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8화 (18/350)

18화 일인 공성전 (2)

검색창에는 내가 조금 전에 득템한 +9 레어 검의 매물들 시세가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가장 싸게 올린다고 해도, 이미 득템한 값어치가 현금 시세로 500만 원이 넘어갔다.

이러니 내일 공성전이 벌써부터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내일,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군자금부터 바싹 마련한다!’

나는 가장 싸게 올라와 있는 매물보다 100골드 더 싸게 등록하고는 거래소 밖으로 나왔다.

다음으로 할 일은 내일 공성전에 정식으로 참여하기 위해 나만의 길드를 만드는 일이었다.

“타연을 오래 하다 보니, 내가 이곳에 길드 만들려고 오는 날도 있구나!”

예전에 필드 보스만 전문으로 사냥하던 레이드 길드에 잠깐 가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엄격한 규정과 순찰 등의 업무들이 갑갑했던 나는,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탈퇴하고 말았다.

후에 이 길드가 너무도 잘 성장했기에 탈퇴를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길드 생활이라는 것은 항상 나와는 거리가 먼일이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어…… ‘길드 창설’이란 걸 좀 해보려고.”

“길드 업무는 2층에 있는 제리타 서기관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내성 가까이에 있는 관공서 입구를 들어서서 은신을 풀자, 1층에 있는 NPC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길드 창설은 보통 성마다 하나씩은 있는 관공서에서 등록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성이나 마을의 빈집과 빈 땅들의 매매 업무, 지역 상인으로 등록해서 좌판이 아니라 정식으로 상점도 개설 등의 게임 내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는 더더욱 관계가 없는 곳이기도 했지.’

나는 안내대로 2층에 있는 NPC 서기관을 찾아가 곧바로 길드 등록을 신청했다.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등록 비용 1천 골드가 필요합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Yes]

[창설하실 길드의 이름을 입력하세요.]

“어라? 그러고 보니 길드명을 생각해 보지 않았구나?”

하지만 별로 고민할 건 없었다.

만약 계획한 대로 PK가 이루어진다면, 다음 달 공성전에서는 두 번 써먹기 힘든 PK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한번 사용하고 말소시킬 길드.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어서 신청했다.

[자금마련]

[길드 ‘자금마련’의 등록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길드 마스터는 ‘매그넘03’ 님입니다.]

NPC는 계속해서 길드와 관련된 주의 사항 및 길드 마크 등록 방법 등을 안내해 주었으나, 나는 무시하고 곧장 길드 마크 제작툴 창을 열었다.

파란 직사각형 안에 TS라고 적혀있는 태성의 길드 마크.

난 그 길드 마크를 서칭해서 복사한 뒤, 중앙에 해골 표시를 큼지막하게 박아 넣었다.

‘해골만 박아 넣은 건데도 그럴싸한데? 어쨌든 대충 다 끝냈나? 그럼 이제부터 내일 공성전 연구만 하면 되겠구나.’

번스타인 성은 어제 그 난리를 쳤던 곳이라 구조는 빠삭했다.

굳이 위험하게 직접 가 볼 필요는 없었기에, 게임 내에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모두 끝마친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동안 한 번도 참여해 보지 않았던 공성전에 대해 분석해보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간 TV로만 시청했던 공성전과, 내가 직접 참여할 공성전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인터넷과 방송들을 뒤져보기 위해 그만 로그아웃하고 캡슐을 빠져나왔다.

* * *

공성전.

수없이 많은 유저들이 울고 웃었던 콘텐츠.

많은 전략과 배신, 에피소드를 탄생시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이야깃거리를 꽃피우고 있을 콘텐츠.

아직까지 타이탄 시리즈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이 ‘공성전’ 만큼은 알고 있을 정도로 타연을 대표하는 전투였다.

현재 게임상에는 ‘인스턴트 던전’과 ‘공성전’, 두 콘텐츠만 예외적으로 제한적인 동영상 촬영이 허용되었기에, 관련된 방송 자료가 상당히 많았다.

억 단위 조회 수가 넘어가는 너튜브 영상에서부터, 댓글이 수만 개가 달린 전략 게시글까지…….

나는 가장 최고의 성과를 낼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꼬박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관련 영상과 전략을 전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내가 선택한 성은 역시나 번스타인이었다.

가장 최근에 오픈된 성은 아니지만 좋은 사냥터가 많아 다달이 들어오는 세금이 가장 많은 성.

그 때문에 이곳을 노리는 길드도 많았기에, 태성 길드는 매달 번스타인 성에 가장 많은 정예 인원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먹잇감이 많을뿐더러 익숙한 성이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베스트인 셈이었다.

“오늘 공성전 왠지 꿀잼일 것 같지 않냐?”

“그동안 아무리 쳐봤자 한 번도 뺏긴 적이 없었으니, 이번엔 치는 척만 하다가 다른 곳으로 빼지 않을까?”

“여기 세금이 얼만데 설마 포기하겠어? 전용 던전 템도 요즘 엄청 핫하던데?”

웅성웅성.

공성이 시작하기까지는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곳 번스타인 내성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는 온갖 구경꾼 유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유저들을 지켜보며 오늘 내가 할 일에 대해 차분히 되돌아보고 있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길 잘했어. 내가 모르던 업데이트가 있었다니…….’

[* 공성전에서 사망할 시에는 필드에서 사망했을 때보다 아이템 드랍 확률이 80% 낮아집니다.]

얼마 전에 업데이트된, 지금까지의 공성전에는 없던 사항이었다.

나는 공성전은 참여는커녕 가끔 방송으로나 한 번씩 보는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특히 노가다만 하느라 놓치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의 공성전은 유명세에 비해 다소 저조한 공성 참여율 덕분에, 속칭 참여하는 길드만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평가를 종종 받았다.

그 때문인지, 일루전은 더욱 많은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공성전을 참여하도록 유도하고자 이 같은 업데이트를 진행한 듯싶었다.

공성전에 추가되는 성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내가 급돈 모을 구석이 이거 말고 있기나 해? 어차피 길드도 만들었고 공성전은 한 달에 한 번밖에 없어. 드랍률이 낮아졌다면 더 많이 죽이면 되겠지 뭐!’

어차피 필드 위의 어중이떠중이들 수백 명을 잡는 것이 아니라, 수성전을 치르는 태성 정예 길드원들이 내 목표였다.

조금 덜 드랍하더라도, 놈들이 드랍하는 것이라면 하나같이 고강화거나 고등급 아이템일 것이 분명했다.

“인천연합 길드가 오랜만에 보이는데? 어? 쟤들은 올림푸스 아냐? 역시 오늘 공성전도 여기가 메인이겠구나!”

“며칠 전 다리우스 잡던 것처럼, 몇몇 길드들이 연합해서 치려나?”

“그동안은 연합 안 해서 못 먹었냐? 아무리 연합해도 태성은 태성이야!”

공성전은 십수 개의 성들이 동시에 진행하는 만큼 유저들이 분산되기 마련인데, 이 성에는 대충 훑어봐도 유명한 길드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그만큼 핫한 성이라는 반증이었다.

[공성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빠빰! 빠빠빰!

8성 은신 덕에 수많은 유저들 틈에서도 버젓이 구경하고 있던 내게, 어느새 공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 가자!!”

“오늘은 반드시 먹자! 화이팅 올림푸스!”

동시에 주변의 수많은 유저들이 내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질세라, 서둘러 태성길드를 향해 1시간 동안 진행될 전쟁을 선포했다.

[‘태성’ 길드를 향해 ‘자금마련’ 길드가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오! 역시 제삼자 입장에서 방송으로 보던 것과는 완전 다른데?’

공성전에 참여하게 되면, 자신과 동맹 길드를 제외한 모든 유저들이 그 즉시 정당방위 공격이 가능한 상태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공성전에 참여한 모든 유저들의 머리 위로 정당방위 표식이 떠올라 있었다.

아직은 안전지대인 외성 마을 안이라 괜찮았지만, 나 또한 한 발짝이라도 내성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바짝 긴장해야만 했다.

뜬금없이 눈먼 광역 마법에 맞아 은신이라도 벗겨지게 된다면, 곧바로 타이탄을 소환해야만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즉 지금의 난, 유저들의 눈에 걸어 다니는 ‘초특급 황금 고블린’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됐다.

“아, 또 죽었어! 이러다가 렙따 하는 거 아냐?”

그 많던 사람들이 전부 내성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와중에 벌써 죽었는지 부활해서 다시 뛰어나가는 유저들도 꽤 보였다.

‘저렇게 부활하자마자 곧바로 참전하는 걸 보니 부활 후유증이 사라지는 운영자 버프를 받은 사람이 많나 보네. 어쩌면 이 버프도 오늘 공성전의 변수가 될 수 있겠는데?’

몇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관식에 모였던 이유가 경험치뿐만 아니라, 오늘 공성전을 염두에 뒀던 것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꾸역꾸역 내성 안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본 지 2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내가 움직여도 괜찮아 보일 만큼 사람들의 수가 적어진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성 문을 뚫는 데 성공해, 격전지가 내성 안 광장 쪽으로 옮겨진 모양이었다.

[은신!]

나는 은신을 다시금 초기화시킨 다음, 내성으로 향하는 해자 위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갔다.

공성전이 시작되면 각 내성 광장에는 10미터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솟아오른다.

이 오벨리스크를 무너뜨리고 지키는 것이, 바로 공성전의 성패를 결정했다.

어떻게든 1시간을 지켜내면 수성에 성공하는 것이고, 10분 만이라도 오벨리스크를 무너뜨리면 그 성의 공성은 바로 종료된다.

물론 성을 차지하는 것은 오벨리스크의 ‘막타’보다 ‘누적 데미지’를 가장 많이 입힌 길드가 쟁취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기에 주변의 모든 유저들은 광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경로에서 벗어나, 엊그제 다리우스가 죽는 걸 지켜봤던 주성 건물의 4층으로 진입했다.

몇몇 방에는 광장 쪽을 향해 자리 잡은 태성 측 원딜러들이 보였으나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공격보다는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보호하는 데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한 진형.

얼핏 봐도 천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오벨리스크를 빼곡히 감싸고 있었다.

‘크아, 화려하구나! 공성전이 이 게임의 꽃이라는 불리는 이유를, 확실히 직접 참여해 보니까 알겠다. 이거 현장감이 장난 아니네!’

광장 위로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온갖 마법과 화살들.

근접 유저들끼리 맞부딪쳐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휘두르는 무기들.

온갖 스킬들이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함성, 그리고 사망하며 질러대는 비명 소리.

마지막으로 온 사방에서 번쩍거리며 먹어대는 물약의 빛깔 효과와 쏟아지는 힐 스킬의 빛무리까지!

실제 전쟁터에 참여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긴박해 보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콰과과광!

그렇게 4층 창문가를 통해 전투 현장을 잠시 감상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위층 옥상에서 오벨리스크로 전진하는 적대 길드원을 향한 마법 공격이 쏟아졌다.

TOT(Time On Target) 사격과도 같은 집중포화!

그 속에서 낯익은 마법 효과 하나가 똑똑히 보였기에, 나는 혹시나 해서 8성 은신을 믿고 옥상으로 올라가 봤다.

‘오! 여긴 역시 마법사 부대가 자리 잡은 건가!’

옥상 출입구는 태성 측 기사 십여 명이 봉쇄하듯이 막고 있었는데, 그사이 너머로 마법사 무리 100여 명 정도가 난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중에서도 익숙한 아이디 하나를 단번에 발견해 낼 수 있었다.

홍당무!

바로 엊그제 이곳 옥상에서, 나를 에어 밤 스킬로 저격했던 바로 그 랭커 마법사였다.

‘네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더라? 대놓고 말하지 말고…… 들릴락 말락 말하랬나?’

지금 생각해봐도 재수 없는 여자였다.

그 말이 분명, 내 귀에 들릴 걸 알면서도 내뱉었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원래 내가 난입하기로 점찍었던 저쪽 지붕보다 여기가 더 좋아 보이는데?’

생각지 못하게 홍당무를 발견했으나, 이곳은 난입을 시작할 장소로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아무리 타이탄의 위력이 대단하다곤 해도, 수백 명이 넘어가는 유저들의 집중포화를 끊임없이 버텨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내가 이번 공성전 전략을 연구하면서 가장 중점 뒀던 부분이, 바로 원거리 공격 유저들이었다.

보통 인원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수성 측은, 당연히 공성 측보다 진형을 더 잘 갖출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는 수성 측이 갖는 어드벤티지였는데, 그래서 대부분은 마법사단과 궁수단을 따로 조직한 뒤 접근이 어려운 곳에 배치해 두었다.

이 옥상은 그러한 마법사단이 위치한 장소 중 한 곳.

내가 난입을 시작할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얼떨결에 홍당무가 있던 이곳을 찾아낸 것이다.

더불어 이 옥상은 주성의 가장 중앙 부근이었기에, 이곳에서 등장한다면 모든 이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유저뿐만 아니라, ‘방송사들’까지 말이다.

“올림푸스, 돌아온포쉐돈!”

“피닉스, 댜크홀스!”

“레미제라블, 강릉잼민이!”

펑! 펑!

초 단위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홍당무의 타겟팅 지시가 떨어지면, 곧이어 수십 명의 마법 공격이 동시에 날아갔다.

공격이 어설프게 분산되어 들어가면, 힐이나 자가 버프 등으로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일 타겟팅을 향해 동시에 마법이 쏟아져 들어가니, 제대로 버텨내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죽음의 선고!

홍당무의 입에서 불리는 아이디는 눈치 빠르게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맞고 죽어버리거나.

이 둘 중 하나밖에는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기가 막히는구나. 방송으로도 봤지만, 눈앞에서 보니 군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체계적이네!’

어느새 나는 입구를 막고 있던 기사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마법사 군단의 포격을 대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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