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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조각사 53권 : 5화 (359/520)

1305화(53권-5화) 

위드는 본 드래곤의 몸으로 전투를 구경하면서 혀를 찼다.

“역시 드래곤이 보통이 아니군. 헤르메스 길드에 희망이 잠깐 보이긴 했지만 무리였어.”

난이도 S급의 퀘스트가 두 개나 발생할 정도로 드래곤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나중에라도 드래곤 사냥에 나설 때를 대비해서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헤르메스 길드는 무력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케이베른이 운명의 거울을 쓴 이후로 과감하게 나서지 못하고, 기사단이 돌격하다가도 금세 뒤로 빠지고 만다.

이미 마음에서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용기가 사라질 정도의 압도적인 마법 공격력과 방어력이라는 건가. 이런 식이라면 드래곤이 마나를 회복할 때마다 마법 공격을 실컷 할 수 있겠군.”

위드는 만약 자신이 헤르메스 길드를 지휘한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봤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모든 길드원들이 그의 명령에 완전하게 복종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치고 빠져야 한다. 높은 공격력보다는 방어력을 관통하는 특성이 있는 무기들이 필요하고.”

마법사들보다는 전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리라. 생명력에 막대한 피해를 주어야만 드래곤을 궁지에 빠뜨릴 수 있다. 

“그 모든 준비들이 갖춰지더라도, 드래곤이 날개를 펼치고 멀리 도망치고 나면 헛수고가 되겠지. 어떻게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돼.”

위드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헤르메스 길드를 완벽히 지휘하더라도 승산이 희박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마판님. 동쪽에 나타난 레드 드래곤의 상황은 어떻죠 ”

- 마판 : 오크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낌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강함은요 ”

마판은 가르나프 평원에서 철수하며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상인인 그가 전투에 참여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 마판 : 잘 모르겠습니다. 그쪽 영상도 받아 보고 있긴 하지만 오크들은 아무래도 약해서요. 그냥 짓밟히고 있습니다.

오크!

물량 공세의 원천인 종족이지만 드래곤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적당히 강하다는 건 절대적인 드래곤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기본적으로 드래곤이니까 케이베른과 비슷하게 강하다고 봐도 되겠지. 사냥하기 까다로운 조건들은 전부 다 가지고 있는 셈이야.”

악룡 케이베른이 땅으로 내려오고 나서도 여유롭게 싸웠다.

중앙 대륙을 지배하던 헤르메스 길드지만 거듭된 패배로 서서히 싸울 의욕마저 잃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뿌우. 

뿌우우우!

“덤벼들어!”

“머리를 공략해. 드래곤도 약점은 머리야!”

“앞보다는 뒤로 돌아서…….”

기사들의 돌격도 드래곤의 앞발에 채이고, 땅이 갈라지며 막혔다.

마법의 표적이 되어 불살라지거나 녹아내리는 유저들.

“크으허억!”

용아병들이 집중 공격을 받아 몇 마리씩 파괴되고 있긴 했지만 전체 국면에 거의 지장을 주지 못했다. 

- 어둠의 해일.

다시 한 번, 케이베른을 중심으로 어둠이 물결치듯이 퍼져 나갔다.

드래곤이 사용하는 궁극의 흑마법!

그것은 헤르메스 길드원이나 하벤 제국의 기사들, 마수와 말을 말 그대로 삼켰다.

어둠에 잡아먹히면 모든 생명력과 마나를 빼앗기며 미이라처럼 바싹 메말라서 죽었다.

“으아아악!”

“피, 피햇!”

어둠의 해일이 큰 파도가 치듯이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유저들이나 기사들이나 반대쪽으로 도망을 가려다가 그대로 마법에 휩쓸렸다. 

위드가 그 광경을 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궁극의 광역 마법들은 드래곤이라도 연속으로 쓰진 못해.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적어도 5분에서 7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흑마법의 특성상 아마도 제물이 충분히 바쳐져야 한다. 특히 제물이 중요하겠지.’

위드는 케이베른의 전투 방식에 대해 알 것 같았다. 과격한 방식으로, 최고의 공격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어떤 흑마법들은 스스로 피해를 입는 것도 필요한데 일부러 근접전을 펼치는 것이다.

‘훌륭한 전투법이라고 하기는 무리지만…… 위협적이고 절망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군.’

실컷 싸우고 있는데 몇 분에 한 차례씩 대량 학살이 가능한 궁극의 흑마법을 발휘하는 존재.

이것만큼 상대하기 괴로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드래곤은 인간들을 얕보고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저돌적이고 오만해.’

@

하벤 제국군의 19군단장 다인.

아르펜 왕국에 합류한 그녀는 추격전에 나서기는 애매한 입장이라서 가르나프 평원에서 철수 작전을 맡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깨지기 직전의 장비를 고칠 수 있는 대장장이 분들은 지원을 해 주시면 나중에 사례를 하겠어요!”

전후의 수습을 전담하며, 말이나 소들을 포획해서 유저들을 마차에 태웠다.

“어서 가세요! 안전한 곳으로요!”

수십만 명의 유저들을 대피시키고, 부상자들을 돌봤다.

북부 유저들은 그 광경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역시 에바루크 성의 성주…… 북부 유저나 중앙 대륙 유저나 가리지 않고 구하고 있어. 평판이 좋은 이유가 보이네.”

“저 여자도 유명한 헤르메스 길드원 아냐 ”

“그래도 달라. 원래 위드 님의 동료였다는 소문도 있고.”

다인은 머리카락에 가르나프 평원에서 주운 풀을 꽂았다. 그것으로 북부 유저들과 함께임을 드러내었고, 19군단에 속한 유저들도 따라했다.

“뭐 객관적으로 헤르메스 길드가 나쁜 놈이긴 하지.”

“우린 헤르메스 길드 소속도 아니고, 그냥 에바루크 성의 유저야.”

“지금이라도 하벤 제국군을 추격해야 하는 거 아냐 ”

“우리 실력에 굳이…… 게다가 따라간 사람들이 이미 많아.”

유저들은 수정 구슬을 꺼내서 방송국에서 중계되는 영상들을 봤다.

헤르메스 길드와 블랙 드래곤의 전투, 놀랍고 화려한 장면들이 쉬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흩어지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드래곤이 오고 있어요. 모두 대피하세요!”

위험하다는 말을 들어도 가르나프 평원에 모인 유저들의 상당수가 남아 있었다.

“설마 드래곤이 여기까지 오겠어 ”

“그래. 어쩌면 헤르메스 길드에서 사냥에 성공할지도 모르고…….”

전투의 열기가 남아 있는 가르나프 평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용아병이다!”

“저쪽에 용아병들이……!”

누군가의 외침에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서쪽에서 용아병 600마리 정도가 하벤 제국군의 퇴각하는 일부 병력을 추적해 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용아병이 온다!”

그제야 위기를 실감한 유저들이 가르나프 평원을 뭉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인은 샤먼으로서 부상병들을 돌보다가 19군단에 소집 명령을 내렸다.

- 여러분! 에바루크 성의 유저 분들은 저와 함께 용아병들을 막아요.

그녀의 외침에 19군단이 호응하며 용아병들을 상대로 분전을 시작했다.

“용아병을 막아도 드래곤이 올 겁니다. 초보자분들은 어서 빠져나가세요!”

“모두 피하고 나면 19군단도 퇴각하겠습니다. 철수!”

가르나프 평원의 유저들이 다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

악룡 케이베른에 의해 하벤 제국군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가르나프 평원에서부터 이어진 그동안의 전투에 지친 것도 있지만,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주는 절망이 그들을 계속 짓눌렀다.

“드, 드래곤은 도저히 잡을 수 없어.”

“너무 강한 존재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블랙 드래곤을 보며 좌절이 섞인 음성을 토해 냈다.

야망만큼이나 포기도 빠른 전염성을 가지고 주위로 퍼졌다.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

“차라리 흩어져서 도주하면 살 확률이 높을 거야.”

단단한 결속을 자랑하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제멋대로 흩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위드와 아르펜 왕국에 의해 패배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적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는 드래곤과의 싸움에도 패배했다.

위드도 상황이 마무리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는 지역 채팅 채널을 사용했다.

- 위드 : 이젠 빠져나가세요. 조금 더 지나면 도망칠 기회가 없습니다.

하벤 제국군을 추적해 왔던 유저들은 위드의 말을 따라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블랙 드래곤의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상에서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하고 있던 악룡 케이베른이 유저들이 흩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 어떤 인간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어둠의 굴레!

흑마법의 발동.

한참 먼 곳에 있던 본 드래곤인 위드를 비롯하여 유저들의 발목에 검은색 사슬이 채워졌다.

어마어마한 면적의 광역 마법이었다. 

< 어둠의 굴레가 씌워졌습니다.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이 당신을 제물로 선언했습니다.

음습한 마나의 기운이 일어나서 움직임을 제약합니다. >

< 이동 속도가 27% 저하됩니다.

현재 위치에서 일정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

속박 마법!

“이거 신성 마법으로 벗어날 수 있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마나가 다 소모될 때까지 저주를 해제시켜 드릴게요.”

중앙 대륙의 유저들 사이에서 사제들이 신성 마법을 쓰며 활약을 했다. 

페일은 안타까운 눈으로 멀찌감치 떠 있는 본 드래곤을 보았다.

“위드님…….”

본 드래곤의 발목에도 단단한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위드가 조각 변신술을 쓴 것도 아니고, 언데드로 부활한 것이기 때문에 신성 마법은 먹혀들지 않는다.

위드는 흑마법에 걸리자마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다. 

- 위드 : 저는 내버려 두고 모두 가세요.

“네. 위드 님.”

“수고하세요.”

“잘 있게.”

“좋은 시간 되십쇼.”

- 위드 : …….

페일과 이리엔, 파이톤, 양념게장.

그리고 중앙 대륙의 유저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케이베른이 헤르메스 길드를 격파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라고는 얼마 없다는 걸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가란다고 진짜 잘 가는군.’

위드는 어둠의 굴레가 씐 본 드래곤의 몸으로 꿋꿋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슬슬 두 번째의 죽음을 준비해야 되겠군.’

고급 2레벨의 요리, 고급 3레벨의 대장장이, 중급 8레벨의 낚시, 중급 7레벨의 재봉, 중급 1레벨의 항해, 중급 3레벨의 채광, 중급에 막 오른 조선.

그 외에 전투 계열의 스킬들은 수없이 많다. 

마스터한 스킬들은 죽더라도 숙련도가 떨어지지 않지만, 수십 종의 스킬들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헤르메스 길드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군.’

위드는 하늘을 천천히 날아서 전투 지역으로 접근했다. 

지상에서 전투를 펼치고 있는 케이베른과 헤르메스 길드의 눈치를 보며, 600미터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자. 이쯤에서…….’

후우우웁!

위드가 숨을 실컷 들이마시자 몸 전체가 부풀어 오르면서 마나가 가득 모이고 있었다. 

그 정점에 도달한 순간.

- 옛다. 브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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