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3화(53권-13화)
5. 아르펜 개발 계획
위드는 비탄에 빠지고 말았다.
“이게 아니었는데…….”
로열 로드에 접속하자마자 북부에 가서 늘어난 몬스터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모라타 부근의 몬스터들을 와삼이를 타고 화살을 쏘고, 언데드들을 소환하며 싸우던 중이었다.
조금 전에 가몽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 가몽 : 위드 님. 상인 등록제도 같은 게 있어요 미리 등록하지 않으면 물건 못 팔고 그러는 거예요
막 중앙 대륙을 먹어 치우고 있는데 당연히 아르펜 제국에 상인 등록제도 같은 건 없었다.
‘진짜 좋은 방법이지. 제대로 착취를 할 수 있단 말이야. 상인 등록제도를 만든 녀석은 정말 천재야.’
너무나도 훌륭한 제도였고, 꼭 도입해야 마땅했다.
“상인 등록제도는 없습니다.”
위드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언데드를 이끌고 몬스터들을 쓸어 담고 있었다.
초반에는 사냥이 쉽지 않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언데드들이 몬스터들을 압도했다.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데스 나이트, 듀라한에 스켈레톤 부대들이 뒤를 받치며 진군했다.
언데드들로 조합까지 갖춘 대군!
- 크우워어어어어!
둠 나이트 1기, 본 드래곤 1기까지 추가되면서 막대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높은 사냥 효율을 보이면서 경험치와 전리품들을 쓸어 담으며, 아르펜 제국의 통치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어떤 식으로, 어디부터 착취를 해야 할까. 진짜 이제부터가 내 인생의 황금기지.’
앞으로 헤르메스 길드를 대신해서 착취할 생각으로 가득!
- 가몽 : 네.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위드는 그렇게 가몽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는데, 얼마 후에 페일로부터 귓속말이 또 들어왔다.
- 페일 : 위드 님은 항상 올바르신 분인 거 같습니다.
“…… ”
위드는 뜬금없고, 이상하긴 했지만 대충 넘겼다.
- 이리엔 : 파이팅이에요! 진짜 최고예요!
- 로뮤나 :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보진 않았어요.
- 제피 : 남자지만…… 멋집니다.
- 화령 : 매력 폭발!
“…….”
위드는 지인들의 귓속말을 듣고는 뭔가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몽과 중앙 대륙 유저들의 대화 영상을 찾아보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로열 로드의 인기만큼이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대부분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망했군. 망했어…… 상인 등록제도는 반드시 강화를 했어야 마땅했는데…….”
위드는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도 사냥에 더 열을 올렸다.
“반 호크, 토리도!”
“왜 부르는가. 주인.”
“이게 다 너희들 탓이야. 어서 싸워라. 이 무능한 놈들아!”
@
“…….”
서윤은 대지의 궁전에 머무르면서 아르펜 제국의 내정을 살피고 있었다.
< 포를란 마을이 하벤 제국에서 아르펜 제국으로 전향했습니다.
국가 명성이 1 늘어납니다. >
< 미델하임 성이 새로운 황제 위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5만 8천 골드를 아르펜 제국에 지참금으로 바쳤습니다. >
< 칼라모르 지역에 아르펜 제국의 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적인 만족을 위해 수준 높은 예술품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
< 컬리버 요새의 기사들이 황제 위드에게 충성을 다짐합니다.
국가 명성이 1 증가합니다.
요새 인근 지역의 치안이 10% 오릅니다. >
빠르게 확장되는 영토.
< 바툰 요새의 병사들은 식료품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굶주린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면 그들은 기꺼이 아르펜 제국을 위해 검을 들 것입니다. >
< 타란투스 항구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내려옵니다.
“배, 배가 있으면 바다로 나아갈 수 있지. 인근 바다에는 잡을 수 있는 생선들이 아주 많아. 조금만 더 멀리 가면 우리 선조들이 해적질을 해서 숨겨 놓은 보물도 말이야…….”
32척의 배를 건조하면 타란투스 항구의 어업 생산량이 매우 빠르게 늘어날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해적의 보물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
도시나 마을, 항구, 광산마다 수많은 퀘스트가 발생하고 있었다.
서윤은 중앙 대륙 출신이지만 광전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어두침침한 던전과 사냥터에서만 하루 종일을 보냈다.
그럼에도 수많은 유저들이 마을과 도시에서 행복하게 지냈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처럼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윤은 고민하다가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내정을 제가 하고 싶어요.”
잠시 뒤에 위드로부터 대답이 왔다.
- 위드 : 응.
“영토가 넓어지면서 손을 대야 할 곳이 많이 보여요. 대신 해도 돼요 ”
- 위드 : 하고 싶은 대로 해.
위드는 가몽의 일이 있긴 했지만 선뜻 허락했다.
서윤이 먼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의 부탁이라면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자는 말이라도 들어주어야 마땅하리라.
“고마워요. 잘 할게요.”
- 위드 : ……믿을게.
위드는 빠르게 늘어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기에도 바빴고, 서윤은 노들레와 힐데른 퀘스트 시절에도 훌륭하게 도움을 주었던 경험도 있었다.
‘알아서 잘 하겠지. 불안하긴 하지만…….’
서윤은 허락을 받고 나서는 우선순위부터 정했다.
“지금은 도로를 개설해야 될 것 같아.”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을 잇는 교통망과 해상 운송로에 대한 투자에 착수했다.
푸홀 워터파크에서 판잣집 별장을 분양해서 번 돈 4천만 골드를 투입했다.
도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치안 확보에 경제 개발까지 패키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여기저기 써야 할 돈이 많았다.
북부나, 중앙 대륙에는 변방으로 갈수록 치안이 취약한 곳이 많았고, 몬스터의 침입을 우려해서 튼튼히 성벽을 쌓고 자경대를 확보했다.
“이걸로는 준비가 부족할 거야. 몬스터들의 활동이 많아지면 몇몇 마을들은 부서질 수 있겠어.”
지금도 몬스터들이 시시각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르펜 제국으로 새로 합류하고 있는 도시와 마을들의 요청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꼼꼼하게 예산을 나누고, 한 푼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쓰려고 했지만 넓어진 영토는 지금까지 벌어 놓은 재정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돈이 너무 모자라…….”
서윤은 부족한 예산으로 고민을 하다가 내정을 마쳤다.
“예산을 다 쓰고 말았어요.”
- 위드 : 4천만 골드를…… 거짓말이지 후후후. 내가 그런 것에 쉽게 속지 않지. 몰카. 그래. 몰래 카메라잖아.
“정말이에요. 돈을 쓸 때마다 기록해 놓은 내역서도 있어요.”
위드는 얼마나 놀랐던지, 유린을 불러서 순식간에 그림 이동술로 대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황제의 집무실.
으리으리한 집기들은 없었고, 모라타의 흑색 거성에서 옮겨 온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내역서요.”
서윤은 예산을 쓴 기록을 내밀었다.
예쁜 필체로 성벽 수리를 비롯해서 식량 공급, 몬스터 토벌 같은 기록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적게는 500골드에서부터 수십만 골드가 소모된 내역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으음. 확실히 쓰긴 한 것 같은데. 내정 모드.”
위드는 아르펜 제국의 내정 모드까지 들어가 보고 나서 남아 있던 모든 예산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잔액 2골드!
“아아.”
블랙 드래곤 앞에서도 할 짓은 다 하던 위드의 몸이 비틀거렸다.
“내 돈…… 내 돈이…….”
돈을 잃어버린 상실감.
걷잡을 수 없는 슬픔, 고통, 아쉬움, 허전함이 밀려오려고 했지만, 서윤의 얼굴을 보는 순간 평온해졌다.
여자 친구와 싸우고 싶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사라진다고 할까.
“흠흠. 4천만 골드. 그게 큰돈이긴 하지만 아르펜 제국을 위해서 다 쓴 거고…… 잘했어.”
“정말요 ”
“그럼. 4천억 골드라도 아깝지 않아. 아마 내가 있었어도 이보다 훌륭하게 지출을 하진 못했을 거야. 진짜 완벽하게 잘 썼어.”
위드는 서윤을 가볍게 안아 주었다.
“에잇!”
달달한 분위기가 흐를 것만 같은 상황에 유린은 서둘러 그림 이동술로 도망쳤다.
위드와 서윤.
그 둘은 진지하게 아르펜 제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몬스터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다 사냥하지 못할 수준이라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고요.”
“유저들이 다시 다 돌아가면 ”
“북부에는 초보들이 상대하지 못하는 몬스터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게 될 거예요.”
“그건 정말 큰 피해를 입히겠군.”
몬스터가 많아지더라도 중앙 대륙에서는 유저들이 어느 정도 사냥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부에서는 레벨 500대의 몬스터들만 던전을 벗어나서 활동한다고 해도 인근 초보 유저들은 떼죽음을 당할 수 있었다.
“음. 북부의 모든 마을과 도시들에 성벽을 세울 수도 없고, 군대는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중앙 대륙도 유저들이 많지 않은 지역들이 꽤 많아요. 그런 곳들은 몬스터들이 침략을 해 오면 바로 무너질 거예요.”
서윤이 예산을 꼭 필요한 적재적소에 썼고, 그나마 시급한 불을 끈 정도에 불과했지 당장 손을 대야 할 곳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위드는 북부에서 와삼이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들이 확실히 많이 늘어난 것을 느꼈다.
전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지상의 몬스터들이 가끔 보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흔하게 보인다.
아르펜 제국이 북부와 중앙 대륙을 차지했지만, 군사적으로 본다면 헤르메스 길드가 군대를 잃어버리고 철수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병력의 공백만큼 몬스터들에 의해 공격당할 지역들이 많아졌고 전부 지킬 수는 없었다.
“위기로군. 아르펜 제국이 되자마자 도시들이 파괴되면 상황이 심각해질 거야.”
서윤은 위드의 말을 들으며 북부의 과거를 떠올렸다.
위드는 폐허나 다름없던 모라타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서 지금의 발전을 일으켰다.
그때의 험난한 개척 정신에 비한다면 지금의 어려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북부와 중앙 대륙은 넓어요.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함께 지키고 싸워 줄 영주들이 필요해요.”
“음. 영주라…… 영주가 필요하긴 하지. 그래도 영주 자리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자리인데.”
“영주 자리에 돈을 받아야 할까요 ”
위드는 무심코 이야기하다가 서윤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바로 그거야. 돈을 받고 파는 거다.’
높은 지위를 돈을 받고 팔아먹을 수 있는 인사 청탁, 혹은 권력형 비리!
뉴스를 보면서 부러워만 했던 일을 드디어 자신도 직접 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르고 만 것이다.
‘북부 대륙에서야 황무지에 영주들을 임명해서 쏠쏠한 이득을 거두었다지만…… 중앙 대륙은 상황이 반대지.’
작은 마을이나 광산촌도 많지만, 소므렌 자유도시 같은 대도시, 옛 왕국의 수도, 무역 도시, 생산 도시, 관광 도시들이 존재한다.
그런 도시들의 영주가 되는 건 대단한 영광과 함께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