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3화 (23/350)

23화 매지컬 씨프 (1)

굳이 몬스터들의 등급을 구분해 두지 않은 타연이지만, 다른 게임들 기준으로 본다면 바위 골렘은 ‘정예’ 수준의 몹이었다.

‘그런 몹을, 11렙짜리가 혼자 10방 남짓으로 잡아버리다니……!’

대충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잡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바위 골렘은 내가 초보 시절, 힘겹게 30레벨을 넘기고 겨우겨우 파티에 꼽사리 껴서 잡았던 몹이었으니 말이다.

문득, 잠시 잊고 있었던 일도양단 패밀리와 다리우스의 차가웠던 경멸의 눈빛이 떠올랐다.

‘돈 많은 놈들은 처음부터 이렇게 게임 해왔다는 거지……? 그래 놓고는 그따위로 지 잘난 듯이 약하고 쪼렙인 사람들을 무시했던 거고?’

이제 뒤늦게나마 나도 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 새롭게 레벨업을 시작한 나조차도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빨리 너희들을 따라잡게 될지……. 그래서 너희들을 마음껏 썰어 줄 날이 얼마나 금방 찾아오게 될지가 말야!’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필드 곳곳에 쌓여있는 바위들을 하나씩 깨워 가며 골렘을 정리해 나갔다.

* * *

번쩍!

솨아아!

“와! 그새 또 레벨업이 돌아왔었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사냥했던 걸까?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잡고 또 잡다가, 문득 상태창을 보니 어느새 스킬 포인트가 하나 더 주어진 상태였다.

“벌써 28레벨이었어? 어차피 마력만 찍을 거라서 스탯도 안 찍으며 사냥만 했더니, 이렇게까지 많이 올랐는지도 모르고 있었네. 그럼 이걸로는 매직 미사일을 찍어볼까나?”

나는 상태창을 열어 여분의 자유 스탯은 모두 마력을 찍은 뒤, 인벤토리 창에 넣어 온 ‘매직 미사일’ 스킬북을 클릭했다.

[‘스킬북: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여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매직 미사일(공통 스킬): ★]

* 마나 소비: 20

* 사용 대기 시간: 60초

* 지정한 목표물을 향해 유도기능이 있는 무(無) 속성의 마법 미사일 1개를 발사합니다. (마법 공격력의 150%)

* 목표물에 적중하여 100이상의 데미지를 입혔을 시에는 대상이 0.2초간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마법을 저항하거나 가드했을 경우에는 발동하지 않음)

타연의 스킬들은 대부분 스킬북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직업을 선택하면 배울 수 있는 고유 스킬은 직업 퀘스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는데, 그 보상 또한 이런 스킬북으로 주어졌다.

그래서 퀘스트를 하지 않고 골드로 사서 배우는 유저도 있었는데, 그들 때문에 직업 퀘스트 노가다만 하는 유저도 존재했다.

여하튼 내가 레벨업 효과로 번쩍거리는 빛을 자꾸 뿜어대다 보니, 아무래도 눈에 띄었던 모양이었다.

멀리서 알콩달콩 사냥하던 파티에서 한 명이, 내가 잠시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다가왔다.

“저기요, 님! 아까부터 지켜봤는데요. 보아하니 솔플 중이신 거 맞죠?”

아이디 ‘쾌남서준’이라는 전사 캐릭터였다.

“네, 그런데요. 어쩐 일이세요?”

“아, 다름 아니라 아이템 맞춰 놓고 키우시는 거 같던데……. 아무리 그래도 바위 골렘은 공격력이 세서 솔플하시면 지금처럼 피타임 좀 가져야 하잖아요? 저희 파티에 벌써 힐만 5성까지 찍은 힐러가 있는데, 혹시 같이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워낙 골렘이 많아서 함께하시는 게 효율이 더 좋을 거 같아서요. 혼자 사냥하면 심심하기도 하실 테고요!”

“죄송하지만 전 혼자가 편해서요. 말씀은 고맙지만 그냥 물약 먹으면서 혼자 사냥할게요.”

쾌남서준의 뒤로 보이는 파티원들을 보니, 전직을 마친 듯한 궁수와 힐러가 보였다.

그의 말대로, 함께 사냥한다면 몹을 끌어오는 시간도 단축하고 힐러의 힐도 받을 수 있어 더 빠른 사냥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난, 계속 돈을 처바르며 사냥하고 있거든.’

하나에 무려 20골드가 넘어가는 상급 체력 물약.

난 그 상급 체력 물약을 아낌없이 마셔 가며 사냥하는 중이었다.

이러니 쉬지 않고 사냥해도 줄곧 풀피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진 자들의 사냥법에 ’피타임‘이란 단어는 없는 법이지.’

예전에는 물약값이 아까워서, HP가 많이 닳으면 자리에 주저앉아 피 회복 시간을 가져가며 사냥했다.

이렇게 아낌없이 부자 현질러처럼 사냥을 시작한 지 얼마 됐다고, 이젠 왠지 그런 지난날들이 까마득히 먼 옛날 일로만 느껴졌다.

“아, 돈이 많으신 분이셨구나. 피타임하는 줄로 착각했네요. 그럼 혹시 언제까지 사냥하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마 3시간은 더 할 듯싶은데…… 왜요?”

“와, 오신 지 좀 되신 거 같던데 파이팅이 엄청나네요! 저희는 앞으로 2시간쯤 더 할 생각인데, 그럼 동선이 안 겹치게 멀찍이서 사냥할게요. 열렙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님도 열렙하세요.”

파티 참여는 그냥 즉흥적으로 물어봤던 것인지, 쾌남서준은 금세 수긍하고 자기네 파티로 돌아갔다.

‘냄새가 좀 나는데? 파티 참여야 그럴 수 있지만, 사냥 시간은 왜 물어? 역시…… 내가 너무 눈에 띄게 사냥했나?’

쾌남서준과의 대화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담백했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욱 느낌이 께름칙했다.

오랜 게임 짬밥에서 느껴지는 예감.

‘뒤치기’의 스멜이 물씬 풍겨왔던 것이다.

‘일단 아닐 수도 있으니, 빨리 렙업부터 더 해야겠다. 그림자 밟기만 찍어도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말야.’

이곳이 초반 열렙에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라 온 것이기에, 계속 머무르는 게 약간 위험해도 당장 갈 사냥터가 마땅찮았다.

그리고 곧 있으면 달성할 30레벨은, 드디어 타연에서 직업을 정하게 되는 전직 가능 레벨이었다.

그러니 다른 곳에 가는 것보다는, 얼른 30레벨부터 찍어서 도둑 캐릭의 고유 스킬을 찍는 것이 최선으로 보였다.

* * *

우르르 쿵, 우르르 쿵!

레벨업을 제법 한지라 처음 왔을 때보다 더 수월하고 빠르게 바위 골렘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요구 경험치는 늘어났어도 레벨업 속도는 아직도 크게 줄어들진 않았다.

“됐다! 30레벨! 정말 경험치바 오르는 게, 보고도 믿기지 않는구나!”

그렇게 30분 정도를 더 사냥에 몰두한 결과, 1차 목표로 바랬던 30레벨을 찍을 수 있었다.

3년 전 10레벨에서 30레벨을 찍던 때와 비교해보면, 거의 100배 가까이 빠른 속도였다.

[연속 베기(공통 스킬): ★★★]

* 마나 소비: 30

* 사용 대기 시간: 13초

* 대상을 향해 공격력의 90%에 해당하는 공격을 빠르게 2번 휘두릅니다.

[쉴드(공통 스킬): ★]

* 마나 소비: 30

* 사용 대기 시간: 120초

* 지정한 곳에 물리 및 마법 데미지를 막아 주는 마법의 방패를 생성합니다. (마법 공격력의 100%)

30레벨까지 주어진 총 6개의 스킬 포인트.

그걸로 일단 딜러라면 누구나 5성까지 찍는 스킬인 ‘연속 베기’를 우선 3성까지 찍었고, ‘쉴드’도 어차피 5성을 찍을 생각이라 하나 찍어뒀다.

의외라고 한다면 도둑 주제에 매직 미사일을 배웠다는 것인데, 사실 이건 내가 마쉴을 찍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생각해뒀던 스킬이었다.

스태프 류의 마법 데미지 향상용 무기를 들 여유가 없는 근접 딜러들은, 비록 마법류 공통 스킬을 익힐 수 있어도 배우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스태프의 증폭 없이 마법을 쓰면, 오직 지력 스탯의 힘으로만 데미지가 나오기 때문에 효과가 급격히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스킬 포인트를 낭비해서 똥캐가 돼버리기 싫다면, 아무나 마법 겸용 딜러에 도전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있으면 신검을 차게 될 몸.

어차피 1성만 찍어도 4성의 효과를 볼 것이기에, 괜찮은 공통 스킬이 있다면 어지간하면 스킬 포인트를 하나씩 분배할 작정이었다.

매직 미사일 같은 경우는 4성이 되면 4발을 즉시 발사할 수 있기에, 사냥 시에는 퍼져 있는 몹들의 어그로를 손쉽게 끌어와 사냥 속도를 단축해 줄 수 있었다.

또한, PVP에서도 기사의 차징 같은 돌진기나 마법사의 캐스팅들을 끊어 먹기에, 한 방당 0.2초의 경직 효과는 아주 쓸 만한 옵션이었다.

이 모든 게 신검을 착용하고 마력 위주의 레전더리 템들로 온몸을 도배하게 되면, 지력 스탯 또한 무시 못 할 정도로 높아진다는 계산이 나왔기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중 가면 1성만 찍었는데 4성 효과를 낸다고 사람들이 사기라고 야단법석을 치겠지?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템인데 어떡해? 억울하면 자기들도 디바인 템을 구하든가, 날 죽여서 뺏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신검이 아무리 사기템이라도 결국 사용자에 따라서 그 효율이 좌우되는 법.

아무리 성능 좋은 포뮬러카가 있다 해도, 드라이버에 따라 기록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말이다.

스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확한 타이밍으로 적재적소에 알맞게 구사할 수 있는 건, 컨트롤이 뛰어난 극소수에 불과했다.

난 이 신검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캐릭을 구상해 냈고, 수많은 스킬들 또한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플레이할 자신이 있었다.

‘단순히 한 번도 죽지 않는 것만으로는…… 지존이 될 수 없다!’

절대 죽지 않으면서도 혼자 태성 길드를 박살 낼 수 있는 캐릭을 만들어 내려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 필요했다.

그 결과 탄생한 이 잡종(hybrid) 도둑은, 내가 생각해낸 최선이자 최고의 테크트리였다.

[그림자 밟기(고유 스킬): ★]

* 마나 소비: 40

* 사용 대기 시간: 100초

* 선택한 대상의 등 뒤로 즉시 이동합니다. (제한 거리: 10m)

방금 30레벨을 달성하며 주어진 6번째 스킬 포인트는, 회색빛으로 잠겨 있던 그림자 밟기 스킬을 재오픈하는 데 사용했다.

아직 쿨타임이 길고 제한 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혹시 모를 뒤치기에 대비하려면 고유 스킬 중에서 이걸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맞았다.

은신은 재오픈해 봤자 공격당하는 와중에는 시전도 안 될 뿐더러, 1성인지라 간파를 1성만 찍은 상대가 와도 바로 걸려버릴 터라 쓸모없었다.

그렇게 스탯 및 스킬 세팅을 마치고, 다시 또 쌓여있는 돌무더기들을 뒤지며 바위 골렘 사냥을 재개했다.

‘괜한 걱정이었나? 저쪽 파티는 그냥 평범하게 쭉 사냥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새롭게 올라온 유저들도 안 보이고.’

분지에 두어 개 파티가 더 있었으나, 어느새 쾌남서준네 파티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떠나서 한적해졌다.

덕분에 쾌남서준네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보였는데, 피타임을 하며 시시덕거리며 노닥거리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일반 유저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뭐, 아무 일 없이 렙업할 수 있다면 나야 땡큐지.’

굳이 뭔 일이라도 벌어지길 기대했던 건 아니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다시 바위 골렘을 사냥하는데 몰두했다.

이제는 레벨이 제법 올라서, 가까이 몰려 있어서 피했던 놈들도 한꺼번에 깨워 2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며 사냥했다.

나는 그동안 줄곧 솔플러로 지내왔기에, 필드에서 이렇게 몹을 잡을 때도 항상 주변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다.

한데 그런 내 귀에, 들릴 리 없는 익숙한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쿠구궁-!

아직 잡진 않았지만 염두에는 두고 있던, 우측 후방의 돌무더기가 합쳐지는 소리였다.

소리가 난 곳을 빠르게 훑어보자, 골렘이 완성되는 모습만 보일 뿐 유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고 말았구나!’

아무도 없는 곳의 돌무더기가 저절로 바위 골렘으로 변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

바로 은신이나 투명화 상태인 유저가 가까이 다가와서 어그로가 끌렸을 때였다.

애초에 시야가 아닌 진동으로 어그로가 끌리는 바윗덩이였기에, 바위 골렘은 은신 상대에게 선공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은신이라면 분명 도둑 캐릭! 거기다가 고레벨이라고 가정한다면?’

내가 염려했던 뒤치기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캐릭이 찾아온 셈이었다.

다른 고레벨 캐릭이었다면 먼저 발견해서 대비라도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상대하던 두 마리의 바위 골렘을 뒤로한 채 냅다 분지의 가장자리를 향해 뛰쳐나갔다.

“양아치냐? 초보존에서 무슨 뒤치기야!”

“얘들아! 저 새끼 눈치챘다! 전부 쫓아!!”

[그림자 밟기!]

[재빠른 몸놀림!]

그런 내 모습을 보자마자, 숨어있던 도둑이 은신을 풀며 쾌남서준네 파티를 향해 소리 질렀다.

녀석은 내가 잡고 있던 바위 골렘에게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버프로 이속을 높여 따라붙었다.

녀석의 머리 위로 보이는 아이디는 ‘쾌남쭈호’.

확인해볼 것도 없이 쾌남서준이 불러서 온 고레벨 유저로 보였는데, 아이디가 시뻘겋게 물들어있는 ‘머더러’ 상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