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37화 (37/350)

37화 오크 로드 레이드 (2)

필드 보스 레이드.

공성전이 대규모 전투의 꽃이라고 한다면, 필드 보스 레이드는 소규모 전투의 꽃이라 불린다.

나는 내내 솔플만 해왔던 유저라서 필드 보스 레이드에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적었지만, 대부분의 상위권 유저라면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꼬박 참여하고 있었다.

이유는 역시나 ‘아이템’ 때문.

필드 보스들이 드랍하는 아이템은 인던에서 얻는 템들과 같은 급이라 할지라도 스펙이 더 뛰어났다.

거기다가 필드 보스의 특징을 본뜬 독특한 옵션이 붙은 경우도 많아, 훨씬 인기가 많고 비쌌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드랍률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필드 보스 몹은 며칠에 한 번씩 생성되는 반면에, 인던의 보스 몹은 수많은 유저들이 각자 수백 번씩 도전할 수 있다.

그러니 필드 보스의 드랍률이 인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았다.

발견했다면 거의 무조건 유니크 이상급의 템을 주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관할 정도.

심지어 레전더리급의 아이템을 떨구는 보스 몹이라면, 2마리에 하나 정도는 꼭 레전더리 템을 떨굴 정도로 부자 몹이었다.

이것이 필드 보스 레이드가 소규모 전투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걸어 다니는 로또나 마찬가지인 필드 보스였기에, 유저들 간의 레이드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했으니 말이다.

“산드로 님은 필드 보스 레이드는 좀 참여해 보셨어요? 구경이라도 해 보셨어야 실전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이 오실 텐데요.”

“조금요. 예전에 잠시 레이드 길드에 가입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다만 금방 나와서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은 몇 번 없네요.”

“해보셨다니 알겠지만, 필드 보스라고 인던 보스 몹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그저 피통이 워낙 많고 광역 스킬을 자주 쓴다는 점이 좀 다른 점이죠. 그것만 유념하면서 잡으시면 됩니다.”

필드 보스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초반에 발견했을 때 빠르게 잡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곧 수백 명의 유저들이 몰려와 쟁탈전이나 개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었으니.

대형 길드들이 사냥터를 통제하고 척살 시스템을 운영하게 된 최초의 원인이, 이 필드 보스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레벨업은 많이 하셨어요? 이 오크 로드는 최근에 오픈된 잿빛 산맥에서 리젠되는 거라 레벨이 좀 높은 편인데…… 그 타이탄이라는 걸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거겠죠?”

루이투스를 탔을 때 알게 된 몇 가지 중 하나.

다른 소환물들과 달리, 타이탄은 레벨업을 할 수 없어 처음 정해진 스펙에서 추가적인 상승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명중률도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필드에서나 공성전 때, 나보다 높은 레벨의 몹과 유저들을 거침없이 잡아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남들에게 알려져서 하등 좋을 게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려 대답했다.

“네. 레벨업도 꽤 많이 했고 명중률을 보정하는 세팅도 맞춰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필드 보스라 제가 혼자 잡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닐 텐데, 기회를 봐서 도중에 난입한다면 마무리하는 데 문제없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그렇겠네요. 다 잡을 때쯤에 들어가서 저번에 보여주신 그 광역기를 한번 날리시면, 대부분의 유저들이 루팅 거리에도 못 들어 올 거예요.”

“그런데 오크 로드 공략법에 대해 알고 계신 부분이 있나요? 최근에 잡히기 시작했다면 상당히 강한 놈일 텐데요.”

새로 키우기 전에 했던 캐릭이 확실히 랭커급이 분명했는지, 라스트챤스는 최상위권 유저도 알기 힘든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몇몇 것들은, 돈 주고도 듣기 힘든 고급 정보들이었다.

“크게 어려운 구간은 없고 마지막 페이즈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오크 로드의 HP가 25%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 발동되는 불굴의 용맹함 효과 말이죠.”

광폭화(狂暴化)에 걸린 오크 로드의 단일 공격.

라스트챤스의 말에 따르면, 그 공격을 버틸 수 있는 유저는 지금 랭커급 탱커 중에도 드물 정도로 강력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구간에서는 그저 맞아 죽거나 도망 다니며 어그로를 끄는 동안, 미친 듯이 폭딜해서 남은 HP를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이 현재 유일한 공략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잡을 수 있는 보스 몹인 만큼 보상은 달콤했다.

이놈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2마리당 1번꼴로 레전더리 템을 드랍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폭화 구간. 그 구간을 노리시면 됩니다. 그때 타이탄이 난입하게 된다면, 거기 모인 태성 놈들도 전부 금방 몰살시키고 혼자서도 잡아낼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타이탄을 직접 소유하고 계신 유일한 분이시니 판단 내리실 수 있겠죠? 가능할 것 같으세요?”

“말씀하신 대로만 레이드가 진행된다면…… 가능하겠습니다. 충분히!”

* * *

“그래서, 그 라스트챤스란 놈의 말대로 정말 오크 로드를 레이드 하려고?”

“어. 레이드가 뜻대로 될지, 목걸이가 원하는 대로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해. 이 템만 먹게 된다면 한 번에 강해질 뿐만 아니라 레벨업 시간도 훨씬 더 단축하게 될 거야. 거기다 태성이 먹은 칼젠 성 지역의 필드 보스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이 템을 구하는 건 훨씬 더 힘들게 되겠지.”

“물론 네 말대로라면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만, 그래도 그 라스트챤스가 믿을 만한 사람일까? 너무 호의적으로 나오니깐 내가 다 불안한데?”

새벽 5시.

조용한 새벽 거리를 안주 삼아, 난 간만에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현중이와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동안 서로 레벨업 하느라 바빠, 직접 만나는 것은 거의 2주 만이었다.

“혹시 모를 뒤통수도 고려해 봤는데, 오크 로드는 태성 길드 지역에서 뜨는 몹이라 피닉스가 조직적으로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더라. 거기다가 라스트챤스는 나와 함께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저 제보만 주기로 했어.”

“제보?”

“어. 라스트챤스가 자신만만하게 나에게 레이드를 권유했던 이유가 있더라. 태성에 자기네 스파이가 있단다. 그것도 무려 1군 안에.”

“뭐? 스파이? 배신자가 멀린 말고 또 있다고? 미친놈들! 게임을 하랬더니 아주 영화를 찍고 있구만?”

“뭐 그리 치열하게 머리통들 굴려 가며 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렇단다. 아마 자기네 피닉스에도 태성이 진작부터 심어 놓은 스파이가 있을 거라던데? 아무튼 그 스파이가 줌바카 뜨면 바로 알려줄 거라고 하더라고.”

오크 로드 ‘줌바카’.

태성 길드가 마지막으로 점령한 칼젠 성 지역의 ‘잿빛 산맥’에, 바로 이 보스 몹이 출몰했다.

타연 속 성들을 최초로 점령하기 위해서는 기존 NPC 소유의 성을 공성으로 뺏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칼젠 성은 고레벨 지역에 위치한 성인지라, 수성 NPC들의 레벨도 상당히 높아 비교적 최근에야 점령에 성공해서 5성을 달성했던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점령한 지역에서 필드 보스가 리스폰 되면 길드 간부한테 NPC 제보가 들어온다며? 근데 이 오크 로드는 아직 소수 정예로 잡기 힘드니까, 일부가 독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다 불러서 잡는다더라. 그러니 태성이 우르르 몰려갈 때 나도 귓말 받고 그곳으로 따라붙으면 되는 거지.”

성을 점령하면 생기게 되는 여러 특전(特典)들.

가장 큰 특전은 역시나 유저들로부터 간접세(稅)를 걷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필드 보스 알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보상이었다.

필드 보스가 리스폰 된 지 30분이 지나도록 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으면, NPC들이 제보했다는 명목으로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길드에게 위치 정보가 전송된다.

그래서 최초로 발견한 파티가 재빠르게 레이드 하지 못하면, 금세 찾아온 점령 길드와 뒤따라온 하이에나들로 인해 진흙탕 싸움이 돼버리고 말았다.

높은 확률로 개싸움이나 막레이드로 변해버리곤 했지만, 그래도 성을 먹은 길드원들이 독식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내가 라스트챤스로부터 제보 귓말을 받기만 한다면, 아직 살아있는 오크 로드를 만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보장됐다.

“하긴 넌 타이탄만 있는 게 아니라 개사기이자 띱사기인 8성 은신을 가지고 있지? 그럼 레이드 끝나고 빠져나오는 것도 어려울 게 없지. 아직 사람들은 네가 가진 은신이 8성인지 모를 테니깐……. 아무튼 형님이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 바쁘지만 부르면 가줄 여유는 있다.”

“됐다. 내 캐릭은 그냥 혼자서 치고 빠지는 게 제일 편해. 그나저나 레벨업은 많이 했냐?”

“당연하지! 확실히 레전더리는 레전더리더라. 2주 만에 330렙 찍었다.”

“오! 벌써?”

“체감상 사냥 속도가 거의 2배는 빨라진 것 같아. 덕분에 파티 사냥은 접고 아는 힐러 형이랑 둘이서만 각 잡고 열렙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몇 달 안에 랭커급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는데?”

“근데 생각해보니 형 150렙 올리는 동안 고작 6레벨밖에 못 올린 거야? 와, 템 괜히 빌려줬네? 열심히 좀 하라고 기껏 빌려줬더니만!”

“쨔샤. 너도 일단 300렙 찍어 봐. 그때부터 극악으로 안 오르는 경험치에, 랭커들이 괜히 대단한 놈들인 게 아니었구나 깨닫게 될 테니깐.”

“알겠으니 이것만 마시고 파하자. 내 인생에 요즘같이 바빴던 적이 없다.”

“크크크, 오냐. 아무튼 자나 깨나 뒤통수 조심하고, 꼭 줌바 뭐시긴가한테서 득템해라!”

그렇게 현중이와 헤어진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 * *

알람 덕분에 딱 3시간 만에 일어났다.

아직 오크 로드가 리스폰 될 시간은 아니었지만, 레이드 전까지 해 놓을 몇 가지 준비가 생각나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루이투스의 소환이 풀릴 때, 잘못하면 산드로가 매그넘03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어. 만약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대놓고 사냥할 수 있는 날은 끝났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맘 편히 사냥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더 렙업해 놓자.’

소환이 해제되는 타이밍에 은신을 써서 벗어나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지 운이 좋을 경우만 상정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건 좋지 않았다.

바쁜 마음으로 타연에 접속한 나는 공간이동술사를 통해 태성이 점령하고 있는 칼젠 성으로 이동했다.

[칼젠 성 외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유저들에게 가장 최근에 점령된 성.

그리고 현재 최상위권 유저들만 주로 사냥하느라 아직은 한산한 성.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잿빛 산맥의 맵을 미리 살펴보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챙겨 둘 퀘스트가 있어서였다.

아직은 이 퀘스트의 존재를 모르는 유저가 99% 이상이겠지만, 나는 라스트챤스의 조언으로 레이드 전에 빼먹지 않고 얻을 수 있었다.

“워낙 사납고 용맹한 녀석들이라 힘들겠지만, 우두머리 토벌에 성공한다면 그 보답이 섭섭지 않을 것이오!”

[수석 행정관 홀테인의 의뢰: 토벌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A

* 최근 잿빛 산맥에서 창궐 중인 붉은 갈기 오크 족의 오크 로드 ‘줌바카’를 토벌하라.

-‘줌바카의 머리(!)’를 홀테인에게 전달

* 퀘스트 클리어 보상: 특별 스킬 습득 가능(랜덤)

칼젠 성 내성에 있는 수석 행정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토벌 퀘스트.

미리 이 퀘스트를 받아두면 오크 로드를 레이드할 때 가장 많은 누적 딜을 넣은 유저에게 ‘줌바카의 머리’가 자동 습득된다.

그러면 줌바카가 드랍하는 템 외에, 퀘스트 보상을 추가로 받게 되는 셈이었다.

확실히 랭커급이었던 유저의 조언이 있다 보니, 여러모로 훨씬 효율적이고 빈틈없는 플레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도 별나라 사람들 얘기라, 이런 히든 스킬을 주는 퀘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잊어먹고 있었네.”

히든 스킬.

특정 퀘스트를 통해 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스킬로, 정식 명칭은 ‘특별 스킬’이었다.

공통 스킬과 심화 스킬도 어느 직업군이나 제한 없이 익힐 수 있었지만, 이 특별 스킬은 소수에게만 습득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방금 내가 받은 이 홀테인의 퀘스트만 해도, 퀘템으로 오크 로드의 머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수백 명 이상이 달려드는 레이드에서 단 1명만이 가질 수 있는 오크 로드의 머리.

그런 만큼, 이런 특별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타연 전체 유저들 중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거기에 보상으로 어느 스킬이 뜰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상 습득 시 랜덤으로 제시된 스킬만 배울 수 있었기에, 자신의 테크트리와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특별 스킬은 이름만큼이나 대가가 비쌌다.

1성을 찍을 때마다 요구하는 스킬 포인트가 무려 2개였던 것이다.

“이 히든 스킬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잘하면 하나 배울 수도 있겠는데? 퀘스트를 반복해서 받을 수만 있다면, 원하는 스킬이 뜰 때까지 노가다했을 텐데 아쉽네.”

히든 스킬은 자신의 테크트리를 유니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지만, 의외로 그 효용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원하는 스킬을 본인과 딱 맞게 얻는 것이 무척 힘들었고, 스킬 포인트를 2개씩 소모하는 것 치고는 다른 공통 스킬들과 비슷한 수준의 효과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심화 스킬보다도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말 그대로 남들이 흔하게 가지고 있지 못한 ‘특별’한 스킬이었지, 크게 ‘대단한’ 스킬은 아닌 셈.

그래서 대다수는 1성 정도만 찍고 비장의 한 수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아, ‘히든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많이 불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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