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6권 : 2. 악마들의 왕 (398/520)

2. 악마들의 왕

― 이 벌레보다 미천한 드워프들이 내 물건을 훔치다니 두려움을 잊었구나!

케이베른에 의해 사이고른 산맥과 울타 산맥의 드워프 마을들은 계속 시달렸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드워프들의 마을이 통째로 불타고 산사태가 일어나며 지형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저 미친 드래곤이!”

드워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새겨진 공포도 잊은 채로 덤벼들었지만 마법에 의해 죽어 갔다.

― 공격해라, 모두 죽여라!

저항하는 드워프 마을에 용아병들이 몬스터들을 끌고 침략했다.

사흘 사이에 45개의 마을들이 초토화되었으며 목숨을 잃은 드워프들이 3만을 넘었다.

험한 울타 산맥과 사이고른 산맥의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전쟁 장면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 토르는 완벽하게 드래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 더 이상 산속에서 드래곤과 드워프들의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네요.

― 매주 정해지는 케이베른의 표적이 도시가 아니라 드워프 마을로 바뀔 가능성도 있을까요?

― 그 정도까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드래곤이 목표로 삼을 정도의 도시들은…… 흠흠. 공식이 워낙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아무튼 대도시입니다.

― 드워프들은 그렇게 많이 모여 살진 않으니까요.

토르의 사정이 불안해지면서 드래곤을 피해 산을 내려오는 드워프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드워프 종족 퀘스트를 진행했던 위드도 심각하게 느낄 정도.

‘이게 종족 퀘스트라고? 무슨 드워프 멸망 퀘스트라도 되는 거냐.’

그럼에도 퀘스트와 관련이 있던 데브라도 마을의 드워프들은 산맥을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언제까지 우리가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우리 종족의 보물인 희생의 화로를 되찾았네. 복수의 도끼질을 시작할 때가 왔지.”

“드디어, 그때가 왔는가!”

드워프들의 성향은 인간들과는 달랐다.

본능적으로 드래곤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동족이 목숨을 잃으면서 맹렬한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모든 드워프 종족이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희생의 화로를 찾았다니 정말입니까?”

“그렇네. 우리 종족에 대단한 영웅 드워프가 나타났지.”

“그 드워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건…… 위드핸드네.”

위드가 조각 변신술을 써서 알려 준 가명!

그 이름이 토르 전역의 드워프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다.

토르에 남아 있던 드워프 유저들이 씩 웃었다.

“대박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드워프 종족 퀘스트가 열리는 건 처음 아니야?”

“그걸 위드 님이 찾아낸 게 놀랍지. 케이베른의 레어를 턴 것에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라…….”

“멋지군. 정말 멋져.”

“나도 참여하고 싶다.”

“우리도 드워프니 되는 거 아니야?”

“어, 그렇네. 드워프들은 이런 전쟁 퀘스트 없었는데. 재밌겠다.”

헤르메스 길드가 중앙 대륙을 장악했을 때도 무관심했던 드워프들은 위드가 모험에 성공하기를 빌었다.

케이베른은 드워프들에게는 특히 악질 중의 악질인 드래곤이라서 반드시 처치하길 희망하게 되었다.

* * *

위드는 드워프 퀘스트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틈틈이 사냥을 했다.

악룡 케이베른과 싸우기로 결심한 타격대를 이끌고 늘어난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일도 중요한 업무였다.

“싸우러 나갑시다.”

몬스터 10만대 타격대 1천!

넓은 평지에서 조인족들의 지원 아래에 공중전까지 펼쳐지는 대격전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펼쳤다.

물론 새벽에도, 아침 먹기 전에도, 아침 먹으면서도, 아침 먹은 다음에도…… 계속 싸웠다.

“하루에 19시간 사냥이라니…… 그래도 이젠 적응되어서 조금 살 것 같아.”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로열 로드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레벨을 올렸다면 내가 바드레이를 이겼겠다.”

타격대에 속한 유저들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전투 노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페일에게 붙었던 별명이 모두에게 퍼진 것이다.

“말도 안 돼. 근데 우리를 이끌면서도 저렇게 싸우네.”

“설명을 들었을 땐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하니까 되네.”

“처음보다 사냥 강도가 더 높아졌지만 어찌어찌 버텨지는 거야.”

“인간의 의지는 강하지.”

“어. 그래서 사람들이 과로사를 하는 거구나.”

레벨이 500을 기본으로 넘지만, 그들은 사냥을 할수록 위드를 존경했다.

질투 같은 감정을 들먹이기에는 상대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위드는 몬스터로 가득한 평지에 뛰어들어 5인 분, 10인 분을 기본으로 해냈다.

― 모두 싸워라! 진격하라!

검을 휘두르고, 분검술을 쓰고, 광휘의 검술도 사용하고…….

어떤 때는 재생의 검으로 아군들까지 치료해 주면서 전투를 이끈다.

그러다가 시체라도 폭발시키고 언데드까지 소환하면 순식간에 30인 분, 50인 분의 몫을 해냈다.

레벨 500대의 유저들이라도 감탄밖에는 나올 게 없었다.

“진심으로 대박이다.”

“잡캐의 정석, 완성형, 궁극 모드. 뭐 그런 건가.”

“정작 조각술 스킬은 많이 안 쓰잖아. 재앙도 터트리고 그러던데.”

“그거까지 쓰면 여긴 지옥 돼. 우리도 죽어.”

고레벨 유저들은 한창 때에는 일주일씩도 던전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레벨을 올리고, 좋은 사냥터를 발견했을 때는 자연스럽게 무리를 하게 된다.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점점 불평불만이 사라졌다.

위드가 사냥을 이끌 때마다 눈빛은 칙칙해졌지만, 정작 퀘스트를 하러 자리를 비운다면 기다려졌다.

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냥 속도가 2,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구나 직접 눈으로 위드의 전투를 지켜보면 가슴 한구석에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위드가 저만큼 하는데…… 나라고 안 될 게 뭐야?’

‘여기서는 버티는 거야. 이곳에서 한 달만 버티면 나중에 영웅 된다.’

‘랭커들? 헤르메스 길드원들? 그들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다.’

타격대에 속한 유저들 사이에는 성장의 열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평원에서 당당히 진군하는 만 단위의 몬스터들을 볼 때마다 열정이 일어났다.

― 싸웁시다!

헤르메스 길드와 명문 세력들에 짓눌려 오며 온건하던 중앙 대륙의 유저들.

그들의 기질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슬슬 작업이 성공하고 있군.’

위드도 점점 싸움닭처럼 변해 가는 유저들의 태도를 느꼈다. 그렇지만 희생의 화로에 대한 소문도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희생의 화로를 쓰면 레벨이 20개, 30개씩 줄어들어?”

“그 이상 줄어들 수도 있지. 최대 10%니까 얼마나 태우느냐에 따라서.”

“미친 짓이네, 그건.”

고레벨 유저들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케이베른과 한 번 싸우는 데 치러야 할 대가로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사냥 한 번 때문에…… 지금까지 고생한 걸 날려 버리라고?”

“사냥 지옥에서 벌인 수고가 말짱 없어지는 거잖아. 게다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성장해 온 건데.”

“내가 약해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성장하고 있을 텐데?”

소문을 들은 대부분의 유저들은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드래곤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희생의 화로를 사용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고레벨 유저들일수록 자신의 강함에 대한 애착이 컸다.

“방송은 어떻게 하고?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만 나쁜 놈이 되는 거 아니야?”

“케이베른과 싸우기로 했으니 싸우면 돼. 희생의 화로는 내버려 두고 말이야.”

“그건 맞지.”

“지금 상태로 싸운다면 약속을 했으니 지키자. 하지만 희생의 화로를 쓰도록 한다면 어떤 욕을 먹더라도 빠질래.”

타격대의 40만 유저들 중에 희생의 화로에 자원하는 이들은 불과 몇백 명밖에는 안 되었다. 자신들이 입는 손해를 견디기 어려웠고, 나름의 명분도 있었다.

사냥터에서 견디다 못 해서 도망치면 비난을 받겠지만, 레벨을 뭉텅이로 날리는 건 다른 문제였으니까.

위드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며 일부러 말도 꺼내지 않았다.

‘케이베른과 싸우기로 한 이들을 고생시키며 사냥터로 끌고 다닐 수는 있지. 그렇지만 그 이상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어.’

솔직히 케이베른 사냥 성공을 100% 장담하지도 못한다.

마땅히 줄 수 있는 보상도 없는 마당에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있었다.

더구나 위드의 평소 철학에도 맞지 않았다.

보통, 전쟁을 이끌면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하던 연설이란 개인들이 가진 욕망으로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고레벨 유저들이 가진 핵심적인 욕망은 더 강해지는 것.

‘나라도 희생의 화로를 쓰면서 싸우자고 하면 무시하겠다.’

어떤 이익을 돌려준다고 해도 대부분의 유저들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만들긴 어렵다.

‘믿을 건 나뿐이야. 도와주는 유저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들에게 의지해서는 안 돼.’

* * *

남쪽으로 떠난 대지의 그림자 파티는 얼어붙은 숲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퀘스트를 빠르게 진행했다.

< 바람이 차가워진 이유 >

< 사라진 나무 >

< 고대 흔적 >

< 엘프들의 발자취 >

난이도가 A급 이상이었지만 모험 스킬을 적극 활용하고 필요한 정보는 모라타의 대도서관에 요청했다.

“바람의 마법사 루클데어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데. 우리가 잘못 짚은 건 아닐까?”

“모르겠어요. 다른 퀘스트의 문을 연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 포기하기도 어렵고요.”

“위드가 드워프의 종족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그쪽에서 케이베른을 막을 방법이 먼저 나올지도 모르겠어.”

“우리끼리라도 희망을 가져 봐요.”

연이은 퀘스트 실패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대륙 최고의 모험 파티.

그들은 마법으로 기후를 바꿔서 얼어붙은 숲을 되살리는 기적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황량한 얼음으로 변해 있던 숲이 푸르게 바뀌는 아름다운 광경.

띠링!

< 메아드의 숲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떠나간 우드엘프들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자연과의 친화력이 3 증가했습니다. >

엘릭스가 부상당한 몸에 붕대를 감으며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모험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지.”

“멋진 모습이야. 비록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진 않겠지만.”

변방에서, 누구도 오지 않는 땅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들이 목숨의 위기를 넘기고 이곳에 엘프들을 정착시키더라도 누가 그 공로를 알아줄까.

그럼에도 베르사 대륙의 일부라도 자신들이 멋지게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엘프들이 돌아오기 전에 숲을 구경이나 해 봐요.”

“그거 괜찮지.”

은링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숲으로 들어갔다.

새들과 토끼 같은 동물들도 아직 없는 고요한 숲.

땅에는 아직도 다 녹지 않은 눈과 얼음 조각들이 남아 있어서 기괴한 모습이기도 했다.

― 어서 오십시오. 모험가 여러분들.

그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나무가 있었다.

숲의 한복판, 높이가 3미터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나무였다.

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나무가 말을 하다니…… 정령이나 요정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세계수입니까?”

― 그 위대한 생명을 이어받긴 했습니다. 비록 이곳에서도 숲을 지켜 내진 못했지만요.

메아드의 숲에 있는 나무.

태초부터 존재하며 세상을 지키는 세계수는 아니지만, 떨어진 나뭇가지가 퍼져서 자란 후손이었다.

― 악룡 케이베른에 의해 세계수는 파괴되었습니다. 독에 시들고, 불에 타고, 산산조각이 났지요.

하이엘프들은 다 타지 않은 뿌리와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대륙 전체로 흩어졌습니다.

숲의 세상을 지키는 세계수를 되살리기 위해서요.

“케이베른…… 결국 케이베른과 관련이 있었구나.”

엘릭스가 신음했다.

― 케이베른과 하이엘프들은 수많은 전투를 펼쳤습니다. 하이엘프들은 드래곤의 힘에도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그렇게 몰락했지요.

은링이 땅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살피다가 물었다.

“그럼 이곳에 숲이 있었던 이유도…….”

― 맞습니다. 케이베른에게서 도망쳐서 이곳에 숲을 가꾸었습니다. 추격해 오는 몬스터 군단에 의해 고귀한 하이엘프들이 한 명씩 차례차례 쓰러져 갔지요. 인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곳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엘릭스가 눈을 빛냈다.

“혹시 그 인간이 바람의 마법사 루클데어 아닙니까?”

― 맞습니다. 그가 도와주었죠.

케이베른과 랜도니와 관련이 있는 루클데어의 흔적을 제대로 따라온 것이었다.

― 여러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엘프들이 그대들을 도울 겁니다.

TO BE CONTINUED

위드는 드워프의 퀘스트를 하러 가는 도중에 대지의 그림자 파티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하이엘프들의 개입이라…….”

― 마판 : 예. 세계수를 되살리기 위한 퀘스트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전 대륙, 모든 엘프 유저들에게 퀘스트가 발생했다.

< 세계수를 지켜라.

악룡 케이베른에게 의해 파괴되지 않은 마지막 희망.

모험가 은링, 벤, 엘릭스는 세계수의 뿌리 일부를 찾아 커다란 숲으로 다시 가져오려고 한다.

세계수는 요정과 정령들을 부르고, 엘프들을 보호하는 위대한 존재.

숲으로 세계수가 돌아오면 엘프들은 잃었던 힘을 되찾게 되리라.

불행히도 이 소식은 다크엘프들과 케이베른의 하수인들에게도 전해졌다.

멀고 먼 남쪽에서부터 세계수가 숲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를 보호하라.

제한 : 엘프 한정 종족 퀘스트

보상 : 엘프들의 마법과 정령술 강화.

난이도 : S >

레벨 1에서부터 500을 넘는 유저들까지 모든 엘프들에게 한꺼번에 발생한 퀘스트!

“이것도 꽤 대박이구나.”

위드는 드워프의 퀘스트만 아니라면 충분히 직접 가서 지원을 해 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엘프 종족 퀘스트야 조각 변신술로 몸을 바꾸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바쁘지만 않으면 가 보고 싶은데 아쉽네요.”

― 마판 : 도와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가능만 하다면요.”

― 마판 : 다른 유저들의 모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엘프로 쭉 활동할 게 아닌 이상 정령술이나 마법이 강해지더라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세상을 위해 헌신해야죠.”

― 마판 : 엘프들의 세금 납부 액수도 오르고 말입니다.

“크흐흐흣.”

― 마판 : 케헤헤헷.

위드는 엘프들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희생의 화로를 옮길 때처럼 와이번들을 보내서 옮길 수는 없었다.

세계수는 대지의 기운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땅에서 멀리 떨어지면 메말라 죽는다고 한다.

땅에 뿌리가 굳건하게 내리기 전까지는 너무 뜨겁거나, 차가워도 금방 죽는 연약한 존재.

“사막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겠네요.”

― 마판 : 오아시스들을 거치며 동쪽으로 꽤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들과 친한가요?”

― 마판 : 네. 뭐 고정 고객이다 보니…….

유명한 모험가일수록 상인들과 친분이 돈독했다.

필요한 장비나 물품들을 대형 상단일수록 빠르게 구해 줄 수 있었다.

“엘프들까지 케이베른과 싸워 주면 좋겠군요.”

― 마판 : 제가 보기에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근데 드워프에 이어서 엘프들까지 드래곤과 관련된 퀘스트가 떴다는 것은 아무래도 느낌상…….

“드래곤과 관련된 용사 퀘스트가 만만하지 않다는 뜻이겠죠.”

위드는 대략의 퀘스트들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희생의 화로를 구한 건 드워프 종족 퀘스트다.

바바리안이나 요정 기사 영웅을 구하는 용사 퀘스트도 있었고, 어쩌면 엘프들도 합류할 가능성이 보였다.

여러 종족들이 드래곤에 의해 하나의 운명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이판사판인데…… 구해 달라고 했던 정보들은요?”

― 마판 : 크나툴, 말린에 대한 소식들은 정리 중입니다. 워낙 잘못된 이야기들이 많고, 가짜 정보들이 섞여서 시간이 걸립니다.

“가짜 정보들요?”

― 마판 : 아르펜의 영주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보니…… 뭐든 전해 오고 있습니다.

영주 자리와 백만 골드의 상금.

그렇기에 바바리안이나 요정 기사에 대한 정보들이 엄청나게 몰려들고 있었다.

문제라면 그것들 중에서 제대로 된 것이 드물다는 점.

난이도 F급의 퀘스트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모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이쪽에서 가리는 수밖에는요.”

― 마판 : 그렇습니다.

“퀘스트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앞으로 위험하겠네요. 패배하고 나면 뒤가 안 보이는…….”

― 마판 : 옙! 위드 님만 믿습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편하게 말하네요.”

― 마판 :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 * *

노른 산맥의 초입.

위드는 드워프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와삼이를 타고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되겠군.’

케이베른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수천의 용아병들이 토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렸다.

― 보물을 되찾아야 한다.

― 찾아서 죽여라. 감히 케이베른 님의 레어에 들어온 드워프들을!

덤으로 몬스터들의 활동 빈도도 높아지면서 토르 지역은 매우 위험해졌다.

“방해꾼들을 뚫고 드워프들이 모여 있는 그루터기 마을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 자체가 퀘스트겠어.”

열흘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퀘스트를 받자마자 이동했다면 훨씬 쉬웠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르펜 제국의 영주 회의를 개최하면서 시간적인 여유도 줄었고, 사냥도 해야 했다. 그사이에 용아병과 몬스터들이 산맥 전체에 깔렸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더 힘들게 퀘스트를 하는 것 같아. 이런 게 먹고사는 거겠지.”

― 비돌 : 반경 200미터에 적은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풀숲이나 나무 아래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십쇼.

군대에서 드론을 띄워서 정찰하는 것처럼 조인족 참새 유저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조인족들은 이전에도 위드의 일을 잘 도와주었지만, 드래곤의 레어를 털고 나서부터는 유저들의 충성심이 부쩍 늘어났다.

“조각 변신술.”

위드는 드워프로 몸을 바꾸었고, 장비들은 무난한 레벨 300대의 것들을 착용했다.

드래곤의 보물들은 쓸 만한 것들이 많았지만 눈에 띌 수 있는 위험 때문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아의 명검이나 하늘 지배자의 갑옷 등은 배낭에 챙겨 놓았다.

일종의 적진 한복판으로의 잠입 퀘스트!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인근의 모든 용아병과 몬스터들이 몰려올 것이다.

케이베른 역시 레어에서 날아오르고 말 테고.

“이동합니다.”

위드의 목소리는 지역 채팅을 통해 정찰에 동원된 조인족 100마리들에게 전달되었다.

― 페일 : 지원 준비 완료입니다.

페일을 중심으로 케이베른 사냥에 나선 유저들로 구성된 신속지원군도 근처에서 대기했다.

“그럴 필요 없는데요.”

“저희들이 원해서 하는 겁니다.”

위드는 극단적인 상황이 생기면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거절하긴 했지만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그동안 지켜보니 위드 님 옆에 있으면 뭐라도 얻어걸리는 게 많아.”

“고생은 하지만…… 죽을 만큼 고생하지만 보람도 있어.”

“방송 출연 기회가 생기잖아. 그것만 해도 이득이지.”

과거 헤르메스 길드가 바드레이의 사냥이나 퀘스트를 돕던 것처럼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 비왈디 : 동쪽 능선에 몬스터들이 있습니다. 나무들로 시야 확보가 안 되어서 위드 님이 노출되진 않을 것으로 봐요.

― 추경 : 이 지역에서 발견된 용아병은 20마리입니다. 움직임을 전부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 칼리야카드 : 진행 방향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초소 비슷한 것이 있네요. 원래는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용아병들이 장악했습니다. 우회로는 서쪽입니다만 협곡을 지나야 합니다.

― 씀 : 협곡 지역 정찰 중.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잘하면 들키지 않고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 토로 : 협곡은 안 됩니다. 몬스터들의 생김새를 보니 후각이 상당히 예민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위드는 폭넓은 정보들을 전달받으며 산길을 올랐다.

‘초소에 용아병이 있다라…… 첫 번째 난관이로군.’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인근의 용아병이나 몬스터들이 전부 몰려오고 말 것이다.

‘난이도 S급의 퀘스트는 단순하지 않아. 일이 잘못되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그루터기 마을에 모여 있는 드워프들이 몰살할 수 있겠지.’

위드는 집중력이 칼처럼 날카롭게 서 있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조인족들이 정보를 알려 준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으고 주변의 지형, 바람 소리, 냄새. 어느 것 하나 그냥 흘리지 않았다.

‘방심은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만하거나, 상대를 얕보지 않는 것이 위드의 스타일!

샤샤샤샥!

짧은 다리를 이용해서 산길을 오르면서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나뭇조각이나 낙엽까지도 피해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 헤르만 : 노른 산맥이라면 좀 알지. 그쪽의 초소는 드워프의 술 저장고를 이용해서 통과할 수 있을 거네.

위드의 영상을 방송으로 보고 있던 헤르만이 말을 걸어왔다.

“술 저장고요?”

― 헤르만 : 다음 갈림길이라 하기엔 뭐하고…… 조금 가다 보면 오른쪽에 샛길이 하나 있을 거야. 수풀로 막혀 있을 수도 있고. 100년 이상 된 오래된 나무들이 엇갈려 있는 위치인데, 그곳으로 방향을 바꿔서 쭉 걷다 보면 바위 틈새 창고가 나오네.

노른 산맥은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큰 바위들도 많았다.

― 헤르만 : 차가운 바람이 흘러나오는 곳이라서 나이 든 드워프들이 맥주를 보관하고 있지. 그 지역의 관리자는 아마 브록핸드일 텐데…… 명망 높은 드워프들만이 아는 장소네. 엣헴. 내 이야기를 하면 잘 대해 줄 걸세.

“고맙습니다. 드워프 영감님.”

― 헤르만 : ……영감님이라는 말은 빼 주었으면 좋겠군. 젠장! 이게 방송으로 나가면 놀리는 사람이 많아질 거잖아. 빌어먹을. 아, 방금 욕까지 방송으로 나갔어. 이게 아닌데.

위드는 헤르만의 정보를 얻었고, 그것은 서윤과 마판의 확인까지 거쳤다.

잘못된 사실을 알려 준 건 아니겠지만 헤르만은 모험가라기보단 대장장이였다. 그가 다녀온 이후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수 있었다.

― 서윤 : 바위 술 저장고. 위치 확인. 헤르만 영감님의 말씀이 맞아요. 술 저장고를 통과하면 약 340미터의 거리를 단축할 수 있어요.

― 마판 : 산악 지도를 살피고 있습니다. 위치는 확실하고, 드워프 유저들의 말을 들어 보니 브록핸드라는 NPC는 조금 까다롭습니다. 명성이 낮은 드워프들은 출입시켜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뭐 위드 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겠죠.

모험가, 예술가.

아르펜 제국의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위드의 명성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깊은 바다에서 낚아 올린 물고기들까지 알 정도였다.

실제로 인어나 지성을 갖춘 해양 생명체들은 위드에 대해 말을 했다.

― 육지에는 아름다운 걸 만들고, 위험을 모르며, 명예로운 자가 있다는데. 그를 만날 수 있나요?

― 바다에는 신비로움이 잠들어 있지. 극지의 탐험가, 명예로운 왕 중의 왕, 끈질긴 낚시꾼. 그런 별명을 가진 자라면 밤을 새워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쉿. 누구에게도 들려줘 본 적이 없는 비밀이지.

TO BE CONTINUED

명성이나 여러 자격 조건들은 어떤 위험한 퀘스트라도 대부분 받을 수 있는 상태!

예전이라면 난이도 S급의 퀘스트를 받아도 성공을 못할 거라고 좌절부터 했었다.

지금은 각종 꼼수들을 동원하면 성공 가능성들이 꽤 보였다. 그만한 고생은 틀림없었지만.

위드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샛길을 걸어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위 틈새를 찾아서 들어갔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드워프는 드문데…… 자넨 누군가?”

브록핸드는 수염을 무릎까지 기른 드워프였다. 코는 붉었고,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대형 도끼를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허락 없이 들어온 침입자에게 도끼를 내려칠 기세였다.

“위드핸드라고 합니다. 브록핸드 어르신.”

“오. 위드핸드라고! 세상에나…… 요즘 들어 가장 유명한 드워프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케이베른의 레어에서 희생의 화로를 훔치고 얻은 명성만 32,000이었다.

베르사 대륙 전역이 들썩였으며, 토르 지역에서는 드워프들이 맥주를 마실 때마다 떠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면 잠잠해질 테지만 지금은 명성의 효과가 크게 올라 있는 상태였다.

“보통의 용기로 되는 일이 아니야. 케이베른에 맞서다니 훌륭하군.”

“분에 넘치는 칭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불의를 외면하지 못하고 도끼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그래. 도끼의 손맛을 알고 있나?”

“묵직하고 단단하죠. 나무를 벨 때도 쓸 만하지만, 강력한 힘과 파괴력으로 몬스터들을 박살 내는 것이 일품입니다.”

“바로 그거야. 이런 멋진 드워프라면 내 맥주를 실컷 마셔도 되지.”

“한 잔 주시겠습니까?”

이 와중에도 친밀도를 확보하는 위드.

드워프 사이에서 맥주를 같이 마시는 것은 친해지기 좋은 방법이었다.

드워프들끼리 주의해야 할 점은 상대가 먼저 제안을 했을 때 거절하면 사이가 크게 나빠진다는 점이다.

“자네는 그루터기 마을로 가야겠지. 바쁘다는 것은 아네. 빠르게 한 통을 마시세.”

바위 술 저장고에서 브록핸드가 내어 주는 맥주를 실컷 마셨다.

― 풍미가 뛰어난 맥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했습니다.

드워프의 특성에 따라 술에서 깰 때까지 집중력과 체력이 향상됩니다.

모든 생산과 전투 활동에 10%의 추가적인 효과가 부여됩니다.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심한 부상을 입어도 힘의 감소가 줄어듭니다.

< 보르냑 맥주를 시음했습니다.

멋진 술을 마시게 되어 예술이 영구적으로 2 증가합니다.

기품이 2 증가합니다.

용기가 2 증가합니다. >

< 요리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뛰어난 통찰력으로 보르냑 맥주의 제조법을 85% 간파했습니다. >

‘이런 효과까지…….’

위드는 드워프들이 숨겨 놓은 맥주를 마시며 만족스러워했다.

로열 로드에서는 열심히 사냥터에 사는 유저들도 있지만, 기가 막힌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요리를 음미하며 강해지는 이들도 많았다. 삶과 여유를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완전히 놀고먹기 딱 좋아지긴 하지만.

브록핸드는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위드핸드, 자네는 정말 드래곤을 잡을 건가?”

“물론입니다. 그 녀석이 우리 드워프들을 건드렸으니까요.”

입에 침을 바르지 않아도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 상태.

“그렇다면 나도 따라가도록 하겠네.”

“위험합니다. 아마 저를 기다리고 있는 적들이 많을 텐데요.”

“걱정하지 말게. 늙은 몸이지만 케이베른을 물리치는 일이라면 어디서든 선두에서 싸울 것이야.”

브록핸드가 그렇게 동료로 합류했다.

위드가 대충 그의 장비들을 살피니 레벨은 500이 안 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도끼나 장비들은 자주 사용한 흔적이 역력했다.

브록핸드는 틀림없이 젊은 시절에 전투를 자주 치렀으리라.

‘동료로 쓸 만한 수준이로군.’

전투 경험이 많은 드워프 전사라면 어느 파티에서나 환영.

어떤 상황에서도 맥주값 정도는 해 주는 것이 드워프 전사들이다.

― 마판 : 브록핸드는 까다로운 성격의 드워프인데…… 동료로 받아들이다니 분위기가 좋습니다. 브록핸드가 다른 유저들의 동료를 됐던 적은 없다고 합니다. 최초입니다.

― 스펜슨 : 케이베른과 맞서며 드워프들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보통 드워프들은 같은 종족끼리도 웬만해서는 뭉치지 않죠.

위드는 술 저장고를 나와서 브록핸드와 함께 걸었다.

“이 자국들을 보게. 먼저 나 있는 용아병들의 발자국이군.”

브록핸드가 땅에 선명하게 나 있는 발자국을 확인했다.

위드는 이미 조인족들을 통해 전방에 다섯의 용아병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초소를 피해서 돌아오긴 했지만 그루터기 마을까지 가려면 돌파해야 하는 관문들이 꽤 많았다.

“대지의 흔적을 보는 법을 아십니까?”

“자세히는 몰라. 그래도 산이나 숲은 익숙한 곳이야. 용아병들은 인간의 발보다는 크고 무거워.”

“드워프도 발이 큰 편인데요.”

“우린 발이 크긴 하지만 살아 있는 꽃은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나.”

“그렇지요.”

“놈들은 걱정하지 말게. 여긴 내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니까. 길을 확실히 막고 있지만 돌아갈 방법은 어디에든 있어.”

브록핸드는 드워프의 작은 몸을 이용해서 커다란 바위 틈새에 나 있는 좁은 길로 이끌었다.

“넝쿨을 타 본 적이 있나? 이 나무를 올라가서도 꽤 먼 거리를 건널 수 있지.”

“흠. 해 보겠습니다.”

위드는 브록핸드와 나무를 올라갔다. 그리고는 넝쿨을 손에 잡고 매달린 채로 뛰어 수십 미터씩을 이동했다.

자신 있게 길을 인도하던 브록핸드가 손을 놓치며 몇 번이나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크으, 역시 높은 곳은 어지러워. 위드핸드, 자네는 어린 드워프들처럼 잘 타는군.”

“고맙습니다.”

브록핸드의 안내 덕분에 용아병의 무리를 몇 번이나 지나칠 수 있었다.

―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 바람 소리겠지.

― 어린 원숭이들이 꺅꺅거리며 노는 모양이야.

용아병들은 정해진 자리를 지키며 순찰을 돌았다. 수풀 사이를 통과하거나, 바윗길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꽤 안전하게 지날 수 있었다.

“휴, 간신히 들키지 않았군.”

“브록핸드 님 덕분입니다.”

“알고 있네, 내 덕분이지.”

“…….”

“이젠 나무 그늘 사이를 지나야 하는데 이걸 바르면 위장하기 훨씬 좋다네.”

브록핸드는 진흙을 얼굴에 바르기를 권했다. 그러고는 사슬 갑옷에 풀과 나뭇가지들을 몇 개씩 꽂고는 자화자찬을 했다.

“내가 했지만 감쪽같은 모습이군. 저 둔한 놈들은 아마 절대 모를 거야.”

위드는 솔직히 그다지 훌륭한 위장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효과가 아예 없진 않겠지. 뭐 거기서 거기겠지만.’

나무와 풀 사이에 불쑥 튀어나온 도끼 자루!

그럼에도 드워프들에게는 항상 최고라고 칭찬해 줘야 했다.

“굉장한 은신술입니다.”

― 부리구리 : 서쪽 방향, 320미터에서 용아병 무리 빠르게 이동 중. 용아병 넷에 다수의 몬스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드는 서쪽 방향을 슬그머니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용아병들이 곧 나타나리라.

브록핸드가 등에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어서 가세.”

“잠시만요.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수풀 속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가죠.”

“뭐 자네 말이 그렇다면야.”

잠시 기다리니 용아병과 몬스터 무리들이 지나갔다.

“케이베른 님이 잃어버린 물품들을 찾아야 한다.”

“이 산맥의 드워프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회수해야지.”

“드워프들이 많은 마을들을 찾아내자. 그곳이라면 보물이 있는 곳을 알겠지. 케이베른 님의 물품을 찾아내지 못하면 드워프들은 대신 목숨과 보물을 바쳐야 될 거다.”

순찰을 도는 용아병들은 살벌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저런 빌어먹을 놈들!”

위드는 브록핸드가 뛰쳐나가려는 걸 막아야 했다.

“그냥 말뿐입니다. 이 근처에 드워프 마을은 이미 몬스터들과 싸우다가 물러났다고 들었습니다.”

“복수를 해야 하는데.”

“더 큰 기회가 생길 겁니다.”

브록핸드는 드워프 전사답게 화끈한 기질이 있었다. 몬스터들을 보면 덤벼들려는 걸 제외하면 훌륭한 길잡이였다.

‘지형과 정찰. 두 가지 모두의 도움을 받으니 훨씬 쉬워.’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지도상으로 그루터기 마을은 노른 산맥의 서쪽, 높고 험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속에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나 있어 멀리서는 마을의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모험가 체이스나, 여러 드워프들도 그루터기 마을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만 들어 봤다고 한다.

― 체이스 : 평소에 퀘스트에 대한 단서들을 수첩에 적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루터기 마을은 세 번 정도 들어 봤는데요. 드워프들이 사는 평화롭고 평범한 마을이라고만 수첩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험가들도 그루터기 마을의 정확한 실체를 몰랐다.

어떤 유저들은 우연히 방문했겠지만 그냥 평범한 마을인 줄 알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드워프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만 전사들이 모여 운명을 결정하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

‘지도를 보면 그루터기 마을은 계곡 근처에 있다. 산기슭이나 중턱에서는 숨고, 우회하면 되지만 물이 있는 곳이 문제야. 보통은 몬스터가 잔뜩 있을 테니까.’

위드는 고민을 해 봤지만 정답은 없었다.

텔레포트, 그림 이동술 등이 막혀 있었고, 하늘을 나는 것도 용아병의 눈에 띄고 말 것이다.

‘난이도 S의 연계 퀘스트가 쉬울 리가 없지.’

어쩌다 중간 단계의 하나 정도는 쉽게 풀리더라도 전체 과정 자체가 쉽게 끝나진 않았다.

“브록핸드, 이제 가죠.”

“알겠네.”

* * *

모험가 체이스.

불의 고리에 도착한 그는 용암을 뿜어내는 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화산들은 하늘을 향해 폭발하듯이 용암을 수백 미터나 토해 냈다.

“크…… 엄청난 광경이군요.”

“너무 덥습니다. 열기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네요.”

“요정의 바람막이들을 잘 챙기세요. 이곳부터는 불길이 위험할 겁니다. 당장은 몬스터보다 지형을 조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불의 고리에서 체이스를 따라온 모험가들은 탐색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어딘가에 있을 랜도니의 레어!

아무래도 당장은 레드 드래곤의 위협이 없지만 오크들을 습격한 다음에는 중앙 대륙이나 북부 대륙으로 올 수도 있었다.

“크아…… 진짜 길이 험하네요.”

모험가들은 걸을 때마다 화산재에 무릎까지 푹푹 빠져 들어갔다.

하늘에는 기괴하게 생긴 바위형 몬스터들도 날아다니고, 어떤 곳들은 땅이 허물어져서 용암들이 흐르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발밑을 조심하세요!”

“으아아악!”

경사진 곳의 바위가 허물어지면서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졌다.

모험가들은 밧줄을 서로의 몸에 묶어서 떨어지진 않았지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TO BE CONTINUED

그날 밤, 천막을 쳐 놓고 모험가들은 회의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지형 때문에 접근 불가능한 장소들이 많아요.”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헤매서는 답이 안 나오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찾는다는 게 대단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래곤이라면 특징이 있을 것입니다. 제일 큰 화산 부근이라거나, 혹은 대지의 균열 안에 있다거나.”

“백 명이 가면 최소한 절반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장소들이군요.”

모험가들은 불의 고리에서 대화를 나눌수록 탐험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게 모험이지.’

‘까딱하면 죽어. 지금까지 퀘스트를 해 오면서 이토록 짜릿한 순간이 있었던가.’

모험가들은 불의 고리를 탐색하면서 미지의 영역들을 조금씩 파헤쳐 갔다.

매일 몇 명씩 죽는 유저들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되돌아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절망의 평원에서 조사 중이던 오크 로드 세에취가 말을 걸어왔다.

― 세에취 : 취익! 드디어 오크 부족의 마음을 열었어요. 취취췻!

“어떻게…… 소득이 있던가요?”

모험가들은 일단 불의 고리에 와서 맨몸으로 부딪쳐 보고 있었으니 뭐든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했다.

― 세에취 : 오크들은 기록이 없어서…… 췻! 게다가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 내려오지도 않았어요. 추취치잇!

“역시 그렇겠죠.”

체이스와 모험가들은 낙심했다.

사실 절망의 평원이 열리고 나서도 모험가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오크들에게는 역사가 제대로 내려오지 않으니까.

한 마리의 오크가 배부르다는 말을 하면, 그걸 들은 오크는 사냥에 성공했다고 안다.

다음 오크는 어서 같이 먹자고 나타날 정도였으니 말로 전해지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 세에취 : 하지만…… 추이잇!

세에취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세에취 : 단서로 한 단어를 얻었어요. 추이익! 악마들의 왕 클레타라고…… 취췩!

* * *

위드와 브록핸드는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악마들의 왕 클레타라고? 그건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지?’

블랙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이 말썽을 피우는 상황에 갑자기 나타난 이름!

‘너무 엉뚱한데. 오크들이 한 말이라서 믿을 건 아닐 거야, 암. 근거가 있는 이야기도 아니잖아.’

그렇게 안심을 하려고 해도 뭔가 뒤통수를 간질이는 미묘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당장은 해야 할 것부터. 그리고 그다음 일은…… 그다음에 고생하자.’

위드의 눈에 멀리 몬스터가 보였다.

“몬스터입니다.”

“내게 맡기게. 단숨에 쪼개 주지.”

브록핸드가 등에 메고 있는 도끼에 손을 가져갔다.

“부근에 다른 몬스터들이 또 있습니다. 소리를 내면 몬스터들이 모여들 테니 조용히 지나가죠.”

“드워프의 자존심에는 도저히…….”

“나중에 맥주를 실컷 사겠습니다.”

“조용히 지나가자는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위드는 브록핸드가 끼어서 중간중간 지름길을 알아낼 때도 있었지만, 결정할 때는 대화로 매번 설득해야 했다.

그럼에도 다행이라면 아무래도 몸집이 작은 드워프라는 점이랄까.

몬스터들이 지나갈 때는 근처 수풀 사이에만 앉아 있어도 위장이 잘되었다.

“큼. 내 단단한 도끼 맛을 보여 주지 못해서 아쉽군.”

“기회가 생길 겁니다.”

그루터기 마을로 계속 걸어가다가 작은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곳에는 드워프들 9명이 모여 있었다.

“우린 골슨 마을의 전사들입니다. 그루터기 마을로 가다가 몬스터들이 많이 보여서 습격 기회를 노리고 있죠. 그쪽 분들은 누구십니까?”

“술 저장고의 브록핸드. 그리고 이쪽은 케이베른의 레어에서 우리 종족의 보물을 꺼내 온 위드핸드네.”

“대단한 드워프를 만나게 되었군요. 반갑습니다. 그루터기 마을로 가시는 것 같은데,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위드는 그들의 합류를 받아들였지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으로 드워프들만 열. 처음에는 지나가는 와중에 우연히 브록핸드를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군.’

그루터기 마을까지 조용히 잠입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드워프들을 이끌고 가게 된다면 발각될 위험이 높아졌다.

‘조금 방식이 바뀌게 되겠지만 깔끔하게 습격해서 길을 뚫어야 되겠군.’

그루터기 마을에서 드워프들은 종족의 운명을 건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드워프 전사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과정도 나쁘지 않으리라.

― 베텐 : 몬스터가 있습니다. 용아병이 끌고 다니던 대형 마수로 보이는데. 일곱 마리가 따로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4, 5분 정도 기다려서 통과하면 들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방에 일곱 마리. 빠르게 처치할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참아 왔던 내 도끼 맛을 보여 주지.”

“제가 세 마리를 맡겠습니다.”

“레어를 턴 실력을 볼 수 있겠군. 언제라도 뒤를 받쳐 주지.”

위드는 드워프들과 합세해서 길목을 막는 몬스터들을 습격했다.

풀숲과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이 뛰쳐나오고, 나뭇가지에서 위드가 뛰어내린다.

강철을 극한까지 연마한 양손 도끼!

케이베른의 레어에서 들고 나온 무기로 기본 공격력이 무려 280이었다.

다른 옵션들도 그냥 다 날카로움이나, 힘 강화, 파괴력 증가 등에 몰빵되어 있었다. 그냥 다 때려 부수는 무기.

드워프들의 동시 습격에 몬스터들은 빠르게 목숨을 잃었다.

위드는 마수를 두 마리 해치웠다.

― 비왈드 : 서남쪽 270미터. 용아병과 몬스터들이 접근 중입니다. 서둘러서 움직이면 들키지 않을 것 같아요.

― 씀 : 북쪽 8마리.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일정 지역을 관할 지역으로 순찰 중입니다. 밤나무 숲에서 처리하면 위험 요소를 없앨 수 있습니다.

“어서 가죠. 그다음 목적지는 밤나무 숲입니다. 거기서도 전투를 치러야 하고요.”

“좋지. 피가 끓는군.”

주변을 살펴 주는 조인족 덕에 몬스터들을 정리하면서 착착 전진했다.

용아병도 처치했는데, 조각 파괴술로 모든 예술 스탯을 힘으로 몰아넣고 딱 세 대에 박살 냈다.

막대한 생명력과 맷집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기본 공격력을 높인 방법에 취약했다.

스킬은 견디지만, 직접 타격에 박살 나는 용아병!

위드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사냥 효율로 놓고 보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나쁜 장소는 아니야.’

용아병들은 좋은 장비와 더불어서 드래곤의 이빨이나 비늘을 떨어뜨렸다.

마법 재료로 가공하기 좋고, 특수한 퀘스트에 필요하기도 했다.

드워프들은 위드를 놀랍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힘이 엄청나게 강하군!”

“용아병을 그렇게 쉽게 해치울 줄은 몰랐네.”

흰 수염을 기른 드워프 전사들이 감탄하고 있었다. 다들 키가 작긴 했지만 그래도 떡 벌어진 어깨들을 가졌다.

“케이베른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악룡 말인가?”

“제가 케이베른을 상대했을 때는…….”

“허억. 케이베른과 싸웠다고?”

“뭐 잠깐 부딪쳐 봤습니다만…… 아무튼 계속 이동하죠. 내일 낮까지는 그루터기 마을에 도착해야 합니다.”

바위산의 능선 구간.

용아병과 몬스터들에게 발각되기 쉬운 장소에 도착했다.

하필이면 달까지 밝았고, 밤하늘에는 조각술 마스터를 하며 만들었던 처자식 별까지 환하게 빛이 났다.

서윤과 아기의 형상을 보석들로 치장해 놓은 별이 환히 반짝이며 지상을 비추었다.

“일단 이쪽으로 와 보세요.”

위드는 드워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여긴 능선이라서 시야가 환히 트여 있습니다. 통과하면 확실히 발각되고 몬스터들이 몰려들 겁니다.”

“두려움은 없네. 죽음은 무서운 게 아니지.”

브록핸드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여차하면 우리가 적들의 시선을 끌겠네. 자네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 그루터기 마을로 가게!”

드워프 전사들이 흩어져서 용아병과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계획.

위드는 퀘스트의 성공 자체만 놓고 보면 합류한 드워프들이 희생양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도움은 되겠지만 크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방법이야.’

드워프들은 끈끈한 의리를 자랑했다. 위기에 빠진 동족을 위해서 기꺼이 전투에 참여하는 종족들.

반대로 동족을 미끼로 버리는 일은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그루터기 마을에 도착하긴 하겠지만 상당한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리트바르 마굴에서 로자임 왕국의 병사들도 한 명씩 신경 써서 관리했었던 위드였다.

그 이후로 병사들을 다시 볼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전투 병력을 허무하게 잃는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지. 아껴야 착취한다. 무려 드워프들인데 말이야.’

위드는 사실 그루터기 마을에 도착하는 것이 난이도가 높더라도 그렇게 걱정하진 않았다.

퀘스트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드워프로 공략하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조각 변신술을 쓰면 되니까.

몬스터나 용아병으로 변신해서 당당하게 걸어가면 되었다.

혹은 다람쥐로 몸을 바꾸고 달려가도 좋았다.

와삼이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방법은 운이 나쁘면 용아병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지만 이건 완벽한 꼼수!

‘드워프들을 잘 살려서 데려가면 도움이 되겠지.’

위드는 배낭에서 짐승 가죽들과 바느질 도구를 꺼냈다. 조각술을 마스터한 이후에는 재봉 노가다를 위해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이었다.

“저한테 방법이 있으니 기다려 보세요.”

가죽들을 꿰매고 유린에게 빌린 물감을 발랐다.

중급 재봉 7레벨의 솜씨.

마스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실력에 손재주의 보정까지 들어갔다.

실과 바늘을 빠르게 움직이며 동물 가죽 옷을 만들고, 나중에 머리 부분은 진흙으로 조각술을 활용했다.

재봉과 조각술의 협업!

띠링!

< 잘 만든 흑곰의 옷 : 내구도 20/20 방어력 11

곰의 형상에 맞춰서 정교하게 꿰맨 옷!

입고 있으면 영락없이 곰으로 착각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옷이다.

옵션 : 동물들에 대한 미약한 공포.

약한 몬스터들이 도망갈 수 있음.

고급스럽다.

최신 패션 유행과는 거리가 있지만, 취향에 따라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음. >

“음. 그럭저럭 잘 만들어졌군.”

별거 아닌 가죽 옷이었다.

그럼에도 조각술 마스터답게 흑곰의 머리 부분은 실감나게 만들어져 있었다.

적어도 1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늑대, 원숭이 옷들도 연달아서 만들었다.

“이 옷을 입으세요.”

“이걸 말인가?”

“네. 이 능선을 이 옷을 입고 넘으면 될 겁니다.”

“용맹한 전사에게는 부끄러운 짓이야. 밤이 더 깊어지는 걸 기다리는 건 어떤가?”

“안 됩니다. 처자식 별이 환해서…… 더 오래 기다려서 안개가 끼는 시간에 통과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도 적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알지 못합니다.”

안개 속에서는 조인족들의 정찰도 무용지물이 된다.

위드는 중요한 퀘스트를 운에 맡기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용아병들이 몬스터를 이끌고 있죠. 용아병들은 고급스런 입맛을 가져서 동물들을 사냥하지 않습니다. 이 산에는 곰, 늑대, 원숭이가 많다더군요. 놈들이 가까이만 오지 않는다면 모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접근해도 잘 모를 테고요.”

위드의 계획은 위장복을 입고 능선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현지의 동물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만 본다면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긴 어려우리라.

‘달밤에 위장복이라…… 아무리 능선이라도 중간중간 시선을 가려 줄 나무와 수풀이 있어. 잠깐씩 노출되는 정도라면 도움이 되어 줄 거야.’

드워프들은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그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저라고 좋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종족 전체를 위해서 우리가 희생하는 겁니다.”

“희생…….”

“네. 마음 같아서는 싸우고 싶지만…… 그래서는 케이베른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케이베른을 잡고 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 얼마나 만족스럽겠습니까.”

드워프들은 그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옷들을 입었다.

“발각되면 우리가 시간을 끌겠네. 위드핸드, 자네는 바로 그루터기 마을로 가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드는 늑대 가죽 옷을 입었다.

입이 삐죽하니 길고, 송곳니도 튀어나온 전형적인 악당 늑대 옷.

동물의 옷을 입고 능선을 차례차례 이동하는 드워프들.

곰이 먼저 앞장서서 가고,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늑대들과, 원숭이가 따른다.

당연히 이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기에 거리를 약간씩 띄우고, 서너 명씩 따로 걸어 다니도록 했다.

위드는 네 발로 걷는 것은 과거에도 해 봐서 익숙하기도 했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드워프들도 의외로 막상 시작하니 동물들의 흉내를 잘 내면서 능선을 따라 이동했다.

“쿠워어.”

“아우우우우우!”

“끽끽!”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흥이 오른 드워프들은 작게 울음소리까지 냈다.

아까 옷을 갈아입을 때 분명 꼴깍거리고 맥주를 마시는 소리가 났었다.

― 씀 : 용아병들이 동쪽에서 꽤 먼 곳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마 시야상으로는 보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위드도 슬며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달빛 아래, 노른 산맥에서 용아병들과 몬스터들이 수색하는 광경들이 보인다.

그들이 찾는 목표는 드워프들.

곰, 늑대, 원숭이들은 능선을 사뿐사뿐 걸으면서 그루터기 마을로 향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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