌면 불행할까.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지만
오늘도 밥 먹고
한 걸음씩 걸어가네.
위드의 노래가 드디어 끝났다.
“만세!”
“과연 위드님이다. 뭔가 엄청 못 부르지만 멋있어.”
“캬. 랩이 죽여준다.”
“무슨 소리야. 이거 오페라 아니었어?”
“고음이 없던데? 고함은 질렀지만.”
“위드님은 락커라고!”
음악관계자들은 유저들의 반응을 냉정하게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노래가 좋은 건 아닌데.’
‘청중이 호응하는 걸 보면 나쁜 곡이라고 할 수도 없어. 게다가 이상하게 여러 번 듣다보면 좋게 들리기도 해.’
‘하. 30년 음악 인생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묘하게 철학적이기까지 한 가사에 유저들은 더욱 열광했다.
세상 살기가 평범한 것 같지만, 누구라도 말하기 어려운 고민거리들을 몇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어렵고, 힘든 삶이라도 즐겁게 살자는 의미의 노래는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와 맞물려서 유저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우리가 무조건 이겨.’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후회하고, 두려워할 게 뭐냐. 도대체.’
유저들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졌다.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 전부 달리자! 좌표는 하벤 제국군이다.
“하벤 제국!”
“가자. 우린 달리자!”
북부 유저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일제히 하벤 제국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수천만 명의 유저들이 달려가는 그 광경은 소름끼치는 것 그 자체였다.
* * *
전방에 서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빠르게 대응했다.
“방패병 전면에!”
“적들의 접근부터 막아야....”
병력이 밀집하여 수비 진형을 갖추었다.
방패병이 선두에 서고, 중장갑보병과 검사, 창병들이 함께 뒤를 받쳤다.
그렇지만 북부 유저들은 성난 멧돼지 떼처럼 그대로 밀려왔다.
“돌겨어억!”
“무작정 밀어 버려요!”
“이대로 뚫으면 되나요!”
하벤 제국군과 북부 유저들이 충돌했다.
창병과 방패병의 연합에 연약한 유저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연달아 도착했다.
“죄송하지만 좀 넘어가겠습니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세요!”
뒤이어 오는 사람들은 전투 중인 이들의 어깨와 머리를 타고 위로 넘어갔다.
홍수에 댐이 무너지듯이 제국 병사들을 수천여 명의 유저들이 뒤덮었다.
“으아아악!”
“죽어도 같이 죽자!”
“개판이다. 바로 이 맛이지!”
제국군은 방패병과 창병으로 형성한 진형이 유저들과 뒤엉키며 무너졌다.
하늘을 가득 메운 조인족들도 등에 유저들을 실컷 태우고 왔다. 그리고 유저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졌다.
“꺄악. 꺅!”
“우린 독버섯죽의 공수부대다! 착지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
“으하하핫. 간다. 난 레벨 2다. 어디 한 놈만 걸려라.”
제국 병사들의 머리 위로 비처럼 유저들이 쏟아져 내려서 부딪쳤다.
뒤쪽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의 군단장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수비 대형을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대형을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의미가...”
“사기가 문제입니다. 마법 병단에 연락해서 화끈한 맛을 보여주면 놈들도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동원할 마법사들이 부족합니다. 이미 너무 많이 죽었어요.”
“여기 있으면 우리도 다 죽습니다. 포위망을 뚫고 돌파합시다.”
군단장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중앙 대륙을 정복할 당시에도 공성전을 숱하게 치르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드라카는 슬래터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포위망을 뚫어요?”
“예.”
“어느 방향으로요? 얼마나 뚫으면 이 포위망이 걷어집니까?”
“...”
헤르메스 길드의 군단장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이 위드를 에워쌌던 상황과는 반전이 되었다. 자신들은 갇혀 있었으며 수천만 명의 유저들이 지금은 적이었다.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끝없이 싸우는 것만이 남았다.
* * *
위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잠시 후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알킨 병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마판의 보고 때문이었는데, 가르나프 평원의 유저들이 모일 때마다 알킨 병이 무섭게 확산되고 있었다.
“치사율은요?”
“레벨이나 저항력에 따라 버티는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거의 100%라고 보면 됩니다. 그나마 독버섯죽 부대의 도움으로 더 견디고 있습니다.”
알킨 병에 감염된 독버섯죽 부대원들.
그들은 죽는 것에 익숙했다.
“경험상 신경 독은 아닌 것 같아.”
“육체를 서서히 갉아먹네. 체력도 줄어들어. 감염성이 높은 걸 보면 광물 독 계열도 아니고.”
“저주 계열이 들어 있는 건 확실해. 신성력에 역으로 반응하는 걸 보면 흑마법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고.”
“여러 증상이 복합적이면 치료제를 찾아내도 조합하기 힘들겠다. 고칠 수 있는 재료가 부족하겠어.”
그럼에도 독버섯죽 부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부러 알킨 병에 감염된 이후에 온갖 것들을 먹어 보며 자신의 몸을 바탕으로 실험을 해봤다.
약초뿐만 아니라 독초들까지 먹으면서 알킨 병을 약화시키는 응급 처치법을 찾아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치료는 불가능했고, 감염된 모든 이들이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위드님? 이대로라면 하벤 제국군과 싸우다가 병이 퍼져서 우리가 먼저 전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성녀 레몬이나 풀죽신교의 고위직들이 찾아와서 대책을 물어왔다.
그들은 진지하게 알킨 병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위드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니...”
“네?”
“5분 내로 알킨 병을 없애겠습니다.”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
위드의 팬들이 모인 풀죽신교의 유저들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위드는 성녀 레몬의 초대를 받아서, 풀죽신교 유저들이 모여 있는 전체 채팅 채널에 들어왔다.
- 위드 : 알킨 병에 걸린 분들.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습니까.
“뭐야?”
“어? 위드님이잖아.”
하벤 제국군과 전투 중인 유저들조차도 위드의 메시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
- 위드 : 알킨 병은 현재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걸리면 모두 죽고 치료제 개발도 현재로서는 무리입니다.
알킨 병은 공포를 퍼뜨리며 북부 유저들 사이에 떠돌고 있었다.
위드는 그 사실을 모두에게 공개했지만, 당연히 해결책도 만들어 놓은 후였다.
- 위드 : 안타깝게도 현재 알킨 병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지금 알킨 병에 걸린 분들은 모두 스스로 죽어 주세요. 환자들이 싹 사라지면 더 이상 전염되지 않을 겁니다.
그 어떤 전염병이라도 단숨에 퇴치할 수 있는 방법!
- 위드 : 알킨 병에 걸려서 죽으신 분들께는 푸홀 워터파크 1년 자유이용권, 별장 분양시에 30%의 할인 혜택, 모라타와 대지의 궁전 입주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도 푸짐한 사은품들을 내놓았다.
일정 레벨과 상납금을 지불한다면 중앙 대륙을 정복했을 시에 영주로 임명해 주고, 항구 바르나의 해산물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권리도 준다.
- 위드 : 알킨 병에 걸린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복권도 만들어서 당첨된 총 10명을 아르펜 왕국의 영주로 임명해 드리겠습니다. 단, 이 모든 약속들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3분 내로 자살을 했을 경우입니다.
위드의 메시지가 퍼트린 여파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 즉시 알킨 병에 걸려서 비틀거리던 유저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우리 치료하지 마세요.”
“아싸! 그럼 당장 죽어야지.”
“어차피 버린 몸. 기왕 죽을 거면 혜택이나 받자.”
“와... 그래도 끝까지 챙겨주는 위드님한테 고맙네.”
“뭐라도 건져가는 우리가 승리자지. 암.”
알킨 병에 감염되었던 유저들이 고작 3분 만에 97% 가량이 사망했다.
5분 정도가 지났을 때는 더 이상 알킨 병에 감염된 유저들이 없었다.
불과 몇 마디의 말로 최악의 전염병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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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아아!”
“가자아아아!”
“개굴. 개굴.”
“츠차찹, 츠차찹! 으헤헤. 나는 벌레죽이다.”
“어서 달려라. 우리들 중에 벌레죽 부대가 있어.”
“꺄악! 벌레죽이야!”
알킨 병을 극복한 다음부터 벌어진 것은 유저들의 전력을 다한 질주였다.
하벤 제국군을 넘어서 밀려오고, 하늘에서도 비처럼 떨어진다.
- 화령 : 그러니까 항복하세요. 그리폰들의 새로운 서식지로 넓은 땅을 드릴게요. 장담하지만 와이번도 승차감이 훌륭해요.
2군단을 이끄는 뮬에게는 중앙 대륙의 파티에서 본 적이 있는 화령의 귓속말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는 헤르메스 길드 소속입니다.”
- 화령 :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요. 답답하게 살아 봐야 본인만 손해잖아요.
“그래도 배신자로 낙인찍힐 마음까진 없습니다.”
- 화령 : 아르펜 왕국으로 갈아타면 영웅 소리를 들을 텐데요.
뮬은 고민에 빠졌다.
가르나프 평원에서 유저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고 이번 전투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하벤 제국보다는 아르펜 왕국이 더 재밌고, 행복한 곳이지.’
위드에 대한 복수는 꼭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하벤 제국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헤르메스 길드에서 준비한 전술은 실패했어.’
이제는 완전히 흐름을 탄 아르펜 왕국이 승리한다.
- 화령 : 위드님의 제안을 전해 드릴게요.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꿀꺽.
뮬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 화령 : 지금 당장 아르펜 왕국의 편에 서서 싸우면 현재의 영토에서 영주직을 유지하거나, 아르펜 왕국의 땅을 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하벤 제국의 편으로 남고 싶다면 다신 하늘을 날지 못할 거래요.
“하늘을 날지 못한다고요?”
- 화령 : 빙룡이나 불사조를 비롯해서 바라그 같은 조각 생명체들이 나설 거예요. 그들은 뮬님의 부대를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공격하겠죠.
“...”
뮬의 그리폰 부대가 강력하다지만 바라그 같은 전투형 조각 생명체들과 싸운다면 결과를 장담하진 못한다.
다른 지상 세력들과의 전투에서는 그리폰 부대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치고 빠질 수 있었지만, 조각 생명체들을 상대로는 불가능하다.
- 화령 : 위드님은 그리폰 부대에 대한 척살령을 내릴 작정이에요. 대륙에 그리폰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했어요. 특히 사로잡힌 그리폰은 몽땅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요리해 버릴 거라네요.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런 식의 척살령은 유저들도 많이 비판했던 건데요.”
헤르메스 길드에서 공개적으로 척살령을 내릴 때마다 대중들은 맹비난을 했었다.
유저들이 헤르메스 길드에서 등을 돌리게 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척살령임이 분명했다.
- 화령 : 인생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래요.
“크흐흠.”
- 화령 : 복수는 철저하게 해야 한대요. 어설픈 타협이나 용서 같은 게 뒤통수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했어요.
뮬은 선택해야 할 시점임을 깨달았다.
위드는 착하거나 자비심이 넘치는 물렁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대로 하벤 제국의 편에 남아 있게 되면 의리를 인정받기보단 멍청이가 되고 말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르펜 왕국의 편에 서죠.”
- 화령 : 잘 생각하셨어요. 근데 전해 드릴 게 한 가지 더 있어요.
“뭡니까?”
- 화령 : 아르펜 왕국으로 넘어오려면 공짜로는 안 돼요. 상납금이 좀 필요한데요.
“조금 전까지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 않습니까?”
- 화령 : 위드님이 그러네요. 싫으면 말라고요.
* * *
막다른 길에 몰린 하벤 제국군은 유저들을 상대로 잘 싸웠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그냥 죽지는 않고 수십 명씩 데리고 갔다.
“버텨라! 우린 반드시 승리를...”
드라카 군단장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방송의 효과가 크다 보니 믿고 있던 알킨 병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우리의 운명은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는 것인가. 베르사 대륙을 통일할 줄 알았는데... 결말치고는 허무하군.’
드라카는 북부 유저들 너머에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게이하르 황제가 일으킨 초대형 조각 생명체 군단.
‘저것들은 또 무슨 괴물이냐.’
하늘에는 유저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2군단이 움직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은 하늘을 봤다.
태양이 떠오르고 환하게 밝아진 푸른 하늘에 그리폰들이 지상으로 가까이 내려오고 있었다.
“됐다. 이 정도라면 한숨을 돌릴 수가 있어.”
“그래도 너무 늦었잖아!”
2군단에 그동안 품었던 불만마저도 잠시 사그라지려고 할 때였다.
그리폰들은 하늘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조인족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하벤 제국군을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는 마법사나 정령사들을 집중 공격하는 것이었다.
“배신이다.”
“2군단이 배반했다!”
“...”
하벤 제국군의 중요한 한 기둥을 이루고 있던 뮬의 2군단의 배신.
드라카는 그동안 공들여 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됐다. 이렇게 된 이상 죽는 그 순간까지 멋지게 싸우자! 전부 돌격해!”
13군단은 모두 무기를 꺼내 들고, 북부 유저들에게 뛰어들었다.
그들은 강력한 전사들이었지만 수백 배나 많은 유저들에 의해 하나씩 죽어 갔다.
* * *
“정말 망했군.”
하일러는 짧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평가를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북부 유저들은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누군가가 그랬었지. 이기기만 하는 전쟁은 없다고. 언젠가는 패배를 겪게 된다고...’
그래도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로열 로드라는 세상에서 최고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강해졌으며 큰 병력도 거느렸다.
‘우린 약한 놈에게 지지 않았어. 위드. 전쟁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가진 녀석에게... 베르사 대륙의 정복을 눈앞에 두고 멈춰야 하니 너무나도 아쉽지만 받아들여야만 하겠지.’
옆에 있던 크레볼타는 욕설을 퍼부으며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남쪽이다! 남쪽의 포위망이 약해!”
마지막까지 병력을 수습하여 도망치려 했지만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북부 유저들.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뭉쳤다.
전쟁의 승기가 완전히 아르펜 왕국으로 넘어간 것을 보고 하벤 제국에 대한 두려움에 망설이던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검을 뽑아 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쌓인 것도 많았는데 싹 쓸어버려!”
“다 죽이자. 헤르메스 길드!”
레벨 200, 300대는 우습게 넘는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도처에서 공격해 온다.
아르펜 왕국의 전력이 순식간에 서너 배는 더 강해지는 효과가 나타났으며, 전황을 완전히 굳혀 버리는 것이었다.
“네가 대장인가?”
헤로이드의 앞에 검오치가 나타났다.
그는 도끼를 오른손과 왼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떡 벌어진 어깨와 길게 기른 수염이 압권이었다.
“나 검오치라고 한다. 한판 붙자.”
헤로이드는 평소라면 이런 도전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쪽도 꽤 유명인 아닌가? 위드의 측근이라고 방송에서 본 것 같은데.’
전쟁은 이미 진 것 같으니 방송이라도 나갈 욕심에 주변에서 나서려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막아섰다.
“좋아. 한판 붙자.”
“크크크. 그래. 사내답게 말이야.”
검오치는 손에서 도끼를 붕붕 돌리면서 뛰어들어 왔다.
헤로이드는 딱 그 순간부터 후회를 했는데, 고작해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무기를 막 휘두르면서 덤벼들어 어마어마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휭! 휭! 휭!
눈앞에서 도끼들이 맹렬하게 날아다닌다.
헤로이드의 공격은 막히거나 빗나가는 반면에, 검오치는 제대로 급소를 강타했다.
“다른 하나의 검!”
검술의 비기를 급하게 사용해 봤지만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는 격이 되었다.
검오치는 검이 날아다니는 것을 눈으로 보지도 않고 느낌만으로 피하며 공격을 이어나갔다.
“이게 무슨!”
헤로이드는 고함을 질렀다.
자신이 불러낸 검이 가까이 붙어 있는 검오치가 피하거나 쳐낼 때마다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스킬에만 의존하면 평생 강해지지 못한다. 남자는 돌진이야.”
검오치는 헤로이드의 단순한 공격 패턴을 읽고 압박을 가했다.
“호락호락하게 죽을 내가 아냐!”
헤로이드는 기본적인 무기술에서 큰 격차가 난다는 걸 깨닫고 스킬들을 무작정 사용했다.
서로 생명력을 깎아내는 싸움을 벌였지만 최종 승자는 검오치!
생명력이 밑바닥까지 떨어졌고, 검이 가슴에 꽂히기도 했지만 헤로이드가 먼저 목숨을 잃었다.
“으하하하. 이겼다!”
검오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도끼를 높이 들었다.
* * *
가르나프 평원에 조각되어 있던 대형 괴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위드는 넓고 탄탄한 머리에 반해서 의자를 놔두고 탑승했다.
“잘 싸우는군.”
- 꾸에에에엣.
“네 이름은 아직 안 정해졌지?”
- 그렇다. 주인.
게이하르 황제는 조각 생명체들의 주인을 위드로 지정했다.
마지막까지 그나마 믿을 놈은 위드뿐이었다.
“네 이름은 뽀로새로 하자.”
- 이상한 이름이다.
“넌 크지만 귀엽게 생겼잖아. 그래서 넌 전국의 인형 뽑기점에서 큰 인기를 끌 거야.”
- 꾸엣?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코 묻은 돈까지 바치게 만드는...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지상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습이 보였다.
북부 유저들의 막대한 인해전술과 초대형 조각 생명체 군단의 합류.
중앙 대륙의 유저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하벤 제국군이 무너지고 있었다.
위드는 그 모습을 보며 착잡한 마음까지 들었다.
“한때 베르사 대륙을 장악해 가던 세력이었는데. 이렇게 몰락하다니 씁쓸하군.”
처음 로열 로드를 시작할 때 헤르메스 길드의 위세는 대단했다.
어떤 방송을 틀어도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정복 전쟁을 펼치면서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제국이 무너지는 광경이 마치 스스로의 미래처럼 여겨졌다.
“진짜 독재를 잘 해야 돼. 헤르메스 길드 꼴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야.”
- 페일 : 외곽에 남은 하벤 제국의 잔당은 모두 소탕했습니다.
- 양념게장 : 방금 크레볼타를 없앴습니다. 전리품으로 별장갑을 얻었습니다. 후후후.
- 파이톤 : 3군단 창병 대형 파괴 완료.
- 고라골 :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북부 유저들이 대단합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꼭 이길 것입니다.
- 마판 : 임시로 좌판을 열었는데요. 돈이 막 쏟아지고 있어요.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장비가 전리품으로 풀리면서 고급 물품들의 가격 하락이 예상됩니다.
- 엘크군 : 말씀하신 대로 술을 잔뜩 빚어 놓고 있습니다. 안주 만들 준비도 하고 있고요. 근데 정말 평소 가격의 열 배를 받아도 될까요?
여러 유저들에 의해 귓속말들이 들어온다.
전황 보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잘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 검치 : 여기 재밌구나. 제자야.
위드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사막 전사들이 낙타를 타고 밀집한 하벤 제국군의 진형을 미친 듯이 돌파하고 있었다.
시미터, 칼, 도끼, 망치, 몽둥이.
어떤 무기라도 휘두르면서 적진을 꿰뚫어 버리는 그 쾌감!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이 앞장서고 중앙 대륙과 북부의 실력자들도 합류하면서 무리의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수십만이나 되었다.
말이나 황소를 탄 유저들이 합류하며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었다.
“흠. 수확의 시간이군. 우리도 저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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