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모라타의 위기
울고르 고원.
아이데른과 데일, 토르 사이에 위치한 높고 평탄한 지형이었다.
마판 상단과 드워프들이 모는 짐마차들이 미리 정해진 언덕 아래에 차곡차곡 모였다.
짐마차마다 가득 찬 보물들!
마판이 지팡이로 힘겹게 그새 살이 찐 몸을 가누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군요.”
위드는 그 말밖에는 할 게 없었다.
레어에 있는 보물의 삼분의 일도 제대로 못 훔쳐 온 것 같았지만, 울고르 고원에 모아 펼쳐 놓으니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아쉽지만 운송 과정에서 잃어버린 게 21대입니다. 불행히도 추격해 오는 몬스터를 만난 경우도 있었고, 산길에서 서두르다 보니 수레가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산불이 워낙 위험해서 도주로를 바꾼 것도 타격이 있었지요.”
위드는 마판의 가슴 아픈 보고를 받았다.
험한 울타 산맥에서 몬스터에 쫓기며 급하게 운송을 했기 때문에 생긴 피해였다.
“우리가 챙긴 물량은 어느 정도죠?”
“장비는 4천 점 정도 됩니다. 귀금속, 광물, 마법 재료. 다양하게 챙기긴 했습니다.”
“빈집 털이에 참여한 유저들에게 나눠 줘야 할 건 제외한 숫자죠?”
“그렇죠. 나눠 줄 장비들을 제외하고 보물, 골동품은 따로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빨라도 일주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흐흐흐.”
“케헤헤헤.”
위드는 마판과 함께 웃었다.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는 가족보다도 마음이 확실하게 잘 맞았다.
‘언제든 주의해야 할 인물이야. 바드레이보다 위험할 수 있지.’
친한 만큼 경계는 기본!
마판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기꺼이 빌려줄 수도 있는 사이지만, 선이자와 담보는 필수였다.
“위드 님, 근데 이런 장비들은 부르는 게 값이잖습니까? 하지만 돈을 낼 수 있는 유저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고레벨 유저들이라고 막대한 돈을 쌓아 놓고 살진 않았다.
백만 골드는 우습게 넘어 버릴 장비들을 살 수 있는 유저들은 한정되어 있고, 얼마 전에 영주들을 모집하며 대부분이 자산을 털어 넣었다.
마판은 경매에 넘겼을 때 시세가 낮아질 것 같아 걱정이었다.
“팔지 않을 겁니다.”
“안 파시려고요?”
“네. 당분간은 임대로 돌릴 예정입니다.”
고레벨의 유저들은 그들끼리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임대를 하리라.
그리고 매달 열심히 사냥하고, 임대료를 갚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템거지!’
비싼 차를 사서 허덕이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어도 어쨌든 그것은 사냥터에서 성장한다는 점이었다.
“장비들을 계속 돌리면서 임대료와 세금 수입을 충족시켜야죠.”
“캬아, 역시 아직도 저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
마판은 끊임없이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판 상단을 베르사 대륙 전역으로 확장하는 사이에, 위드는 권력을 얻었다.
돈과 권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크헤헤헬.”
“흐흐흐흣.”
헤르만과 파비오도 보물들을 구경한다는 명목으로 울고르 고원까지 달려왔다.
“검에 붙은 특성들이 굉장하군. 참신한 것들이 많아.”
“드워프 장인들의 실력이란…… 정성을 담아서 꼼꼼하게 잘 만들었어.”
마스터인 그들도 상당한 노력을 해야만 하는 장비들이 널려 있다.
대장장이들이란 금속이나 사물을 극한까지 연마하는 직업.
마스터인 그들은 장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탯들이 조금씩 상승했다.
“여기 제 검을 손봐 주시겠습니까?”
위드는 드래곤 레어에서 구한 이름 없는 검을 두 드워프에게 보여 주었다.
“이런 검이 또 있었군.”
“자아가 있는 검이야, 에고 소드. 이걸 만드는 비법은 대장장이의 비기 중 하나지.”
헤르만과 파비오는 검을 들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균형도 잘 잡혀 있고, 흠 잡을 곳이 없군.”
“손에 잘 맞아. 쥐는 느낌마저 깔끔해.”
두툼한 팔뚝에 키 작은 드워프 아저씨 둘이지만 검에 집중할 때는 전문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현실에서야 각자가 다른 인생을 산다지만 이들은 로열 로드에서는 검을 만들어 온 진정한 장인이었다.
“어르신들, 근데 아직 안 꺼내 놓은 대장장이의 비기를 하나씩은 꿍쳐 놓은 거 알고 있습니다.”
“헛.”
“억. 그걸 어떻게…….”
헤르만과 파비오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위드는 그들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냥 넘겨짚어 봤는데 반응을 보니 진짜 있으셨나 보네요.”
“…….”
가장 유명한 드워프 대장장이로서 쭉 지내 왔는데 한두 개쯤의 비기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스킬의 특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전투 계열의 스킬은 간단해. 그냥 더 센 스킬이지.’
검술의 비기들은 위력이 강하다. 하지만 마나 소모량이 많고 스킬 숙련도가 잘 오르지 않는다.
예술 계열의 스킬들은 기적을 불러오는 힘이 있지만 얻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쓸 때마다 스스로의 손실을 필요로 한다.
예술을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
어렵거나, 엉뚱한 방식의 퀘스트들을 진행하며 스킬의 비기들을 습득했다.
대장장이들의 경우에는 그 양상이 다르리라고 짐작됐다.
‘노력과 실력 그리고 완성품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직업. 대장장이의 비기는 검이나 방어구를 잘 만들지 못하면 얻지 못할 거야.’
그런 대장장이의 비기를 마지막 밑천으로 하나씩은 꿍쳐 놓고 있었으리라.
검과 갑옷의 제작을 의뢰했을 때에도 꺼내 놓지 않은 마지막 호주머니!
“이해는 합니다. 장인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겠죠. 수년의 노력으로 얻은 실력을 자신의 것도 아닌 다른 사람이 의뢰한 물품에 쏟아붓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위드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을 붙이긴 했지만 그래도 최후의 한 수씩은 남겨 놓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었어도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다른 사람의 검이나 방어구를 제작해 줄 수 있었을까.
‘배가 아파서라도 못 했겠지.’
대장장이 마스터들이 만드는 장비는 뭐든 훌륭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만드는 검과 한 달 이상을 품어서 땀과 정성이 들어간 검은 차원이 다르다.
하늘 지배자의 갑옷.
두 사람을 쥐어짜서 만든 것이지만, 사실 그들의 전문 분야는 어디까지나 무기류이기도 했다.
위드는 입술에 침을 촉촉하게 발랐다.
“이번이 마지막 의뢰입니다. 이 검을 깨우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 이걸 제대로 못 하시면 더 이상의 어떤 부탁도 드리지 않을 겁니다.”
* * *
파비오와 헤르만은 솔직히 기분이 대단히 나빴다.
베르사 대륙의 어디를 가더라도 최상의 대우를 받던 자신들이다.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위드가 하는 의뢰들을 도맡아 하고 있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 해내고 나서도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핀잔만 얻어 듣고 있습니다.”
평범한 대장장이들이라면 화를 내고 떠나 버렸으리라. 하지만 자신들은 그럴 수 없는 자존심 강한 대장장이 마스터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그들이 만들어 낸 물건에 만족하지 못한다는데 포기하면 체면이 떨어진다.
로열 로드를 하면서 쌓인 건 실력과 명예, 동시에 체면이었다.
헤르만이 녹슨 검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름 없는 검이라니 원래대로 복구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나 역시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마침 내게 에고 소드에 대한 비기도 있고.”
“저는 바람의 속성 부여가 있는데…… 추가로 넣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위드 저놈이 깜짝 놀랄 물건으로 만들어 보세. 다신 우리 실력을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
파비오와 헤르만은 이름 없는 검을 최고의 명검으로 복구하기로 했다. 그것이 위드에 대한 최고의 복수가 되리라고 생각하며.
* * *
위드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하프엘프 비슈르의 희생의 화로를 가져오라는 퀘스트!
용사 퀘스트의 진행이 있었고, 그 와중에 조각 변신술로 드워프의 종족 퀘스트도 받게 되었다.
“어디까지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확실히 드래곤과 관련이 있단 말이지.”
꽤 오래전에 드래곤 라투아스를 만나면서 실버 드래곤 유스켈란타의 조각품을 만들었다.
조각 재료를 알뜰하게 빼돌리며 한몫을 챙겼던 사건!
-퀘스트 ‘드래곤 라투아스의 조사관’을 진행하기에 자격이 모자랍니다.
최소 480의 레벨이 필요합니다.
기품과 용기는 400 이상으로 필요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주요 전투 스킬이 고급 7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퀘스트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그 당시에는 퀘스트를 계속 진행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진행할 수 있는 상태다.
“이 퀘스트가 지금 돌아보니 상당히 수상하긴 하더란 말이지.”
블루 드래곤 라투아스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인간이여, 유스켈란타의 죽음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저는 미약한 조각사에 불과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설혹 알더라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아직은 시기가 이르기는 하군. 그대의 능력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대비하기에는 모자라다. 언제든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내게로 찾아오라. 그대가 나서든, 나서지 않든 때가 되면 일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유스켈란타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인간들이여…….
위드는 뭔가 느낌이 간질간질했다.
“유스켈란타의 죽음. 인간들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케이베른이 그냥 성질이 더러운 게 아니라…… 이 뒤에 드래곤들의 뒤엉킨 음모나 퀘스트가 있는 게 아닐까?”
보통 이런 경우의 위험한 예감은 적중할 때가 많았다.
다만 섣불리 라투아스에게 가서 퀘스트를 진행하기 힘든 이유는 만약에 정말로 케이베른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을 경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악의 난이도일 드래곤의 퀘스트를 동시에 진행할 가능성도 있었다.
“곤란하군, 아주 곤란해.”
위드는 어느 쪽이든 악재라고 생각했다.
드래곤들끼리 연결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건의 규모가 훨씬 커지게 된다.
이미 대륙 전체에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토르 지역도 쑥대밭으로 변했다.
그렇기에 베르사 대륙에서 드래곤들의 난동이 벌어질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닐 거야. 그냥 잠을 못 자서 떠올리는 재수 없는 상상이지. 암. 그렇고말고…… 아무리 내 팔자가 재수가 없고, 생고생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최악으로 풀릴 리가 없어.”
하지만 이미 인간, 드워프들이 총동원되어 케이베른과 전면전을 펼쳐야 하는 구도로 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로빈은 가르나프 평원에서 헤르메스 길드가 패배하는 순간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다. 세상에서 즐거운 의미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위드…… 결국 그놈이 전부 갖는구나.”
재벌의 후계자로 태어나긴 했지만 서윤과 베르사 대륙이라는 진짜 얻고 싶은 건 모두 위드의 차지였다.
“도대체 그 녀석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가 다스리는 도시 아스는 최근에도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었다.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유저들이 많이 정착했다.
“이런 마을이 다 있었네. 광장이 정말 넓고 깨끗해.”
“성벽도 튼튼하고…… 주택가의 수로를 봐. 도시 구역 정비는 아주 잘되어 있어.”
“무기점, 방어구점, 잡화점. 기본적인 상점들은 최고급으로 다 있고 필요한 건 시장에서 구하면 돼.”
길을 걸어가는 유저들이 감탄의 말을 하는 걸 들을 때마다 로빈의 어깨가 올라갔다.
“진짜 위드 님 대단하다.”
“……?”
로빈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뜬금없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유저들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큰 그림을 일찍부터 그리신 거잖아. 내가 보기엔 중앙 대륙을 정복할 줄 알고 교두보로 이 마을을 준비해 놓은 거야.”
“어. 유저들 불편하지 말라고 미리 챙기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지.”
“우릴 이렇게 꼼꼼하게 생각해 주는 분은 위드님뿐이야.”
“위드 님이 있어서 진짜 다행이야. 북부 대륙에서 시작한 우린 행운아들이라니깐.”
“……?”
도시가 발전하면 할수록 모든 칭찬이 위드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이 도시는 다 내 껀데.”
로빈은 도시 입구에 오해가 없도록 팻말도 세워 놓았다.
- 영주 로빈이 세운 도시.
모라타처럼 처음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발전시켰습니다.
도시 아스의 상세한 역사로는…….
대략 200줄에 걸쳐서 도시 발전의 기록들을 남겨 놓았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며 유저들을 위한 복지 정책들도 잔뜩 설명해 놓았다.
“이 정도면 모두 내 공을 알아주겠지.”
로빈은 비로소 안심하며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팻말을 제대로 읽는 일반 유저는 극소수!
“위드 님이 최고네. 아스가 이 정도면 모라타 구경 가는 거는 진짜 기대된다.”
“어. 이 부근에서 사냥을 좀 하다가 모라타로 가야지. 여긴 아직 유저들이 적어서 성벽 끼고 성장하기 편해.”
“대지의 궁전도 좋다던데. 어떤 날에는 풀죽 여신님도 볼 수 있잖아.
“아, 맞네. 대지의 궁전부터 가자.”
아스에서 시작한 유저들도 여러 지원책을 받아먹고 모라타나 대지의 궁전으로 이주할 생각뿐.
경매를 통해 주변 지역의 영주 자리에 오른 이들은 도시 아스에 자주 찾아왔다.
“대단하시네요. 근처에서는 이 도시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북부의 개척 도시 중에서는 1등으로 꼽을 만하지요.”
“강철을 좀 수입해 가려고 하는데. 여유분이 좀 있을까요?”
인구, 기술력, 생산력에서 도시 아스가 주변 일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모라타나 대지의 궁전까지의 거리가 멀다 보니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 사이의 거점 도시 역할을 이루어 냈다.
다른 영주들을 만날 때는 로빈의 콧대가 한껏 높아졌다.
“하하, 반갑습니다. 교역이야 언제든 환영하죠.”
“이렇게 빠르게 도시가 발달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민들이 매일 얼마나 늘어나죠?”
“매일 천 명 정도 새로운 주민들이 등록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2천 명 정도?”
“크, 굉장하군요.”
“필요에 따라 주거 지역을 늘려 주기도 바쁩니다. 도로도 확장해야 하고, 사냥터도 정비해 주면 좋아하고. 제가 상업 구역을 재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는 했던가요? 3개월 만에 대대적으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로빈은 도시 아스의 발전상을 이야기하자면 하루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모라타의 초창기가 이랬을까? 이 도시가 북부와 중앙 대륙을 잇는 상업과 무역, 생산의 거점으로 발달하다 보면 새로운 왕국이 태동하지 말란 법도 없지.’
군사력이 없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르펜 제국도 유저들이 받쳐 줘서 이루어졌단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지금처럼 도시를 빠르게 발전시키다 보면 유저들이 내 공적을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그래, 처음부터 쉬운 게 어디 있겠어. 방송에도 기회가 생기면 적극 출연하고, 주변 영주도 돈으로 포섭하면서…….’
로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도 처분해서 도시 투자에 쏟아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로열 로드의 가치는 대단하지. 전부 도시에 투자한 것이니 향후 수익도 낼 수 있을 테고…… 세상일은 모르는 거 아니겠어?’
은근히 위드의 몰락과 패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라타가 케이베른에 의해 불타고, 대지의 궁전마저 부서진다면 북부 대륙에서 도시 아스의 가치는 더 오르리라 계산.
‘모르긴 몰라도 조만간 모라타도 표적이 될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미 모라타보다 발전도가 높은 도시는 10개도 안 남았지.’
로빈은 그날을 위해 웃으며 칼을 갈았다.
* * *
울고르 고원에서 위드에게는 아무리 바쁜 시기라도 꼭 치러야 하는 행사가 있었다.
“날쌘 찬바람 님.”
- 구구구!
비둘기 한 마리가 땅으로 내려앉았다.
조인족 중에서 가장 걸출한 유저, 지금은 퀘스트 때문에 일시적으로 비둘기가 되었다.
“속도를 높여 주는 묘안석 목걸이를 하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위드 님.
“만세!”
“위드 님, 최고십니다!”
드워프 유저들이 밑에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케이베른의 레어, 빈집 털이 성공에 따른 포상 행사.
위드는 솔직히 레어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랐다.
‘아무도 안 주고 혼자 다 먹고 싶어. 그냥 확 갖고 튀면 안 될까?’
안면몰수하고 야반도주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렇지만 울고르 고원에서는 마판이 웃으면서 바로 옆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헤헤헤헤.”
“흠흠. 저 의심하시는 겁니까? 제가 말 바꾸고 보물을 안 나눠 줄 것 같아서요?”
“네? 전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크헤헤헷.”
마판은 마냥 즐겁게 웃었다.
입가에 가득 차 있는 행복한 미소, 그렇지만 눈빛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언제 튈지 몰라, 무엇이든 가능해.’
‘음, 역시 잠시도 방심하지 않는군.’
위드는 그 덕분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아르펜 제국의 황제 입장에서 보물들을 챙겨서 야반도주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깔고 있는 재산이 얼마인데. 당장 현금화하기에는 보물들이 더 나을지 몰라도…… 흠흠, 그래. 통 크게 보자. 하지만 왜 이렇게 아깝게 느껴지지?’
위드는 한 줄기 남은 미련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포상식을 진행했다.
“잘탈 님, 레어에서 목숨을 잃으실 뻔하셨군요.”
“별거 아닙니다. 위드 님께서 불러 주셔서 참여한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 요청하신 갑옷 세트입니다.”
“영광입니다.”
포상식에 참여하는 유저들은 한껏 기뻐하며 장비들을 받았다.
- 귀찮으면 안 오셔도 됩니다. 장비들은 따로 지급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참석이 필수는 아니었는데, 드워프나 조인족, 건축가를 포함하여 페일과 타격대까지 살아남은 유저들은 전원이 자리에 나왔다.
참석률 100%의 기적적인 상황!
사망한 유저들도 접속이 되는 대로 별도로 포상식을 열어서 받아 가기로 했다.
- 키야, 진심 횡재했네.
- 위드와 도적단. 대성공.
- 싱글벙글. 완전 즐거운 웃음들로 가득하다.
- 다들 기뻐하는 와중에 보물을 나눠 주는 위드 님 얼굴만 찌푸려진 것 같은데. 내 눈이 이상한 건가?
- 안면경직미소. 흔히 썩은 미소라고 하는 그것이네요.
- 처음에는 저렇게 안 웃었던 거 같은데.
- 시작할 때는 뭔가 비장해 보였죠. 점점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듯?
- 보물을 나눠 주려고 하면 배는 아플 듯.
- 처음에 성공하면 주기로 했던 거잖아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위드 님인데 그럴 리 없어요!
- 위드 님의 말 한마디의 무게감이 다릅니다. 지금 나눠 주는 거 보이잖아요.
- 화면 안 보임? 방금 검 주는 위드 표정 완전히 썩었는데?
- CTS미디어로 채널 빨리 돌려 봐요. 위드 얼굴 클로즈업했는데,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음.
* * *
박순조는 오후에 강의가 있어서 평소처럼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사람 아니야?”
“우리 과 선배?”
“맞는 것 같은데.”
평소와는 다르게 버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대학교 가상현실학과를 다니면서도 숫기가 없는 성격 탓에 아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는 박순조.
“저기…… 혹시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뒤를 돌아보며 박순조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 방송 나오신 분 아니세요?”
“저요?”
“네, 위드 님이랑 모험을 하신 도둑요.”
“마, 맞는데요.”
“꺅! 진짜 맞잖아. 어떡해.”
박순조는 유명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국대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모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 주느라,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위드 님이랑 친하세요?”
“그냥 아는 형이에요.”
“개인적으로도 아세요?”
“학교를 같이 다녀서요. 요즘에는 휴학을 했지만…….”
“와, 대단하다.”
이현을 알고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일반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
가상현실학과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박순조의 곁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번에 얻은 보물요? 형이 망토랑 신발 줬어요. 하나밖에 없는 물품이라 딱히 이름을 말해도 아시진 못할 거 같아요. 옵션이요? 음…… 너무 많이 붙어서 잘 기억은 안 나요. 재질은 드래곤의 가죽으로 만든 거던데요.”
한국대학교의 인기인으로 떠오른 박순조!
그에게는 문자 메시지도 계속 도착했다.
- KMC미디어입니다. 방송 출연 섭외를 위해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편하신 장소와 시간을 말씀해 주시면 저희 직원들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 CTS미디어입니다. 나이드 님의 일대기에 대해 방송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대형 방송국들의 출연 요청도 잇따랐다.
그저 위드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팔자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TO BE CONTINUED
위드는 와삼이를 타고 하늘을 이동했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크, 좋구나.”
흰 구름 사이로 지상을 내려다보면 산과 나무, 호수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 꾸에에에엣.
- 힘들어 죽겠다, 주인!
뒤를 따르는 와일이를 비롯한 와이번들은 힘겹게 날갯짓을 했다.
그들의 몸통에 희생의 화로를 묶어서 엘프 비슈르에게 배달하고 있는 것!
마차를 이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비행 생명체들을 동원하여 날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위드는 가죽 갑옷에 바느질을 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힘들어도 너희들이 참아야 돼.”
- 왜 그래야 되나?
“배달은 무조건 빠르고 정확해야 하거든.”
최상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와이번 택배!
- 그래도 힘들다. 이건 너무 무겁다.
- 맞다, 너무 무거워서 추락할 것 같다.
“불평한다고 해서 세상이 나아져? 내가 택배를 좀 해 봐서 아는데 말이야. 그냥 하면 돼!”
위드는 스스로 꼰대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즐거웠다.
다른 사람들은 욕할지 모르지만 본인 스스로는 매우 즐거운 꼰대질.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 도착할 곳까지 아직 먼 거 아닌가?
“응. 그래도 조금만 참으라고 해야지. 오래 참으라고 하는 말보단 낫잖아.”
- 카아아앗!
와일이가 분노의 괴성을 질렀다.
누렁이처럼 구박을 들으면서도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하는 황소와는 달랐다.
우는 아이는 더 울린다는 와이번들!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 ……아니다.
“화낸 거 같은데.”
- 그렇지 않다.
“나 존경하지?”
- 그……그렇다.
위드는 바느질을 하며 바로크 산맥의 숲으로 날아갔다.
하프엘프 비슈르는 잃어버린 힘을 되찾는다면서 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저기로군.”
위드가 와이번 부대를 이끌고 서서히 숲으로 내려갔다.
“희생의 화로를 구해 왔습니다.”
“이것이 희생의 화로인가요. 빨리 구하셨네요.”
“케이베른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드워프들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위드는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광산을 통해서 케이베른의 레어에 있는 희생의 화로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빈집 털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의도적으로 생략.
“이 화로에서는 지극히 순수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군요. 생명이 항상 타고 있는 것 같아요.”
드워프들의 진귀한 보물 완료.
하프엘프 비슈르는 악룡 케이베른을 퇴치하기 위해 희생의 화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생명을 태우는 화로의 기적.
용사는 모험을 통해 희생의 화로가 무엇인지 알아냈고, 그것을 얻어 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명성이 25,000 올랐습니다. >
< 불가능에 가까운 모험의 대가로 인해 영구적인 특별 보상을 얻습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500 증가했습니다.
마나가 1,000 증가했습니다. >
나름 짭짤한 수확!
경험치도 중요하지만, 조각사 출신으로서 얼마 안 되는 최대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 주는 게 소중했다.
‘부가 수입으로는 괜찮군.’
물론 가장 큰 소득은 케이베른의 레어에서 얻어 낸 보물들이었다.
마법사들을 위한 마법 물품, 드워프들의 역작, 진귀한 보석들.
위드는 전사 세트, 사냥꾼 세트, 마법사 세트 등을 따로 챙겨 놓았다.
특정 괴물들이 착용할 수 있는 장비들도 있었는데, 그것들도 조각 변신술을 쓰면 사용이 가능했다.
레어에서 꺼낸 것 중에 80% 정도의 무기나 방어구들은 심지어 레벨 800대, 900대에 쓸 수 있는 장비들이었다.
어떤 장비들은 위드도 착용이 불가능했고, 대부분 유저들은 구경밖에 할 수 없는 물품들.
그것들을 독점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사냥이나 성장 속도는 훨씬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장비에 아쉬움을 느낄 일은 없을 테니까.
비슈르가 영롱하게 빛나는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희생의 화로가 있다고 해도 케이베른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힘으로는 부족해요. 동료들을 모아야 해요.”
“드래곤과 싸울 능력 있는 동료가 있을까요?”
“얼어붙은 북쪽 바다 근처에 사는 크나툴. 그를 제가 만날 수 있다면 도와줄 거예요.”
“크나툴?”
“주먹이 크고 거친 힘을 가진 바바리안이에요. 그는 차가운 바람기둥과 끝없는 싸움을 하고 있죠. 그리고 요정 기사 말린도 동료가 되면 큰 힘이 되어 주리라 생각해요.”
띠링!
함께 싸울 동료를 찾아서……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추운 땅.
하얀 짐승 가죽을 입은 바바리안들이 사는 땅으로 가서 크나툴을 찾아라.
두 주먹을 무기로 쓰는 그는 바바리안 종족의 불세출의 영웅!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요정 기사 말린은 가장 깊은 연못 화원에 있으리라.
하프엘프 비슈르와 함께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라.
난이도 : S
퀘스트 제한 : 대륙을 구하는 영웅
가장 높은 모험 명성.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위험한 일에 앞세울 수 있는 전사가 있다면 얼마든지 끼워 주어야 했다.
“그들이 함께한다면 케이베른을 막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되겠군요. 어서 찾아보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드래곤을 해치우는 퀘스트.
대륙에 알려지지 않은 강자들이 모이고 있었다.
- 마판 : 하얀 짐승 가죽을 입은 바바리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추운 땅이라고 했는데, 미개척 지역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드의 퀘스트를 진행하며 적극적으로 정보들을 수집했다.
다양한 정보들이 있다면 의뢰의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 체이스 : 제 생각에는 리셀리트 산맥 북쪽에 있는 얼음 지역 같습니다. 1미터가 넘는 눈이 쌓여 두껍게 얼어 있는 땅. 거대한 몬스터들과 싸우는 거친 바바리안들이 산다는 정보를 들은 적 있습니다.
처음 듣는 장소들이라도 금방 정보들이 모였다. 다른 모험가들도 추가적으로 확인과 도움을 줄 것이다.
* * *
라페이는 헤르메스 길드의 철저한 몰락을 느끼고 있었다.
주력 전투단을 구성하던 유저들.
무려 70만이 넘는 최강의 유저들이 조금씩 하벤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무래도 뮬이 있는 그라디안에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 대륙에서 버젓이 활동하기에는 부담스러우니까요. 이미 2만 명은 넘어갔습니다. 매일 수백 명 이상이 빠져나가고 있고요.”
아크힘의 말에 라페이는 쓴웃음을 짓기만 했다.
“우리가 약해지니 등을 돌리는군요…….”
“다시 돌아오도록 복귀 명령을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안 돌아오면요?”
“척살령을 내려야지요.”
“이미 하벤 지역을 벗어난 길드원들한테요?”
아크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국경을 넘어가 아르펜 제국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에게 척살령을 내린다면 그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탈주자들은 하벤 지역에서 더욱 먼 곳으로 도망칠 테고, 중앙 대륙이나 북부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전투가 일어나겠군요. 일반 유저들이 개입한다면 추격조들의 안전이 위험하겠지요.”
“더 최악인 건 추격하러 나간 길드원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유저들이 헤르메스 길드를 싫어하는 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케이베른으로 인한 비난까지 받았다.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하벤 지역에 머물러 있어도 점점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했다.
* * *
유병준은 직접 로열 로드를 하고 나서 그가 알고 있던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밥을 먹더라도 로열 로드에서의 음식부터 떠올리고, 빌딩 밖에 보이는 사람들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의 레벨이 나보다 높겠지? 감히 창조주인 나보다도…….’
로열 로드를 직접 개발한 자신이다.
기술적인 면의 큰 틀을 짜 놓고 나서 세부적인 면들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구축했다.
‘진작 해 볼걸.’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찌뿌둥하게 느껴지면서 로열 로드에 접속하고 싶어졌다.
토끼, 다람쥐, 여우 같은 초보 지역의 몬스터들 사냥을 원했다.
‘잘 도망 다니는 녀석들에게는 활을 써? 웬만해서는 도망쳐 버리니 사냥이 쉽지 않단 말이야.’
로열 로드를 접속하는 것보다 경매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쓰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물론 충분히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잠도 줄였다.
- 제목 : 3,000골드 팝니다. 모라타 대기 중. 즉시 거래 요망.
- 제목 : 철검 팔아요. 대장장이 밥투스의 물품입니다.
- 제목 : 빙룡 광장. 10분 이내 거래. 17% 마나 회복 반지요.
대체로 초보용 물품들은 다 비슷한 것 같지만 그래도 공격력이 1, 2가 높다거나 특수 옵션이 붙은 물품들도 있다.
< 명사수의 활 팝니다.
레벨 제한 10. 공격력 15인데요.
근거리, 중거리 명중률 43% 높여 주는 활입니다.
웬만큼 쏘면 맞는다고 보면 돼요. 장거리는 우리 원래 못 맞추잖아요, 하하.
속사 10%, 관통 5%도 소소하게 있습니다.
돈이 급하게 필요해서, 오늘 안에 가장 높은 가격 제시하시는 분이요! >
“건졌다!”
경매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득템을 하는 기쁨!
유병준은 바로 판매자가 정해 놓은 최고 한도의 금액을 확인했다.
“1000만 원?”
만 원에 시작한 경매였다.
대충 명사수의 활이 3, 4만 원에 낙찰되기 때문에 의미 없이 적어 놓은 금액.
“정말 싸군.”
유병준에게는 무척이나 저렴하게 느껴졌다.
저 활이 있다면 얄미운 토끼를 서너 발은 더 맞출 수 있다. 그것만 하더라도 큰 이득.
< 즉시 구매하셨습니다. >
부위별로 가장 좋은 물품들을 모으고, 무기도 검이나 창, 도끼 등을 다양하게 구입했다.
- 박사님은 전형적인 로열 로드 중독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경고가 발생했다.
“중독?”
- 예. 현재 상태는 중독 1단계로 수면 장애와 운동 부족이 우려됩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인공지능의 알람도 유병준은 귀찮기만 했다.
“내가 앞으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지.”
- 그건 그렇습니다.
“…….”
시원하게 인정하는 인공지능!
유병준은 별생각 없이 모라타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최고의 판단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몽땅 사자.”
초보들이 현질하기에는 최고의 도시.
무기와 방어구만이 아니라, 생산 물품이나 음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물품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처럼 오죽하면 사냥보다도 현질을 하고, 광장을 돌며 물품들을 사들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이게 인생의 즐거움이로군. 다른 거 다 없어도 로열 로드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 중독 2단계입니다.
TO BE CONTINUED
서윤은 아르펜 제국을 통치하며 행정과 사람들에 대해 배워 가고 있었다.
북부 지역만 다스릴 때는 도시만 개발하면 되었지만, 영토가 넓어지고 몬스터들이 많아지면서 관리할 부분들이 많아졌다.
다행히 시간이 날 때마다 유린이 친동생처럼 그녀를 따르며 도와주었다.
“언니, 이톤 마을에서 투자 요청이 왔어요. 여긴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이톤 마을은 동부 해안에 있는 곳이야. 항구 바르나에서 쭉 남쪽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곳으로 해안선이 예쁘고, 인근에 풍부한 어장도 있던 것으로 기억해.”
서윤은 와삼이를 타고 북부 대륙의 곳곳을 다녀 보았다.
“항로로 연결되면 해상 무역의 중간 지점으로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이 높아. 투자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봐야 되겠네.”
“와, 언니. 그게 다 파악이 돼요?”
“응. 조금만 익숙해지면 너도 할 수 있을걸.”
서윤은 대답을 하며 살포시 웃었다.
그 미소가 아찔하도록 아름다워서 유린은 잠시 정신을 놓았다. 의식이 그대로 사라진다고 할까.
‘예쁘긴 정말 예쁘다.’
유린은 오빠가 정말 아름답고 착한 애인을 사귀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오빠나 언니나 마음에 벽을 쌓고 산 사람들인데…….’
무엇을 계기로 둘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졌는지는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방송국들도 그 비밀을 파헤치려고 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위드와 서윤의 관계.
둘이 어떻게 첫 만남을 가졌고,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게 됐는지는 모든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슈였다.
‘지난번에 오빠가 언니에겐 라면을 따로 끓여 주면서 계란도 큰 걸 넣었어.’
유린은 집에서도 소소한 부분까지 관찰하고 있었다.
자린고비 오빠에게는 믿을 수 없는 변화였는데, 그런 것이 사랑일까 싶었다.
“언니, 점심으로는 샌드위치 어때요?”
“샌드위치?”
“네. 궁전 근처에 있는 맛집을 알아냈어요!”
유린의 의견에 따라 점심은 샌드위치로 해결하기로 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정말 바쁠 때는 간단히 때우기도 했지만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다.
서윤이 어딘가를 방문할 때마다 절로 홍보가 되어서, 대지의 궁전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는 대지의 궁전에 따로 예술품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내었는데, 그건 서윤의 존재 때문이었다.
“와…… 어…… 화아…….”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낮인데도 빛이 나네, 빛이 나.”
“실물로 보니 믿기지가 않는다.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진심으로.”
대지의 궁전에는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많이 와 있었다.
그들은 북부 대륙을 여행하면서 대지의 궁전도 필수로 왔는데, 서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 길가나 지붕 위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다.
“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고친 걸 거야.”
“용모랑 매력에 스탯을 얼마나 투자했는지 모르겠네. 아마 300? 400? 그래도 500은 안 넘겠지?”
“실물도 예쁘다는데?”
“수술했겠지.”
질투심에 함부로 말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린이 멀리서 들려오는 말들에 미간을 확 찌푸렸다.
“언니, 저런 말 들으면 화 안 나요?”
“모르겠어. 화를 내야 할까? 다섯 살 때부터 예쁘다는 말은 항상 들어서 외모에 대해서는 반응하고 싶지 않아.”
“…….”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쭉 예뻐서 무감각해진 상태.
서윤은 자신의 비현실적인 외모가 다른 사람을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기, 질투, 선망, 집착.
사람을 한창 경계하게 만들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얼어붙어 있던 마음을 녹여 주었고, 그녀의 곁에서 많은 추억들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정말 맛있다.”
서윤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유린을 포함해 길거리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 * *
풀죽신교의 경제학자들은 마침내 케이베른의 공격 순서를 알아내고 말았다.
“미스트리스. 그 이후가 모라타의 차례가 될 것입니다.”
“확실합니까?”
“네. 마지막까지 확인이 필요했던 부분이 도시 퀘스트였습니다. 발전도나 인구, 경제보다는 가중치가 낮지만 도시 퀘스트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지역 영향력도 꽤 개입이 되었고요. 도시 주민 중에 귀족이나 명성이 높은 유저들도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A4 2장 분량에 달하는 공식을 뽑아냈다.
케이베른의 공격 대상을 지목하는 복잡한 논리 공식이었는데, 발표하기 전부터 그들끼리도 여러 말들이 나오기는 했다.
“우리가 세계에서 최고로 꼽는 학술지인 저널 오브 파이넌스에 논문을 낼 때도 이 정도로 정교한 건 아니었잖아?”
“검증에 동원된 인원 중에 대학 교수만 300명이었지.”
“완벽에 완벽을 더하느라 너무 늦어졌어.”
“아무튼 큰일을 해냈군.”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주도하여 매주 진행되는 회의에서 케이베른의 공격 대상을 분석했다.
그들은 지적 성취감을 만끽했지만 대중들은 그 공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복잡한 기호들과 숫자들은 눈으로 빠르게 훑어 내려갈 뿐!
― 미쳤다. 미스트리스가 17일 후에 파괴되고, 그다음이 모라타네.
― 와…… 모라타의 운명이 고작……해야…….
― 발표에 따르면 모라타에서는 도시 명성과 관련된 퀘스트가 많이 진행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네요. 역사가 오래된 도시였으면 진작 파괴되었음.
― 늦기 전에 모라타 구경 갑시다. 한 번도 안 와 보신 분들은 꼭 보세요.
― 오지 마세요, 여러분들! 미스트리스와의 격차가 3.6%밖에 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모라타가 먼저 파괴될 수도 있다고요.
― 끝장이네. 북부의 성지가…….
북부 유저들을 들끓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며, 현재의 아르펜 제국의 시초가 되었던 도시.
그 모라타가 파괴당한다는 소식에 유저들이 받는 충격은 대단했다.
* * *
위드는 드워프 마을로 이동하기 전에 시간이 남은 만큼 사냥을 하며 크나툴과 말린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고 있었다.
마판 상단과 모라타의 대도서관에서 정보들을 긁어모으고, 한편으로는 모험가들의 제보도 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풀죽신교의 발표를 듣게 되었다.
“모라타가 파괴되는 날짜가 확실한가요?”
― 마판 : 경제학자들이 평생의 경력을 걸 수도 있답니다. 중앙 대륙의 옛 왕국들 수도를 대부분 먼저 파괴하고 오는 것이죠. 다만 모라타를 일부라도 파괴하면 우선순위가 밀려서 시간 여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만.
모라타를 스스로 부순다.
건축물들과 시설물들을 파괴하여 인구를 떠나게 하고 발전도를 낮추면 케이베른의 표적 우선순위를 뒤로 늦출 수 있었다.
그래 봐야 고작 일주일이나 이 주일의 여유를 버는 것이 전부였다.
“의미 없는 방식이로군요.”
― 마판 : 그래도 그 시간만큼 건축물들을 고스란히 인근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건축가들이 시간과 인력을 지원해 준다면 모라타의 구조물들을 그대로 가까운 곳으로 옮겨 갈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흑색 거성을 제외하고는 99%에 가까운 건물들이 새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긴 역사는 없지만 유저들에게는 그래도 애정이 담겼다.
빛의 탑이나 조각품, 위대한 건축물도 여럿이었다.
“그래도 도시를 부숴서 시간을 버는 계획에는 찬성하지 않겠습니다.”
위드는 버티는 시간이 늘어나더라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북부의 첫 도시인 모라타에 대한 애착은 깊지만, 모라타의 파괴를 지연시키는 대신에 비슷한 발전도의 다른 도시가 파괴를 당한다.
편법으로 시간을 벌어서 많은 건물들을 옆으로 옮겨 놓더라도, 그게 과거의 모라타가 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천문학적인 이사 비용을 생각하면 모라타가 부서진 후 재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모라타까지 케이베른이 오는구나. 이날이 오게 될 줄 알고 있긴 했지만.’
위드는 모라타를 잃고 싶진 않았다.
아르펜 제국의 시작이 된 도시. 그 가치만큼은 쉽게 놓아 버릴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 아르펜 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모라타, 그곳이 이미 파괴되고 사라진 후라면 허무하기 짝이 없을 테니까.
모라타의 뒷골목이나 판잣집들까지도 소소하게 정이 들었다.
오랫동안 로열 로드를 하면서 번 돈을 몽땅 투자하며 성장시켰던 도시.
위대한 건축물은 당연했고, 벽돌로 지은 상가 건물이 한 채씩 올라갈 때의 벅찬 감동은 또 어떠했던가.
위드에게 집이나 다름없던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는 것이다.
‘모라타를 지키고 싶다. 북부의 유저들도 아마 나처럼 생각하겠지.’
다른 도시로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중앙 대륙과는 다르게, 북부에서는 모라타를 거점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살아갔었다.
모두가 함께 지냈던 모라타 시절이 없었다면 풀죽신교와 북부 유저들의 문화도 형성되지 못했을 게 틀림없었다.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퀘스트를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해.’
위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가능하면 드래곤을 막아 모라타를 지키고 싶었다.
“체이스 님, 동쪽으로 떠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 그곳 상황은 어때요?”
― 체이스 : 이틀 정도 뒤면 모험가들과 함께 불의 고리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위험할 텐데 조심하세요.”
― 체이스 : 안 그래도 벌써부터 화산재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군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랜도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불의 고리로 떠난 모험가들.
케이베른만이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실낱같은 정보라도 얻어 낼 수 있다면 도움이 되리라.
“하루나 님, 혹시 알아내신 게 있을까요?”
― 하루나 : 죄송해요! 아직 아무것도 못 알아냈어요. 최대한 빨리할게요.
“늦었지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루나 : 예에? 예! 열심히 할게요.
드래곤 레어에서 워낙 독촉을 당했던 하루나는 위드의 귓속말을 받자마자 정신이 멍해진 상태.
― 하루나 : 요정들의 화원을 조사하러 가고 있으니 조만간 소식을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오크들이 사는 땅에는 세에취와 검둘치, 다른 사형들이 함께 돌아다녔다.
“사형, 그쪽 상황은요?”
― 검둘치 : 오크들이 다 죽어 있는 것만 발견되고 있다. 흠…… 상당히 과격한 드래곤이군.
“레드 드래곤이 인성으로는 아마 최악일 겁니다.”
― 검둘치 : 그런데 여자 친구가 무언가를 해낸 것 같다.
“형수님이요?”
잠시 검둘치는 말이 없었다.
세에취에게 형수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흐뭇해하는 검둘치.
― 검둘치 : 드래곤과 관련된 건데…… 드디어 한 건 올린 것 같구나.
TO BE CONTINUED
“취이익!”
세에취는 무너진 오크 부락을 돌아다니며 랜도니의 흔적을 쫓았다.
‘도무지 모르겠어. 랜도니의 목적은 무엇일까. 오크들이 가지고 있을 어떤 보물?’
레드 드래곤이 쓸고 간 오크 부락에는 멀쩡히 남아 있는 물건이 드물었다. 땅까지 함께 부서지고, 짓밟혀 잔해들을 뒤져야 했다.
‘아무리 봐도 뭘 찾는지 모르겠어. 만약 있었더라도 랜도니가 먼저 입수하지 않을까?’
남은 흔적들을 파헤쳐도 남는 것이 없었다.
모라타에서 알게 된 모험가 스펜슨이 와서 관찰 스킬을 썼지만 고개를 저었다.
“못 하겠어요, 누나.”
“취익. 모르겠어?”
“네. 관찰 스킬이 고급 6레벨이 되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저는 3레벨이에요.”
“체이스 님은 바쁘실까? 취취잇!”
“불의 고리로 모험가들을 데리고 가시고 있고, 그분이 오셔도 별거 없을 거예요. 드래곤이 파괴하는 모습들이나 볼 수 있겠죠. 드래곤과 관련 있는 물건을 찾으면 발견이 뜨겠지만…… 여긴 먼저 다 쓸고 가서 남은 게 없어서요.”
드래곤의 뒤를 쫓는 방법은 실패.
‘드래곤을 만날 수도 없고…… 난 오크라서 추적이나 관찰 스킬을 못 키우는 게 정말 아쉽네. 역시 오크는 모험에 한계가 있나.’
세에취가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멍청이. 로열 로드라고 내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뒤쫓으면서 흔적을 찾을 생각만 했다. 실력과 명성이 뛰어난 모험가에게는 그런 방법도 가능할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어려운 것이 사실.
‘드래곤이 남겨 놓은 것들로는 알 수 없다면 그가 상대하는 반대쪽을 살피면 되지 않겠어?’
랜도니의 이동 경로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앞쪽에서.
절망의 평원은 중앙 대륙에서 세 개의 왕국을 합쳐 놓은 것만 같은 면적이다. 더구나 오크들의 번식력은 무시무시해서 엄청난 개체 수가 넓게 퍼져 있었다.
‘오크들 중에 비밀을 알고 있는 부족이 있지 않을까. 아마 랜도니와 관련된 오크들은 극소수. 그 오크들을 만나려면?’
분명히 넓은 땅 어딘가에 단서를 쥔 오크들이 있으리라.
― 세찬 둘기 : 알겠습니다. 절망의 평원에서 힘껏 날아 보도록 하죠.
조인족들에게 돈을 지불하여 오크 부락의 움직임들을 파악했다.
― 세찬 둘기 : 대부분의 오크들이 랜도니의 침략에 사방팔방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동굴에 숨는 녀석들도 조금 있고요. 겁에 질린 오크들의 반응이니 그렇게 이상하다고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뭔가요. 췻!”
― 세찬 둘기 : 묘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보통 오크들은 부족 전체가 뭉쳐서 다니던데요.
“추잇! 그런데요?”
― 세찬 둘기 : 랜도니를 피해서 뿔뿔이 흩어지는 오크 부족이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을 쫓아오는 것처럼? 취취이잇!”
― 세찬 둘기 : 바로 그렇습니다. 무조건 도망치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에취는 목표를 정하고 절망의 평원을 달려갔다.
오크의 두툼한 허벅지로 힘껏 내달리는 그녀!
그리고 마침내 랜도니와 관련이 있는 부족들을 찾아냈다.
* * *
― 말사 마을이 파괴되었습니다. 복구 지원 바랍니다.
― 레벤토 마을로 몬스터 부대 진격 중. 병력 파견을 긴급 요청하고 있어요.
― 도시 준. 공성전에 돌입했다는 보고입니다.
대지의 궁전에 있는 집무실.
서윤은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악화되는 상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위드가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아르펜 제국의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던 것이다.
새로 임명한 영주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아르펜 제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 로프너 : 신입 영주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가볍게 맥주 한 잔 마시는 자리라서 나갔는데, 그들끼리 공공연하게 위드 님이나 아르펜 제국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 소속에서 비밀리에 전향했던 로프너!
그는 아르펜 제국에서도 중앙 대륙에 믿고 맡길 수 있는 관리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서윤은 케이베른 사태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 참고 넘기려고 했다.
― 로프너 : 근데 비난의 정도가 너무 강해서…… 일부는 헤르메스 길드 시절이 나았다고도 하고 혹은 돈값을 못 한다는 말도 합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윤이 결정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내정에 대해서 관리하긴 하지만 영주들을 통제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영주들 사이에 불만이 많아요. 어떻게든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요?”
서윤이 걱정을 듬뿍 담아서 위드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위드는 퀘스트를 진행하는 중간에도 바하모르그와 양념게장, 페일을 데리고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었다.
― 위드 : 안 그래도 드래곤도 막아야 하고 모라타 때문에 골치 아픈데, 영주들까지…….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될 것 같아요.”
― 위드 : 하긴, 나쁘고 귀찮은 일들은 한꺼번에 생기기 마련이지. 북부의 영주들도 불만이 많아?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어려운 시기를 쭉 함께해 왔으니까요.”
― 위드 : 그럼 신입 영주들이 문제겠군.
“맞아요.”
― 위드 : 사냥하다가 갈 테니까 대지의 궁전으로 전부 소집령 내려.
* * *
위드의 명령에 의해 급하게 개최된 아르펜 제국 통치 회의!
대지의 궁전으로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의 영주들. 그리고 남부 사막지대의 부족장들이 모였다.
남부는 팔로스 제국의 건국 퀘스트가 거의 완료되면서 서서히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사막 지역의 부족장들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현 시점에서 아르펜 제국이 대세야. 위드를 거스르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남부는 인구도 얼마 안 되고…… 게다가 이 지역의 전사들은 대부분 위드와 관련이 깊다.’
‘독립을 해? 혁명을 일으키자고? 우리 부족원들이 먼저 날 죽이려고 들걸.’
팔로스 제국의 건국 퀘스트를 해낸 검치와 수련생들부터 위드의 최측근.
요즘에는 케이베른을 잡는다면서 선발한 대륙의 최정예 전사들이 남부에서 수련하고 있었다.
사막을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러 힘을 과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헤르메스 길드를 제외하면 로열 로드의 실력자들이 전부 위드를 따르고 있어.’
‘우리가 지내는 사막지대도 뭐…… 사실상 위드가 개척한 곳이긴 하지. 동부의 오크들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고. 도대체 대륙에서 위드가 안 건드린 곳이 어디야?’
‘위드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굉장히 뒤끝이 길고 당한 것은 복수를 꼭 해 준다고 하지. 어떤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니 조심하자.’
사막의 부족장들은 대지의 궁전에 와서 얌전히 앉아 있다 가기로 결심했다.
로암, 칼리스, 미헬, 샤우드, 군트.
대영주들도 세력을 과시하며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 나설 법도 했지만 조용히 자리만 지켰다.
‘위드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어.’
‘조용히 지내자.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직접 겪어 본 사람들은 안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떠드는 건 처음으로 도시를 다스리게 된 신입 영주들이었다.
“핫하하, 브리튼 지역의 도시를 다스리시는 군주시군요.”
“아직 동네 파악도 끝내지 못한 상태입니다만 오시면 멋진 포도주 한잔하죠.”
“그럽시다. 로열 로드는 즐겁고 행복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크허허허허.”
신입 영주들은 대회의실에서도 당당하고 말들이 많았다.
대영주들은 그저 철없는 그들을 지켜보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위드 님이 들어오십니다.”
드디어 아르펜 제국의 황제인 위드의 입장!
드래곤의 레어를 털어먹은 후 얻은 전리품들 중에서 일부러 고급스러운 것들만 골라서 착용했다.
‘귀찮지만 이런 호화로운 모습도 필요하단 말이지. 알바생들을 착취하는 사장들처럼 말이야.’
위드의 옷차림은 평범한 여행복이었지만 머리는 레어에서 털어 온 묵직한 보석 왕관을 쓰고 있었다. 황제라면 이 정도의 기분은 내야 한달까.
척!
모든 영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앉으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편안하게 했으면 좋겠네요. 황제 폐하라든가. 이런 건 너무 거추장스러워서요.”
위드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하자 신입 영주들은 사람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사회 경험이 적은 애송이일 거야. 모험에는 능숙해도 정치는 쉬운 것이 아니지. 명분을 쥐고 흔드는 쪽이 이긴단 말이야.’
‘통치는 젊은 혈기로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헤르메스 길드가 실패를 좀 하긴 했어도 방향 자체는 옳았어.’
신입 영주들은 책임비를 내고 임명되었기에 부자나 재벌 2세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더구나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영주로 활동했던 이들이 제법 섞여 있었다.
‘대지의 궁전? 잘하면 이곳에서 내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을지도.’
‘작은 도시의 영주로 내 야망을 끝내기는 너무 아쉽지. 레벨이 낮고 사냥하기가 귀찮아서 적당히 도시 경영이나 하려고 했는데. 더 큰물도 허점이 보인단 말이야.’
영주들의 눈이 정치질을 할 욕심으로 번뜩였다.
영주 모집 자체가 인성이나 평판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부작용!
어떤 이들은 위드와 함께 들어온 서윤에게 눈을 돌렸다.
‘풀죽여신이라…… 이름은 애들 장난 같지만 예쁘긴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쁘더군. 보고 있는데도 믿어지지 않아. 어쩌면 기회가 생기려나? 돈과 권력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으니 말이야.’
‘아르펜 제국이 자리를 제대로 잡기 전이야. 지금 말을 많이 해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사람들이 내 의견을 신경 쓰도록 말이지. 이게 정치지.’
영주들의 야망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자리.
“오늘 논의할 안건은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의 몬스터 토벌을 추가와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로 건설 건입니다.”
위드는 느긋한 목소리로 중앙 대륙과 북부 대륙을 잇는 내부의 교통망 확보를 안건으로 올렸다.
도로 건설은 치안이 낮을수록 중요한 문제였다.
일반 유저들이 산이나 들판을 넘다 보면 몬스터나 도적 떼를 만날 확률이 꽤 높다.
도로가 있다면 유저들이 모여서 정해진 길을 다닐 수 있기에 더 안전하고, 훨씬 빠른 이동이 가능했다.
상인들의 경우에는 도로가 중요해서 대규모로 마차를 이끌고 교역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먼저 도로를 건설해야 할 지점으로는…….”
“잠깐만요.”
해롤드가 손을 들었다.
브리튼 지역에서도 자유도시의 중심에 있는 시슬레 성의 영주였다.
“먼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영주가 된 건 아르펜 제국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막대한 돈을 들여서 말이지요. 그런데 몬스터들이 창궐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죠. 케이베른이 언제 내 도시를 부술지 몰라서 불안감에 떨고 있습니다. 솔직히 기대한 만큼의 통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서 실망이 큽니다. 여기에 대해서 위드 님이 먼저 모두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
대지의 궁전의 연회장에 침묵이 흘렀다.
케이베른이나 몬스터의 활동으로 피해를 입는 지역이 많았지만, 시작부터 그것을 빌미로 공개적으로 위드를 비난할 줄이야.
해롤드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씩 웃었다.
“저처럼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그분들을 대신해서 이야기한 것뿐이니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위드 님의 팬이니까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