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3권 : 4화 (358/520)

1304화(53권-4화) 

2. 드래곤 사냥

‘기가 막히네.’

멀리서 구경을 하던 위드도 어이가 없었는데, 정작 상대하던 헤르메스 길드의 입장은 어땠겠는가.

“하, 함정이었어.”

“망했다. 이러면 도대체 어떻게 드래곤을 죽이라는 거야.”

헤르메스 길드마저도 절망에 빠뜨리는 블랙 드래곤.

하늘에서 날갯짓을 하며 지상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희생자의 생명 흡수 마법은 최상급의 흑마법이기는 하지만, 바르칸이 언데드를 통해 꾸준히 얻는 생명 흡수와는 다르다.

짧은 시간 안에 직접 죽인 적들을 상대로만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드래곤의 공격력을 감안하면 생명력을 최대로 채우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미치겠군.”

공간이동 팔찌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은 아크힘의 입에서도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벼랑 끝에 몰린 헤르메스 길드가 힘을 쥐어짜 낸 것인데, 그것이 드래곤의 수작에 불과하였다니.

“저 드래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아크힘은 대적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상으로 내려오는 블랙 드래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조금 전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로 물러나기 바빴다.

- 크오워어어어어!

드래곤 피어가 발동되었다.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전장을 휩쓸며 가까이 있던 유저들이 기절이나 마비 증상에 휘말리고, 말과 마수들이 일제히 발버둥을 쳤다.

- 어디 다시 덤벼서 나를 즐겁게 해 봐라!

케이베른이 지상을 걸어 다니며 유저들을 걷어차고, 땅을 꼬리로 휩쓸었다.

안하무인의 악룡.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이런 굴욕을 당하는 건 처음이었다. 

지상에는 3,000의 용아병들도 활약을 하고 있었기에 온전히 모든 전력을 드래곤에 초점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 

둥! 둥! 둥!

그리고 하벤 제국군의 진영에서 누군가가 북을 두드렸다.

드래곤의 압박에 화가 난 유저가 진군의 북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뿌우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까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기사단이 움직였다. 

목표는 땅에 내려앉은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었다.

@

하벤 제국군을 추적해 온 무리 중에는 로암, 칼리스, 샤우드, 군트, 미헬이 있었다.

그들은 검치를 시작으로 수련생들과 중앙 대륙 유저들이 블랙 드래곤과 싸우기 위해 뛰어들 때도 구경만 하고 있었다.

“크하. 대단하다.”

“드래곤과 헤르메스 길드라니…….”

“헤르메스 길드가 저렇게까지 강했나 ”

그들은 헤르메스 길드를 쫓으며 그동안 당한 보복을 갚아 주었다.

드래곤이 출현하면서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작 헤르메스 길드가 싸우는 것을 보니 압도당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검치나 수련생들, 중앙 대륙 유저들도 잘 싸웠다. 

로암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헤르메스 길드가 중앙 대륙 통일을 할 때의 전투가 떠오르는군. 정말 아무것도 손을 써 보지 못하고 당했었지.”

칼리스도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진면목. 저걸 보고 있으면 이번에 우리가 이긴 것이 기가 막힐 정도야.”

미헬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르펜 왕국의 강함은 인해전술만이 아니야. 이기려는 의지가 확실하다는 점이지. 아르펜 왕국이 있어야만 로열 로드가 더 즐겁다는 그 확신 때문에 싸우는 데 망설임이 없어.”

과거에는 전술로도, 전투력으로도 모두 헤르메스 길드에 패배했다. 

툴렌 지역을 통합한 흑사자 길드는 다른 길드들과 함께 무참하게 꺾여 나갔으며 그 이후로는 다시 정면에서 덤벼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샤우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 장면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클라우드 길드와의 역량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힘은 3개월, 6개월 정도 열심히 사냥을 하더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격차가 커졌다.

‘다시 우리가 꿈을 꿀 수 있을까 ’

명문 길드의 수장들은 조금씩은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꺾이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판단했다.

당분간은 위드의 눈치를 보며 생존해야 될 테지만 그래도 훨씬 편하게 세력 확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켜 보면 저런 강대한 헤르메스 길드마저도 위드와 아르펜 왕국에 패배하고 말았다.

산 너머 산이라는 말처럼 왠지 앞으로도 자신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대륙을 지배하는 일은 앞으로도 쭉 없을 것만 같았다.

@

바드레이는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채, 다가오는 위드의 검을 보며 눈을 감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승리를 확신하며 악마의 참혹 난무라는 스킬을 쓴 직후에 상황이 바뀌었다.

차원문의 장갑과 시간을 멈추게 하는 찰나의 조각술의 연계는 놀랍도록 빠르고, 정교한 연속 공격들로 이어졌다. 

숨을 천천히 두세 번 들이마시는 동안 이어지는 현란한 공격들. 처음 당해 보는 이에게는 사실상 대처하기 힘든 연계 기술이었다.

‘기본적인 실력은 내가 더 강한데…….’

바드레이는 로열 로드를 시작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완벽한 가상현실이라는 명성 아래에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로열 로드에 빠져들었다.

그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한 경쟁, 언제나 바드레이에게는 무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레벨 100, 200.

베르사 대륙의 거친 몬스터들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레벨이었지만, 유저들 중에서는 한두 단계 이상의 빠른 성장. 그만큼 어깨에도 무거운 부담감을 짊어져야 했지만 자부심을 느꼈다.

‘설마 결투에서 질 줄은…….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바드레이가 목숨을 잃는 순간, 메시지 창이 떴다.

[영광과 좌절을 경험한 흑기사!]

한 자루의 검을 들고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당신은 위대한 흑기사였습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를 새로 썼으며, 다스리는 제국의 영토는 여러 왕국들을 합병하며 확대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걸어온 길에 영광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경계와, 집착, 시기, 의심.

충직한 부하들을 믿지 못하고, 그들을 은밀하게 처형한 일은 어두운 면으로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권력에는 찬란한 밝음이 있기에, 깊은 어둠도 존재합니다.

당신은 흑기사로서의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켰지만 결국에는 쓰디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세상은 새로운 승리자에 대해 떠들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서의 기록은 끝난 건 아닙니다.

흑기사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어쩌면……. 검으로 모든 것을 새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영광과 좌절의 커다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흑기사의 도전이 완료됐습니다.

업적에 의해 보상이 2배로 주어집니다.

< 흑기사의 직업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모든 전투 스킬의 효과가 16% 높아집니다.

모든 스탯이 88 증가합니다.

힘과 민첩이 추가로 60 상승합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32% 늘어나게 됩니다.

악명이 사라집니다.

불운이 일시적으로 제거되었습니다.]

직업 퀘스트의 완료!

위드는 우주 공간에 별을 조각하는 것으로 조각술의 마스터가 되었다.

바드레이는 중앙 대륙의 황제라는 대단한 지위에 오르고, 높은 명성을 가진 이에게 패배함으로써 직업 퀘스트에 성공했다.

[당신은 죽음으로서 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야망을 불태우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흑기사의 특성이 발동되었습니다. 

검술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정적들을 베고, 전투를 수행한 끝에 검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지고한 검의 끝에 도달하여 이제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검술의 기본 공격력이 500%로 강화됩니다.

검술 스킬을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으며, 마나도 회수됩니다.

공격 스킬의 범위가 확대됩니다.

공격 스킬을 쉽게 익힐 수 있고, 숙련도 역시 빨리 높아질 것입니다.

적의 공격을 검으로 막았을 때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적의 검술 스킬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스탯 40 증가.

전투 퀘스트를 제한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무기의 잠재적인 능력을 끌어내어 원래의 공격력을 2배로 늘립니다.

검의 내구도가 거의 하락하지 않으며, 부서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호칭 ‘검술의 마스터’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과 관계없이 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사들과 전사들이 도전해 오게 될 것입니다.

투지와 카리스마의 효과를 증가시키며, 적보다 낮더라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드레이는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웃을 수 있었다.

검술의 마스터!

황궁 기사단을 포함하여 수많은 부하들을 바치고, 경쟁자에게 패배하면서 얻은 소득이다.

흑기사란 직업은 결국 최고에 올라야 하고, 쓰디쓴 실패를 겪어야만 완성이 되는 직업.

직업 퀘스트의 중간에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평범한 기사나 전사가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흑기사의 업적은 얼마나 쌓느냐에 따라 마지막 보상이 달라졌다.

‘결국 끝까지 해냈다.’

그의 기반이 되는 하벤 제국은 패배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생겼다.

‘이번에는 패배했지만……. 나는 강해졌다. 멜버른 광산에서는 내가 이겼고, 이번에는 졌을 뿐. 아직 일대일이야.’

[-생명력의 저하로 사망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로그인이 불가능합니다. 죽음으로 인해 레벨과 스킬의 숙련도가 하락합니다.]

바드레이는 접속이 종료되기 직전 생각했다.

‘이대로 끝난 게 아냐. 승부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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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게장과 파이톤!

그들은 중앙 대륙 유저들, 사막 전사들과 뒤섞여 있었다. 하벤 제국군의 흩어진 부대를 격파하고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가 ”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르나프 평원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던 헤르메스 길드의 저력이 놀랍군요.”

둘은 헤르메스 길드가 드래곤과 싸우는 광경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운명의 거울에 크게 당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싸운 것도 어딘가. 

레벨 500대, 그것도 장비나 스킬이 잘 조율된 유저들이 헤르메스 길드에는 넘칠 정도로 많았다.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이 땅에 내려앉자,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미친 듯이 덤벼드는 것도 굉장했다. 

드래곤의 몸에서 터지는 섬광과 폭발, 마법 사이를 뚫고 전진하는 유저들!

“우와아……!”

“대박이다. 끝내주잖아.”

“이런 전투를 보고 싶었지. 헤르메스 길드가 진짜 강해.”

“우리가 저놈들을 이긴 게 믿어지지 않아.”

“우리가 힘으로 이긴 건가. 솔직히 인해전술로 밀어낸 거지. 위드 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들도 뭉치지 못했을 거야.”

헤르메스 길드를 쫓아왔던 중앙 대륙 유저들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 용아병, 헤르메스 길드가 함께 어우러져서 펼치는 대격전.

고레벨 유저들일수록 전투 장면에 시선을 사로잡히고, 자신들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헤르메스 길드가 비난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팬들도 많았다.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강하기에 존중받았다.

“이래서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까 ”

“몰라. 진짜 대단하긴 한데……. 아까 마법 한 방에 상황 역전되었잖아.”

“헤르메스 길드가 못 이기면 누가 이겨.”

“위드 님이 있잖아.”

“위드 님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렵지.”

중앙 대륙 유저들이 떠들던 이야기를 들은 양념게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헤르메스 길드가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까요 ”

“모르지. 하지만 전사로서의 경험을 미루어 보면 어려울 것 같아.”

“어째서요 ”

“경험 부족. 어떤 몬스터라도 한번 싸워 본 것과 처음은 차이가 큰 편이지. 제대로 준비를 했던 것도 아니고. 그리고 왠지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이 불나방처럼 보이는군.”

“검술의 비기나 방어력을 관통하는 스킬들을 쓰고 있지 않겠습니까  피해를 입히고 있을 텐데요.”

“드래곤에게서 넉넉한 여유가 느껴져. 아까 함정을 파 놓은 것에서도 보듯이 직접 싸우면서 인간들의 발버둥을 즐기는 것 같군.”

“악취미로군요.”

“괜히 악룡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 테지.”

유저들이 베르사 대륙을 지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정점에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몸에 다양한 스킬과 마법들이 작렬하는데도,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아군의 공격에 목숨까지 잃는 걸 감수하며 다가가서 싸우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드래곤은 끄떡도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아. 아쉽네. 이런 전투에서는 암살자로서 한계가 느껴지니.”

양념게장은 손에 쥔 단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인간형이 아닌 대형 몬스터, 그것도 생명력이 높은 유형에 암살자들은 취약했다.

“드래곤 사냥이라. 개인적으로는 나도 뛰어들고 싶군.”

파이톤도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적을 향해 덤벼드는 전사들의 심정을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케이베른이 날개와 꼬리를 거칠게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씩이 죽어 나갔다. 

- 대지 충격.

순식간에 완성된 강렬한 마법들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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