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화(53권-10화)
4. 대륙 장악
로열 로드를 서비스하는 유니콘사에서는 전략운영실을 바탕으로 비상이 걸려 있었다.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 여기에 레드 드래곤 랜도니까지 활동하다니……. 손 실장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
“미처 몰랐습니다. 짐작도 하지 못했던 사태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비밀로 감춰 둔 것인데 우리가 모든 유저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으니까요.”
전투가 불리해지자 헤르메스 길드에서 드래곤의 알을 깨뜨리며 베르사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헤르메스 길드에는 접촉이 되었습니까 ”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케이베른을 제어할 수단이 있을까요 ”
“퀘스트의 내용을 보면……. 그리고 앞으로는 망해 가는 처지라 대응할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
회의실 여기저기에서 한숨들이 나왔다.
로열 로드는 거대한 세상이었다.
베르사 대륙은 긴 역사와 복잡한 배경, 수많은 종족, 몬스터들이 있기에 앞으로의 상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손일강 실장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케이베른이 활동을 시작했으니……. 정말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그러자 홍보부 직원이 물었다.
“피해가 얼마나 발생할까요 ”
“지금으로서는 짐작도 안 됩니다. 솔직히 케이베른이 활동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드래곤의 알을 깨뜨리는 무모한 짓을 벌일 줄은…….”
“유저들의 무력으로 드래곤을 막을 수는 있을까요 ”
“글쎄요.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퀘스트들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걸 진행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손일강 실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언론에 보도 자료 뿌리세요. 오늘 이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요.”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쏟아질 텐데요.”
“로열 로드는 시작부터 유저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였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을 그저 지켜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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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C미디어, CTS미디어.
로열 로드를 대표하는 대형 방송국이나 중소 방송국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비상이 걸려 있었다.
“블랙 드래곤이 곧바로 아렌 성을 부숴 버릴 줄은……. 다음은 에바루크 성이라. 블록버스터급 방송 장면들이 즐비합니다.”
“중앙 대륙 유저들의 피해가 막대……. 이젠 아르펜 왕국의 입장에서도 치명적이네요. 헤르메스 길드가 정복하고 있던 대부분의 영토에서 철수할 수밖에는 없을 테니까요.”
“대륙이 초토화될 처지니 골치가 아프겠지.”
강 부장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PD를 비롯해서 직원들의 눈가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가르나프 평원 전투에서부터 쉴 수가 없었다.
드래곤에 의한 아렌 성의 파괴 장면은 불타는 유성이 떨어지던 순간과 위드와 바드레이가 대결하는 장면에 버금가는 시청률이 나왔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당장 기쁘기는 하지만, 베르사 대륙의 도시들이 파괴되는 건 좋지 않은 진행이었다.
퀘스트의 내용으로 봤을 때는 몬스터의 대대적인 침략까지 예고되어 있다.
세상의 종말.
인터넷에는 그동안 즐겁고 행복했던 베르사 대륙이 처참히 멸망할 거라는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었다.
“위드, 아르펜 왕국의 대응은 어떨까 ”
“대책이랄 게 있을까요. 그들도 드래곤을 막기는 무리일 텐데.”
“헤르메스 길드도 못 해낼 일이고.”
“어떤 모험이라도 성공시킨 위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에바루크 성을 지키기란 아무리 봐도 무리겠죠.”
“맞아요. 전력상으로도 역부족이에요. 모든 유저들이 함께 싸워 주더라도 드래곤이라니 대상이 다르지 않습니까. 하늘로 인해전술을 펼치지도 못할 거고요.”
강 부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지금 시점에 드래곤의 활동이라니 막막해도 너무 막막하군. 방송의 방향을 어떤 식으로 잡아야 할까.”
“북부 유저들은 드래곤을 상대로 전투력이 없다고 봐도 돼요. 드래곤을 사냥할 수 있는 건 헤르메스 길드 쪽이 가능성이 높죠.”
“이번에 당한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설혹 헤르메스 길드가 칼을 뽑는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근데 그들은 아르펜 왕국이 당하는 걸 웃으며 지켜보겠죠.”
“크흐흠. 상당히 곤란하군.”
회의실에서는 긴 침묵이 흘렀다.
말끔한 결론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고,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상황 변화에 맞춰 방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
강 부장이나 PD들도 로열 로드를 즐기는 유저들이었다.
방송국 직원으로서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베르사 대륙에 영원한 평화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르펜 왕국이 대륙을 완전히 통일한다고 해도 위험 요소가 제거된 건 아닐 테니까.
위드의 인기가 조금이라도 하락한다면, 헤르메스 길드의 경우처럼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난세가 벌어지고 말리라.
어쩌면 드래곤처럼 악마나, 마족, 대마녀, 정령왕 같은 존재들이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다.
강 부장은 불현듯 이 꿈의 대륙은 지극히 위험하고 위태로운 게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를 내보내자.”
“예 ”
“드래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는 대륙의 모습을 다른 방송국들은 중점적으로 편성하게 될 거야. 특히 CTS미디어. 그쪽의 스타일은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해서 영상과 음향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킬 게 뻔해.”
“물량 공세를 퍼부을 만하죠. 확실히 영상 자체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충격적일 테니 말이죠.”
“재난 영화 몇 편 찍는 정도는 일도 아닐 겁니다. 아렌 성만 해도 영화를 보는 것 같았죠. 드래곤이 파괴하는 모습들이요.”
“그런데 난 그런 방송은 아닌 것 같아. 드래곤이 돌아다닌다고 하던 일을 멈추고 걱정을 해야 하나 우려, 혼란, 안타까움. 엠비뉴 교단에 의해 평화가 위협을 받더라도 베르사 대륙은 항상 즐거웠어.”
“으음. 하기야……. 예전에는 매일 전쟁이 벌어졌어요.”
로열 로드의 초기부터 중앙 대륙은 각 세력들끼리 맞붙는 피의 전장이었다.
도시들이 파괴되는 것도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공성전으로 부서지거나, 패배한 길드가 앙심을 품고 다스리던 영토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맞아. 바로 그 말이야. 우습게 들리는 게 현실이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보면 돼. 드래곤이나 몬스터들이 돌아다닌다고 해도 옛 명문 길드들의 횡포와 파괴만큼은 아닐 거야.”
PD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베르사 대륙의 세력 구도는 중앙 대륙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파괴되고 부서진 게 아니었더라면 북부는 아무도 신경을 안 썼을 거예요.”
“모라타 시절만 해도 솔직히 경제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아예 안 되었잖아요.”
강 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KMC미디어의 연출자들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드래곤이 좀 일찍 나타나긴 했지만 당장 오늘내일 대륙이 멸망하는 건 아냐. 도시들이 파괴되고, 몬스터들이 많아지는 거지. 유저들도 꾸준히 성장을 했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즐거움을 누릴 테지.”
“예. 불안한 위협조차 로열 로드의 재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긴 하죠.”
“동감입니다. 케이베른이 파괴를 한다고 해서 유저들이 심하게 괴로워하거나, 로열 로드를 떠나는 일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낙원이죠. 많은 것들이 바뀔 수도 있긴 하지만 회사는 그만둬도 로열 로드는 그만두지 못한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인지도 없는 작은 채널이던 KMC미디어가 대형 방송국의 자리에 오른 건 전적으로 로열 로드의 매력 때문이었다.
가상 현실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유저들이 만들어 내는 즐거움은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유저들이 드래곤의 등장을 극복하지 못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강 부장은 결정했다.
“이미지 광고에 케이베른을 내도록 하지. 그리고 멋진 베르사 대륙의 모습과 영웅들도.”
KMC미디어에서는 드래곤의 위협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광고를 찍기로 했는데, 이번에 촬영한 케이베른의 영상을 활용하기로 했다.
블랙 드래곤이 하늘을 날아가는데, 베르사 대륙의 멋진 경치들이 지상에서 스쳐 지나간다.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이 넘치는 장면들.
CG를 엮어서 지나간 풍경들은 드래곤에 의해 불타고, 부서지는 장면들을 만들어 낼 테지만 그건 끝이 아니었다.
베르사 대륙의 도시나 마을마다 활동하는 유명한 유저들, 영웅들의 모습들도 함께 내보내기로 했다.
“로열 로드는 꿈을 만들어 가는 곳이야. 그러니 우리는 비참한 모습들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하자고. 정규 방송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주요 사건이 벌어지면 신속하게 보도합시다. 그리고 우리들부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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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다시 로열 로드에 접속했을 때는 황폐화된 가르나프 평원이었다.
검게 그을린 대지는 갈라지고 패여 있었으며, 드래곤의 브레스에 의해 녹아 작은 협곡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언데드 소환의 흔적으로 뼈다귀들이 여기저기 늘어진 모습들도 보였다.
< 저주받은 평원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행운이 50% 감소합니다.
밤에는 유령과 해골 기사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수한 저주 식물들이 자라납니다.
아주 희귀한 보물이 묻어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도무지 믿을 수는 없지만……. >
“큼. 우선 잃어버린 장비들은…….”
위드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이템 확인에 나섰다. 꿈에서도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쫓아오며 값비싼 물품들을 잔뜩 얻었기에 그만큼 걱정이 앞섰다.
하늘 지배자의 갑옷을 비롯해 바드레이의 전리품 등은 유린을 통해 미리 빼돌려 놓은 것이 천만다행.
“일단 죽으면서 잃어버린 건 장검 하나와 방패, 그리고 부츠인가.”
세 개나 사라지긴 했다.
위드가 잠시 묵념을 올리며 장비들을 추모하고 있을 때였다.
“우왓. 기사 갑옷 파편이다.”
“여긴 검 조각도 있어.”
“강화된 거야 ”
“어. 날카로움 마법까지 붙어 있는데. 이거 대장장이들한테 팔면 쏠쏠하겠다.”
일찌감치 접속해서 전투 흔적을 수색하고 있는 유저들.
드래곤에 의해 가르나프 평원의 유저들이 거의 대부분 죽었지만, 일부는 운 좋게 살아남아서 산더미 같은 잡템을 주웠다고 한다.
‘어딜 가나 행운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지. 난 재수가 없는 편이지만 말이야.’
위드는 그들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원래 제국 기사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고, 지금은 간단한 여행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잡템을 놔두고 돌아서는 안타까움!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마판님.”
- 마판 : 옛. 위드 님.
“장사는요 ”
- 마판 : 쏠쏠합니다. 기대 수익의 400%를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드래곤의 덕분이긴 하지만요.
“그렇군요. 그 정도라면 전쟁 비용은 건지겠습니다.”
- 마판 : 그럼요. 완전 대박입니다.
악룡 케이베른에 의해 하벤 제국군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몰살을 당한 만큼 막대한 전리품들이 가르나프 평원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물품들은 마판 상단을 비롯한 북부의 상단들이 거래를 하면서 상당한 금액을 세금으로 바치게 되어 있었다.
‘세금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지.’
위드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뿐!
두 번의 죽음으로 3개의 레벨이 하락했으며, 다양한 스킬 숙련도들이 1단계씩 떨어지게 되었다.
고급 8레벨의 검술이, 7레벨로 바뀐 것을 비롯해서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찰나의 에너지는 4만 정도가 남았고…….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를 이기긴 했지만 타격이 너무 컸어.’
위드가 손해가 크다 한다면, 헤르메스 길드는 거의 모든 걸 잃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전쟁을 거듭하며 정예가 되었던 제국 군대는 남김없이 몰살을 당해서 복구가 불가능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만이 되살아나서 하벤 지역으로 신속하게 철수하고 있다는데 추적하기가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당장 레벨도 올려야 하고, 스킬도 복구해야 되지만……. 어쨌든 급한 건 중앙 대륙을 먹어 치워야 되겠군.’
아르펜 왕국의 군대를 병사 몇 명씩이라도 나눠서 각 지역의 도시와 요새에 보내 접수해야 한다.
하벤 제국이 몰락한 이상 내버려 두면 빈 땅으로 남을 테고, 다른 유저들이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