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41화 (41/350)

41화 테이밍 몬스터 (2)

섣부른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연우님이 없었다면 시작도 못 해 봤을, 아니 시작했어도 결국 금방 포기했을지 모를 태성과의 전쟁이었다.

한데 연우님 뿐만 아니라 이번에 큰 호의를 먼저 베풀어 준 라스트챤스까지…….

진심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먼저 보여 준 호의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태성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믿어볼 만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현중이 정도로 신뢰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번 레이드에서와 같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있다면 협력할 가치는 충분했다.

한데 두 사람 모두, 보기 힘든 고수들이자 현존하는 탑 티어의 길드에 속해 있는 상태.

심지어 연우님은 다리우스 패거리가 있는 태성 1군 길드에 들어가 있었다.

이런 인맥은 억지로 만들기도 힘든 것.

그런데 알아서 찾아온 만큼, 훗날 이 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순간이 분명히 올 거란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연우님과 라스트챤스, 이렇게 셋만의 협력 관계를 맺게 되었다.

* * *

수석 행정관 홀테인.

오크 로드를 레이드하는 데 성공한 이상, 이제 칼젠 성 지역에서는 이 NPC를 만나는 일만 남아 있었다.

“모험가 산드로여, 제가 지난번에 의뢰했던 토벌은 해결했습니까? 요즘 잿빛 산맥의 붉은 갈기 오크 족들의 공세가 약해진 것을 보아하니, 오크 로드에게 변고가 생긴 것 같다는 보고를 받긴 했습니다만.”

“여기, ‘줌바카의 머리’를 가져왔으니 확인해 보든가!”

“오! 기대하지 않았건만 정말 오크 로드를 토벌하는 데 성공하다니. 당신은 정녕 대단한 모험가였군요! 약속했던 보상으로 당신에게 우리 칼젠 성에 전해지는 비전을 알려드리리라.”

띠링!

[‘수석 행정관 홀테인의 의뢰: 토벌 퀘스트’를 해결했습니다.]

[보상으로 특별 스킬 습득 기회가 제공됩니다.]

‘과연 무슨 히든 스킬이 뜨려나? 마나 드레인 같은 게 뜬다면 초대박인데!’

마검사 랭킹 1위 카이저.

그가 작년 제국이 주최한 콜로세움 토너먼트에서 우승할 당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스킬이 바로 ‘마나 드레인’이었다.

한번 시전 되면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동안 상대방의 마나를 뺏어오는 스킬.

일명 ‘빨대 꽂는다’는 이 스킬에 맞게 되면 상대방은 마나가 점차 부족해지고, 반대로 자신은 스킬을 남발할 수 있을 정도로 마나가 풍족해진다.

이 때문에 마검사인 카이저는 준결승 상대였던 성기사 랭킹 1위 히든캬드로부터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내 테크트리의 강력한 카운터 스킬.

그와 동시에, 너무나 탐나는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이 마나 드레인이 바로 1성당 스킬 포인트를 2개씩 소모하는 특별 스킬이었다.

만약 전사나 궁수에게 이 스킬이 뜬다면 쓰레기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게 뜬다면 최고나 다름없는 스킬이었다.

확실히 특별 스킬은 랜덤으로 주어지는 스킬이기에, 자신에게 꼭 맞는 스킬을 얻는 데는 상당한 뽑기 운이 필요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퀘스트 보상 창에 있는 특별 스킬 습득 버튼을 터치했다.

띠링!

[‘테이밍 몬스터(특별 스킬)’를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습득을 선택하시면 스킬 포인트 2개가 즉시 소모되거나, 향후 레벨업 시에 제공될 스킬 포인트 2개가 미리 차감됩니다.]

“아! 뭐야 테이밍 몬스터라니! 어휴, 어쩐지 내 주제에 운이 그동안 너무 좋다 싶었다!”

테이밍 몬스터(taming monster).

최고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스킬을 기대했건만, 꽝이 나와버렸다.

이름 그대로 타연 속에 있는 몇몇 필드 몬스터를 테이밍해서 자신의 펫으로 만들 수 있는 스킬.

현실에서 반려동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도 갖고 싶은 스킬이겠지만, 내게는 전혀 필요 없었다.

나야 항상 은신하고 다닐 테고 신검이나 다른 템빨을 활용할 스킬을 찍는 것도 바쁠 텐데, 굳이 큰 도움도 안 될 ‘펫’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한다?

가뜩이나 뒤처진 레벨업을 만회하느라 바쁜 나인데, 경험치를 나눠서 키워 줘야 그나마 쓸만해 지는 그 ‘펫’을?

이건 정성껏 키워온 내 캐릭에 똥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펫은 말 그대로 기마병이나 울프 라이더같은 탑승용으로 쓰이거나, 다이어 베어나 골렘 등으로 몸빵시키며 사냥하는 버퍼 계통에나 인기 있었다.

아쉽지만 습득을 포기하는 버튼을 터치하려는 순간.

그동안 자세하게는 모르고 있던, 스킬의 설명창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밍 몬스터(특별 스킬): ★]

* 마나 소비: 1200

* 사용 대기 시간: 10초

* 구속의 숨결을 사용하여 필드 위의 몬스터를 테이밍하면, 자신의 펫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최대 1마리)

*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테이밍에 도전해야만 펫으로 테이밍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의 총 스탯의 합(100%)보다 총 스탯의 합이 낮은 몬스터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 펫이 된 몬스터는 마나 600을 소비해서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소환된 펫은 강제로 해제하거나 HP가 0이 되지 않는 이상, 소환이 해제되지 않습니다.

읽다 보니 몇몇 문구들이 포기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일단 한 번 펫을 소환하게 되면 더는 마나를 소모하지 않는다라……. 이건 좀 솔깃한데?’

사실 도둑이란 직업은 생존 능력은 좋지만 솔플 사냥하기엔 그리 좋진 않았다.

추후 태성과의 단독 전쟁을 염두에 두었고 신검을 옮길 수 없어서 정한 직업이었지, 솔플에 최적화된 직업은 따로 있었다.

정령사, 혹은 부동의 솔플 최강자라는 네크로맨서 같이 소환물을 다루는 직업군 말이다.

그들의 사냥 효율은 도둑과 비교가 안 되게 월등했으나, 나는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공통 스킬조차 단 한 개도 배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역시나 마나 쉴드.

마나를 쓸수록 HP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내게, 늘 마나 부족에 허덕이는 소환 종류의 공통 스킬은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이 테이밍 몬스터 스킬은 달랐다.

몬스터를 소환하는 데 마나는 들지만, 유지하는 데 소모되지는 않았다.

이 스킬은 소환물이 아니라 ‘펫’을 만드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즉, 괜찮은 몹을 테이밍해서 잘 키우기만 한다면 소환 직업군 못지않은 뛰어난 졸병을 끌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스킬이라 몰랐는데, 확실히 볼수록 좋은 것 같아. 이동용이나 몸빵용으로만 써먹어도 밥값은 할 스킬 같은데? 사냥 효율도 올라갈 것 같고.’

내가 포기를 망설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

그건 태성의 유명한 그리폰 라이더, ‘슈마허’의 펫이 문득 떠올라서였다.

얼마 전 대관식 때 물약을 떨구며 성 위를 날아다니는 녀석을 직접 보았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녀석이 탄 그리폰은 다른 사람이 탄 일반 그리폰이 아니라, 무려 ‘그리폰 킹’이었다는 사실을!

이럴 때를 위해 동맹을 맺었던 것 아닌가?

예전이라면 그저 끙끙대며 혼자 답답해했겠지만, 이제는 곧바로 정답을 물어볼 곳이 있었다.

(나: 연우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님네 길드의 슈마허가 타고 다니는 그리폰 킹 있잖아요. 그거 어떻게 얻은 건지 알고 계신가요? 혹시 테이밍?)

(연우: 아... 그건 저도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어요. 다른 라이더분들이 드랍된 알을 부화시켜 얻은 것과 다르게 생겨서요. 슈마허님은 필드에서 직접 테이밍하신 거라고 들었어요. 엄청 노력해서 얻게 된 히든 스킬이라고요.)

(나: 히든 스킬이라면 역시 특별 스킬인 테이밍 몬스터겠군요.)

(연우: 네, 아마 그 스킬일 거예요. 근데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나: 사실 제가 지금 특별 스킬 보상으로 테이밍 몬스터가 뜬 상태라서요. 포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슈마허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리폰 킹이라면 분명 보스 몹일텐데 그걸 테이밍했다니... 보스 몹도 테이밍되는 거라면 이거 꽤나 좋은 스킬이지 않을까요?)

(연우: 별생각은 안 해 봤었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요. 펫은 소환물과 다르게 자체적으로 레벨업도 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설마 익히시려는 건 아니죠? 도둑이신데 그걸 배우시면 스킬 테크트리가 엄청 꼬이실 텐데요...?)

(나: 고민 좀 해보게요. 잘만 쓰게 되면 정말 제 히든 스킬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서요.)

연우님 덕분에 좋은 정보를 확인하게 됐다.

익힌 유저가 별로 없어 몰랐는데, 이 테이밍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뿐만 아니라 보스 몹도 테이밍이 가능했다.

오직 혼자만 테이밍에 도전해야 했고, 스탯 포인트의 합이 자신보다 낮은 몹만 가능하다는 조건.

이 두 가지 제약 사항 때문에 일반 유저라면 엄청 강한 몹, 특히 보스 몹 같은 경우에는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오크 로드의 증표, 그리고 고대 뱀파이어 귀족의 사파이어 반지 쌍가락지.

신검과 더불어 몇몇 레전더리 템들을 갖추게 된 나로서는, 스탯의 합이 빵빵할 뿐만 아니라 웬만한 보스 몹도 충분히 혼자 잡을 자신이 있었다.

‘펫으로 보스 몹을 끌고 다닌다?’

게임을 하면서 한 번도 이런 로망을 안 꿔봤을 유저가 있을까?

그런데 그게 실제로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이어서 스킬 정보도 검색해봤다.

테이밍 몬스터.

확인해 보니 이 스킬은 1성이 올라갈 때마다 소유할 수 있는 펫이 1개씩 늘어났다.

다만 아쉽게도 소환 유지가 가능한 것은 동시에 한 마리뿐.

하지만 한 마리라도 상황에 맞게 펫 중에서 골라가며 소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은 조건이었다.

거기에 테이밍 조건 완화.

1성마다 총 스탯의 합 제한이 25%씩 완화됐다.

그렇다면 성장 한계인 5성을 찍는다면 원래 스탯의 합보다 200%가 높은 몬스터도 테이밍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난 신검과 고스펙의 장비들 덕분에 그 정도까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딱 1성.

그것만으로도 신검의 옵션 덕분에 이 테이밍 몬스터라는 스킬을 본전까지 뽑고도 남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실수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전하자. 공중 탈것을 꼬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스킬이야. 만약 제대로 써먹게 된다면 내 캐릭은 더욱 유니크해질 테고 말야!’

그렇게 나는 과감히 결정을 내렸다.

띠링!

[테이밍 몬스터(특별 스킬)를 습득했습니다.]

[습득에 필요한 스킬 포인트가 부족하여 향후 레벨업 시에 제공될 스킬 포인트 2개를 미리 차감합니다.]

“훌륭한 선택을 내렸군요. 어딜 가서도 이런 특별한 스킬을 배울 기회는 흔치 않을 겁니다!”

홀테인의 마지막 멘트를 들으며 스킬창을 살펴보니, ‘특별 스킬’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었다.

사실 난 이번 오크 로드 레이드를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전장에 참여하고 이탈하는 데에는, 역시 기동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평타 공격 한 대에 소환이 해제되는 이동용 소환말은, 전장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물론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빠른 이속을 가진 도둑을 택했던 거지만, 줄곧 재빠른 몸놀림의 액티브 상태로 다닐 순 없기에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는 퍼즐 조각.

난 이 테이밍 몬스터로 그 퍼즐을 완성하기로 결정 내렸다.

어쨌든 스킬을 배웠으니 잘 배웠는지 시험해 봐야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난 현중이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나: 현중아, 혹시 내일 새벽에 약속 있냐?)

(축복받은얼굴: 뭐? 새벽에 약속 잡는 미친놈도 있냐?ㅋㅋ 길드원들 다 잘 시간이니 혼자 사냥이나 하고 있겠지. 왜?)

(나: 별로 안 바쁘면 나 좀 도와주라.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축복받은얼굴: 뭔데 그래?)

(나: 어쩌다 보니 특별 스킬인 테이밍 몬스터를 익히게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너 말고 제대로 된 쫄다구나 하나 구해 보려고.)

(축복받은얼굴: 뭐? 이 미친놈! 도둑이 그걸 왜 배워!! 이제껏 잘 키워 놓고 캐릭 조졌네 조졌어!)

(나: 조졌는지, 아니면 게임을 조질 건지는 두고 보기나 하고... 아무튼 나 좀 도와줘. 새벽에 센츄라 화산지대에 갈 건데 같이 좀 가줘야겠어. 거기서 탈 것 좀 테이밍 해볼 건데, 누가 접근 좀 못 하게 막아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

(축복받은얼굴: 센츄라? 거긴 왜? 거긴 뭐 테이밍 할 것도 없지 않나? 용암 골렘이나 불꽃 도마뱀을 타고 다닐 것도 아닐 테고... 도대체 뭘 테이밍 하려고?)

(나: 센츄라에 타고 다닐 몹이 왜 없어? 거기에 그거 뜨잖아, 졸라 간지나게 날아다니는 놈!)

(축복받은얼굴: 용암 지대에 날아다니는 게 뭐가 있다는 거야? 아! 아니다, 하나 있긴 있구나. 설마 너?)

(나: 맞아. 필드 보스 몹 레드 드레이크. 그거 이제부터 내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