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1화 (31/350)

31화 피닉스 길드 (2)

아직 길드 가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제의가 들어오니 살짝 고민됐다.

아무래도 유명한 길드에 가입하면 여러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실력 있고 믿을 만한 파티를 언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고효율의 사냥터에서 빠른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나 같은 저렙일 경우는 길드원들의 에스코트를 받을 수 있어, 안전한 사냥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유명 길드의 길드 마크를 달고 다니면, 뒤치기라든지 여러 시비에 휘말릴 걱정 없이 필드를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히든캬드: 산드로님, 듣고 계신가요? 저희 측 제의가 어떤지 의향을 듣고 싶습니다. 아, 혹시 고민 중이시라면 보채는 건 아니니, 신중하게 고려해 보시고 답변하셔도 좋습니다.)

피닉스 길드.

명실상부하게 타연 속 2, 3위를 다투는 거대 길드이자 명문(名門) 길드.

태성 길드가 누구나 인정하는 부동의 넘버 원이라고 한다면, 피닉스는 아틀란티스나 올림푸스 같은 다른 명문 길드들과 넘버 투 자리를 치열하게 경쟁하는 최상위권 길드였다.

피크 시간대 동시 접속자가 백만 명을 훌쩍 넘기는 이 타연에서, 누구나 가입하고 싶어 하는 선망의 길드.

원래 솔플만 하던 매그넘 시절이라도 피닉스 1군이라면 무척 가입하고 싶었을 길드였는데, 지금은 내 편의를 봐 주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영입을 어필하고 있었다.

‘피닉스라면 내가 랭킹 1위를 찍을 때까지 훌륭한 방패막이가 돼 줄 수 있을 텐데……. 거기에 원래 태성과도 대립 관계라 안심되기도 하고.’

“지환아, 뭐 하냐고? 누님 기다리시겠다, 빨리 줘!”

“아! 쏘리쏘리. 갑자기 길드 가입 제의가 들어와서 잠시 귓말 하느라…….”

내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현중이가 놀라서 되물었다.

“뭐? 아이디 바꾼 지 며칠 됐다고 누가 벌써 널 알아? 설마 방금 타임 어택 때문에?”

“응. 기록보고 연락했나 봐. 좀 전에 만났던 피닉스 길드원한테 귓말이 왔네.”

“오, 뭐야! 피닉스라니! 짝퉁이나 2, 3군이 아니고? 피닉스가 널 왜 영입해? 거긴 최상위권도 추천 없이는 그냥 못 들어가는 곳인데.”

“나도 몰라. 날 언제 봤다고 갑자기 가입 제의인지 원. 어쨌든 부길마 장본인한테 귓말 온 거니 구라는 아닌 것 같긴 한데…….”

“헉! 부길마라면 성기사 랭킹 1위 히든캬드 아냐! 그 사람이 너한테 귓말을 줬다고? 야, 도대체 언제 내 워너비한테 눈도장이 찍힌 거냐?”

아, 맞다.

이 자식도 성기사라 그쪽 랭커에 관심이 많았었지.

“좀 전에 타임 어택하다가 봤어. 자기네 길드원이 새로 키워서 도전하는지 장비 빌려주더라고. 1위 해서 좋아하는 걸 3분 만에 경신해 줬더니 방금 그 길드원이 귓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이런, 진짠가 보네……. 피닉스라면 우리 세인트로는 성에 좀 안 찰 수도 있겠는데?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꼭 널 우리 길드로 데려오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세인트 길드.

소수 정예로만 플레이했기에 공성전 같은 대형 콘텐츠에는 참여를 안 하지만, 레이드 등에서 나름 명성이 있는 현중이네 길드.

실력 있는 소수로 운영했기에 추천제로만 들어갈 수 있었고, 한번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이 탈퇴 없이 평생 길드원이 됐기에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랑했다.

오죽하면 PC 버전부터 같이 해 왔던 길드원들은 ‘축복받은’이라는 수식어를, 아이디 앞에 통일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또 그 소리냐? 난 어느 길드에도 가입 생각 없대도? 잔말 말고 교환이나 걸어, 장비 넘겨주게.”

“짜식, 비싸게 굴기는. 암튼 형님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니깐 맘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라, 곧장 추천해 줄게. 어? 근데 이거 뭐야? 이걸 왜 같이 올려?”

“잔말 말고 받아.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니깐.”

조금 전 창고에서 빛나는 마력석을 찾으면서, 며칠간 창고에 고이 모셔 뒀었던 아이템도 함께 꺼내 왔다.

며칠간 몇 번이고 고민해봤지만, 아무리 봐도 이게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4 사자왕 번스타인의 미스릴 장검(레전더리, 한 손 무기)>

* 공격력: 660(+264)

* 근력 +50(+20), 체력 +50(+20), 민첩 +25(+10)

* 언데드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660(+264)

* 버프 및 오라, 회복 스킬 효과 +20%(+8%)

* 공격 성공 시 15% 확률로 ‘홀리 웨폰’ 발동

* 사자왕 번스타인 생전에 그와 수많은 전장을 함께했던 애검입니다.

* “자레트 협곡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사자왕의 모습을 본 3만의 제국병들은, 총사령관 안토스의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역사학자 드미트리 란테스-

일도양단으로부터 처음 이 검을 얻었을 때는 당연히 판매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몇 가지 사항들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첫 번째는 바로 멀린의 배신.

내가 다리우스로부터 신검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아주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내부의 배신 때문이었다.

물론 현중이가 멀린 같은 놈은 결코 아니지만, 게임 내 유일한 지인이기에 나의 가장 큰 잠재적 리스크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참을 노력해서 결실을 보려는 순간에 다리우스처럼 뒤통수를 맞는 일만큼은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이걸 지금 나한테 주려고 올린 거라고?”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할게. 이거 뇌물이야. 절대 날 배신하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도와달라는 뇌물. 이 정도는 줘야지 혹시라도 허튼 생각 같은 게 안 들 거 아냐? 딱 너 쓰기에도 최적화된 옵션이기도 하고 말이야.”

“이 자식, 말하는 거 봐라? 됐다. 이거 안 받으니깐 도로 가져가라. 난 이런 거 없이도 게임 잘해왔고 앞으로도 문제없다. 도대체 날 뭘로 보고 그딴 소리를 하냐? 아, 확 열 뻗치네.”

두 번째는 바로 보험.

아무리 내가 이 게임에 올인하고자 마음먹었다지만, 이런 큰돈이 들어와 있을 때 어느 정도는 보험 삼아 현금화를 시켜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하나 당장 쓰지도 않을 현금화보다는 녀석에게 이 무기를 맡겨 그동안 잘 써먹는 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좋아 보였다.

몇억씩이나 하는 아이템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니 형성된 가격이었을 테니 말이다.

“흥분하지 말고 들어 봐,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만약 내가 도중에 죽어서 신검을 떨구기라도 해 봐. 완전 개털 되는 거 아냐? 그때 이 레전더리 무기라도 너한테 남아 있으면 그래도 나한테 몇억은 남아 있는 거잖아. 그러니 그런 불상사를 대비해서 니가 쓰고 있어. 이걸 창고에만 넣어두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그게 말이 돼? 그냥 팔아서 현금화시켜 놓으면 되는 걸, 뭐 하러 굳이 그러는데? 네 맘은 잘 알겠고 참 고마운데……. 아무리 빌려준다고 해도 이게 한 두 푼짜리도 아니니 내가 선뜻 받기는 좀 곤란하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바로, 앞으로도 현중이 녀석의 전폭적인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넌 이대로 멈춰 있을 거냐? 얼마 전까지 허접이었던 내가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난 랭커를 넘어서 이 게임에서 지존이 될 거야. 그러기 위해 지금 이렇게 캐릭도 새로 키우고 있는 거고! 근데 넌 지금 수준에서만 계속 만족해하며 머물러 있을 거냐고? 언제까지 히든캬드 같은 랭커를 부러워만 하고 있을 건데!”

“야, 랭커가 아무나 되는 줄 알아?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나 같은 일반 유저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랭커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구조야.”

“그러니깐 지금 내가 그 지원이란 걸 해주겠다는 거 아냐! 나는 뭐 달랐어? 나도 이제야 운 좋게 신검빨로 꿈을 꾸게 된 거잖아. 너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어? 너도 이거 받고 템빨로 꿈을 한번 꿔 보라고! 그 정도 자신감도 없는 실력이었냐?”

“…….”

“다시 말하지만 이건 뇌물이라니까? 사실 네 도움과 조언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이렇게 순탄하게는 못 왔어. 방금 타임 어택과 레벨업도 네 도움이 없었으면 나 혼자 이렇게 쉽고 빠르게 해치울 수 있었을까? 앞으로도 넌 나한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이거 받아. 그래서 우리 같이 이 게임 한 번 제대로 씹어먹어 보자.”

4억.

이 +4 레전더리 무기의 가치는 팔기 나름이겠지만 최소한 4억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잘 나가는 프로 게이머의 연봉이 수십억을 넘은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다.

가능성이 보장된 녀석에게 이 정도를 투자하는 것은,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푼돈이었다고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가 게임 내에서 유일하게 내 신상 명세를 알고 있는 녀석이기에, 이 정도는 해줘야 녀석을 믿고 성장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우습겠네. 하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 타이탄 시리즈에만 10년 넘는 세월을 바치면서 살아왔잖냐? 그러니 나라고 너 같은 꿈을 꿔 본 적이 없었겠냐? 좋아. 네 말대로 우리가 이 게임 접수하자. 이 검만 있다면 내가 랭커쯤 되는 게 어려울까!”

“아, 새끼. 결국 받을 거면서 드럽게 질질 끌었네. 얼른 오케이나 누르고 장비나 반납하러 가!”

“그래, 고맙다 지환아. 이건 나중에 꼭 돌려줄 테니까 그동안은 잘 쓰마. 형 간다!”

“형은 무슨, 내가 형이지.”

떠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무척 설레는 것처럼 보인 건, 내 착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운 좋게 주운 물건.

시기적절하고 요긴하게 잘 쓰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돈이야 앞으로 또 벌면 될 테니.

무릇 인생이란 쪼잔하기보단 대범한 사람이 대성하는 법 아니던가?

조금 아끼려다가 백억이 넘는 신검을 날리거나 성장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보면, 이게 옳은 결정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나 무덤덤할 수 있다니……. 나도 내가 예전의 그 강지환이 맞나 싶다.’

확실히 소탐대실이었던 내 성격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지존이라는 목표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그렇게 현중이를 떠나보낸 뒤, 곧바로 히든캬드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나: 죄송합니다. 볼 일이 있어서 바로 답장을 못 드렸네요.)

(히든캬드: 괜찮습니다 산드로 님. 혹시 결정은 내리셨는지요? 귓말로 좀 그러시면 제가 직접 찾아뵐까요?)

(나: 아닙니다. 귓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전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어서 아무래도 피닉스와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히든캬드: 혹시.... 다른 길드를 염두에 두고 계셔서 그런가요?)

(나: 아니요. 사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처음인데, 전 앞으로도 어느 길드에도 들 생각이 없습니다.)

(히든캬드: 네? 혹시 타연을 처음 시작하시는 건가요? 저는 기록을 보고 당연히 새로 키우시는 고수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연내에서 길드 없이는, 나중 가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단정 지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건 알고 계신가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줄곧 솔플러를 고집해 왔기에, 그동안 유독 이 게임에서만큼은 내가 활약해보지 못했다.

그만큼 타연에서 길드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은, 손발을 묶고 플레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길드에 가입하면 받게 될 많은 메리트들 또한요. 하지만 제가 하려는 계획은 아무래도 길드 생활보다는 솔플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괜히 저를 받았다가는 나중에 피닉스 길드에 민폐만 될 일이니, 아마 절 영입하지 않았던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히든캬드: 그럴 일이야 있겠냐마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며 거절하시니 더는 권하지 못하겠네요... 아쉽군요.)

(나: 다만, 이런 말이 염치없게 들리시겠지만 저도 히든캬드 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히든캬드: 제안이요?)

(나: 네. 현재 피닉스 길드에서는 1년이 넘도록 듀레인 성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든캬드: 네. 맞습니다만...?)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

연이 없어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사냥터가 떠올라, 히든캬드에게 즉흥적인 제안을 제시해봤다.

(나: 듀레인 성의 전용 사냥터를 2주 동안만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거기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히든캬드: 저희 성 던전이요? 뱀파이어 던전은 이제 저희 길드원들이 렙업하기에는 다소 인기가 시들해져서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거기는 보통 250레벨 이상급이 파티사냥 해야 하는 곳이라 님의 레벨로는 가 봤자일 텐데요?)

(나: 저도 당장은 아니고요. 허락해 주신다면 며칠 정도 후에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연구하고 있는 테크트리가 있는데 시험해보기에 딱 좋은 던전이 그곳이라서요. 만약 허락해 주신다면, 절 ‘용병’으로 쓸 수 있는 권한을 피닉스 길드에 한 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히든캬드: 용병요? 저희 피닉스가 당신을 말입니까?)

(나: 네. 그 권한을 언제 쓰시게 될지 모르지만, 아주 비싼 대가를 받으신 거로 생각하셔도 좋을 겁니다.)

(히든캬드: 하하하! 거절을 하셔도 정말 자신감 넘치게 하시는군요? 저희 피닉스 길드가 이제 갓 타임 어택을 통과한 100레벨 유저 한 명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을 거라니... 아무튼 좋습니다. 꼭 그 대가 때문이 아니더라도, 왠지 산드로님께는 먼저 호의를 베풀고 싶어지는군요.)

(나: 그 말씀은 괜찮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히든캬드: 네. 제가 인던을 관리하는 길드원에게는 미리 말해 놓겠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얼마든지 이용하세요.)

의외였다.

그냥 한번 찔러나 보는 식으로 제의를 해봤던 건데, 뜻밖에 히든캬드가 통 크게 허락해줬다.

이렇게 되면 내가 생각했던 레벨업 기간은, 최소 열흘 이상 단축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던이라 안전할 뿐만 아니라, 신검의 효용이 극대화될 수 있는 사냥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제된 사냥터였기에 시중에서는 절대로 구하지 못하는, 바로 ‘그’ 아이템을 획득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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