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48화 (48/350)

48화 천인대전 (1)

“뭐? 혼자서 무슨 수로?”

“형님이 아무 생각도 없이 괜히 말했겠냐? 들어봐…….”

현재 내 레벨은 272.

내일 저녁에 있을 공성전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면, 무난히 274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정도라면 랭커급이 아니라면 대부분 헛방은 물론, 레벨 보정도 거의 없을 수준.

계산대로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어? 어라? 이거 진짜 말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다? 내가 마쉴 찍는다고 했을 때도 그 소리 하지 않았냐?”

“아, 이 새끼 하여간 기억력은 좋아가지고.”

“기억력만? 창의력은 안 좋고? 아무튼 어떤데. 들어보니 가능할 것 같지?”

“네 말대로라면 확실히……. 야! 어쩌면 내일, 타연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흐흐흐.”

최상위급 길드 마스터와 단둘이 만난다는 것.

그것도 그 사람으로부터 부탁받는 입장이라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 귀중한 기회를 허투로 낭비할 필요는 없었기에, 어제 그에게 이런저런 것들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중 흥미로웠던 내용은 역시나 건국과 타이탄에 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이었다.

-아시다시피 성주가 되면 그 지역에 있는 상점이나 경매장, 창고 및 주택 임대에 대한 세금을 걷을 수 있지요. 세율은 정하기 나름이지만 보통 2%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건국해서 국가로 승격하게 되면, 그 세금이 2배로 걷힌다는 점입니다.

-네? 2, 2배나요?

-그렇습니다. 유저들이 내는 금액은 변함없지만, 길드에 들어오는 세금은 2배가 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지방세만 걷다가 국세까지 걷게 된다고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2위권 길드들이 기를 쓰고 두 번째 건국 주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이유.

난 그 결정적인 이유를 알고 있는 극소수의 유저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타연을 통틀어 가장 베일에 싸인 비밀 중 첫째로 꼽히는 것이, 바로 성을 차지한 길드들이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금액이었다.

성마다 걷히는 액수가 다르고, 어떤 길드는 길마밖에 모르고 있을 정도로 세금 관련 정보는 극비로 통제됐다.

그러니 나 같은 일반 유저들이 그 세계를 가늠하는 것이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타연 초보라 해도, 건국과 동시에 세금이 2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혜택인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도 추가적인 수고나 비용 따위가 전혀 없는 것이라면 더더욱!

과연 길드들이 건국에 완전히 눈 돌아가서 서로 합병하고, 배신 때리고, 돈 쏟아부으며 공성전에 총력을 다할 만했다.

-또한 국가로 승격하게 되면 ‘국립 시설’이라는 것을 설치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태성은 건국한 지 하루 만에 그 국립 시설을 만들었는데, 하필 그 장소가 빼앗긴 번스타인 성이었던 것이지요. 성을 먹은 올림푸스 측으로부터 흘러나온 비밀 정보……. 과연 그 시설의 이름이 뭐였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혹시 특별 스킬이나 아이템 개발 혹은 특수 NPC를 양성할 수 있는 뭐 그런 곳 아니었을까요?

-그런 정도였다면 제가 이리 호들갑을 떨진 않았겠지요. 특별히 산드로 님이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올림푸스는 가동할 수 없었던 시설, 그곳의 이름은 ‘타이탄 생산 연구소’였습니다.

-네에? 정말입니까?

-국가 단위가 된 길드는 놀랍게도 타이탄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래서 지금까지 타이탄이 타연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국가 단위에 이르러야만 타이탄을 제작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세팅됐던 겁니다.

그동안 일루전은 대체 타이탄이 언제 등장하냐는 유저들의 불만을 꾸준히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PC 버전에서는 무기나 유적 등을 차지하면 소환 자격이 주어지는 식으로 비교적 일찍 등장했었는데, 여기서는 3년이 지나도록 실마리조차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아직은 게임 설정상 레벨이 낮은 구간으로 생각하며 묵묵히 레벨업에만 전념해 왔는데, 얼마 전 드디어 루이투스가 공개되면서 기다려온 유저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른 타이탄의 ‘등장 루트’도 이미 함께 오픈된 상태였고, 태성은 지금까지 그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다.

만약 나 때문에 번스타인 성을 뺏기지 않고 그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태성은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넘사벽이 될 수도 있었다.

‘타이탄’이라는 사기 콘텐츠를 선(先)독점해서 말이다.

-올림푸스는 국가가 아닌지라 뺏은 건물로 생산은 안 되는 모양이지만, 건국만 된다면 곧바로 가동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그게 저희 길드나 다른 길드들이 지금 기를 쓰고 공성전에 매달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고요. 태성은 아마 다른 성에 연구소를 다시 만들어서 이미 생산 연구를 진행 중일 겁니다.

국가 단위부터는 타이탄을 제작할 수 있다.

뭐가 나오든지 ‘로드급’ 타이탄이라는 루이투스보다 성능은 떨어지겠지만, 나 혼자만 타이탄 소환이 가능하다는 메리트는 곧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그 얘기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루이투스로 뽕 뽑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뽑아먹어 놔야 했다.

“이 정보들은 극비라고 신신당부하더라. 나야 뭐 현존하는 유일한 타이탄 라이더니까 망설이다 말해준 것 같지만……. 그래서 좀 무리하는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이번에 성을 먹어보려고. 아직 사람들이 생각조차도 못해서 방심하고 있을 때! 바로 이때 한탕 해 먹어야지 않겠냐?”

“전에 타이탄 패치 당했을 때 말했던 게 바로 ‘성 먹자’였냐? 하여간 내가 너 잔머리 돌아가는 거 하나만큼은 진짜 인정한다. 그동안 도대체 그 머리 가지고 왜 이따구로 살아온 거냐?”

“어허!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시지? 아무튼, 이번에 성 먹게 되면 한 달 동안 제대로 클 거니까, 너도 죽었다 생각하고 렙업만 하고 있어. 나중에 나한테 뒤처지고 울지나 말고.”

“얀마, 신검으로 광렙하고 있는 놈을 내가 어떻게 이겨!”

“크크. 언제는 못 따라온다더니만, 이제 슬슬 말이 바뀌기 시작했네?”

늘 쓸데없는 소리를 섞어 가볍게 대화하곤 했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현중이를 직접 찾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리스크 체크.

나만의 망상이나 무리한 발상이 아닐까 확인받고픈 마음이 있었기에, 내가 실력을 인정하는 이놈에게 대화를 나누며 조언을 구했다.

오늘도 이렇게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내일 공성전에 참여하기 전, 최대한 스펙 업을 시켜놓는 것!

마침 단기간에 그럴 수 있는, 좋은 코스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 *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후아! 정말이지 내 평생에 요즘같이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고3 때도 지금의 반의반도 안 한 것 같은데!”

3시간의 짧은 수면 후, 나는 홉고블린 부락에서 반나절 동안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레벨업을 달렸다.

그렇게 달성한 273레벨.

내일 저녁 공성전까지는 아직 사냥할 여유가 있지만, 잠시 멈추고 마을로 돌아왔다.

공성전에 앞서 매주 토요일에만 참가가 가능한 ‘투기장’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레벨 차이가 타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죠.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레벨이 몇십씩 높아도, 실제 스펙은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도 일명 랭커급이라 칭해지는 최상위권 유저과 상위권 유저의 격차가 매우 큰 이유는 뭘까요?

-사실 절대적 차이보다는 상대적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이보다 근소하게나마 앞서있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도둑 랭킹 1위 ‘당근당근단검’.

1년 전 그가 올타 기자와 나눈 인터뷰는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었다.

암암리에 돌고 있던 소문이지만, 그것이 실제라고 공식적으로 확언해 준 최초의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차이가 못 잡을 보스 몹을 잡게 해주고, 못 먹을 아이템을 먹게끔 해줘요. 하지만 그보다 더 얻기 힘든 게 바로 업적이에요. 타연의 업적은 다른 게임과 달리 유저들에게 후하게 주어지지 않거든요. 대부분 특정 분야에서 1등을 하거나 특별한 성취를 달성해야만 주어지죠. 상위권 유저들이 어마어마한 현질을 하더라도, 랭커들과의 갭 차이를 메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랍니다.

일반 유저들, 멀리 볼 것도 없이 나만 해도 3년간 게임을 했지만 업적은 D급 2개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가 당시에 밝힌 랭커들의 평균 업적 개수는 무려 20개 이상!

그동안 랭커들 중 누구도 밝히지 않았던 비밀이 대중에게 공개된 순간이었다.

-업적을 최대한 획득하세요.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의 개수는 한정돼 있지만, 얻을 수 있는 업적의 개수는 무제한이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업적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을 거랍니다!

그 직후, 유저들 사이에는 ‘업적 획득’의 붐이 일어났다.

레벨업과 아이템 파밍만으로도 바쁘던 후발 주자들이, 뒤늦게나마 업적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원래도 얻기 힘든 업적들이었는데 경쟁률까지 높아지자, 예상 밖의 일이 생겼다.

일반 유저들은 물론 최상위권 유저, 심지어 랭커들까지도 몇몇 업적은 얻기 힘들어진 것이다.

바로 내가 지금 참여하려는 투기장 내 이벤트, ‘천인대전’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가아라 제국의 수도, 오스타그에 도착했습니다.]

“와! 평소보다 사람이 2배는 많은 것 같은데? 천인대전 시각이 다 돼 가니까 급 몰려든 건가?”

잠시 둘러보는 사이에도 유저들이 공간이동술사를 통해 쉴 새 없이 넘어왔다.

아무래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오스타그에 있는 대형 콜로세움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이벤트 때문인 듯싶었다.

투기장(arena).

유저들끼리 어떠한 페널티 없이 자유롭게 PvP를 겨뤄볼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

그 안에서는 결투 상대만 있다면 언제든지 일대일 및 다대다 전투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승리한 유저들은 부상으로 투기장 포인트가 주어졌고, 그걸로 투기장 전용 장비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투기장에 이런 평범한 PvP 콘텐츠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오스타그 콜로세움에서만 열리는 서바이벌 모드, 천인대전(千人大戰).

유저 1천 명이 광대한 투기장 안에 한꺼번에 투입된 후, 난투극(free for all)방식으로 최후의 생존자를 가리는 경기였다.

이 전투는 색다른 재미는 물론, 최후의 10인이 막대한 포인트를 독차지하는 독특한 보상 시스템 덕분에 유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1등에게만 주어지는 업적.

그 업적을 획득하기 위해 랭커나 최상위권 유저들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콘텐츠였다.

‘획득 루트가 알려진…… 몇 안 되는 A등급 업적 중 하나니깐 말이지.’

콜로세움 매표소.

이미 이 앞은 참가 티켓을 구매한 유저와 새롭게 구매하려는 유저들로 인산인해였다.

얼핏 봐도 2, 3만 명은 가뿐히 넘어갈 법한 어마어마한 인원!

하지만 티켓을 판매를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도착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디! 자네도 우리 오스타그의 자랑, 천인대전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왔는가! 그렇다면 어서 참가 티켓을 사시게나. 실력이 뛰어나거나 혹여 운이 좋다면,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될 테니!”

[‘천인대전’ 참가 티켓을 구매하겠습니까?]

[구매할 티켓의 종류를 선택하세요.]

[골드 티켓: 10,000골드]

[실버 티켓: 1,000골드]

[브론즈 티켓: 100골드]

콜로세움 곳곳에 서 있는 매표원 NPC중 하나에게 다가가자, 먼저 말을 건네왔다.

이어서 선택창이 떴는데,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골드 티켓을 구매했다.

“크크. 돈 벌어서 좋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아무리 비싸도 별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이 여유 때문에!”

콜롯세움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의 종류는 총 3개.

티켓을 구매한 유저들은 랜덤으로 입장이 추첨 됐는데, 티켓 종류에 따라 입장 인원수가 달랐다.

그래서 천인대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타연 초창기에는, 브론즈 티켓만으로도 확정 참가가 가능했다고 들었다.

‘그때 업적을 획득한 사람은 진짜 개꿀이었지. 근데 뭐, 오늘 나도…….’

어쨌든 인기가 급등한 후 브론즈 티켓으로 참여한다는 건, 순전히 운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몇만 명이 구매하더라도 브론즈 티켓에 할당된 입장 인원은 오직 900명뿐이었으니 말이다.

실버 티켓은 90명, 골드 티켓은 10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법 팔리는 실버 티켓과 달리, 골드 티켓의 평균 판매 개수는 매주 5장을 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단순히 가격이 비싼 탓이 아니라, 천인대전만이 갖게 된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랭커나 최상위권 유저들에게 더더욱 불리한 곳. 여기 천인대전은 바로 그런 곳이거든!’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보상받을 자신이 있을 사람은, 당연하게도 최소 최상위권에 있는 유저들이었다.

하지만 매주 천인대전이 열리지만, 그들이 좋은 성적은 거둬도 업적까지 차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강할수록 유명했고, 유명할수록 전투 초반에 집중 타겟팅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

속된 말로, 될성부른 떡잎은 초반에 제거하는 것이 천인대전 참가자들만의 전통이자 불문율이었다.

[콜로세움의 ‘천인대전’ 티켓 판매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총 판매 티켓은 골드 티켓 9장, 실버 티켓 421장, 브론즈 티켓 21,232장입니다. 모두 입장 버튼을 터치하여 참가 여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만 명 중에서 900명만 입장이라……. 여전히 브론즈 티켓으로 입장하는 건 헬이구나. 근데 이거 의왼데? 백만 원씩이나 내면서 참가하는 사람이 나 말고 8명이 더 있다니?”

랭커일수록 좋을 성적을 내기 힘든 구조.

그 때문에 골드 티켓의 인기는 나날이 줄어들었다.

한데 이번 주 천인대전에는 제법 많은 유저가 구매해, 하마터면 확정 입장을 못 할 뻔했다.

“뭐가 됐든 안됐구나. 딱 보니까 누구 한 명 몰아주려고 날 잡은 거 같은데, 하필 내가 참가하는 날이라니!”

슈슝! 슈슈슝!

주변에 서 있는 유저들이 하나둘씩 빛기둥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나 또한, 입장 버튼을 터치하자마자 그들처럼 순간이동 됐다.

[골드 티켓을 사용하여 콜로세움에 입장했습니다.]

[잠시 후, ‘천인대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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