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6권 : 1. 황제의 뜻대로 (397/520)

1. 황제의 뜻대로

영주들은 위드를 비난하는 해롤드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중들로부터 인기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위드. 그렇기에 헤르메스 길드처럼 힘으로 우릴 억압할 수는 없단 말이지.’

‘해롤드의 말은 대충 들으면 맞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으면 개소리야. 우리가 영주로 선발된 건 케이베른이 활동을 시작한 후였으니까. 이런 사정 따위 모르고 영주가 된 멍청이도 있나? 그래도 몬스터의 피해를 입게 된 건 사실이기도 하고…… 말로 꺼내기에는 좋은 명분이지. 자, 위드는 이제 한 방 얻어맞은 셈인데 어떻게 대처를 할까?’

‘위드로서는 어떻게 해결하든 득보다 실이 많겠다. 압도적으로 말이지.’

방송으로도 중계가 되는 것을 감안하면 위드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다짜고짜 화를 낸다면 그만큼 인기가 줄어들 테고, 묵묵히 참는다면 얕보이게 되리라.

영주들의 이해를 바라거나 설득한다는 건 애초에 가능한 해결 방법이 아니었다.

해롤드가 끊임없이 말꼬리를 잡으며 위드의 잘못을 이끌어 낼 테니까.

‘없는 잘못도 비난하다 보면 만들어지는 거지. 이런 게 정치란다, 애송아.’

해롤드는 재벌 3세로서 재계에서도 교묘한 언변을 잘 사용했다. 평소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이 자리를 휘어잡음으로써 베르사 대륙 전역에 명성을 떨칠 욕심이 있었다.

위드는 잠시 동안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신임 영주들은 그 표정을 보면서 실망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대응할 방법을 못 찾는 건가?’

‘차라리 이럴 땐 화라도 내야지.’

‘역시 애송이야. 정치에는 어리숙하다는 예상이 맞았어.’

* * *

로암은 불안감으로 가슴이 떨려 왔다.

대지의 궁전에서 영주 회의에 참석했는데, 영주들의 반발에 위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위드 님이 치안 확보에 더 신경 써 주셔야 됩니다.”

“북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닙니까? 중앙 대륙에 몬스터들이 날뛰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요?”

“케이베른의 레어. 거기서 훔친 보물을 우리에게도 좀 나눠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최소한의 피해 보상 차원에서요!”

위드가 가만히 있으니 해롤드에 이어서 신임 영주 몇 명이 추가로 나섰다.

그들이 분위기를 주도해 가고 있는 이 광경이 너무나도 불길하고 어색했다.

‘이런 미친놈들. 건드릴 게 없어서 저 인간을 건드려? 차라리 헤르메스 길드에 배 째고 덤비지. 아니, 악룡 케이베른에게 가서 도마뱀이라고 놀리는 게 낫겠다.’

헤르메스 길드나 케이베른에게 덤비는 편이 솔직히 뒤끝이 더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세력이 위축되어 척살령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데다, 드래곤에게야 한 번 죽고 끝날 일이니까.

위드는 명실상부한 아르펜 제국의 지배자였다.

정의롭고 선량한 모험가의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음험하고 악랄한 수단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악당이다.

로암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던 칼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전부 정신 나갔군.’

‘그러게. 우린 분위기를 타지 말고 얌전히 있도록 하세.’

‘이럴 때일수록 몸을 잘 사려야 해.’

‘으음, 그게 우리에게 이롭지. 정말 조심해야 할 순간이야.’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초짜 애송이 영주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판단 같은 건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위드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크게 사고를 치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세력을 확대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불안하지?’

로암처럼 불길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나눴다.

― 군트 : 위험할 것 같군.

― 미헬 : 얼뜨기들이 위드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 아마도 저 인간은 여론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여론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해 왔지.

― 샤우드 : 나도 동의해. 위드의 성격과 능력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군. 운이 좋아서 베르사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보나. 인터넷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떠드는 멍청이들과 비슷한 부류야.

― 로암 : 독하고, 무섭지. 어디 당하고 살 놈 같아 보이나. 그리고 로열 로드는 현실의 정치판이 아니란 말이지.

정치인들은 실컷 아무 말이나 내뱉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로열 로드는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 로암 :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린 위드를 지지하세.

― 칼리스 : 그래야지. 어떻게 다시 세력을 일구고 살아났는데. 위드는 이렇게 어설프게 물어뜯는다고 해서 고분고분하게 당해 줄 인물이 아니야.

― 미헬 : 시간이 오래 지나서 힘이 좀 빠지면 모를까. 한창 때의 맹수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건 심하게 멍청한 짓이지.

― 샤우드 : 시슬레 성의 영주가 제대로 무덤을 팠군.

명문 길드의 수장들은 솔직히 위드가 어떤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괜히 불똥이 튀지 않도록 가슴을 졸이며 지켜봤다.

“몬스터들을 막기에 우리들만으로는 버겁습니다. 더 많은 병력을 지원해 주던가. 아니면 레어에서 훔친 보물이라도 나눠 주십시오.”

“케이베른이 전 대륙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드래곤에게 훔친 물건인데 혼자 독차지해선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몫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주들을 지키지 못하면서 세금을 떼어 갑니다. 그러면 뭐라도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신임 영주들은 선을 한참이나 넘고 있었다.

위드가 무엇보다도 가장 싫어하는 것이 숟가락을 올리는 일!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착하게만 살기에는 험한 세상이야. 돈을 받고 영주를 모집하니 저런 이들이 나타났지.’

책임비라는 명목으로 영주 자리를 팔았다.

조금의 호의를 베풀어도 얕잡아 보고 더 많이 얻기 위해 승냥이처럼 덤벼드는 이들이 섞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영주 모집은 어떤 방법을 취했더라도 부작용은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덤벼 준다면 기꺼이 밟아 줘야지.’

신임 영주들은 레벨로 따지면 초보였고, 대중적인 영향력도 없다. 영주로 임명해 준 것이 자신인데 솔직히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 * *

위드는 영주들의 반발을 들으며 앉아 있다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품에서는 조각칼과 나무토막을 꺼냈다.

스스스슥

순식간에 깎여 나가는 조각품은 해롤드를 그대로 닮은 것이었고, 빠르고 정교한 조각칼의 움직임이 영주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오, 역시…….”

“영상으로 보던 그대로인데. 직접 보니 정말 빨라.”

조각사로서 숱하게 반복했던 일.

간단히 해롤드와 거의 똑같이 닮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위드가 천천히 좌중을 돌아보며 영주들과 눈을 맞췄다.

어느 영주들이 감히 눈에 힘을 주고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한 시선.

‘표정만 봐도 몇 놈 있긴 있군. 내 밥그릇에 숟가락을 올리려던 놈들 외에도 반찬을 훔쳐 먹으려는 자들이…….’

위드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낮게 깔렸다.

“아르펜 제국을 다스리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케이베른이나 몬스터들의 활동을 최선을 다해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긴 하네요. 여러분들이 실망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해롤드는 위드가 사과를 하며 약한 모습을 보이자 그만큼 더 얕잡아 보았다.

‘이렇게나 멍청한 놈이었나? 정치란 한 발자국 물러서면 다시 앞으로 나서지 못하지. 촌뜨기 애송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처참했을 줄이야…….’

심지어 해롤드는 위드가 미안한 마음에 조각상까지 만들어서 선물로 주는 거라 여겼다.

‘큭큭. 이거 완전히 만만한 놈이었잖아.’

맹수라고 해도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다루질 못하면 애완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해롤드는 오히려 그래서 생각이 조금 바뀌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좀 잘해 줄까? 적극적으로 위드의 편에 서서 아르펜 제국을 두둔해 주면…… 2인자의 자리도 당분간은 좋을 것 같은데? 다음에 흘러가는 상황을 더 지켜볼 수 있겠고 말이야.’

해롤드가 여러 가지 계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위드가 조각품을 잡고 있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근데 해롤드 영주님.”

“예?”

“그러는 본인은 영주로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그게?”

해롤드가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위드는 조각칼을 들더니 해롤드의 모습을 한 조각상에 그대로 내리쳤다.

싹둑!

정교하게 표현된 조각품이 둘로 갈라지자 좌중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빠르고, 과감하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조각품을 갈라 버리는 모습이 폭력적이면서도 압도적인 패기를 지니고 있었다.

위드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시 영주들을 한 명씩 쳐다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불안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아르펜 제국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더군요. 특히 막 전쟁이 끝나며 영토가 확장되었고, 드래곤의 위협을 당하면서 말이죠. 지금도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기에 남 탓이나 하는 사람을 영주로 둘 여유가 없습니다.”

“나, 남 탓이라니? 내 입장에선 영주로서 정당한 비판을 했을 뿐인데요.”

해롤드가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일부러라도 크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위드의 말은 거침없었다.

“정당한 비판? 제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매일 대륙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잡았고, 케이베른을 막기 위한 퀘스트를 진행했습니다.”

빈집 털이도 하긴 했지만,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처럼 늘어난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미치도록 사냥 노가다를 하고 있었다.

‘내가 잘 먹고 잘살려고 한 거지만…… 그렇다고 대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지.’

위드는 입술에 침을 촉촉하게 묻혔다.

“제가 지금까지 진행한 퀘스트와 사냥들. 얼어붙은 북부에서부터 노력과 정성을 알아봐 주고 많은 유저 분들이 함께 도와주셨죠. 그들과 하나하나씩 만들어 온 결과물이 아르펜 제국입니다. 중앙 대륙까지 정복하며 영주 여러분들을 모집했던 이유는 아르펜 제국을 더 잘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비상 조치였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비난을 합니다. 돈을 받고 영주의 자리를 팔았다고요. 이해합니다.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을 가지고 섭섭해하는 분들이 많았겠죠.”

“…….”

영주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르펜 제국에서 먼저 영주의 자리를 팔긴 했지만, 돈을 내고 산 그들도 유저들의 비난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위드는 스스로의 활동과 업적에 대해 자랑할 거리가 있었지만, 영주들이 가진 정당성은 빈약했다.

“제가 돈이 없어서 여러분들에게 영주의 자리를 팔았겠습니까? 전혀 아니죠. 크흠. 아르펜 제국은 많은 도시들이 버려져 있었고, 몬스터들의 침략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대륙을 통치하는 데 수많은 어려움이 있기에 여러분들로부터 돈을 받았고, 그 돈은 다시 제국을 위해 전부 투자했습니다. 영주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제가 왜 여러분들에게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여러분들 중에 당당하게 나서서 저를 비난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분이 있습니까?”

“…….”

TO BE CONTINUED

회의장은 고요했다.

영주들은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지위를 샀을 뿐이었다.

권력과 힘, 인기, 여기에 명분과 통치의 정당성까지 위드가 쥐고 있다.

많은 무기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위드는 순진한 유형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주도하며, 도전자를 거침없이 짓밟을 수 있는 포악한 존재다.

위드의 입술이 방금 바른 침으로 촉촉하게 빛났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저는 모라타 시절부터 벌어들인 돈은 전부 투자했습니다. 아르펜을 다스리며 단 한 푼도 저를 위해 챙긴 것이 없습니다.”

돈 한 푼 챙긴 적이 없다고 말할 때에는 서글픔으로 목이 잠기기까지 했다.

위드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해 먹은 것도 없는데, 내가 왜 눈치 보면서 비굴한 태도를 취해야 해?’

제대로 한탕이라도 해 먹었으면 기쁘게 웃으면서 영주들의 비위를 맞춰 주었을 테지만 그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저와 여러분들은 베르사 대륙을 좀 더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숭고한 의무가 있습니다. 수억 명의 유저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지요. 그런데 해롤드 님은 저와 비교해서 베르사 대륙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영주의 자리를 사고 나서 지금까지 한 게 무엇이지요?”

자신은 어떤 큰 잘못이나 부정부패를 저질렀더라도 상대방의 결점에 대해선 앞장서서 손가락질을 하는 일!

현실에서야 어찌 통했을지 모르지만 힘과 인기까지 가진 사람에게 먹힐 방법은 아니다.

“…….”

“조용히 있지만 말고 똑바로, 구체적으로 답해 보세요. 지금까지 하신 것들을 저랑 하나씩 비교해 봅시다. 누가 얼마나 잘했는지요. 그리고 여기 영주들만 있는 거 아닙니다. 시청자들이 적어도 수천만 명은 될 겁니다. 그분들이 평가해 주지 않겠습니까?”

“나, 나는…….”

해롤드는 할 말이 없었다.

영주 자리를 얻고 나서 주변에 자랑도 하면서 대충 지냈던 게 사실이었다.

성벽 보수 공사 등도 하긴 했지만, 도시에서 들어오는 수입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금액만을 사용했다.

비교 대상이 위드라면 끝없이 까마득한 격차가 날 수밖에 없었다.

위드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시슬레 성의 영주 해롤드 님을 비롯한 이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약속하겠습니다. 영주의 자리가 싫으면 물러나면 됩니다. 이미 내신 책임비는 기꺼이 돌려드리죠.”

영주의 경매가 끝난 이후에 자리의 가치는 더 올랐다. 아르펜 제국의 영주 자리가 자주 나오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팔 때는 가격이 좀 쌌지만, 그 이후에 빈자리가 생기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었다.

위드는 불만을 가진 영주들이 그만두면 더 이득이었다.

“아르펜 제국의 영주는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자리입니다. 하는 일 없이 남 탓이나 하고, 불평불만이나 내뱉을 사람들은 영주의 자리를 그만두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지금 말하세요. 해롤드 님, 영주 자리를 그만두겠습니까?”

“…….”

해롤드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은 어떤 주장으로도 위드의 말을 반박하지 못한다.

은근슬쩍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분위기를 장악하고 연속으로 몰아붙이는데, 명분에서 압도를 당했고 실력에서도 밀렸다.

더 대들기라도 한다면 영주 자리마저 뺏기고 쫓겨날 신세.

‘자발적으로 영주를 그만두라고? 그럼 다신 영주가 못 될 텐데…… 이런 궁지에 몰리다니. 누구 도와줄 사람이 어디 없나?’

해롤드가 고민하며 주위를 살폈지만 함께 불평을 내뱉던 신임 영주들은 자리에 앉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칼을 뽑는 게 너무 빨랐어.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위드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게 없는데 강하게 물어뜯기에는 무리가 있었지.’

‘앞에 나서서 떠드는 건 멍청한 짓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감안하면 사람들은 위드의 말을 더 긍정적으로 들을 거야. 우리같이 돈 많은 부자보다는 말이야.’

‘방송 때문에라도 눈치를 볼 거란 생각은 틀렸다. 위드는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줄을 세우면서도 언제든 우리의 목을 칠 수 있는 존재다.’

영주들의 판단은 빨랐다. 자신들의 약점도 뼈저리게 배우게 되었다.

돈을 냈다고 해서 강자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도시에서나 영주로서 존중을 받는 것이지, 위드에게 밉보인다면 언제든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해롤드도 불리한 현실을 인식하며 당장은 물러서기로 했다.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군요. 부족함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반성하면서 시슬레 성을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적당한 시점의 후퇴가 그나마 체면과 실리를 챙기는 길이었다.

마음으로는 훗날 복수를 할 생각에 가득했지만 지금은 전략적으로 판단했다.

“회의를 계속하도록 하죠.”

몬스터 토벌과 북부 대륙과 중앙 대륙을 연결하는 도로 건설들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위드가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모습들을 보였고, 많은 땅을 소유한 대영주들이 고분고분 따랐기에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르펜 제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 그대로 통과가 이루어지면서 회의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위드가 해롤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해롤드 님의 말을 듣고 나서 떠오른 게 있는데, 감찰단을 만들어서 시슬레 성을 비롯한 몇몇 곳들의 통치 상황을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엣?”

“제대로 도시를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도시의 사정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돕는 것이지 이것은 대놓고 하는 간섭!

“내 도시에 무슨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는 겁니까!”

해롤드가 거세게 반발하려고 할 때였다.

위드가 로아의 명검을 뽑아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영주 자리 반납하세요.”

“…….”

“제대로 도시를 경영하지 못하는 영주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잘하는 분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평화로운 시기도 아니고 케이베른 때문에 대륙이 위기에 빠져 있는데, 모두가 노력을 해야죠.”

명백한 뒤끝이었다.

해롤드는 영주 자리를 반납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역시 너무나도 아쉬웠다.

권력이란 가진 이후에는 절대 놓기 싫은 것인데, 시슬레 성의 영주로서 얼마나 주변에 자랑을 하고 다녔던가. 영주 자리를 내놓고 다시 되돌려 받는 돈은 문제도 아니었다.

위드가 영주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베르사 대륙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영주로 임명할 당시에 선서한 내용이죠. 다들 열심히 해 주세요. 정 못 하시겠으면 영주 자리를 반납하면 됩니다.”

회의를 마칠 때까지 어떤 영주도 그만두겠다는 의견을 밝히진 않았다.

* * *

명문 길드의 수장들은 예상했던 대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하게 당했군. 그렇게 나설 때부터 알아봤어.”

“위드를 얕본 것이지.”

“불만을 쏟아 내는 걸 남 탓이라고 뒤집어 버리고, 자신의 업적을 바탕으로 명분을 쌓은 후에 권력으로 밀어붙이네. 모든 게 한순간에 이루어졌어.”

“솔직히 힘도 영향력도 없으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로암, 칼리스, 미헬, 군트, 샤우드.

그들은 앞으로 꽤 오랫동안 영주들이 위드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하리라 예상했다.

위드가 만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 주었으며, 보복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게 무서운 거로군. 차라리 죽이는 게 덜 위협적이겠어.”

“우린 절대 방심하지 말도록 하세. 군자의 복수는 10년이라도 길지 않아.”

칼리스의 말에 미헬이 웃었다.

“암. 언젠가 우리들끼리 다시 실력을 다툴 날이 올 때까지 말이지.”

군트는 검 자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군.”

그렇게 명문 길드의 수장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 직후였다.

― 미헬 : 위드 님. 칼리스나 군트가 심상치 않습니다. 현재는 힘에 눌려서 얌전히 따르고 있지만 분명 다른 마음을 먹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쭉 지켜보면서 수상한 말과 행동을 하면 보고하겠습니다.

― 칼리스 : 절대 다른 영주들을 믿지 마십시오. 흑사자 길드는 아르펜 제국과 함께 번영을 누리려고 하지만, 모든 영주들이 저처럼 순진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군트 : 항상 영주들을 지켜보셔야 됩니다. 그들 중에는 배은망덕한 놈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자성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위드 님을 적극 지지합니다.

― 샤우드 : 이번 일을 보면서 위드 님의 관대한 통치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해롤드 같은 사람이 같은 영주라는 게 부끄럽군요. 제가 처리를 해도 되겠습니까? 조용히, 자연스럽게 정리해 놓겠습니다.

― 로암 : 이 제국을 다스리는 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십니까? 예전이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요. 이번에 불만을 토한 이들을 다 기록해 놨습니다. 작은 신호만 주시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혼자가 된 이들은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내며 아부하기 바빴다.

* * *

바드레이는 바바리안들과 드디어 사냥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잡다한 퀘스트들을 그동안 완벽하게 해냈더니 발스라는 이름의 바바리안이 사냥에 끼워 주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해내셨군요. 발스 사냥단.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평이 좋습니다.”

“전투만 나간다면…… 나머지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

바드레이는 어떤 전투라도 자신이 있었다.

바바리안들의 실력이 NPC치고는 뛰어나긴 하지만 자신보단 훨씬 약했다.

‘저들은 전사이니 강함을 보여 주면 될 것이다.’

바드레이는 그렇게 생각했고, 발스 사냥단에 속해서도 열심히 싸웠다.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더 사냥하려고 했고, 앞에서 적극적으로 전투를 치렀다.

비록 위드에게 좌절을 겪긴 했지만 무신이라는 이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전투에 집중했다.

‘드래곤 레어를 터는 걸 성공했다고? 과연 잘나가는군.’

위드에 대해서는 영상을 보진 않고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

가장 먼저 앞서 나갈 때에는 뒤따라오는 이들에 대한 초조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희열과 집중력까지 생겼다.

CTS미디어나 여러 방송국에서 조용히 접촉이 왔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바드레이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으니까.

‘당분간은 방송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위드를 이기고…… 드래곤마저 잡은 그 이후까지 미뤄 둔다.’

인기와 영광까지도 버렸다.

오직 생각하는 것은 강함에 대한 집착뿐!

지금 위드와 다시 싸우더라도 스킬 한두 개만 봉쇄한다면 어쩌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랐다.

검을 겨루면서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다.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강함을 증명하는 길!

‘위드가 전사가 되었으니 더 단순하게 비교가 될 테지. 힘이다. 대륙의 주인과는 상관없다. 그건 네가 가져도 좋다. 이젠 누가 더 강한지를 보여 준다.’

발스 사냥단은 늦은 저녁까지 돌아다녔다.

몬스터 외에도 사냥감들을 무수히 많이 잡아들였고, 고기와 가죽을 대량으로 확보했다.

발스가 등에 물소를 짊어지고 다가왔다.

“여기 자네의 몫이네.”

“전 필요 없습니다.”

“안 가지겠다고?”

“예. 저를 빼고 나눠 가지세요.”

“……그렇게 하지.”

바드레이는 평소에 눈에 확 띄는 고급 장비가 아니라면 줍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엄청난 자금과 장비를 받고 있었기에 사소한 물품들을 줍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발스는 열심히 잘 싸운 바드레이를 좋게 본 것인지 저녁에도 다가왔다.

“사냥감을 구한 후에 고기를 잘 익히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지. 맛있게 구운 고기 한 점. 나에게 고기 굽는 법을 배우고 싶나?”

“관심 없습니다.”

“안 배운다고?”

“창이나 도끼를 다루는 법에는 관심이 조금 있습니다. 방어술도 좋고. 싸우고 강해지는 일 외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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