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신검의 주인 (1)
정말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이었다.
태성 길드뿐만 아니라 휘하 길드와 동맹 길드까지 포함하면 수천 명이 있는 곳에서 이런 일을 벌이려 하다니…….
하지만 고작 다리우스 한 명을 망신주기 위해 벌이는 일이라기에는 너무 손해가 막심한 일이었다.
설령 만에 하나 죽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곳에 잠입한 적대 길드원들의 상당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친! 설마……? 아니야, 맞아!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이유가 없잖아!’
헐레벌떡 4층에 올라와 잠시 상황을 돌이켜보자,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성 길드원 중 배신자가 있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
중요한 사실은 그 배신자가 태성의 간부급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분명 신의 선물은 방송사도 모르고 있었던 이벤트였던 터라, 오직 태성의 간부진 이상만이 알고 있던 고급 정보였을 것이다.
한데 만약 배신자가 그 사실을 미리 알게 되었다면, 이렇게 대담한 짓을 벌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타이탄 에이지에서는 디바인급 장비를 가진 상태로 사망하면, 무조건 한 개 이상의 디바인급 템을 드랍한다는 설정이 있었어!’
사소한 설정들까지 대부분 계승한 타연이기에 이곳에서도 같은 설정일 확률은 대단히 높았다.
그렇게 가정했을 때, 만약 다리우스가 디바인 템을 뽑자마자 죽게 된다면 방금 뽑힌 디바인 템은 무조건 드랍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결과를 예측하게 된 놈들은, ‘다리우스를 대관식 중에 암살한다’라는 무모하지만 대담한 작전을 세운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이렇게 가정한다면 말이 돼. 여기서 다소 많은 인원이 죽더라도 다리우스를 죽이는 데 성공만 한다면……? 절대로 손해가 아니야!’
암살이 성공한다면 수많은 유저들 앞에서 적대 길드의 수장인 녀석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물론, 막대한 돈과 노력을 쏟아부은 대관식까지 엉망으로 망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다리우스에게 날개를 달아줄 디바인급 장비마저 뺏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작전이었다.
가뜩이나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다리우스.
그가 디바인급 아이템까지 갖추게 된다면, 후발 주자들이 격차를 좁히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그러니 적대 길드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또한 단독이 아니라 여러 길드가 연합했고, 동시에 내부 길드원이 배신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지게 된다?
그러면 상당수의 유저들은 비난보다는 오히려 재미난 상황이 벌어졌다며 흥미로워할지도 몰랐다.
배신이든 암살이든 간에, 이건 결국 게임이지 않은가?
게임 속에서 그 정도의 일은 유저들에게 충분히 용인될 법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서서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다, 다리우스가 곧 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빛에 휩싸였던 신화 속 기사와도 같은 모습.
그게 아직 눈에 선하건만…… 도무지 내 상상력으로는 녀석이 죽는 그림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2층과 3층에 원거리 딜러들이 방마다 꽉꽉 들어차도록 잠입한 것까지 본 이상, 다리우스가 절대 죽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만약 어설프게 준비했다면, 이렇게나 많은 인원을 극비리에 통제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배신자가 누군지 인가에 따라…… 작전이 성공할 확률은 생각보다 높을지도 몰라!’
두근두근!
이제는 심장이 주체 못 할 정도로 세차게 뛰었다.
암살 계획을 미리 눈치챈 이상, 잘하면 내게도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게임 속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신검, ‘룬 페이토나’.
놈의 주인이 될 수도 있는, 바로 그 절호의 기회가!
‘어디지? 어디서 공격하는 거야? 배신의 순간은 또 언제? 아니, 이제 곧 대관식이 끝나니 공격의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놈들도 대관식이 끝나기 직전인 지금에서야 몰려들어 왔을 거야!’
현실에서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됐는지, 눈앞이 어질할 정도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스크린 속에서 다리우스에게 다가서며 말을 건네는 마법사 캐릭터 한 명이 보였다.
머리 위로 보이는 아이디는 ‘멀린’.
역시나 다리우스의 레이드 팀 멤버이자, 뛰어난 컨트롤과 저주 테크트리의 소유자로 유명한 랭커 마법사였다.
“길마님! 설마 첫 시도 만에 신검이 나오시다니……. 역시 길마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설마 나도 신검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았구나.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아직 아나운서님과 대화 중이었는데……?”
“다름 아니라 곧 있으면 임시 점검도 있고 뽑기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으니, 이만 나가서 광장의 유저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대관식을 끝마쳐야지 않겠습니까?”
“아! 임시 점검한다는 알림창이 떴었지! 신검 때문에 정신없어서 깜빡하고 있었구나. 고맙다.”
‘멀린, 보나 마나 저 새끼구나! 저 자식이 태성 간부진의 배신자였어!’
정황상 배신자는 멀린이 분명했다.
그래야지만 2층과 3층 방 창가마다 원거리 공격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이유가 설명됐다.
많은 원딜러들이 한 사람을 대상으로 집중 폭격을 하려면, 다리우스가 주성 안의 홀이 아닌 밖으로 나와야지만 가능했다.
한데 멀린 저 자식은 딱 이 타이밍에 건물 밖, 광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또한 멀린은 다리우스의 레이드 파티원 중 유일하게도, 태성 그룹 소속이 아닌 프로게이머 출신의 개인 유저!
작년에 있었던 벤토 숲 히드라 레이드 당시 고레벨의 디버프 법사가 필요해서 스카우트했던 것은 상당히 떠들썩했던 이슈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빨리 이동해야 해!’
나는 아무 곳에나 들어왔던 방에서 나와, 복도의 정중앙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옥상에는 아직 물약 이벤트를 진행했던 태성의 길드원들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이곳 4층까지 올라온 적대 길드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중앙 쪽에 다다르자 방 대신 커다란 창들로 이루어진 거실 같은 공간, 살롱이 나왔다.
다급히 살롱의 창문을 통해 광장의 스크린을 바라보자, 이제 막 다리우스가 멀린을 뒤로한 채 홀을 나서고 있었다.
『타이토닉 관계자 여러분, 저는 이제 밖으로 나가서 마지막으로 참석해주신 유저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네, 다리우스 님. 다시 한번 신검의 주인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대관식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끝으로 종료해야겠네요. 못다 한 인터뷰는 다음번에 정식으로 다시 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하하! 당분간은 바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간을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석용 아나운서님.』
『감사합니다. 혹시 그때가 되면 신검의 정보창에 대해서도 공개하실 수 있을까요? 많은 유저분들과 시청자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사항일 것 같은데요?』
『흠……. 그건 지금 선뜻 말씀드리기에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저도 자세히 살펴볼 옵션들이 있고, 길드 간부진들과 깊이 상의해 볼 옵션도 눈에 띄는군요.』
『아! 아쉬운 말씀이군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제 이 신검의 출현으로 인해 타이탄 연대기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만큼은 이 자리에서 확언 드릴 수 있겠군요.』
『와우! 정말 굉장한 자신감이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 또한 타이탄 연대기를 즐기는 유저의 한 사람으로서도 매우 궁금해지네요. 부디 신검에 대한 정보를 하루빨리 공개하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디 랭킹 1위가 따로 있었냐? 지가 항상 타연의 새 역사를 써 왔으면서 뭘 또 새 역사가 쓰인대? 하여간 넌, 말하는 것마다 드럽게 재수 없는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다리우스는 양옆의 아나운서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주성 문을 통과해 레드 카펫을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떨리는 가슴으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이윽고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녀석이 홀에 도열해 있던 길드원들과 바리케이드를 친 광장의 길드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홀로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이 서 있는 저곳은, 원딜러들이 단일 타겟을 향해 일점사 하기에 누가 봐도 최상인 위치였다.
‘이제 곧!!’
“길마님! 잠시만요!”
“응? 멀린, 또 무슨 일이지?”
다리우스가 주성 문을 지나 레드 카펫의 중간쯤에 이른 순간, 뒤편에 있던 멀린이 다리우스를 멈춰 세웠다.
“깜박하신 게 있는 것 같아서요. 이것만큼은 받고 가셔야죠!”
[속박의 손길!]
그 말과 함께 다리우스를 향해 갑자기 마법을 캐스팅하는 멀린.
하지만 어이없게도, 마법은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쇠약의 저주!]
[아이스 터치!]
“젠장할! 진짜 마방 한번 졸라게 높네! 설마 한 개가 안 걸린다고?”
멀린은 짧은 욕설과 함께 쉴 새 없이 디버프를 캐스팅했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건지, 그런 멀린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멀린 너…… 뭐 하고 있냐고? 지금이 장난칠 상황이야? 방송 중인 거 잊었어!”
[속박의 손길!]
그러던 중 어찌 된 일인지, 빠르게 쿨타임이 돌아온 마법이 성공해 땅에서 검은 손들이 솟아 나와 다리우스의 발을 붙잡았다.
마침내 멀린의 디버프가 다리우스의 마법 방어력을 뚫고 시전에 성공된 것이었다.
“거, 걸렸다!”
그리고 멀린이 성공의 환호성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는 순간!
“지금이다! 전원 공격!!”
벌컥! 벌컥!
누군가의 커다란 외침을 시작으로, 주성 2, 3층에 있는 수십 개 방의 창문이 모두 열리며 원거리 공격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다리우스 한 명만을 위해 풀 차징으로 준비 중이던 공격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광장 쪽 바리케이드 쪽에서도 수백 개의 마법과 화살들이 다리우스를 향해 날아왔다.
주성뿐만 아니라 광장 인파의 최전방에도 미리 다리우스 암살 팀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아둔 모양이었다.
“배, 배신이다!”
“멀린! 저 새끼가!”
“일단 길마님을 보호해!”
다급한 태성 길드원들의 고함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그저 방패를 꺼내, 제자리에서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쉴드 좀 줘! 힐! 힐도!!”
콰콰콰 쾅!
다리우스의 다급한 외침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근방의 힐러들이 힐과 상태 이상 회복 스킬을 걸어주려 다가갔다.
하지만 본래 공격 스킬보다는 훨씬 짧은 힐링 스킬의 사정 범위 때문에, 다리우스에게 들어오는 힐과 회복 스킬은 전무했다.
그저 사정거리가 긴 쉴드 만이 수십 개 생성되어 블로킹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원거리 공격들로 인해 순식간에 깨져버릴 뿐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리우스는 이런 집중포화를 방패를 뒤집어쓴 채 오직 자가 버프 몇 가지와 물약만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으아아아! 이렇게 죽을 순 없다!”
하지만 아무리 랭킹 1위라도 수백 명의 다구리를 제자리에서 피하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끝없이 쏟아지는 화살과 마법 공격들 사이로, 결국 다리우스의 캐릭터가 뒤집히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직후, 놈이 천천히 잿빛으로 산화하는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모든 유저들에게 송출됐다.
“말, 말도 안 돼! 다리우스가 죽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타이탄 연대기 랭킹 1위이자 최초의 국왕, 그리고 현(現)지존 다리우스.
그런 그가 수만 명의 유저들 앞에서 사망했다.
광장 안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채로 그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난 남들과 달리, 스크린만 보고 있진 않았다.
타탓!
다리우스를 향한 총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열고 은신인 채로 뛰어내렸던 것이다.
‘옆에 있던 아나운서와 카메라맨은 전부 집중포화의 범위 안이라 분명히 사망했다! 그러니 타이밍만 맞는다면, 다리우스의 드랍템을 충분히 먹을 수도 있어!’
일부러 주성 정문 바로 위에 있는 곳으로 이동한 뒤 타이밍을 재고 있던 터라, 나보다 가까이에서 접근하는 유저는 없어 보였다.
완벽하고 정확한 타이밍으로 공격이 집중됐기에, 아직 다리우스 곁으로 다가갈 생각을 떠올린 유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땅에 착지하고 나니, 이제 막 죽어서 산화하고 있는 다리우스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이 사라진 그 자리에, 검 한 자루가 거꾸로 꽂혀 있는 모습이 내 두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룬 페이토나>
최초의 디바인 무기!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다리우스는 신검을 드랍해 버리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신검까지 본 이상, 더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본능과도 같이 신검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내 귓가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킬명 하나가 들려왔다.
“블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