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부 노가다
북부 지역은 몬스터들의 침공으로 인한 크나큰 위기를 맞이했다.
“크룩!”
“그웰웰!”
몬스터들이 대지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여행하던 유저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냥터로 간 유저들도 기겁을 해야 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몽땅 모여 있어.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
“쉿. 저쪽에 초록색 몬스터 하나 보인다.”
“생김새로 보면 워렉 아니야? 그 녀석이 이쪽에 있을 리가 없는데.”
“레벨 400대가 넘는 파충류형 몬스터잖아.”
“지금 녀석이 우릴 봤어.”
“워렉 맞네. 다 죽었다. 우리…….”
몬스터들의 서식지와 활동 범위가 바뀌면서 수십 배나 위험해진 북부 대륙!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치안이 불안해지며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로열 로드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각 왕국마다 제대로 된 군대가 존재했고, 도시와 요새마다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NPC로 구성된 기사, 병사, 용병들.
군대가 몬스터들의 침략도 알아서 막아 주고, 도적 떼들도 소탕하면서 치안 활동을 했었다.
하벤, 칼라모르, 그라디안, 네스트, 데일, 아이데른, 툴렌, 하르판, 라살, 브레만, 수르, 수베인.
그들이 보유했던 군대는 시간이 흐르며 명문 길드들끼리의 전투에서 많이 소모되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중앙 대륙을 통일할 때만 하더라도 병력이 이미 절반 이하였고, 마지막까지 버텨 온 최정예 병력이 가르나프 평원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수많은 도시와 요새가 있는 드넓은 중앙 대륙에 실질적인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싱글튼 마을로 가실 분이요. 치안이 위험하니 같이 갈 여행자 구해요.”
“소식 못 들으셨어요? 이미 그 마을 없어졌어요.”
“없어졌다니요?”
“어제 몬스터에 의해 정복되었어요. 몬스터들이 마을을 장악하고 집집마다 살고 있어요.”
“헐…….”
분수대 근처 광장에는 혼란에 빠진 유저들이 많았다.
“위드가 북부만 지키면 안 되는 거잖아. 여기도 자기 땅인데.”
“맞아. 위드가 와 줬으면 우리도 안전했을 텐데.”
위드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원망하는 유저들도 많이 있었다. 인근 도시나 마을이 몬스터들에 의해 정복당하게 되면, 성문 근처까지도 위험해져서 불안감이 더 커졌다.
“그렇긴 한데. 아르펜으로 넘어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중앙 대륙을 전부 지켜 달라고 하긴 무리지.”
“위드도 매일 몬스터들만 소탕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탓하겠어.”
“갑자기 몬스터들이 열 배로 늘어난 것 같아. 잘못 걸리면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서 죽는 거야. 성문 밖이 진짜 위험해 보인다.”
중앙 대륙의 도시들에서 유저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고레벨 유저들이 많이 활동하는 대도시나 무역 도시, 전투 계열 길드가 있는 지역들은 사정이 그나마 나았다.
그렇지만 유저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지역 도시들은 당장이라도 몬스터들의 침략에 무너지는 것을 걱정해야만 했다.
* * *
위드는 동료들과 풀죽신교의 수뇌부들을 모아서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번에 고레벨 유저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직업의 인재들이 아르펜 제국에 합류했다.
‘적당한 직위 내려서 절대 놔주지 말아야지.’
월급도 안 주는 명예직의 남발!
로열 로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저들도 신기하다는 듯이 위드를 바라봤다.
“와…… 진짜 위드 님이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보다니 소름 돋는다.”
자신들의 이름값이 크긴 하지만, 그들 모두를 합한 것보다도 위드의 명성이나 업적이 거대했다.
위드는 공짜로 제공되는 풀죽 차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북부 지역의 몬스터들 큰 덩어리들은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수로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손을 쓸 방법이 없고, 대륙 전체에 걸쳐서 피해가 크군요.”
언데드를 소환하며 꿀을 빨고 있다는 말은 쏙 빼놓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벽으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대량 살육하면서 레벨을 올릴 기회를 누렸다.
유저들 중에는 몬스터들을 해치우며 반가워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던전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잡기 까다로운 몬스터들까지 성벽으로 달려오며 사냥이 이루어졌다.
마법 재료, 생산 재료, 장비, 전투 퀘스트의 발생.
바덴 요새에는 매일 보스급 몬스터들과의 전투가 벌어지면서 고레벨 유저들이 진을 치고 살았다.
위드가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
“레벨이 높은 분들은 버틸 만해도 몬스터들이 북부 대륙 전체에 걸쳐 많아졌습니다. 초보들에게는 너무 힘든 세상이 되었어요.”
“어쩜……. 이 와중에 위드 님은 초보들까지 생각하세요?”
풀죽신교의 성녀 레몬!
대학생인 그녀의 눈을 콩깍지가 단단히 덮고 있었다.
‘완전 좋은 분이야.’
레몬이 보는 위드는 베르사 대륙의 영웅이었다.
그동안 이룩한 업적들이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마저도 약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세상을 본격적으로 알아 가는 10대 후반에서 스무 살의 나이에 위드를 알게 된 것!
‘이런 분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레몬은 연애라도 하고 싶었다.
그의 곁에 있는 경쟁자가 서윤이기에 포기하며 살아갈 뿐.
레몬의 선망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을 수르카가 혀를 차며 봤다.
‘3개월은 걸리겠지. 위드 님의 실체를 알아차리기까지는…….’
친한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위드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착한 말을 할 때에는 뭔가 음흉한 속셈이 있다는 것을!
마판이 그 속마음을 잘 꿰뚫어 봤다.
‘초보들이 무럭무럭 자라야지. 대륙에 고레벨 유저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르펜 제국의 뼈대는 초보들이고……. 또 그들이 쓰는 돈도 무시하지 못해. 초보들이 미래야.’
위드는 집에서 키우는 닭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쓰다듬어 줄 때처럼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초보들도 저에게는 똑같은 주민입니다. 당연히 그들을 보살펴야지요.”
“와…….”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봤네.”
“위드 님이 없었으면 로열 로드는 진짜 살기 힘든 곳이 되었을 것 같아.”
음흉한 욕심으로 회의에 참석한 유저들을 감동시켰다.
위드는 지형과 도시들이 나와 있는 대륙의 지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오염된 비가 내리다 보면 수확량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그렇죠. 미레타스 님?”
대륙 최고의 농부 미레타스도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명성과 실력, 업적을 통해 당연하게 아르펜 제국의 주요 인물에 올랐다.
“곡물의 어느 정도가 버티지 못하고 죽어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몬스터들의 활동도 있으니 절반 정도까지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수확량이 줄어들면 곡물 가격이 오르겠네요.”
“그렇겠지요.”
“전반적으로 관광 사업도 침체가 될 테고. 위험만이 문제가 아니라 풀과 나무들이 시들면 경치가 나빠지죠. 중앙 대륙의 도시들은 파괴되기가 쉽고……. 세금도 덜…….”
위드는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다. 육체적인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수입이 줄어드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북부는 우리끼리 지킬 테니 위드 님은 중앙 대륙으로 내려가시는 게 어때요?”
수르카가 툭 꺼낸 제안이었다.
위드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 무리 몇 개 정도는 해결할 수 있겠죠.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그렇게라도 해야 되겠네요.”
유저들을 모아서 몬스터와 싸우는 지금 방식은 악화되는 상황을 늦추는 효과밖에 없었다.
도시와 마을들이 붕괴되는 것을 막진 못했다.
재봉사 드라고어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그는 직업 마스터 퀘스트 중 전설로만 남아 있는, 거미를 찾아야 하는 단계를 앞두고 있었다.
끈끈한 거미줄의 원액을 얻어야 하는 것. 그렇기에 당분간은 포기하고 회의에 참석했다.
“에……. 그러니까 저는 몬스터들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몬스터들도 위험하죠. 근데 저는 영토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영토요?”
수르카가 되묻자, 드라고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유저들이 별로 없는 작은 마을들은 몬스터들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상인들의 교역 같은 것도 피해를 입으면서 말이에요.”
마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판 상단은 몇몇 곳에서 몬스터들에게 물자를 약탈당하고 있었다.
“예. 상단의 교역이 상당히 위험해졌습니다. 덕분에 물가가 오르고 있어요.”
“상인들이 피해를 입으면 발길을 끊게 되겠죠?”
“뭐……. 한탕을 노리면서 가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쉽진 않으리라 봅니다.”
“예. 상인들이 피할 정도가 되면 유저들도 그 지역으로는 모험가들밖에는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역들은 도시가 파괴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몬스터들의 영역이 되겠죠.”
멍하니 있던 레몬도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잖아요.”
유저들이 외면하면 몬스터들이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아르펜 제국의 치안이 악화될 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은 성채를 짓고 번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미개척 지역이나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진 바르고 성채 같은 곳은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 내는 주요 요새였다.
수시로 침략해 오는 적을 격퇴하고 있었는데, 몬스터들의 영역이 넓어지면 베르사 대륙 전역에서 그런 일들이 수시로 벌어질 수 있는 곳이다.
건축가 미블로스가 중얼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들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긴 할 겁니다. 완벽한 방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도시들이 폐허가 되고, 식량은 수확이 줄어든다라…….”
평소에 회의는 질색하던 파이톤도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군.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유저들은 늘어나긴 할 거야. 하지만 상황이 그 정도까지 이르면 아르펜 제국의 통치도 믿지 못할 테지.”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사태가 정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케이베른이 대도시를 하나씩 부수는 것은 베르사 대륙이 워낙 넓기에 견딜 수 있었다.
아르펜 제국의 입장에서는 뼈아프긴 해도 일반 유저들이라면 다른 도시를 거점으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계속 많아지고, 그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면 유저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이 되고 말 것이다.
아르펜 제국도 유저들이 등을 돌리면서 순식간에 몰락하게 될 테고.
‘하벤 제국에 이어서 아르펜 제국까지 무너진다. 베르사 대륙 전역에 피해가 너무 크겠군.’
‘그동안은 풍요를 누렸지만……. 앞으로는 폐허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훨씬 강해지고 많아진 몬스터. 정말 위험해질 거야. 과거와는 모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테지.’
레벨이 높은 이들은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것은 균형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였다.
그동안은 유저들끼리 세력 경쟁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살아남기 위해서 몬스터들을 격퇴해야만 한다.
CTS미디어를 포함하여 방송국들이 베르사 대륙의 멸망을 걱정하기도 했는데, 유저들은 처음에는 조금 과장되었다고 느꼈다.
레벨이 높은 이들은 사냥감이 늘어난다고 반겼고, 낮은 이들은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유저들은 케이베른의 등장을 신선한 이벤트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륙 전체가 위험해지면 멸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회의에 참여한 이들은 실감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라…….”
위드는 아르펜 제국의 황제라는 지위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사람들이 나를 따르진 않을 거야. 풀죽신교도 영원하진 못할 테고.’
북부 대륙 유저들조차도 계속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며 나서 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영토가 줄어들고, 도시가 파괴될수록 유저들의 불만은 틀림없이 거세질 것이다.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봐야 하지. 손해를 보면 싫어한다. 희망마저 없으면 분노하고 등을 돌리겠지. 전사의 직업을 얻고 성장하면서 확실하게 견적이 뽑히면 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그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을지도 몰라.’
위드가 결정했다.
“케이베른을 사냥합시다. 모든 유저들에게 포고문을 돌리세요. 드래곤 사냥대를 추진할 계획이고, 난이도 S의 드래곤과 관련된 진정한 용사 퀘스트를 공유해 줄 것이라고요.”
가장 큰 생고생이 될지도 모를 일!
세상에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언제나 많다.
그들을 몽땅 끌어모아서 전투를 준비하고, 용사의 퀘스트도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TO BE CONTINUED
로암 길드, 흑사자 길드는 임시 연합을 결성하면서 툴렌과 아이데른의 몬스터들을 적극적으로 퇴치했다.
- 흑사자 길드가 다시 일어서다.
- 오라. 로암이 전장에서 당신들을 이끌리라!
아르펜 제국이 중앙 대륙을 정복하긴 했지만 많은 유저들이 다시 세상에 나온 명문 길드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길 수 있는 싸움 같은데?”
“어. 칼리스가 무모하게 몬스터들과 정면으로 맞부딪치진 않지.”
“피할로스 요새로 오는 몬스터들. 거긴 오데인 요새만큼은 아니더라도 난공불락이라서 사냥하기 좋은 기회잖아.”
“나 다리 여덟 개 달린 탄도 300마리 사냥하면 끝나는 퀘스트 받아 놨는데. 그거 엄청 잡기 어려워서 두 마리 사냥하고 포기하고 있었거든. 그놈들이 몰려오고 있다는데 무조건 참전할 거야.”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흑사자 길드, 로암 길드, 클라우드 길드, 사자성, 블랙소드 용병단이 내건 깃발 아래에 합류했다.
명맥이 끊어졌던 다른 길드들도 일어나고, 그들은 이번에 거의 전 재산을 털어서 영주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세력들이 자신의 영토 인근의 몬스터들과 싸웠다.
“역시 흑사자 길드네. 저력이 있어.”
“와……. 로암 싸우는 거 봐라. 저렇게 잘 싸우는 줄 몰랐어.”
“진짜 예전 랭커들이기는 해도 실력 그대로 살아 있네. 보통 아니다. 스킬 운용이나 판단력, 순간적인 센스들까지.”
“지금까지 얼마나 사냥을 했던 건지 레벨도 높아 보여.”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멀리서 구경하던 유저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과거의 명문 길드들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명문 길드 출신들은 만족스러웠다.
“몬스터 퇴치를 통해 우리의 부활을 알리니 괜찮군.”
“유저들의 민심도 회복하고 세력도 확대하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지금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해. 예전에는 우리 영토만 벗어나면 전쟁이었는데 이젠 유저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으니.”
막대한 돈으로 영주 자리를 산 이들은 고민거리들을 끌어안았다.
아르펜 제국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유저들의 눈높이가 뛰어올랐다.
하벤 제국 시절처럼 그저 지배하면서 이익만 뽑아내던 형태를 지속할 수 없었고, 그들도 영주로서 주민들에게 존중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알라카 도시의 영주가 4억 골드를 투자했다는 건가?”
“네. 도시의 도로를 다시 깔고, 상업 구역의 재건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부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업 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질 수 없지. 상업 구역과 주택 구역을 동시에 투자하고 위대한 건축물? 그것도 시작해.”
영주들은 비서진을 통해 보고를 받으며 도시 전반에 걸쳐 투자를 했다. 내정에 대한 권한 행사와 도시 건설을 하면서 신과 같은 재미도 느꼈다.
정치와 명예욕을 동시에 챙길 수 있었으니 돈은 아깝지 않았지만 몬스터들의 진군은 대처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주변 세력들에 요청해. 토벌을 해 달라고.”
“의뢰비용이 들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돈이 들어 봐야 얼마나 든다고……. 내 도시가 몬스터에게 짓밟히는 꼴을 볼 순 없잖아.”
영주들은 아르펜 제국의 지배 아래 자율적인 경쟁을 했다.
케이베른으로 인한 몬스터들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긴 해도 효과적인 방식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베르사 대륙의 성과 마을의 입구마다 위드의 포고문이 붙었다.
- 영웅을 구합니다!
베르사 대륙의 운명이 케이베른에 의해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건 다 헤르메스 길드 탓입니다!
이미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힘든 일들은 우리가 바라는 대륙의 평화와 번영을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몬스터와 자연재해를 앞으로도 계속 당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케이베른을 물리치는 일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한 도전일까요?
베르사 대륙을 위해 나설 영웅을 찾습니다.
악룡 케이베른을 저와 함께 퇴치하고, 진정한 용사가 되실 분들을 구합니다.
위험한 일이지만 명예를 걸고 도전하실 분들은 대지의 궁전으로 모이십시오!
남 탓으로 시작된 포고문은 영웅들을 모집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드래곤 사냥이다!”
“우왓. 케이베른을 상대하기 위한 영웅 모집이라니…….”
“위드의 포고문이라면 로열 로드의 최상위권 랭커들은 다 모이겠네. 헤르메스 길드를 제외하고 말이야.”
“그러게. 초대박이다.”
로열 로드가 단숨에 화끈하게 불타올랐다.
승산을 따지긴 어렵지만 위드의 모험에 참여하는 일이다. 레벨이 높은 이들이라면 끌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 * *
“악룡 케이베른이라…….”
뮬은 고민에 빠졌다.
마지막에 아르펜 제국의 편에 서면서 헤르메스 길드를 빠져나왔다. 여전히 네스트와 그라디안 지역의 광대한 땅의 영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래곤을 정말 사냥할 수가 있는 건가?”
뮬은 로열 로드에서 손꼽히는 강자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멀리서 직접 보기도 했었고, 케이베른이 어떻게 싸우는지 동영상도 몇 번이나 시청했다.
“드래곤과 싸우다니……. 적어도 1년 후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무리일 것 같은데.”
뮬은 고민하다가 화령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위드 님이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을 처치할 영웅들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화령 : 네. 지원하실 거예요?
“그 전에……. 정말 케이베른을 사냥하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유저들을 결속시키면서 뭐라도 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까?”
뮬은 위드의 속마음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르펜 제국의 황제로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해 보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 화령 : 진짜 사냥할 거예요. 위드 님에게는 케이베른을 상대하는 진정한 용사라는 퀘스트가 있다고 하네요.
“그렇습니까?”
- 화령 : 모험도 가장 많이 하고, 업적을 세운 이에게 생긴 것 같은데. 난이도 S급의 연계 퀘스트예요. 그 퀘스트를 따라가 볼 작정인 것 같아요.
화령의 설명을 들은 뮬은 마음이 흔들렸다.
‘진짜인가. 퀘스트가 있다면 조금 이야기는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상대할 수 없는 적이라고 해도, 퀘스트를 통해 승산을 높일 여지는 있었다.
더군다나 위드가 나섰다면 자신이 모르는 어떤 가능성을 봤을지도 모른다.
뮬은 헤르메스 길드와 등을 돌릴 때도 그랬지만 은근히 귀가 얇은 편이었다.
충분한 설득력만 갖춘다면 약간만 부추겨도 넘어가 버리는 스타일!
- 화령 : 위드 님이 지금 베르사 대륙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잖아요. 엠비뉴 교단도 무너뜨렸고요.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드래곤은 특별하지 않나요.”
- 화령 : 상식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상식을 다 파괴해 버리는 분이기 때문에. 근데 위드 님과 퀘스트를 하지 않는다면 장담하지만 후회할 거예요.
전쟁의 신 위드.
헤르메스 길드가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에도 위드가 진행하는 퀘스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소위 내세울 만한 랭커들도 위드의 퀘스트를 손가락을 빨며 방송으로 구경해야 했다.
‘대륙이 바뀔지도 모를 퀘스트에 참여한다면……. 한 번 정도는 목숨을 잃더라도 좋은 일이 아닐까?’
뮬은 전투나 사냥에 대한 업적보다는 퀘스트에 욕심이 났다.
“좋습니다. 저도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 화령 : 네. 그러세요.
* * *
농부 미레타스, 재봉사 드라고어, 바드 마레이, 건축가 미블로스.
한 분야에 정점에 달한 유저들이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도 악룡 케이베른을 해치우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지 않겠는가?”
미블로스의 제안에 다른 유저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뜻은 좋지만 재봉사는 정말 전투력이 없어서요. 무슨 도움이 되기나 하겠습니까?”
드라고어는 슬며시 발을 빼려고 했다.
기나긴 재봉 마스터의 길이 끝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앞으로 빨아야 할 세탁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찢어진 부분들을 수선도 해야 하고, 멋진 무늬들도 유행을 시켜야 했다.
처음에는 최초의 직업 마스터를 꿈꾸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영광임에는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재봉사로서 최초라는 타이틀도 탐나서 다른 곳에 시간을 쓰기 아까웠다.
“저는 참여할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말이지요.”
바드 마레이는 멋진 장면들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참석을 결정.
미레타스는 농부지만 무언가를 기여하고 싶었다.
“악룡 때문에 내리는 비가 농작물들을 시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일이나 마찬가지니 당연히 참여하겠습니다.”
이제 세 유저들의 시선은 드라고어에게 모였다.
“아…… 이거 곤란한데.”
드라고어는 고민에 잠기긴 했지만, 북부의 유저들이 떠올랐다.
항상 밝고, 즐겁게 로열 로드를 하는 유저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저도 합니다. 한다고요! 할 게 뭐가 있는진 모르겠지만요.”
그렇게 네 유저는 악룡 케이베른을 해치우기 위한 퀘스트에 합류하기로 했다.
* * *
“드래곤을 썰려면 칼은 바꿔야 될 거 같다.”
“흐흐. 드디어 우리가 검은 용을 잡는군.”
“저것도 조류인데 구워 먹으면 맛있겠지 말입니다.”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의사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위드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505명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전사들!
하지만 페일은 이번에는 호락호락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위드 님이랑 함께하는 건 고생이잖아.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 한마디에 승낙하는 쉬운 남자가 아니란 건 보여 줘야 해.’
하지만 그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들아. 이번 모험에는 꼭 앞장서서 다녀야 한다.”
“네? 엄마. 왜요?”
“그래야 방송에서 눈에 잘 띄잖니.”
“크흠. 저도 나름 유명인으로서 활약을 하는데요. 단독 방송도 몇 개 있어요.”
페일은 전투력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당연히 위드와 비교할 부분은 아니지만, 그를 따라다니면서 1인분 이상을 하는 것도 훌륭한 실력이었다.
“넌 뒤에서 활만 쏘면 눈에 띄질 않는단다. 그리고 근육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피라는 동료 낚시꾼처럼 잘생긴 것도 아니야.”
“그…… 그래도…….”
“사람들이 참여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잖니.”
페일은 싫은 척해도 위드와 퀘스트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로열 로드의 생활이란 평범해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벨로트, 이리엔, 수르카 등의 동료들도 함께하기로 했고, 화령도 이번 퀘스트에는 동참을 결정했다.
“진짜 화끈하겠다.”
그녀는 무엇보다 모험을 좋아하는 정열적인 여자였다.
“이거 참 곤란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고생을 할 텐데요.”
“웬만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위드를 따라다니는 일은 정말 힘들어.”
“초인입니다. 초노가다인이요.”
파이톤과 양념게장도 갈등에 빠지기는 했지만 참여를 결정했다.
로암, 칼리스, 미헬, 군트.
그들은 인근의 다른 대영주들과 함께 회합을 열었다.
레벨이 높고, 예전 길드로 활동하던 이들로 구성된 회합이었다.
그들끼리의 원한 관계는 깊었지만 헤르메스 길드에 의해 전부 패배하면서 지금은 과거사는 잊고 뭉쳐 있는 상태였다.
TO BE CONTINUED
“드래곤 사냥이라니 조금 무모하지 않습니까?”
“역시 그렇죠. 헤르메스 길드와 드래곤의 전투를 보더라도 위험해요.”
회의적으로 시작한 회합.
영주들은 눈치를 보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이 장면이 방송으로 중계가 되고 있어. 목소리를 근엄하게 내면서 표정 관리가 핵심.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전격적으로 참여하자.’
‘위드가 이끄는 드래곤 사냥이잖아. 성공이 뭐가 중요하냐. 참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
‘대륙의 패권 달성? 우선 영주로서 기반을 확실히 다져야 한다. 그러자면 이런 이벤트는 빠질 수가 없고.’
‘어차피 다들 참여할 거면서. CTS미디어에서 이번 회의 방송 제안했더니 거절하는 놈이 한 명도 없더라.’
영주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을 감추었다.
‘위드. 그 옹졸한 놈이 우리가 거절한다면 어떤 뒤끝을 보일지 몰라.’
‘뒤통수를 칠 때 치더라도 그 전까지는 충실한 심복 역할을 하자. 그림자처럼 잘 따라야지. 우릴 철저히 믿도록…… 그렇게 신뢰를 쌓으면서 위드가 절대 의심하지 않도록 해야지. 세력을 마구 확대하다가 절묘하게 뒤통수를 따악!’
영주들마다 나름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개최한 회합이었다.
다들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도 없고,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던 회합은 저녁이 되자 결론이 나왔다.
“대륙의 평화를 유저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흑사자 길드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케이베른을 끝장낼 것입니다.”
“블랙소드 용병단도 빠지지 않겠습니다. 선두에 서도록 하죠.”
“사자성은 용감한 전사들로 결성되었습니다. 기꺼이 사냥에 동참하도록 하죠. 우리가 없으면 드래곤 사냥에 성공하기 힘들 테니 말입니다.”
“칸데라 길드. 우린 7개 길드의 연맹체로 재탄생했지요. 대륙의 평화와 아르펜 제국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 도시와 넓은 땅을 소유한 아르펜 제국의 영주들은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렇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위드의 드래곤 사냥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 * *
위드는 객관적으로 악룡 케이베른 사냥이 어렵다고 봤다. 아무리 블랙 드래곤을 처치하고 싶더라도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승산을 억지로 높이는 수밖에는 없어.”
애초에 레벨 400 이상 외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니, 50만 명이 훌쩍 넘는 유저들이 지원했고 지금도 늘어나는 점이 큰 자산이었다.
북부는 당연했고, 중앙 대륙의 고레벨 유저들이 전부 경쟁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쓸 만할지는 두고 봐야 알 테지만.
“이 인원들을 데리고 어떻게 하실 겁니까?”
페일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이렇게 많은 유저들과 몰려다니며 설마 퀘스트를 진행할 것인가.
그들을 나누어서 누군 받아들이고, 누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만이 대단할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싸울 생각이 없던 유저들도 막상 자신들이 제외되는 것엔 기분 나빠하기 때문이다.
“굴려야지요.”
“네?”
“노가다의 장점이 뭘까요?”
“음. 꾸준히 일해서 성과를 낸다?”
“달라요. 그건 일하는 사람의 입장이고 악덕 사장의 관점에서 보면…… 에헴.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의 노동력이 확보되는 겁니다. 노동력 확보. 이게 아주 중요해요. 그러니까 뭐든 시키고 굴리면 해결됩니다.”
“……?”
페일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착한 성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드의 이론은 지극히 단순했다.
저기에 산이 있다.
저 산을 옮겨야 된다.
내가 가진 건 엄청 많은 인력들이다.
문제 해결의 방식에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최소한의 수고를 하며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도 있었다.
위드는 달랐다.
‘그걸 왜 고민해? 그냥 옮기게 해.’
악덕 사장의 마인드!
진정한 노가다란 뭐든 되도록 시키는 것이다.
다만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면, 모여든 유저들은 아직 훌륭한 노가다꾼이라 불릴 수 없었다.
눈치를 보고, 생각을 하는 존재들.
사회가 발전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서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위드는 이 부분에서는 검치와 수련생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스승님. 백 명만 부탁드립니다.”
“어렵지도 않은 일이군. 마음대로 다뤄도 되냐?”
“그럼요. 함부로 막 다뤄도 된다고 지원서에 서명 받았습니다.”
“요즘 애들은 말을 잘 안 들을 텐데…….”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스승님 방식대로 데리고 다니시면 됩니다. 사형들도 인원을 좀 맡아 주세요.”
위드는 무기를 다루는 전사 계열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몽땅 검치와 검둘치를 비롯한 사범들, 수련생들에게 맡겨 버렸다.
“위험하게 해도 될 겁니다. 계약서에도 서명을 받았지만 죽으면 자기 탓이죠. 철저히 굴려서 쓸 만한 전사로 만들어 주세요.”
“알겠다.”
드래곤을 물리치겠다는 포고문에 모인 유저들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실력자들을 맡겼다.
그들을 남부 사막으로 데려가서 검치와 수련생들과 함께 싸울 작정이었다.
“레벨이 높을수록 비효율적으로 싸우는 방식들만 개선해도 전투력이 크게 늘어날 거야. 그리고 드래곤과 싸울 때 스스로 뭘 해야 할지를 느껴야 해.”
위드는 유저들의 전투 방식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레벨 유저들일수록 위험하게 싸우지 않는다.
목숨을 잃으면 생기는 피해가 너무 크기에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 또 상대 가능한 몬스터들을 안정적으로 많이 잡는 이들이 많았다.
이른바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모범생처럼 꾸준히 강해진 유형들이 많다고 할까.
야구, 축구와 같은 현대 스포츠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과학적인 운동을 한다.
지나친 혹사는 몸을 상하게 만들고, 운동 능력을 떨어뜨리고 부상까지 당하게 하니까.
‘하지만 이곳은 로열 로드야. 죽는 걸 걱정하면 자기가 가진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없어.’
사냥터에서 거칠게 구른 이들은 오히려 헤르메스 길드에 많다고 볼 수 있었다.
“험한 전투를 실컷 경험해 보면 도움이 되겠지. 그러지 않으면 막상 드래곤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관객에 불과할 테니.”
위드는 소위 엘리트로 분류되는 이들을 남부 사막으로 보내고, 남은 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사냥을 다닐 것입니다. 가르나프 평원에서 활약했던 부대장들도 있고, 로암 님이나 칼리스 님 같은 분들도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겠죠. 단기 속성으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 최고의 사냥터와 환경을 조성해 드리겠습니다.”
몬스터들이 일제히 활동하는 위기.
케이베른을 퇴치하기 위해 성장을 해야 한다는 명분을 활용, 유저들을 몬스터 토벌에 동원하겠다는 의미였다.
“최선을 다해 주세요. 결과만 보고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위드 님.”
“로암 님.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대들보다도 많은 활약을 하리라고 믿어도 되겠죠?”
“그 기대에 꼭 부응시켜 드리겠습니다.”
위드는 40만 명의 유저들을 천 개의 부대로 나누어서 대륙 전역으로 뿌렸다.
이 과정이 고작 하루!
실상 드래곤 사냥에 참여하기로 한 이들도 이렇게까지 신속하게 일 처리가 될 줄은 몰랐다.
일부는 남부 사막으로 가고, 나머지는 대륙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사람들의 노동력 착취와 부대장들끼리의 경쟁을 바탕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대륙의 안전이 최소한 2단계는 높아졌음이 틀림없었다.
매주 파괴될 마을과 도시들이 수십 개씩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일 처리를 지켜보던 마판은 두툼한 볼살을 푸들거리며 놀랐다.
“대단하십니다. 위드 님! 어느 정도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황제가 되시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하셨군요.”
“…….”
옆에 서 있던 제피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일을 빠르게 진행했단 의미겠지? 그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말이야.’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마판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크흐흣. 사람들의 생각이란 간사한 면이 있죠. 몬스터들을 퇴치한다는 목적으로 40만 명이 넘는 고레벨 유저들을 모으려고 했다면 그 자체도 힘들었을 겁니다. 더구나 대륙을 매일 떠돌면서 싸우는 건 불가능이었을 겁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더라도 힘든 일.
북부 대륙의 상권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중앙 지역까지 진출한 가늠하기 힘든 마판 상단의 재력을 다 투입해도 안 될 것이다.
“근데 이걸 몇 마디의 말로 케이베른이 최종 목표이고 중간에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바꾸어 버리니……. 아마 저들은 고생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지겠죠. 더 강해지려고 할 테고요.”
“…….”
제피는 그제야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위드가 한 것이라고는 포고문을 내걸고, 말 몇 마디를 한 게 전부다.
고작 그것으로 평소에 모아 놓기도 힘든 40만 명의 고레벨 유저들이 노예처럼 사냥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앞으로 큰 목표를 함께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황은 틀림없이 동일한데 유저들의 마음가짐은 달라지게 만들었다.
앞으로 고된 몬스터 사냥에 동원될 유저들은 위드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 짜인 부대들끼리는 실적을 경쟁하기 바쁘고, 모든 것은 케이베른 퇴치란 큰일을 위한 과정이 되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병력을 소집해서 몬스터 퇴치에 몰아넣었어.’
제피는 오래전에 동료로 만나면서 평범하게 봤었다.
대단한 퀘스트를 해결하며 유명인이 되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운과 고생을 함께 몰고 다녔으니까.
‘그냥 판단력이 뛰어났던 거야.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이 생기지만, 위드 님은 그걸 다 어떻게든 해결해 버렸어.’
본인 스스로 독종이면서, 전투의 천재, 남다른 생존 본능을 가졌다.
다른 유저들을 활용할 줄 아는 선동가였고, 뛰어난 전략을 세울 줄도 알았으며, 그것을 어떻게든 실행하는 실천 능력도 확보했다.
‘맨날 200원 비싼 소금을 샀다고 푸념하고 그래서 얕본 면이 있었어. 자세히 생각해 보니 진짜 보통 인간이 아니잖아.’
처음에 우연히 만났던 위드가 아르펜 제국의 황제가 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러분들의 부대장은 접니다. 저와 같이 다니겠습니다.”
위드는 엘리트 병력들. 전사나 기사들은 남부 사막으로 보냈지만 나머지 직업들은 직속 부대로 편성했다.
웅성웅성
유저들 사이에 소란이 일어났다.
“정말 위드 님이랑 같이 다닌다는 거야?”
“레벨을 올려 줄 모양인데.”
“그게 어디 쉽나. 내 레벨도 500이 다 되어 가는데.”
“대박이다. 사냥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퀘스트만 할 줄 알았는데.”
“방송도 타면서 말이지.”
유저들은 순수하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위드와 사냥을 떠난다니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을 가는 것처럼 흥미롭기까지 했다.
로뮤나와 페일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한 후였지만.
“레벨을 올린다고?”
“그것도 단기 속성으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