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화 (2/350)

2화 럭키 데이 (2)

[트롤 주술사의 어금니(1)를 획득했습니다.]

“아, 또 거지네!”

나는 겨우 퀘스트 템 하나만 뱉어낸 녀석의 시체를 루팅하자마자 곧바로 뒤로 빠졌다.

막 흩어지고 있는 연막을 뚫고 트롤 전사 5마리가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신!]

하지만 침착하게 뒷걸음질로 공격을 피하며 은신을 사용하자, 트롤 전사들은 타겟팅을 잃고 제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그렇게 멍 때리게 된 주술사 없는 트롤 파티를 뒤로 두고 떠나려는 순간, 막 이곳에 도착하는 한 무리의 유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야, 방금 저 도둑 봤어? 설마 솔플로 몬테나 퀘스트 중인 거야?”

“너 저 도둑 처음 보는구나? 저 사람 완전 여기 죽돌이잖아! 근데 너도 같은 도둑이랍시고 따라 할 생각은 말아라. 저게 보기엔 쉬워 보여도, 타이밍 잡기가 어려워서 따라 하다 죽은 도둑을 한둘만 본 게 아니다!”

사실 난 그동안 이 방법으로 주술사만 빼먹었는지라, 이미 본의 아니게 악명이 높아져 버린 상태였다.

한 달간의 퀘스트 노가다를 마무리 짓는 오늘, 내가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였다.

* * *

“4인 파티에서 마지막으로 180레벨 이상 힐러분 모십니다! 오시면 바로 출발!”

“트롤 전문 화염 템으로만 세팅한 궁수가 파티 찾습니다! 최소 4시간 이상 사냥 가능요!”

번스타인 성 지역에 속해있는 게반 마을.

이곳은 유저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곳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침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입구는 사냥을 위해 파티를 구하려는 유저들로 상당히 번잡했다.

반면 낮에는 항상 바글바글한 중앙 광장은, 상점 좌판을 펴둔 전문 장사꾼 캐릭터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한적했다.

“와! 막상 내가 까겠다고 마음먹고 하니 고작 10개 모으는 것도 왜 이렇게 빡셌냐? 뭐, 어쨌든 결국 다 모았으니 제발 한 개만 뜨자!”

이 마을이 유저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

그건 현재 유저들의 급증하기 시작한 200레벨 전후의 필드 사냥터와 꽤 큰 규모의 인스턴트 던전이 존재한다는 점이 주효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바로 유명한 퀘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몬테나 퀘’라고 불리우는 사냥 반복 퀘스트!

성에서 파견 나온 NPC인 철사자 기사단장 몬테나가 주는 토벌 퀘스트였는데, 이 퀘스트의 보상이 너무 인기가 많았다.

아니, 듣기로는 이 마을에 온 유저들의 절반 이상이 바로 이 ‘몬테나 주머니’를 위해 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떠돌 정도로 유명했다.

‘태생적으로 유저들이란…… 뽑기라면 아주 환장하는 법이니까 말이지.’

몬테나가 준 주머니를 까게 되면 확정 보상이 아닌 랜덤 보상 아이템이 나왔다.

뽑기라는 점만 해도 유저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는데, 레어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니크 템까지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유저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난, 뽑기 운을 바라며 이곳을 찾아온 게 아니었다.

내가 지난 3년간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겪었던 득템운과 강화운은, 비참할 정도로 처참했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의 요행은 눈곱만큼도 바라지 않는다! 오직 노가다만이 내 겜생(生)의 진리다 진리!’

대박 템을 드랍한다는 몬스터의 사냥터에서 허탕 치며 보낸 시간들…….

요행을 바라다가 갖은 노력 끝에 얻은 아이템을 날려버린 강화들…….

그런 과거를 청산하고자 온 이곳에서, 나는 뽑기가 아니라 뽑기템 판매를 위한 무한 퀘스트 반복을 시작했다.

그렇게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이어진 노가다 끝에, 나는 마침내 목표로 했던 장비 스펙 업과 내 가상화폐 지갑의 잔고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어쨌든, 다시 생각해봐도 이 몬테나 퀘스트는 꿀이었다, 레알 꿀!”

기본적으로 이동 속도가 빠른 직업인 데다가 은신 스킬까지 보유한 도둑.

그런 직업적 특성과 내가 개발한 사냥법을 통해, 남들은 몇 명이 나눠 먹어야 할 퀘스트 템을 혼자서 독식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몹들은 처리하지 않고 주술사만 빼먹으며 빠르게 사냥할 수 있었으니, 미칠 듯한 고효율이 아닐 수 없었다.

남들보다 최소 5, 6배는 더 효율적으로 주머니를 획득한 결과, 내가 한 달간 번 돈만 해도 웬만한 직장인의 3달 치 월급과 맞먹었다.

“생활비가 거의 다 떨어져서 다시 알바를 해야 하나 하는 상황까지 갔었는데…… 오랜만에 여유로워졌어. 아! 이제 그것도 오늘로써 끝이라고 생각하니 좀 아쉽긴 한데? 아직도 충분히 더 뽑아먹을 수 있는데 말야.”

현재 내 캐릭터로 이곳만큼이나 안정적이면서 골드를 많이 벌 수 있는 사냥터는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쉽다 해도 그만 이곳을 떠나야 했다.

아무래도 주술사만 빼먹으며 퀘스트를 반복한 탓에, 근 한 달 동안 너무 레벨업을 못 했던 것이다.

현재 랭커급 유저들은 어느새 나보다 레벨이 100정도나 더 높아졌다.

한데 그들이 레벨업하는 속도보다 저레벨인 내가 더 느리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 있었다.

물론 이제 와서 최상위권 유저가 돼보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위권 레벨은 유지해 줘야만, 앞으로도 계속 생활비를 벌거나 대박 아이템을 득템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려볼 수 있었다.

‘이 정도 레벨대가 아니었다면 솔플 사냥법을 개발했어도 써먹진 못했을 거야. 그러니 레벨만큼은 계속 꾸준히 따라가 줘야 해.’

막상 그냥 떠나려고 하니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이 퀘스트만 토 나오도록 해서 주머니만 100개는 팔아먹은 것 같은데, 막상 직접 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왕 벌 만큼 번 거, 나는 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머니 10개만 까 보기로 마음먹었다.

“수고했네! 매그넘영삼. 덕분에 트롤들의 습격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이 마을이 안전해진 것 같군. 자, 이건 보상일세!”

“뭐, 나야 덕분에 한 달 동안 알바 잘했지. 또 볼일은 없겠지만 앞으로도 잘 지내라 몬테나! 그동안 고마웠다!”

나는 NPC답게 매번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몬테나에게 나름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그렇게 받은 10개의 갈색 주머니를 인벤토리 창에 나란히 배열시키고 나자, 나답지 않게 간만에 가슴이 떨려왔다.

“아오! 수도 없이 팔아먹은 주머니인데, 막상 내가 깔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다르게 보이네.”

주머니 한 개의 현실 시세는 현금 10만 원 정도.

10개를 까는 것이니, 운이 나쁘면 한순간에 내 한 달 치 이상의 생활비가 증발할 수도 있었다.

“자자, 남자답게 한 번에 가자. 나와라 대박! 유니크 하나만 뜨자!!”

나는 숨을 크게 한번 깊게 들이쉬고 난 후, 인벤토리의 주머니들을 거침없이 연타했다.

[철사자 기사단의 장검(레어)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2)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마력 회복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헉!!”

한꺼번에 스트레이트로 전부를 까려던 내 손이, 도저히 인벤토리 창을 끝까지 터치하지 못하고 멈춰 버렸다.

이건 도저히 한 번에 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쳤다……. 이거 완전 물약 주머니들뿐이잖아? 야! 몬테나 이 미친 사기꾼 새끼야! 나한테 도대체 뭔 쓰레기들만 준 거야!”

첫 번째부터 무기가 뜨길래 간만에 운이 좋구나 싶었는데, 웬걸?

첫 끗발이 개끗발이었다.

심지어 장검은 원래 철기사단 컬렉션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무기였고, 레어 등급이라 아무리 비싸게 받아 봐야 주머니값 수준이었다.

인기 있는 장궁 정도만 떴어도 본전은 건졌을 텐데, 고작 장검이라니…….

순식간에 현금 40만 원 정도가 증발해버리자, 멘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큭큭큭, 저 사람 주머니 뽑기 하나 봐? 근데 딱 봐도 망했구먼, 망했어! 크크크.”

“아이고, 내가 저 맘 잘 알지. 살살 뽑으세요, 그러다 계속 질러서 겜 접는 수가 있어요!”

몬테나 근처에는 ‘주머니 무한 매입, 주머니 1120골 판매’나 ‘각종 철사자 무기, 방어구 세트 사고 팝니다’ 등이 적혀 있는 팻말로 좌판을 깐 유저들이 있었다.

바로 장사꾼들이었는데, 그들 중 아이디가 익숙한 몇 명이 몬테나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보고는 한마디씩 했다.

“아, 불난 집에 부채질 하나, 접긴 누가 접어요! 그리고 뽑기 망한 사람 보고 웃기는 왜 웃어요! 씨앙!”

보통 대부분의 장사꾼은 좌판을 연 채 유저를 기다리는 동안, 게임상에서 허용되는 특정 사이트 등을 보며 잠수탄 경우가 흔했다.

그렇기에 내 옆에 있는 장사꾼들도 당연히 잠수인 줄 알았는데,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모양이었다.

그들 중 맨 처음 비웃었던 장사꾼이, 내 말을 듣고는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왔다.

주머니를 판매하며 자주 봤던, ‘무한상사’라는 장사꾼이었다.

“맨날 주머니만 팔아 재끼더만 무슨 바람이 들어 직접 뽑기를 한 거야? 아아, 드디어 접으려고? 아니면 혹시나 득템할 줄 알고? 풋! 주제를 알아야지!”

너무 헐값에 매입하고 있어서 거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녀석.

그런 내가 평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남이야 주머니를 까든 팔든 님이 무슨 상관인데? 아, 씨……. 그냥 분수대 가서 까야겠다. 여긴 재수 털리는 놈들 투성이네.”

“큭큭큭. 그러시든가 말든가. 어차피 이 겜은 운빨망겜이야. 댁처럼 운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까든 뭘 해도 안 돼. 그냥 현실에서 하던 대로 여기서도 노가다나 했어야지, 낄낄.”

“야! 이 자식이 가뜩이나 빡친 사람 더 빡돌게 약 올리네? 운이 없긴 누가 없어, 아직 5개나 더 있는데! 세상에 전반전만 하는 축구 경기 봤냐? 원래 후반전에 나오는 역전 골이 더 통쾌한 거 몰라?”

“네네, 어디 후반전에도 물약 샤워 한번 시원하게, 원 없이 하길 빕니다. 낄낄.”

가뜩이나 간만에 하는 뽑기에서 연속 꽝이 나와 열 받았는데, 웬 양아치 장사꾼마저 계속 깐죽대자 절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오, 진짜. 이 망할 놈의 운! 하여간 뭔가 되는 일이 없어! 그냥 팔걸 괜히 뽑아본다고 해서…… 내가 그럼 그렇지!’

그래도 어디 내가 이 게임을 하루 이틀 했던가?

속으로는 울화와 함께 후회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맞받아쳤다.

“오냐. 물약 샤워를 해도 내가 하는 거니깐, 넌 하던 대로 되팔이나 하세요. 백수신가, 아침부터 명당에 좌판 깔겠다고 일찍 일어났을 걸 생각하니 애잔하구먼? 하긴, 열심히 되팔이 하셔야 이따 먹을 편의점 도시락값이라도 벌겠지?”

“크크, 이래 봬도 내가 너보다는 잘 벌걸?”

“잘 벌든 못 벌든, 너처럼 하루 종일 제자리에 죽치면서 돈 벌고 싶은 맘은 눈곱만큼도 없단다. 얼마나 컨이 딸리면 그렇게밖에 돈을 못 벌겠냐? 아무튼 광장 죽돌아, 그럼 수고해라!”

자고로 이렇게 게임 내에서 말싸움을 벌일 때는, 더 열 받은 티가 난 사람이 패배인 법.

계속 있어 봤자 시간 낭비였기에 쿨한 척하며 분수대로 떠나려는 순간, 옆에 있던 또 다른 장사꾼이 말을 건네 왔다.

“영삼 님, 저는 님께서 대박 터지길 빌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혹시 접으신다면 기왕 나온 철사자 템들은 저한테 팔아주세요. 섭섭지 않게 시세대로 챙겨드릴게요!”

윽…….

저 사람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된 장사꾼이었다.

그래, 내가 혹여 망하더라도 장검만큼은 당신한테 팔아준다!

나는 속으로 그런 혼잣말을 하며 분수대로 향했다.

* * *

원래 러쉬나 뽑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소위 꾼들은 보통 자기만의 미신이나 징크스 등이 있다.

싼 아이템으로 뽑기나 강화 러쉬를 시도하다가, 연속으로 실패하는 순간 원하던 비싼 아이템을 강화하는 사람.

특정 몬스터를 잡자마자 시도하는 사람.

특정한 장소에 가서 시도하는 사람 등등의 미신들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엔 평소 그런 것들을 잘 신봉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하는 뽑기가 연달아 실패하자 저절로 분수대에 가고 싶어졌다.

항상 지지리도 강화 운이 없는 내가, 예전 분수대 앞에서 운 좋게 성공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작은 마을인지라 크고 화려하지 않은 조촐한 분수대.

하지만 도착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흥분됐던 기분이 차분해지는 게 느껴졌다.

‘제발! 제발 유니크 하나만 떠 주세요!!’

나는 큰맘 먹고 거금 1골드를 꺼내 분수대에 던지고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참을 기도했다.

그리고 이내 심호흡을 깊게 한 번 하고, 다시금 주머니 5개를 거침없이 연타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2)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마력 회복 물약(2)을 획득했습니다.]

[몬테나의 특급 치유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으아아아! 으아! 일루전, 이 도둑놈 새끼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의 고함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바랐건만, 결국 뽑기는 또다시 물약 파티였던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그 흔한 레어 잡템 하나조차 나오지 않았다.

‘응? 근데 이거 뭐지? 타연에 보라색 물약이 있었던가?’

한데 망연자실하게 인벤토리 창을 보던 내 눈에, 새롭게 추가되어 겹쳐지지 않은 물약 하나가 보였다.

“아니, 잠깐만! 이거 그거 아냐? 금사자 기사단장 퀘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