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8화 (28/350)

28화 타임 어택 (3)

“그러게. 저런 거 보면 내가 이 타임 어택에 괜히 열 내는 건 아닌가 싶다. 나 같은 게 어떻게 저런 놈들이 넘치는 100위안에 들겠다고 이 고생을……. 에휴.”

옆에서 전사 유저 2명이 계속해서 수군덕대며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실례합니다, 님들아. 옆에서 듣다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치트키라는 게 대체 뭔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아, 타임 어택에는 처음 도전하시나 봐요? 치트키는 여기 도전자들이 쓰는 은어예요. 쉽게 말해서 ‘장비 대여’라고 할 수 있죠.”

현실이었다면 대화 중에 끼어드는 다소 무례했을 태도였지만 게임의 장점이 무엇이던가?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게임은 게임답게, 묻는 나나 답하는 상대방이나 모두 쿨했다.

“장비 대여요?”

“네. 저기 성기사 랭커 히든캬드가 뜬금없이 이 100레벨 미만 퀘스트 장소에는 왜 나타났을까요? 뻔한 거예요. 지금 타임 어택 2위인 자기네 길드원한테 자기 아이템을 빌려주러 온 거죠. 제 말이 맞는지 어디 한 번 보실래요?”

“오! 정말 그러네요?”

정말로 전사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히든캬드는 맨몸이 됐고, 옆에 있던 라스트챤스는 레드 드레이크 갑옷 세트를 착용한 모습으로 변했다.

‘치트키라고 해서 뭔가 했더니, 나처럼 대여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구나. 참 이런 거 보면, 사람 생각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하다니깐?’

“사실 여기 매일같이 도전하는 사람들 장비는 대부분 빵빵해요. 아니, 빵빵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아마 더 힘들 거예요. 대부분의 100위권 도전자라면 전부 유니크급 이상의 템을 갖춘 상태에서 한 끗의 실력이나 운빨 차이로 기록이 정해지는 거라, 몇 번이고 도전하는 거거든요.”

“아, 하긴 그렇겠네요. 벌써 3년이나 됐으니 엄청 상향 평준화됐겠구나…….”

“그렇죠. 그래도 보통은 자기 장비로 하거나 일부만 빌려서 하는데, 저렇게 랭커 템을 고스란히 빌려서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저러면 실력이 아니라 완전 템빨로 기록 세우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 그렇긴 하네요. 저런 비겁한 놈!”

왠지 나한테 하는 소리만 같아 뜨끔한 마음에, 괜히 라스트챤스의 욕을 했다.

내가 흉을 보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라스트챤스는 히든캬드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NPC를 통해 타임 어택에 돌입해 사라졌다.

“오, 들어갔나 봐요. 며칠 만에 금세 2위까지 올라온 실력이었으니 오늘은 1위를 찍고 말겠네요. 와, 진짜 부럽다!”

“아 그래요? 그럼 혹시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까요, 저 사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정말 운 좋으면 2초나 3초까지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저도 며칠 동안 지켜봤는데 그래도 라스트챤스 저 사람 실력만큼은 진짜더라고요. 금방 2위까지 올라왔던 걸 보면 아마 캐릭을 새로 키우는 고수 같아요.”

“아…… 그렇구나. 이 타임 어택은 아직도 굉장히 치열하군요.”

“그렇죠. 사실 어떻게 보면 타연에서 이 타임 어택이야말로, 가장 고이고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 돼버린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부 다 99레벨에서 멈춰서, 길게는 몇 달이고 머무는 곳이니 말이죠. 뭐 한번 경험해 보시면 바로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장비를 보아하니 좋아 보이긴 하시는데, 법사신가 봐요? 법사시면 한 번 경험만 해보시고 금방 포기하세요. 법사는 아무리 잘해도 100위안에는 절대 못 드는 게 바로 이 타임 어택이니까요…….”

굳이 법사가 아니라고 대꾸하기도 뭐해서 이런저런 다른 얘기를 하는 와중, 짧은 시간 만에 라스트챤스가 다시 짠하고 나타났다.

“아싸! 성공했다!! 히캬 형! 드디어 내가 1위야! 하하하!”

“당연한 거 가지고 뭘 그리 좋아하냐? 그래, 몇 초나 단축한 거야? 갑옷 덕은 좀 본 거야?”

“놀라지마 형. 자그마치 5초야 5초! 대박이지? 내 세팅이 제대로 먹혔어! 이건 분명히 최소 몇 달, 아니 몇 년간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으하하하!!”

좋아 날뛰는 라스트챤스와 흐뭇하게 바라보는 히든캬드.

그 둘의 모습이 좋아 보였으나, 나로서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필이면 왜 내가 도전하기 직전에 1위를 경신했단 말인가?

“와, 라스트챤스 미쳤다! 2초 사이에 1위부터 12위까지 몰려있었는데, 단번에 5초나 단축시키다니……. 이건 진짜 몇 년은 안 깨질 수 있겠는데?”

“그러게. 앞으로 도전할 맛 뚝 떨어지는 기록이네. 아…… 진짜 맥 빠진다. 어? 어디 가세요? 지금 도전하시게요?”

두 전사는 허탈해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이내 도전하러 이동하는 나를 보고는 다시 말을 걸었다.

“네. 충분히 구경했으니 이제 도전해야죠.”

“하긴, 어차피 초행이시면 순위권은 상관없으실 테니 과감히 도전하세요. 잘 모를 때는 10분 안에만 들어와도 잘하신 거예요.”

“10분이라뇨? 그럴 거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렙업하고 말지, 타임 어택을 왜 하겠어요? 2분 안에 다시 돌아올게요.”

“네? 무슨 소리 하세요? 설사 순위권 유저라 해도 3단계까지 가는 데만 2분은 더 걸리는 곳인데요.”

“되는지 안 되는지는 어디 한번 2분 동안만 지켜봐 보세요. 곧 있으면 제 아이디가 벽보 어디에 새겨지게 되는지요.”

“장비가 좋아 보이길래 멀쩡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허언증 말기 환자였잖아? 하여간 신규 도전자들 중에 이런 애들이 꼭 하나씩 있다니깐.”

“냅 둬.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떠날 사람인 거 같은데. 쯧쯧.”

친절했던 전사 유저들의 비아냥을 뒤로한 채, 나는 퀘스트를 주는 NPC인 황실 기사단의 선임기사 에럴드에게로 다가갔다.

아직 에럴드 앞에 있던 라스트챤스와 히든캬드는 본인들에게 오는 줄 알고 잠시 쳐다봤으나, 내가 타임 어택 퀘스트를 받는 것으로 보이자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제국 기사단은 누구에게나 등용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지. 그래, 그대도 우리 제국 황실 기사단에 입단을 희망하고자 찾아온 지원자인가?”

“네, 이 ‘시험’에 ‘도전’해서 1위를 달성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흘끔.

내가 퀘스트를 받는 키워드에 굳이 1위를 섞어 말하자, 옆에 있던 라스트챤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대뜸 말을 건네 왔다.

“훗, 마법사가 무슨 1위를 한다고 그러시지? 아니, 마법사가 아닌가, 장검을 차고 있네요? 뭐야, 이런 잡캐로 타임 어택에 도전하는 거예요?”

“잡캐가 아니라 하이브리드캐라고 하는 거죠. 근데 뭐 저한테 볼일이라도?”

“대놓고 1등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좀 특이해 보여서요. 저 정도 되면 대충 장비만 봐도 어떻게 공략할지 각이 딱 나오는데…… 님은 견적이 전혀 안 나와서 신기하네요? 그나저나 제가 1위 찍는 건 보고 하신 소리죠?”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데 모를 수야 없겠죠. 근데 정확히 말하자면 댁이 아니라 여기 계신 히든캬드 님을 보고 있었어요. 랭커 보는 일이 워낙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몇 달 후면 절 보는 게 더 힘들어질 텐데……. 흐흐, 아무튼 전 갑니다. 해보시고 제 기록이 도저히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더라도 너무 좌절하진 마세요! 건투를 빌어요!”

“뭐, 저도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하!”

먼저 말을 걸어오길래 또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어대는 잘난 유저인가 싶었는데, 그냥 쾌활한 성격의 자신감 넘치는 유망주일 뿐이었다.

역시 아무리 게임일지라도 가상현실이었으니, 태성 놈들같이 대놓고 재수 없게 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라스트챤스와 히든캬드가 사라지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방금 받은 퀘스트 창을 열어봤다.

[제국 기사단 입단 시험: 기록 경신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C

* 제국 황실 기사단의 훈련소에 입장하여 입단 시험에 도전하라

* 보상: 제국 황실 기사단 입단 기회, 순위에 따른 차등 업적

퀘스트를 받았으니 인던에 입장하기 위해 건물 앞에 서 있는 훈련소장에게 말을 걸었다.

[훈련소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나는 한 차례 더 머릿속으로 어그로를 가져올 동선을 리마인드해봤다.

훈련소 안은 커다란 실내 체육관과 같은 방이 연달아 3개 이어져 있는 단순한 구조.

하지만 이 3개의 방을 통과할 때마다 NPC들은 점차 상대하기 까다로워졌는데, 모두 격파하는 그 즉시 입단 시험은 종료되는 퀘스트였다.

[훈련소에 입장했습니다. 지금부터 소요 시간이 카운팅 됩니다.]

나는 훈련소의 첫 번째 방에 입장하기 무섭게, 곧바로 방의 오른쪽 구석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제국군 일반 병사>

<제국군 일반 창병>

<제국군 일반 궁병>

첫 번째 방에는 각기 장검, 단검, 도끼, 할버드, 창, 활 등의 다양한 병기를 무장한 제국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원래는 이 병사들을 하나씩 처리한 다음, 두 번째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정석 플레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여유도, 또한 그럴 이유도 없었다.

내 목표는 압도적인 최단 시간 클리어!

그러기 위해서 난, 1, 2단계에 있는 병사들을 한꺼번에 몰아 잡을 생각이었다.

[매직 미사일!]

몹 몰이의 첫 번째 단계는 당연히 어그로 끌기였다.

오른편으로 달려가며 사정거리가 긴 매직 미사일을 시전해, 반대편인 왼쪽 구석 끝에 있는 병사들의 어그로를 끌어왔다.

펑, 펑, 펑, 펑!

1성이었지만 신검 덕에 4성으로 오른 매직 미사일답게, 한 번 시전으로 병사 4명이 공격당해 어그로가 끌려왔다.

나는 그대로 방안을 반 바퀴 돌듯이 오른 구석에 있는 병사들에게 다가가 어그로를 싹 끌어버린 뒤, 한 대도 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슉! 슉!

매직 미사일만으로는 왼편의 병사들 어그로를 다 끌어올 순 없었기에, 나는 무기 던지기 스킬의 쿨타임이 돌 때마다 투척용 단검을 던져 어그로를 하나둘씩 추가해 나갔다.

[제국군 일반 궁병으로부터 320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국군 일반 궁병으로부터 288의 물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어그로를 끌고 2단계 방으로 이동했으면 좋았겠지만, 제자리에서 화살을 날리는 궁병만큼은 직접 다가가서 잡아줘야 했다.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서 궁병에게 이동하면 동선이 절약되겠지만, 쿨타임이 다소 긴 스킬인 만큼 마지막을 위해 아꼈다.

[연속 베기!]

크악!

연속 베기 단 한 방 만에 뒤로 자빠지는 첫 궁병을 뒤로한 채, 남아있는 2명의 궁병 또한 손쉽게 처리하고 곧장 두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뒤따라오는 1단계의 모든 병사들을 이끌며 아치형으로 뚫려있는 문을 통과하니, 이번엔 4인 1조로 몰려있는 제국 병사 무리가 보였다.

2단계는 제국 병사들 무리를 상대하는 시험이었는데, 다행히도 파티 몹이라 그런지 동선을 낭비해야만 하는 궁병은 없었다.

하지만 총 병사들의 수는 40명 정도로, 첫 번째 방보다 2배가 넘어가는 많은 인원이었기에 시간을 단축하기는 더욱 까다로운 단계였다.

‘이러니까 순위권도, 3단계까지 가는 데 2분이 넘게 걸린다고 말한 거겠지.’

어쨌거나 난 첫 번째 방에서 끌고 온 병사들을 뒤에 단 채, 또다시 두 번째 방도 온통 휘젓기 시작했다.

사실 이 방의 병사들 숫자가 더 많았으나, 어그로 끌기는 오히려 2단계가 더 편했다.

4인씩 10개의 파티로 뭉쳐 있어서, 더 짧은 동선만으로도 모든 병사의 어그로를 먹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슉! 슉!

왼쪽 오른쪽을 달려나가며 멀리 있는 파티는 단검을 던지며 어그로를 끈 결과.

3번째 방으로 통하는 문 앞에 도달해서 뒤돌아보니, 1, 2단계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우르르 둘러싸며 다가오고 있었다.

HP를 보니, 화살과 몇몇 근접 공격들을 얻어맞아 어느새 1/2가량이 깎여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일부러 HP 좀 깎이면 쓰려고, 이제껏 비장의 스킬을 미리 안 켜뒀던 것이니 말이다.

[마나 쉴드!]

[마나 쉴드를 활성화했습니다.]

“어때? 너희들도 99레벨에 마나 쉴드 풀로 찍은 놈은, NPC 인생 3년 만에 처음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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