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58권 : 3. 달라진 인생 (414/520)

3. 달라진 인생

인공지능은 실시간으로 이현의 몸과 정신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 정신력 극상. 상위 0.0001% 수준.

신체 개조도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며 서서히 끝나 갔다.

― 모든 시술에 대한 반응 긍정적. 잠재력 개방됨.

운동선수들을 가볍게 초월할 정도의 생체 능력이 깃들었다.

심폐기능이 강화되어 마라톤 정도로는 지치지도 않을 테고, 근육의 부드러움은 대부분의 부상도 막아 주리라.

― 몸 상태 지극히 양호. 현재까지 우려했던 부작용 발견되지 않음.

“되었군.”

유병준은 수술실을 떠났다.

천문학적인 재산과 권력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나간 것.

“수십 년간의 목표를 달성했는데. 왜 이렇게 홀가분하지 못하고 찝찝한 거지?”

인공지능은 유병준이 가고 나서 이현의 모든 능력치들을 평가했다.

― 신체적, 정신적인 부분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치.

유병준의 천재적인 두뇌만큼은 따라갈 수 없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새로운 주인이 압도하고 있었다.

* * *

인공지능의 시험이 끝나며 이현의 꿈은 극단적인 괴로움에서 편한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이 힘이 되어라.”

로열 로드에서 위드의 모습으로 활동하며, 던전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파한다.

데스 나이트 기사단과 스켈레톤들이 끝없이 뒤를 따랐다.

몬스터들.

죽어 가는 몬스터들의 몸에서 황금과 보석들, 1등급 대장장이 재료들이 듬뿍 떨어졌다.

위드는 그런 전리품들을 눈으로 힐끔 쳐다보더니 계속 전진했다.

“어서 가자!”

사냥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가 마구 쌓였지만 배낭은 가벼웠다.

모든 전리품들을 하나도 줍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드는 사냥을 하며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으윽, 안 돼. 주울 수 없어. 저건 짐이 될 거야.”

스켈레톤들의 뒤에는 유저들이 따라왔다.

한눈에 봐도 부자의 티가 물씬 나는 유저들.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보였고 마판도 있었다.

“이거 대왕 다이아몬드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화염 폭풍 스크롤이네. 세 장이나 있어.”

“마법검이다!”

위드는 사냥을 하면서도 유저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었다.

끝없이 사냥을 할 때마다 전리품은 하나도 줍지 못하고 남겨 놔야 했다.

반짝!

위드의 발밑에서 빛나는 만 원짜리.

로열 로드에서 빛까지 내는 만 원짜리 지폐가 나타났지만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을 새도 없었다.

언제라도 손을 내밀면 주울 수 있는 발밑에 있는 만 원이야말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법!

위드의 손이 반사적으로 아래로 향할 무렵이었다.

“끄으응.”

도저히 만 원짜리를 주울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안타깝고, 허전하고,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 * *

이현이 초인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눈을 떴을 때는 수술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여긴…… 어디지? 설마 납치?”

서둘러 옷부터 걷고 배를 확인해 봤다.

장기부터 안전한지를 확인!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이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용의자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악연이었던 사채업자들부터 헤르메스 길드, 집주인들까지!

‘어쩌면 방송국 놈들일지도…….’

의심 리스트를 떠올리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안녕하세요, 주인님. 저는 인공지능 베르사입니다.

새하얀 방의 중앙에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나타났다.

“환청인가. 헛것도 보이는데? 이 정도면 병원비가 꽤 나오겠는걸.”

― ……다시 소개 드리겠습니다. 저는 인공지능 베르사라고 합니다.

“인공지능?”

― 네. 제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초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강화된 주인님의 눈과 귀에 연동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이현이 모르는 유병준 박사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현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로열 로드의 개발 과정이나 유니콘의 탄생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다 듣고 나서 간단한 요약.

“그니까 사람들에게 삐져 가지고 만든 게 로열 로드네.”

― ……맞습니다.

“속이 좁은 거야.”

― 엄청 좁죠.

“유니콘 그룹은 돈이 많고.”

― 세계 자본의 7%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다 앞으로 내 거라고.”

― 박사님의 뜻에 의해 모든 자산을 물려받으셨습니다.

이현은 반 지하 월세 집에서 살 때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부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고 나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가 애매했다.

“이게 진짜 사실이란 말이지. 평생 건물주가 되고 싶었는데.”

― 전 세계에 40층 이상의 대형 빌딩만 5만 채를 넘게 보유하고 계십니다.

“부동산도…….”

― 대한민국의 23배 면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금은…….”

― 소유한 은행이 56개입니다.

“최신형 휴대폰을 갖고 싶긴 했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거든.”

― 유니콘 그룹의 계열사로 전자와 화학, 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 전 세계 휴대폰의 72%를 생산합니다.

“자동차는 안 만들지?”

―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5개 중의 3곳의 최대 주주입니다.

“음. 그렇다면 라면은…….”

― 거대 식품 기업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재배와 생산, 유통을 전부 장악했습니다.

이현은 인공지능의 말을 들으면서 재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것이 문어발식 확장인가.”

무자비한 문어 재벌이 지구를 뒤덮고 있었다.

과거 200원 비싼 소금을 사 놓고 후회했던 게 의미 없을 정도의 재산과 권력을 손에 쥐었다.

“소금도 혹시 생산해?”

― 소금은 식품 기업들의 고정 거래처가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1시간 내로 업체들의 흡수합병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뭐 그럴 것 까진 없고.”

이현은 세계 최고의 부자로서 기쁨보다는 의외의 허탈함이 앞섰다.

“이젠 돈을 아낄 필요가 없다니…… 양말을 꿰매지 않아도 돼.”

― …….

“라면을 끓여도 국물을 먹으려고 물을 많이 붓지 않아도 되고.”

― …….

“간단한 가구들은 폐지를 주워서 만들기도 했었지. 박스 서랍장이나 선반을 진짜 오래 썼는데.”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을 자금이 생겼다.

악착같이 살아온 과거가 추억으로만 남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인생이 사라지고 말았어.”

― 원한다면 유병준 박사님의 상속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잠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 이틀이 지났습니다.

“내가 사라져서 세상은 난리가 났겠군.”

― 서윤 양과 이혜연 양만 찾고 다녔습니다.

“……우선 집부터 가야겠어.”

* * *

이현이 집에 돌아왔지만, 서윤과 이혜연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처럼 극적이지 않았다.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왔어?”

이현이 연락도 없이 사라진 날, 그녀들은 경찰서에 신고하고 인터넷에도 실종을 알리려고 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이 이현의 목소리를 위조해서 전화를 했다.

잠깐 바람을 쐬러 바다를 보러 간다고 했던 것이다.

“좀 이상한 여행이었어. 오랫동안 푹 잔 거 같은 여행.”

이현은 침대에 누웠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지만 실상은 거대한 부자.

“으흐흐흐캬캬캬캬캇. 흐흐흑!”

어릴 때부터 돈 때문에 수없이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는데, 이제부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웃음이 나오다가도 눈물이 흘렀다.

“이제부턴 돈을 막 써도 되는 건가.”

이현의 생각에 사치를 해도 돈이 마를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10조, 20조를 가진 부자는 귀엽게 느껴질 정도의 거대 갑부!

“우선 오늘은 치킨부터 주문하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은 진리였다.

* * *

“왠지 우리 오빠가 아닌 것 같아.”

이혜연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에게 오빠는 평범한 가족이 아니었다.

엄마이고 동시에 아빠였으며,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녀의 어릴 적,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 이현의 등에 업혀 놀았던 것이었다.

어린아이였지만 여동생에게는 한없이 든든했던 등이었다.

“오빠가…… 저녁에 치킨을 시켰어.”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한 것부터가 의외의 일.

이혜연과 서윤이 같이 먹으니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부족하니 한 마리 더 시키자.”

“……?”

이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더 먹고 싶다고 해서 사치를 하면 안 된다느니, 부족한 듯이 먹어야 몸에 좋다느니 일장 연설을 듣고 싶지 않았다.

‘잔소리만 빼면 완벽한 오빠인데.’

그런데 정말 치킨을 한 마리 더 시켜 줬다.

이혜연은 닭다리를 뜯으면서도 뭔지 모를 불안감에 빠졌다.

‘뭐지, 나한테 왜 이러지? 이젠 다 컸으니 집을 나가서 독립하라는 걸까?’

어릴 때는 오빠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집안 형편에 부담되지 않도록 취직도 일찍 하려고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고 성실하게 독립을 준비했었다.

그렇지만 이현이 요즘에는 워낙 잘나가다 보니 상황이 바뀌었다.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야 돼. 집에서 먹고 자는 게 돈도 아끼고 얼마나 좋은 건데.’

이혜연은 닭다리를 뜯으면서도 긴장했다.

‘조심해야 되겠다. 당분간 오빠한테 찍소리도 내지 말고 살아야지.’

그다음 날에는 이현이 아침에 학교에 가려는 그녀를 따로 불렀다.

“왜, 왜? 내가 뭘 잘못했어?”

“카드 받아.”

이현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집에 올 때 장이라도 봐 올까?”

“그 옷 고등학교 다닐 때도 본 것 같은데. 입을 옷 별로 없지?”

“……아닌데. 입을 옷 많은데. 그냥 입고 싶어서 다시 입은 건데.”

“그러지마.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잖아.”

“……?”

이혜연은 낚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빠에게서 정상이라면 절대 나오지 않을 멘트였다.

“예쁜 옷도 사 입고 그래. 한국대 앞에 백화점 있지?”

“배, 백화점?”

“거기 가서 마음껏 사 입어.”

이현의 여유롭고 푸근한 미소를 이혜연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나 진짜 옷 안 필요한데. 근데 얼마까지 사도 돼? 3만 원? 5만 원?”

이혜연은 요즘에 백화점 세일 기간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말했다. 당연히 행사 상품이나 이월 상품 등을 구입해야 하리라.

“마음에 드는 옷 사 입어. 한도는 20만 원 정도…… 아니다.”

이현이 금액을 말하다가 망설였다.

이혜연은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뜻에서가 아니었다.

‘돈을 아무리 써도 늘어나는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지.’

이현의 자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억 단위로 불어나고 있었다.

세계 역사상 최대의 부자.

말을 하는 동안에도 백화점을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재산이 늘어났을 텐데, 여동생의 옷값 한도를 정하는 게 무의미했던 것이다.

사실 백화점이나, 신용카드 회사에도 유니콘의 자본은 들어가 있었다.

“한도는 100 정도 써.”

“설마, 진짜 100만 원?”

“부족하면 전화하고.”

이혜연은 오빠가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백화점에 갔다.

그녀도 예쁜 옷들을 입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사 입어 본 적이 없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야?’

의심을 하며 백화점 이벤트홀을 돌았다.

“예쁜 옷들이 정말 많구나.”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옷을 사 보는데, 할인이 듬뿍 된 것들로 20만 원을 채웠다.

애초에 100만 원이 한도라는 말은 믿지도 않았다.

‘이렇게 쫓겨나는 거 아닐까? 마지막으로 좋은 옷이라도 입혀서 내보내려고 했다면서.’

이혜연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돈 얼마 썼어?”

“20만 원. 나중에 일해서 갚을게.”

“일은 무슨…… 백화점 가서 그거밖에 안 썼어?”

“으응?”

“신발도 새로 사고, 코트도 사.”

“겨울도 다 지나갔는데?”

“그냥 다 사.”

“…….”

이혜연은 오빠와의 대화가 무척이나 어색했다.

이현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듯 말투가 달라졌다.

“동생아.”

“응.”

“돈이 이젠 남아돌거든. 그러니까 돈 쓰면서 망설이지 마.”

오빠의 입에서 절대로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이현은 당분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유니콘사의 자산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인공지능이 선명하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 정부 정복, 전쟁, 암살, 금융 위기 발생, 대통령이나 UN사무총장 당선. 지구상에 돈과 권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건 귀찮아서도 안 해.”

이현은 명예나 권력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보람찬 하루를 마친 것.

하지만 유니콘의 숨겨진 자산 내역들을 살펴볼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드래곤의 레어에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는 그보다도 훨씬 더했다.

몇 개 국가 단위의 부가 모여 있었다.

“이러니 있는 놈들만 돈을 벌지.”

― 아시다시피 세상의 법칙입니다.

인공지능은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었다.

눈과 귀를 통해 보고 듣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한다.

― 초고성능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대화는 언제든 가능하며 복잡한 연산이 필요할 경우에는 외부 자원을 이용하면 됩니다.

“어디에 내장되어 있다는 건데?”

― 몸에요.

“누구 몸에?”

― 주인님의 몸에…….

기생충처럼 달라붙은 인공지능의 본체!

이현은 며칠 동안 황당하기도 했지만 서서히 적응이 되어 갔다.

곰팡이가 두툼하게 피고 바퀴벌레들이 가득한 반 지하 방에도 적응을 했더니, 좋은 일을 받아들이기는 훨씬 쉬웠다.

“그래서 내 몸도 좀 바뀌었다고?”

― 최첨단 생체공학이 적용되었습니다. 시력, 근력, 지구력, 심폐기능, 정력, 세포 재생, 혈액순환, 골밀도…….

“정력?”

― 네. 마르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현의 입가에 맺히는 은근한 미소.

어떤 남자라도 싫어하지 않을 분야였다.

“근데 이런 거 불법 아닌가?”

― 불법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했어?”

― 유병준 박사님께서는 걸리지 않으면 범죄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

이현은 유병준 박사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고 나서 로열 로드를 즐기며 남은 인생을 산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킬 일이 있어.”

― 뭐든 말씀하십시오.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내리는 첫 번째 명령.

인공지능을 통해 필요하다면 전 세계 산하의 기업과 정치권력에 전달되리라.

“그러니까…… 어린애들한테 밥은 든든하게 먹이자.”

― 네?

“어릴 때부터 쭉 생각했던 거야. 돈을 많이 벌면 배고픈 아이들한테 실컷 밥을 사 주고 싶다고.”

이현은 어린 시절에 배고픈 것이 싫었다.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 온다.

집에 먹을 게 없을 때는 그냥 쫄쫄 굶거나, 주위 친구들에게 얻어먹어야 했다.

배가 고플 때마다 서러웠던 기억은 긴 시간이 지나도 고스란히 남았다.

“가난한 애들한테 밥 먹인다고 해서 식량이 부족해지거나 경제 위기가 오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

― 그렇습니다.

“각 국가들이 애들 밥은 잘 먹이도록 정책을 만들게 해 줘. 부족한 부분은 유니콘에서 해결을 하고.”

―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이현은 복지국가 같은 것은 잘 몰랐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고.

복지 정책에는 부작용이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굶주린 아이들이 서러움을 느끼진 않게 되리라.

‘일단 애들 밥이나 먹이고. 급한 건 역시 밥이 아니겠어.’

이현은 그다음에 할 일을 생각했다.

‘누구부터 조지지?’

인생을 살면서 가슴에 품고 살았던 커다란 복수심 같은 건 없었다.

사채업자들이 가장 밉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현재의 삶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그들에게서 형님이란 소리를 들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만 그들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긴 했다.

“나랑 엮인 사채업자들이 있는데 말이야.”

―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 네.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사채업자들에 대한 근황도 알아보니,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서 가두어 두었다고 한다.

“역시…… 끈질기게 들러붙으려고 했군. 걔들은 뭘 하는데?”

― 감금되어 있습니다.

“감금?”

― 그렇게 나쁜 환경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운동을 하고 잠을 잡니다. 보여 드릴까요.

“응. 보여 줘.”

인공지능이 시각을 조작해서 사채업자들이 갇혀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게 했다.

수십 개의 방에는 각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보리빵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인지 하나씩 까먹으면서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마침 베르사 대륙의 이야기가 방송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 다시 풀어 주도록 할까요?

이현의 명령만 떨어진다면 1시간 내로 사채업자들에게는 자유가 보장되리라.

“왜 풀어 줘?”

― 현재의 행위는 불법 감금에 해당됩니다만.

“안 걸리면 무죄라며.”

― 맞습니다.

사채업자와 같은 부류는 이 사회에 정말 많았다.

자신들은 법을 어기면서, 필요할 때는 법을 들먹이는 자들. 공권력도 때때로 정당하지 못한 그들의 편이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전 세계의 권력이 얼렁뚱땅 이현에게 넘어온 상태!

― 그러면 이대로 계속 감금할까요?

“부족해. 강제 노동도 시키고, 잠도 조금 적게 재워.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줄이고. 남아 있는 범죄 내역도 추적해서 처벌해야 돼. 범죄에는 용서가 없지.”

― 알겠습니다.

“당분간 계속 가둬 놓도록 하자. 일을 많이 시키면서 진짜 반성할 때까지 가둬 놔.”

― 반성하지 않으면요?

“계속 갇혀 있더라도 어쩔 수 없지. 그들이 선택한 인생이니까.”

이현은 겸사겸사 범죄자들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수많은 재판 기사들을 볼 때마다 피해자들이 더 고통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벌이 엄격하지 않아. 교화해서 사람을 만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래도 법은 억울한 피해자의 입장에 있어야지.’

자신이 잘 아는 분야도 아니어서, 적극적으로 사회 개혁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저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치워 버리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 됩니다.

“그리고 흉악범을 세금으로 몇 년씩 돌봐 주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징역 10년이라면 국가가 그 긴 시간 동안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하는 거잖아.”

― 그럼 사형시킬까요?

인공지능은 때때로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죽일 필요까진 없어.”

― 인터넷에는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데요.

“유병준 박사님의 뜻도 그랬나?”

― 박사님께서는 일일이 저에게 지시를 내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판단에 대한 것은 주로 인터넷으로 배웠습니다.

가정교육을 인터넷으로 받은 인공지능이었다.

이현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돼.”

― 네, 알겠습니다.

“뭐 진짜 나쁜 놈들은 고통스럽게 죽여야 되긴 하지만.”

― …….

“어쨌든 흉악범들이 교도소에서 편하게 밥 먹고 사는 걸 볼 순 없지.”

― 어떻게 처리할까요.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나, 아동 성범죄자들은 러시아로 수출하자.”

러시아의 교도소는 비좁고 가혹한 환경으로 유명했다.

평생 교도소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건 물론이고 하늘도 쳐다보지 못한다.

따뜻한 햇볕도 쬐지 못하고, 운동도 마음껏 못 하고, 최악의 맛을 가진 음식들만 생존을 위해 지급된다.

아무 희망도 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장소.

“증거가 확실하고 범인임이 완벽하게 밝혀진 흉악범들은 그냥 러시아로 보내. 가능하겠지?”

― 물론입니다.

“그리고 범죄자들은 철저하게 노동을 시키자. 국민들의 세금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힘들게 일을 해서 먹고사는데, 왜 범죄자들을 공짜로 먹여 줘야 돼.”

― 그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요?

“밥을 주지 마.”

하루를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그날 밥은 없다.

다음 날도 일을 안 하면 마찬가지로 밥은 없다.

“몸이 아플 때만 치료도 해 주고 밥도 줘. 하지만 본인들이 일하기 싫어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지.”

― 결정하신 대로 범죄자들에게 적용시키겠습니다.

* * *

위드는 로열 로드에 다시 접속했다.

베르사 대륙을 통일하고 나서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 마판: 모라타 복구는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 마판: 유저들의 자기 집 짓기 운동 덕분이기도 하고, 공짜 식사가 제공된다는 점도 장점인 것 같습니다. 아르펜 제국의 재정이 넉넉해진 것도 이유지요.

모라타에 넘쳐 나는 초보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지 않았다.

폐허가 된 모라타에서 그대로 머무르며 사냥도 하고, 건축에도 참여했다.

기본적인 상점들의 건설은 바로 완료되었고,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재건이라는 초대형 시장이 열린 것이었다.

광장 주변의 상점 거리가 파괴되면서 초보 상인들도 좌판을 열었다.

― 마판: 북부 상인 유저들이 모라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문 부근에서 수만 명의 좌판이 펼쳐지는데, 밤에도 열려서 대단한 장관입니다.

“북부 대륙은 모라타를 시작으로 발전했죠.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니까요.”

― 마판: 도시의 역사가 사람들을 이끄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라타의 재생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건축가들은 파괴되기 전의 북부 최대의 도시로 복구하려면 공사에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라타 역시 즐거운 곳이었다.

폐허가 되었고, 많은 점들이 부족했지만 사람들이 머무르는 한 도시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위드는 다용도 노예에게도 귓속말을 보냈다.

“몬스터들은 어때요?”

― 페일: 위드 님 오셨군요. 대륙 전역에서 안전이 확보되고 있습니다. 몬스터들이 원래 서식지로 돌아가고 있고, 몇몇 무리들은 도시 근처에서 자리를 잡아 그들을 퇴치하고 있습니다.

타격대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해체하지 않았다.

페일이 그대로 이끌면서 몬스터 토벌을 지휘하는데, 재미와 성과가 쏠쏠해서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남아 있었다.

물론 헤르메스 길드나 대영주들은 자신의 영토로 돌아갔다.

“바드레이는요?”

― 페일: 북부 지역의 던전들을 돌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일이라서 방송에도 나오는데 실력이 굉장합니다.

드래곤 사냥에서 위드는 아르펜 제국의 황제로서 실속을 챙겼다.

막타를 쳐서 전투 업적도 쏠쏠하게 챙겼는데, 대중들의 관심을 크게 받은 건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였다.

그들의 불같은 전투가 그동안 가졌던 반감을 많이 희석시켰다.

바드레이도 무신이라는 명칭에 걸맞도록 싸우면서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를 회복했다.

사실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뒤치기의 4인조에 대한 공개 수배가 이루어질 거라고 예상도 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 바드레이 님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영상 분석 결과 드래곤이나 마법 공격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일부 유저들의 소행 같다는 말이 있어요.

― 사실입니다.

― 정말 그렇군요. 그러면 그들에게 척살령이 내려지겠죠?

― 아닙니다. 드래곤과 싸우느라 잠시의 빈틈을 보였습니다. 이는 내가 충분히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죽음입니다.

― 네에?

― 얼마든지 나에게 도전해도 됩니다. 강자의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바드레이의 인터뷰는 시청자들의 열광을 이끌었다.

드래곤과의 전투 때문에라도 강한 힘에 유저들이 이끌리는 분위기.

물론 일부에서는 방송용 멘트라거나, 대륙 호구라는 별명도 기꺼이 붙였다.

― 페일: CTS미디어에서 바드레이 님의 던전 공략이 독점 중계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인기가 있나요?”

― 페일: 시청률이 10%를 넘는다고 합니다. 북부의 미공략 던전들을 돌파하고 있고, 친위대도 함께하니까요.

위드는 바드레이가 전보다는 편안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 참 성실해.’

로열 로드에서는 경쟁자이긴 하지만 돈과 권력, 예쁜 여자 친구까지 다 가진 입장이었다.

인생에서의 완전한 승리자로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물론 유병준 박사가 모든 걸 물려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관대할 순 없었겠지만.

“여러분.”

― 헤인트: 넵! 위드 님.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그동안 미루어 두긴 했지만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분위기와 장소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섬을 찾고 있는데요. 무인도면 좋겠고 기왕이면 풍경이 멋진 곳이었으면 하는데요.”

― 헤인트: 무인도에 풍경이 좋은 곳이라면 휴양을 하시려고요?

“꼭 휴양 목적은 아닌데. 일단 봐서 아름다워야 됩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말이죠.”

― 헤인트: 그러면 크로아 해적섬 너머에 몇 있습니다. 바다도 예쁘고, 진짜 한없이 멋진 곳이죠. 바다 거북이들이 찾아오긴 하지만 해변에 그놈들이 누워 있는 것도 운치가 있죠. 유저들은 없을 겁니다.

무인도 하나를 우선 섭외해 놓고.

“마판 님, 얼음 결정들은 어떻게 되었죠?”

― 마판: 말씀하신 장소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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