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화(53권-12화)
“일해라.”
“알겠다. 주인!”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을 나눠서 주요 지역에 배치했다.
몬스터들이 이동하는 길목들마다 배치된 조각 생명체들은 한 지역의 패자로서 치안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리라.
“너희들이 가장 중요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몬스터들이 보이면 싹 정리해 줘.”
- 그렇게 하겠다.
-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흉포한 바라그들이지만 말을 잘 들었다.
게이하르 황제가 남겨 놓은 그들은 전투 측면에서는 믿을 만했고, 절벽과 숲의 둥지에 알도 몇 개씩 낳았다.
‘바라그들만 잘 키워도…… 굉장한 전력이 되겠군.’
비행이 가능하고, 화염도 토해 내는 거대 생명체!
‘천 마리 정도만 되면 믿음직스럽겠어. 주요 전투마다 잘 써먹을 텐데. 번식을 잘하도록 닭장이라도 지어야 될까 ’
필요하다면 바라그 양계장이라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할 판이었다.
위드는 자신을 꼭 닮은 분신들에게 말했다.
“아르펜 제국. 으하핫. 제국이라니 좋군. 아무튼 북부 대륙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들을 제거해야겠다.”
그러자 위드일이 짝다리를 짚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21도 각도로 치켜들었다. 입꼬리를 올리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표정은 덤이었다.
“그래서 내가 얻는 건 ”
“으음.”
위드는 처음부터 명령이 순조롭지 않을 거라는 점은 직감하고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닮은 존재들이라니!
‘급해서 만들긴 했지만 이보다 더 끔찍할 수가 없어.’
위드에게는 어디에나 내세울 만한 떳떳한 대의명분이 있었다.
“베르사 대륙을 위해서다. 너희들이 강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몬스터들을 퇴치해서 약한 사람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이건 내가 너희들에게 생명을 부여한 부모로서 부탁하는 거야.”
평화와, 부모라는 존재. 마음 약한 이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위드이가 기지개를 켜며 시원하게 하품을 했다.
“너무 식상한 거짓말이야. 솔직히 태어나자마자 우린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셈 아니었나 살기 위해서 도망쳤고, 좀 제대로 살아 보려고 하는데 위험한 임무를 줘 어느 부모가 이래 ”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반박!
위드가 서둘러서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위드칠이 먼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납치범도 양심이 있다면 자기가 착하다고는 말을 못하지. 애초에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어.”
위드십이 손가락으로 위드의 입을 가리켰다.
“난 입술에 침을 바르는 걸 봤어! 저건 숙련된 거짓말쟁이들의 상징이고 직업병이야!”
“…….”
위드는 이번 부하들만큼은 말로 설득이 되지 않음을 직감했다.
‘확실히 잘 만들었어. 저건 거의 나와 마찬가지야.’
지능과 행동 패턴까지도 어느 정도 닮았다.
어느 경우에도 스스로 손해는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방식이 통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드냐. 너희들의 레벨에 맞는 장비를 제공하지.”
헤르메스 길드로부터 얻어 낸 고급 장비들이 꽤 많은 상태.
기본적인 장비 정도는 제공해야 사냥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으음. 좋은 장비는 가격이 비쌀 텐데.”
“맨몸으로 고생하기보다는 도구가 있는 편이 낫지.”
“이러면 일단 조건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위드는 갈등하는 부하들을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몬스터 한 마리에 1골드.”
“헛.”
“허억!”
결국 돈!
부하들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
“좋은 조건의 거래입니다. 저희들을 아껴 주시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대륙의 평화를 지키겠습니다!”
금방 태도를 바꿔서 진심인지 가식인지 모르는 말들을 하고 있는 부하들이었다.
위드는 1골드씩 나간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결국에는 최종 승자였다.
‘저 녀석들이 날 닮았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 죽어라 사냥을 하겠지. 억지로 시키는 것에 비해서 열 배는 효율이 높을 거야.’
몬스터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냥을 하면서 얻은 전리품들은 거래가 되어 아르펜 제국의 세금 수입을 늘릴 것이다.
가죽, 광물 등의 획득을 늘려서 생산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여러 부가가치들을 고려한다면 1골드는 위드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결국 부하들이 스스로 벌어들이는 돈.
아무리 욕심 많고 영악하더라도 결국에는 아직 어린 애들이었다.
“의외로 좋은 주인이다.”
“황제 폐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위드는 부하들이 아부하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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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인 요새.
과거에는 브리튼 연합과 아이데른 왕국의 접경에 위치하며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이 드높았다.
“으와…… 여긴 다 무너졌네.”
“어. 방송으로 보면서 성벽이 높고 두껍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았어.”
북부의 상인 콘소메는 친한 유저들과 함께 중앙 대륙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로열 로드를 북부에서 시작하고, 방송으로만 봤던 여러 지역들을 장사를 위해 돌아다녔다.
“오데인 요새의 기념품 팝니다! 나무 골렘 인형을 사 가세요!”
“든든한 요새의 돌 조각. 행운과 맷집의 옵션이 붙는 돌 조각이 단돈 98골드!”
“새로 나온 장검입니다. 아르펜 제국 표준형 장검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레벨 100, 150, 200에 맞춰진 것으로 마판 상단에서 수리를 보장합니다!”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가 끝나고 상인들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헤르메스 길드가 무너진 이상 상인들을 막을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맞춤형 상품 개발과 교역로 확보.
북부의 상인들이 마구 중앙 대륙으로 와서 물품들을 팔아 치웠다.
“아…… 부럽다.”
“젠장. 이젠 북부 유저들의 세상인가.”
중앙 대륙에서 시작한 상인들은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들은 일찍부터 명문 길드들의 텃세와 횡포에 시달렸다.
“아르펜 왕국이 이겼으니 이번에는 저들이 다 해 먹겠지.”
“봐. 벌써 해 먹으려고 내려온 것들을.”
상인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간단한 물품들이라도 열심히 거래하면서 회계와 교역품 거래, 운송 스킬들을 늘려 놓았다. 그렇지만 상인들만큼 힘이 없는 직업이 또 없었다.
전투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전사들로부터 무시받고, 때때로 유저들에 의해 약탈도 당한다.
“억울해서 원.”
“도시에서 사람들 상대하며 물건 파는 일이 재밌어서 한 건데 상인을 선택한 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은 몰랐어.”
중앙 대륙의 상인들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푸념을 하고 있었다.
“낑낑!”
그때 그들에게 마차에 산더미처럼 물건을 싣고 걸어오는 여성 유저가 보였다.
“아…… 저 사람. 방송에서 본 적이 있어.”
“맞네. 가몽 님이네.”
“어디든 가서 교역을 한다던 가몽 님이잖아.”
가몽!
북부에서는 마판과 함께 가장 유명한 상인 유저였다.
“가몽 님도 여기로 내려왔네.”
“중앙 대륙이 그만큼 인기가 있단 뜻이겠지.”
“다 해 먹어라. 다 해 먹어.”
중앙 대륙 상인들이 씁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가몽이 그늘 아래에 모여 있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러분들은 물건 안 파세요 벌써 다 파신 거예요 ”
“저희는 아르펜 왕국에…… 이젠 아르펜 제국이죠. 어쨌든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요.”
“등록이요 ”
“예. 상인이나 상단은 모두 등록을 하고 입회비를 납부해야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취급할 교역품들도 등록하고 허가를 받아야 되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
가몽이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중앙 대륙의 상인 유저들이 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같은 상인이면서도 등록 제도를 모르세요 ”
“모르는데요. 그런 게 있어요 ”
“도시에서 장사를 하고, 외부와의 교역도 하려면 당연히…… 잠깐만요. 아르펜 왕국, 제국. 어쨌든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르펜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요 ”
“네. 없는데요 저는 여러분들한테 처음 들어 봐요.”
중앙 대륙의 상인 유저들은 당황했다.
그들도 나름 정보통이 있긴 했지만, 사실 중앙 대륙에서만 쭉 지내다 보니 북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북부가 교역의 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갈 일이 없다 보니 절차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잠깐만…… 원래 이건 중앙 대륙을 지배하던 명문 길드들이 만들어 낸 거였잖아.”
“맞네. 그러네 ”
“원래 있던 제도가 아니야 ”
상인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확실한 것을 원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너무나도 많이 당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정말 저희가 교역품을 팔아도 되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네. 잠시만요. 위드 님한테 물어보구요.”
가몽은 직접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위드 님. 상인 등록제도 같은 게 있어요 미리 등록하지 않으면 물건 못 팔고 그러는 거예요 ”
그녀가 직접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내자, 중앙 대륙 상인들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가몽은 잠시 후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제도가 없대요.”
“없다고요 ”
“네. 아르펜 제국에서 상인의 활동은 마음껏 하셔도 돼요. 다만 북부의 상인들은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요.”
“그럼 그렇지…… 그게 뭡니까 ”
“식료품이나 초보용 물품들은 너무 많이 남기지 마세요.”
“음. 그리고요 ”
“상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은 이게 전부예요.”
“예 그게 답니까 그러면 세율은요 ”
“2%예요.”
“초보용 물품이나 식료품이 2%라는 말입니까 정말 세금이 낮네요.”
중앙 대륙의 상인들은 세금이 십분의 일로 줄어든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다른 물품들은 세금이 더 높겠죠 ”
“교역소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가 2%예요. 품목을 가리지 않는 아르펜의 공식 세율이거든요. 유저에게 팔 때는 세금이 안 붙어요.”
“헐…… 말도 안 돼. 통행세는요 ”
“그런 건 원래 없는데요 ”
“초대박이다.”
중앙 대륙의 상인들은 엄청난 해방감과 환희를 느꼈다.
자신들이 살던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율 2%에, 무제한 교역이 가능하다면 어마어마하게 물품들을 거래할 수 있다.
상인 직업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꿈꾸어 오던 세상이 열리고 만 것이다.
“당장 교역하러 간다.”
“마차부터 구해야 되겠군.”
“가진 돈을 전부 털어서 시작해 보자고. 이젠 진짜 상인답게 살 수 있게 되었어!”
상인들이 의욕에 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 대륙에서 초창기부터 쭉 활동해 온 그들은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면서 거대한 재산을 쌓아 놓고 있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교역과 장사를 위해 흩어지려던 상인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가몽 님.”
“뭘요. 저는 그냥 알려 드린 것뿐인데요.”
“근데 가몽 님과 방금 대화한 영상을 따로 올려도 될까요 아르펜 제국의 정책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꽤 많을 거라서요.”
“네. 얼마든지 그러세요.”
중앙 대륙의 상인들은 가몽과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인터넷에 올렸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역시 아르펜 왕국. 이젠 아르펜 제국!
- 이게 유저들을 아끼는 갓 위드 님이십니다.
- 천국이다…… 천국이 찾아왔다.
- 미쳤다…… 저 상인인데 울 뻔했네요. 진심 바로 접속해서 잔뜩 물건 떼어다가 팔러 갑니다.
- 설마 했더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로열 로드가 진짜 천국이 된 거 같음.
- 황제가 되면 안면몰수 하는 사람들과 위드 님은 차원이 다른 분입니다. 믿고 있었죠.
- 저도 가르나프 평원에서 한 주먹을 보탰습니다. 아르펜 왕국, 위드 님을 위해서요.
- 어떻게 이런 일이…… 만세…… 감격!
- 척박한 북부에서 상인들이 왜 부지런히 돌아다녔는지를 깨달을 수 있군요.
-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이를 대할 때 진짜 성격이 나오죠. 위드 님은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도 한결같습니다. 정말 좋은 분이에요.
- 모라타의 첫날부터 시작한 유저입니다. 위드 님을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 위드 님이니까요. 위드 님이라서요. 위드 님이거든요.
- 저는 칼라모르에서 시작한 평범한 유저입니다. 진심으로 감동이네요. 풀죽신교가…… 왜 존재하는지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