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막의 방식
위드는 이마에 떠오른 살인자의 표식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형들이 죽다니…….”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죽었다.
아무리 만약의 상황까지도 고려한다지만 이것만큼은 예측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쁜 일도 아니지만.’
덤으로 레벨이 1개 오르고, 대량 학살자라는 전투 업적도 세웠다.
살인자의 상태는 퀘스트를 하다 보면 사라질 테고, 이 광경들이 생방송으로 중계가 되었으니 오해하는 이들도 없으리라.
모래 폭풍을 없앤 위드가 구경하다가 만신창이가 된 검오치에게 걸어갔다.
“수고했다. 막내야.”
“뭘요. 이 정도야 거뜬하죠.”
“암. 그렇지.”
위드는 간단히 붕대를 꺼내서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검오치와 수련생들에게 감아 주었다.
생명력이 경각에 달해서도 금방 낫는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몇 명은 실제로 생명이 위험했다.
“음식을 좀 드시면 생명력이 빨리 회복될 겁니다.”
“배는 안 고프다만.”
“장어 말린 겁니다.”
“음. 고소하니 맛있군! 더 없냐?”
떨어지는 용암도 피하지 않았던 수련생들이었지만 말린 장어를 주니 침을 꼴깍 삼키며 나눠 먹었다.
마땅히 쓸 곳도 없지만 정력에 좋은 음식들은 거절하는 법이 없는 그들!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사막 유저들도 몸을 일으켰다.
“오…… 붕대도 잘 감으시네.”
“이 정도 해야 대륙에서 최고라고 불리는구나.”
사막 유저들의 반응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놀람과 존경심이 듬뿍 담긴 눈빛들.
“바로바라고 합니다. 위드 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위드는 사막의 유저들과 간단히 인사도 나눴다. 이 자리에 모인 유저들은 레벨이 500 언저리의 실력자들이 꽤 많았다.
사막까지 와서 활동을 할 정도라면 대체로 레벨도 높고, 호전적인 편. 직접 눈으로 보여 주었으니 얌전하게 구는 태도가 당연했다.
‘사막을 지배하면 이들이 부족장이 되겠지.’
위드는 다분히 영업용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냥이나 같이 하실래요?”
* * *
사냥 지옥, 그 이상의 사냥 지옥!
위드는 사막의 대제왕 시절을 떠올리며 유저들과 사냥했다.
“젠코바 부족입니다. 우린 당신께 충성을 다짐합니다. 제 몸 안에 있는 피 한 방울까지도 당신을 위해 흘리겠습니다.”
사막 부족들을 만나며 팔로스 제국의 건국을 위한 영향력 확대도 이루어졌다.
그동안 팔로스 제국을 위한 퀘스트를 하던 유저들은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미 북부와 중앙 대륙을 지배하고 있었다.
검치와 수련생들의 부족 전사들까지 넘겨받았다.
세력과 영향력이 압도적이고, 또한 사막 지역에 뿌려진 팔로스 제국의 씨앗도 위드의 소유.
남부 사막도 자연스럽게 탄생하자마자 흡수하는 흐름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대가 태양의 눈을 잠재운 전사인가?”
“그렇다.”
사막에서 최강이라는 태양의 부족은 3일 만에 찾아왔다.
팔로스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며 한 명, 한 명이 전사 중의 전사라고 자부하는 태양의 부족.
“소문은 들었지만 우린 직접 본 것만 믿는다. 우리와 함께 전투를 하고 싶다면 따라와라.”
부족의 신입
태양의 부족은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훌륭한 사막 전사가 되고 싶다면 부족의 막내가 되어 많은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
태양의 부족을 따라다니면서 사냥에 참여하자.
난이도 : A
제한 : 전사 직업 퀘스트.
보상 : 사막 전사로의 전직
‘사막 전사라…… 좋은 직업을 얻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군.’
위드는 당연하게도 사막 전사에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전사는 좋은 직업을 얻으려면 전투 업적을 세워야만 한다. 모래 폭풍은 좀 고생했지만, 내가 검술이나 스탯, 장비로는 꽤 쓸 만한 수준이니까. 실전에서 훨씬 더 낫지.
한창 케이베른 때문에 바쁜데, 이럴 때일수록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사냥을 내 식대로 진행하면 되니까.’
잠깐 잔머리를 굴린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함께 따라가도록 하죠.”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투지가 1 증가합니다. >
* * *
패튼 성의 영주 다리우스!
그는 과거에 실컷 나쁜 짓을 저지르다가 헤르메스 길드를 배반하고 아르펜에 붙었다.
“크흐. 최고의 선택이었어. 역시 사람은 줄을 제대로 서야 한단 말이야.”
“맞습니다. 영주님.”
다리우스는 북부 대륙에 세워진 성에서 흐뭇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벤트 성과 모드레드 사이에 위치하여 교통도 나쁘지 않았고, 비옥한 평지를 소유해서 농산물 수확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농부들은 어떻습니까?”
“잘 모이고 있습니다. 미리 저수지 등을 만들어 놓은 효과 같습니다.”
“케이베른 때문에 대륙의 농작물들이 죽으면 가격이 오를 겁니다. 우린 제대로 비싸게 팔 수 있겠죠. 이게 기회를 살리는 거지요.”
“식료품 가격을 올리는 건 아르펜의 정책에 위반되는데요.”
다리우스는 내정을 맡은 담당자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규제가 많다니 거슬리네요. 하벤 제국 같으면 물량 부족을 핑계로 10배, 20배씩 받아 챙겼을 텐데.”
“하지만 대신 구입할 유저들이 많지 않습니까? 상단들이 알아서 대량으로 사 갈 테고요.”
그 말에 다리우스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정답이죠. 도시에는 역시 상업과 인구 아니겠습니까.”
패튼 성을 다스리면서 조금만 투자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면 유저들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매주 만 명씩 유저들이 이사를 오고, 방문하는 상인이나 여행객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보니 도시를 다스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술과 생산력, 세금에 이르기까지 인구가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과거를 완벽히 세탁하고 영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리우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수정 구슬을 꺼냈다.
“오늘은 우리 황제 폐하께서 또 무슨 짓을 하나?”
틈틈이 위드의 영상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취미.
“내가 줄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탔어. 조금만 늦게 아르펜으로 전향했으면 영주가 되어서 이런 호사를 누리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지.”
헤르메스 길드가 이대로 망하고, 위드가 대륙 전역을 다스린다면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으리라.
한때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악명도 쌓았지만 그건 어릴 때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평판을 잘 관리하면서 영주로서 살아가야지. 아르펜의 영주…… 얼마나 멋진 일이야.”
수정 구슬에는 위드가 태양의 부족과 합류해서 달구어진 사막의 동쪽으로 달려가는 영상이 나왔다.
“저긴 나도 갔던 곳이야!”
다리우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드가 팔로스 제국을 일으킨 이후에 사막 지역의 부흥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에 방송국의 요청에 따라 자체적으로 원정대를 조직해서 사막에 갔던 적이 있었다.
“달구어진 사막. 저긴 사막 웜이 나오는 장소가 맞지? 거기서도 동쪽이면 더 큰 놈들이 나오고.”
당시 원정대는 사막 웜 3마리와 전투를 벌였다.
모래를 파고드는 거대한 지렁이.
위드가 물컹꿈틀이로 변신을 한 적이 있지만 맞상대하려면 어마어마하게 까다로운 유형이었다.
‘막대한 생명력과 맷집, 그리고 뭐든 집어삼켜 버리지. 느닷없이 땅에서 튀어나오는 특성도 문제고.’
모래 안에 있으면 위치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공격하지도 못 한다. 땅에서 솟아올라 갑자기 잡아먹기라도 하면 전사나 기사 계열이 아닌 한 그대로 사망!
후방에 위치한 마법사나 사제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웜 종류는 사냥할 몬스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지. 근데 방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웠어.’
다리우스의 원정대는 3마리의 사막 웜을 만나서 초반에는 그럭저럭 잘 싸웠다. 하지만 추가로 나타난 사막 웜에 의해 궁수, 마법사들이 한 명씩 잡아먹혔다.
이것도 단지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다.
전투의 진동을 느낀 사막 웜들이 반경 5킬로미터에서 모여든 것이다.
사방의 모래에서 솟아올라 유저들을 잡아먹는 사막 웜들.
꼬올깍!
유저들을 한입에 집어삼키고는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했다.
“도망쳐라! 후퇴!”
다리우스는 지옥에 온 것 같은 끔찍한 마음으로 퇴각을 선택했지만, 전투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모여든 사막 웜들이 날뛰고 있었다.
전투 지역을 무사히 벗어난 건 고작해야 열 명 남짓이었다.
어지간한 공포 영화를 능가하는 긴장감으로 동영상은 5천만에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
다리우스는 워낙 처참하게 망했던 기억이라 잊을 수 없었다.
“저길 간다고? 그곳도 사막 부족들과 함께?”
상식적으로는 무리라고 생각이 들지만 위드니까 결과가 예측이 안 됐다.
* * *
위드는 태양의 부족을 따라가면서 이 장면을 당연히 방송국들에 생중계를 하도록 했다.
- 서윤 : 사막 웜의 서식지예요. 진동을 조심해야 해요. 신발을 벗는 게 나을 거예요.
서윤이 방송을 지켜보면서 정보들을 전달.
- 마판 : 사막 웜은 썩은 고기 빼고는 엄청 비싸게 팔리죠! 더듬이가 요즘 화염 계열 마법 스크롤을 만드는 데 써서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마판도 틈틈이 시세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위드는 데스 웜도 그렇고, 물컹꿈틀이의 경험도 겪어서 이런 유형의 몬스터들이 좀 익숙했다.
‘태양의 부족이라. 너희들은 과연 어떻게 싸우려나.’
느긋한 마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달려라!”
부족장의 말에 낙타가 사막을 질주했다.
보이는 것은 햇볕을 받아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의 바다.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광경이지만 금방 사건이 터졌다.
- 츄에에엣!
모래 구릉을 막 지나자마자 땅에서 튀어나오는 사막 웜!
부족 전사들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흩어져서 전진하라!”
낙타를 탄 전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사막 웜을 공격했다.
일곱 명이 낙타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빠른 반격으로 사막 웜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대응이 빨라. 잘 싸우네.’
위드는 태양의 부족이 과거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 만났던 일반 전사들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조금만 뒤떨어지더라도 시간을 아끼느라 그대로 내치고 말았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을 모아서 끊임없이 사냥을 시킨 건 그 이후의 이야기.
사막의 대제왕이 이끄는 직속 부대는 정예가 되어 대륙을 정복할 정도였으니 비교가 불가능했다.
험상궂은 얼굴, 머리에는 흰 천을 두른 전사가 위드에게 다가왔다.
“신입! 부상자들을 돌봐라.”
“뭐 그렇게 하죠.”
위드는 부상자들의 몸에 약초를 바른 붕대를 감아 주었다.
“크으으……. 어. 시원하네.”
“조금 쉬면 다시 싸울 수 있을 겁니다.”
“고맙다.”
< 친밀도가 올랐습니다. >
부상병들은 자신의 기술을 하나씩 알려 주었다.
“보답이라고 할 건 없지만 칼에 강한 힘을 싣는 법을 알고 있나?”
“배우고 싶습니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서 내려치는 것이지. 좀 까다로운 기술이지만 나를 몇 번 따라서 해 보게.”
위드는 발동작과 허리의 움직임까지 부상병을 똑같이 따라 했다.
띠링!
< 패시브 스킬. 전사의 내려치기를 습득하셨습니다.
전사의 내려치기 초급 1 (0%) : 무기를 적에게 내려칠 때 공격력 2%를 상승시킵니다. >
전사들이 익히는 필수 스킬들도 몇 가지 습득.
사막에서는 방어 스킬은 얻지 못해도, 공격 스킬들은 풍부하게 배웠다.
‘전사들을 돌보는 일도 재미가 있군. 아쉽지만 요리까지 할 시간은 없겠지.’
위드는 리트바르 마굴에서 로자임 왕국 병사들을 챙겼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잠깐이었다.
난이도 A급의 퀘스트.
태양의 부족 신입이 되어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끝낼 여유는 주지 않으리라.
‘지금은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달구어진 사막의 더 깊은 지역으로 들어가면 사막 웜이 수십 마리씩 튀어나올 테지.’
그때가 바로 끔찍한 지옥!
지금의 이동 경로를 봤을 때 태양의 부족을 지키며 살아남아야 했다.
TO BE CONTINUED
위드는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를 짐작했음에도 묵묵히 부상병들을 챙겼다.
“테피라고 알고 있나? 우리 부족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야. 태양의 부족은 정말 강한 전사들이 이끌고 있어.”
“예. 그렇군요.”
부상병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본적인 정보들을 들었다.
‘언데드를 소환하면 훨씬 유리할 텐데……. 아무래도 전사답게 싸워야만 친밀도를 높일 수 있겠지.’
위드의 전투력은 치사하게 싸울수록 몇 배나 강화되는 특성이 있었다.
특히 대규모 전투에서 압도적인 언데드 소환이나 저주를 봉인한 채로 사막 웜들을 돌파해야만 한다.
‘역시 이럴 때는…….’
위드는 부족의 뒤를 따르면서 조용히 조각품을 하나 꺼냈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이 힘이 되어라.”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3800을 넘는 예술 스탯.
그동안 노가다 끝에 쌓아 놓은 예술 스탯을 모조리 힘으로 변환.
‘든든하군.’
위드는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느꼈다.
태양의 부족은 낙타의 기동력을 이용하여 싸웠다.
한자리에 멈춰 있지 않다 보니 사막 웜들을 기습을 하더라도 거리를 두고 공격하기 쉽고,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도 빠르다.
‘명성 그대로네. 사막에서 최고라고 부를 정도로 사냥을 잘하긴 하네.’
전사 부족인데 칼도 쓰고, 창도 던지고, 어떤 녀석들은 활도 쏜다.
사제나 마법사는 없어도 공격과 방어의 조합이 워낙 좋아서 사막 웜을 빠르게 잡는다.
사막 웜의 뼈와 살, 가죽들을 분리하는 도축까지도 바로 이루어졌다.
“계속 전진한다. 막내는 부상병을 돌봐라.”
“예. 그러죠.”
위드는 부족의 이동을 따라가면서 퀘스트가 더욱 만만치 않다고 여겼다.
‘차라리 일찍 사막 웜들의 전면 공격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한두 마리씩 나타나면 제법 쉽게 해치운다. 이렇게 계속 이동한다면……. 정말 사막 웜의 서식지 한복판에서 갇히게 되겠군.’
여기에는 본의 아니게 다리우스의 영향도 컸다.
다리우스의 원정대가 워낙 거하게 실패를 겪으면서 사막 웜이 출현하는 지역으로는 유저들도 들어가지 않았다.
상인들조차도 먼 곳을 돌아가면서 사막 웜들은 굶주리게 되었다.
꼬르륵!
그렇잖아도 사막 웜들은 탐욕스러운 식성을 가진 생명체들이었다.
사막을 돌아다니는 동물들은 극히 드물어서 굶주림을 쭉 이어 나가야 했다.
대량의 먹잇감들이 나타나자 결국 사막 웜들은 성질 급한 녀석들 몇 마리만 나섰고 나머지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위드는 먼 사막을 보다가 모래들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바람의 영향인 것도 같지만 범위가 아주 넓었다.
‘역시 난이도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야 재밌지.’
* * *
유병준은 코코아 잔을 든 채로 모니터로 위드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제대로 외통수에 걸리겠군.”
로열 로드가 재밌게 느껴질수록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도 강하게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천국의 행복을 느끼게 했다는 로열 로드.’
정작 그걸 만든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노는 걸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다.
‘위드. 저놈에게 대륙을 통일한 황제가 되면 내 모든 자산을 물려주겠다는 결심까지 하고서…….’
유병준은 만약 자신이 일찍 로열 로드를 시작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퀘스트, 직업, 보물에 대한 단서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빨리 강해질 수 있었지. 내가 로열 로드만 했다면 바드레이도, 위드도 없었을지 몰라.’
공정하진 않지만 세상에 공정한 게 또 몇이나 되겠는가.
창조주로서의 특권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리라.
평생 여자를 모르고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베르사 대륙에 접속하니 미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고.
‘도대체 난 뭘 하고 살았는지를 모르겠군.’
유병준은 후회를 하면서도 대륙을 통일한 황제에게 모든 걸 물려주겠다는 결심만큼은 바꾸지 않았다.
외부적으로 발표한 게 아닌 만큼 스스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살아온 목표였다.
미친 짓을 했다는 자각이 비로소 들었지만 그것도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 이미 대륙을 통일하는 건 위드가 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지만…….
“고생이나 실컷 했으면 좋겠어.”
* * *
사막 한복판.
태양의 부족은 계속 전진했고, 위드는 전사들이 익히는 잡다한 스킬은 충분히 배웠다.
“됐습니다.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런가?”
그러자 전사들이 머쓱하게 물러났다.
대륙의 전사 길드에서는 자신들만의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방패 막기 종류만 해도 길드마다 한두 종류씩 있었지만 효과는 거기서 거기다.
3, 4%만 더 좋더라도 대륙을 횡단해서라도 스킬을 익히는 유저들이 있었지만 마스터를 하게 되면 대부분 비슷해지는 것이다.
부족 전사들이 말했다.
“웬만한 기술은 알려 줄 게 없군. 그렇다면 나와 무기로 한판 붙어 보는 게 어떻겠는가? 기술은 금지하고 말이지.”
“좋지요.”
위드는 주위를 한 번 슥 돌아보고 나서 받아들였다.
태양의 부족, 일천의 전사들이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쉬고 있다.
먼 곳에서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래들.
‘사막 웜의 중심에서 대결이라……. 저 속도면 몇 분 후면 습격하겠군. 아마 이것도 퀘스트의 일부가 될 수 있겠지.’
위드는 부족 전사와 대결을 시작했다.
땅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상대를 향해 무기를 겨눈다.
차차창!
순식간에 맞붙어서 검과 시미터를 휘두른다.
부족 전사는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중심으로 시미터를 다루었다.
위드는 간단하게 막강한 힘으로 무기를 쳐 내고 찍어 눌렀다. 가장 쉬운 승리법이 있었는데 망설일 이유 따윈 없었다.
“져, 졌다. 무서운 힘이군!”
< 사막 전사 팔롱이 당신의 무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압도적인 힘에 의해 패배했습니다.
전투 업적으로 명성이 600 증가합니다.
힘이 영구적으로 1 늘어났습니다. >
꿀 같은 전투 업적!
“그다음은 내 차례다!”
다음 전사가 또다시 덤벼 왔다.
‘기술은 금지하고 무기로 붙는다. 이건 검을 다루는 기본기를 본다는 의미야.’
남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대결이지만, 위드에게는 쉬운 것이었다.
그냥 싸우더라도 무기술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조각 파괴술로 힘까지 늘려 놓은 상황이라면!
“큭. 굉장한 검술이군. 나로서는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다.”
< 사막 전사 베텐이 당신의 무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검의 움직임에 경탄하고 있습니다.
전투 업적으로 명성이 600 증가합니다.
민첩이 영구적으로 1 늘어났습니다. >
‘이거 좋은데? 대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는 사막 웜에게 크게 당하겠지만 말이야.’
위드는 멀리서 사막 웜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전사들과의 대결을 빠르게 이어 나갔다.
“다음. 덤벼라!”
< 힘이 1 늘어났습니다. >
< 민첩이 1 늘어났습니다. >
스탯을 올리는 행복한 상황.
위드가 기회가 보이자 힘을 좀 줄이고, 순수하게 검술로 이겼을 때도 메시지가 떴다.
< 검술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
‘이건 실망이군.’
검술 숙련도야 몬스터를 때려잡으면서도 나중에 마스터까지 올릴 수 있는 것.
다른 유저들에게 검술 마스터가 대단한 업적으로 여겨지겠지만 위드는 아니었다.
전투 계열 스킬 숙련도가 늦게 늘어나는 조각사라는 페널티를 안고서도 지금까지 검술 스킬을 꾸준히 올렸다.
노가다로 쌓아 온 스탯과 조각술의 비기들.
기본적으로 상대하는 적들의 레벨이 높다 보니 검술 스킬의 숙련도는 상승 속도가 빠르다.
‘스킬 숙련도는 나중에. 지금은 스탯이 우선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전사와 싸우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움직임이 상식적이니까.’
위드는 어깨의 움직임, 시미터의 공격 방향만 보고도 상대의 노림수를 꿰뚫어 보며 힘으로 강하게 쳐 냈다.
검술의 높은 경지와 경험을 바탕으로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상대가 공격하기 시작할 때 앞서 나가고, 허점이 드러나기 전에 이미 도달해 있다.
기술보다는 속도와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강하게 후려치며 적들을 압도했다.
“다음, 다음!”
위드는 빠르게 전투 업적을 쌓았다.
태양의 부족에서 싸울 수 있는 전사들은 수백 명에 달한다. 그렇지만 이 행복한 순간의 결말도 예정되어 있었다.
사막 웜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단물을 최대한 빨아야 했다.
‘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대결을 한다고 주위를 살피지 않는다면 큰 피해를 입겠지.’
꿀을 빨며 방심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사막 웜들이 습격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대결하는 와중에 사막 웜은 절반 이상 다가와 있었다.
“잠깐. 이젠 테피와 싸우고 싶습니다.”
위드는 태양의 부족 최강자에게 대결을 청했다.
몸이 구릿빛으로 그을린 근육질의 전사, 테피는 모래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상대하고 싶다고? 안 그래도 지켜보기 지루했었다. 재밌겠군!”
테피와의 전투라고 해 봐야 별것 없었다.
상대의 레벨이 500을 넘는 것도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사막 전사들이 싸우는 방식은 비슷하니까.
다만 기사들처럼 사막 전사들은 땅이 아니라 낙타를 타면 훨씬 더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한다.
위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테피의 머리를 시미터로 강하게 후려갈겼다.
“크윽. 졌다.”
< 사막의 최강자 테피가 당신의 무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경이로운 힘에 의해 패배했습니다.
전투 업적으로 명성이 1,300 증가합니다.
힘이 영구적으로 3 늘어났습니다. >
대결로 스탯만 총 15개가 넘게 늘어났으니 상당히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물론 전사들을 쓰러뜨리지 못했다면 얻지 못했을 테지만.
“자. 이제 모두 낙타를 타고 전투를 준비합시다.”
“무슨 말이지?”
“사방에서 사막 웜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위드의 말에 테피와 부족 전사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슬금슬금 움직이는 모래의 형체. 사막 웜의 특성임을 모르지 않았다.
“이런…….”
“습격이다!”
위드가 경악하고 있는 부족 전사들에게 말했다.
“당황하지 마세요. 놈들은 진동을 느낍니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기를 꺼내고 천천히 낙타를 탄 후 전투를 대비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사막 웜들이 너무 많은데.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건 어떤가.”
테피가 무기를 들고 반박했다.
용감한 전사이긴 하지만 이미 스물이 넘는 사막 웜들이 화살을 쏠 수 있는 지역까지도 접근해 있었다.
그 너머에는 어쩌면 백 단위의 사막 웜들이 우글거렸고.
영락없이 부족의 전멸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
위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선두에서 싸우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로자임 왕국 병사들처럼 한 명씩 애지중지 다룰 필요가 없었다.
‘전사들을 전부 무사히 지키려면 어렵겠지. 근데 퀘스트에 그런 내용은 없었잖아.’
그저 태양의 부족과 함께 사냥하라는 내용뿐.
이 자리에서 도망을 치더라도, 사냥을 계속 하다 보면 퀘스트는 완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사냥에 참여하여 전투 업적을 충분히 세우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럴 만한 시간도 아깝고. 여긴 또 사막이란 말이지.’
사막에는 사막의 방식이 필요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화끈하게 질러 주면 되는 것.
전사들은 잘 싸워서 강해질 것이고, 약한 자들은 죽을 것이다.
팔로스 제국을 건국했던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 세운 전통이었다.
“먼저 갑니다.”
위드가 낙타를 타고 슬금슬금 움직이는 모래로 달려갔다.
TO BE CONTINUED
사막의 뜨거운 모래가 갈라지면서 흉측한 사막 웜이 튀어나왔다.
대형 지렁이!
그것도 뾰족한 이빨을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는 사막 웜이 정면으로 덤벼들었다.
- 쿠엣!
단숨에 잡아먹으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채!
위드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달빛 조각 검술!”
로아의 명검에 빛이 길게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사막 웜의 눈을 베었다. 그 직후 주위를 돌아다니는 차원문을 통과.
사막 웜의 입 앞에서 사라지더니, 뒤쪽에서 나타났다.
“열기 강타!”
위드는 사막 전사들에게 배운 스킬을 쓰며 사막 웜을 현란하게 베었다.
< 뜨거운 충격!
상대방의 생명력을 93,907 감소시켰습니다.
열기가 남아서 매초마다 3%씩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
사막 웜은 방어력이 낮은 대신에 생명력이 높은 편.
- 쿠우와아아아악!
불에 타는 몸을 뒤틀면서 사막 웜이 발버둥을 쳤다.
“섬광의 상흔!”
위드는 다양한 공격 스킬을 사용하면서 사막 웜을 공략했다.
금방 안 죽기 때문에 여러 스킬들을 활용하며 공격법을 연마하기에 좋은 대상이었다.
‘쾌속 베기. 이건 기본 스킬이면서도 쓸 만하긴 하군. 상대가 대형 몬스터라면 순간 데미지가 꽤 크겠어.’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스킬들을 써 보면서 정확하게 확인했다.
평소의 사냥과는 다르게 사막 웜을 단숨에 해치울 생각은 없었다.
슬금슬금 꾸물꾸물
위드가 사막 웜과 싸우고 있자, 인근의 모래들이 들썩이면서 다가오는 것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먹잇감의 움직임을 느끼고 기습 공격을 위해 느릿느릿 다가온다.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덮치는 것이 사막 웜의 특징.
“으아하하압!”
< 전사의 포효를 터트리셨습니다.
공격력이 20초 동안 100% 강해집니다.
맷집이 5초 동안 80% 높아집니다. >
전사의 전용 스킬!
위드는 함성을 지르며 공격력을 상승시켰다. 그러자 강하고 맛있는 먹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더더욱 몰려드는 사막 웜들.
사막 전사들을 에워싸던 사막 웜들이 최소한 열두 마리 정도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 캬앗!
- 쿠에에에에엣!
사막 웜들이 앞과 뒤, 옆에서 일제히 입을 벌리면서 튀어나왔다.
아찔하기 짝이 없는 기다리던 매복 공격이었다.
“용암의 강!”
위드가 검을 휘두르며 스킬을 터트리자, 대지가 갈라지면서 반경 수십 미터에서 용암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모래 폭풍을 없애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함!
“오……저것은!”
“사막의 전설에 나오는 바로 그 기술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태양의 부족 전사들이 감탄하는 목소리들도 들렸다.
‘바드레이에게 고마워해야 되겠군.’
조각 파괴술로 힘을 대폭 늘려 놓아서 위력이 좀 커지긴 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불꽃의 성배 덕분.
불꽃의 성배 : 내구력 30/30.
불의 정화가 담겨 있는 잔이다.
인간들이 간 적 없는 땅속 깊은 곳에서 흐르는 용암을 채취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백만 년 동안 타오른 불이 담겨 있다는 소문도 있다.
전설이 담긴 물품.
성배의 힘을 이끌어 내면 어떤 어둠도 물리칠 수 있으리라.
제한 : 없음.
옵션 : 소유하는 것으로 모든 스탯 53 증가.
생명력과 마나의 최대치 70,000 상승.
불과 관련된 모든 스킬의 위력이 200% 강화.
전투 스킬의 효과 +35%
화염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음.
열흘에 한 번씩 ‘성배의 평정’을 사용할 수 있음.
특수 : 전설이 봉인되어 있다.
밝혀지지 않은 옵션이 7가지 잠들어 있음.
성배의 평정 : 흐르는 용암의 강이나 폭발하는 용암 분출구를 소환하여 적을 쓸어버린다.
전사에게는 불의 속성이 가장 흔했다.
워리어들은 대지 계열의 스킬이나, 드물게 물의 속성을 가진 기술도 쓰긴 했다. 방어력이나 회복력을 높여 주는 특성의 기술들.
얼음의 속성은 몬스터를 얼리고, 느리게 만들기 때문에 각광을 받지만 공격력만 놓고 보면 불이 최고였다.
“몽땅 태워 주마!”
위드의 용암의 강에 모래 위로 올라온 사막 웜이나, 지하에 숨어 있던 녀석들이나 한꺼번에 휘말렸다.
급류처럼 흐르고, 거칠게 뿜어 나오는 용암의 강이 사막 웜들을 쓸어버렸다.
< 용암의 강이 발동되었습니다.
반경 86미터 범위에 용암이 흐르며 적을 휩씁니다! >
용암의 강이 1분 넘게 지속되면서 꾸준한 피해를 입혔다.
위드가 사막 웜의 기선을 제압한 후에 사자후를 터트렸다.
- 전원 공격! 실컷 싸워라!
통솔력, 지휘력을 올려 주는 스킬.
“우와아아아아아!”
그렇지 않아도 지켜보며 놀라워하던 태양의 부족 전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불덩어리가 되어서 타들어 가는 사막 웜들을 시미터로 마구 베었다.
전사들이란 지극히 단순한 존재들이었다.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도 먼저 가서 날뛰고, 그다음에는 사기가 오른 사막 전사들과 같이 싸우면 그게 최고의 효율을 발휘했다.
사막 전사들은 불과 친하기에 추가적인 공격력이 부여되었다.
“으랴압!”
테피도 한 마리의 사막 웜을 집중 공격했다.
그때부터 흉성이 폭발한 듯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사막 웜들!
달구어진 모래사막에 붉은 용암의 강이 흐른다.
그 위로 펼쳐지는 뜨거운 전투에 위드와 부족 전사들, 사막 웜들이 한꺼번에 뒤엉켰다.
* * *
케이베른이 도시를 파괴하고 다니면서 얼마 전부터 북부에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 모라타를 잃어버린 북부를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지의 궁전은요? 대지의 궁전을 또 잃으면 우린 어떻게 될까요?
빙룡 광장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드넓은 북부 대륙에 정작 변변한 대도시가 없다는 건 큰 단점이었다.
대지의 궁전이 완성되며 인근 도심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고, 모라타는 대륙 전체를 뒤져 봐도 유래가 없을 규모의 대도시다.
생산량과 교역, 인구. 어느 측면에서나 중앙 대륙의 어지간한 도시들을 압도했다.
- 이대로라면 조만간 케이베른이 모라타를 노릴 것입니다!
북부 유저들은 두려웠다.
아렌 성이나, 소므렌 자유도시 등이 워낙 번영도가 높았기에 파괴당할 순서가 미루어졌을 뿐이다.
모라타 역시 위험한 대도시임은 마찬가지.
다른 어떤 도시를 잃는 것보다도 모라타를 잃는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
모라타는 북부의 심장이었고, 수많은 유저들의 희망이고 마음의 고향이었다.
아르펜 왕국이 생기기도 전부터 작은 마을이었던 모라타와 함께했던 유저들은 그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았다.
“케이베른이 오면 우리 모두가 나섭시다!”
“맞습니다. 나서야죠. 그렇지만 냉정하게 볼 때 블랙 드래곤은 우리 모두를 죽이고 모라타를 폐허로 만들 겁니다. 우리가 돌아오면 모라타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요.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북부 유저들은 모라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
- 인구 분산 정책!
모라타에 집중된 인구를 북부의 지방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갑시다. 우리의 고향을 위해서요.”
“떠납시다.”
황소가 끄는 마차에 유저들은 짐을 실어서 북부 대륙 전역으로 흩어졌다.
수많은 판잣집들이 해체되고, 생산 시설들도 다른 도시와 마을들로 옮겨 갔다.
도로가 뚫리고, 배들이 드나드는 강가에는 무역 도시들도 생성되면서 기능을 분산시켰다.
머물던 유저들이 일부러 떠났지만, 모라타의 기반 시설들이나 거주 인구, 생산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더구나 중앙 대륙의 유저들과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었다.
* * *
대지의 궁전.
풀죽신교의 넘쳐 나는 인적자원 중에서도 똑똑한 이들만 모였다.
현실에서의 경제학자나 경영 컨설팅에 관련된 이들만 수천 명.
최소 박사 학위 이상을 가지고 있거나, 업계에서 이름만 대더라도 누구나 알 만한 회사에 10년 이상 다닌 이들만 모인 것이다.
“우리의 분석에 많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드래곤이 공격할 도시를 일찍 파악하는 건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학계의 원로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그 시간부터 모든 인원들이 정교한 자료 검토에 나섰다.
베르사 대륙의 대도시들의 발전도와 인구, 번영도, 산업 시설, 기술, 장인들의 숫자, 상업, 관광, 농업 생산력, 명성, 영향력 등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다.
“법칙이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는 법칙을 찾아내야 해.”
지금까지 공격 대상이 되어 파괴된 도시들과, 앞으로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들.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도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금방 임시 결론이 나왔다.
“아직은 표본이 부족합니다. 케이베른의 공격이 계속 진행될수록 자료들이 완벽해지겠지만 현재로서 모라타는 빠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내에는 목표가 됩니다. 가능성이 높은 건 한 달에 가깝습니다.”
북부의 유저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일이 머지않아 벌어지게 될 예정이었다.
* * *
위드는 차원문의 장갑을 이용하여 사막 웜과의 전장을 휘젓고 다녔고, 불꽃의 성배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도 공격력을 극대화시켜 줬다.
태양의 부족도 사막의 최정예라는 명성답게 꽤 오래 버티는 데 성공.
사망자 92명.
달구어진 사막에서 벌어진 처절한 전투에 비하면 그래도 적은 희생이었다.
부족의 신입 완료.
태양의 부족을 이끌어 사막 웜의 사냥을 마쳤다.
그대가 품은 힘과 용기에 부족 전사들은 모두 감탄하고 있다.
< 전투 업적. 사막 웜과의 혈전을 세우셨습니다.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힘이 5 늘었습니다.
민첩이 1 늘었습니다. >
< 명성이 5,000 올랐습니다. >
퀘스트의 완료!
위드는 부상자들에게 잊지 않고 붕대를 감아 주고 약초를 발라 주었다.
“으윽!”
“아파도 참아.”
말과는 다르게 대충 슥슥 감아 버리는 붕대!
눈 감고도 상처를 꽁꽁 동여맬 수 있었고, 죽기 직전이라면 대충 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자 위드에게 테피가 다가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의 도움으로 우리 부족이 힘든 싸움을 이겨 냈다. 부족을 대표해서 전사 중의 전사인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멀쩡한 태양의 부족 전사들도 주위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중앙 대륙의 기사들처럼 정중하게 예법을 차리지는 않는 전사들이다. 그렇지만 위드가 싸우자고 하면 태양의 부족 전사들은 어디라도 함께 따를 것이다.
이것이 사막의 방식!
테피가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또 다른 시미터를 건네주었다.
“그대는 사막이 인정한 전사가 될 자격이 있다. 이 광활한 모래 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띠링!
-직업 ‘사막 전사’로 전직이 가능합니다. 전직하시게 되면 특수 기술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활동하면 힘과 체력이 빠르게 성장합니다.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검술들을 익힐 수 있습니다.
낙타를 타면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사막 전사는 전사의 상위 직업입니다.
지금 전직하시겠습니까?
위드는 전직 기회가 생겼어도 실망했다.
‘퀘스트의 난이도에 비해서 고작해야 사막 전사라고?’
사막 전사는 이미 메타페이아를 비롯한 도시 안에서도 자격을 갖추면 전직을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사막 내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무력도 갖춰야 했지만 태양의 부족을 구하면서 고작 이 정도를 생각했던 건 아니다.
‘아니야. 실망할 것 없어. 사막에서 활동한다면 사막 전사의 직업은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거지.’
태양의 전사는 사막에서의 최강자에게만 주어지는 직업이니 이것이 끝이 아니리라.
‘어디 더 내놔 봐라.’
위드는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고맙다. 사막은 전사에게 명예로운 곳이지.”
< 사막 전사로 전직하셨습니다.
전사의 상위 직업을 얻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불을 다루는 전투 스킬들을 익힐 수 있습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25% 증가합니다.
마나의 최대치가 10% 증가합니다.
전투 업적이 더 크게 알려집니다.
신앙심의 효과가 5% 줄어듭니다.
사막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안 생명력의 최대치가 증가합니다. 힘, 체력이 빠르게 늘어납니다. >
전투 계열 직업으로는 훌륭한 편.
여러 종류의 스킬들을 다 활용 가능한 무예인과 비교를 안 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사막에서 성장했을 경우에 쌓이는 힘과 체력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사소한 부작용으로 이글거리는 태양빛 아래에서 지내다 보면 피부가 검게 타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
위드가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다른 알려 줄 것은 없나? 직업이나…… 그러니까 직업 같은 거. 좀 괜찮은 직업 말이야.”
“있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사막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다. 우리 부족이 품기에도 너무 거대한 존재다.”
로열 로드를 하며 그동안 쌓아 온 예감이 적중.
테피가 시미터로 동쪽을 가리켰다.
“낙타를 타고 쭉 달려가면 태양의 제단이 나온다.”
“태양의 제단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부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지. 이걸 받아라. 태양의 파편을 가지고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띠링!
< 태양의 제단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셨습니다.
광활한 남부 사막.
태양을 숭배하는 전사들이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장소입니다.
사막에서 가장 강한 전사는 이 의식을 통해 태양의 전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
< 태양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
위드는 태양의 파편을 손에 쥐었다. 뜨겁기까지 한 돌조각. 기묘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감정!”
< 태양의 파편 : 내구도 13/40.
태양의 일부로 알려져 있는 파편의 일부이다.
알 수 없는 힘이 숨겨져 있다. >
‘흠. 다르군. 과거에도 태양의 전사로 전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이 아니었어.’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는 퀘스트나 발견물에는 눈을 돌릴 시간도 없이 쉬지 않고 싸우며 강해졌다.
사막 전사로서 불의 스킬을 쓰다가, 어느 순간 태양의 힘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며 전직이 이루어졌다.
‘태양의 전사로 의식을 치른다. 이 방식이 진짜군. 제대로 된 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정식 직업인 느낌이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