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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44화 (44/350)

44화 레드 드레이크 (3)

그렇게 몇 번이고 스킬을 시전해 보는 사이, 결국 드레이크는 죽어버렸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아이템은 아이템.

드레이크 HP의 대부분은 내가 깎아 둔 것이었기에, 다행히 높은 루팅 권한으로 드랍템을 모두 먹을 수 있었다.

“뭐야, 엄청 빨리도 먹네! 뭐 뜬 거야? 비늘 나왔어?”

“아냐, 봤는데 빛강석 2개밖에 없었어. 이번 타임은 거지네 거지.”

“오, 다행이다 다행. 거의 독식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비늘 나왔으면 빡쳤을 뻔!”

이것들이 지금 내 앞에서 염장 지르나? 다행이라고?

“저기요. 댁네는 빡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전 개빡쳤거든요? 저희가 방금 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왜 칩니까? 어차피 딸피였어서 쳐봤자 아이템을 먹지도 못 할 거면서!”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현중이를 제치며 따지듯이 물어보니, 기사 유저가 대답했다.

“중립 지역 필드 보스에 언제부터 우선권이 있었다고 이러십니까? 여기서 못 뵌 분들인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드레이크 잡는데 독식하겠다고 치지 말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어요. 웃는다고요! 레벨도 높아 보이는데 왜 그렇게 초보들도 안 할 소리를 하세요?”

“그래서 제가 골드, 그것도 2만 골드나 준다고 했잖습니까?”

“비늘 시세가 지금 10만 골드가 넘어가는데 2만 골드요? 그리고 막말로 준다고 해놓고 거지였으면 그냥 갈지 누가 알아요? 그 말 믿고 잡는 걸 구경만 할 사람이 여기 센츄라 순찰자들 중에 한 명이라도 있을 거 같아요?”

안타깝게도 당초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였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 봤는데, 역시 이 방법이 실전에서 통할 확률은 극히 낮은 모양이었다.

“전 지금 아이템 먹으려고 잡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정말로 안 치셔서 제가 성공했다면 제가 2만이 아니라 10만이라도 드릴 수 있는 거였는데……!”

“네? 비늘 먹으려는 게 아니라면 드레이크는 왜 잡는 건데요?”

“테이밍하려고요.”

“네? 테이밍이요? 우하하하! 이 사람 봐, 드레이크를 테이밍 하겠대!”

“오잉? 그렇게 안 봤는데 재밌는 분이셨네? 기왕 할 거면 통 크게 드래곤에 도전하시지 왜 드레이크를 하세요? 크크.”

내 말이 얼토당토않게 들렸는지 두 유저는 대놓고 비웃었다.

“아놔, 가뜩이나 빡쳐 있는데 진짜 확 다 죽여버릴까?”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검을 빼 들려는 순간, 현중이가 중간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만해. 내가 진작부터 말했잖아, 테이밍하기 힘들 거라고. 발견도 힘들지만 이렇게 꼬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힘들다니깐? 두 분도 쌈 나기 전에 이만 가세요. 저희는 농담한 게 아니라 진짜로 도전해 본 거니깐요.”

“아, 네. 뭐 저희가 방해한 거라면 죄송하지만, 이런 인기 있는 보스 몹을 상대로 그러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민폐 짓이에요. 가능할지는 둘째 치더라도요.”

“…….”

“아무튼 참고삼아 말씀드리는 건데, 저라면 드레이크 테이밍 같은 헛짓거리에 시간을 허비할 바엔 레벨업이나 더 하겠네요. 그럼 이만, 수고하세요!”

두 유저는 오직 레이드가 목적이었는지, 방금 드레이크가 잡힌 시간을 체크한 뒤 곧바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서 사라졌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테이밍 도전은 허탕으로 끝이 났다.

* * *

“야! 진짜 오늘이 마지막인 거지? 오늘도 성공 못 하면 다시는 미련 갖지 않는 거다?”

“알겠다니까! 나도 이젠 지칠 만큼 지쳤다!”

새벽마다 이 센츄라 화산 지대에서 드레이크를 찾아 헤맨 지도 어느덧 6일이 지났다.

첫날 운 좋게 1시간 만에 만나 본 이후로, 그동안 레드 드레이크는 남이 잡는 것조차 구경 못 했다.

발견하면 금세 모여서 순식간에 잡아버리거나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몰래 잡아버리니, 언제 마지막으로 리스폰이 됐는지 알 길도 없었다.

하루에 겨우 2번 정도 리스폰되는 녀석이다 보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반쯤 포기한 상태로 찾아온 마지막 순찰이었다.

“와, 진짜 내가 능력이 안 돼서 테이밍을 못한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무슨 시도 한 번 해보는 게 이렇게나 힘드냐?”

“그냥 욕심 버리고 슈마허처럼 그리폰 킹 같은 거나 해. 그건 약한 놈이라 훨씬 더 자주 뜨잖아? 아니면 조금 더 레벨업 해서 와이번을 테이밍 하던가. 와이번만 해도 보스급보단 못하겠지만 레벨이 높아 쓸 만할 거야!”

“야, 내가 그런 잡몹이나 테이밍하려고 피 같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한 줄 알아? 남자라면 누구나 새빨간 스포츠카 한번 장만하는 로망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냐! 넌 그런 로망도 없냐?”

“응, 없어. 난 흰색 대형 SUV가 훨씬 더 좋은데?”

“하여간 이 자식은…… 천생 성기사로 태어났네. 페가수스 테이밍 하는 거였음 아주 눈이 뒤집혔겠어, 정말.”

“오! 뭐야? 생각도 못 했는데 듣고 보니 대박 끌리는데?”

단순히 비행 몹을 테이밍하고 싶은 거라면 여러 대체재가 있긴 했다.

몇몇 펫같은 경우는 아이템이나 퀘스트로 얻을 수 있어, 애초에 테이밍 스킬을 배울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니 방금 현중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순전히 간지 때문에 레드 드레이크를 테이밍하려는 건 아니었다.

일단 현재 공개된 필드 상에 비행이 가능한 보스 몹은 많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렇게 라이딩이 가능할 것처럼 생긴 보스 몹은 더욱 드물었다.

오크 로드를 레이드할 당시.

나는 보스 몹의 리스폰 정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속히 도착할 수 있는 기동력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다른 사람들의 방해로 소환 몹이 해제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누구보다 빠르게 목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만한 놈.

그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이 레드 드레이크보다 적격인 몹은 없어 보였다.

레드 드레이크의 추정 레벨은 350.

펫이 되면 레벨업이 가능해졌으니,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레벨업을 통해 성장할 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자그마치 보스 몹이 레벨업하는 것이지 않은가!

거기다 일단 예측일 뿐이었지만, 업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무언가 특별하거나 정말 특출난 일을 달성했을 때만 간혹 주어지는 업적.

만약 보스 몹을 테이밍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업적이 주어질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만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전부, 테이밍에 성공했을 때를 가정한 이득.

아무리 능력과 조건을 전부 갖췄다고 해도, 녀석은 만나보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현실의 벽에 부딪혀버린 난,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드레이크 순찰을 그만두기로 현중이와 타협했다.

“아무튼, 사냥하기 좋은 새벽 타임에 일주일간 순찰 돈다고 얼마나 손해 봤냐? 레벨업하다 보면 레드 드레이크보다 더 테이밍하기 좋은 고렙 몹도 나올 거야.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라니까?”

“알았다고. 근데 너 제대로 둘러 보면서 이동하고 있는 거 맞지? 드레이크 떴는데도 수다 떠느라 놓치면, 내가 가만 안 둔다?”

“짜식이 누굴 쪼렙으로 아나. 형이 도대체 몇 렙인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형은 뒤통수뿐만 아니라 혓바닥에도 눈이 달린 거 모르냐? 그래서 자꾸 말하고 있는 거…… 어! 떠, 떴다!”

“어디! 새끼가 또 장난치네? 장난하지 마, 나 지금 예민하니까!”

녀석의 말에 서둘러 뒤돌아보고, 녀석이 바라보는 방향도 훑어봤다.

한데 주변 어디에도 레드 드레이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야! 그쪽이 아니라 저기, 저 언덕 밑에 말야! 저기 떠 있잖아!”

“응? 헉!”

언덕 밑 움푹 들어간 곳이라 얼핏 보면 몹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법한 곳.

그곳에 정말 레드 드레이크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제 막 리스폰이 되었는지, 아직 날개를 접고 있어서 더욱 눈에 띄지 않았다.

“대박! 현중아, 알지? 한 명이 다가오면 무조건 스턴 날리고, 두 명 이상이어도 그냥 일단 쳐서 시비부터 걸어! 무조건 못 오게 막아야 한다!”

“오키! 이번엔 내가 길드 마크 달고 머더러되는 한이 있어도, 절대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준다!”

나는 현중이에게 건넨 당부를 끝으로, 녀석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쳐 내려갔다.

‘이건 진짜 대박 기회다! 저 밑에 떴으니 바로 옆에 있던 나도 못 보고 지나칠 뻔했잖아? 첫 시도 때와 달리 여긴,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끝낼 수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언덕 밑 용암이 흐르는 바닥에 도착하자, 곧바로 자버프를 걸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키에엑!”

한 번 들어봤던 울음소리.

용암이 반사되어 더욱 붉게 번들거리는 녀석이 내게 반격해 왔다.

[마나 쉴드가 1,388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지난 6일간 한 시도 쉬지 않고 사냥해서 달성한 268레벨.

첫날 녀석을 상대할 때보다 어느새 17레벨이나 높아졌기에, 녀석을 상대하는 일은 한층 더 수월해진 상태였다.

80%, 70%, 60%!

동시에 흡수되는 마나 덕분에 내 MP 수치는 도통 3만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반면, 녀석의 체력바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도둑이 레드 드레이크를 일대일로 잡고 있는 걸 누군가 봤다면 기함할 광경.

하지만 나로서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아오, 왜 이렇게 피가 팍팍 안 깎이냐! 누가 오면 안 되는데…… 후달려 후달려!’

공격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내 시야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행인 건, 이곳이 언덕 밑 용암지대라 순찰 도는 유저들이 발견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키엑!”

평캔을 섞어 가며 최선의 딜 사이클로 데미지를 뽑아내는 도중, 드레이크가 갑자기 고성을 터뜨렸다.

이 소리는 녀석이 화염구를 쏠 때 내던 외침!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화염구를 쏘아냈는데, 엉뚱하게도 내가 아닌 뒤쪽을 향해 날아갔다.

퍼엉!

서둘러 고개를 돌려 화염구가 떨어진 곳을 확인한 순간, 나는 심장이 멎어 버릴 만큼 깜짝 놀랐다.

50미터쯤 떨어진 언덕 중턱.

그곳에서 스킬을 캐스팅 중이던 마법사가 황급히 화염구를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 말고 마법사를 공격한 거야? 설마 실패 판정?’

일반 몹 중에도 어그로 관리가 안 되는 몹들이 종종 있다.

최대한 어그로를 관리하는데도, 종종 주변에 있는 다른 유저를 공격해서 사냥 난이도를 급격히 올려주는 그런 몹이…….

아마 레드 드레이크도 그런 유형의 몹인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우리가 먼저 눈치채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다가온 마법사를 감지하고는 먼저 원거리 선공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어그로가 튄 것은 화염구 한 방이었을 뿐.

드레이크는 다시 내게 앞발을 휘둘러왔고, 그걸 보고 안심한 마법사는 또다시 캐스팅 모션을 취했다.

“안돼!! 멈춰요!”

저 마법이 쏘아진다면 이번 테이밍 도전은 다시 수포가 된다.

이 화산 지대에서 순찰 도는 유저 중에, 레벨 차이로 헛방이 날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이번 테이밍 기회도 날아가기 직전의 순간!

[아이스 스피어!]

빠지직!

거대한 얼음 창이 드레이크에게 박히는 소리 대신, 뭔가에 막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이스 디펜스.

현중이의 방패에 부딪힌 소리였다.

“치지 말아 주세요! 더 이상 공격 안 하시면, 저놈이 골드 드릴 겁니다! 5만! 아니 10만 골드라도 드릴 거예요!”

타연이 논타겟팅(non-targeting)게임이기에 가능한 임기응변!

반대편에 있던 현중이는 차징으로 순식간에 이동해서, 가까스로 날아오던 마법의 궤적에 막아섰다.

하지만 임기응변은 말 그대로 임기응변일 뿐, 다음 공격도 막아낼 거란 보장은 없었다.

마법사는 골드 제시를 들었음에도 믿지 않는다는 듯 새로운 캐스팅에 들어갔다.

스턴을 먹이러 다가가기엔 방금 차징을 소모했기에, 현중이는 날아오는 공격이라도 막아보려고 중간에 서서 주춤거렸다.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공격 중인 와중에도 마법사의 다음 행동을 예의주시하던 순간, 뒤늦게 그의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김석용>

아이디 중복이 허용되지 않는 타연에서, 저 실명 아이디는 오직 단 한 명만이 사용 중인 아이디였다.

바로 타이토닉 TV의 간판 아나운서, 김석용 아재만이!

“김, 김석용 아저씨! 치지 말아 주세요! 저 아나운서님 팬이에요! 이거 안 치시면 제가 꼭 보답해 드릴게요! 방금 말했던 10만 골드도 꼭 드리겠습니다!”

슈웅.

그러자 막 파이어볼을 날린 김석용 아재로부터 처음으로 반응이 나왔다.

“전 지금 방송이 아니라 유저로서 타연을 플레이하는 겁니다! 보스 몹을 독식하기 위해, 뭐라고 말씀하시거나 아는 척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많이 당해봤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해 볼 게 있어서 그래요! 한 번만 봐주세요!”

“맞아요! 어차피 몇 대 쳐 봤자 아이템을 먹지도 못할 겁니다!”

펑!

방금 쏘아진 파이어볼을 점프해서 아슬아슬하게 막은 현중이도 거들었다.

“이미 제가 불렀으니, 곧 파티원도 도착할 겁니다! 일단 저부터 치면서 루팅권을 얻겠습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도무지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현중이가 각을 좁히며 다가서려 했지만, 김석용 아재는 능숙하게 옆 무빙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생각보다 상황 판단이나 무빙 동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러다 갑자기 블링크로 거리를 좁히면서 즉발 스킬이라도 쓴다면?’

그럼 이번 테이밍 도전은 그 즉시 끝이었다.

요 이쁜 레드 드레이크가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다니!

순간 이 상황을 타개할 한 가지 방법이 번뜩 떠올랐다.

너무나 급한 마음에, 이것 말고는 도무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뷰!! 치지 않으시면 제가 인터뷰해 드릴게요! 그것도 아저씨와 최초 단독 인터뷰로요!!”

“하! 비늘을 독식하려고 별의별 방법을 쓰는 사람도 많이 봤지만, 인터뷰 제의는 처음 보는군요! 게임은 게임답게 좀 합시다.”

“아 쫌! 캐스팅 좀 멈추세요! 제가 고작 독식 때문에 인터뷰한다고 할 것 같아요?”

또 한 번의 아이스 스피어가 완성됐고, 이번엔 조금 높게 쏘아져 현중이가 막지 못한 채 드레이크에게 날아왔다.

휭!

만약 드레이크가 꼬리치기를 한답시고 몸을 돌리지 않았으면, 놈의 얼굴에 그대로 적중했을 공격!

높은 데미지를 위해 크리티컬을 노린 머리통 공격이 아니었더라면, 바로 실패였던 상황이었다.

“헉!”

그야말로 일 초가 급한 상황!

나는 공격하던 것까지 멈추고, 김석용 아재에게 급히 귓속말을 넣었다.

(나: 제 정체를 아시고도 인터뷰 제의를 거절하시겠어요? 저 사실 매그넘0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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