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4권 : 6. 퀘스트의 갈림길 (385/520)

6. 퀘스트의 갈림길

위드는 파푸아킨의 혈사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미심쩍은 기분을 느꼈다.

“케이베른이 이전에도 인간들을 공격했어? 원래 악룡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전과가 있으니만큼 더 믿을 수 없는 존재!

왠지 상습범의 냄새가 풀풀 나는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중앙 대륙에서도 제보가 도착했다.

케이베른이 인간 용병으로 활동하던 검은 전사, 마법 창조물인 푸른 이끼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 냈다.

검은 전사는 대지의 교단과 관련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성물인 땅의 망치를 훔쳐 간 것이다.

“아주 마음대로 해 먹고 살았구나.”

위드가 혼자 알아내려고 했다면 수개월은 걸렸을 정보들이 유저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확보되었다.

띠링!

진정한 용사 완료.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

그에 과거에 대해 알아 갈수록 공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생명체들을 희롱하며 짓밟는 악룡.

그가 지금까지 대륙의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에게 입힌 피해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모든 종족들이 케이베른을 물리치길 원할 것입니다.

용사여……

아직 케이베른을 막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 있습니다.

옥턴의 현자 브리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 퀘스트에 대한 보상으로 모든 스탯이 5 증가합니다. >

< 현자 브리오와 대화를 나누면 용사의 선택 연계 퀘스트로 이어지게 됩니다. >

“으음. 옥턴이라…….”

위드는 조금이지만 곤란함을 느꼈다.

현자 브리오가 사는 옥턴은 하필이면 하벤 지역에 속해 있는 도시였다.

“날 보면 헤르메스 길드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병력 준비할까요?”

정보들을 가져온 레몬이 씩씩하게 말했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악룡 케이베른을 막기 위해 하벤 지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엄청난 유저들이 모일 것 같았다.

가르나프 평원에서처럼은 병력을 동원하지 못하더라도 헤르메스 길드도 크게 약해졌다. 어느 정도의 규모만 모은다면 충분히 하벤 지역을 정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 바로 베르사 대륙 통일인데?’

위드의 머릿속에 순간 여러 가지 이득들이 스쳐 지나갔다.

유니콘사에서는 전 대륙을 통일한 이에게 막대한 상금을 걸었다. 최초의 통일 황제라는 위업도 무시 못 할 영광이다.

당연히 욕심이 나는 상황이긴 하지만, 적을 얕보는 것만큼 위험한 판단도 없었다.

막다른 길에 몰린 헤르메스 길드에서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면 도시 하나, 요새 하나를 얻을 때마다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야 했다.

큰 전투에서 패배하고 대륙에서 철수했지만, 하벤 지역은 천험의 요새였다.

‘무리해서 공격하는 사이에 케이베른과 몬스터들에 의해 대륙이 초토화가 될 수 있겠지. 스스로 양쪽에 적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야.’

위드는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했다.

“아뇨. 지금은 시간을 아껴야 될 것 같군요. 헤르메스 길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다녀오도록 하죠.”

위드는 유린을 데리고 그림 이동술로 몰래 옥턴에 잠입했다.

학문의 도시 옥턴.

거리는 한산하고 유저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벤 지역에 유저들이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지만, 본래 지도 제작술이나 식물학, 몬스터 특성, 역사학 등을 배울 수 있는 옥턴은 모험가들 외에는 인기가 없는 도시였다.

현자 브리오는 큰 저택에서 살고 있었기에 금세 찾아서 도착했다.

정문에 경비병들이 서 있었다.

“무슨 일로……. 헉. 역사를 새로 쓰는 모험가이며…….”

“됐어. 들어간다.”

위드의 명성으로 정문을 가볍게 넘어서서 정원에 있는 현자 브리오를 만났다.

그는 새하얗게 머리가 세어 있는 노인이었다.

“이제야 오셨군요. 새로운 발걸음을 만들어 가는 명예로운 분이여…….”

“현명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위드입니다.”

위드는 아르펜 제국의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황제라는 직위는 평범한 주민들에게는 명령만 내려도 되었지만 아부를 하는 것이 훨씬 익숙했다.

위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악룡 케이베른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를 막기 위해 왔습니다.”

“반드시 막아야지요. 하지만 드래곤을 막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험하고…… 또 위험합니다. 용사에게 날카로운 검이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브리오는 악룡 케이베른에 대한 이야기들을 몇 가지 꺼냈다.

드워프 왕국 토르에서 얼마나 큰 행패를 부렸는지가 중심이었고, 레어에 있을 보물에 대해서도 말했다.

“전쟁의 시대에 여러 왕국들은 주기적으로 보물을 바쳤습니다. 드워프에게는 당연한 의무였고, 몬스터들도 얻은 금은보화들을 케이베른에게 바치고 힘을 얻었습니다.”

“힘을요?”

“육체를 강화하거나 지능을 얻어서 부족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죠. 케이베른의 레어에는 아마도 다른 드래곤들보다 훨씬 많은 보물이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꿀꺽.”

위드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고이는 군침.

브리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는 젊어지는 마법도 있다고 하지요.”

“젊어지는 마법이요?”

“육체를 다시 어려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어에 쌓여 있을 보물들이 있으면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되어 완벽히 팔자를…….”

꼴깍.

꿀꺽!

이번에 브리오와 위드는 거의 동시에 침을 삼켰다.

“…….”

“…….”

현자 브리오!

그는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지만, 돈을 밝힌다는 소문이 있었다.

‘소문이 맞는 것 같군.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있어. 그럴 때가 더 정확하지.’

위드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스러운 현자보다는 욕심이 많은 편이 낫다. 끼리끼리 논다고 훨씬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이었다.

“흠흠. 적어도 수백 년 동안 모아 온 드래곤의 보물입니다. 얻기 쉽지는 않겠지요. 인간들을 공격하는 케이베른을 막을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나 됩니까?”

“하나는 용사가 휘두르는 날카로운 검이고, 다른 하나는 타협입니다.”

“타협이라…….”

“케이베른이 좋아하는 것은 결국 보물입니다.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귀한 보물이라면 대륙은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띠링!

선택의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은 인간의 힘으로는 꺾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에게 대항할 것입니까.

아니면 진귀한 보물을 바치고 목숨을 구걸할 것입니까.

결정에 따라 퀘스트 진행 방향이 달라집니다.

‘흠. 싸울 것이냐. 보물을 바치고 적당히 타협을 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군.’

위드는 경제적인 효율을 따지자면 더 이상의 도시 파괴는 없도록 보물을 바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케이베른을 진정시키고, 하벤 지역을 정복하면 통일 황제라는 실리를 얻게 된다.

물론 보물을 주는 쪽으로 결정한다면 언젠가 복수는 해야 되었다.

‘나중에 케이베른을 없애고 드래곤의 보물을 얻으면 돼.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는데…….’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이 무척이나 강하기 때문에 전투를 피할 수 있다는 건 큰 유혹이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케이베른이 만족하려면 어느 정도의 보물을 바쳐야 할까요?”

브리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잘 꾸며진 정원으로 시선을 옮겼다.

“드래곤의 탐욕을 충족시켜 주려면 정원 가득 황금을 쌓아야 합니다.”

“쌓는다고요?”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주어야지요.”

“…….”

“아니라면 가장 진귀한 물품을 200개 정도 바치면 될 것입니다. 보석, 예술품, 마법 물품. 위대한 분께서 지금 입고 있는 갑옷이나 검 정도면 케이베른도 받을 것입니다.”

막 전투를 펼치다가 유린의 그림 이동술로 왔다.

평범한 여행복을 위에 입고 있긴 했지만, 안에는 파비오와 헤르만이 다시 크기를 줄여 준 하늘 지배자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최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로아의 명검까지.

‘이것들을 다 주어야 한다고?’

위드가 소유한 장비와 보물들 중에서 드래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물품들은 대략 20가지 정도는 될 것이다.

‘이걸 다 주더라도 턱 없이 모자라다.’

모라타의 예술 회관 등에 있는 대작 조각품도 여기에 더하고, 모험가나 상인들로부터 평화를 위해 상납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공짜는 아니리라.

마판과도 거래에 대해서는 1쿠퍼까지도 정확히 계산하여 나누고 있었다.

‘아르펜 제국의 세금 수입을 감안하면 나중에 어떻게든 복구는 되겠지만……. 이건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는 정도가 아니로구나.’

밥상을 통째로 뺏어 먹고, 탕수육에 치킨까지 한 마리 시켜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완전 양아치 드래곤이네. 게다가 현자라니……. 중간에 끼어서 협상을 중개하는 게 의심스러운데. 세상에 믿을 놈이 없잖아.’

베르사 대륙의 현자라는 존재들은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하다지만, 그들이 모두 선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똑똑한 놈들이 사기와 삥땅을 더 잘 치는 거야.’

세상에 믿을 놈이 없으니 배달 사고도 당연히 의심을 했다.

현자 브리오가 양심이 있다면 1, 2개. 혹은 속이 시커먼 도둑놈이라면 절반까지도 챙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찝찝해. 케이베른에 대해 모아 놨던 정보들도……. 인간의 뒤통수를 치기 상당히 좋아한다는 내용이었어.’

위드는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결정을 내렸다.

“이미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이 검으로 케이베른을 벨 수 있을진 모르지만 물러서진 않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케이베른은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존재입니다. 드래곤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용사의 드높은 명예가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무시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 케이베른에게 굴복한다면 그의 탐욕이 여기서 끝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토르의 드워프들처럼 끊임없이 수탈을 당하겠지요.”

띠링!

< 퀘스트의 중대 선택을 마쳤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과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

<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은 믿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통찰력이 영구적으로 15 증가합니다. >

“으음.”

속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정말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

현자 브리오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전투만이 답은 아닙니다. 제가 나서면 케이베른을 확실히 진정시킬 자신이 있는데…….”

“…….”

위드는 살짝 고민을 했다.

‘이걸 확 죽여? 이 건물 지하실 같은 곳을 뒤져 보면 삥땅 쳐 놓은 보물들이 많이 있는 거 아냐?’

도둑과 현자는 한 끝 차이.

브리오는 다행스럽게도 퀘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날카로운 검은 용사의 눈과 마음을 흐리게 하지요. 무모한 길이지만 케이베른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선택을 했던 이가 과거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프엘프 비슈르이지요. 하지만 그녀는 미궁 조드로 떠나고 나서 다신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안 나타났다고요?”

“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케이베른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프엘프 비슈르.

오랜 과거,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을 상대로 검을 뽑았던 하프엘프 비슈르가 있었다.

인간과 엘프의 혼혈이던 그녀는 정령술과 검술을 동시에 궁극의 경지까지 익힌 영웅.

“케이베른의 만행에 꽃과 나무들이 울부짖고 있어요. 더 큰 위험이 닥치기 전에 반드시 막아야 해요.”

미궁 조드로 가서 사라진 그녀를 찾아야 한다.

난이도 : S

퀘스트 제한 : 대륙을 구하는 영웅

가장 높은 모험 명성.

< 어떤 상황에도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

<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

TO BE CONTINUED

‘하프엘프 비슈르라면 엘프 종족의 실종된 영웅인가. 엘프들과도 연결이 되는군.’

위드는 기다리고 있던 유린을 만나서 학문의 도시 옥턴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마판과 만난 후에 베르사 대륙의 모든 유저들에게 공지했다.

- 케이베른을 막기 위해 하프엘프 비슈르, 미궁 조드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는 분께는 사례합니다.

하프엘프 비슈르에 대해서는 그 즉시 엘프 유저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 정확한 건 아니에요. 근데 엘프 장로가 잠깐 말한 적이 있는데, 인간이기도 하면서 엘프인 위대한 검사가 있었다고 했어요.

- 동부 숲에서 엘프의 역사상 강자가 태어났대요.

- 저도 그 이야기 들은 적 있음. 궁술 마스터에 다다르고 땅과 바람의 축복을 타고난 엘프의 이야기를 들음.

- 탄노마의 정령 사건을 해결한 엘프의 이름이 비슈르였던 것 같은데.

- 윗분 말씀 동감. 탄노마에서 F급이랑 E급 퀘스트하면서 땅에 묻혀 있던 나무 뿌리에 비슈르 이름 적힌 거 봤어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골동품 상점에서 3만 골드에 사서 깜짝 놀람.

- 엘프족으로 레벨 510인 하루나입니다. 숲에서만 쭈욱 생활해서 장로 분들과 친하게 지내는데요. 꽃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가르나프 평원 전투에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번에 위드 님 퀘스트로 장로님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나무들이 불에 타고 복수를 위해 검을 들었던 엘프가 있었대요.

엘프들을 통해 하프엘프 비슈르에 대한 정보 수집들이 이루어졌다.

미궁 조드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던전인 것이다.

- 미궁 조드가 대체 어디죠? 완전히 처음 듣는 이름인데.

- 쿠클란은 제가 집처럼 잘 알고 있습니다. 레벨 700대, 800대의 던전들이 몇 개 숨겨져 있긴 하지만 미궁의 구조는 아닙니다.

- 사이페스 지역에도 미궁 조드는 없어요. 여기서 지금까지 발굴된 던전은 다 들어가 봤는데 장담합니다. 모험가 곰달의 이름을 걸 수도 있습니다.

- 모라타의 대도서관을 싹 뒤져 보고 있습니다. 미궁 조드는 아무리 봐도 없네요.

- 엘프의 숲을 수색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우드엘프 조랑입니다. 엘프들도 모두 나서서 찾아보고 있어요. 엘프들은 원래 숲에서 퀘스트를 발견하며 진행하기에 나름 지역에 대해서 잘 압니다. 그런데 없는 것 같아요.

상당수의 유저들이 자신의 일처럼 나서 주었다.

위드가 진행하는 용사 퀘스트에 참여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 나간다.

뜻하지 않게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 제발 찾아 주십시오. 마법사 존테입니다. 위드 님의 퀘스트 참여 시작하고 9일째 사냥 중인데요. 처음에는 한국식 단기 속성 렙업 과정이라고 소개를 하더라고요? 아싸. 좋구나 했죠. 그 이후로 확실히 레벨은 17개가 올랐습니다만 그동안 먹은 건 보리빵과 나무 열매, 풀죽이 다입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 궁수 보록터입니다. 윗분과 같이 사냥하고 있는데. 이곳을 소개하자면 사냥 지옥입니다. 첫날부터 화살을 다 쏘고 쉬는 게 희망이었는데, 조인족 보급 부대가 화살 30만 발을 뒤에 들고 따라오고 있는 걸 봤습니다.

- 모라타의 대장장이입니다. 현재 2시간에 100만개씩 화살을 만들고 있습니다.

- 기계가 됩시다. 그냥 화살을 쏩시다. 레벨이 몇 개인지 궁술 스킬이 올랐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삽시다.

- 저는 미국인입니다. 도대체 한국은 어떤 국가입니까? 무슨 문화와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거죠? 위드가 처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약한 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의 노가다면 됩니다. 바로 시작하면 되죠.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괴로워서 견디기 힘들 때도 말했죠.

“시험 전에 벼락치기를 한다고 생각하세요. 다 끝나면 좋은 추억일 겁니다. 엄청 좋은 추억이죠. 뭐든 할 수 있는 인내심과 자신감이 길러질 테니까요.”

몰래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근데 위드가 또 말했습니다.

“노가다를 하며 몸은 견딜 수 있습니다. 힘든 건 마음이죠.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버리세요.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인간이란 정말 적응력이 뛰어나거든요.”

우리 사냥 팀은 위드를 존경하면서 시작했고, 지금은 두렵습니다.

어제는 꿈도 꾸었습니다.

꿈에서 위드가 말하더군요.

“사냥이 즐겁죠? 크헤헤헷. 열심히 하는 분들은 케이베른을 잡고 나서도 영원히 저와 같이 다닐 수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악마예요. 악마.

케이베른보다도 위드가 바로 악마인 것입니다.

그와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페일 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어째서 뒤늦게 시작하고도 빨리 강해졌는지, 그 비결은 사냥터나 스킬이 아니었습니다.

노가다죠.

위드와 이런 노가다를 틈틈이 했는데 강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 제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 우린 노예입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냥만 할 겁니다. 언젠가 이 지옥에서 제발 구해 주세요.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맹세합니다. 언제나 초보들을 배려하며 착하게 살겠습니다.

위드의 퀘스트를 함께하기로 한 유저들은 서서히 사냥 노예처럼 바뀌어 가고 있었다. 방송의 영향 때문에 벗어나지도 못 하는 신세였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서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매우 고되고 힘들지만 묘하게 뿌듯한 기분이 한 번씩 들기도 한달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을 마주쳐도 두렵지 않았다.

악룡 케이베른과 싸울 날마저 반갑게 기다려졌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보리빵이 갑자기 맛있어지고, 10초 정도 눈만 감고 있어도 행복해졌다.

- 사냥 팀에 속해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희망이 있어요. 우린 이걸 끝내고 영웅이 될 겁니다.

-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하하하하.

- 위드 님만 따라다니면 될 것 같군요. 방송으로 나온 저를 보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어젠 마법 주문 외우는 속도가 빠르다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제 인생을 위드 님에게 맡길 겁니다. 음. 좋은 선택이냐고요? 모르겠어요. 근데 그래야 편할 것 같아요.

괴로움, 슬픔, 좌절을 떠나서 무념의 상태!

로열 로드에서도 엘리트들을 뽑아 놓은 것이지만 사냥터에서 막 굴리니 죽지 못해 적응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 * *

위드는 고요의 사막에 모래 폭풍이 생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슈르나 조드에 대해서는 정보들이 조금 더 모여야 하고……. 그렇다면 직업부터 해결해야 되겠군.”

유린의 그림 이동술로 최대한 가까운 사막 마을로 옮겨 온 후에 낙타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려서 도착했다.

고요의 사막.

반경 3킬로미터에 달하는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래가 하늘로 빨려 들어가며 세상의 빛을 잡아먹는 신비로운 광경.

“태양의 눈이라. 확실히 별명이 붙을 정도로 거칠긴 하군.”

바람이 사방을 휩쓸고 모래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검오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폭풍이 생각보다도 큰데 괜찮겠냐?”

“예.”

위드는 하늘 지배자의 갑옷부터 방어구들을 하나씩 벗었다.

퀘스트를 위해서는 무기 하나 외에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맨몸으로 폭풍을 걸어가야 한다.

웬만한 심장으로는 겁이 나서 힘든 일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멋지게 해치워라.”

위드는 검오치와 수련생들, 그리고 사막 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걸어갔다.

모래 구릉을 잔뜩 메우고 있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동안 사막에서 죽기 살기로 사냥을 하던 유저들이 구경을 왔다.

< 모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생명력이 매초마다 160씩 감소합니다. >

모래 폭풍의 반경에 들자마자 방어구가 없기 때문에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렇다니 만만치 않겠군.’

위드는 사막의 대제왕 시절과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쌍봉낙타를 타고 돌격하여, 하늘과 사막을 한꺼번에 갈라 버리는 위력으로 검을 내려치며 폭풍을 부쉈다.

‘레벨 차이가 대략 300 정도. 비교가 안 되는 신체 능력이긴 하지.’

< 모래 바람이 몸에 스치고 있습니다.

생명력이 매초마다 280씩 감소합니다.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버틸 수 있는 높은 인내와 맷집으로 줄어드는 생명력을 절반으로 감소시킵니다. >

조각사, 네크로맨서를 거치면서 전사로 쭉 큰 것에 비해서 힘과 민첩, 생명력과 맷집 등도 훨씬 떨어졌다.

위드는 생명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빨리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모험을 한 게 있는데 이 정도는 해내야지.’

그렇지만 모래 폭풍에 절반 정도 다가가자 생명력이 매초마다 350씩 감소했다.

“눈 질끈 감기!”

눈을 감아서 방어력을 높이고, 오랜만에 피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스톤 스킨도 사용했다. 그러자 소모되는 생명력이 100 이하로 줄어들었다.

마스터에 달하는 붕대 감기는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지만, 소모품의 사용마저 금지되어 있어서 쓸 수가 없었다.

위드는 바람에 의해 하늘로 날아가지 않도록 몸을 낮추고 한 걸음씩 걸어야만 되었다.

< 인내력이 1 증가합니다. >

인내와 맷집이 전사의 기본.

앞으로 걷기 위해서는 힘과 체력도 필요하다.

모래 폭풍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견디며 전진하니 인내력이 올랐다.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는 그냥 달려가서 베어 버렸는데…… 기본적인 힘에서 차이가 커. 게다가 생명력이 너무 낮아.’

생명력은 12만 8천.

오랜 기간 조각사로 성장하면서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많이 늘어나지 못했다.

불꽃의 성배와 하늘 지배자의 갑옷 등이 최대 생명력을 늘려 주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처참한 상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낮은 생명력은 극복되기 힘든 약점이었다.

난이도 S급의 퀘스트도 여럿 깼지만 지금처럼 몸으로 뚫고 부숴야 하는 의뢰는 난이도가 A급이라고 해도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 몰아치는 모래 바람이 살갗을 파고듭니다.

막대한 피해!

생명력이 9,286 감소했습니다! >

모래 폭풍에 깊게 들어갈수록 피해가 커졌다. 온몸이 따갑고 아팠으며 앞을 보기가 어려웠다.

남아 있는 생명력은 6만!

위드는 바람에 몸이 공중으로 날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죽음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퀘스트도 실패다.’

도저히 약한 몸으로 폭풍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쭉 전사가 아니었던 탓에 조각사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퀘스트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조각 파괴술로 맷집을 늘려? 그래도 힘이 너무 낮아서 장담할 수 없는데.’

방어력을 높이고 다시 도전하는 것도 고려를 해 봤다. 하지만 힘이나 민첩도 부족하다면 폭풍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가질 못했다.

‘어느 하나를 높이더라도 나머지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부족해. 그동안 노가다로 스탯들을 올려놓긴 했지만……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그 순간 잔머리가 돌아가면서 실낱같은 가능성,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떠올랐다.

‘잘못되면 영락없이 죽을 텐데…… 아니. 오히려 안전해지려나? 망설여선 안 돼. 시간을 끌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거야.’

위드는 결심이 서자마자 땅으로 엎드렸다.

“네 발 뛰기!”

다다다닥!

오랜만에 사용하는 스킬로, 말처럼 경쾌하게 달리는 위드!

< 모래 폭풍이 당신의 몸을 강타합니다.

생명력이 7,286 감소합니다. >

< 바람을 등에 받고 있습니다.

이동 속도가 198% 증가합니다. >

TO BE CONTINUED

모래 폭풍을 정면으로 뚫는 것이 아니었다.

위드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비스듬히 달리며 속도를 높였다.

소용돌이치는 바람과 함께 돌면서 달렸다.

< 놀라운 업적. 최고속 경신!

전설적인 명마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습니다.

민첩이 영구적으로 6 증가합니다.

이동 속도가 추가적으로 10%까지 늘어납니다. >

< 호칭! 바람의 전사를 획득하셨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이동 속도!

당신이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몬스터들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동 스킬. 바람 질주를 얻었습니다. >

위드는 빛조차 집어삼키는 모래 폭풍 속에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의 힘이 점점 거세지면서 막강해진다. 바람과 비슷하게 빨라지니 생명력의 손실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 속도가 정점에 달했다고 느낀 순간!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이 맷집이 되어라.”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3800을 넘는 예술 스탯.

그것들을 전부 육체의 방어 능력을 높이는 데 사용.

적어도 열 가지 이상의 보호 스킬들이 몸에 적용되었다.

최대 생명력도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타앗!”

위드는 전력을 다해 모래 폭풍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건물을 부수고, 땅을 헤집어 놓는 거대한 모래 바람의 흐름.

바람의 장벽을 속도를 바탕으로 몸을 던져서 뚫어 내려 했다.

“눈 질끈 감기!”

생명력이 줄어드는 메시지 창이 계속 떴다.

칼날 같은 모래 바람에 맞으며 버틸 수는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땅에서 몸이 하늘로 떠오르고, 모래 폭풍에 휘말리면서 회전했다.

모든 것이 틀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있지 않은 한순간.

휘몰아치는 바람이 약해지며 정적마저 느껴지는 그 찰나가 있었다.

‘됐다.’

모래 폭풍을 정면으로 뚫지 못한다면 그냥 몸을 던져서 들어오는 단순한 방법.

“신성한 불.”

화르륵!

여신 헤스티아의 선물인 신성한 불이 로아의 명검을 화려하게 타오르게 만들었다.

“용암의 강!”

위드는 하늘에서 망설임 없이 스킬을 터트렸다.

* * *

바로바.

그는 로열 로드를 칼라모르에서 시작한 전사 유저였다.

“남자라면 전사야. 전사. 다른 직업은 애들 장난과 같지.”

든든한 맷집과 강한 공격력.

창과 도끼를 다루지만 활은 취향도 아니었고, 마법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몬스터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어디 재밌게 붙어 보자.”

사냥터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얼마 후부터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은 이야기했다.

“싸움꾼 바로바에 대해서 알고 있나? 혼자서 그롬바 던전을 전부 쓸어버렸다는군.”

“쿠훌란의 유령들이 바로바라는 전사 때문에 몽땅 도망쳤다는 소식이야!”

“뱅거슨 마을을 침략한 몬스터들이 전사 바로바의 활약에 퇴치가 되었다고 해.”

전투 명성을 베르사 대륙에서 크게 날렸다.

그 당시에 위드가 리치 샤이어가 이끄는 불사의 군단을 퇴치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코웃음을 치며 넘겼다.

“조각사라고? 할 일 없는 광대들이나 그런 쇼를 보고 좋아하지. 나랑 정면에서 붙으면 꼼짝도 못 할걸.”

중앙 대륙 출신의 강자들이 위드를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였다.

퀘스트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했고, 진정한 강함은 레벨과 사냥 능력으로 평가했다.

바로바는 이후로도 길드의 가입 요청이나 방송 인터뷰 제안도 전부 거절하고 오로지 사냥만 했다.

사냥, 사냥, 사냥.

필요하다면 전투 퀘스트도 했고, 그렇게 명성을 날렸다.

헤르메스 길드의 가입 요청도 왔지만 그는 고민 끝에 거절했다.

“세력에 속해서 힘자랑이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약한 놈이 아니라 강한 놈을 잡고 싶다.”

바로바는 그 이후로 헤르메스 길드의 박해를 받아서 사냥터의 이용에 제한이 생겼다. 몇 번이나 척살령이 떨어져서 목숨을 잃었지만 소신은 지켰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드문 남부 사막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타고난 전사는 자신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전사는 전투력으로 증명하면 되는 거야.”

위드가 어떤 모험을 해도 시큰둥하게 들렸다.

“전투 스킬이 아닌 편법이지. 퀘스트를 그런 방법으로 깰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진짜 강자를 당해 내진 못해.”

그리고 위드는 바드레이까지 꺾고 베르사 대륙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인적이 뜸한 오아시스의 사냥터를 전전하는 그가 일부러 위드를 만나기 위해 고요의 사막까지 오게 되었다.

“모래 폭풍을 없앤다고? 하다하다 별짓을…….”

바로바는 일찍이 모래 폭풍에 휩싸여서 죽을 고생을 하다 도망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게 얼마나 황당한 퀘스트인지 알았다.

“절대 안 돼. 아무리 해도 안 돼. 무슨 수를 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위드가 죽는 걸 지켜보는 것도 나름의 만족감은 있으리라.

바로바는 사막 지역의 유저들 대부분이 모여든 자리에서 모래 폭풍이 일어나는 걸 봤다.

고요의 사막에 일어난 모래 폭풍은 다른 지역보다도 압도적이었고, 경이롭다는 표현이 어울릴 자연 현상이었다.

“저걸 부순다고? 말도 안 돼.”

바로바의 말에 다른 사막 유저들도 공감했다.

“진심으로 미친 짓이네.”

“저 폭풍이 마을을 휩쓸고 가면 다 부서져 버릴 텐데.”

“지금 마법이 아니고 검으로 부순다고 폭풍으로 들어가는 거 맞죠?”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연출이나 사기 같은 거 아닙니까? 방송으로도 생중계하고 있을 텐데요.”

“그런 건 없어 보입니다. 모래 폭풍을 어떻게 섭외하겠어요.”

사막의 유저들이 지켜보는데 위드는 정말 갑옷도 벗은 채로 모래 폭풍을 향해 걸어갔다.

그 광경에서 상체가 드러났는데, 섬세하게 단련된 근육질의 몸이 보였다.

로열 로드에서 맷집을 키우다 보면 근육이 발달하는 효과가 있어서 특별하게 여겨지진 않았어도 그래도 제법 전사로서도 잘 성장해 온 것이 보였다.

이윽고 위드가 모래 폭풍에 휩싸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정말 들어갔습니다.”

“모래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생방송으로 봅시다. 위드의 시점에서 영상이 중계되니까 말이죠.”

유저들은 저마다 수정 구슬로 생방송 시청을 시작했다.

위드가 보고 듣는 영상이 화면으로 나오는데 그건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모래 폭풍 내부에는 어둡고 왱왱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거친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위드는 묵묵히 그 안을 걸어갔다.

- 오주완 씨. 이 모래 폭풍의 공략이 가능할까요?

- 짐작도 안 됩니다. 다만 위드는 다시 되돌아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끝을 보겠다는 것이로군요.

- 네. 보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위드라서 조금의 희망을 걸어 봅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

바로바는 그 과정에서조차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나라면 저 짓은 절대 못 했어.’

실패가 두려워서 할 수 없는 일, 그럼에도 도전하는 정신.

이윽고 방송에서 보이는 위드의 시야는 10센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아졌고 왱왱거리는 맹렬한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 놀랍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여전히…… 계속 전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드가 언제 목숨을 잃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보는 이들의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어어?”

멀리서 모래 폭풍을 보고 있던 바로바에게 기가 막힌 장관이 보였다.

* * *

모래 폭풍의 흐름이 시작되는 곳.

위드는 사납게 흐르던 바람들이 거짓말처럼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아…….”

하늘을 뒤덮던 모래들이 기운을 잃고 사막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성공인가?’

모래 폭풍을 부수는 퀘스트의 완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사막의 대제왕 시절과는 다르게 간신히 살아남았다.

- 남아 있는 생명력 : 79,387.

몬스터 사냥에서는 여유가 있는 수준이었지만, 고요의 사막에 부는 모래 폭풍에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조각 파괴술의 효과도 컸지만 초보 시절부터 꾸준히 올려놓은 스탯들 덕분에 살아남았다.’

위드는 꾸준한 노가다야말로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좋은 사냥터를 발견하고, 퀘스트로 꿀을 빨더라도 근본은 노가다!

‘고렙은 99%의 노가다와 1%의 장비빨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장비 역시 노가다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게 아니던가.

이번 퀘스트는 난이도가 높았지만 강인한 육체가 필수였다. 힘과 민첩, 인내와 맷집이 낮으면 통과할 수 없는 전사 퀘스트.

‘폭풍에 뛰어들 정도로 용감한 진짜 전사를 원하는 퀘스트였다.’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막 전사 출신이라면 더 유리했으리라.

위드를 휘말리게 했던 모래 폭풍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채로 막 입가에 썩은 미소가 살짝 맺히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퀘스트 완료창이 뜨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끝난 게 아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반경 2, 3킬로미터에서 바람들이 모이고 뒤엉키면서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쐐새애애액!

사막의 모래들이 함께 모여들면서 폭풍으로 형상을 갖춰 나갔다.

‘젠장. 그러면 그렇지.’

위드는 팔자가 더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막 폭풍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부족했을 뿐이다.

‘기회는 여러 번 있는 게 아니야. 완벽하게 부숴야 한다.’

바람이 모여드는 중심지는 50미터 전방.

폭풍이 일어나면서 날카롭고 사나운 바람이 수천 갈래로 모여들어 뒤엉키고 있었다.

온몸을 찢어 버릴 것만 같은 바람의 압력!

< 생명력이 316 감소하셨습니다. >

< 생명력이……. >

< 생명력이…… >

< 생명력이… >

위드의 생명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막강한 맷집이 있긴 하지만, 모래 폭풍에 휘말린 채로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는 노릇.

“찰나의 조각술!”

결국 세상을 멈추게 만들었다.

바람을 타고 공중에서 흐르는 모래들도 그대로 멈추었다.

- 남아 있는 생명력 : 5,386

‘돌파한다.’

위드는 하늘에 떠 있는 모래들을 밟으면서 폭풍의 중심지로 달려갔다.

바람은 멈추었지만 모래들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폭풍의 중심에 가서 스킬을 터트렸다.

“용암의 강!”

동시에 찰나의 조각술이 풀렸다.

땅에서부터 분출된 용암이 모래 폭풍을 다시 뒤덮었다.

붉은 용암이 모래와 바람에 휘말리며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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