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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9화 (29/350)

29화 타임 어택 (4)

[재빠른 몸놀림!]

[약점 포착!]

방의 출구에 서 있는 내 앞에 병사들이 도착해서 공격하려는 순간, 푸른빛이 한순간 내 몸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자버프를 사용해서 극딜 모드로 전환한 나는, 다가온 병사들에게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의 60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일 뻔했지만, 입구를 등지고 서 있어서 후방을 감싸지는 못했다.

덕분에 가장 전방에 있는 3, 4명의 병사들만이 날 공격할 수 있었다.

한꺼번에 잡아 시간 단축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이런 지형을 이용해서 최대한 MP 손실을 줄이려고 모든 병사의 어그로를 끌었던 것이었다.

[마나 쉴드가 33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563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곧바로 각종 검과 창 등의 공격들이 쉴 새 없이 날 공격해 들어 왔지만 상관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8성 마나 쉴드부터 찍고 이곳 타임 어택에 도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피격 시마다 내 몸 표면에서 파랗게 일렁이는 마나 쉴드는, 들어오는 데미지를 착실하게 경감시켜 주고 있었다.

“들어와 들어와!! 전부 다 덤비라고!”

비록 전방 3, 4명의 병사에게 동시에 공격당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그들 모두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인 타연에는 유저들에게 꽤 널리 알려진 특이한 맹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걸 이용했던 것이다.

다름 아닌, 다중 히트 판정!

가상현실이기에 일반 공격은, 스킬 공격과 달리 유저가 직접 모션을 취해야만 했다.

한데 뭉쳐 있는 몹들에게 모션을 크게 하며 공격을 넓게 하면, 스치듯 빗맞은 공격들도 닿기만 하면 전부 다 동일한 피격으로 판정됐다.

즉, 이렇게 일렬로 서있는 몹들에게 길게 횡 베기를 사용하면,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도 3명 전부를 공격할 수 있었다.

PC 게임 속 일반 공격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한 번에 한 마리밖에 피격이 안 됐다.

반면 현실 세계에서는 몽둥이나 검 등을 휘둘러 한 번에 여러 명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곳이 정말 현실 세계였다면 첫 번째 병사에게 휘두른 검은 그대로 병사의 몸통에 막혀, 계속 휘두르기는커녕 바로 다구리 맞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컴퓨터 게임도 현실도 아닌,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특이하고도 예외적인 공간.

컴퓨터 게임에서도 가능하지 않고 현실에서는 더 택도 없을 이러한 공격 방식이, 이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는 묘하게 성립되고 있는 구조적인 허점이 있었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술, 멀티 히트(multi hit)! 이제부터 이게 내 주력 기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도, 실제로 활용하는 유저는 거의 없는 공격법이었다.

모션을 길게 취하는 것보다, 그냥 평타 모션 중에 스킬을 섞는 일명 평캔 공격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가뜩이나 게임 속 몹들보다 유저의 HP가 훨씬 적은 편인 타연인데, 여러 마리 몹들의 다굴을 맞으면서 한꺼번에 잡는다?

100레벨 정도 낮은 사냥터에서 장난삼아는 해볼 만했지만, 실제 솔플에서 사용하거나 본인의 레벨대에 맞는 인던에서 써먹기에는 자살하기 딱 좋은 공격법이었다.

하지만 미칠 듯한 몸빵과 현존하는 최강의 무기를 지닌 나로서는, 이보다 더 효율적이고 빠른 사냥법이 없었다.

펑! 펑! 번쩍!

“으아아!”

약점 포착을 사용한 탓에 2.5초간 일반 평타 공격이 150%로 들어가다 보니, 내 앞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죽어서 산화해 버렸다.

그 와중에 25%의 확률로 터지는 신검의 빛 속성 마법 공격도 터져버려, 화려한 빛줄기가 마치 검의 잔상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좋아, 다음!”

척! 척!

내 앞을 둘러싼 첫 번째 줄의 병사들이 전멸하자, 그 뒤를 벽처럼 에워싸고 있던 병사들이 마치 기계와도 같이 자리를 메꾸며 공격해 왔다.

그리고 난 또다시 신검을 좌우로 크게 휘둘러 다가온 병사들을 공격했다.

번쩍! 펑! 펑!

그렇게 2번째 줄의 병사 3명도 역시, 몇 번의 멀티 히트로 모조리 전멸시키자 약점 포착의 액티브 지속시간이 끝나버렸다.

그래도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크리티컬이 터지거나 빛 속성 마법 데미지가 터져 한 방에 죽는 병사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날 에워쌌던 60여 명의 병사는 그야말로 눈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오케이, 다음! 빨리빨리 안 와?!”

신명 나게 검을 휘두르다 보니 덩달아 신이 났다.

예상했던 대로지만, 마나 쉴드로 감싼 내 몸빵은 너무 단단했으며 신검의 공격력은 시원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다굴이 무서워서 미리 덫을 설치한 뒤, 주술사 하나 잡고 튀던 때의 전투와는 근본부터 달랐다.

‘도둑으로 이런 식의 플레이가 가능할 줄이야……!’

마치 깃대처럼 검을 양옆으로 휘두르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놈이었다.

놀랍게도 단 20여 초 만에, 60명에 가까운 병사를 전멸시킨 것이다.

궁수를 미리 잡아 놓고 시작해서인지, 의외로 많이 맞진 않아서 MP는 아직 반밖에 달지 않은 상태였다.

‘맞기도 전에 잡아버려서, 생각보다 마쉴이 많이 닳지도 않았구나! 역시 신검과는 궁합이 환상적인 스킬이었어!’

지금도 시간은 체크되고 있기에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나는 남은 MP 양을 체크하며, 곧바로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오직 단 한 명의 NPC만이 중앙에 담담하게 서 있었다.

[제국군 하급 기사 볼턴]

이 훈련소 안에서 유일하게 ‘네임’이 있는 몹.

그가 바로 이 타임 어택에서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마지막 관문, ‘일대일 전투’의 상대였다.

하급이지만 기사는 기사였던 탓에, 녀석은 여태까지 나왔던 병사들과는 훨씬 더 많은 HP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몇 가지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차이점이 바로, 마법사 계열의 유저들이 타임 어택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다 거리가 30미터쯤 남았을 때쯤, 다시금 쿨타임이 돌아온 마법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내 손에서 즉시 생성되어 날아가는 매직 미사일 4개의 궤적.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그림자 밟기 스킬 범위에 볼턴이 들어오자 곧바로 녀석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펑, 펑, 펑, 펑!

4방의 매직 미사일이 녀석에게 적중해서 0.2초의 짧은 경직이 연달아 터지는 사이, 난 녀석의 뒤편에서 약점 포착의 패시브 효과가 정확히 들어가도록 평타 공격 2방을 휘둘렀다.

[연속 베기!]

경직에서 풀린 녀석이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연이어 평캔을 쓰며 연속 베기까지 넣고 나니, 어느새 녀석의 네임바 속 피가 절반 가까이 날아가 있었다.

정말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신검의 가공할 공격력이었다.

[방패 후려치기!]

팅!

[마나 쉴드가 1,287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상태 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녀석의 첫 공격은 스턴을 유발하는 상태 이상기였다.

하나 내 마나 쉴드에 막히는 청량한 효과음만 들릴 뿐, 스턴은 터지지 않았다.

[차징!]

팅!

[마나 쉴드가 820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상태 이상 ‘넉백’에 저항합니다.]

녀석은 방패 후려치기가 통하지 않자 곧바로 차징을 사용했지만, 이것 역시 피격 부위가 투명하게 일렁이기만 할 뿐 넉백당하진 않았다.

“어때? 그동안 네가 상대했던 수백만 명의 유저들 중에, 나같은 놈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지?”

원래 이 타임 어택에서 명예의 전당에 랭크되는 필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 볼턴의 상태 이상기들을 무빙으로 전부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한 대라도 맞을 때마다 상태 이상에 빠져서 시간이 딜레이됐고, 또한 그 시간 동안 딜을 못해서 기록이 최소 5초씩은 추가됐으니 말이다.

타임 어택은 템빨 뿐만 아니라 실력 또한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이유였다.

하지만 기록에는 템빨과 실력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추가될 여지가 남아 있었다.

바로 ‘상성’.

고작 99레벨만에 마나 쉴드를 전부 찍은 유저가 타임 어택에 도전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리고 그런 이상한 캐릭의 공격력이, 다른 어떤 극딜 조합들보다 훨씬 높을 거라고 누가 상상해봤을까?

그 결과는 그저 압도적이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볼턴이 스킬을 쓰든 말든, 내 피가 깎이든 말든…….

말뚝 박고 검만 휘두르다 보니, 녀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딸피가 돼 버렸다.

번쩍!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신검의 화려한 마법 데미지까지 터지며 녀석에게 장렬한 최후를 선사했다.

[‘퀘스트: 제국 기사단 입단 시험’을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소요 시간은 1분 55초 03입니다.]

[제국 기사단 훈련소 벽보에 1위로 기록됩니다.]

1분 55초!

조금 전 5초를 경신했다고 난리 쳤던 라스트챤스보다, 무려 30초 이상을 앞서는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됐다. 이건 다리우스 할아버지! 아니, 다리우스 손자가 와도 절대 깨질 일 없겠다! 크하하!”

슝!

그렇게 퀘스트 전용 인던에 입장한 지 2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만에, 나는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인던 밖 에럴드 앞은 여전히 타임 어택에 도전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나는 사람들을 뚫고 선임기사 에럴드에게 다가가 보상을 수령했다.

“이럴 수가! 그대 산드로는 우리 제국이 기다리고 찾아왔던 인재가 분명하오! 이런 놀라운 인재가 우리 기사단에 지원한 것에 대해서 내 당장 기사단장님께 추천서를 넣겠소. 그리고 그대가 세운 이 놀라운 기록을 훈련소 벽보에 새겨, 온 제국민이 그대 이름을 드높이 칭송하도록 만들겠소!”

[업적 ‘제국 제일의 인재’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제국 제일의 인재(S)]

* 자신의 재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성장 속도가 빨라집니다. (경험치 획득 시 +20%)

* 제국 황실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클리어한 업적입니다.

* 이 업적은 기록이 경신되더라도 사라지지 않지만, 효과는 다소 감소하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됐다! 올타 게시글에서 봤던 것과 완전 똑같은 1등 업적이야. 공개된 업적들 중에서 유일한 S급 업적!’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우리 제국 황실 기사단의 하급 기사가 될 수도 있을 터, 우리와 함께하겠소?”

[제국 황실 기사단의 하급 기사가 되겠습니까? 수락할 시 제국군으로 소속이 변경됩니다.]

[NO]

자유로운 몸에서 굳이 NPC 국가인 제국으로 소속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

여러 혜택이 주어지지만, 그에 따른 의무도 주어지는 것이 바로 국가에 소속되는 일이었다.

“비켜 봐요! 퀘스트 좀 받게! 아, 퀘 받았으면 좀 빠집시다! 어? 방금 타임 어택하겠다고 갔던 법사님이시네? 아직 안 들어가시고 뭐 하고 계셨어요?”

에럴드의 제의를 거절하고 업적을 확인하고 있는 찰나, 좀 전에 나와 대화를 나누던 전사 유저가 이제야 도전하려는지 이곳으로 다가왔다.

“안 들어가긴요? 이미 다 끝내고 왔는데요. 그리고 법사 아니라니까요?”

“님. 자꾸 사람이 말하면 장난으로 대꾸하지 좀 마세요. 고수처럼 보여서 호의를 갖고 대해드렸더니 제가 우습게 보여요? 왜 자꾸 제게 헛소리를 하세요?”

“네? 전 쭈욱 진지했는데요? 못 믿겠으면 벽보 한 번만 봐 보세요. 그럼 되잖아요.”

“방금까지 보다 온 걸 뭐 하러 또 봐요? 됐고요, 좀 비키기나 하세요. 에럴드한테 퀘 좀 받…….”

“와! 이게 뭐야!! 다들 벽보 좀 봐 보세요! 1위가 경신됐는데 말도 안 돼요!!”

계속 전사 유저가 쫑알쫑알 떠드는 와중에, 벽보가 있는 훈련소 건물 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벌써 경신된 걸 알아차리다니 참 빠르구나.

하긴, 이 많은 사람이 타임 어택에 매달리는데 어쩌면 당연한 건가?

“저 소리 들리시죠? 어디, 한 번 같이 확인해보러 가실래요?”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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