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레드 드래곤 랜도니
모라타에서 모든 이들이 케이베른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충격적인 소식이 전달되었다.
― 마판 : 큰일 났습니다. 랜도니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마판의 이야기는 느긋하게 전투를 구경하던 위드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였다.
“설마 레드 드래곤이 여기로요?”
― 마판 : 100%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륙의 북쪽으로 향하고 있고, 아마도 이곳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소식입니다.
투사의 불꽃에 있는 오크와 모험가들로부터 소식이 전달되었다.
많은 유저들이 모라타에 모여 있었지만, 대륙의 곳곳에서도 하늘을 날아가는 레드 드래곤을 발견했다.
― 마판 : 현재 레드 드래곤의 위치는 리튼의 중앙부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리아 해를 건너면 북부 대륙입니다.
케이베른과 전투를 치르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위드도 막타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다가 혼란에 빠졌다.
“대륙 북부까지 오크들을 잡으러 오는 건 아닐 것 같고. 도시라고 해 봐야 부술 곳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 체이스 : 드래곤의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리들이 다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리고 랜도니와 케이베른은 같이 자랐던 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그렇겠네.”
위드는 모험가 체이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케이베른이 전투를 치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형제나 다름없는 랜도니를 불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 날쌘 찬바람 : 현재 확인되는 레드 드래곤의 비행 속도라면 네리아 해를 건너서 여기까지 오는 데 짧으면 15분. 길면 20분 정도입니다.
― 아크힘 : 케이베른과 랜도니가 합세한다면 아마도 그건 절망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칼쿠스 : 드래곤이 한 마리인 것과 두 마리인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다른 드래곤들보다도 레드 드래곤은 훨씬 강합니다.
― 라미프터 : 랜도니가 오는데 어떻게 합니까?
― 크레볼타 : 바드레이 님! 명령을!
이 순간에도, 바드레이는 열정적으로 병력을 이끌고 케이베른과 싸우고 있었다.
메시지 창을 볼 여유조차 없는 데다, 이미 그의 행동이 뜻을 전달하고 있었다.
전투에 모든 것을 맡겼다.
랜도니가 오건, 오지 않건 케이베른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다면…….”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를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낭비하기 전에 결단을 빠르게 내려야 했고, 헤르메스 길드와 타격대. 모라타에 있는 모든 유저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사와 기사들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궁수, 마법사, 바드, 사제, 샤먼, 건축가 등.
케이베른과의 전투에 수많은 직업을 가진 유저들이 모여 있다.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이끄느냐가 현재 가장 중요했다.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해.”
위드는 아르펜 제국의 황제로서 유저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모라타만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에서 아르펜 제국 영토에 있는 모든 유저들이 들을 수 있었다.
― 위드 : 먼저 헤르메스 길드에서 지금까지 큰 희생을 치르며 싸워 준 것에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단 돈 안 드는 말로서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 위드 : 아마 모두 알게 되었겠지만 레드 드래곤 랜도니가 모라타로 올 것 같습니다. 랜도니까지 이곳에 오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해질지 모릅니다.
전투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솔직히 말했다.
드래곤이 한 마리인 것과 두 마리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레드 드래곤은 흑마법은 쓰지 못하지만, 순수하게 강함으로는 드래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강력했다.
블랙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이 동시에 마법을 쓰고, 지상을 휘젓고 다니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 위드 : 그렇기에 헤르메스 길드에서 사정을 이해한다면 지금부터 모라타의 모든 유저들이 케이베른 사냥에 합류하겠습니다.
위드는 케이베른 사냥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모라타는 이미 반쯤 폐허가 된 상태이고, 다시 헤르메스 길드를 전투에 끌어오기도 어려우리라.
헤르메스 길드 역시 물러설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최초로 드래곤 사냥에 성공하기 직전인데, 랜도니가 온다고 해서 전투를 중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 위드 : 우리의 목표는 랜도니가 도착하기 전에 케이베른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레드 드래곤까지 잡아내는 겁니다.
위드의 제안에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급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 헤로이드 : 여기서 물러나는 건 최악입니다. 위드의 의견도 합리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 크레볼타 : 위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케이베른은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아슬아슬하긴 할 겁니다. 레드 드래곤이 오면 어렵습니다. 전멸도 각오해야 돼요.
― 하일러 : 여기까지 우리가 다 만들어 놨는데, 다른 유저들과 같이 싸우자고요? 드래곤을 나눠 주잔 말입니까?
― 가우슈 : 그러면 대안은요? 싸우거나 철수하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죠.
― 칼쿠스 : 우리끼리 사냥을 성공시키는 건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헤로이드 : 그렇게 해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빠듯한데…….
― 보에몽 :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야 될 겁니다. 레드 드래곤은 지금도 날아오고 있어요.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군단장들끼리도 뜻이 하나로 모이지 못했고, 길드원들도 주저했다.
“랜도니까지 오면 망한 거 아냐?”
“그러게. 케이베른을 잡더라도 랜도니가 오면 다 죽은 목숨일 텐데.”
희생의 화로를 쓰지 않은 길드원들은 전투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이들이 꽤 되었다.
반면에 케이베른과 랜도니를 순서대로 잡는다면 가능하다고도 보는 이들도 많았다.
비록 헤르메스 길드에서 혼자서 다 해 먹긴 무리겠지만.
― 아크힘 : 바드레이 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순간에 헤르메스 길드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건 바드레이밖에 없다.
위드에게 패배하며 영향력이 감소했지만 무신 바드레이의 그림자는 길드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 바드레이 : 싸운다. 드래곤을 잡는다.
바드레이는 헤르메스 길드를 승리로 이끌어 왔다. 그에게 있어 패배하지 않는 이상 도망친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
헤르메스 길드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사라졌다.
군단장들이나 길드원들이나 바드레이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 아크힘 :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위드 님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 * *
위드는 잠시 전투를 지켜봤다.
바드레이나 헤르메스 길드원이나 더욱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그동안은 그래도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
“많이 강해졌네.”
명예의 전당에 올라온 바드레이의 전투 영상은 비슷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등에 달라붙어 싸우는 모습에는 격정적인 힘이 느껴질 정도였다.
케이베른의 날개에 얻어맞고, 마법이 작렬하여 갑옷이 절반쯤 깨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빙하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드래곤의 등이 얼어붙어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헤르메스 길드에게 희망이 되고 있겠는가.
격렬한 드래곤의 움직임에도 매달려 있는 광경이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저들만 한 전투 집단이 없지. 나도 슬슬 시작해야 되겠군.”
위드는 황소 광장으로 와서 드워프들에게 희생의 화로를 사용하도록 했다.
“크으. 기다려 왔던 순간이군.”
“동족들이여. 기뻐하라. 케이베른을 사냥할 시간이 왔다.”
드워프들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한 잔의 흑맥주를 마시고, 희생의 화로를 발동시켰다.
팔다리가 짧은 드워프들의 몸이 타오르고 더욱 단단한 근육질로 변하면서 준비해 둔 무기들을 들었다.
위드도 희생의 화로 앞에 섰다.
“나도 이제 희생의 화로를…….”
그 순간 번뜩이는 꼼수!
‘근데 꼭 희생의 화로를 최대로 써야만 하는 건가?’
생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처럼 인생을 돌이켜 봤다.
서러움을 당하며 살던 어린 시절, 돈벌레가 되어서 살았던 지난 과거들.
숱한 일들이 있었지만 항상 남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왔다.
‘근데 내가 뒤통수를 친다면? 조금만. 20개나 30개의 레벨만 태운다면 말이야.’
얼마 전까지 케이베른을 막기 위해 희생의 화로를 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레벨이 크게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피해.
헤르메스 길드까지 이번 일에 끌어들였고, 드워프 종족의 운명이 걸렸으며, 베르사 대륙의 미래도 좌우가 된다.
‘그렇기에 내가 희생의 화로를 덜 쓰더라도 아무도 모르지.’
케이베른과 싸우면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모두가 의심을 하리라. 하지만 수만 명이 뒤엉켜서 싸우는데 조금 강하고 약한 것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
드래곤의 공격에 휘말리면 어떻게든 위험하겠지만 잘 피하면 문제는 없다.
‘방송 화면들이 나를 주목할 거야. 쉽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힘들 테지.’
위드는 희생의 화로를 완전히 안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드워프들이 남겨 놓은 전설의 장비들을 착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위드가 사악한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케이베른과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 페일 : 원거리 부대부터 지원합니다. 그리고 타격대는 공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페일이 이끄는 타격대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타격대 소속의 마법사, 궁수들의 공격이 잇따랐고, 하늘로 유저들이 날아올랐다.
전사들은 본래 드래곤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동안에 조인족들과 함께 했었다.
드래곤과의 전투에서는 조인족들이 공포에 짓눌려서 가까이 접근도 할 수 없었으니 비행 마법으로 날아왔다.
“낙하!”
“작전을 개시한다.”
타격대의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보다 약하지만, 드래곤 사냥을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그들은 마법 저항력을 높이는 장비들만 착용했고, 무기와 스킬은 단순화시켰다.
일격필살!
모든 생명력과 체력을 동원하여 무기를 휘둘렀다.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도 강력했지만, 타격대까지 참여하면서 열기가 더해졌다.
바바리안 크나툴, 요정 기사 말린, 하프엘프 비슈르.
각 종족의 영웅인 그들도 출격했다.
“모두가 힘을 내라! 우리의 육체는 한계를 모른다!”
크나툴이 고함을 지르며 전사들의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었다.
말린은 마법을 써서 동료들의 능력을 강화해 주고, 비슈르는 두 손에 단검을 들고 드래곤을 향해 뛰어들었다.
타격대의 공격도 헤르메스 길드처럼 마법 공격에 휩쓸려 나가더라도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 검치 : 모두 검을 들어라! 더 늦어지면 저놈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 500명도 활동을 시작했다.
덩치가 우락부락한 이들이 검을 뽑아 들고 드래곤을 공략하기 위해서 모였다.
헤르메스 길드가 싸우는 것을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한 것도 그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술이 필요했었다.
― 검둘치 : 우리가 간다! 늦으면 국물도 없다.
― 검삼치 : 크하하하핫! 가자가자가자!
― 검사치 : 드디어 드래곤과 한판 제대로 뜨는 거 아닙니까!
― 검오치 : 축제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곧바로 희생의 화로를 발동시켰다.
레벨이 좀 떨어지더라도 드래곤과 화끈하게 싸울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일.
검치와 수련생들을 잘 따르는 유저들도 일부가 희생의 화로를 썼다.
“아놔. 이거 나중에 후회할 거 같은데…….”
“그래도 해 보자. 잘하면 드래곤을 잡을 수 있잖아.”
“어…… 그렇긴 해.”
대략 1,300명 정도의 유저들이 희생의 화로를 사용하는 데 동참했다.
레벨을 40, 50개씩 낮추기 때문에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그들이 먼저 드래곤에게 달라붙으면서 전장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토막 내!”
“마법을 돌파하고 멈추지…… 꽤액!”
“몸으로 뚫어 버려!”
헤르메스 길드 역시 타격대에 밀릴 수는 없었고, 케이베른과 싸우기 위해 유저들이 모라타 전역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 인간들. 최후의 저항이 가소롭구나.
케이베른은 폐허 속에 우뚝 서서 수만 명의 공격을 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도 흑마법에 필요한 제물들을 준비했다.
― 너희들은 영원히 날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악의 분열!
흑마법에서도 가장 악랄한 마법 중의 한 가지.
엄청난 제물과 스스로의 육체를 대가로 희생해야만 시전 할 수 있는 마법이 발동되었다.
케이베른의 거대한 몸이 흩어지더니 셋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폭풍처럼 땅과 하늘에서 시커먼 기운들이 몰려들어서 드래곤들에게 빨려 들어갔다.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튕겨져 나가고, 억지로 붙들려 있던 유저들은 생명력을 강제로 흡수당했다.
“공격이 통하지 않아. 물러나!”
“흑마법에 제물이 되지 마라!”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일정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로비듄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모라타 방어군의 채팅 창을 울렸다.
― 그로비듄: 악의 분열. 이런 미친. 저 마법에 대해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 바드레이: 어떤 마법입니까?
― 그로비듄: 간단히 말하자면 분신을 만드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 쟌: 분검술을 마법으로 구현한 것입니까?
― 그로비듄: 분검술과 비슷하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저건 그냥 자신을 셋으로 만드는 겁니다.
― 아크힘: 셋으로 만들다니요?
― 그로비듄: 저 마법이 끝날 때까지 케이베른은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하나가 공격력, 방어력, 생명력, 마법 능력. 모든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방어군의 채팅 창에 침묵이 흘렀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데, 곧 마판이 확인을 해 주었다.
― 마판: 대도서관에서 빼 온 자료들을 훑어봤습니다. 흑마법들은 미리 챙겨 놓고 있었는데요. 악의 분열은 최소 2에서 12개까지의 분신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얼어붙었고, 희생의 화로 앞에 서 있던 위드도 마찬가지였다.
― 바드레이: 약점은요? 분신들의 약점이 뭡니까?
― 그로비듄: 그런 약점은 없습니다. 저 셋을 다 죽여야 합니다.
칼쿠스가 드래곤들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검은 기운의 폭풍을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 칼쿠스: 약점이 아예 없다고요?
― 그로비듄: 강력한 흑마법의 특성상 부작용은 있죠. 마법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 정신 이상이 생기거나, 최대 생명력과 마나가 꽤 감소한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전투와는 관련이 없을 것입니다.
위드는 설명을 들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레드 드래곤이 날아오는 것만 하더라도 설상가상의 사태였는데, 케이베른이 세 마리가 되었다.
“이거 완전 개사기 아닌가?”
모라타를 포기한 채로 철수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 봐야 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 진정으로 강합니다. 헤르메스 길드!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을 정도예요.
― 바드레이가 이끄는 전투단의 위력이 여전하군요. 드래곤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훌륭하게 잘 싸웁니다.
― 레드 드래곤이 도착하기 전에 승부를 걸어 볼 수도 있겠어요. 오주완 씨, 지난번 가르나프 평원의 전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 준비가 잘된 것과 되지 않은 것의 차이겠죠. 전사들의 장비가 특히 눈에 띄는데요. 공격력과 마법 저항력. 두 가지에 몰빵을 한 채로 싸우고 있습니다.
― 물리 방어력이 떨어져서 안 좋은 거 아닌가요?
― 포기할 부분은 포기했습니다. 대신에 방패병들이 맞아 주는 역할을 맡으며 효율이 극대화가 되어 있죠.
KMC미디어의 진행자들은 케이베른과의 전투 장면을 중계하며 열을 올렸다.
모라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유저들과 드래곤의 전투!
볼거리도 많았고, 흥분해서 떠들 만한 소재들도 널려 있었다.
지상의 유저들을 통해 레드 드래곤이 날아오는 모습도 방송국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잡히고 있었다.
― 레드 드래곤이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모습입니다. 예상 목적지는 모라타로 알려져 있습니다.
― 케이베른의 생명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잘 싸우면 케이베른이라도 잡아낼 수 있어요.
― 시청자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전투의 승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베르사 대륙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헤르메스 길드가 잘 싸워 줘서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휩쓸 무렵!
방송 화면에 케이베른이 마법을 사용하고, 암흑의 기운이 하늘과 땅에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 저 마법은 무엇이죠?
― 흑마법의 일종으로 보이는데요. 뭔가 안 좋아 보여요.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취재원의 말에 따르면…… 드래곤이 많아지는 마법이라고 합니다.
― 많아진다고요?
― 네. 저 마법이 끝날 때까지 케이베른은 세 마리랍니다.
― 그런 어이없는…….
― 마법? 물리적인 능력. 설마 그런 것까지 동일하진 않겠지요.
― 모두 같다고…… 말 그대로 드래곤이 셋으로 늘어난 겁니다.
― 세 마리의 드래곤이 각자 마법을 쓰고 전투를 벌인다면…… 그런 터무니없는.
― 마법의 유효기간이 짧을 수 있겠군요.
― 전투가 끝날 때까지 유지가 된답니다.
― …….
케이베른이 세 마리가 되면서 진행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한 마리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제는 그 어떤 상황도 짐작할 수 없었다.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 게시판도 폭주했다.
― 미쳤다. 세상에…….
― 베르사 대륙 망했네요.
― 드래곤. 그건 그냥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였음.
― 헤르메스 길드가 불러온 최악의 사태입니다. 무조건 드래곤의 알을 깨뜨린 헤르메스 길드 탓입니다.
―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어쨌든 드래곤을 못 막으면 모라타는 끝장임.
― 다 끝났어요. 대도시 부동산값 폭락이에요!
― 로열 로드가 망하는 거 아님?
― 휴양지. 벨레노스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긴 그래도 좀 안전하겠죠?
― 몬스터가 증식하면 어디든 안전하겠어요.
―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항구 마을로 갑시다.
― 답은 섬이에요, 섬. 외딴섬에 집을 짓고 혼자 사는 거죠.
절망이 휩쓸고 있는 분위기!
경매 사이트마다 아이템 가격이 폭락하고, 주택의 매매 가격도 덩달아 급락했다.
* * *
흑마법의 기운이 걷히고, 케이베른 세 마리가 연달아 드래곤 피어를 터트렸다.
― 인간들아, 너희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끝났다.
― 살아갈 자격이 없는 자들이여. 멸망하라.
― 소멸이 허락되었다.
드래곤이 저마다 돌아다니면서 대규모 마법으로 도시와 유저들을 동시에 공격했다.
화염과 흑마법이 시전 될 때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물러나기 바빴다.
“이런…….”
바드레이조차 이를 악물며 낭패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발을 깊게 담근 이상 철수는 있을 수 없었다.
― 헤르메스 길드 전원 공격! 물러서지 마라.
헤르메스 길드가 모든 것을 걸고 시간과의 싸움에 임했다.
모라타에 있는 30만여 명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전투에 가담했다.
― 우리도 헤르메스 길드를 돕습니다.
페일이 이끄는 타격대도 적극 참여하며 세 마리의 블랙 드래곤과 전투를 펼쳤다.
* * *
위드는 세 마리의 블랙 드래곤이 나타난 걸 보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흠, 역시 만만치 않군. 그래. 뭐든 날로 먹을 수는 없는 법이지.”
흑마법이 발동되었을 때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금세 평정심을 찾았다.
― 마판: 악의 분열. 기록을 찾아보니 이건 흑마법에서도 궁극 마법입니다. 확실한 건 저걸 쓰면서 케이베른도 흑마법에 필요한 제물을 전부 바쳤고, 마나도 많이 고갈되었을 겁니다.
― 그로비듄: 마나는 각자 16% 정도씩 남았습니다.
“드래곤이 이 정도 저항은 해 줘야지. 그냥 죽었다면 섭섭할 뻔했어.”
위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결국 50개의 레벨을 전부 희생의 화로에 털어 넣고야 말았다.
539의 레벨에서 일시적이나마 1039개의 레벨을 달성!
< 희생의 화로가 당신의 잠재력을 태웠습니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나면 50개의 레벨이 줄어들게 됩니다. >
이젠 이판사판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와 타격대가 총력전을 펼치자 아르펜 제국의 황제로서 빠질 수 없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 차라리 이제야 좀 재밌어지는 것 같아. 이 정도는 해 줘야 드래곤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닌가.”
위드는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세 마리의 블랙 드래곤이 어마어마한 위용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미 주변 지역은 초토화되어 알아볼 수도 없는 상태였고, 드래곤들은 헤르메스 길드원들과 타격대 유저들을 몰아붙였다.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 내가 이제부터 전투를 지휘한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관심을 끌고, 타격대를 통솔하는 데는 절묘하게 터트린 한 번의 사자후로 충분했다.
주요 지휘관들이 자리 잡은 대화 채널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일반 길드원들과 타격대까지 한꺼번에 휘어잡아야 한다.
“위드다!”
“전쟁의 신 위드가 나타났다.”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위드에 대한 기대감!
위드는 노래라도 한 곡 뽑아서 사기를 더 높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고 연달아 사자후를 터트렸다.
― 마나를 많이 소모해서 허약해진 블랙 드래곤이 세 마리다. 타격대가 오른쪽을, 헤르메스 길드가 중앙을 맡는다.
간단한 교통정리부터 했다.
타격대와 헤르메스 길드가 뒤섞여서 서로를 신경 쓰다가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여기에 대중들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도록 한 마디를 덧붙였다.
― 타격대여, 승리를! 지금까지 휴식을 취했으니 죽기 직전의 드래곤을 헤르메스 길드보다 먼저 사냥해야 한다.
“가자아아아아아!”
“위드 님이 이끌어 주신다면 얼마든지!”
“우와아아악! 오늘 진짜 죽어 보자!”
지옥 사냥으로 단련된 타격대의 유저들.
위드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용기백배하며 드래곤에게 덤벼들었다.
중앙 대륙에서 눈치만 보며 살아왔던 자신들에게 헤르메스 길드를 전투 업적으로 이길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물론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눈빛도 갑자기 확 바뀌었다.
“우리들보다 먼저 드래곤을 잡는다고?”
“위드가 이끈다고 해도 그렇지. 지금까지 쭉 우리가 싸워 왔는데 어디서 저런 것들이…….”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헤르메스 길드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었다.
유치한 자극이었지만, 가장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
“전원 공격. 중앙의 드래곤을 바로 잡는다.”
“총공격 개시.”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일제 공격을 개시.
그들은 모아 놓은 마나와 체력을 쏟아 내며 화끈하게 스킬을 발동시켰다.
사냥을 성공할지 말지에 대해 걱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다.
“드래곤도 지쳤다.”
“마법 공격은 머리에 집중!”
케이베른의 체력도 줄어들었고, 마나도 고갈된 상태였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거침없이 날개를 타고 오르고, 꼬리와 등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후…….”
바드레이는 위드의 지휘에 헤르메스 길드가 따르는 모습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이내 전투에 뛰어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승리였고, 그보다 중요한 건 무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반응이 좋아도 너무 좋네.”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가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을 보며 꽤나 놀랐다.
“역시 똑똑하고 강한 애들이 말도 잘 들어.”
자신이었다면 온갖 꼼수를 부리면서 눈치를 봤을 텐데, 드래곤을 이기겠다고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
“잘못된 인연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그래도 본성까지 나쁜 애들은 아닌 것 같아.”
위드는 가장 왼쪽의 드래곤을 드워프들과 함께 맡기로 했다.
“자, 케이베른을 해치울 시간입니다. 하지만 몸조심하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집에서 기다릴 처자식들을 위해서도요.”
“뭐라고? 험상궂은 와이프랑 속만 썩이는 아이들?”
“살아서 맥주를 실컷 마시기 위해서도요.”
“알겠네, 조심하지.”
“젠장, 빌어먹을. 염병!”
헤겔은 마구 욕설을 내뱉으며 뛰었다.
콰광! 쾅!
화염 탄이 날아와서 그가 달리는 도로를 헤집고 있었다.
“도대체 위드 형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서 싸우겠단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그러나 이미 모라타의 모든 유저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흑사자 길드에도 발동이 걸렸다.
― 칼리스: 모든 흑사자 길드원은 위드 님과 함께 가장 왼쪽 드래곤을 공격한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길드마스터의 명령.
흑사자 길드가 전투를 위해 건물로 나오자마자 블랙 드래곤 세 마리가 사이좋게 발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몸으로 날뛰는 드래곤들에게 헤르메스 길드와 타격대, 드워프들이 모조리 덤벼들고 있었다.
― 로암: 로암 길드도 총공격. 절대 지지마라.
― 샤우드: 우리도 명예를 걸고 싸운다.
― 군트: 드래곤은 우리의 손으로 죽인다. 전사들이여. 검을 들라!
― 미헬: 오늘 드래곤을 잡고 우리가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대영주들이 스스로 무기를 들고 드래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전투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태울 것만 같은 다급함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헤르메스 길드에 다른 명문 길드들은 수년 간 자존심이 상해 왔다.
참고, 모욕당하고, 자책하며 살아왔다.
위드가 모라타에 있는 그들의 경쟁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가 드래곤을 잡으면 최고의 전투 공적을 세울 겁니다.”
― 칼리스: 헤르메스 길드만 신경 쓰시다니, 아르펜 제국에 기여하고 있는 저희들의 공로를 잊으신 겁니까?
“저야 알지만 유저들은 지금도 헤르메스 길드를 우러러 보고 있죠.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세상은 언제나 경쟁 아니겠습니까?”
― 로암: 큽. 저희도 출전할 겁니다.
명문 길드들.
그들의 숙적인 헤르메스 길드가 날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는 게 이젠 불가능해졌다.
“도대체 왜?”
헤겔 같은 말단 길드원은 이유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야 했다.
“먼저 갈게.”
“나이드!”
그의 눈에 담벼락과 잔해들을 밟고 그림처럼 뛰어가는 도둑 나이드가 보였다.
“도둑 주제에 무슨 싸움에 끼어들겠다고…….”
막 비웃을 무렵, 나이드의 손에서 단검 세 개가 날아가 드래곤의 몸에 박혔다.
나이드는 단검에 연결된 얇은 줄을 타고 드래곤의 몸을 향해 달려갔다.
“젠장. 나 정도면 엄청 강한 편에 드는데. 여기에는 괴물들밖에 없어.”
헤겔은 검을 들고 계속 달려갔다.
모라타의 거리는 부서지고 깊게 패였으며, 건물의 잔해들이 흐트러져 있다.
“비켜요, 비켜!”
부상당한 유저들은 기어서라도 움직이며 유저들이 드래곤과 싸우러 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앞으로 달려갈수록 고개를 꺾어야 될 정도로 하늘 높이 보이는 시커먼 드래곤의 모습.
“이건 너무 크잖아.”
헤겔은 기가 질리고 말았다.
드래곤과 가까운 주변에는 각 길드의 유저들이 모여들고 있었기에 자신이 활약할 공간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에잇!”
헤겔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달렸다.
시커먼 드래곤의 다리가 하필이면 그를 밟기 위해 내려오고 있었다.
― 나이드: 위험해. 밧줄을 잡아!
“밧줄이 어디…….”
휘릭!
밧줄이 그의 허리에 휘감기더니 그를 공중으로 띄웠다.
“우억. 나 고소공포…….”
헤겔은 방금 죽을 뻔한 것조차 모르고 불평을 했다. 그리고 어둡게 일렁이는 눈동자와 정면에서 마주치고 말았다.
케이베른!
지상을 공격하던 블랙 드래곤의 얼굴 앞으로 헤겔의 몸이 띄워졌던 것이다.
“이게 무슨…… 어어어어!”
사뿐.
헤겔은 아무 생각도 없이 블랙 드래곤의 콧잔등에 내려앉았다.
“나이드, 이 미친 새끼야! 왜 하필 이곳이야아아아아아!”
* * *
“쟤는 왜 저러고 있어.”
위드의 눈에 드래곤의 콧잔등에 앉아서 검을 휘두르는 헤겔이 비쳤다.
검술이나 장비가 모자라서 드래곤의 두꺼운 피부를 베기에는 솔직히 무리였다.
“타란의 검!”
그럼에도 허둥대면서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그 장면은 유저들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었다.
“겁쟁이 헤겔도 싸우는데.”
“저 녀석. 저길 올라갈 줄은……. 천재야, 미친놈이야?”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도 올라갈 테니까!”
유저들에게 남아 있던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흑사자 길드를 비롯한 명문 길드들이 지상을 장악하고, 드워프들이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인간들이 도와주는군. 어서 가자고, 아인핸드.”
“난 바위 술 저장고의 브록핸드다, 드래곤!”
“레토냐의 빛나는 도끼. 파바핸드도 왔다!”
― 드워프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네놈들까지!
케이베른이 분노했지만, 드워프들은 짧은 다리로 두려움을 꾹 참으며 달려왔다.
― 힘을 내라! 형제들이여!
< 드워프 파바핸드가 땅울림의 외침을 시전 하였습니다.
맷집이 강화됩니다.
이동 속도가 20% 증가합니다.
모든 속성의 저항력이 증가합니다.
다른 드워프들이 근처에 있을 경우 방어력 증가 효과가 배가됩니다. >
드워프 한 명, 한 명이 영웅들!
그들이 케이베른을 향해 창을 찌르고 도끼질을 시작했다.
일부는 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걷어차이거나, 꼬리에 차여서 떨어지기도 했다.
“부상당한 드워프들에게 회복과 축복 마법을.”
― 이리엔: 알겠어요!
위드는 사제 부대를 이끄는 이리엔에게 부탁했다. 그 직후부터 드워프마다 치료와 축복의 빛이 번뜩이면서 사제들의 지원이 잇따랐다.
“예상대로야.”
세 마리의 블랙 드래곤이 모두 맹렬한 전투에 휩싸인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경쟁을 피곤하게 여기지만, 또 그것만큼 미치도록 만드는 게 없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드래곤 사냥을 헤르메스 길드가 다 해 먹도록 놔둘 순 없지.’
위드도 직접 전투에 나서야 할 때였다.
드워프들이나 명문 길드의 세력들에게만 맡겨 드래곤을 제압하기에는 부족했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이 힘이 되어라.”
위드는 조각 파괴술을 이용해 모든 예술 스탯을 힘으로 바꾸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이번 전투를 위해서 무려 걸작 하나를 파괴!
― 내가 위드핸드다!
케이베른의 분신이 위드를 보며 즉각 반응했다.
― 네놈! 거기에 숨어 있었구나!
이 상황에 와서도 레어를 털린 원한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 화염 억류!
대지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으아악!”
“불이다. 피해야 돼!”
로암 길드 소속의 유저들이 마구 도망 다녔다.
위드는 불바다를 밟고 다니면서 땅에 떨어져 있는 창을 손에 쥐었다.
로암 길드 유저 중의 누군가가 유품으로 남긴 꽤나 쓸 만한 창.
“창 던지기!”
초급 9레벨의 창 던지기.
“끄악!”
헤겔이 급히 몸을 숙이면서 피했다.
케이베른의 머리를 목표로 날아갔지만, 이마에 맞고 튕겨 나고 말았다.
― 쓸모없는 드워프 따위가!
커다란 타격은 못 입혔어도 드래곤의 분노만큼은 제대로 불러일으켰다.
― 반드시 널 잡아 죽이겠다.
케이베른이 드워프들과 지상의 유저들을 무시한 채 위드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헤겔도 그사이에 나이드의 밧줄을 잡고 콧잔등에서 뛰어내려 구출되었다.
― 고통의 결속!
< 저주 마법에 당했습니다.
투지가 고통을 견뎌 냅니다.
생명력이 매초마다 5,400씩 감소합니다.
날벼락의 왕관이 속박을 막아 냅니다. >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도록 속박 마법부터 사용되었다.
어두운 기운이 발목과 다리를 붙잡았지만 날벼락의 왕관이 흘려보냈다.
― 아케인 폭격!
케이베른의 몸에서 수십 개의 광선들이 쏟아졌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위력이 굉장한 마법!
“네발 뛰기.”
위드는 건물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콰과과광!
도로와 건물들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지는 가운데, 차원문을 통과하며 재빠르게 피했다.
어떤 공격들은 제대로 막지 못했지만 날벼락의 왕관에서 발동된 방어막으로 튕겨 낼 수 있었다.
“고작 이 정도냐? 드래곤치고는 너무 형편없는데. 사실은 드래곤 중에 제일 약한 거 아니야?”
틈틈이 입을 털어 주는 것은 필수!
― 크루와악!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케이베른이 땅을 울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드래곤은 효율적인 전투를 하지 않아.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 거슬리는 존재를 참지 못한다.’
혼자서 위험하게 유인하던 아까와는 상황이 달랐다.
드워프들이나 지상의 유저들에게 공격을 당하면서도 위드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
“덤벼라, 까만 똥개야!”
― 지옥 불!
화염 계열의 궁극 마법.
대지가 갈라지면서 거친 불길이 솟아올랐다.
얼마나 증오하는지 막대한 마나를 써야 하는 궁극 마법을 터트리고 만 것이다.
‘나쁘지 않지.’
위드는 높은 마법 저항력에 신성한 불과 불꽃의 성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케이베른이 자주 쓰는 화염 계열의 마법이 가장 편안했다. 생명력도 별로 감소하지 않았다.
‘그래도 드래곤이라 멍청하진 않다. 화염 마법 패턴을 반복하진 않아. 어차피 느긋하게 간을 볼 시간도 없다.’
위드는 차원문을 통과하며 등 뒤에서 도끼를 꺼내 손에 쥐었다.
< 용을 죽이는 도끼를 무장하셨습니다.
스탯이 무작위로 10 감소합니다.
생명력과 마나의 최대치가 3배가 됩니다.
피해량의 5%가 생명력으로 회복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스탯이 150 증가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도끼가 입히는 피해가 80% 증가합니다.
공격 반경이 증가합니다.
치명적인 공격이 쉽게 발동됩니다.
큰 상처를 입히면 회복 속도를 늦추고, 20초 동안 지속적인 피해를 줍니다.
방어력 관통!
연속으로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방어력을 15씩 낮춥니다.
큰 공격은 때때로 영구적인 방어력 하락이나 방어구의 파괴로 이어지게 됩니다.
몬스터의 투지를 낮춥니다.
암벽 방패 소환 스킬 사용 가능.
도끼 스킬의 위력이 2배로 적용됩니다.
전투 중에 스킬을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인근의 드워프 전사들의 공격력이 강해집니다.
힘 강화, 체력 강화 스킬이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
길게 흘러나오는 메시지 창!
조각 파괴술로 모든 예술 스탯을 힘으로 바꿔 놓았으니 공격력만큼은 사상 최강이었다.
여기에 용을 죽이는 도끼의 추가적인 효과도 부여됐다.
< 드래곤과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공격력이 강화됩니다.
마법 저항력이 49% 상승합니다.
피해를 입으면 생명력이 150% 빨리 회복됩니다.
저주, 신체 이상에 면역입니다.
관통, 파괴, 분쇄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대지에 서 있으면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
위드는 이 순간, 드워프들이 희생을 치르며 만들어 낸 가장 멋진 무기를 손에 쥐었다.
“박살을 내 주지.”
쿵쿵쿵!
케이베른도 달려오며 주둥이를 내민다.
― 단숨에 삼켜 주마!
위드는 가까이 접근한 케이베른을 보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후려치기!”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도끼술.
< 끔찍한 충격!
지형을 바꿔 놓을 정도로 가공할 힘이 적에게 가해졌습니다.
원한의 일격!
드래곤을 상대로 3배의 공격력이 적용됩니다. >
드래곤은 웬만한 공격은 무시하고 상대를 걷어차거나 물어뜯을 수 있었다.
위드의 도끼질은 그대로 드래곤의 머리를 강타해서 밀려나게 만들었다.
―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케이베른의 분노에 찬 절규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위드는 환하게 웃었다.
“바로 이 손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