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7권 : 4.대격전 (408/520)

4.대격전

헤르메스 길드에서 따로 추려 놓은 최정예들.

희생의 화로를 쓰기로 한 길드원들이 황소 광장에 모여 있었다.

“희생의 화로여, 레벨 50개와 생명력 10,000을 태울 테니 힘을 다오!”

“희생의 화로여…….”

“희생…….”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몸에 찬란한 불이 붙었다.

막대한 힘을 안겨 주는 희생의 화로!

레벨 500이 넘는 헤르메스 길드의 주력이 레벨과 생명력을 태우고 있었다.

“몸이 가볍네.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뭔가 힘이 넘치고 강력한 느낌?”

“적응이 안 된다. 그냥 걸었는데도 훨씬 빨라져서. 스킬을 쓰면 어떤 느낌일까?”

“레벨의 격차를 고려하면 대여섯 배는 강해졌다고 봐야지?”

“무조건 드래곤에게 돌격이다. 이 정도면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희생의 화로를 쓴 유저들은 단단히 결의를 다졌다.

50개의 레벨을 태운다는 건 그들에게도 보통 결정이 아니었다.

전투에서 승리를 하든, 패배를 하든 잃어버린 손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반드시 드래곤을 잡아야 했다.

“그래도 모두 조심하자. 드래곤의 마법을 몸으로 견뎌 내기란 힘드니까.”

“직접 맞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난 워리어니까. 물리적인 타격에는 견딜 수 있겠어.”

거인 기사 보에몽이 그들을 이끌었다.

“아직 기다린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우린 케이베른의 흑마법이 빠지는 순간 투입된다.”

1만 명의 정예들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서 전장에 투입될 순간을 기다렸다.

“이걸 입으십시오.”

그때 마판 상단의 상인들이 와서 장비들을 늘어놓았다.

케이베른의 레어에서 입수한 물품들 중에 인간들이 착용 가능한 레벨 800대 이상의 장비들!

“저희에게 주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전투가 끝나면 반납해야 됩니다. 자, 여기 인수증에 서명도 하시고요. 나중에 다시 빌리고 싶으시면 마판 상단으로 문의해 주세요.”

“장비를 빌릴 수 있나요?”

“공짜는 아니고요. 가격이 정해져 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마판 상단의 장비들을 입으면서 감탄했다.

어떤 것들은 레벨 제한이 900대에 달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인기가 높은 건 무기류였다.

가장 강력한 무기와 공격력에 대한 갈증은 전사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사이에 빙룡 광장 인근에서는 케이베른의 흑마법이 발동되었다.

― 운명의 거울!

“자자, 나가자. 이제부터 우리가 싸울 시간이다.”

“출격!”

* * *

운명의 거울.

10분 동안 받은 피해만큼을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되돌려 주는 궁극의 흑마법!

전투를 벌이던 수많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회색으로 변해서 한꺼번에 사라져 갔다.

그 직후였다.

예상대로 자신의 생명력을 보충하기 위한 마법을 사용했다.

― 희생자의 생명 흡수!

케이베른은 전장에서 죽은 이들의 생명력을 한꺼번에 빨아들였다.

모라타의 구석구석에서 잿빛 기운들이 솟구쳐서 일제히 드래곤의 몸에 흡수되었다.

상처투성이의 몸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회복되고, 깨진 비늘까지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열심히 전투를 펼치던 이들에게는 깊은 절망감을 안겨 줄 정도의 완벽한 회복.

― 인간들, 나의 위대함에 경배하라!

케이베른이 멀쩡해진 모습으로 포효를 터트렸다.

흑마법의 절대적인 위력이란 일반적인 마법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블랙 드래곤은 공격력과 회복력을 동시에 가졌으니 그만큼 더 사냥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무척이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모두 잘 참았다. 드디어 제대로 싸울 시간이 왔다.”

바드레이가 고함을 터트렸다. 그러자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응답하며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 우리의 손으로 드래곤을 끝낸다!

모라타의 건물마다 숨어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초반에 동원된 전력은 헤르메스 길드의 평균적인 수준. 화려한 기술들로 열심히 싸웠지만 모든 것을 다 내보이진 않았다.

모라타라는 대도시, 이미 많은 유저들이 목숨을 잃었다.

드래곤의 흑마법으로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기에 탐색전을 하면서 시체들과 마나가 소비되기만을 기다렸다.

“돌격해!”

“이젠 드래곤의 최후다.”

황소 광장에서 희생의 화로를 쓴 유저들이 비행 마법의 도움을 받아서 날아왔다.

바드레이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전설이 깃든 빙하의 검!

< 빙하의 검을 무장하셨습니다.

검에서 전달되는 차가운 기운으로 생명력이 매초마다 100씩 감소합니다.

얼음 속성의 공격력이 120 추가됩니다.

연속 적중 시에 적의 마법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완전히 얼릴 수 있습니다.

얼어붙은 적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대형 몬스터에게 4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모든 스탯 +52.

5미터 반경의 적을 느리게 만듭니다.

인내력이 20% 향상됩니다.

스킬, 서리 지역, 눈바람, 빙설의 폭풍, 빙하 충격, 빙하의 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빙하의 검이 잠들어 있습니다.

거친 전투로 검을 깨우면 적을 향해 얼음 계열의 마법이 무작위로 발동됩니다. >

철혈의 워리어가 되면서 얻게 된 검.

헤르메스 길드의 창고에도 이보다 더 좋은 검을 찾을 수 없었다.

빙하의 검을 잡은 손이 가볍게 얼어붙었다.

바드레이가 새하얀 서리가 낀 빙하의 검을 들고 외쳤다.

― 총공격이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모라타가 떠들썩해졌다.

“가볍게…… 빙설의 폭풍!”

바드레이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위해 검에 봉인된 스킬을 시전 했다.

대륙의 북부 지역에 불던 빙설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기술을 케이베른을 대상으로 사용했다.

콰콰콰콰!

땅에서부터 시작된 폭풍의 바람이 케이베른을 타고 돌았다.

반경 500미터에서 얼음 조각들이 회전하며 드래곤의 육체에 상처를 입혔다.

“자연의 검!”

이번에는 검술의 비기로 하늘이 갈라진다.

쿠르르르르르!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더니, 수천여 개의 벼락이 케이베른에게 내리꽂혔다.

― 인간이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니. 그러나 감히 건방지게 나에게!

케이베른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강력한 공격 기술!

바드레이가 희생의 화로를 쓰고 난 이후에 레벨 1,100을 넘긴 상태에서 검술의 비기를 사용했다.

물론 자연의 힘을 강화하는 액세서리와 장비들도 모두 착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희생의 화로를 쓴 1만 명이 전투를 위해 덤벼들었다.

드래곤을 정말 사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될 만한 전력!

“나도 밀릴 수 없다.”

“드래곤은 아무한테도 양보 못 해!”

“영주 자리가 눈앞에 보인다.”

희생의 화로를 쓴 길드원들은 드래곤에게 거세게 돌진했다.

앞발로 후려치고, 꼬리를 휘둘러도 막아 내거나 뛰어넘으면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럭저럭 견딜 만해.”

“아프긴 하지만 한 대쯤 맞아 줘도 안 죽는다고!”

빙설의 폭풍과 천둥 벼락이 드래곤을 휩쓸었지만 어떻게든 버텨 내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둥! 둥! 둥!

마레이가 이끄는 바드들도 도시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다.

― 우리는 노래하네.

승리와, 영광과, 사랑과, 미래를.

밝고, 즐거움으로

내가 가진 용기로 일어서네.

높은 건물들 사이에 무대를 숨기듯이 꾸며 놓았고 악기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광야의 연주.

바드의 비기를 사용하며 맑고 깨끗한 연주를 퍼뜨렸다.

―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어리석은 드래곤에 맞서는 이들이여

전사의 힘과 용기를

모든 이들이 노래하네

엄선하여 뽑은 천 명의 바드들.

그들은 합동 연주로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격려했다.

“모든 고통과 부상을 낫게 하라. 신성한 회복!”

“치료의 손길!”

“천상의 빛!”

“소생!”

사제들의 지원도 사방에서 이루어졌다.

드래곤과 싸우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몸에서 계속 빛이 번쩍이며 생명력과 체력이 보충되었다.

“피의 불꽃!”

“암흑 갑옷!”

“광란의 움직임!”

“어둠의 반격!”

샤먼이나 주술사들의 강화 주문도 뒤따랐다.

드래곤을 묶어 놓기만 한다면 모라타 전역에서 최상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케이베른!”

바드레이는 빙설의 폭풍과 내려치는 벼락을 뚫고 케이베른에게 달려갔다. 갑옷을 포함하여 모든 장비들을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 착용했다.

“탄생의 힘, 흑기사의 일격, 다른 하나의 검!”

바드레이의 전용 기술과 마찬가지인 스킬들도 사용하며 드래곤에게 덤벼들었다.

“섬멸의 창!”

“강화된 율법!”

“추적자의 화살!”

“꿰뚫는 섬광!”

그 순간에 맞춰 케이베른에게 무수히 많은 원거리 공격들까지 작렬했다.

바드레이와 그의 친위대들.

케이베른이 있는 모든 방향에서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한꺼번에 뛰어들었다.

― 인간들 따위가. 대파열!

케이베른도 당황하며 이번에는 화염 계열의 궁극 마법을 터트렸다.

거센 폭발과 불길이 수백 미터의 범위에 일어나며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휩싸였다.

그렇지만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뚫고 들어오는 전사들. 생명력의 피해가 크긴 해도 죽진 않았다.

< 철혈의 피가 지독한 불길에 저항합니다.

생명력이 31,397 감소합니다.

궁극의 인내로 86%의 피해가 줄어들었습니다.

화염의 추가 피해가 사라집니다. >

바드레이는 케이베른의 앞다리를 검으로 찍으며 등에 올라탔다.

“일점 공격술!”

단 한 곳만을 노리는 기술!

위드가 사용하는 것을 본 이후 대형 몬스터에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혼신의 타격!”

체력과 생명력을 소모하여 일시적으로 공격력을 4배 이상 끌어 올리는 스킬까지 썼다.

철혈의 워리어가 되고 나서 더 많은 생명력과 체력을 보유했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바드레이가 검을 내려찍을 때마다 그 부위 주변이 얼어붙었다.

“바드레이 님을 지켜라!”

“드래곤의 관심을 끌어야 하니 무조건 공격해!”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지상에서 거세게 공격하고, 하늘에서도 바드레이를 따라 등과 머리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 저리 꺼져라! 암흑 분출!

블랙 드래곤의 몸에 어둠이 자라나서 뒤덮었다.

케이베른 자신의 생명력은 회복하고, 적들은 공격하는 마법.

― 아크힘 : 저 흑마법을 없애 버려!

“심판의 빛!”

“고결한 정화!”

“천사의 칼날!”

케이베른의 몸에는 헤르메스 길드의 성기사들도 달라붙어 있었기에 즉시 신성 마법을 사용하며 흑마법을 약화시켰다.

수백 개의 신성 마법이 케이베른의 어둠을 약화시켰다.

― 떨어져라!

케이베른이 몸을 흔들고 날개를 펄럭였지만 추락하는 이들보다도 더 많이 뛰어오르는 헤르메스 길드원들.

“다음 흑마법을 쓸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때려. 다른 사람이 공격할 수 있도록 마나가 떨어진 사람은 물러나!”

드래곤의 주변에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희생의 화로를 쓴 전사들은 날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마법과 화살들은 케이베른의 몸에 적중되어 폭발했다.

드래곤에게 쏜 원거리 공격은 큰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어쩌다 빗나가는 공격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땅을 짓이겨 놓았다.

헤르메스 길드 소속 마법사들 역시 마나를 쏟아붓고 있었다.

바드레이는 빙하의 검으로 케이베른의 등을 내려찍으며 함성을 터트렸다.

― 우리가 승리한다. 멈추지 말고 공격하라!

그들이 칼질을 하고, 창을 찌를 때마다 케이베른의 피해는 몇 배가 되었다.

희생의 화로를 쓴 헤르메스 길드원의 공격에 드래곤의 비늘이 부서지며 체액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케이베른이 날뛰자 그 발길에 채이고 꼬리에 얻어맞았다.

쿵! 쿵! 쿵!

또한 케이베른이 달리면 수백 명이 마구 짓밟혔다.

― 가우슈 : 희생의 화로를 사용한 유저들은 정면에서 막지 마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방어력이 아니라 공격력이야!

희생의 화로를 쓴 이들은 좌우와 뒤로 돌아갔다.

정면을 막는 건 일반 길드원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내몰리긴 했지만, 방패를 겹쳐 세우면서 쉬지 않고 전진했다.

― 쿠우와아아아아!

케이베른이 또다시 드래곤 피어를 터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드들의 노래가 드래곤 피어의 효과를 약하게 했다.

희생의 화로를 쓴 이들은 약간의 두려움만을 느끼면서 금방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됐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어.”

“드래곤을 처치하자. 내 몫이다.”

천 명의 영주는 희생의 화로를 쓴 1만 명 중에서 뽑힐 가능성이 높았다.

헤르메스 길드를 떠나지 못할 수뇌부들을 제외한다면 확률은 그보다도 훨씬 높아졌다.

― 아크힘 :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공격을 계속해!

모라타 방어전에 참여한 유저들은 알고 있었다.

희생자의 생명 흡수는 시체에서 강제로 생명력을 빼앗는 마법!

역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시체가 없는 지금은 케이베른이 생명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

“구경하시는 분들은 모두 물러나세요!”

“이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 주십시오!”

건물마다 숨어서 구경하던 유저들은 재빨리 철수했다.

지금까지는 죽더라도 본인의 문제였지만, 이젠 전투에 휘말려서 죽으면 도리어 케이베른을 도와주는 셈이 되었다.

“어서 성물들을 설치해!”

마판 상단에서 고용한 레벨 400대 이상의 유저들도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아르펜 제국에서는 지금까지 쌓은 공헌도를 바탕으로 프레야 교단을 비롯하여 베르사 대륙에 있는 22개 교단에서 성물들을 빌려 왔다.

목적은 케이베른이 사용하는 흑마법의 위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

드래곤의 주변에 성물들을 설치하여 신성한 힘을 높이려고 했다.

― 인간들이 이 정도로 준비를 했다니!

케이베른은 더더욱 분노했다. 마법을 연달아 쓰고, 꼬리를 휘둘렀지만 전사들의 돌진은 거침이 없다.

드래곤의 강함은 절대적이었지만, 모라타라는 도시의 한복판에 내려온 것은 최악의 전투 장소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죽어 가긴 했어도 케이베른의 생명력 또한 확실히 줄어 가고 있었다.

― 인간들에게 숨겨 둔 힘이 있었구나! 그러나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이젠 모두 사라질 것이다.

케이베른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저항에 최강의 공격 기술인 브레스를 사용하려는 모습.

“지금이다!”

“모두 끝까지 노립시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에게는 약속된 시간이기도 했다.

브레스를 정면에서 맞는 것은 희생의 화로로 레벨을 좀 높였다고 해도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망을 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격을, 최선의 공격을!”

보에몽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양날 도끼를 휘둘러 드래곤의 발목을 내려찍었다.

흑마법을 쓴 직후와 브레스를 준비하는 짧은 시간이 가장 무방비한 상태.

바드레이와 전사들도 가지고 있는 검을 들어 드래곤의 몸을 힘껏 베었다.

“날개를 잘라 버려!”

드래곤의 거대한 육체를 공격하는 천여 명이 넘는 전사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마구 내지르는 공격이 브레스를 준비하는 드래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갔다.

* * *

위드는 멀리서 전투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싸우네.”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는 보면 볼수록 멋진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드래곤을 상대로 몰아치는 전투를 어느 집단이 할 수 있을까.

바드레이를 절대적으로 따르면서 사기도 높았다. 갑옷이 깨지고 심한 부상을 입고서도 계속 싸운다.

물론 희생의 화로를 사용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는 했으리라.

“전투 계획도 잘 짰고…… 여기까진 생각대로 잘 굴러왔어.”

모라타를 미끼로 드래곤을 지상으로 끌어들인다.

드래곤이 흑마법을 사용할 정도로 적당히 힘을 빼놓은 후에 진정한 병력을 투입!

희생의 화로를 쓴 전사들이 중심이 되어 드래곤을 처치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드래곤을 상대하는 방식으로는 이보다 더 나은 걸 찾기도 어렵겠지.”

위드라면 저런 식의 전투를 준비하긴 어려웠으리라.

상당히 많은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는데, 지휘 체계를 확고하게 갖춰 놓아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잃을 것이 적은 초보 유저들이 군중심리에 휘말려서 돌격하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다.

“드워프들만 이끌고 드래곤과 싸웠다면 이기기 힘든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거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열 배나 되는 병력이 희생의 화로를 썼고, 후방 지원도 넉넉했다.

“이대로면 모라타가 케이베른의 무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위드는 한편으론 아쉬움도 느꼈다.

드래곤이 함정에 쉽게 빠져서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인간들과 비교할 때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마법사이자 초대형 생명체!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 페일 : 위드 님, 헤르메스 길드가 드래곤 사냥에 성공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보이기는 하네요. 그래도 드래곤입니다.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위드는 너무 일이 술술 풀려서 꺼림칙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느낌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한 일이 벌어지던 때였다.

“왠지 뭔가 꺼림칙한데…….”

― 페일 : 위드 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이놈의 팔자 이론이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닌 헤르메스 길드가 싸우고 있으니까요.”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손에서 케이베른이 정리되는 것도 최상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드래곤만 해결되면 당분간 베르사 대륙을 위협하는 존재는 없을 테니까.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한 것일까.”

― 페일 : 케이베른이 브레스를 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위드는 케이베른의 브레스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당연히 예상했던 공격 방식이었고 지금까지 헤르메스 길드의 대응도 훌륭했으니까.

브레스 공격에도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면서 싸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쪽도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은 아직 한 번도 사냥된 적이 없는 존재입니다. 만약을 위해 타격대도 출동 준비를 해 주세요.”

― 페일 : 알겠습니다.

“케이베른의 흑마법이 어디까지일지.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방심은 당연히 하면 안 되겠죠.”

위드는 가능하면 자신은 희생의 화로를 쓰지 않고 전투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이번 전투로 레벨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갖는 이득은 엄청나다.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만 생고생을 하게 되는 거겠지. 이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야.’

치사하고 염치없지만 그럼에도 막타를 노리는 건 물론이었다.

* * *

케이베른의 입에서 시커먼 브레스가 뿜어 나왔다.

정면의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집어삼키고 모라타의 건물들을 뒤덮었다.

― 모두 죽어라!

블랙 드래곤이 고개를 돌리며 브레스를 넓게 뿌렸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메뚜기가 튀어 나가듯이 피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옆으로 튀어!”

“하늘로 날아라!”

브레스의 반경에 벗어난 사람들도 무사하기 어려웠다.

대지가 녹아내리고, 건물들이 허물어졌다.

도시의 일부는 흔적조차 없어질 정도로 강력한 드래곤의 브레스.

전투를 위해 가까이 몰려 있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피해는 환산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최소 수천 명이 훨씬 넘게 죽이며 드래곤은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돌격해라!”

“진격의 뿔피리를!”

하지만 공포도 반복되어 익숙해지면 극복할 수 있는 법.

케이베른의 브레스에 살아남은 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드래곤을 죽이면서 얻을 전투 업적도 탐낼 수 있었고,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위드와 바드레이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한다면 대륙 전역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희생의 화로를 쓴 이들은 죽음보다도 승리를 원했다.

그로비듄과 쟌.

그 외의 네크로맨서들도 전장에 개입했다.

“모두 피하십시오. 시체 폭발!”

“일어나라. 눈 감지 못한, 잠들지 않은 원혼들이여. 여기 살아 있는 그리고 너희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라! 데드 라이즈.”

브레스로 사망한 헤르메스 길드원의 시체가 연달아 폭발하고, 둠 나이트들이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야?”

“시체 폭발에 휘말려서 부상자들까지 죽을 수 있는데!”

멀리 물러난 구경꾼들은 의문을 가졌지만, 이것도 케이베른 사냥을 위해 준비된 한 수였다.

희생자의 생명 흡수는 드래곤에게는 최고의 회복 마법이다.

무자비한 공격력으로 인간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부터 대량의 생명력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로부터 찔끔찔끔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마법.

모라타 방어전을 위한 회의에서도 이것에 대한 대책이 논의되었다.

“문제는 드래곤이 생명력을 계속 회복하는 겁니다. 드래곤과 싸우면서 죽지 않을 수는 없어요. 모든 유저들이 희생의 화로를 쓰더라도 불가능할 겁니다.”

“공격력을 더 강화해서 드래곤이 회복할 틈도 주지 않고 죽이면 되긴 할 텐데…… 집중 공격을 해도 단기간에는 어렵습니다.”

“드래곤의 마법 저항이 워낙에 높아서 전사들의 공격에 기대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죠.”

아크힘과 뮬의 우려에 위드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흑마법은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공략만 제대로 하면 돼요. 네크로맨서 마법이 그렇듯이 희생자의 생명 흡수는 시체가 필요한 마법이잖습니까? 그럼 시체들을 날려 버리면 되죠.”

“아…….”

시체들을 신성 마법으로 정화해도 되지만, 그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드래곤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는 모두가 쓸모가 없다고 봤던 네크로맨서들.

“시체 폭발! 시체 폭발!”

네크로맨서들은 필수로 시체 폭발 마법을 익히고 있었다.

기왕이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초보들이 동원되면 더 좋다.

그들이 바로바로 시체들을 터트려 버리면서 전장에 케이베른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애 버렸다.

케이베른과 가까운 곳에서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죽은 장소는 특별히 위험했다.

시체들이 많은 곳에는 그로비듄이나 쟌이 언데드 소환으로 둠 나이트를 일으켰다.

― 주인이시여, 명령을.

― 적을 찾고 있다.

둠 나이트들은 네크로맨서들의 명령을 받아서 케이베른을 공격했다. 물론 가장 위험한 정면에서 관심을 끌며 죽어 가는 역할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전투에만 집중했다.

브레스를 쓰고 난 케이베른에게 바드레이를 위시하여 모두가 덤벼들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드래곤 사냥에 성공하는 거야.’

달라붙어 싸우는 헤르메스 길드원이나 지원조.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타격대나 구경하는 유저들의 머릿속에 승리라는 단어가 떠오르려고 할 무렵!

“움트고 있는 생명력. 그 전부를 보여 다오. 뷰 라이프 포스!”

그로비듄은 케이베른의 생명력이 54%가 남은 것을 확인했다.

― 그로비듄 : 생명력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면, 이대로만 치면 우리가 이깁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마음에 투지가 가득 찼다.

강대한 드래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모든 화력이 집중됐기 때문에 절반의 생명력을 다 없애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진 않으리라.

― 바드레이 : 모두 잊었는가. 우리가 헤르메스 길드다!

길드 채널에서 전해지는 바드레이의 메시지.

“후우와아아아아아아아!”

“헤르메스 길드 만세!”

드래곤 사냥에 참여한 길드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싸웠다.

“갑자기 왜 저래?”

“사기가 오른 거 같다. 정말 제대로 분위기 탔어.”

타격대나 구경꾼들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바드레이를 따라서 싸우는 친위대의 모습.

드래곤과 근접전을 펼치며 갑옷이 깨어지고, 부서졌음에도. 숱한 화살과 마법 공격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싸우고 있었다.

영웅적인 그 모습은 솔직히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 인간들 따위가 도전한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울부짖는 분노!

케이베른의 몸이 검붉게 변하더니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방패를 들고 압박하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공격의 대상이었다.

꼬리로 치자 방패와 갑옷이 종잇장처럼 부서지며 레벨 400, 500대의 길드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앞발로 차거나 머리로 들이받아도 견디지 못했다.

“뭐지, 이게. 갑자기 터무니없이 강해졌어!”

“큭! 방패병들은 더 달라붙어! 활동할 수 있는 거리를 주면 모두 위험해!”

희생의 화로를 쓴 1,000대 레벨의 전사들마저도 발에 차이면 심각할 정도의 부상을 입거나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들었다.

“너무 강해졌다!”

“막을 수 없으니 부딪치지 마.”

케이베른이 발버둥을 칠 때마다 두려움에 방패병 수천 명이 뒤로 밀려나는 모습.

경이로운 육체적인 능력으로 헤르메스 길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죠?”

위드가 모라타 방어전의 주요 인물들이 들어온 채팅방에 물었다.

― 아크힘 :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마법을 쓰더니 드래곤이 아주 강력해졌는데.

― 울타르 :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정면은 대충 견디고 좌우로 우회하고 뒤를 노립시다. 이길 수만 있다면 피해는 감수해도 됩니다.

― 그레놀 : 정면도 압박해서 막아야 합니다. 드래곤의 앞길을 뚫어 주어서는 안 돼요!

― 막스 : 방패병들을 집결시킵시다. 케이베른을 완전히 봉쇄해야 합니다.

군단장들끼리의 대화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흘렀고, 위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왔다.

― 다인 : 쭉 지켜봤는데 힘을 강화하는 유형의 마법인 것 같아요.

“…….”

다인의 대답.

그녀도 모라타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위드는 오랜만이라서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신체를 스스로 강화한 건가요.”

― 다인 : 네. 샤먼의 마법에도 수준은 다르지만 비슷한 게 있는데요. 저런 위력이라면 흑마법이겠죠.

“제물을 바친 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 다인 : 적의 숫자와 피해를 입은 생명력에 따라 힘이 증가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마법으로 강화가 되니 케이베른의 육체적인 능력마저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수백 미터짜리 드래곤이 발광을 할 때마다 인간들이 그대로 깔리고 차여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대재난의 현장.

“으우아아아악!”

“너무 강해.”

등과 날개에서 유저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그대로 발길질에 차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죽이기만 하면 돼. 큰 피해가 있더라도 드래곤만 죽인다면…….’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한 가지의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케이베른의 생명력도 대략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50개의 레벨을 소모하는 희생의 화로도 쓴 마당에 한 번 정도 목숨을 잃는 건 중요하지도 않았으니 총력전이 답이었다.

“우린 공격을 계속한다.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어.”

바드레이는 여전히 드래곤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거친 드래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체력과 마나를 있는 대로 소모하면서 스킬을 퍼붓는다.

백여 명의 길드원들이 같이 공격하고 있었는데, 이들도 절대적인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들에게 사제들의 회복과 강화 마법도 집중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드래곤이 죽어 가고 있어.”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 힘을 내라!”

지상에서는 군단장들이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날뛰는 드래곤의 몸에 서 있는 유저들은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지만 동료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희생의 화로를 쓴 이들도 한 명씩 드래곤에게 밟히거나 마법 공격에 의해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싸울수록 전투의 광기에 깊게 빠져들었다.

― 슬래터 : 이대로면 죽일 수 있습니다.

― 헤로이드 : 우리 공격이 제대로 먹힙니다. 무조건 공격입니다. 사냥 성공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여러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드래곤을 이기기에는 광기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았다.

전투가 끝날 무렵에는 대도시인 모라타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말리라.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숱하게 죽어 갈 테지만 안타깝지 않았다.

애초에 동료로서의 정이 부족하긴 했지만 드래곤을 사냥한다는 대업적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 그로비듄 : 현재 드래곤의 남은 생명력은 39%입니다.

케이베른의 무지막지한 방어력, 마법 저항력. 그것들을 뚫고 드래곤의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 라미프터 : 정말로!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보에몽 : 문제없습니다. 케이베른은 안식으로 돌아갈 겁니다.

― 가우슈 : 모두 정해진 위치를 사수! 드래곤을 향한 파상 공세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 그로비듄 : 시체는 생기자마자 처리하겠습니다.

모라타의 구경꾼들도 흥분하고 있었다.

“됐어, 헤르메스 길드가 잡는다.”

“아마도 그럴 듯. 좋네. 바드레이 진짜 강하고.”

“크아아, 진짜 헤르메스 길드 명불허전이다. 드래곤도 죽이네.”

“난 위드 님이 이겨 주길 바랐는데. 그래도 베르사 대륙이 멸망하는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절대 태양 마법은 이미 사라진 후였고, 도처에 발생한 불도 진압이 완료되었다.

남은 것은 드래곤이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것뿐.

위드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조금도 들뜨지 않았다.

‘그래도 드래곤이다. 이렇게 끝나는 것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긴 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모라타로 끌어들인 위험한 계획도 결국에는 성공이었다.

드래곤을 상대로 원거리 공격은 큰 효과를 못 본다지만 그 피해가 쌓이면 꽤 클 것이다.

전투 불능에 빠질 정도로 커다란 중상을 입은 유저들도 사제들의 치료가 집중되어 금방 회복됐다.

희생의 화로를 쓴 유저들은 허무하게 죽지 않고 전투를 잘 이끌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케이베른이 정말 마음대로 날뛰었을 것이다.

‘드래곤이 최후를 맞이할 때를 대비해야 되겠어. 막타를 치려면 더 가까이 가야 해.’

* * *

“취이익!”

세에취.

악마들의 왕 클레타의 존재를 처음 밝혀낸 그녀는 굉장히 유명해졌다.

“혹시 저희들이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취췩!”

오크랜드에 있는 그녀에게 불의 고리에서 돌아온 모험가들이 합류했다.

“투사의 불꽃. 췩! 거길 갈 거예요. 추유잇!”

“알겠습니다. 뭐라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죠.”

세에취는 모라타에서 케이베른을 사냥한다고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결국 클레타를 막으려면 레드 드래곤까지 치워야 한다.

‘케이베른이 사라지면 클레타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겠지만…… 봉인석을 랜도니가 혼자서 다 찾긴 어려울 거야.’

세에취는 모라타로 급하게 달려가도 도움이 안 되니 느긋한 마음으로 모험가들과 투사의 불꽃으로 들어갔다.

건장한 오크들이 오가는 대형 성채!

“인간. 췻!”

“너희들. 냄새 심하다. 취췩!”

세에취와 함께 온 모험가들은 오크들의 견제를 받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런 유형의 경험이 많았다.

“걱정 마세요. 냄새를 좀 지우면 됩니다.”

모험가들은 땅을 구르고, 오래된 짐승 가죽을 입으면서 오크들이 싫어하지 않도록 냄새를 바꾸었다.

오크들은 사실 그렇게 예민한 편도 아니었지만.

“혹시 랜도니를…….”

“봉인석에 대해…….”

“이 도시의 기원은 어떤 곳인가요?”

모험가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정보들을 모았다.

오크 유저들도 세에취의 소식을 듣고 있었으니 합류하여 도움을 주었고, 그들은 의외로 빠르게 소문들을 모을 수 있었다.

― 투사의 불꽃에 있는 투기장!

― 2년에 한 번씩 오크들의 왕을 뽑는 대회가 열린다.

― 오크들이 위기에 빠지면 대족장들이 나타난다.

― 그들은 바탈리와의 약속대로 투기장에서 특별한 의식을 치를 것이다.

“오크 전사들이 싸워서 마지막까지 이기는 자가 왕이 된다고요.”

“그 왕은 오크들을 모두 지배한답니다.”

“그리고 죽은 오크들의 혼과 싸움에 진 전사들의 힘을 흡수하여 오크 용사가 탄생한다고…….”

오크 용사!

오크 부족이 위기에 빠지면 나타나는 왕은 엄청난 강함을 가지게 된다.

그 오크가 바로 랜도니와 싸워 이긴다는 것이었다.

모험가들은 그 사실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오크들은 다른 종족들보다도 발전이 느린 편인데요.”

“외모가 좀 심하게 생겨서 어쩔 수 없죠. 그나마 위드 님이 카리취로 활동하지 않았으면 더 적었을 거예요.”

“전반적인 오크들의 수준이 낮은 편이라 투기장에서 왕을 뽑더라도 랜도니와 싸우는 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왕을 뽑는 것도 1년 가까이 남았네요.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죠. 그리고 오크 카리취가 있지 않습니까?”

모험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오크 카리취가 나타나서 오크 랜드를 평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겠네요.”

“드래곤 슬레이어의 업적이 걸려 있으니 누구라도 노려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엘프, 드워프, 오크까지 전부 신났네. 인간들의 도시는 파괴되기만 했는데.”

“종족의 유불리는 따지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가장 번성하고 있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모험가들은 추가로 정보를 모으려 하고 있었다.

랜도니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좋고, 투사의 불꽃에서도 희귀한 퀘스트를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취익! 취이익!”

“드래곤! 드래곤이 온다. 취취췩!”

하지만 투사의 불꽃의 오크들이 갑자기 날뛰고 있었다.

“설마…….”

“여기로?”

모험가들은 당황하며 오크들이 모이는 성벽으로 달려갔다.

지평선 너머에 거대한 붉은 드래곤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 진짜다!”

“랜도니다!”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을 뚫으며 이동하는 레드 드래곤.

“취위이이익!”

“큰일, 큰일 났다. 취췻췻!”

성벽에 있는 오크들이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모험가들도 심장이 멎을 듯이 놀랐지만 곧 이상함을 느꼈다.

레드 드래곤은 오크의 성채를 향해 날아오고 있지 않았다.

동쪽에서 서북쪽으로.

오크 성채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지나쳐서 날아가는 것이다.

“뭐지? 다른 오크 부족을 쫓기 위해서인가?”

“그럼 다행인데…….”

“봉인석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는 것이잖아. 근데 저쪽 방향에는 특별한 오크 부족도. 설마…….”

모험가 앤돌은 어떤 상상을 해 보고는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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