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매지컬 씨프 (3)
쾅! 쾅! 쾅쾅!
순식간에 십수 개의 바윗덩이들이 합쳐지는 소리와 함께, 바위 골렘들이 나를 우르르 뒤쫓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도망치는 궁수 녀석의 뒤만 일직선으로 쫓았다.
“와, 완전 미친놈이었잖아!”
이런 내 모습을 본 녀석은 결국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도박으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하지만 10초나 걸리는 발동 시간은, 내가 녀석을 킬하고 아이템을 주워 먹기에도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여간 욕심만 많았지 죄다 멍청한 놈들이라니까? 그냥 처음부터 쾌남쭈호 따라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됐잖아. 그러면 나도 포기하고 귀환했을 텐데!”
“아! 홀리 쉿! 맞구나!!”
그렇게 황당해하는 궁수 녀석을 끝으로, 쾌남서준네 파티는 모조리 전멸해버리고 말았다.
[바위 골렘으로부터 165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바위 골렘으로부터 184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사이 어느덧 내가 깨운 바위 골렘들은 어마어마하게 몰려와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그 바위 골렘들 중에서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녀석에게, 쿨타임이 돌아온 그림자 밟기를 써서 빠져나온 후 다시 절벽 쪽으로 빙 돌아왔다.
“하하! 아직 반도 못 왔네?”
밑을 내려다보니 쾌남쭈호가 저 멀리 비탈길을 돌아서 열심히 올라오는 모습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이미 내 HP는 물약 덕에 풀피 가까이 채워졌기에, 나는 부담 없이 절벽 밑으로 뛰어내려 바위 골렘들의 어그로를 풀었다.
그런 다음, 여유롭게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서 마을로 돌아왔다.
쉬이잉!
[태초의 섬, 여명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의 귀환 포인트인 광장 앞 여신상에 도착하니, 뜻밖의 인물들이 나를 반겼다.
방금 전멸해서 부활한 쾌남 3인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것이다.
“어? 뭐야? 다들 또 만났네?”
“너 이 자식! 뭐야? 렙따한 거였으면서 초보인 척했겠다? 너 일부러 우릴 낚은 거지!”
“내가 언제 초보인 척했다고 그런 헛소리를 남발하실까? 차고 있는 템만 딱 봐도 고수의 아우라가 물씬 풍겼을 텐데? 못 알아봤다면 니들이 등신인 거고!”
“고수는 무슨! 너도 여기로 온 걸 보니 쭈호형이나 골렘한테 죽어서 부활했나 보지? 꼬시다 헹!”
패자는 원래 말이 없는 법이건만…….
창피한지도 모르는지 열심히 입을 놀려대는 쾌남서준이었다.
아직 놈은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는데, 검을 떨궈서 빈손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애처로워 보일 수 없었다.
“자꾸 하는 말마다 헛소리만 골라 하는 것도 재주긴 재주다. 쭈혼가 쭈글탱인가한테 아직 귓말 못 받았냐? 아! 똥개 훈련하듯 아직도 분지 위로 열나게 올라가는 중인가? 하긴 간단한 무빙 훼이크에 속았던 거 보니 알만하다만.”
“하여간 넌 오늘 운 겁나 좋았는지나 알아라! 이미 도둑으로 전직한 상태인 것만 미리 알았으면, 방심하지 않고 무조건 잡는 거였는데!”
“헛소리 좀 그만 하라니깐? 내가 뒤치기 디펜하고 너희 삼인방 딴 게 아직도 운이라고 생각해? 내가 먹은 타연 밥만 몇 년인데?”
“몇 년인데? 그래 봤자 진짜 고수였으면 길드 가입해 있었겠지, 무(無)길드였겠어?”
“훗, 마음대로 생각하든가! 아무튼 형은 렙업이 바빠서 이만 간다. 물약값으로 준 장비들은 고맙게 쓸게!”
그렇게 녀석들이 열 받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공간이동술사로 이동했다.
막 이동하려는데 귀환 주문서로 복귀한 쾌남쭈호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이번에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순간이동 했다.
* * *
[이바슈 성 외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이동한 곳은 유저들이 드문 탓에 요즘 자주 찾았던 이바슈 성이었다.
쾌남쭈호가 어떤 성격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머더러 상태에다 탐욕스러웠던 말투 등을 떠올려봤을 때, 이대로 날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았다.
넓디넓은 타연이지만, 다른 초보존이나 저레벨들이 레벨업할 만한 필드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녀석은 분명 은신을 쓴 채, 나를 찾아 그런 초보 사냥터들을 전부 뒤지고 다닐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필드에서의 빠른 레벨업은 포기하고, 그냥 인던에서 사냥하는 편이 속 편했다.
“칼만 박힌다면야…… 어떻게든 사냥이야 되지 않겠어?”
내가 굳이 레벨다운 마지막 날까지 +10 이베루탄 성기사단의 장검의 매물이 뜨기만 기다렸던 이유.
바로 이 장검에 붙어 있는 ‘언데드 추가 데미지’를 주는 옵션이 극대화될 수 있는 인던이, 바로 이바슈 성 지역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쾌남쭈호: 너 이 자식 어디로 이동했냐? 아무튼 넌 앞으로 렙업은 다 한 줄 알아라. 내가 다 포기하고 쭉 너만 찾아다닐 테니깐! 항상 뒤통수 사리면서 사냥하라고!)
(나: 어이쿠, 이거 너무 무서워서 마을 밖으로 나가질 못하겠네ㄷㄷ 쉬엄쉬엄 찾아다녀~ 난 내일부터 해외 출장이라서 최소 일주일은 접속 못 할 예정이거든!)
갑자기 들어온 쾌남쭈호의 귓속말에 대꾸 한 번 해주고는 바로 차단 리스트에 올려 버렸다.
이 자식…… 역시 쪼렙이나 뒤치기하는 머더러답게 끝까지 추잡한 놈이었다.
‘일주일간 빡세게 렙업하고, 이 자식 참교육이나 시켜 줄까?’
차고 있던 장비와 아까 들어왔던 딜량으로 예상해 보건대, 놈의 레벨은 높아 봐야 200 안팎.
예상대로만 된다면 일주일이면 충분히 놈을 상대할 만큼 성장할 자신이 있었다.
일부러 사냥터에 나타나 뒤치기를 유도한 뒤 탈탈 털어줄 아이디어도 떠올랐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놈들한테까지 허비할 시간은 없어.’
한 치의 낭비도 없이 달려나가기에도 빠듯한 것이, 바로 내가 세운 목표였으니 말이다.
난 서둘러 창고에서 물약을 보충하고, 성의 외곽으로 향했다.
근방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목표로 한 인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 곧, 지역 명칭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바슈 성 남부, 마을 공동묘지>
“힐러분 모십니다!! 4인 파티에 힐러분만 오시면 당장 출발이에요!”
“3성 쉴드, 5성 파볼 익힌 극딜 법사가 파티 구합니다! 맵 숙지 완료, 경험 많아요!”
그와 함께 여러 외침들이 나를 반겼다.
수많은 비석과 묘들을 뒤로한 채 도착한 묘지기의 집 앞은, 파티원을 구하는 유저들로 꽤나 시끌벅적했던 것이다.
현재 이바슈 성에 유저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근방에 저레벨 사냥터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 유저층들의 평균 레벨이 올라가면서 이 지역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지, 원래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저레벨 유저들이 넘쳐나는 인기 있는 성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공동묘지에는, 100레벨 전후의 저레벨 유저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었다.
이 레벨 구간의 유저들이 사냥하기에 최적인 인던이 여기 있었기에, 신규 유저가 줄었어도 이곳의 인기만큼은 시들지 않았던 것이다.
“님! 파티 있으세요? 저희 딜러 한 분 빠져서 그러는데 들어오실래요?”
“죄송합니다. 이미 파티에 들어와 있는 상태예요.”
“네, 수고하세요!”
눈썰미가 있거나 새로 키우는 건지, 내가 도둑임에도 불구하고 이베루탄 장검을 보고는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유저도 있었다.
하지만 난 느긋하며 파티 사냥을 하며 게임을 즐길 성격도 아니고, 또한 그럴 시간도 없었다.
북적대는 인파를 뚫고 들어가, 곧바로 묘지기 NPC인 제퍼슨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어찌한 일로 찾아…….”
“아, 됐고! 이곳에 ‘언데드’들이 출몰해서 고생한다던데, 던전이나 좀 열어 줘!”
“그냥 이곳에 찾아온 게 아니었구려! 모험가 산드로여, 내 부탁 하나 함세. 이곳에 잠든 주민들을 저주받은 언데드로 만들어 버린 원흉, 스켈레톤 킹을 처리해준다면! 내 보상은 섭섭지 않도록 내주겠네.”
띠링!
[퀘스트 ‘이바슈 공동묘지의 원흉 처치’를 획득했습니다.]
[인스턴트 던전 ‘이바슈 공동묘지의 저주받은 납골당’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나는 주저 없이 YES를 선택해서, 남들은 평균 4인 파티 이상으로 도전하는 인던에 입장했다.
“와…… 여기도 참 오랜만이다. 다시 이곳에 들어올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필드의 몹들이 더 많은 경험치와 더 좋은 아이템을 드랍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저들은 인던에서의 레벨업을 더욱 선호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일부 불량한 유저, 즉 ‘머더러’들의 뒤치기로부터 안전하다는 점.
두 번째는 바로 인던에만 존재하는 ‘빈사’ 시스템 때문이었다.
인던 안에서는 HP가 0이 되더라도 사망 대신 빈사 상태에 빠져 동료로부터 부활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설령 죽게 되더라도, 절대 아이템을 드랍하지 않았다.
유저들의 게임 편의를 위해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한 것인데, 덕분에 유저들은 모르는 사이여도 자연스럽게 급조 파티를 이루어 사냥할 수 있었다.
필드 사냥이 어떠한 제한도 없는 정글이었다면, 인던은 울타리가 제공되어있는 안전한 곳인 셈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유저들, 특히 여성 유저와 중장년층 유저들은 필드 사냥보다 인던 사냥을 훨씬 더 선호했다.
“경험치가 적게 들어오니 인던이 조금 손해긴 하지만, 어차피 어디서 사냥하나 폭렙업은 마찬가지잖아? 그러니 그냥 맘 편히 사냥하자. 필드는 버스가 없으니까 생각보다 파리들이 좀 꼬이네.”
이 납골당에 나오는 언데드들의 추정 레벨은 80에서 100레벨 사이.
레벨 차이에 따라 공격 성공과 회피율이 상대적으로 적용되는 타연이기에, 10레벨부터 이곳에 왔다면 칼도 안 박혔을 몹들이었다.
물론 30레벨이라고 잘 박힐 리는 만무했지만, 계산상 사냥이 가능할 법도 했기에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지금의 난 레벨 차이를 극복시켜줄 템빨, +10강화 레어 풀템을 착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급 스켈레톤 전사>
부서진 나무 방패와 녹슨 검을 든 해골.
입구를 벗어나 첫 모퉁이를 돌자, 평범한 스켈레톤 병사 한 마리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잴 것도 없이 곧장 다가가서, 녀석에게 검을 휘둘러 보았다.
[하급 스켈레톤 전사로부터 225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급 스켈레톤 전사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아, 역시 좀 많이 아프구나. 그래도 이 정도 레벨 차이인데 회피 판정도 뜨네? 10강화가 좋긴 좋구나!”
휙, 휙, 휙, 퍽!
서로 주거니 받거니 공격을 나누어 보았는데, 4대 중 3대는 헛방이 나고 겨우겨우 1대만 박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헛방이 많이 날 것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예상했던 바였다.
내게 중요한 것은, 공격이 박히긴 박힌다는 것이었다.
“너는 바위 골렘 같은 정예 급 몬스터도 아니니, HP가 적을 수밖에 없지!”
결국 템빨은…… 레벨 차이나 파티 여부 따위는 전부 씹어먹을 만큼, 위대하고 또 위대했다.
특히 언데드에게 최고의 상성을 자랑하는 이베루탄 성기사단의 장검을 착용한 덕에, 그 효과는 극대화되고 있었다.
푸석.
결국 상급 체력 물약을 2개나 먹으며 적중시킨 유효타 5대에, 해골바가지 녀석은 쓰러져 버렸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일부러 시험 삼아 연속 베기도 사용하지 않고 평타로만 잡아보았는데도, 80레벨의 스켈레톤 병사를 반피나 남긴 상태로 잡아버렸다.
심지어는 엄청난 경험치 덕분에 레벨업까지 해버렸다.
시야 위쪽을 바라보니, 추가 경험치를 주는 ‘테오시스의 가호’가 아직도 반짝이고 있었다.
“역시 버프가 좋긴 좋구나! 좋아, 경험치 버프가 끝날 때까진 그냥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고 여기만 파는 게 좋겠다. 고로…… 니들은 다 죽었다, 이 해골 새끼들아!”
그렇게 난 테오시스의 가호가 남은 기간 내내, 제퍼슨 납골당의 해골들을 잡고 또 잡았다.
2일 차부터는 인던의 보스몹인 스켈레톤 킹까지도 혼자서 잡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 나는 버프가 끝나기 직전 99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다시 10레벨부터 키우기 시작한 지 고작 3일.
처음 키울 때보다 수십 배는 단축한 이 짧은 시간 만에, 나는 ‘타임 어택’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