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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57화 (57/350)

57화 캐슬 라이프 (3)

각 성에는 성을 지키는 기사단이나 마법사 등의 NPC들이 있다.

수성할 때도 도와주는 AI 병력들인데, 평상시에는 이렇게 골드나 업적치를 대가로 잠시 ‘호위’를 요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 호위지, 사냥에 써먹을 수 있는 펫이나 소환수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덕분에 성을 먹은 유저들 중에는 이런 NPC들을 끌고 사냥을 하거나, 심지어 PK하는 데 써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쨌든 그들이 이 NPC 병사들을 어떻게 써먹든 간에.

유저들 눈에는 마을 경비병과 비슷해 보이는 병사들을 유저가 끌고 다닌다는 것이, 한없이 간지나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NPC 궁수병 2명과 함께 원거리 폭딜로 솔플 하던 궁수 유저를 보고, 상당히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궁수병이 좋긴 하지. 근데 그러면 경험치를 많이 뺏기게 돼. 어차피 딜은 충분하니까 몸빵할 만한 놈으로 한번 뽑아 볼까?’

여러 명 끌어 봐야 업적치만 많이 쓰이고 경험치만 뺏길 터였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성주 전용이라고 쓰여 있는 부기사단장 랜포드를 선택했다.

[‘부기사단장 랜포드’를 차출하겠습니까? 랜포드를 차출하는 데는 업적치 660이 필요합니다.]

[Yes]

[‘부기사단장 랜포드’를 소환합니다. 소환 지속 시간은 4시간입니다.]

상당히 비싼 대가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허락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갑자기 부기사단장 랜포드가, 마치 펫이 소환되듯 허공에서 나타났다.

“마이 로드, 산드로 님이시여! 충심을 다해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커다란 사각 방패와 검은색 풀 플레이트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랜포드.

나는 녀석의 이름을 터치해 자세한 스펙을 살펴보았다.

[랜포드(검은 장미 부기사단장), Lv. 362]

* HP: 43265/43265 * MP: 16420/16420

* 공격력: 1127 * 물리 방어력: 2875 * 마법 방어력: 3320

* 보유 스킬: 방패 돌격(!), 철벽 방어(!)

“확실히 부기사단장에 네임드쯤 되니깐 한가락 하는구나!”

내 애룡 훼라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웬만한 펫이나 소환 몹들보다는 월등히 뛰어난 스펙이었다.

일단 이런 소환 몹 계열이 스킬을 여러 개 가졌다는 것은, 급 자체가 높은 놈이라는 증표나 마찬가지였다.

“패트릭, 어제 말했던 ‘던전’에 관해 다시 한번 말해 줄래?”

“던전이라 말씀하시면 혹시 비밀 땅굴 말씀입니까?”

“그래, 그 비밀 땅굴. 그곳으로 날 좀 들여보내 줘.”

아무 생각 없이 랜포드를 차출한 건 아니었다.

어제 성의 모든 NPC들에게 던전 등의 키워드를 던진 결과, 이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냈기에 차출한 것이었다.

“전대 성주님께서 봉인하신 ‘붉은 갈기 오크족의 땅굴’. 그 포악하고 거친 놈들이 언제 다시 이곳을 통해 쳐들어올지 몰라, 땅굴 입구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설치해둔 이동 마법진을 통해, 바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슝!

[칼젠 성의 인스턴트 던전, ‘붉은 갈기 오크족의 땅굴’에 입장했습니다.]

확실히 게임은 게임.

나와 랜포드는 마치 순간이동 하듯 칼젠 성의 전용 인던 안으로 들어왔다.

현재 내 레벨은 274.

예상컨대 이곳의 몹들은 350대로, 원래는 솔플은커녕 사냥조차 힘든 사냥터였지만 상관없었다.

이 캐릭을 키우고 나서부터, 언제 레벨에 맞춰서 사냥터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던가?

특히 마쉴과 마나 흡수라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 이후부터는, 이런 인던 사냥터는 시간만 투자하면 경험치가 튀어나오는 자판기나 마찬가지였다.

똑, 똑.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폭과 높이가 5미터는 넘어 보이는 통로와 은은히 새어 나오는 불빛.

땅굴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이곳은 제법 큰 동굴과도 같은 곳이었다.

<붉은 갈기 오크족 투사>

조금 걸어 들어가자 인던 입구답게 손쉽게 처리가 가능한 몹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일단 나는 랜포드에게 혼자 왔다 갔다 순찰 돌고 있는 오크 투사를 공격해 보도록 명령해 보았다.

즉각 방패를 앞세우며 다가가는 랜포드.

녀석이 검을 휘둘렀는데, 고레벨 NPC답게 제법 빠른 공격 속도였다.

쿠엑! 윽, 쿠엑! 윽.

랜포드가 오크 투사의 도끼를 맞으면서도 맞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락없는 게임의 한 장면이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서로 제자리에서 HP가 떨어질 때까지 치고받기만 하는 전투.

사실 유저들끼리 싸울 때는 거리나 스킬 타이밍을 잰다거나, 직접 싸우느라 그런 어색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 내 크리처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니, 역시나 ‘게임’을 하는 중이라는 느낌을 간만에 전달받았다.

“쿠웩!”

이윽고 오크 투사가 쓰러졌다.

반면 랜포드의 HP는 겨우 10%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확실히 성주 전용이라 스펙이 좋구나. 공격력은 평범하지만, 방어력은 생각보다 좋은 것 같아.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몸빵을 맡기고 사냥해도 되겠어.”

이번 오크 투사는 랜포드 혼자 죽여서, 내게 경험치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이 던전에서 녀석에게 맡길 역할은 몸빵.

딜과 킬은 오직 내가 전부 다 할 테니, 녀석이 먹을 경험치는 이게 마지막이었다.

특히 철통 방어 스킬을 쓰면 이동 불가 상태가 되지만, 방어력이 100% 증가하기에 데미지 분산용으로 써먹기에 딱으로 보였다.

랜포드는 잠시 방어 태세로 두고, 이번엔 내가 새롭게 나타난 오크 투사에게 달라붙어 봤다.

일단 이 던전 몹의 공격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가만히 맞아 주었다.

[마나 쉴드가 1,620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71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여전히 레벨 보정이 상당히 적용된 듯한 데미지.

하지만 이제는 만MP가 늘어나고 예전보다 템빨도 월등히 좋아졌기에, 아무리 네임바가 새빨갛게 보이는 고레벨 몹이라 해도 부담되진 않았다.

‘원래 평범한 동 레벨의 1만 중반대 HP 도둑이라면…… 순식간에 위험에 빠질 만한 상대였겠지.’

허나 올 마력과 온갖 템빨로 뻥튀기된 내 MP는, 이 정도 공격은 가만히 100대를 맞아 주어도 거뜬할 수준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맞고만 있을 이유는 없었다.

현재 나의 공격력은 5536.

불굴의 용맹함 40%, 8성 소드 마스터리 16%, 그리고 최근의 업적 효과 2%가 더해져 뻥튀기된 무지막지한 수치였다.

예전 +6 캘커라 단검을 쓰던 232레벨 시절 공격력이 400을 조금 넘었으니, 정말 스치면 한 방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추가로 신검 고유의 빛 속성 마법 데미지도 자주 터졌다.

그러니 지금 내 근력이 비정상적으로 낮다 하더라도, 순수 데미지 측면에서는 +9 레전더리 무기를 들고 있다는 다리우스와도 비교 불가한 수준인 게 분명했다.

[연속 베기!]

이런 공격력의 260%가 들어가는 단일 대상 스킬!

이 공격 한 방에 오크 투사의 피가 반절로 떨어지고, 내 마나는 500이 넘게 차올랐다.

역시나 마나가 없는 몹이 나오지 않는 이상, 신검과 함께라면 어느 사냥터든지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만 잡아봐도 냄새가 나는구나, 냄새가…….”

쿠웅.

순식간에 쓰러지는 오크 투사의 모습에서, 듀메인 성과 같은 노가다 사냥터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하나뿐인 통로로 오크 투사를 하나둘씩 잡으며 전진하다 보니 넓은 공동이 나왔다.

게임인 이상, 스토리야 어찌 됐든 간에 인던의 구조는 대개 이런 구조를 띠는 경우가 많았다.

리얼하게 만든답시고 정말로 어두컴컴하고 좁은 땅굴로만 이어진다면, 많은 유저들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할 테니 말이다.

“당연히 가운데 큰 길이 메인 루트겠지?”

공동의 정면에는 다음 코스로 이어지는 큰길이 있었고, 그 좌우로 좁은 갈림길이 여러 개 보였다.

갈림길 중 하나로 들어가 보니, 막다른 곳에 오크족 두 개 파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퍼슨 납골당 인던처럼 방마다 파티 몹들이 들어차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몹 배치가 유저 편의적인 몹 배치이기는 했다.

‘상당히 안전한 구조의 사냥터인데? 들어오기 전엔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 당장 몹몰이 사냥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갈림길 하나하나가 일종의 방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굳이 들어가서 오크 파티의 어그로를 끌어오지 않는 이상, 선공 당할 일은 없었다.

즉 내가 위험하지 않을 만큼만 어그로를 끌고 나온다면, 이 넓은 공동에서 한꺼번에 몹 몰이 사냥하듯 잡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오크 투사들의 공격력이 제법 강한 편이 문제였지만, 나에겐 회전 베기와 성능 좋은 두 쫄다구가 있다.

그리고 마침 공교롭게도, 내 쫄다구들은 둘 다 광역 넉백기를 가진 놈들이었다.

“훼라리 소환!”

좁은 공간에서는 소환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이곳은 공동인 만큼 충분히 소환되고도 남을 만큼 천장이 높고 넓었다.

키에엑-!

울음을 터트리며 날개를 접은 채 소환된 훼라리.

언제 봐도 간지가 철철 넘치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매직 미사일!]

타타탓!

일단 방 하나에 들어가, 2개 파티만 매직 미사일로 어그로를 끌어서 공동으로 달려 나왔다.

뒤돌아보니 도끼, 몽둥이, 강철 너클 등 각기 다른 무기를 착용한 오크 투사 십여 마리가 빠른 속도로 따라왔다.

마치 건장한 럭비 선수들이 달려오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돌진.

나는 침착하게 차례로 자버프를 걸고, 그런 오크들의 정면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방패 돌격!”

방어 태세로 해 놨기에 멀뚱멀뚱 내 곁에서 쫓아다니기만 하던 랜포드.

그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고는 오크 무리를 향해 방패를 앞세우며 돌격했다.

“쿠엑!”

쿠구궁!

순식간에 공동 위로 널브러지는 오크 투사들.

과연 360레벨이 넘어가는 부기사단장다운 위력이었다.

나는 그렇게 넘어진 오크들 위에서 회전 베기를 쓴 다음, 특유의 멀티 히트 베기를 쉴 새 없이 휘둘렀다.

2초간의 넉백은 순식간에 끝났다.

튕기듯 일어난 오크 투사들은 강력한 데미지 때문에 선공이었던 랜포드 대신 날 공격해왔고, 그걸 본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날개 돌풍!”

공격 한번 없이 우리의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던 거대한 드레이크.

센츄라의 필드 보스였던 내 애룡이, 서 있던 그대로 날개를 펼쳐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겨우 일어났던 오크 투사들이 또다시 바람에 날려 쓰러졌다.

오크 투사들이 도무지 공격을 시도할 틈이 없었다.

“도둑은 스턴기는커녕 넉백기조차 없어서 항상 아쉬웠었는데, 이렇게 쫄들이 대신 써 주는 날이 올 줄이야!”

연속 광역 넉백 덕분에, 근 5초 동안 멀티 히트가 프리딜로 들어갔다.

그것도 8성 재빠른 몸놀림과 약점 포착이 적용돼, 미친 듯이 빠르고 위력적인 데미지로!

“쿠엑! 쿠-엑!”

그냥 검도 아닌 신검을 차고 있는데, 이런 자잘한 몹들이 오래 버텨낼 리 없었다.

추가 마법 데미지가 터진 녀석부터 하나둘씩 죽어 나가더니,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곳곳에 드랍된 골드가 쌓였다.

이 한 번의 몹몰이로 차오른 경험치는 무려 10%가량.

그야말로 폭렙업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와! 고레벨 인던을 혼자서 이렇게 쉽게 쓸어버린다는 게 진짜 실화냐?”

대부분의 유저들은 뒤치기의 위험 때문에, 필드에서 이런 고레벨 몹들을 대상으로 몹몰이할 여건이 안됐다.

한데 난 이제 아이디까지 알려졌으니, 더더욱 생각조차 말아야 했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필드보다 경험치가 다소 아쉬운 인던.

그런데 이런 몹 몰이가 가능하다면, 기대 이상이었다.

“벌써부터 목구멍에서 쉰내가 올라오는 거 같구나!”

이 던전은 아무리 봐도 토 나올 때까지 돌만 한 인던이었다.

첫 입장부터 벌써 이 땅굴이 끔찍하게 느껴지려 했지만, 어차피 딱 ‘한 달’이었다.

그동안만 이곳에서 죽었다 생각하고 폭업하고 나오면…….

이 아이디로 필드를 활보하는 일이 더는 두렵지 않은 수준이 돼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태성과 나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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