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위드와 바드레이
헤르메스 길드가 칼라모르 지역을 정복하고 나서 바드레이는 직접 입장을 발표했다.
― 우리는 지배할 뿐이다. 아르펜 제국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며, 강자들이 다스릴 수 있게 하겠다.
과거처럼 유저들을 착취하지 않으며 힘을 바탕으로 통치하겠다는 논리.
오랜 평화에 길들여져서 전투를 바라던 유저들을 환호시켰다.
레벨이 높은 이들이라면 헤르메스 길드의 태도가 싫지 않았다.
반면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이들도 아르펜 제국의 정책을 잇는다는 선언에 안심하게 되었다.
바드레이는 툴렌 지역을 침략하며 또다시 공표했다.
―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언제든 반란을 일으켜라.
헤르메스 길드는 힘에 의한 지배에만 뜻을 둔다고 다시 확인했다.
― 대박이다. 헤르메스 길드 대 흑사자 길드!
― 헤르메스 길드가 이길 것으로 예상.
― 그래도 볼만한 전투가 펼쳐지겠다.
― 대격전. 레전드 중의 레전드인 가르나프 평원 전투가 재현되려나.
― 그 수준은 아님. 전설 중의 전설로 예상.
― 아재. 개그가 너무 구식인 듯…….
― 미안. 농담의 조크로 받아 줘.
― 허억…… 숨이 막혀 온다.
― 웃으니까 스마일이잖아.
― 이 아재 정신 나감. 도망치자.
― 가지 마. 지옥문의 헬게이트에서 함께 미쳐 보자 얘들아!
오랜만에 불타오르는 게시판.
방송국들도 가뭄에 물 만난 것처럼 활발해졌다.
KMC미디어의 강 국장.
부장에서 승진한 그는 특별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모든 방송 자원을 총동원해서 여기에만 매달려! CTS와 시청률 전쟁이 벌어질 거야.”
방송국들의 시청률도 그동안 정체되었다.
강 국장은 위드가 시청률을 이끌어 갔던 시절을 그리워했고, 헤르메스 길드가 큰 파문을 일으키리라 짐작했다.
“난세가 다가오고 있어. 오랜만의 난세라고. 흑사자 길드와의 싸움은 그냥 시작에 불과할 거야.”
모든 유저들과 방송국의 기대 속에서 라코느 요새에서 헤르메스 길드와 흑사자 길드가 맞붙었다.
칼리스는 요새의 중앙 탑에서 목이 찢어져라 전투를 진두지휘했다.
“마법공성포 발사! 적의 접근을 차단하라!”
흑사자 길드는 아르펜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서 무럭무럭 커 왔다.
툴렌이라는 핵심 지역의 이권을 바탕으로 길드원을 늘렸고, 방어 시설도 적극적으로 건설.
언젠가 헤르메스 길드가 칼라모르 지역을 점거하고 툴렌으로 진입할 것을 대비하여 요새를 축성해 놓았다.
로열 로드의 시작부터 존재하던 오데인 요새보다도 훨씬 튼튼하고, 마법 공격에 대한 대비도 완성이 되어 있었다.
마법공성포가 수십 갈래의 빛의 포탄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이곳이 헤르메스 길드의 무덤이 될 것이다!”
흑사자 길드는 용맹하게 싸웠다.
블랙소드 용병단과의 협약을 맺어서 그들의 병력도 데려왔으며, 주변에 있는 고레벨 유저들은 전부 끌어왔다.
흑사자 길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무서움을 알았다.
위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적이었던 집단.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가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칼을 갈아 왔으니 어떻게든 그것을 격파해야 하리라.
“헤르메스 길드만 부순다면 우리도 대륙의 패권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칼리스는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흑사자 길드도 과거와는 달리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들은 진지하게 툴렌과 그 주변 지역, 나아가서 칼라모르와 하벤까지 먹어 치우려고 했던 것이다.
“부수고 들어가라!”
보에몽이 이끄는 전사 집단이 도끼로 성문을 부수고 난입했다.
“막아라!”
“우리가 흑사자들이다.”
요새 안에서 기다리던 흑사자 길드의 유저들이 맞붙어 싸웠다.
하늘에서는 비행단에 맞서서 마법과 화살 공격이 이루어졌고, 사납게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익룡들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균형은 제법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전부 비켜라!”
바드레이가 친위대와 함께 난입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파죽지세로 요새를 지키는 병력을 가르고 들어왔다.
다른 유저들보다도 레벨이 100개 이상 차이 나는 무력을 선보이는 그들.
“우리도 정예들을 투입해!”
흑사자 길드에서는 빈델이 동료들과 함께 나섰지만 5분도 버틸 수가 없었다.
바드레이와 친위대는 검술의 비기로 다른 하나의 검을 공중에 띄워 놓고, 여러 종류의 스킬들로 격파.
흑사자 길드원들은 일제히 바드레이를 노렸지만 그런 공격마저도 몸으로 견뎌 냈다.
“제대로 상처도 입히지 못하다니.”
칼리스는 그 모습을 보며 전율했다.
자신들이 세력을 키우는 동안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는 강해졌다.
범접할 수 없는 격차의 무력.
헤르메스 길드가 압도적인 힘으로 라코느 요새를 점거해 가고 있었다.
* * *
공성전에서 패배한 흑사자 길드는 툴렌 지역을 빼앗기고 라살 지역으로 물러났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을 우리가 독자적으로 감당할 이유는 없지.”
“그렇지. 우리도 그동안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흑사자 길드는 전력을 재정비했다.
“우린 사자성과 협력해서 헤르메스 길드를 야금야금 갉아먹을 것입니다.”
칼리스는 그렇게 대책을 준비했다.
자신들의 영토는 내주었지만, 그 대신 넓은 전선을 얻는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사냥하면서 전투 승리를 얻어 내려는 계획.
사자성, 클라우드 길드도 이에 협력하면서 헤르메스 길드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갔다.
마을과 도시를 불태우고,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제거하며 엄청난 전공을 올렸다.
― 아르펜 제국을 위하여!
― 헤르메스 길드는 대륙의 위협이 될 것입니다.
아르펜 제국의 이름을 팔아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색이 바랜 명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르펜 제국의 질서를 지킨다는 의미가 있긴 했으므로.
헤르메스 길드와 옛 명문 길드만이 아니라, 노튼, 네스트, 그라디안, 리튼, 브리튼 연합, 아이데른, 데일, 브렌트, 로자임, 수베인.
옛 왕국들이 있던 지역에도 다양한 유저들의 세력이 있었다.
아르펜 제국의 영주들. 그들이 힘을 모아서 크고 작은 세력들을 형성했다.
― 대영주들의 분쟁에 피해를 입는 건 힘없는 우리들입니다.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끼리 뭉칩시다.
―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제가 열어 갈 것입니다.
― 명분 없는 전쟁은 질렸습니다. 자유와 협력, 도전을 원하시는 분들은 저희에게 오십시오.
로열 로드에는 사냥과 퀘스트로 새로 이름을 알린 유저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영주로서, 혹은 기사로서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고 세력에 속하거나 일구었다.
그렇게 로열 로드의 초창기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도시와 마을들의 전면적인 파괴가 이루어졌다.
6개월!
베르사 대륙의 생산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거듭된 전투들로 유저들의 손실도 컸지만 그들은 스스로 멈출 수 없는 단계에 돌입했다.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와도, 서로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먼저 공격을 거듭했다.
“아르펜 제국이 있던 시대가 지루했어도 평화로웠네.”
“후…… 이젠 그래도 멈출 수 없어.”
대영주들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치열하게 싸웠다.
헤르메스 길드의 기치는 단순했다.
― 오로지 힘으로. 우린 대륙 최강이다.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는다.
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싸우는 그들이 오히려 유저들의 신뢰를 얻었다.
― 북부는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입니다.
북부의 영주들은 페일이 중심이 되어 뭉쳤다.
중앙 대륙에서의 패권 다툼은 관여하지 않지만, 북부로의 침략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
북부의 영주들은 모라타 시절부터 함께했던 이들이 많았고 아르펜 제국의 역사를 똑똑히 기억했다.
영주들끼리의 이권 다툼이 벌어지긴 했지만, 곧 페일에게 사람들이 모였다.
“페일 님이 황제 자리를 물려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오베론도 선뜻 왕관을 넘겨주려는 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위드와도 가끔씩 모여서 사냥을 했기 때문에 더욱 헛된 명예욕은 없었다.
위드만 돌아온다면 언제든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중앙 대륙이 엉망진창이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북부를 다시 뭉치는 건 위드의 이름이라면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오베론 님이 쭉 맡아 주세요.”
“저로서는 너무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중앙 대륙에는 말이 통하지도 않고. 북부 유저들도 모든 걸 제 탓으로만 돌리는데요. 스트레스가 너무 쌓입니다.”
오베론이 얼굴을 찡그리며 울상을 지었다.
페일도 그가 어떤 마음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위드 님이 오베론 님의 황제 자리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위드 님이요? 어째서요?”
“그게…… 말하기가 곤란한 이유라서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위드 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게 페일 님이잖습니까. 황제 자리도 당연히 페일 님에게 물려줘야 하는데요.”
“7봉…….”
“예?”
“라면 7봉을 먹으셔서 그렇답니다.”
소소한 원한도 잊지 않는 위드!
오베론에게 황제 자리를 맡겨서 실컷 괴롭히는 것이었다.
* * *
바드레이는 툴렌의 포르모스 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소모전이라. 결국 독자적인 전력으로는 여전히 대륙 장악이 쉽지 않군.”
헤르메스 길드는 성장하고 있었다.
대륙 정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유저들을 받아들이고, 또한 그만큼 강해져야 하리라.
천천히 한 걸음씩.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정복을 서두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힘을 키운다. 그 힘을 떨친다. 헤르메스 길드는 가장 단순해질 것이다.”
바드레이의 레벨은 850을 달성했다.
철혈의 워리어로 얻은 방어 스킬들도 마스터의 경지까지 달성!
칼리스와도 싸워 보았지만 조금의 위기도 느끼지 못한 채 간단히 이겼다.
보에몽이 감격에 차서 말했다.
“대륙 최강, 무신이라는 별명으로 바드레이 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드레이 님의 무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싸우는 건 중요하지 않지요. 위드. 그를 이겨야만 진짜 무신이 될 것입니다.”
바드레이는 우습게도 칼리스를 이기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당연한 승부였고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다른 대영주들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자신과 견줄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위드. 그와 싸우게 된다면 당연히 바드레이 님이 이길 겁니다.”
보에몽은 바드레이가 승리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찝찝한 것도 사실.
최상위권에 있는 헤르메스 길드원들이라면 누구나 위드에게 느꼈던 짙은 패배감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다.
바드레이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아르펜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후 위드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니 불안했다.
어디서 어떤 퀘스트와 사냥을 하며 강해지고 있는지를 모르기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위드의 직업조차 전사 계열.
언젠가 또다시 싸우게 되면 힘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사냥터에서 머물렀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철혈의 전사로서 육체를 완성한 지금에야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바드레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위드에게 도전을 해야겠습니다. 멜버른 광산에서 한 번 이겼고, 가르나프 평원에서 졌지요. 이젠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바드레이 님의 승리를 믿습니다.”
“그를 꺾읍시다.”
“아르펜 제국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모두에게 알리죠.”
아크힘, 가우슈, 라미프터.
그들은 바드레이의 결정을 존중했다.
위험한 도전인 것은 당연히 안다.
그럼에도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대륙을 정복하기 전에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으로 위드를 생각했다.
그를 이기지 못하는 한 모두가 불안감에 살 수밖에 없으리라.
― 바드레이의 이름으로 도전한다.
아르펜 제국의 황제이며, 전쟁의 신 위드여.
정정당당한 일대일의 승부를 청한다.
장소와 시간을 정하라.
대륙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를 결정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바드레이의 도전장은 로열 로드를 뜨겁게 달구었다.
― 대박 매치가 벌어진다.
― 이게 얼마만이냐. 세상에 위드와 바드레이라니…….
― 꿈에 그리던 명승부. 아르펜 제국의 황제와 무신 바드레이!
― 대륙 최강이 가려진다!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방송국들도 자막까지 넣어서 속보로 내보내며 모든 게시판들이 활활 타올랐다.
― 과감하게 위드 님의 승리를 점쳐 봅니다. 지금까지 보여 준 실력이라면 충분함. 마지막 전투에서 위드 님이 이기기도 했고요.
― 위드 님이 최고죠. 그분의 사냥 속도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전설임.
― 조각사로 슬금슬금 시작해서, 네크로맨서로 깽판을 치기 시작하더니 전사가 되니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 살아 있는 노가다의 신. 도무지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도 되지 않음.
― 아르펜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고 바드레이가 얼마나 많이 사냥을 했는데요. 바드레이는 매일 싸웠음. 지금 시점에서 바드레이 님보다 강한 유저는 없을 거라고 보네요.
― 바드레이의 전투는 완벽 그 자체. 칼리스를 압살해 버림. 아예 1%의 승산도 주지 않고 밟음. 위드라고 해도 뭐가 다를까?
― 바드레이의 전투력 분석을 KMC미디어에서 한 게 있었죠. 공격력 극강, 방어력 극강. 철혈의 워리어가 되어서 자신보다 2, 3배 강한 적에게도 안 죽을 것 같다고 평가받음.
― 아무리 위드라고 해도…… 지금의 바드레이를 무슨 수로 이깁니까. 아무도 못 말려요.
게시판마다 위드와 바드레이의 승리를 예측하는 글로 뒤덮였다.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지만, 대륙의 정세를 뒤바꿔 놓을 최대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 문제는 위드 님이 안 나타난 지 오래라는 점인데.
― 설마…… 로열 로드 접은 거 아님?
― 에이. 그건 아니겠지. 그래도 불안한데.
― 무슨 사고라도 난 거 아니에요?
― 공식적인 뒷소문에 따르면 풀죽여신님께서 딸을 낳으셨다고…….
― 여신님과 결혼. 그것은 인정.
― 아침에 눈을 뜨면 여신님이 같은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이것은 무슨 인생이더냐.
― 천국이 있다면 거주자들이 시위할 거 같네요. 왜 저기가 더 행복해 보이냐고.
― 나라면 바드레이에게 져도 입가에 미소가 안 사라질 듯.
― 저 어릴 때부터 위드 형이랑 같은 동네 삽니다. 빵도 많이 뺏겼죠. 헤헤. 동네에서 여신님이랑 따님 봤는데요. 완전 천국일 듯요. 저라면 로열 로드 접속 안 할 수도 있음.
하루 동안 수억 개의 게시물이 올라올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위드는 마침 사냥터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바드레이의 도전이라…….”
한 번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피하려고 하더라도 유저들이 그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아르펜 제국을 건국한 사람으로서도 바드레이의 도전은 받아 주어야 마땅한 일.
“문제는 싸우면 질 가능성도 꽤 높아 보이는데.”
무인도에서 보냈던 시간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위드는 고심 끝에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 바드레이의 도전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27일 후.
케이베른 전투 기념일에 모라타의 콜로세움에서 싸우자.
케이베른이 땅으로 내려왔던 판자촌 지역.
그곳에는 위대한 건축물로 8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대형 콜로세움이 만들어져 있었다.
전투와 공연 등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맞붙자는 선언.
바드레이는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답했다.
― 도전을 받아 주어서 고맙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 * *
위드는 조금의 시간을 벌어 놓고 던전에서 미친 듯이 사냥을 하며 강해졌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전사로서의 성장.
전투 스킬들을 연마하면서 한 단계씩 강해졌다.
세상을 구하는 용사만이 가진 영웅 스킬들도 몸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 용기의 힘 >
< 희망의 노래 >
< 분노의 반격 >
< 구원의 축복 >
< 세상의 끝 >
영웅 스킬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까지 모두 강화를 시킨다.
대규모 파괴 스킬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악당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바드레이는 그동안 오랜 시간을 사냥터에 머무르면서 악명을 지웠다.
“용기의 힘. 살인자를 상대하면 강해지는 기술인데. 아쉽게 되었군.”
27일 동안 23개의 레벨을 올렸다.
위드의 레벨은 769.
바드레이의 레벨은 800대를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였다.
“얼마나 강할지 붙어 보면 알 수 있겠지? 칼리스와 싸운 게 전력이 아니었다면…….”
위드의 입가에 흥미진진한 미소가 맺혔다.
바드레이와의 전투가 꽤나 재밌어질 것 같았으니까.
* * *
― 우하. 와아아아아아!
― 실컷 싸워라! 최고의 하루를 보내자!
― 승리를 위해!
― 오늘만을 기다렸다!
8만 명이 들어올 수 있는 콜로세움에는 전날부터 계단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바드레이는 아침 일찍 와서 콜로세움의 한복판에서 기다렸다.
‘어설픈 신경전 따윈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기다린다. 언제든 와라.’
오늘을 위해 살아왔기에 싸울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위드가 도전을 받아 주지 않았거나, 로열 로드를 접기라도 했다면 상실감 때문에 대륙을 정복하더라도 기쁘지 못했을 터.
― 꾸와아아악!
정오가 되기 전에 와삼이를 타고 위드가 하늘에서 나타났다.
그 순간 콜로세움 전역에서 울려 퍼지게 된 함성!
사람들의 목소리는 귀가 멀어 버릴 것처럼 뜨거운 것이었다.
와삼이는 유유히 콜로세움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바드레이의 앞에 내려앉았다.
위드가 땅에 내려오며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무신 바드레이.”
“아르펜 제국의 황제여. 나는 그 별명을 떳떳하게 되찾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여전히 무신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아는데요.”
“패배의 기억을 안고 있는 무신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로써 모두가 나를 최고라고 부를 것이다.”
“그건 제 허락 없이는 안 될 일이죠.”
와삼이가 먼지를 일으키며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다.
위드와 바드레이는 경기장에 선 채로 서로를 천천히 훑어봤다.
‘그동안 전투에 푹 빠져 살았다더니 과거와는 느낌이 달라졌어. 거칠면서도 날카로운 전사? 뭐 그런 분위기가 흐르는군.’
‘위드. 로열 로드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구나. 자신감이 보인다. 과거에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을 것이다.’
위드는 냉정하게 바드레이의 장비들도 확인했다.
대륙을 통일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웬만한 장비들은 특성뿐만 아니라 시세까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장비의 수준이나 유명한 특성은 파악됐다.
‘갑옷과 부츠가 초월자의 장비 세트. 레벨 제한 880. 칼리스와의 싸움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물건인데. 바드레이의 레벨이 설마 그 정도까지…….’
일대일의 승부에서는 레벨이 깡패라는 말이 있었다.
단순하게 스탯이 조금 더 높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더 오랜 사냥을 하면서 쌓은 업적과 단련된 스킬들.
철혈의 워리어로서 육체적인 강함까지 겸비하게 되었으리라.
‘아냐. 레벨 880은 나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언데드의 도움 없이 정직하게는 올리기 힘든 레벨이야.’
다시 천천히 살펴보니 조화의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다.
장비의 착용 제한을 5% 낮춰 주는 물품.
‘그렇더라도 레벨이 830은 넘을 가능성이 높단 거겠지.’
바드레이의 검 자루에는 악마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굴복한 악마!
악마검을 소유했다는 건 악마를 굴복시키면서 모든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리라.
바드레이도 상대를 살피는 건 마찬가지였다.
‘검도, 갑옷도 알 수 없는 물건이다. 소문조차 들어 본 적이 없어. 범상치 않은 것들이겠지? 그리고 아마 장비의 성능으로는 내가 밀릴 것이다.’
헤르메스 시절에는 장비발로 누구에게 진다는 건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숱한 모험을 성공시켰고 드래곤의 레어까지 확보한 위드라면 다르다.
‘만만치 않겠어.’
위드와 바드레이가 눈을 마주치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스릉!
바드레이가 먼저 굴복한 악마검을 빼어 들었다.
위드도 비슷하게 검을 뽑아 들었는데, 로아의 명검이었다.
드래곤의 레어에서 얻은 더 좋은 마법검이 있었지만 익숙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등에 메고 있던 용을 죽이는 도끼마저 꺼내서 오른손에 들었다.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도끼!
무기를 동시에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해졌다.
전사로서 무지막지한 사냥을 해내며 극강의 공격력과 필요에 따라 방어도 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었다.
휘이이잉!
위드와 바드레이는 쉽게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10초, 20초.
상대방의 빈틈을 탐색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영상 등을 통해 이미 철저히 분석을 마쳤고, 전투가 벌어지면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맞춰 가야 하리라.
타닷.
먼저 움직인 건 위드였다.
“분검술!”
직업이 용사가 되며 검술 스킬의 위력도 훨씬 증가했다.
100개가 넘는 분신들이 생성되어 일제히 바드레이에게 몰려들었다.
“폭렬하는 대지의 기둥!”
바드레이의 대응은 악마검으로 땅을 내려치는 것이었다.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한 워리어 스킬.
땅에서부터 하늘로 기둥이 수없이 솟구치며 폭발했다. 절반이 넘는 분신들이 꿰뚫려서 사라졌다.
‘바하모르그만 하더라도 분신들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위드는 처음부터 분검술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검술의 비기임에도 상대를 현혹시킬 때나 다수와의 싸움에나 더 적합했다.
위드는 분신들로 시선을 끌고 바드레이의 등 뒤로 돌아갔다.
“광휘의 검술!”
로아의 명검에서 빛을 뿜어내며 강하게 휘둘렀다.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전진하면서 도끼를 올려 쳤다.
“하늘 베기!”
* * *
KMC미디어는 오주완과 신혜민, 도찬미가 함께 위드와 바드레이의 대결을 중계하고 있었다.
― 위드의 선공입니다. 시작부터 분검술이에요!
― 검술의 비기네요. 다른 유저들이 사용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력한…….
― 바드레이도 엄청난 스킬을 터트리며 대응하고 있어요!
중계진들은 시작부터 긴장을 끌어 올렸다.
위드와 바드레이의 승부라니 그들도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었고, 시청자들도 집중하고 있을 테니 눈을 뗄 수 없는 승부였다.
― 위드가 바드레이의 뒤를 잡았습니다. 검술 공격…… 아, 아닙니다. 도끼로도 칩니다. 양손으로 동시에 공격하고 있어요.
― 바드레이가 검을 뒤로 휘두르며 막아 냅니다. 약간 피해를 보며 물러서지만, 큰 피해는 아닌 것 같아요.
중계진들이 보는 영상에는 바드레이가 금방 땅을 박차고 다시 덤벼드는 것이 보였다.
챙챙챙!
바드레이의 검이 위드의 방어에 막힌다.
위드는 대부분의 공격을 로아의 명검으로 흘려 버리면서 무게중심을 흐트러뜨렸다.
쐐애애액!
빈틈을 만들면서 상대를 짓부술 듯 내려쳐지는 도끼!
― 미쳤네요. 검과 도끼를 완벽하게 다룹니다. 하나씩 쓰는 것도 어려운데, 둘 다 조합이 끝내줘요.
― 무기술. 그 자체로는 위드가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 정말 놀라워요. 거리 조절에서부터 동작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장악하고 숨 가쁘게 몰아치는데요.
오주완은 영상을 보며 강렬한 눈길을 보냈다.
한동안 마법의 대륙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심심했던 적도 많았다.
드래곤 사태 이후로 엄청난 사건들이 잘 벌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이런 뜨거운 명승부를 본 적이 없었다.
위드는 100번의 연속 공격을 빠르게 몰아친 후에 뒤로 물러났다.
‘방어력이 좋아서 쉽지 않아.’
몇 번의 변칙적인 공격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로아의 명검과 용을 죽이는 도끼가 바드레이의 몸을 두드렸지만 효과를 보진 못했다.
‘무기가 튕겨져 나오는 느낌? 철벽을 두드리는 손맛이었어.’
바드레이는 케이베른과 싸울 때에도 철혈의 워리어였고, 전투 업적으로 ‘드래곤의 피부’라는 스킬을 얻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서 갑옷을 벗더라도 기본 방어력이 뛰어났다.
‘역시 까다롭겠군.’
위드는 초반의 부딪침으로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건 느꼈다. 그러니 더 재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 우와아아아악!
― 최고다, 위드 님!
― 바드레이 잘 싸운다. 역시 무신!
― 멋지다. 진짜 전쟁의 신과 무신의 대결이다.
콜로세움에는 구경꾼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정작 위드와 바드레이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지만.
< 철혈의 육체가 가진 특성으로 상처가 저절로 아물고 있습니다.
매초마다 2,863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
바드레이는 초반 부딪침에서는 조금이지만 손해를 봤다.
전투 스킬을 동반하긴 했어도 기본적인 무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투.
‘위드. 그의 검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나도 만만치 않다. 몬스터와 싸우면서 계속 성장해 왔다.’
바드레이는 다른 어떤 적에게도 밀린 적이 없었다.
어떤 험한 난전에서도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해 왔던 그였다.
강하고 위험한 몬스터에게도 위축되지 않고 싸웠으며, 철혈의 워리어가 되고 나서는 더욱 적을 가리지 않았다.
전투 기술은 꾸준히 향상되었다고 믿었으며, 칼리스와의 승부에서도 검증이 되었지만 위드에게는 부족함을 드러냈다.
‘제대로 한 수를 준비해 왔군. 검과 도끼의 동시 운영. 검만 써도 쉽지 않은 상대인데.’
맞붙어 보니 두 개의 무기를 그냥 능숙하게 다루는 게 아니었다.
검과 도끼로 호흡을 끊으면서 움직임을 제약하고, 마치 이쪽의 의도를 훤히 들여다보는 듯이 행동한다.
‘이런 무기술을 쓸 수 있을 줄이야.’
일점 공격술을 따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강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전투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안다.
하물며 위드의 전반적인 전투 능력은 결코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조각 파괴술로 힘을 늘린 티가 난다. 가볍게 휘두르는 공격에도 묵직한 한 방들이 이어지는군. 하지만 내 신체 능력이 더 월등해.’
초월적인 방어력과 그동안 달성한 전투 업적들. 꾸준히 쌓아 온 스탯들.
‘전사의 정점에 선 나다. 로열 로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경쟁자들을 밟고 올라온 자리.’
바드레이의 눈빛이 강하게 빛났다.
그 모습을 본 위드도 직감했다.
상대가 호락호락하게 기죽지 않음을.
‘나를 사냥감으로 보는 듯한 눈이네.’
검과 도끼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나름 기를 죽이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두 달도 넘게 연습을 했는데 말이야.’
위드와 바드레이는 상대를 지켜보며 호흡을 골랐다.
서로 간에 오갔던 가벼운 타격의 피해는 금방 씻은 듯이 나아 버린 상태.
“…….”
“…….”
바드레이는 먼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흑기사를 마스터하고, 철혈의 워리어의 육체를 완성시켰다.
위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들을 있는 힘껏 정면에서 받아쳐서 이길 작정이었다.
‘실컷 해 봐라. 어떤 수를 써도 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
바드레이가 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완벽한 강함.
일시적인 승리가 아니라 영원히 남을 압도할 강함을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이번에도 내가 들어가야 된다.’
위드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철혈의 워리어라…… 깨뜨리기 쉽지 않지만 모든 공격을 막아 내는 궁극의 방패란 존재하지 않아.’
* * *
검치는 수련생들과 함께 콜로세움의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역시 막내 녀석이 감각은 있어.”
“그렇죠. 연장을 두 개나 동시에 쓰고 말입니다.”
검둘치도 웃으면서 칭찬을 해 줬다.
위드와 바드레이가 맞붙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조금이지만 감탄이 나왔다.
“도끼는 다루기 쉬운 무기라고 생각하지만…… 어설프게 힘으로 휘두를 때나 그렇고. 타점을 제대로 맞춰서 최대 공격력을 발동시키는 건 까다롭지.”
“맞습니다. 몸의 균형과 체중 이동을 이어지게 해야죠. 거기에 검까지 쓰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압박하고 억제시키니 감각이 없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연습해도 못 합니다.”
말로도 굉장히 어려운 경지!
그들은 느긋하게 위드와 바드레이의 전투를 지켜봤다.
“막내의 공격을 꽤나 잘 막아 내는군.”
“당황하지 않고 잘 싸웁니다. 일반인 수준은 크게 뛰어넘는군요.”
역시 싸움 구경이야말로 최고.
검삼치가 아쉬운 듯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바드레이. 저놈은 내가 꺾어 줬어야 했는데.”
“셋째야, 만난 적이 있더냐?”
“네, 스승님. 저번에 한 번 봤죠. 잘 싸웠는데 졌습니다.”
레벨이나 스킬, 장비가 다 달리니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검삼치는 바드레이의 방어를 뚫지 못한 걸 지금까지 아쉬워하고 있었다.
검사치와 검오치가 깜짝 놀랐다.
“사형이 졌습니까?”
“그럼 막내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는데요.”
검삼치는 고개를 저었다.
“막내는 우리랑 달라. 저건 시작도 안 한 거지. 왜 저놈을 스승님이 좋아하는지 알지 않더냐.”
막내가 도장에서 어떻게 검을 배웠는지는 모두가 지켜봤다.
사범들의 눈에는 처음엔 기술적으로나 체력으로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한마디로 약자!
그렇지만 강한 상대와 싸우다가 점점 불이 붙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들을 막 꺼내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구 발휘한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덤벼들 때는 사범들조차도 긴장해야 되는 상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놈과 싸울 때만큼 무서운 게 없지. 재능도 있고 작은 빈틈마저도 찾아내서 바로 들어오는 녀석이라면 말이야.”
* * *
위드는 차원문의 장갑을 착용했다.
그때부터 단거리 공간 이동이 가능한 차원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기만 한다면 기꺼이 들어가 주지.’
위드는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다가 차원문을 통과했다.
공간을 이동하며 위치를 빠르게 바꾸었지만 바드레이의 시선도 바로바로 따라왔다.
‘역시 이걸로는 어림도 없지. 그렇다면 예전에 써먹었던 방법은 통할까? 시험해 봐야겠지?’
위드는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발동시켰다.
“찰나의 조각술!”
세상을 멈추게 하는 기술.
찰나의 에너지는 그동안 쓸 일이 없어서 넘치도록 쌓여 있었다.
바드레이의 측면으로 돌아가서 로아의 명검을 휘둘렀다.
“헤라임 검술!”
―1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20% 늘어납니다.
―2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40% 늘어납니다.
―3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40% 늘어납니다.
―4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추가로 40% 늘어납니다.
네 번의 연속 공격을 그대로 작렬.
과거에 가르나프 평원에서 승리를 했던 방식.
‘그땐 이게 전부였었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29번의 연속 공격을 적중시키며 승리를 거두었다.
한순간의 승부였지만 사실은 이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회는 단 한 번, 찰나의 조각술까지 사용한 몰아치기가 성공을 거둔 것일 뿐.
전투가 조금만 길어졌더라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바드레이가 몸을 돌리자마자 그대로 다시 찰나의 조각술을 발동시켜서 반대 위치로 돌아갔다.
―5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묵직한 공격이 적중했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30% 늘어납니다.
―6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추가로 50% 늘어납니다.
충격파에 의한 2차 범위 타격이 15%의 공격력으로 이루어집니다.
―7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30% 늘어납니다.
힘이 추가로 20% 늘어납니다.
마나 1500을 사용하여 원거리 공격이 이루어집니다.
일곱 번의 공격이 전광석화처럼 들어갔지만 여전히 피해를 제대로 입힌 느낌은 아니다.
헤라임 검술이 확실히 강해지려면 몇 번의 공격을 더 성공시켜야 한다.
‘이 공격법은 예상하고 있었을 텐데. 당연히 대비하고 있겠지.’
―8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민첩이 추가로 15% 늘어납니다.
적을 밀쳐 냅니다.
―9차 연속 공격이 성공하였습니다.
힘이 추가로 25% 늘어납니다.
적을 기절시키려고 했지만 상대가 이겨 냈습니다.
헤라임 검술이 본격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하는 구간.
위드는 헤라임 검술을 이어 나가려다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뒤통수가 간질거릴 때는 본능이 알려 주는 경고 신호.
조금 물러서며 다른 스킬을 발동시켰다.
“대파멸의 모래 폭풍!”
땅에서부터 거대한 모래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한꺼번에 전부 쓸어 버릴 수 있는 대규모 공격!
바드레이도 지금까지 준비했던 스킬을 사용했다.
“피의 징표!”
위드의 이마에 검붉은 표시가 새겨졌다.
“예견된 방어!”
어지간한 공격은 무시하는 궁극의 방어 스킬도 사용.
바드레이가 거친 모래 폭풍을 뚫고 덤벼들었다.
“막지 못하는 힘!”
전사의 비기가 연속으로 세 개가 사용되었다.
채채챙!
위드는 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묵직한 상대의 공격을 쳐 냈다.
조각 파괴술에도 불구하고 힘에서 뒤로 밀려난다.
눈을 어지럽히는 모래 폭풍 속에서 바드레이의 검이 위드의 가슴을 가볍게 베고 지나갔다.
< 피의 징표가 당신의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전사의 피는 강력한 보복을 불러옵니다.
지금까지 입힌 피해에 따라 생명력이 43,279 감소합니다. >
위드는 차원문을 통과하며 뒤로 물러났다.
콜로세움에 모래 폭풍이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바드레이는 끄떡도 없는 모습이었다.
검을 들고 언제든지 공격을 해 보란 듯이 당당하게 서 있다.
위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당연히 대비를 하고 있었네.’
일부러 공격을 당해 주며 피의 징표를 준비한다.
헤라임 검술은 한 번이라도 막거나, 끊어 내기만 하면 중단되는 스킬.
예견된 방어로 무시해 주고, 자신의 힘까지 늘려서 거센 반격을 가한다.
‘재밌네.’
위드는 오랜만에 피가 뜨겁게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세포들이 하나하나 깨어나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
‘그래. 이런 맛이었어.’
위드가 즐겁게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 * *
위드와 바드레이의 결전 이후로 긴 시간이 흘렀다.
로열 로드에서는 새로운 영웅들이 탄생하고, 모험을 하며 유저들이 열광했다.
도시와 마을들이 파괴되고, 대륙을 휩쓰는 대재난도 벌어졌다.
유저들은 싸우고, 타협하고, 때로는 기적도 만들어 내면서 살아갔다.
전쟁과 평화, 휴식과 발전.
로열 로드는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학생들의 꿈이 베르사 대륙의 황제라거나, 모험가, 달빛 조각사가 된 지도 오래.
이현은 텔레비전 리모컨을 돌리다가 KMC미디어의 채널을 봤다.
― 오주완 씨. 악신의 무덤은 여전히 모험가들을 허락하지 않네요.
― 그렇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지하 99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진 그 누구도 60층 이하로 내려간 사람이 없습니다.
― 과연 공략이 가능할까요? 아니면 영영 불가능할까요?
― 몇몇 모험가 길드는 악신의 무덤은 공략 불가로 판정을 내렸습니다만 아무도 짐작할 수 없죠. 혜민 씨도 잘 알겠지만 우리에겐 불가능을 기적으로 돌려놓았던 위드도 있었지 않습니까?
신혜민은 KMC미디어의 전속 진행자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오동만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그날 저녁 푸홀 워터파크로 신혼여행을 갔다.
로열 로드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지만, 푸홀 워터파크의 축제를 생중계하기 위해서였다.
“악신의 무덤이라…….”
이현은 약간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내 관심을 지웠다.
위드를 만능형의 잡캐로 키워 놓았기 때문에 모험, 생산, 전투, 발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악신의 무덤도 공략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모험가들이 할 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누군가는 해내겠지. 해내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고…….”
이현은 로열 로드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에서 위드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고, 리트바르 마굴을 소탕하며 달빛 조각사로 전직!
“그땐 참 죽을 맛이었는데.”
천공의 섬에서 데스 나이트 반 호크를 만나고, 프레야 교단의 의뢰를 받아 얼어붙어 있던 모라타에 도착하여 사람들을 구하고, 빙룡을 조각.
“나름 낭만도 있었지.”
오크 카리취로 변신해서 불사의 군단과 싸웠고, 엠비뉴 교단을 퇴치하며, 수많은 조각품들을 만들었다.
북부의 개척자이며 아르펜 제국의 황제.
수많은 모험들을 이룩했으며 지금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로열 로드에 푹 빠져 있었고 꿈과 희망이 되었다.
여전히 행복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은 불리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레벨 1,000을 넘는 유저들이 꽤나 많아진 시점에 그들을 쫓아가기란 무리였으니까.
더 좋은 장비들과 기술, 기회.
과거보다 훨씬 성장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따라잡기 힘든 격차가 생겼다.
“다른 가상현실 게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현은 유병준 박사의 업적이 너무나도 대단하단 걸 시간이 흐를수록 느낄 수 있었다.
로열 로드의 재미와 영향력이 너무 탁월하기에 다른 경쟁작들이 나오지 않는다.
정작 창조주인 유병준 박사는 요즘도 실컷 현질을 해서 푸홀 워터파크에 별장을 사고 미녀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렇다면 새로 하나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 로열 로드 같은 새로운 가상현실을 말입니까?
인공지능 베르사가 소파에 앉아서 대답했다.
이현에게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이곳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의 두뇌는 지구 전역의 생산 설비를 가동하고, 환경오염을 감소시키고, 복지 정책들을 실시했다.
“만들 수 있겠어?”
― 가능합니다.
“기왕이면 더 좋은 걸로.”
― 로열 로드의 개발 과정과 지금까지 운영하며 쌓인 데이터가 많습니다. 새로운 기술도 개발이 되었죠. 대륙의 지형이나 모험, 몬스터에 대한 정보와 유저들의 성장과 취향 등. 자료들을 바탕으로 훨씬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현은 로열 로드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모든 모험들과 사냥, 노가다들까지도 추억으로 남았다.
서윤과 결혼도 했고,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세상을 더 알게 되었다.
그 경험들이 쌓여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를 위해선 로열 로드로는 부족했다.
“그래, 그럼 만들자. 새로운 시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