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드래곤 레어 수비전
오베론이 희미하게 웃으며 옆에 있는 위드에게 말했다.
“제가 방어선을 책임지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끌 테니, 위드 님은 중요한 일을 하셔야 합니다. 어서 희생의 화로를 찾으시고, 보물도 옮기십시오.”
사서 고생을 청한다. 그야말로 상을 내려도 아깝지 않을 훌륭한 책임자였다.
이런 이들이 꼭 승진은 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인생을 마감한다.
위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베론 님의 비석에 제가 이름을 꼭 새겨 드리겠습니다.”
위기 때 튀어나오는 인성!
“흐랴아!”
오베론은 방패를 땅에 내려찍으며 용아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부 덤벼라!”
위드는 용아병들이 오베론에게 관심을 둔 사이에 뒤로 완전히 빠져서 주위를 살폈다.
레어에 쌓여 있는 막대한 보물들!
드워프들이 빼돌리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십 분의 일 정도만 옮긴 상태라 아직도 많았다.
하지만 분류와 정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보물을 실어 나르는 속도는 훨씬 빨라지고 있었다.
위드는 드워프들에게 물었다.
“희생의 화로는 챙겼습니까?”
“없습니다.”
“저희도 아직 못 찾았어요.”
처음에는 보물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지만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
레어의 입구에서는 바뎀믹스나 다른 몬스터들이 뚫고 들어오는 걸 드워프가 수십 명씩 달라붙어서 억지로 막고 있었다.
< 바뎀믹스가 특수한 힘의 장막을 몸에 둘렀습니다.
모든 물리 피해를 30초 동안 마나로 흡수합니다. >
타격대의 유저들이 바뎀믹스를 집중 공격했지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드는 그 광경을 잠깐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저런 개사기가…… 나이드!”
“예, 형.”
“우린 어떻게 될지 모르니 희생의 화로부터 찾아야 돼.”
“알겠어요, 저도 도울게요.”
위드는 나이드와 함께 보물들을 확인하며 커다란 화로를 찾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높은 탑을 이루기도 했고, 금은보화에 뒤덮여서 내부가 제대로 안 보였다.
“화로…… 일단 화로의 형태일 텐데. 크기도 꽤 클 테고.”
“예술품이나 골동품이 모여 있는 곳들부터 수색해 볼까요?”
“그게 좋겠어.”
드래곤이 난로로 썼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예술품이나 가구들 사이에서도 눈에 쉽게 띄진 않았다.
악룡 케이베른은 정말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먼 유형이었다.
최소 3년 동안 집 정리를 한 번도 안 한 자취생의 집!
골동품들과 보물, 보석들이 이것저것 종류를 가리지 않고 뒤섞였다.
“젠장, 쓰레기 더미처럼 마구 쏟아 놓았어.”
위드는 산을 이루며 쌓여 있는 보물들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어서 곤란했다.
모험가 하루나가 마법 함정들을 해제하는 손길도 너무 빨라 보이지 않았다.
“더 서둘러 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떤 위험한 마법 함정이 있을지 몰라요. 재차 확인까지 해야 되니 더 빨리하는 건 무리예요.”
하루나도 나름 고충이 있었다.
정화의 횃불이 마법 함정을 해제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마냥 빠를 수만은 없는 것.
“이대로라면 희생의 화로가 언제 나올지 몰라. 그럼 시간이 꽤 필요하겠는데.”
위드가 다시 레어의 입구를 돌아보는데 용아병들과 몬스터들의 공격이 거셌다.
- 침입자들을 죽여라!
- 산 채로 뜯어먹자. 케이베른 님이 화를 내시기 전에 말이야.
- 돌격, 앞으로!
레어의 입구에서부터 함성을 지르면서 모여드는 용아병과 몬스터 떼.
쿠궁!
이번엔 땅이 흔들렸다.
“중력 마법이다.”
“젠장, 여섯 배나 돼!”
어딘가에서 드워프들에게 무거운 중력을 적용시키는 마법이 시전됐다.
- 케이베른 님의 안식처에 들어온 겁 없는 녀석들. 너희들의 심장을 꺼내서 얼마나 커다란지 확인해 보아야겠구나, 클클.
< 리치 스몰링이 지역의 중력을 조절했습니다.
모든 생명체들아.
연약한 너희들은 마땅히 납작하게 짓눌릴 것이다!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체력 소모가 빨라집니다. >
레어를 지키는 언데드 마법사 리치!
바뎀믹스에 이어서 리치 스몰링까지도 달려왔다.
중력 조절 마법의 무서움은 지역 전체에 부여되어 피할 수 없다는 것.
힘이 약할 경우에는 단숨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들었다.
“버텨!”
“자리만 지켜라. 앞으로 나가지 마!”
드워프들은 밀집 대형을 유지한 채로 간신히 막아 내고 있었다.
좋은 갑옷과 맷집을 바탕으로 전투에서는 탱커 역할을 주로 하는 드워프들이었지만 뚫고 들어오려는 공격이 만만치 않았다.
레어의 입구가 좁지 않았더라면, 바뎀믹스나 용아병들에 의해 무시무시한 피해를 입었으리라.
간신히 몸을 버티고 서서 막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위드 님! 저는 블로핸드라고 합니다.”
드워프 한 명이 상자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방금 옮기려던 것인데…… 여기 마법 스크롤이 있습니다.”
드래곤이 만든 마법 스크롤!
마법사가 없더라도 손으로 찢는 것만으로도 발동되는 마법 스크롤은 그 위력에 따라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촤라라랏!
위드의 머릿속에는 상자에 수북이 쌓여 있는 스크롤의 견적들이 뽑히고 있는 상태.
“이걸 전투 중인 사람들에게 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블로핸드의 말에 고속으로 회전하던 머릿속이 딱 멈췄다.
“이 귀한 걸…… 쓴다고요?”
“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안 될까요?”
위드는 블로핸드의 말을 들으며 가볍게 눈을 감았다.
이 순간, 가까이 있는 드워프들이 보고 듣고 있었다.
당연히 방송국들의 생중계로 수억 명에 달하는 시청자들까지도 지켜보고 있으리라.
‘지금 제안을 거절한다면 치사한 짠돌이에 비겁한 놈이 되겠지.’
솔직히 스스로도 치사한 짠돌이에 비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본인이 인정하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어 실망하게 되는 건 별개였다.
어느 한구석엔가 실낱처럼 붙어 있던 자존심!
위드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 막기 위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쓰세요, 급한데 당연히 써야죠.”
“알겠습니다.”
마법 스크롤의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레어의 입구에 전격 마법이 작렬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와 용아병들을 정리하며 한숨을 돌리는 드워프들! 그럼에도 적들은 금세 다시 몰려왔다.
“아무래도 오래 버티긴 무리겠어.”
위드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 때마다 마법 스크롤을 쓰면 몇 분은 더 버틸 수 있을지라도 여기는 드래곤의 레어.
온갖 몬스터들이 덤벼들고 있었다.
* * *
- 인간들이 살아가는 집 따위는 모조리 부서져야 한다.
케이베른은 대지에 우뚝 서서 포효했다.
바웰 성은 처참하게 부서져서 그 잔해만이 남아 있었으며, 도시의 건물들도 파괴되어 무너져 내렸다.
다리가 끊어지고, 가로수들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에 타고 있었다.
- 모두 파괴되어라!
케이베른이 숨을 한껏 들이마신 후에 브레스를 내뿜자, 건축가들이 부실 공사로 지은 건물들이 땅과 함께 녹아내렸다.
분탕질을 치면서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놓는 블랙 드래곤!
- 쿠워어어어어어!
케이베른이 포효를 터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멀찌감치 구경하던 유저들은 바웰 성이 완벽하게 부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드래곤의 행동은 목표로 했던 도시를 철저하고 완벽하게 파괴했다.
어느 건물 하나 멀쩡하게 남겨 놓지 않을 정도로 부숴 놓는 것이 드래곤의 일반적인 모습들.
- 인간들…… 감히 내 영역에 들어오다니 간이 부었구나.
드래곤 레어의 경계 마법이 발동되며 케이베른은 침입자들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헉.”
“눈치챘잖아!”
바웰 성에 건물들을 세운 건축가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계획이 탄로 나고 만 것!
당장이라도 자신의 집으로 날아가면 빈집 털이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 가소롭구나. 내 집이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케이베른은 도시를 파괴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 * *
- 바죠 : 위드 님! 케이베른에게 들켰습니다.
바웰 성에 있는 건축가 바죠가 위드에게 귓속말로 상황을 알려 주었다.
“이런…… 보물을 빼돌리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 비천한 종속들아, 당장 모여들어 육체와 영혼의 주인인 케이베른 님의 레어를 지켜라!
용아병들의 대장 바뎀믹스가 뼈로 만든 뿔피리를 불었다.
뿌우우우우.
높고 웅장한 소리가 울타 산맥의 먼 곳까지 퍼졌다.
“적을 더 모으고 있어!”
“지금도 막기 어렵잖아!”
드워프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전사와 워리어들로 이루어져 있어 간신히 입구를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바뎀믹스의 공격은 제대로 맞으면 드워프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였다.
“무조건 뚫어라.”
“저 벌레 같은 드워프들을 죽여! 섬광 파열!”
용아병들의 돌파도 문제인 데다 리치 스몰링까지 마법으로 드워프들을 공격했다.
빛이 번쩍이고, 공기가 터질 때마다 피해를 입는 드워프들.
타격대의 유저들도 원거리 공격으로 받아치면서 버티고 있었다.
“적은 강하다. 하지만 좁은 입구를 막으면 버틸 수 있다. 절대 물러서지 마!”
오베론이 전사의 함성을 지르며 드워프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 순간!
후방에서 회복 마법을 준비하던 사제가 목숨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했다.
“뭐야, 왜 죽었어?”
옆에서 사제들이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두 명의 목숨이 연달아서 사라졌다.
“암살자다!”
드래곤의 레어를 지키는 병력 중에서 지휘관급인 존재가 하나 더 나타났다.
“어서 후방을 보호해 줘!”
“다들 경계하고 어둠이 다가오지 않도록 주변을 밝혀요.”
타격대의 전사 일부가 사제와 마법사들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달려갔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가 천장에 겹쳐지며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바뎀믹스 같은 놈이 몇이나 있는 거야?”
“지켜, 지키라고!”
드워프들도, 타격대에서도 죽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 날쌘 찬바람 : 인근 몬스터들이 전부 레어로 향하고 있습니다.
위드는 답답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알고 있어요.”
- 날쌘 찬바람 : 아, 예. 짐작하시리라고 생각했지만, 대략 반경 10킬로미터에 달하는 영역의 몬스터들이 전부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닷!
“…….”
추가 병력의 등장.
던전과 마굴에서 무시무시한 고위 몬스터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드래곤 레어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TO BE CONTINUED
“우리 이제 망한 거 아냐?”
“레어에 갇혀서 다 죽는 건가? 빨리 지금에라도 철수를 해야 해!”
보물을 수색하던 드워프들이 소리를 지르고 급하게 뛰어다녔다.
나이드가 다급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어쩌죠, 형? 당장 몬스터들이…… 보물들은 절반도 못 살펴봤어요. 이대로면 몬스터나 케이베른이 먼저 들어올 것 같은데요?”
위드는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역시 드래곤의 레어를 털려니 이 정도로 위험하군.”
드래곤에게 들킨 상황에 시간이 촉박한 데다 궁지에도 몰렸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치과 치료를 막 마치고 얼음물을 들이켠 것처럼 깨어나는 정신!
“바로 앞에서 케이베른의 브레스가 날아오지 않는 이상 진짜 최악은 아냐. 그리고 이미 빼돌린 보물도 있으니 이미 최악은 면했지.”
위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드워프들은 감명 깊게 듣기도 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이 최악이 아니라면 더 떨어질 밑바닥이 있다는 의미로군.”
“어…… 그리고 케이베른도 곧 올 거잖아.”
* * *
페일은 용아병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공기를 꿰뚫으며 30미터의 거리를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이 용아병의 이마에 정확히 박혔다.
용아병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보며 그다음 화살을 시위에 빠르게 쟀다.
“페일님, 어떻게 해야 하죠!”
타격대의 유저 중의 하나가 물어왔는데 목소리에는 떨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케이베른이 빈집 털이 계획을 알아차렸고 레어의 입구로는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드래곤 레어에 머물고 있다는 장소 자체의 위험성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페일의 답은 간단했다.
“우린 놈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면 됩니다.”
“하지만…… 케이베른이 오면 우린 다 죽은 목숨 아닌가요? 몬스터들을 막기도 버겁잖아요.”
푸슉!
페일의 화살이 이번에는 몬스터를 꿰뚫었다.
힘껏 쏜 화살이라 몇 마리의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관통했지만 죽은 것은 한 마리.
괴상한 냄새를 내뿜던 파충류였다.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라 정보가 부족하니 외관상 위험할 수 있는 녀석을 먼저 해치운 것이다.
“전투에 집중하세요. 우왕좌왕해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눈앞의 적과 싸우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위드 님께 퇴각하는 걸 건의하면 어떨까요. 보물도 그럭저럭 챙겼고요. 친한 페일 님이라면 말할 수 있잖아요?”
페일은 그제야 주위를 돌아봤다.
타격대의 유저들이 불안해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레벨은 높지만 위기에 빠진 경험은 부족한 유저들.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의 기세에 눌려서 대규모의 레이드 같은 건 못 해 봤다.
명문 길드 소속 유저들은 여러 일들을 겪어 봤지만, 그들에게도 드래곤의 레어는 불안감을 심어 주는 장소였다.
차라리 토르의 드워프들은 그들의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전투들을 겪어 보았다.
무엇보다 선두에서 싸우는 전사, 워리어 계열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리라.
“하아.”
페일이 한숨을 쉬고 말았다.
오베론은 자신을 따르는 드워프들을 이끌고 버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힘겨워 보였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간신히 막아 내는 방파제의 느낌이랄까.
몬스터들이 무시무시하게 부딪쳐 오기에 드워프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버텨 내는 데 급급했다.
그 와중에도 검과 창을 내세워서 반격을 가하고 부상이 심한 동료들을 지키고 있었다.
페일은 이를 악물었다.
“싸우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그렇지만 퇴각은 절대 없습니다.”
“왜요? 일부러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
“물러나면 언제 강해집니까?”
“상황이 안 좋잖아요. 보물에 무리하게 욕심을 내기보다는…….”
“불리함 따위는 따지지 마세요. 적이 왔으니 그냥 싸우는 겁니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세요. 레어에 온 목적을 떠나 우리가 퇴각하면 저 드워프 유저들도 철수할 수 있습니까?”
“…….”
퇴각을 하게 되면 용아병과 몬스터를 겨우겨우 막고 있는 드워프들은 몰살이 확정되는 것이다.
“위드 님이 싸움은 몸보다도 마음으로 먼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싸울 생각이 없으면 여기서 혼자 빠져나가세요.”
페일은 위험한 상황에서 길게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했다.
누군들 얼마나 알아들었을까.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뿐!
위드를 따라 위험하고 어려운 전투 현장들을 겪어 본 페일은 아직 할 만하다고 여겼다.
극단적으로 빠른 사냥 속도는 항상 생명력과 마나를 간당간당하게 유지하며 몬스터와 부딪쳐 갔었다.
한눈을 팔거나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언제든 위험했고 여유를 부릴 틈이란 없었다.
다다닷!
페일은 레어의 벽을 딛고 옆으로 달렸다.
궁수로서 중점적으로 올려놓은 민첩은 몸놀림을 가볍고 빠르게 만들어 주었다.
“다중 관통 화살!”
슈슈슉!
벽을 타고, 그다음에는 공중에서 회전하며 쏘아 낸 화살들이 몬스터들의 머리에 연달아서 정확하게 박혔다.
< 몬스터 프렘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죽음의 일격!
몬스터 프렘을 죽였습니다. >
< 궁술 스킬의 숙련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
페일은 공중에서 회전하며 활시위를 놓았다.
기본적으로 200, 300미터의 거리에서는 놓치지 않는다.
정확한 조준, 쏘아진 화살이 목표물에 명중하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울 뿐이다.
- 넌 친구들 말 듣다가 망할 거야.
- 소신을 가져야지. 단호하게 의사를 표현할 줄 알아야 돼.
페일은 어릴 때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모두들 틀렸어.’
누군가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학교 선생님은 훗날 페일이 ‘호구’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그렇지만 인생을 함께 걸어가도 좋을 친구이자 동료를 만났다.
방송으로 알려진 이후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모두가 그를 부러워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들의 연락이 쇄도했다.
어쩌다 전투 영상들만 등록해도 조회 수가 가볍게 천만 단위는 넘게 찍혔다.
‘자만하지 말아야지. 행동도 조심해야 해. 난 그냥 모험이 즐거울 뿐이야.’
페일은 한 명의 어엿한 궁수로서, 아르펜 제국의 영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 * *
“큭!”
오베론은 주위의 드워프들이 바뎀믹스의 공격에 튕겨 나가는 것을 봤다.
드워프들은 로열 로드를 함께한 그의 동료이고 친구들이었다.
“자리를 지켜라아!”
오베론은 용아병의 돌격에 맞서며 힘겹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앞에 달려오는 용아병들을 막아 내는 것도 벅차다. 기회가 되는 대로 고함을 지르며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해야만 죽지 않고 바뎀믹스의 발목을 잠깐이라도 붙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막는다, 막아야 한다.’
입구가 뚫리면 레어로 용아병과 몬스터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결과는 파국!
워리어들과 전사들은 사력을 다해서 막아 냈다.
< 하늘의 수호가 적용되었습니다.
3분 동안 방어력이 200% 강화됩니다.
생명력이 5.2배 더 빠르게 회복됩니다.
일시적으로 힘과 맷집이 늘어납니다.
강한 적과 싸울수록 전투력이 향상될 것입니다. >
누군지 모를 사제의 보호 마법이 적용되었다.
선두에서 싸우는 워리어에게 사제들의 신성 마법이란 끊임없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빠각!
그때, 오베론에게 창을 휘두르며 신나게 공격하던 용아병이 스르륵 무너졌다.
용아병의 머리를 대검으로 후려치며 나타난 거구의 남자가 있었다.
“난 파이톤이오. 그쪽은?”
“오베론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소.”
“저 역시 마찬가지. 저놈은 우리 둘이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파이톤과 오베론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며 협의했다.
용아병들을 지휘하는 바뎀믹스.
집단 전투에서는 지휘관을 묶어 놓으면 효과가 크다. 물론 용아병들이나 몬스터들은 바뎀믹스가 죽거나 말거나 밀고 들어올 테지만.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적어도 5분은 해 봐야지요.”
“목숨을 거는 치열한 싸움이 될 것 같군. 가 봅시다.”
오베론과 파이톤이 같이 바뎀믹스에게 덤벼들었다.
- 멍청한 놈들! 감히 나에게 덤비다니. 허리를 둘로 잘라 주마.
용아병의 대장인 바뎀믹스가 그 싸움을 받아 주면서 격전이 펼쳐졌다.
- 이것이 나의 힘이다, 울림 휘두르기!
바뎀믹스의 할버드가 같은 용아병까지 휩쓸어 버렸다.
오베론은 작은 키 덕분에 피하기가 쉬웠지만, 파이톤은 땅으로 대검을 휘두르며 뛰어올랐다.
“머리 깨기!”
파이톤은 공중에서 대검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런 큰 공격은 위험합니다!”
오베론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 파이톤도 다 생각이 있었다.
지능이 있는 몬스터들은 약한 공격은 맞아 주더라도 머리로 향하는 위협적인 공격은 그냥 무시하지 못한다.
‘반드시 피하거나, 받아친다.’
예상대로 바뎀믹스는 휘두르던 할버드를 그대로 올려 치는 것이었다.
- 하늘을 꿰뚫어라!
파이톤의 머리 깨기를 시퍼런 기운이 맺힌 할버드로 받아치는 바뎀믹스.
“칼날 막기!”
파이톤은 급히 스킬을 취소하며 방어 스킬로 전환. 미리 예상했던 움직임이라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콰쾅!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뎀믹스의 공격에 생명력이 30%가 넘게 줄어들었다.
감당하지 못할 충격을 공중에서 받은 파이톤은 용아병들의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적들이 몰려드는 와중에도 질세라 파이톤이 고함을 질렀다.
“덤벼라, 이 도마뱀 부하 새끼야!”
- 죽고 싶구나. 토막을 내서 얼마든지 죽여 주마.
바뎀믹스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드워프들을 벗어나서 성큼성큼 달려왔다.
- 저리 꺼져라.
할버드를 휘두르며 걸리적거리는 용아병들을 거침없이 베어 버렸다.
“뭐 하는 겁니까!”
오베론이 고함을 지르며 바뎀믹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적진에서 혼자 고립되어 죽어 가는 파이톤의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죽기 딱 좋은 날이네.”
파이톤은 즐겁다는 듯이 씩 웃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평소에 누군가에게 등을 맡기고 싸워 본 적이 드물어서.”
“……!”
오베론은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따지려 했지만 이어서 보이는 모습에 말을 삼켰다.
- 갈기갈기 잘라 주마.
바뎀믹스는 주위의 몬스터나 용아병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병기인 할버드를 휘둘렀다.
그 공격이 파이톤에게 향했지만 적들에게는 더 많은 피해를 입혔다.
바뎀믹스와의 전투로 삼분의 일에 달하는 적들이 죽거나 밀려나고 있었다.
오베론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
‘일부러 끌어들인 것이구나.’
오히려 적진인데도 훨씬 편해 보이기도 했다.
바뎀믹스의 공격을 일방적으로 받아 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아군들 때문에 피하지도 못하던 상황과는 다르다.
할버드의 공격 범위에 있던 몬스터나 용아병들이 함께 나가떨어지고 있었으니 최소한 마음 놓고 움직일 반경은 마련되었다.
주위에 동료는 없다.
위기에 빠지면 그대로 죽을 테고, 몬스터와 용아병들을 등 뒤에 두어야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진짜 터무니없이 위험한 짓인데…….”
오베론은 딱 마음에 들었다.
간신히 버텨 오던 드워프들이 받는 부담은 훨씬 줄어들 테니까.
‘잠깐만 숨 돌릴 여유가 생겨도 정말 몇 분은 더 버틴다.’
느닷없이 빛이 번쩍번쩍 빛나며 사제들의 치유 마법이 파이톤과 오베론에게 집중되었다.
< 빛의 정화로 인해 신체의 이상 현상이 회복됩니다. >
< 치유의 손길이 당신을 어루만져 줍니다.
잃어버린 생명력이 4,950 회복됩니다. >
< 바다 거북이의 등껍질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피부가 단단해지며 방어력이 강화됩니다. >
< 오소리의 날개 효과가 부여되어…… >
< 여행자의 기원이 적용되었습니다. >
< 단단한 하체! >
< 정신이 맑아집니다. >
생명력과 체력, 마나를 최대로 회복시켜 주고, 전투력을 증강시켜 주는 열 종류가 넘는 축복들이 집중되었다.
슈슈슉!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오베론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퍼버벅!
하지만 그것들은 오베론을 스치듯이 지나가서 바뎀믹스의 가슴에 꽂혔다.
다섯 발의 화살.
화살촉을 흑요석으로 만들어서 몬스터들을 꿰뚫는 효과를 가진 특수한 화살이었다.
파이톤이 다시 씩 웃었다.
“페일 님이다. 역시 내 생각을 읽고 지원을 해 주겠다는 표시로군.”
- 크오오오오오!
바뎀믹스가 할버드를 높이 쳐들며 고함을 질렀다.
충격파가 좌중을 휩쓸었지만 오베론은 웃었다.
“위드 님의 동료 분들. 이제야 알게 된 게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로 마음에 드네.”
뚫리느냐, 막느냐.
너무나도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위드는 나이드와 함께 레어를 샅샅이 수색했다.
“이쪽은?”
“여긴 없어요!”
“확실히 찾아봐, 시간이 없다고!”
좌르르!
드워프들이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보석들을 모래를 넣듯이 자루에 넣었다.
쨍그랑!
금화는 발에 차일 다닐 정도로 많아 더 이상 누구도 관심을 쏟지 않았다.
옛 니플하임 제국이나 켈튼 왕국의 100골드짜리 금화라고 해도 관심이 없는 상태!
위드에게 귓속말이 들어왔다.
- 바죠 : 희소식입니다. 케이베른이 바웰 성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요?”
- 바죠 : 드래곤의 오만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수기로 했으니 끝까지 부수는 거죠.
케이베른은 자신의 레어에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서둘러 돌아가지 않았다.
바웰 성을 파괴하기로 했으니, 그것은 반드시 이뤄 보이리란 드래곤의 자만심!
“역시 악당은 자만하다가 무너지는 거였어.”
위드는 케이베른이 당장 돌아올 줄 알고 조급했지만 한결 여유가 생겼다.
빈집 털이를 하다가 경찰에게 쫓기는 와중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는, 한 잔의 여유라고 할까.
위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집중해서 챙깁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희생의 화로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나가 마법 함정들을 해제한 보물 더미들이 제법 늘어나 있었다.
오늘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처럼 보물들을 감정하고, 10만 골드가 넘는 것들은 즉시 챙긴다.
‘아만타의 방패. 현재 시세 27만 8천 골드. 재질에 백금이 5% 포함. 명성 증가 효과로 4만은 더 받겠군. 펠샨의 마법 부여가 되어 있으니 여기에 3만 골드가 추가될 테고 적절한 바가지까지 씌우면…….’
세계적인 수학자들의 계산 능력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시세 파악에서만큼은 지지 않았다.
샤샤샥.
스스슥.
위드가 지나갈 때마다 좋은 보물들이 사라진다.
드워프들도 모든 것이 불안하고 조급한 와중이었지만,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린 상태였다.
‘챙기자.’
‘먹고 죽자.’
‘지금을 위해서 살았다.’
탐욕과 한탕주의의 리더십!
드워프들은 점점 이성을 잃고 보물들을 담고 있었다.
‘쾅’ 하고 폭발음이 바로 옆에서 터져도 꿈쩍도 하지 않고 보물을 담는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바웰 성의 방대한 건축물들로 시간을 벌긴 했다지만 결코 여유롭진 않았으니까.
“위드 님, 이쪽에 문을 찾았습니다!”
드워프 빈델이 레어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발견했다. 정화의 횃불에 의해 환영 마법이 풀리자 벽이 일렁이더니 문의 형태가 드러난 것이다.
“비밀 문?”
위드와 나이드, 하루나는 빠르게 달려 빈델의 옆으로 왔다.
“마법으로 잠겨 있는데, 지금 해제할게요.”
“빨리해요.”
“예, 서두르고 있어요. 시간이 필요…….”
“빨리하라니까요. 어서요, 어서!”
“…….”
마침내 문에 걸려 있던 마법들이 해제되자 저절로 스르륵 열렸다.
그 너머에 있는 건 또 다른 엄청난 보물들!
“통로에도 마법 함정이 있습니다. 빨리 마법을 해제할 테니…….”
어느새 하루나의 옆에 모여든 드워프들의 눈빛이 진지했다.
그들은 보물을 눈으로 실컷 본 상태였다.
이번 빈집 털이를 하다가 죽으면 추가 보상으로 보물이 2개씩 더 주어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이 통로는 제가 돌파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
콰지직! 콰과광!
드워프들이 거침없이 마법 함정들에 몸을 부딪치자 레어가 진동으로 마구 흔들렸다.
“…….”
하루나는 말을 잃었다.
통로의 마법 함정들은 강제로 발동되면서 차례대로 해제되었고, 드워프들은 40명이 넘게 죽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파라…….”
“살아 버렸네.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이 모진 목숨 보소.”
“큭, 방어구를 벗고 들어갔으면 확실히 죽었을 텐데.”
드워프 자해 공갈단!
부상을 입은 드워프들은 죽지 못해 괴로워했다.
레어의 입구에서 싸우는 드워프들은 페일에게 철수를 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드워프들은 달랐다.
위드의 곁에서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있었다.
잔뜩 들떠 있었고 몸을 사릴 줄을 모른다.
조금만 더 잘하면 일확천금을 손에 쥐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몬스터들의 진입에 시간을 아끼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사리사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돌파였다.
자본주의가 낳은 드워프들이 우르르 보물로 달려갔다.
“위드 님! 여기 화로가 있습니다. 근데…… 이건 희생의 화로는 아니네요. 그래도 이쪽에 있을 것 같습니다.”
대장장이, 재봉, 농부들의 용품들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번쩍거리는 큰 보석들도 섞여 있었지만, 굉장한 물품들이 많았다.
“락티샤의 쟁기? 대자연의 정기가 깃들어서 수확량을 3배로 해 주고, 특상의 농작물들을 만들어 내는 조건을 달성해 준다고 하네요. 추가 생명력도 무려 10만이 붙었는데요?”
“구름의 물뿌리개도 보세요. 높은 확률로 비를 내리게 하고,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는데.”
유독 농사와 관련된 장비들이 많았다.
마법 물품들 중에서도 농사 장비들은 드물었는데 이런 것들이 진정 초대박에 속했다.
“챙깁시다!”
위드와 드워프들이 장비들을 마구 수레에 실었다.
생산 계열 물품들은 그 어떤 것이든 귀했고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더구나 이곳에 있는 보물들은 따로 마법 함정이 설치되지 않아서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이삿짐, 택배 업체에서 근무한 노하우들을 활용하며 수레에 차곡차곡 쌓았다.
“움직여!”
“동선 확보 확실히 하고.”
보물이 모이면 드워프 두 명이 수레를 밀면서 전력 질주를 하며 뛰어갔다.
기계처럼 움직이며 빼돌리는 보물들.
“위드 님, 여기 희생의 화로입니다!”
드디어 희생의 화로도 찾아냈다.
위드는 소리친 드워프에게 가 보니 2.5미터 크기의 녹슨 화로가 있었다.
당연히 볼품은 없었고, 고물상 구석에서 눈과 비를 5년은 맞았을 것 같은 허술한 모습이었다.
“이렇게나 금세 찾아질 화로였다니…… 감정!”
< 희생의 화로
드워프 종족의 사라진 보물.
전설적인 대장장이 물품.
높은 열을 발생시켜 광물의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특수 금속을 조합하여 초고강도의 합금 제조 가능.
대형 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
최고의 드워프들이 화로를 다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정도로 영광을 간직한 보물.
드워프들에게 돌려준다면 그들은 최고의 예우와 존중으로 그대를 대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화로에는 불가사의한 전설이 내려오는데, 본인의 생명력과 레벨을 태움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최대 10% 제한.
화로에 담은 생명력과 레벨은 영원히 타 버리게 되지만 그 대가로 한순간이지만 오롯이 빛나게 되리라.
생산 제한 : 대장장이 고급 7레벨 이상.
드워프 전용.
옵션 : 대장장이 스킬의 효과 79% 상승.
지극한 불의 기운을 집중시켜 뛰어난 명품이 제작될 확률을 4배로 높임.
높은 내구도와 결함이 적은 물품을 생산.
희생의 화로에 불을 지피고 생명력과 레벨을 태우면 그 열 배의 힘을 얻게 됨.
“이것이 희생의 화로구나!”
위드가 알고 있던 그대로의 능력이었다.
‘이걸 가져가기만 하면 드워프 종족 퀘스트는 성공이다. 과연 탐나는 물건이야.’
모라타나 대지의 궁전에 설치해 놓는다면 드워프들 사이에서 떠들썩할 것이다. 대장장이 스킬들을 연마하는 장인들도 전부 몰려올 것이다.
‘어쨌든 이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열 배의 생명력과 레벨이라.’
오베론에게 들었던 내용이 정확히 맞았다.
10%의 제한이라면 간단히 계산해도 레벨 500대의 유저라면 50개의 레벨을 태울 수 있다.
‘뭐 많이 태운다고 좋은 것도 아니긴 하지. 솔직히 50개의 레벨만 하더라도 매우 끔찍한 수준이야.’
레벨을 올릴수록 성장 속도가 더 늦어진다.
위드의 경우에는 초반에 극악의 성장 속도를 자랑하는 조각사로 시작해서 마스터를 하고, 네크로맨서에도 한 발을 걸쳤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빨리 성장할 자신이 있다고 해도 50개의 레벨은 엄청난 희생이었다.
로열 로드의 최상위권 랭커들이 희생의 화로를 쓴다면 레벨이 꽤 높은 수준으로 추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퀘스트를 성공해서 좋긴 한데…… 이건 정말 끔찍한 악마의 물건이군.’
위드는 드워프들과 함께 희생의 화로를 챙기기로 했다.
* * *
“어서 와요, 취췻!”
“형수님께 인사드립니다!”
검둘치는 50명의 수련생들을 데리고 오크랜드에 도착했다.
먼 곳에 있던 그들이 빨리 올 수 있던 이유는 유린의 그림 이동술 덕분이었다.
“고맙다, 유린아.”
“뭘요. 오빠들을 그리는 건 쉽거든요.”
“우리가 좀 선이 굵은 편이지.”
“헤어스타일도 똑같고 비슷한 근육질 체형들이라 눈, 코, 입만 각도를 조금씩 조절하면 되니까요.”
“…….”
검둘치나 수련생들끼리는 서로 잘 알아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10명만 뭉쳐 있어도 숨은그림찾기가 되어 버리는 현실!
살짝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기뻐하며 웃었다.
백번 욕을 해도 오빠라고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10대 중반부터 아저씨 소리를 들어온 이들이 절반을 넘었기에.
“저도 따라다녀도 돼요?”
“그럼, 얼마든지.”
유린은 오크랜드까지 온 김에 함께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드래곤, 취췻. 무언가 찾는 것 같아요, 췻!”
세에취는 부서진 오크 마을들을 안내하며 검둘치나 수련생들에게 상황을 알려 주었다.
“확실히 수상해.”
“그래. 드래곤이 일일이 뒤져 볼 성격이 아닌데 말이지.”
검둘치와 수련생들은 오크 마을을 돌아다니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별생각도 없었다.
‘배고프네. 밥은 언제 먹지?’
‘이 부근에 강한 몬스터나 있으면 좋겠다. 몸이 찌뿌둥하네.’
‘뭔가 아는 척, 고민하는 척해야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냥 생각하는 척!
세에취는 돌아다닌 지 한참 후에야 이상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우선은 부서진 오크 마을들을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레드 드래곤 랜도니는 케이베른처럼 일주일에 하나씩 파괴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오크 부락이나 성채를 부수고 있을 뿐이었다.
번식력이 강한 오크들은 또 다른 곳에 서식지를 마련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오크들의 숫자를 줄여 균형을 유지한다?’
세에취는 그런 추리도 해 봤지만 이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드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 이상으로 포악한 존재로 알려졌어. 그린 드래곤처럼 평화나 자연을 수호하지 않아. 파괴, 살육을 좋아하는 드래곤이야.’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는 있었다.
“랜도니를 따라가요, 췻!”
결국, 랜도니의 이동 경로를 고스란히 따라다니며 정보를 얻기로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