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7화 (17/350)

17화 일인 공성전 (1)

이런 온라인 RPG 게임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보는 것들이 있다.

가장 강하고 좋은 캐릭터를 키우려면 어떤 클래스를 고르고, 어떻게 스탯을 찍고, 어떤 스킬 테크트리를 타고, 어떤 아이템으로 세팅해야 할까?

등등의 공상들 말이다.

나라고 그런 적이 없겠는가?

사실 나만큼이나 많이 구상해본 유저도 드물었다.

‘방패 테크트리를 탄 민체 힐기사. 거기다가 이 흡수 옵션의 레전더리 방패를 끼면 개쩔겠는데?’

‘화염 마법 테크트리를 탄 올 지력 법사. 캐스팅 도중에 이 얼음 활로 간간이 공격하면 혼자 못 잡을 게 없겠어!’

그 누구도 생각 못 해봤을 조합들을 떠올려보는 일은, 방구석 솔플러였던 내가 타연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실제로 ‘도트뎀 근력법사’라는 캐릭이 잠시 타연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미 1년 전에 먼저 구상해 봤던 것이었다.

이렇게 아직 타연에 등장한 적은 없지만, 나의 공상 중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캐릭이 있었다.

낮은 HP와 방어력 때문에 탱커를 상대하거나 다대일 전투에 취약한 도둑 직업.

그 도둑으로 절대 죽지 않으면서 혼자 무쌍을 찍을 수 있는 테크트리가!

“뭐? 마쉴 도둑?”

“응. 버림받은 스킬 ‘마나 쉴드’. 그걸 극대화한 도둑인 거지.”

파티창으로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어느새 집 앞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며 긴 새벽이 끝나감을 알리고 있었지만, 아직은 출근하는 사람들이 없어 고요했다.

“마법 방어력과 여유 MP를 위해 올마력 스탯을 찍는다. 그리고 ‘공통 스킬’인 쉴드를 5성까지 찍어서, ‘심화 스킬’인 마나 쉴드를 배운다. 이러면 은신과 함께 막강한 생존력을 얻는 대신 형편없는 공격력을 갖게 되겠지만, 신검이라는 개사기 무기가 있으니 커버가 가능할 것이다. 이 말인 거지?”

“맞아. 사실 지금 같은 경우는 신검이 갖춰져 있으니 템 부분은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이지. 심지어 스킬 레벨업 옵션에, 타이탄 소환까지도 있으니 내가 예전에 구상해봤던 수준보다 훨씬 더 오버 스펙이야!”

“뭔 헛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대충 들어보니 말은 되는 것 같은데…….”

“그치? 혹하지? 어차피 신검을 갖게 된 이상 유저들에게는 만년 타겟팅이 될 테니, 파티 플레이 같은 건 꿈도 못 꾸게 될 거야. 혹시 모를 배신자를 걱정하며 게임 할 바에야 길드 생활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고.”

“아마 그렇겠지. 뭐, 원래부터 넌 솔플러였다만…….”

“아무튼 그렇다면 계속 쭉 솔플만 해야 할 텐데, 거기에 이 테크트리보다 좋은 게 없어. 문득 떠오른 옛날 아이디어 중 하나인데 생각할수록 딱 들어맞더라. 만약 내가 생각한 세팅을 완성할 수만 있다면, 신검을 가장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캐릭은 기사나 마검사 따위가 아닌 도둑이 될 거야!”

지금도 웬만한 도둑은 5성급의 탐색 스킬이 없다면 은신을 먼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설령 발견하더라도 이속 차이 때문에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공격을 위해 스스로 은신을 풀기만을 기다리거나, 범위 공격이나 예측 공격을 운 좋게 맞춰 은신이 강제로 해제시키는 것.

현재 도둑을 잡는 정석 사냥법이란, 그렇게 은신이 풀려 도망치기 전에 상태 이상기를 걸거나 순간적으로 화력을 집중해서 후딱 잡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파티 플레이에 끼기 힘든 도둑 주제에 은신을 5성까지 찍었다는 것은, 사냥은 포기한 채 PK 위주의 솔플만 하겠다고 공언한 것과 다름없었다.

한데 여기에다 쉴드와 마나 쉴드까지 5성을 찍은 도둑 캐릭이라니?

만약 내가 이 ‘마쉴 도둑’이란 놈을 완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타연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잡캐릭이 나타났다고 평가받을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웬만큼 좋은 템들을 찬다 해도 어지간하면 똥캐릭이 되겠지만, 만약 이 룬 페이토나를 차고 레전더리 템들로 방어구와 악세들을 도배한다고 가정한다면……. 와, 이거 되겠는데? 상상해보니 견적이 나와. 어지간해서는 죽일 방법이 없으니 아주 혼자 무쌍을 찍고 다니겠구만?!”

“그치? 기발하지? 이 테크트리의 가장 큰 장점은 도둑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스턴이나 넉백 같은 물리 상태 이상기를 마나 쉴드가 카운터 쳐준다는 거야. 물론 마법 계열 상태 이상은 마쉴이 커버를 못 쳐주지만, 마력 스탯만 찍다 보면 마법 방어력이 높아져서 저항 확률도 높아지겠지. 그렇게 모든 상태 이상을 겁낼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면, 이론상 PVP 전에서 죽을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는 거지!”

마나 쉴드는 일반적으로 마법사들만 주로 찍는 스킬.

그래서 현중이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언하기 위해, 5성을 달성한 사람이 올린 스크린샷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마나 쉴드(심화 스킬): ★★★★★]

* 마나 소비: 30

* 사용 대기 시간: 10초(on, off시)

* 피격당하는 데미지를 현재 보유한 MP의 소모로 대신하는 쉴드가 온몸을 감쌉니다.

* 생성된 마나 쉴드는 피격당하는 모든 데미지를 60% 경감시킵니다.

* 마나 쉴드의 활성화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물리적인 상태 이상에 저항합니다.

* MP 수치가 0이 되면 마나 쉴드는 자동으로 비활성화 상태로 전환됩니다.

“이것 봐봐, 1성에 40%였던 데미지 경감이 5성에는 60%나 돼. 이건 다시 말해 피통이 2.5배로 늘어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지. 근데 8성이 되면 몇 배겠어? 거기다 스턴이나 넉백 같은 물리 상태 이상은 면역에다가, 설령 MP가 다 닳아도 마지막에는 HP가 남아 있어. 그럼 그냥 마나 물약 빨면서 8성 은신으로 도망가면 되는 거야. 어때? 죽을 일이 없겠지?”

“그러네. 피통이 늘어나는 개념도 좋지만, 확실히 이 물상 면역이 신의 한 수네. 도대체 도둑이 마쉴 찍는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어? 하여간 네가 꼼수 발견해내는 것만큼은 내가 옛날부터 인정했다 인정했어!”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마법사라면 공통 스킬인 쉴드를 5성까지 찍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이나 파티원, 심지어 허공에도 생성할 수 있었기에 방어용으로 아주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쉴드를 5성까지 찍게 되면 습득이 가능해지는 심화 스킬, ‘마나 쉴드’까지 익힌 마법사도 상당수 존재했다.

마법사들은 가장 강력한 화력을 보유했지만 가장 허약한 방어력과 HP를 가진 클래스.

그 탓에 근접 공격 직업군과의 1:1이나 대규모 PVP 시에, 소위 말하는 원 콤보에 죽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허무한 죽음을 피하고자, 이 스킬을 배우는 유저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1성까지만 찍고 가끔 PVP 전에서나 활용하는 정도였지, 마나 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성장시키는 마법사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5성까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한 유저는 타연을 통틀어도 두 자리를 넘어서지 않을 만큼, 정말 인기 없는 스킬이었다.

일단 HP 대신 MP를 소모하다 보니, 정작 스킬을 쓸 MP가 항상 모자라기 일쑤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도통 HP가 닳지 않으니 아군의 힐 마법이나 회복 스킬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사실상 유저들에게는, 회생 불가의 ‘쓰레기 스킬’로 불리고 있었다.

“마쉴이 쓰레기 스킬이라고? 천만에! 타연에 쓰레기 스킬 따위란 없어. 사람들이 내가 마쉴을 쓰는 걸 보게 되면, 바로 재평가하게 될걸? 그러면 내가 그저 운만 좋았던 놈이 아니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증명이 되겠지!”

와자작!

취기가 오른 건지 미래를 상상하다 보니 흥분하게 된 건지, 나는 쥐고 있던 맥주 캔을 으스러뜨리고 말았다.

“지환아. 그래, 네 말대로 다 좋다고 쳐. 근데 장비는 어쩔 건데? 네 계획대로라면 신검뿐만 아니라 나머지 장비도 개쩔게 맞춰줘야 캐릭이 완성되는 거 아냐? 막말로 적들은 레전더리를 둘둘 감고 있는데, 검만 좋아서 뭘 어쩔 거냐고!”

“하하하! 맞아, 맞아. 그게 어젯밤, 날 잠 못 들게 만들었던 유일한 걱정거리였지. 근데 그 마지막 걱정거리도 오늘 새벽에 말끔히 해결됐단다. 적들이 레전더리를 둘둘 감고 있을 거라고? 오히려 그러면 더 좋아! 흐흐흐!”

“뭐야, 이 반응은? 너 설마 아까 풀악셀 밟아보겠다고 한 소리가 그거냐? PK?”

내가 새벽에 했던 것이라고는 타이탄의 스펙 확인과 PK뿐이었으니, 녀석은 내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랬다.

난 이 타이탄을 통한 PK로 나머지 장비들을 맞출 생각이었다.

“이그젝틀리!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뒤치기로 득템하는 거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갑자기 타이탄을 소환한다면, 못해도 수백 명은 잡아낼 수 있을걸?”

“야!! 너 미쳤냐? 너 그러다간 뒤져! 그런 짓 했다가 만약 나중에 네 신상이 들통이라도 나게 되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현실에서 맞아 뒤질 수도 있다고! 이게 아주 타연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살벌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안 돼! 절대로 하지 마!”

역시 현중이다웠다.

이놈은 방금 내가 한 말의 파급력과 위험성을 곧바로 가늠해냈다.

또한 이놈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게 느껴지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야야!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당연히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소리지. 내가 언제 무차별 PK를 한다고 했어? PK를 하더라도 명분만 있다면 괜찮잖아!”

“PK가 PK지, 타이탄으로 PK 하면 욕 안 처먹냐? 그렇다고 짧은 소환 시간 동안에 머더러만 골라가면서 잡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 도망부터 갈 텐데 몇 명이나 잡겠어!”

“물론 머더러만 잡는 방법은 없지만…… 태성만 골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있잖아?”

“뭐? 태성만 어떻게? 어라, 너 설마……?”

4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소환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유저들을 PK 해야만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장비를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내 생각에 오직 2가지뿐이었다.

하나는 피닉스나 히드라, 정령왕과 같은 대형급 필드 보스를 레이드할 때.

나머지 하나는 바로 ‘공성전’이었다.

“마침 내일이 공성전 있는 일요일이잖아? 내일 공성전이 끝나기 직전, 난 놈들 한복판에서 타이탄을 소환할 거다. 태성에게 전쟁 선포 걸어서 정식으로 공성전에 참전한 상태로!”

생각했던 것보다 이른 것 같지만, 어쨌든 내일부터 시작이었다.

나와 태성과의 전면전이!

* * *

현중이 녀석이 자야겠다며 돌아간 후에도, 난 내일 저녁에 있을 공성전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접속했다.

캡슐에 내장된 바이오 체크 기능 때문에 음주로 접속이 안 될까 봐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한 수치를 넘어서진 않았다.

타연 속 공성전은 모두 매달 2번째 주 일요일 저녁 6시로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남녀노소, 직업 유무를 떠나서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성의 공성전이 같은 시간대에 진행됐기에, 전략과 인력 배분에 대한 눈치싸움도 치열했다.

태성 길드 같은 경우는 성을 5개나 갖고 있어서, 내일 내가 번스타인 성에 간다고 하더라도 다리우스를 마주칠 확률은 낮은 편이었다.

‘일단 경매장에서 검색부터 해 봐야겠지? 어디, 물량은 충분히 있으려나?’

사람이 적은 이바슈 성이라고 하더라도 거래소는 늘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

하지만 은신 덕분에 안심한 채로, 판매창에 ‘마력석’을 검색해보았다.

[마력석(33): 개당 120골드]

[마력석(22): 개당 121골드]

……………………

[정제된 마력석(14): 개당 677골드]

[정제된 마력석(8): 개당 678골드]

……………………

[빛나는 마력석(5): 개당 1,029골드]

[빛나는 마력석(6): 개당 1,030골드]

수천 개나 떠오르는 등록 매물.

순차적으로 마력석, 정제된 마력석, 빛나는 마력석 순으로 매물이 적었다.

‘좋았어! 역시 빛나는 마력석의 시세가 크게 비싸지 않구나. 쓸 수 있는 곳이 없으니, 한편으론 당연한 거겠지만 말이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마력석’.

연금술이나 마법 아이템 등의 제작과 사용에 소모되기에, 가장 활발히 거래가 이루어지는 아이템 중의 하나.

하지만 사냥으로 몬스터에게 얻거나 특정 필드에서의 채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소모성 재료 아이템이었다.

‘정제된 마력석’은 그 마력석을 유저들이나 NPC가 가공한 아이템이었는데, 아무래도 추가로 인력과 제작 시간이 들어가다 보니 몇 배나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관건은 빛나는 마력석이었는데…… 이 정도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빛나는 마력석’.

일명 빛마석이라 불리는 이 재료는 드랍률이 낮고 이름도 ‘빛나는’이 붙은 만큼, 고급 재료 아이템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 쓸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현재 랭커급의 고레벨 유저들이라고 해봤자 겨우 몇몇 정도만 제작에 정제된 마력석을 사용할 정도로, 연금술의 전반적인 레벨은 아직 낮은 편이었다.

따라서 마력석은 불티나게 팔리는 반면 정제된 마력석은 간간이 팔리는 수준이었고, 빛나는 마력석 같은 경우는 실수요자가 전혀 없었다.

오직 미래의 수요에 대비하는, ‘장사꾼’들을 제외하고는!

‘좋아.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소환 재료 수급 걱정은, 겜 끝날 때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거기다 빛마석은 관심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잘하면 시세 조작도 가능할 품목처럼 보이는데? 이건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살펴봐야겠다.’

아직 사용처가 없다지만 그래도 싸게 매물을 올려놓은 유저들이 적었기에, 일단 4개만 구입했다.

소환 시간이 대략 4분쯤밖에 안 되니까, 현금 시세로 보면 분당 10만 원이 소모되는 셈이었다.

‘원래 후덜덜하게 비싼 거지만…… 타이탄에 한 번 타보니깐 이 정도면 거저다, 거저!’

안 그래도 요 며칠 팍팍 써대서,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뒀던 골드가 어느새 1만 골드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걱정될 건 없었다.

원래 뽑기로 먹은 유니크 목걸이로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었지만, 새롭게 팔 대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10 철사자 기사단의 양손검(레어): 97,000골드]

[+9 철사자 기사단의 양손검(레어): 58,500골드]

[+9 철사자 기사단의 양손검(레어): 57,900골드]

“와! 역시 무기는 무기구나! 이게 도대체 얼마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