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54권
1. 남부 사막
위드는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통해서 사막 도시 차크마크에 도착했다.
광장 대신에 초록빛 오아시스가 도시 한복판에 펼쳐져 있었다.
“물 담배 팝니다. 성인들만!”
“향료 대량 구매해 주실 분! 도시 공적 치 있는 분은 많이 살 수 있어요!”
“가죽류 매입, 매각합니다. 원하는 종류 있으시면 언제든 상담요.”
“시미터 전문 판매점. 시미터만 취급합니다.”
광장에는 유저들이 백여 명 정도가 있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 노점을 차리고 장사를 하는 그들은 커다란 파라솔들을 펴 놓고 옹기종기 앉았다.
“흠. 이 부근이라고 했지.”
위드는 광장 구석의 골목길로 들어가서 바로 움직였다.
케이베른이 일주일마다 도시를 하나씩 파괴하는 중이고, 몬스터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올슨은 어디에 있죠?”
“그 늙은이 말인가? 동쪽에서 가장 높은 모래 구릉에 있겠지.”
“찾기가 쉽나요?”
“동쪽에서 태양이 뜨는 걸 볼 수 있는 곳이지. 그 근처에서 양을 돌보고 있을 거야. 정말 토실토실한 녀석들이야.”
주민으로부터 올슨에 대한 소식을 들은 후에 도시 밖으로 가서 모래 구릉을 찾았다.
산처럼 높은 모래 구릉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물 담배를 피우는 노인!
위드는 여행자 복장을 갑옷으로 바꾸고 허리에 로아의 명검도 찼다.
기본적으로 빠르게 친밀도를 높이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을 하는 편이 유리하다.
서윤은 올슨이 매우 사람을 가려서 대화를 나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가장 강한 전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크흐흘. 다들 내 이야기는 헛소리로 알지.”
올슨의 몸은 흉터투성이였다. 심지어는 어깨에서 배까지 가로지르는 커다란 짐승의 이빨 자국도 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굉장한 과거를 가진 사막 전사 같군요.”
“클클클. 그런 아부를 한다고 해서 사막의 주민이 아닌 자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어.”
“당신의 몸에 있는 화상과 흉터. 불도마뱀과 싸우다가 생긴 것이 아닙니까?”
올슨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사막에서는 친밀도를 높이는 데 무기, 몬스터, 전투. 이런 주제를 화제로 올렸을 때 이야기를 나누기 좋았다.
“흉터만 보고 불도마뱀에 대해 알아보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군.”
“저도 불도마뱀을 꽤 좋아합니다. 잘 안 구워지긴 하지만, 겉이 바삭해질 정도로 불 맛을 제대로 내면 정말 맛있죠. 특히 기름이 뚝뚝 떨어질 때 뜯어 먹으면 쫀득한 육질이 최고입니다.”
“불도마뱀은 시장에서 팔지 않는데…… 자, 자네가 불도마뱀을 잡아 봤나?”
“많이 구워 먹었습니다. 삶으면 나오는 맑은 국물도 좋았죠. 술을 담그면 좋았을 텐데…… 시간이 없어서 해 보진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한 모금 드시죠.”
위드는 낙타의 젖을 짜서 만든 술을 올슨에게 건네주었다.
“크…… 끝내주는 맛이야. 물통에 담긴 술이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지. 그래. 젊은이여. 전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올슨의 눈빛은 전투를 앞둔 것처럼 날카로웠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일종의 시험!
여기서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한다면 바로 대화가 끝나고 말리라.
“칼 하나. 그걸로 충분합니다.”
“나도 그렇네. 젊어서는 칼 한 자루만 믿고 어디든 다녔지.”
올슨은 사막을 유랑했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었다. 몇몇 도시들과 던전, 유명한 부족들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황량한 사막이라지만 남쪽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옥한 땅이 있어.”
“비가 자주 오는 곳 말입니까?”
“크흐. 사막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아는군.”
“역사라기보단…… 뭐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사막의 대제왕 시절.
고요의 사막을 지나고 비를 내리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메타페이아에 가 본 이들은 드물지.”
“좋은 곳이죠.”
“호오…… 신기루를 찾아내는 지름길을 알고 있나?”
“모래 폭풍을 뚫는 겁니다.”
위드는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시험을 통과하며 추가적인 친밀도를 올렸다.
사막에서는 싸우고, 모험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음흉하고 대가를 바라는 마법사들보다는 훨씬 상대하기 쉬운 이들.
올슨이 술통을 전부 비우고 비장하게 말했다.
“내 뜨거웠던 시절은 너무 오래전에 지났어. 전사들의 심장을 불태우던 검술은 거친 모래에 파묻혀 버렸고 이젠 잊힌 과거가 되었다.”
“…….”
“젊은 전사들은 팔로스 제국의 추억을 다시 되돌리려고 하지만…… 예전처럼 전사들이 강하지 않아. 사막의 역사는 전사들이 쓰는 것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말로는 쉽지. 예전 전사들이 쓰는 검술은 정말 강했어. 자네가 그런 검술을 배워 와서 내게 보여 줄 수 있겠나?”
띠링!
사막의 오래된 검술
주정뱅이 올슨은 전사의 이야기를 듣길 좋아한다.
사막 전사들이 만들어 낸 검술을 가져와서 그에게 보여 주자.
그러면 자신이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다.
난이도 : D
보상 : 검술의 수준에 따라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네. 그런 검술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위드는 당연하지만 사막 전사의 검술을 이미 익히고 있었다.
그것도 최강의 스킬로!
“근데 제가 이미 알고 있는 사막 전사의 검술이 있는데…… 펼쳐 봐도 되겠습니까?”
“큭. 생각보다 내 눈이 높아. 어설픈 검을 보여 줄 거라면…….”
“용암의 강!”
위드가 검을 휘두르자 모래 구릉이 갈라졌다.
붉은 용암이 폭발하듯이 솟구치며 열기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헤스티거가 남겨 놓은 사막 전사 최강의 스킬.
“이, 이런…….”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충분하네. 충분해! 살아생전 이런 엄청난 검술을 보게 되다니…… 자네가 위대한 분의 뜻을 잇고 있는 줄 몰랐군!”
띠링!
사막의 뛰어난 검술 완료
당신은 사막에서 전설로 분류되던 검술을 가져오고야 말았다.
올슨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기꺼이 할 것이다.
< 명성이 5,300 증가했습니다. >
<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
올슨과의 만남은 전사의 상위 직업을 얻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여기가 시작이 될 거라고 했지.’
서윤은 아르펜 제국의 통치로 바쁜 와중에도 사막 지역을 꼼꼼히 살폈다.
올슨의 퀘스트를 해낸 사람은 지금까지 백여 명 정도 되었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한다.
검칠십이치도 올슨의 의뢰를 완료했을 때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자네의 검술도 뛰어나지만 사막의 뜨거움은 없군. 오래전, 전설적인 전사들은 태양과 불의 힘을 다루었다네. 지금은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겠지만, 흠흠…….”
서윤은 올슨이 했던 말들을 분류해서 사막 전사, 숨겨진 전사 직업이나 태양의 전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 * *
바드레이는 흑기사를 마스터하고 다음 직업을 선택하려 했다.
- 위드가 전사로 전직했다!
새로 얻을 직업은 위드와의 일전을 고려해야만 했다.
‘전사라. 전체적으로 무난한 선택이 되겠군.’
바드레이는 흑기사를 마스터했지만 다음 직업으로 소환이나 마법 계열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금 내 모든 능력치들은 흑기사에 맞춰져 있어. 위드처럼 장비들을 마음대로 돌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마법을 익히는 것도 무모한 일이 되겠지.’
바드레이는 장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북부 대륙으로 건너갔다.
아르펜 제국의 영역이지만 투구와 갑옷을 바꾼다면 쉽게 눈에 띄지 않겠다는 판단.
모라타의 빙룡 광장!
얼음으로 만들어진 빙룡의 조각품이 있었으며, 수많은 유저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식재료로 넣으면 감칠맛을 더해 주는 풋고추 팝니다.”
“조각해요! 조각! 본인 얼굴부터 기념품까지! 빙룡 조각품이 단돈 1골드!”
“황소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여행용으로도 좋고, 짐을 운반하는 용도로도 그만인 황소예요!”
“모라타 특산 포도주. 사냥터에 가서 한 모금만 하십쇼. 두 모금 하면 맛있어서 사냥 안 합니다.”
광장에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는 유저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신선한 기분이군.’
바드레이는 가만히 서서 잡다한 물품들을 장사하는 유저들을 지켜봤다.
중앙 대륙에는 값비싼 무기나 방어구들을 위주로 판매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렴한 물품들은 이익이 많이 나지도 않았고, 초보들이 그만큼 북부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 같은 재미가 있는 것인가. 왜 라페이가 시간이 갈수록 하벤 제국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는지 이 활기찬 분위기를 직접 보니 이해가 가는군.’
바드레이는 수많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북부 대륙에도 사냥 업적을 세우기 위해 한 번 와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은 얼어붙은 땅덩어리였다.
그가 사냥터에 머무르는 동안 대륙은 거대한 변화가 생겼던 것이다.
“어? 저 사람 바드레이 아냐?”
“그러네. 바드레이 맞네.”
지나가던 유저들은 광장에 서 있는 바드레이를 너무나도 쉽게 알아보았다.
‘아니, 도대체…… 위드는 중앙 대륙에 조용히 잘도 돌아다녔었는데?’
바드레이는 억울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사냥도 열심히 하면서 살인자 상태도 벗어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쉽게 걸리고 말다니.
“와. 바드레이다.”
“대박! 바드레이가 나타났어!”
막 로열 로드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유저들이 몰려들었다.
‘인해전술? 이곳은 모라타. 그렇다면 모두가 적이다.’
바드레이는 생존의 위험을 크게 느꼈다. 사실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느낄 때였다.
초보 유저들이 종이를 꺼냈다.
“사인 좀요.”
“예?”
“바드레이 님. 사인 한 장만 해 주시면 안 돼요?”
“완전 대박. 저도 바드레이 님 팬이었는데. 위드 님이랑 바드레이 님이 제일 좋아요.”
“헤르메스 길드는 싫지만 뭐 그래도 저도 그렇게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은 없거든요?”
그동안 바드레이가 로열 로드를 상징했던 기간은 길었다.
방송 출연도 자주 했었고, 헤르메스 길드의 친위대와 함께 던전 공략이나 사냥터 평정도 많이 해 왔다.
그 결과 북부 유저들도 바드레이의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들고 있었다.
“저기 이름이……?”
“음. 죽순죽 얌냠이라고 적어 주세요.”
바드레이가 얼떨떨하게 사인 몇 장을 해 주었다.
“자. 모두 정신 차리십시오! 우리는 아르펜 제국의 주민들입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바드레이가 남은 건 전투밖에 없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줄을 섭시다. 아르펜 제국의 자부심을 잊지 말고 새치기는 절대 안 돼요!”
마구 모여들던 유저들이 질서정연하게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막에는 작렬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검술을 가진 부족이 있네.”
퀘스트를 마치자 올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부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모르네. 하지만 그들의 인정을 받는 법은 알고 있지. 고요의 사막에 있는 모래 폭풍을 부수는 것이네. 그것도 평범한 모래 폭풍이 아니지. 태양의 눈을 부수어야 하네.”
“흠. 그렇군요.”
태양의 눈!
고요의 사막에 부는 모래 폭풍은 주민들 사이에 몇 가지 이름들이 붙여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태양의 눈은 가장 크고 위험한 것으로 불리었다.
“내가 말은 했지만 너무 무리한 업적이네. 그러니 거절한다고 해서 전사의 자부심이 상하는 일은 아니야.”
띠링!
힘을 증명하라.
고요의 사막에 일어나는 거대한 모래 폭풍, 태양의 눈!
위대한 사막의 대제 이후에 아무도 달성한 적이 없던 폭풍과 싸워 이겨라!
전사로서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하면 사막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태양의 부족이 찾아올 것이다.
단, 폭풍을 이기기 위해서 무기 하나 외에 어떤 방어구나 소모품도 허용되지 않음.
난이도 : A
제한 : 직업 전사.
사막 검술의 소유자.
보상 : 태양의 부족과의 만남.
위드에게 고요의 사막은 익숙한 곳이었다.
“태양의 눈과 싸워서 이긴다라…….”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 폭풍을 베어 버렸던 적이 있다.
난이도 A라면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물론 상황에 따라 난이도가 C 이하이더라도 죽을 위험은 있었고, 자연재해 같은 경우는 추측이 불가능했다.
“뭐 귀찮긴 하지만 힘을 증명해 보죠.”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 * *
위드가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메타페이아!
태양의 눈은 아무 때나 일어나지 않는다. 무작정 기다릴 여유는 없지만, 사막에 온 김에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퀘스트가 있었다.
사막의 패자
끝을 모르는 모래사막에는 팔로스 제국의 드넓은 영광이 묻혀 있다.
사막 전사들은 위대한 제국의 부활을 위한 안배를 해 놓았다.
전사들의 피에 흐르는 명예와 투쟁심.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강자가 나타나 대제왕의 길을 걷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막 전사들의 뜻과 의지를 하나로 모으라.
사막의 시험을 통과한 그대가 부른다면 전사들은 기꺼이 아껴 두었던 칼을 꺼내고 따를 것이다.
―난이도 : S
사막 퀘스트.
보상 : 대서사시 ‘팔로스 제국의 건국’으로 연결될 수도 있음.
퀘스트 제한 : 역사적인 사막 전사의 인정.
위드가 헤스티거가 남긴 문서에 의해 받아 놓고 있던 퀘스트였다.
이 퀘스트가 다음에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도 검삼치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팔로스 제국의 건국
위대한 사막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용맹한 전사들이여, 뜨거운 열사의 모래를 벗어날 때가 돌아왔다. 팔로스 제국의 영광이 있던 그곳으로, 강물이 흐르고 수풀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자.
가장 많은 영토를 얻은 이가 팔로스 제국의 황제가 되리라.
최대 1년의 시간이 주어지게 됨.
―난이도 : 지역 제패
보상 : 팔로스 제국의 황제.
퀘스트 제한 : 사막 전사 한정.
남부 사막 지대를 통합하는 팔로스 제국!
사막 유저들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북부와 중앙 대륙이 통합되었으니 남부까지 하나로 뭉쳐야 하리라.
“대륙을 지배하는 대제국이라…… 나쁘지 않지. 어쨌든 베르사 대륙을 완전 정복하면 유니콘 사에서 상금도 준다고 했으니 말이야.”
베르사 대륙의 패자!
대륙을 통일하면 유니콘 사에서 상금도 빵빵하게 준다고 했었다.
사실 과거에는 명문 길드들이 저마다 대륙 통일을 부르짖으며 전쟁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북부 대륙에 아르펜이 생겨나지 않았더라면 그 포상금은 전부 하벤 제국의 것이 되었으리라.
‘이게 설마 내 몫이 될 줄은 몰랐는데.’
타다다닷!
위드는 마을에서 희귀한 쌍봉낙타를 구해서 사막 도시 바랑을 향해 무섭게 달렸다.
평소라면 돈을 아껴야 되지만, 케이베른 때문에 한시가 급하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내정으로 쓰인 이후에는 돈을 쓰는 데도 조금 과감해졌다.
200원까진 아니더라도 100원 정도 비싼 소금은 살 수 있는 상태.
< 호칭 ‘고요의 사막을 걸은 자’가 발동되었습니다.
고요의 사막에서 이동 속도가 45% 빨라집니다.
페트라의 은총에 의해 전설의 오아시스까지 10배 빨리 도착합니다. >
“이랴. 이랴! 마구 달려라!”
마을에서 산 쌍봉낙타는 무시무시한 속도를 냈다.
구릉을 단숨에 뛰어넘고, 끝없는 모래의 바다를 거침없이 달렸다.
“전설의 오아시스로 가자!”
고요의 사막을 걸은 업적 때문에 오아시스를 거쳐서 가는 길이 훨씬 더 빨랐다.
< 번개 바람의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고 일직선으로 달릴 때, 가속력이 38% 추가됩니다.
장애물을 돌파하는 속도가 증가합니다. >
- 푸흐헹!
“그래. 달려라. 달려!”
위드가 사막을 내달리고 있는데 귓속말이 왔다.
- 마판 : 위드 님! 바드레이가 모라타에 떴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었다.
“습격인가요? 적 병력은요?”
- 마판 : 아닙니다. 혼자서 온 것 같습니다! 본인도 놀러 왔다고 하는데, 위장하고 왔지만 딱 걸린 겁니다.
“정말입니까?”
- 마판 : 예. 모라타에 상인들이 수색하고 있습니다만 수상한 유저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위드는 바드레이의 배포에 적지 않게 놀랐다.
사실 평범한 헤르메스 길드 소속 유저들이 절대 북부로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와서 사람들 죽이면 자기도 죽겠지. 그리고 몰래 퀘스트나 하고 간다면…… 뭐, 돈 쓰고 갈 테니 나쁜 건 아니잖아?’
그럼에도 베르사 대륙에서 최강자라 부를 수 있는 바드레이의 등장이라니!
“지금 상황은요?”
- 마판 : 유저들이 사인을 받고 있습니다. 바드레이도 어쨌든 인기인이니까요.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군요.”
- 마판 :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로열 로드에서 위드를 제외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바드레이였다.
어쨌거나 무신이라는 별명으로 모르는 유저들이 드문 유명인인 것이다.
- 마판 : 어떻게 할까요? 바드레이를 죽일 전투단을 모집할까요?
“전투단이라…….”
- 마판 : 위드 님의 명령이라면 즉시 유저들이 소집될 겁니다. 바드레이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요.
위드는 썩 내키지 않았다.
바드레이가 목숨을 잃으면 레벨과 스킬 숙련도가 좀 하락하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약해지는 건 아니다.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비겁한 짓을 했다는 비난도 두고두고 받을 테고, 무엇보다 다른 유저가 영광을 얻게 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바드레이를 죽인 이는 굉장한 명성을 떨치게 될 테니까.
중앙 대륙까지 지배하는 아르펜 제국의 정통성도 따지고 보면 헤르메스 길드와 싸우고, 바드레이를 이겼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를 내버려 두세요.”
- 마판 : 엇…… 정말 그냥 보내 줍니까? 모라타에 들어온 것을요?
“관대함을 보여 주겠습니다.”
위드의 입에서 평생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의 등장!
- 마판 : 도대체, 관대함이라니요?
“딱 한 개만 받고요.”
* * *
바드레이는 모라타에서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수십만의 유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 시간 동안 사인을 해 주어야 되었다.
언제 아르펜 제국의 고레벨 유저들이 대거 몰려와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의외로 공격대가 동원되는 기색은 없었다.
‘나를 내버려 두는 건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음에도?’
바드레이는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사인을 했다.
“와. 잘생겼다.”
“가까이에서 보니 미남이네. 분위기도 있고.”
그러기를 한참여!
챙긴돈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상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입고 있는 장비 하나 주세요.”
“장비요?”
“싫으세요? 착용하고 있는 장비 하나 내놓으면 위드 님이 봐주라고 했어요. 모라타까지 와서 성의 표시 안 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장담 못 합니다?”
바드레이는 배가 볼록 튀어나온 상인의 말에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모라타는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곳이었다.
무신이고, 얼마 전까지 황제였던 그가 이런 식으로 삥을 뜯겨야 할 줄이야.
“여기 있네.”
바드레이는 비행과 환영 마법, 순간 가속, 은신의 기능이 있는 어깨 보호대를 내놓았다.
“오. 역시 대박 아이템!”
챙긴돈은 볼살을 푸들거리며 좋아하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저녁은 뱃고동의 레스토랑이 맛있습니다.”
“알……겠네.”
* * *
리버스가 막 로열 로드에 접속하며 선택한 도시는 모라타였다.
“크흐흠. 그래도 이곳이 많이 봐서 익숙하긴 하니까. 이곳은 빙룡 광장이로군.”
유병준 박사.
그는 직접 만들고 지켜본 로열 로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도시들은 고려의 사항이 못 되었다.
“확실히 내가 만든 세상은 멋진 곳이야.”
리버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은 푸른 빛깔로 아름다웠다. 깨끗한 물을 뿜어내는 분수대, 광장 바닥을 장식하는 돌까지도 예뻤다.
거리에는 멋들어진 석조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으며, 빛의 탑이나 프레야 여신상들이 멀리 우뚝 솟아 있는 광경들이 보였다.
“이곳이 로열 로드. 그것도 초보자들에게 최고의 풍경으로 꼽히는 곳이군.”
모니터로 보던 영상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 직접 몸을 움직이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상인들이 열어 놓은 좌판은 활기로 넘쳤다.
리버스는 분수대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벤 제국군 방패요! 내구도가 27 남은 상태로 그대로 팝니다!”
“직접 사냥한 사슴고기 있어요. 바베큐 요리법 가르쳐 드릴 수 있고, 소금도 그냥 드림.”
“레벨 130 이하 장비류 한꺼번에 팝니다. 이번에 광렙해서 새로 맞추면서 처분하는 거예요. 싸게 싸게 팔아요.”
“정체불명의 약병 있습니다. 전쟁에서 습득한 건데 감정이 안 되네요.”
광장 구경을 실컷 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현실에서는 세계 최고의 부자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건 보리빵 열 개와 물이 전부.
“이래서 사람들이 현질을 하는 거군.”
리버스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장비를 착용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였다.
현질이 싫다면 상점에 취직하거나, 퀘스트를 하며 벌면 되지만 리버스는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드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란 말인가.”
로열 로드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막상 접속이 늦어진 건 시시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로열 로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소위 말하는 랭커들의 과거도 지켜보았다.
‘그들이 걸어간 길만 따라가더라도 쉽게 강해질 수 있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빨리 성장할 자신이 있었다.
‘퀘스트? 그게 뭐가 힘들단 말이야. 관련 지식들을 가지고 있으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한다. 그리고 정해진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리버스는 느긋하게 수련장으로 향했다.
‘일단 위드를 좀 따라해 볼까?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그 녀석이 지금은 최고니…….’
모라타의 수련장!
목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곳에는 유저들로 붐볐다.
위드가 황제가 된 이후에 수련장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교관이 리버스를 보고 다가왔다.
“검을 배우러 왔군! 무릇 검이란 자신의 육체를 다스리고, 적을 물리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지.”
“알고 있다.”
리버스는 이어지는 교관의 말을 딱 끊어 버리고 허수아비 앞에 섰다.
‘4주 동안 치면 된다고. 지루하긴 하지만 쉬운 일이군.’
퍽! 퍽! 퍽!
고작 5분이 지났는데도 몸이 힘들었다.
로열 로드에 들어오고 나서 완전히 새로운 육체를 얻었다.
노인의 몸이 아니기에 상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체력이 줄어들면서 온몸이 힘들어졌다.
30분이 지났다.
‘더 해야 돼. 이대로만 하면 스탯이 오를 텐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더 버텼다. 피로도는 계속 심해지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여기에 배까지 고팠다.
리버스는 당장 목검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아니. 이 힘든 걸 위드. 그놈은 어떻게 해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