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랙 드래곤
가르나프 평원에서 벌어진 아르펜 왕국과 하벤 제국의 전쟁!
불타는 유성 소환에 알킨 병, 언데드까지 출현한 전투의 막이 서서히 저물었다.
위드가 바드레이를 물리쳤지만,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은 블랙 드래곤이었다.
드워프의 왕국 토르를 서식지로 하던 악룡 케이베른이 등장한 것이다.
칠흑처럼 시커멓고 거대한 육체를 자랑하며 하늘을 날아와서 포효했다.
- 쿠오오오와아아아아!
악룡 케이베른이 뿜어낸 흑색의 브레스가 하벤 제국이나 검치와 사막 전사들, 중앙 대륙 유저들을 휩쓸었다.
- 아이고. 이게 무슨 난리냐.
위드는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에 의해 다시 태어난 본 드래곤!
과거에도 본 드래곤으로 살아난 적이 있었지만, 레벨이 낮아 비실대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한창 때의 청년처럼 날갯짓을 하며 신속하게 하늘로 떠올랐다.
쿠르르르르.
케이베른의 브레스에 대지가 거품을 내며 녹아들고 있었다.
강력한 독가스가 뿜어지면서 가르나프 평원에 협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깊고 두터운 고랑이 파였다.
“크억!”
“왁!”
“이, 이거 뭐야. 나 감염됐어.”
브레스의 반경 400미터에 있던 유저들이 일제히 땅에 쓰러지는 것도 장관이었다.
워낙 많은 유저들이 밀집되어 있었기에 중독된 숫자만 하더라도 10만은 족히 넘었다.
중앙 대륙 유저나 사막 전사들만이 아니라, 헤르메스 길드원들조차도 악룡 케이베른의 브레스에 휘말려서 무수히 목숨을 잃었다.
“완전 세네.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어.”
웬만한 지역에서는 절대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본 드래곤이지만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른 위드를 케이베른이 노려봤다.
- 크우오오와……!
약간의 거리는 있었지만 드래곤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안전하지 않았다.
도망을 칠 수 있겠지만 비행 속도에서 드래곤을 뿌리치기 어렵다.
‘나를 아주 싫어할 거야.’
자존심 강한 드래곤들은 타락하고 오염된 본 드래곤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하필이면…….’
왜 이 마당에 본 드래곤으로 되살아났단 말인가!
- 추잡스러운 녀석이 있군.
악룡 케이베른은 하늘을 날고 있는 위드를 보며 뜻밖에도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지상을 향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대략이나마 알 것 같았다.
‘케이베른의 분노가 인간을 향해 있다.’
드래곤의 알이 깨지면서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케이베른!
영상으로도 퀘스트의 발생이 나왔었지만, 도시를 파괴하고 인간들을 학살하려고 한다.
본 드래곤도 싫어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간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 것이다.
@
“이런……. 망할!”
아크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거대한 드래곤 케이베른의 모습에 절망에 빠졌다.
“하필이면 지금 이곳으로 오다니. 5분만. 아니, 3분만 시간이 더 있었더라도 무사히 빠져나갔을 텐데.”
수십만의 병력.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 유저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후방에는 그들을 지긋지긋하게 추적해 오는 중앙 대륙 유저들도 있지 않던가.
- 너희들을 징벌하리라!
악룡 케이베른의 비늘들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땅에 파묻힌 후에는 씨앗이 자라나듯이 성장하더니 금세 도마뱀의 얼굴을 한 용아병이 되었다.
용아병들이 쇠를 긁는 듯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한 드래곤 케이베른 님의 뜻에 따라 적들을 공격한다. 남김없이 말살하라.”
“옛!”
3,000마리의 용아병이 대지를 달리며 대대적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창이나 도끼, 대검, 망치 등의 대형 무기들을 든 용아병들의 부대였다.
“어쩔 수 없다. 공격해!”
“적을 막아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다가오는 용아병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했다.
악룡 케이베른이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곤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당해 줄 수는 없었다.
“큭!”
“제법 센데 ”
용아병들의 육체는 드래곤의 뼈나 이빨의 일부로 만들어져서 단단했다.
원래 높은 맷집과 힘을 가진 종족이었으며, 레벨도 500에서 600대에 달했다.
“그래도 상대할 만하다!”
“여럿이서 한 마리씩 차례대로 처리하자. 평소 던전 사냥을 하는 방식대로!”
경험 많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용아병의 상대법에 맞춰서 금세 대응했다.
북부 유저들의 인해전술에 대응할 때와는 달리 그들에게 익숙한 강한 몬스터에 맞춘 전투 패턴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효율적으로 용아병들을 막아 내고, 일부는 파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 절대 보호
케이베른의 마법이 발동되자 용아병들은 투명한 막에 휩싸였다.
물리, 마법의 피해를 대부분 소멸시켜 버리는 궁극의 방어막의 보호를 받는 용아병들이 대형 무기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날뛰었다.
“말도 안 돼. 사기야.”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데!”
헤르메스 길드는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무효화 마법을 쓰거나, 특수한 장비들이 있어야 용아병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케이베른의 반대쪽 하늘도 가리켰다.
“위드도 되살아났습니다.”
“위드가 ”
새하얀 뼈들이 골격을 이룬 멋진 본 드래곤!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에 뼈로 된 날개를 펄럭이고 있기에 그 존재감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블랙 드래곤이 나타나면서 시선이 가지 않았다.
아크힘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위드를 잡을 여유 따윈 없다.”
“아쉽지 않습니까 ”
“웬만해선 놈이 당해 주지 않을 거야. 하물며 지금은 하늘까지 날아다니는 본 드래곤이 아닌가. 당장 우린 드래곤부터 물리쳐야 하는 곤란한 상태에 빠져 있다.”
아크힘은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다.
드래곤의 공격에, 사방에서 모여드는 중앙 대륙 유저들, 조인족 부대들까지.
전투의 주도권은 넘어간 지 오래였고, 어느 쪽 하나 쉬운 게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북부 유저들과 싸웠더라면 이기진 못하더라도 헤르메스 길드의 마지막 한 명까지 전설로 남을 만한 전투를 치렀을 것이다.
여러 전술들이 다 실패하고, 도망치다가 드래곤까지 마주친 최악의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드래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이건 너무 무모한……. 그렇다고 도망만 치자면 드래곤에 쫓기고, 아르펜 왕국 유저들에게 추적당할 것이다.’
아직 강대한 하벤 제국군의 전력이 야금야금 끊어져서 남아 있는 게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아크힘이 이를 악물었다.
선택은 두 가지!
싸우느냐, 도망치느냐.
어느 한쪽도 쉬운 선택이 아니지만, 결국 적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니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아크힘은 결심을 굳히고 고함을 질렀다.
“드래곤이든 뭐든 전부 쓸어버려라!”
@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메뚜기 떼처럼 일제히 하늘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드래곤과 전투를 하기야……. 이렇게 된 이상 안 싸울 수도 없겠지만.”
로열 로드에서 압도적인 최강의 단일 세력.
여러 번의 패배를 거듭하긴 했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력은 경쟁 세력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헤르메스 길드와 드래곤. 어느 쪽이 강한지를 볼 수 있겠군.”
위드는 배낭에서 튀긴 감자라도 꺼내서 먹으며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언데드 상태였다.
언데드는 배고픔이나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했기에 느긋하게 구경하기로 했다.
“눈요기는 확실히 되겠어.”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비행 도구나 마법을 써서 케이베른에게 날아갔다.
전사나 기사들이 과감하게 다가가고, 사제나 마법사들은 하늘에서 주문을 외우며 지원에 나섰다.
위드의 눈이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훑었다.
‘상대해 보며 느낀 것이지만 전체적인 수준들은 훌륭해. 레벨 500대가 주축이 되고, 600에 도달하는 유저들까지 있다니…….’
상위 랭커나 유명한 유저들 대부분이 헤르메스 길드라고 봐도 되었다.
- 처형의 단두대, 소리 없는 죽음, 사슬 벼락!
악룡 케이베른의 마법이 비처럼 쏟아지면서 공중에서 작렬하는 마법들!
많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피해를 입으며 추락했지만, 그 사이를 뚫고 계속 전진했다.
“죽어라. 드래곤!”
“우리를 막는 놈은 죽음뿐이다.”
“어딜 감히 도마뱀 주제에!”
동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날아오른 전사들이 드래곤의 몸에 올라타서 무기를 찌르고, 휘둘렀다.
수많은 스킬들이 작렬하고, 마법들이 폭발!
드래곤도 그에 대응하듯이 대규모 마법들을 터트렸지만,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그 파괴력에 휩쓸리면서도 공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정확히 맞지만 않으면 어중간한 마법 한두 개는 버티는 헤르메스 길드의 전사들이었다.
@
“끄으응.”
“살아 계십니까 형님들!”
“여기다. 이쪽이다!”
하벤 제국군을 쫓아왔던 검치와 수련생들,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드래곤의 브레스에 휘말렸다.
수만 명의 유저들이 사망했으며, 강력한 감염이 진영을 휩쓸었다.
“사제 분들은 신성 마법을!”
“생명이 위험한 이들부터 치료를 받으세요.”
그들은 헤르메스 길드와 드래곤이 싸우는 사이에 숨 돌릴 여유를 얻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투지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건방지게 선빵을 날렸는데 참을 것이냐.”
“아닙니다. 스승님. 침을 뱉었으니 패 줘야 합니다.”
“나쁜 드래곤입니다. 때려 줘야 합니다.”
검치와 수련생들도 로열 로드에 대해서 경험을 많이 쌓았다.
지금 상태에서 드래곤에게 덤빈다는 게 무모하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막내를 위해서라도 죽는 순간까지 헬멧 길드놈들을 한 놈이라도 더 없애려고 했는데…….’
‘하벤 제국 아르펜 왕국 그게 뭐가 중요하지 드래곤이다. 드래곤…….’
‘크으. 저걸 베는 맛은 그냥 죽여주겠구나!’
‘죽을 때 죽더라도 화끈하게 죽어야 여한이 없지.’
검치와 수련생들은 손이 근질근질했다.
절반 넘게 감소한 생명력이나 체력, 드래곤 피어로 인한 약화 현상은 문제도 아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드래곤이 문제이긴 했는데,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뛰어오르거나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는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했다.
“우리도 가서 싸워야겠다.”
“물론입니다. 스승님!”
“가지요!”
검치와 검둘치가 쌍봉낙타에 올라타자, 수련생들이 서둘러 낙타에 탄 채로 모여들었다.
어떤 수련생들은 운이 좋게 덜 다치긴 했지만, 가르나프 평원에서부터 전투를 쭉 이어 나온 이들이라 대부분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달리자. 달려!”
시미터를 휘두르면서 돌진하는 검치와 수련생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하벤 제국 진영에서는 화살들을 쏘기 시작했다.
“하필 드래곤을 상대해야 하는 때에 습격이라니!”
“저 지긋지긋한 놈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드래곤을 상대하는 데 전력이 분산되길 원치 않았다.
검치나 수련생, 그리고 1만에 달하는 사막 전사들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을 때였다.
- 길을 열어라!
검치가 시미터를 휘둘러서 화살을 쳐 내며 고함을 질렀다.
‘무슨 헛소리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그렇게 바라볼 때였다.
검둘치가 스승의 의견을 이해하고는 함성을 내질렀다.
- 우리도 드래곤과 싸울 거다.
검삼치도 따라서 소리쳤다.
- 너희들을 도와주겠다. 우리 몸에 비행 마법이나 걸어!
“…… ”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무슨 헛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방금 전까지 악착같이 쫓아오며 시미터를 휘두르던 이들이 같이 동료가 되겠다니!
“우리에게 비행 마법을 써 줘!”
“스승님의 말씀대로 해라. 안 그러면 너희들부터 쓸어버릴 거다!”
“우리도 드래곤을 공격할 거라고! 어서 우릴 저 전투 지역으로 날려 줘!”
수련생들이 따라서 외치는 말에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미친 것들 아니야 ’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여전히 헛소리로 여기기는 했지만 마법사 유저 곤돌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헤르메스 길드 소속이면서도 방송에서 검치와 수련생들을 보고 따로 영상들을 찾아볼 정도로 푹 빠진 상태였다.
사내답게 싸울 줄 아는 그들!
“날아올라라. 집단 비행!”
곤돌은 마법 주문을 외워서 검치와 그 부근의 수련생들에게 걸어 주었다.
“왜 그런 짓을…….”
적을 도와주었다는 생각에 옆에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이 질책을 하려고 할 때였다.
- 으하하하. 고맙다!
검치가 큰 소리로 외치더니 그대로 낙타를 타고 하늘에 있는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비행 마법에 걸린 이들은 전부 드래곤을 향해 날아가고, 나머지 수련생들만 하벤 제국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수련생들이 낙타에 탄 채로 두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하늘로 띄워 줘!”
“어서 마법을 걸어 달라고!”
“빨리 해 줘. 나도 드래곤과 싸우고 싶어 미치겠다고!”
마법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경우야.”
“저것들은 왜 우리랑 같이 싸우려는 거지 ”
헤르메스 길드 소속으로 별 전투를 다 치러 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